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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주일말씀

부활절 네번째 메시지 내가 날마다 죽기를 원하는 이유

작성자 : 천안UBF
작성일 : 2025-05-01 10:17:12
조회수 : 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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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어떻게 사십니까? 대체로 살려고 발버둥 칩니다. 죽지 않고자 발버둥칩니다. 손해 안 보고 이익을 얻으려고 발버둥치고, 무시 받지 않고자 발버둥치고, 고생 안하고 편하게 살고자 발버둥칩니다. 먹고 마시며 재밌게 살고자 애를 씁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죽을 사자가 들어 있는 4자를 싫어합니다. 아파트도 사층은 영어 퍼(four)로 표시하고, 유비에프도 관악이나 광주는 일이삼오칠부는 있는데 사부는 없습니다. 그러나 부활을 믿는 사람은 그 반대의 삶을 삽니다.

 

고린도전서 15장 강해 사부 내가 날마다 죽기를 원하는 이유 162

 

오늘 제목을 두 번만 읽어보겠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과 달리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아갑니다. 날마다 죽는다는 것은 주님을 위해서 날마다 손해 보고, 모욕 받고, 고난을 받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왜 인생을 세상 사람과 달리 거꾸로 살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 날마다 죽기를 원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배우고자 합니다.

 

말씀 고린도전서 1529-58

요절 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오늘 요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자랑하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손해보고 모욕받고 고난을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처럼 똑똑한 사람이 왜 살려고 발버둥치지 않고 자원하여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았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하여 부활 신앙을 가진 사도 바울이 날마다 죽는 삶을 샀았던 이유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1) 부활을 믿는 자는 날마다 죽습니다.

 

“29. 만일 죽은 자들이 도무지 다시 살아나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 어찌하여 그들을 위하여 세례를 받느냐 30. 또 어찌하여 우리가 언제나 위험을 무릅쓰리요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32.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예수님은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예수님 말씀처럼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았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도 바울은 자랑하는 고린도 성도들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그러면 날마다 죽는 삶은 어떤 삶일까요?

첫째, 하나님의 뜻 앞에서 내 뜻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뜻대로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고집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뜻을 포기하는 것은 죽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인간은 육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육신을 입고 오셔서 자신의 뜻을 포기하는 것이 어려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나의 원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기도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만큼 예수님도 내 뜻을 포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죽는 것은 쉽게 말하면 주님의 뜻이라면 내가 싫은 것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목자는 자신이 싫은 것만 골라서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주로 내가 싫어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고 그때 유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이렇게 자원하여 주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내 뜻을 포기합니다.

둘째, 모험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당시에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이슬람권이나 공산권에는 그렇습니다. 부활을 믿는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고 죽은 성도들을 생각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죽은 후에 부활이 있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죽음을 각오하고 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안주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편안함을 원합니다. 안정된 삶을 원합니다. 그러나 부활 신앙이 있을 때 위험을 무릅쓰며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을 믿었기 때문에 에베소에서 맹수와 같은 사람들과 싸웠습니다. 그는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매일 위험을 무릅쓰며 살았습니다.

셋째는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손해 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이익을 보고자 하는 본성이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이런 이기심의 본성을 이용하여 성공한 체제입니다. 사람들은 이기심이 있어서 열심히 일하고 그를 통하여 자기도 잘 되고 사회도 발전시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이런 이기심을 거스리고 열심히 일하여 똑같이 나누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기심 때문에 똑같이 나누자고 하면 일을 하지 않습니다. 하루면 할 수 있는 일을 한 달을 걸려도 못 끝냅니다. 그래서 공산주의는 망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자원하여 열심히 일하여 부자가 되고 자원하여 기쁨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기심을 거르시고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기꺼이 손해보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넷째는 주님을 위해서 모욕도 달게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참지 못합니다. 싸우는 이유는 자존심을 건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활신앙이 있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 모욕과 멸시를 달게 받으며 살아갑니다. 모욕을 받을 때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살기를 원하고 죽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살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런데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자원하여 날마다 죽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첫째, 내가 죽을 때 예수님이 살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면 예수님이 죽고 내가 죽어야 예수님이 삽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님의 소원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둘째, 내가 죽을 때 많은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예수님 한 분이 죽었을 때 많은 생명의 열매가 맺혔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제자들이나 자녀를 위해서 죽을 때 그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잘 자라날 수 있습니다. 자녀를 낳고 키우는 것은 부모에게 죽는 것입니다.

셋째, 날마다 죽을 때 날마다 예수님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에 이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그 부활의 권능을 체험하려면 예수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부활을 체험하고자 날마다 죽는 삶을 살았습니다. 빌립보서 3“10.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바울은 날마다 죽었기 때문에 날마다 풍성하게 예수님이 그리스도 되심과 예수님의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죽어야 예수님과 깊은 사랑의 관계성을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과 부활의 권능을 몸으로 알기를 소망한다면 우리는 날마다 죽을 수 있습니다.

넷째, 이 세상에서 죽으면 우리는 하늘나라에서 더 큰 영광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고난을 받은 자를 영광스럽게 해주실 것입니다. 엘리야는 아합왕과 왕비 이세벨과 바알 선지자와 싸우고자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로뎀나무 아래에서 차라리 죽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200만 인구를 인도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야나 모세는 죽은 후 변화산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예수님께 나타났습니다. 고난 후에는 영광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을 받을 때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변화산에서 미리 부활의 영광을 보셨기 때문에 그 고난을 기쁨으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을 받을 뿐 아니라 고난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제자가 고난을 반발하고 원하지 않아도 반복적으로 고난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로마서 8“18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군사로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고난을 받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고난이 좋다는 것을 알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난을 유산으로 주어야 합니다.

고난 후에 영광은 만고불변의 인생의 법칙입니다. 노페인 노개인(No pain, No gain)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의대생들이 의사의 영광을 생각하며 의대 공부의 고난을 받고 로스쿨에 다리는 학생들이 판검사의 영광을 생각하며 고시공부의 고난을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생각하며 현재의 고난을 자원함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ubf선서문에는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군이다 성서한국과 세계선교를 위해서 자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다는 선서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원하여 고난을 받아야 영광도 받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사랑하고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난을 선물로 주어야 합니다.

포천ubf의 김갈렙 목자는 안정된 종로ubf목자를 버리고 포천 개척을 나가는 모험을 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53살에 개척을 나가고자 서원하였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이 고생길이 환하다고 만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믿음으로 개척을 나갔을 때 하나님을 체험하고 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adhd가 있는 큰아들이 군에 갔다 와서 취업했습니다. 둘째는 게임만 하고 있었는데 한양대 들어가 목자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셋째는 이대에 들어가 과수석을 하고 있습니다. 3년만에 자립하고 다른 지구를 돕고 있습니다. 그가 떠난 종로 ubf에는 선교사에서 돌아온 다른 목자를 세워주셨습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의 홍갈렙 선교사는 날마다 살려고 하다가 어느날 자기 생명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생명을 잃으면 구원한다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는 날마다 죽으려고 결심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원하여 손해보고 모욕받고 고난받는 삶을 살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때 하이델베르크 ubf 역사를 섬기고 유럽 지부장인 라이너 목자를 제자로 세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한다고 생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갑니까?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합니다. “노세노세 젊어노세 늙어지면 못노나니하며 한 세상 죄를 짓고 즐기며 살아갑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즐기며 사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복입니다. 문제는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 밖에서 세상을 향락적이거나 쾌락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미래도 내세도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욜로족이라고 합니다. You Only Live Once의 약자로, "인생은 오직 한 번뿐"이라는 뜻입니다. 영미권에서는 주로 SNS에서 어리석거나 약간 위험을 무릅쓰더라도 즐기거나 흥미로운 일을 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그들은 위험을 무릅쓰고 즐기는 자들입니다.

 

2) 부활을 믿는 자는 깨어 의를 행합니다.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바울은 악한 동무들에게 속지말라고 합니다. 그들은 이 세상이 전부라고 말하며 선한 행실을 더럽힙니다. 그들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화가 나면 다른 사람 죽이고 나도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아무리 죄를 지어도 죽으면 불기소 원칙이 적용되어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은 후에 심판이 있고 둘째 사망이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둘째 사망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 영벌을 받는 것입니다.

부활과 하나님의 상급과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믿는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심판의 하나님을 안다면 우리가 죄를 무서워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죄를 짓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신 사람도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죄를 지으면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합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자살할 생각을 하지 말고 회개하고 어떻게든지 살아서 하나님의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는 죄를 짓고 자살하여 삶을 마감한 사람이 나오고 끝까지 회개하고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동명이인으로 대조적으로 나옵니디.

성경에는 두 명의 대조적인 유다가 있습니다. 야곱의 12아들 중에 넷째인 유다가 있습니다. 유다는 아내를 잃고 두 명의 아들을 잃었습니다. 허한 마음을 달래려고 창녀집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그는 며느리의 쌍둥이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것이 모든 가족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는 낯뜨거워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평생을 회개하며 하나님의 훈련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때 그는 유대인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유다는 하나님 나라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가룟 출신의 유다가 있습니다. 그는 능력이 있어 12제자 중에 재정부장을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십자가 형을 당하는 것을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꼈습니다. 교회의 조상이 되어야 할 그가 큰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는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고 목을 매어 자살하였습니다. 그는 부활신앙이 없었습니다. 그는 죽은 후 심판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는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할 것입니다. 그가 만약 구약의 유다처럼 샀았다며 크게 쓰임 받았을 것입니다.

베냐민의 후손 가운데도 대조적인 동명이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무엘서에 나오는 사울왕입니다. 그는 자기 영광이 강하여 두 번의 불순종을 하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충신이요 사위인 다윗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번민하다가 이방인 블레셋 사람에게 죽었다는 불명예를 피하고자 자살하였습니다. 사울왕은 죽은 후에 심판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는 세상에서도 불명예를 남기고 지옥에서 고통할 것입니다. 그가 회개하였다면 사도 바울처럼 쓰임 받았을 것입니다.

신약에 사울이 나옵니다. 그는 사울왕을 본받고자 이름을 사울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고 성도들을 죽이던 자였습니다. 그는 자살해야 마땅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는 평생 죄를 회개하며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죽은 후에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상급을 믿고 살았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체계화하고 세계화하는 데 쓰임 받았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히브리식 사울이 아니라 헬라식으로 바울이라고 불러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박해자 사울로 기억하기보다는 성자 바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장 멋진 삶을 살았습니다.

 

결론 죽은 후에 상급이 있고 심판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3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우리가 다 살고자 발버둥치는데 죽고자 발버둥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활을 믿기 때문입니다. 부활의 주님이 하나님 나라에서 우리의 선에 대한 상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짓지 않고 깨어 의를 행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부활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 후에 죄에 대한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활을 믿고 고난을 받고 육신의 소원을 죽이며 깨어 의를 행하기를 기도합니다. 죄를 지었을 때는 회개하고 하나님의 훈련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나는 비번이 주로 4444444가 많습니다. 죽는 것을 연습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죽으면 예수님이 살고 예수님이 우리도 살려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이웃과 자녀와 제자들을 위해서 날마다 죽는 연습을 하기 기도합니다. 사람들은 You Only Live Once를 외치며 욜로족으로 즐기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한번뿐인 인생 바람을 피우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You Only Die Once를 외치며 날마다 죽는 요도족이 되어야 합니다. 심판이 있으니고 고난이라도 감수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조디 웰먼은 우리가 힘들다고 생각하는 월요일이 80살 산다고 할 대 평생 4천번 정도 있는데 자기 살 수 있는 월요일을 세어보라고 합니다. 나는 80살까지 산다면 월용일이 670번 정도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죽음과 부활을 인식하고 날마다 죽고 의롭게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고린도전서 15장 강해 사부 내가 날마다 죽기를 원하는 이유 162

말씀 고린도전서 1529-58

요절 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장 강해 4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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