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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주일말씀

4월 첫주 메시지 예수님의 세 가지 권위

작성자 : 천안UBF
작성일 : 2023-03-29 04:48:07
조회수 :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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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

4월 첫주 메시지 예수님의 세 가지 권위

누가복음 20장 강해 이부 예수님의 세 가지 권위

누가복음 209-누가복음 2018

요절 누가복음 2017절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한 마디로 말하면 모퉁이의 머릿돌 권위입니다. 머릿돌 예수님은 두 가지로 말하면 어머니의 권위와 아버지의 권위를 가지셨습니다. 어머니처럼 십자가에서 우리를 사랑하시며 희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사랑이 많은 사람을 변화시켰습니다. 예수님 부활하여 아버지와 같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가지셨습니다. 아버지로서 구원을 하시고 심판을 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세 가지 권위를 알고 모두가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농부들과 관계를 맺고자 하는 주인)

 

9-10a절을 보십시오.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 자신이 무슨 권위로 말씀을 가르치는지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었습니다. 포도원의 소유주는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다른 나라로 갔습니다. 농부들에게 소출을 얻으면 주인을 공경하는 표시로 십일조만 세로 바치고 모두 자신들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하였습니다. 농부들에게 세만 바지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주인은 아주 부유해서 사실은 그렇게 돈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세금을 바치는 가운데 주인의 권위를 인정하고 주인과 소작인으로 좋은 관계성을 갖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이 세금을 바치면 그 세금을 소작인들에게 더 많이 돌려주고자 하였습니다. 포도원의 포도 열매가 맺히자 주인은 세금을 받고자 종을 보내었습니다.

이 비유에서 농부들은 종교지도자와 유대인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세계만민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포도원을 주셨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고 그들을 온 세계의 제사장 나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세계만민에게 아름다운 지구를 주시고 해와 달과 물과 공기를 주셨습니다. 생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다만 하나님을 공경하는 표시로 예배를 드리고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기뻐하사 더 큰 복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무시하는 농부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자 하는 주인)

 

10b-12절을 보십시오. “농부들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심히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도 상하게 하고 내어 쫓은지라.”

 

농부들은 포도원에서 열심히 일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농사지어서 포도열매가 주렁주렁 맺혔습니다. 주인은 때가 되자 종을 보내서 삯을 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인으로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러나 농부들의 입장에서 피해의식이 들었습니다. 추위와 더위를 무릅쓰고 일한 것은 우리인데 아무 일도 안한 주인이 세금을 받는 것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은 소작인이라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들은 세금을 바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포도원을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종을 심히 때리고 거져 보내었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주인은 종들이 맞고 왔어도 농부들을 공바로 심판하지 않았습니다. 농부들은 종을 때려도 주인은 다른 종을 보내서 다시 세를 내라고 하였습니다. 농부들은 자신들을 심판하지 않자 주인을 무골호인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다시 온 다른 종을 심히 때리고 능욕하여 보냈습니다. 주인은 이번에도 농부들을 심판하지 않고, 세 번째 또 다른 종들을 보냈습니다. 농부들은 주인이 세 번째로 또 다른 종을 보내자 이 번에도 거의 죽을 지경으로 상하게 하여 내어 쫓았습니다. 그들은 주인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을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주인은 이들을 심판할 권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바로 심판하지 않았을까요? 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을 쫓아내면 그들이 얼마나 가난하게 살다가 죽을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사랑하고 배려했습니다. 농부들을 주인을 공경할 것을 믿어주었습니다. 주인은 인자하심이 영원합니다. 주인은 농부들과 어찌하든지 사랑의 관계를 맺고자 하였습니다. 농부들이 주인을 인정하는 가운데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고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계속하여 자신의 종들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믿어주셨습니다. 더 보낼 종이 없자 주인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농부들을 외아들보다 더 사랑한 주인)

 

13절을 보십시오. “포도원 주인이 가로되 어찌할꼬?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혹 그는 공경하리라. 하였더니

 

주인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외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적어도 아들은 공경할 것이라고 기대하셨습니다. 그들이 아들만 영접하면 과거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주인이 아들을 보내는 데는 큰 희생을 각오해야합니다. 농부들이 아들까지 죽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포도원 주인은 아들까지 잃을 각오로 아들을 보냈습니다. 주인은 자신의 외아들보다 농부들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주인은 사랑에 눈이 멀었습니다. 주인은 정말 바보 같습니다.

아들은 마지막 숨겨둔 히든카드였습니다. 하나님의 신의 한 수였습니다. 하나님이 마지막 보내신 아들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자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주인은 아들을 보낼 때 많은 경호원을 딸려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인격적으로 대우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배려하고 하고 존중함으로 대하셨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깊이 신뢰하였습니다. 농부들이 변화될 것을 소망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주인은 마치 바보처럼 되었습니다. 힘 있는 분이 힘없는 분처럼 되었습니다. 농부들이 강압적인 주인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아들을 어떻게 대하였습니까?

 

(원자폭탄보다 큰 십자가의 사랑)

 

14-15절을 보십시오.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업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농부들은 상속자를 죽이고 포도원을 아주 자신의 것으로 삼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들을 포도원 밖으로 쫓아내어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들은 교만과 탐욕으로 포도원을 자신의 것으로 차지하고자 아들을 포도원 밖에 쫓아내 죽였습니다. 농부들은 주인의 마지막 사랑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주인의 사랑을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장 심판하지 않는다고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여겼습니다. 그들은 교만하게 하나님을 대적했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주인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주인이 되고자 하는 교만이 있었습니다. 십일조도 자신이 갖고 나중에는 그 포도원마져 차지 하고자 하였습니다.

주인은 농부들을 어떻게 합니까? 주인은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십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심판하시고 다른 나라들에게 경영권을 주십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지 않는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주인은 이들을 철저히 진멸하십니다. 주인은 심판의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였다고 바로 심판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참았다가 그때에 심판하십니다. 그들이 아들을 죽인 죄를 회개하면 용서해주십니다. 인간들이 죽을 때까지는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 심판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십니다. 다시 오시는 그날 회개치 않고 아들 예수님을 영접지 않는 자는 멸망합니다. 그날 철저하게 멸망당합니다.

본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고 그 후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변화됩니다. 특별히 많은 이방인들이 회개합니다. 농부들을 사랑하여 아들까지 주신 그 사랑에 감동하여 회개합니다. 이것이 바로 원자폭탄과 같은 사랑의 힘입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자를 양아들로 삼았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원자폭탄과 같은 사랑을 영접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많은 종들을 희생하시고 마침내는 자신의 아들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원자폭탄과 같이 힘이 있는 사랑입니다. 우리도 이런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도 이런 사랑으로 자녀들을 돌보고 주위 사람들과 캠퍼스 양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바보 같은 사랑이 힘이 있습니다.

 

(구원하시고 심판하시는 아들의 권위)

 

17-18절을 보십시오.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그러면 기록된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로 가루를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저자 누가는 시편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을 한 마디로 모퉁이의 머릿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머릿돌은 다른 말로 주춧돌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들은 머릿돌을 먼저 세우고 여기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습니다. 머릿돌은 집의 기초가 되는 돌입니다. 머릿돌은 집의 주민등록증과 같습니다. 머릿돌에 설계자 시공자 시공년월일들을 기록해 놓습니다.

돌이 건축자에게 버림 받은 것은 예수님이 유대인에게 버림 받아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의미합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메시야가 아니라고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머릿돌이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부활하여 주요. 그리스도가 되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의 반석이요, 심판의 돌이 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릿돌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기초요. 중심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머릿돌로 영접하고 그 위에 모든 집을 지어야 합니다.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을 예수님에게 세워야합니다.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집을 예수님에게 기초하여 지어야합니다. 예수님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은 인생이 무너지지 않습니다. 예수님 위에 인생의 집을 짓는 사람은 집이 튼튼하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늘나라에까지 가서 영생합니다. 예수님의 돌은 베드로 전서에는 산돌 살아있는 돌이라고 나옵니다. 이돌은 집에 끊임없이 생명력을 공급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은 점점 번성하고 왕성하고 강성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죽이고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멸시하고 부활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지 않는 자들은 마지막날 철저히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머릿돌 예수님을 믿음으로 살면 영생을 얻지만 또한 사람들에게 버림 받습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많은 신자들이 그 사회에서 버림 받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살다가 세상에서 버림 받을 때 사람들에게 버림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합니다. 이미 버림 받으신 예수님께 나가야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산돌로 삼아 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삼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믿음으로 사는 자를 반드시 생명의 역사에 쓰십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버림받아도 예수님께 쓰임 받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 우리의 머릿돌 예수님)

 

한 마디로 예수님은 모퉁이의 머릿돌 권위가 있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사랑의 권위와 구원의 권위와 심판의 권위가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40살 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사도들이 무슨 권위로 이 일을 했는가 묻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모퉁이의 머릿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했다고 말합니다. 머릿돌 되신 예수님은 생명의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주는 권세가 있슴니다. 병든 자를 치료하는 권세가 있고 죄인에게 죄사함을 주는 권세가 있습니다. 우리의 저주를 제거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머릿돌 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힘과 용기와 지혜를 주십니다.

우리 개인도 예수님을 모퉁이의 머릿돌로 삼아야합니다. 가정과 교회와 학교의 중심으로 삼아야합니다. 나의 사상과 언어와 행동의 기초로 삼아야합니다. 나라도 머릿돌 예수님을 정치 사회 문화의 중심으로 삼아야합니다. 그래야 그 집이 하늘나라까지 영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은 다시 오시는 날 우리를 심판하십니다. 우리는 산산히 흩어질 것입니다. 이 시간 예수님을 나의 머릿돌로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의지하여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날 심판 받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3.25

4월 첫주 메시지 예수님의 세 가지 권위

누가복음 20장 강해 이부 예수님의 세 가지 권위

누가복음 209-누가복음 2018

요절 누가복음 2017절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누가복음 20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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