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6월 셋째주 메시지 돌로 치라고 하신 하나님이 돌로 치지말라고 하신 이유
첨부파일(1)
1.hwp (80.50KB)
6월 셋째주 메시지 돌로 치라고 하신 하나님이 돌로 치지말라고 하신 이유
요한복음 8장 일부 강해 돌로 치라고 하신 하나님이 돌로 치지 말라고 하신 이유
요한복음 8장 1-11
요절 요한복음 8장 7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저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이 이율배반적이든지 일구이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약에서는 간음한 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간음한 여자를 돌로 치지 않았습니다.
오늘 요절 읽어보겠습니다. “7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예수님은 죄있는 사람은 아무도 여자를 돌로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무 죄없는 예수님도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일구이언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씀제목을 돌로치라고 하신 하나님이 돌로 치지 말라고 한 이유라고 잡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간음한 여자를 돌로치라고 하시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왜 돌로 치지 말라고 하셨는지 배우고자 합니다.
(1) 한 여인이 음행 현장범이 잡혔습니다.
“1.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은 초막절 행사를 마치시고 감람산으로 가서 쉬고 기도하셨습니다. 아침에 다시 성전에 들어오시니 백성들이 말씀을 듣기 위해서 나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앉으사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가르치는 선생이 서고 배우는 학생이 앉지만 유대인은 선생은 앉고 학생들은 서서 듣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예수님께 와서 군중 가운데 세웠습니다. 그들은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다고 하였습니다. 간음은 혼자 하는 것은 아니고 둘이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힘센 남자는 놓치고 연약한 여자만 붙잡아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모세의 율법에 이런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시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 여자는 간음하면 돌에 맞아 죽는다는 것을 알고도 왜 이런 죄를 지었을까요? 하나님은 왜 간음하지 말라고 하시고 간음한 자는 돌로 치라고 하셨을까요?
사람들의 성적 욕구는 하나님이 주신 본능입니다. 하나님은 가정을 이루고 자녀를 낳도록 성적 본능을 주셨습니다. 성적인 본능은 불이나 물과 같습니다. 불이나 물은 유용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큰 피해를 봅니다. 불은 어둠을 밝히고 요리를 하고 난방을 하고 자동차나 기차나 비행기가 기는데 꼭 필요합니다. 그러나 불을 부주의하게 다루면 큰 재산 피해가 나고 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옵니다. 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은 우리가 마시고 식물이 자라고 씻는데 꼭 필요합니다. 물이 있어야 생명이 자랍니다. 그러나 홍수가 나서 개울이나 강이 넘치면 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납니다. 성욕도 마찬가지입니다. 성적인 욕구는 불이나 물처럼 꼭 필요한 것입니다. 성적인 것도 가정 안에서 있으면 사랑하고 기쁨을 얻고 자녀를 낳는데 꼭 필요합니다. 성욕이 있어서 생명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입니다. 성적인 욕구가 없으면 병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성적인 본능을 불이나 물처럼 잘 관리해야 해야 합니다. 성이 하나님이 만드신 부부의 테두리를 넘어서면 많은 피해가 납니다. 가정이 깨어지고 자녀와 부모가 상처를 받습니다. 사생아가 태어나기도 합니다. 사회가 혼란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 간음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죄를 막기 위해서 모세의 법에 간음하는 자는 돌로 쳐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여자가 성폭행을 당한 경우는 남자만 죽이면 됩니다. 그러나 결혼한 부부가 눈이 맞아서 간음한 경우는 남녀를 다 돌로 쳐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처녀 총각은 그런 죄를 범하면 결혼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피해 보상금을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간음죄를 엄하게 다스리게 하셔서 가정을 지키고 자녀를 지키고 사회를 지키기를 원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무서운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악된 본능을 절제하지 못하여 죄를 짓습니다. 사탄은 죄를 짓기 전에는 죄를 지어도 들키지만 않으면 된다고 유혹합니다. 몰래 먹는 떡이 맛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죄를 짓고 나면 죄의식을 심어 너는 용서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하게 합니다. 자살하라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런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를 짓고 사람들의 비난을 두려워하여 자살을 합니다. 결국 사탄은 죄를 짓게 하여 지옥으로 끌고 가며 미소를 짓습니다. 한 여인과 남자도 이런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죄를 지었습니다. 여자는 재수 없게 종교지도자들에게 붙잡혀 예수님께 끌려왔습니다.
(2) 예수님은 죄없는 자는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여자를 잡아서 모세의 법대로 돌로 쳐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자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여자를 돌로 치라고 하면 로마법에 의해서 살인교사죄로 고발할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돌로 치지 말라고 하면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고 산헤드린 공회에 고소할 것입니다. 여자도 잘못했지만 종교지도자들은 여자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더욱 사악한 자들입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시기심과 거짓과 미움의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고소를 빠져 나올 수 없었습니다. 진퇴양난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의 모략과 재능의 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잠시 땅에 글을 쓰심으로 그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흥분한 무리를 진정시킨 후에 ‘너희 중에 죄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첫째, 죄 없는 자만이 돌로 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 있는 자는 돌로 칠 수 없습니다. 같은 죄인이 죄인에게 돌을 던지면 그는 그 돌에 의해서 자신도 돌에 맞습니다. 인간은 다 죄인이므로 다른 인간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죄없는 하나님만이 우리를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둘째, 죄없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기를 원했습니다.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에게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자의 죄를 발견하기를 원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의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보면 그들도 다 죄인입니다. 모세는 남녀가 잠을 자야 간음이라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마음에 음욕을 품어도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에 대한 시기심 미움의 죄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살인죄를 짓고 있습니다.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죄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여인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쉽게 남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나는 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이 된 것처럼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보면 우리는 다 죄인이고 누구도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한 손가락으로 남을 정죄하면 네 손가락은 나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루이 16세는 단두대를 만들고 그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남을 아무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물론 우리는 죄가 잘못이라는 것을 말해야 합니다. 옳고 그른 것을 말할 수는 잆습니다. 옳다 아니다를 분명하게 말해야 합니다. 죄를 안 짓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옳고 그른 것을 말할 때도 같은 죄인으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거기서 지나쳐 그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은 죄가 되는 것입니다. 어린아이가 잘못했습니다. 꽃병을 깨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너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 이 나쁜 놈아, 싹수가 노랗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나도 너만할 때는 그랬다. 더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거짓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사탄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혼나야 한다.’ 책망해서 다시는 거짓말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죄를 책망하되 그 사람의 자존심을 건딜지는 말아야 합니다.
(3) 여자는 사람들에게서 자유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해야 합니다.
“8.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a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
예수님은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하시고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습니다.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생각할 여유를 주셨습니다. ‘먼저 돌로 치라’고 하심으로 군중심리에서 벗어나 각자 개인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하도록 도우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양심이 살아났습니다. 말씀을 공부하면 양심이 살아납니다.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에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갔습니다. 어른이 될수록 죄를 더 많이 짓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직 에수님과 여자만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에게 너를 고소한 자가 없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자는 없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는 우리는 죄를 짓고 사람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사람이 죄를 지면 하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의 정죄를 무서워합니다. 가족들에게 부끄럼 당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지인들을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살합니다. 우리 주위에 흔히 보는 일입니다. 그러나 죄를 지적하는 사람들은 두려운 대상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우리를 정죄하고 죽인다고 하여도 우리의 육신만 죽이지 우리를 지옥에 넣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서 자유함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들이 정죄하면 정죄를 받으면 됩니다. 정죄를 하나님이 주시는 훈련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화되어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나다나엘 호손의 주홍글씨에 나오는 해스터가 그렇습니다. 그녀는 목사와 죄를 짓고 사생아를 낳았습니다. 그녀의 죄는 발각되어 사람들에게 음녀(Adultery)라고 A자를 옷에 붙이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는 사람들에게 수모를 겪으며 열심히 일했을 때 그녀는 유능한(Able) 여자가 되었습니다. 다시 열심히 일했을 때 그녀는 천사(Angel)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죄를 짓고 사람의 정죄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윗도 죄를 짓고 사람들의 정죄를 하나님의 훈련으로 받았을 때 성왕이 되었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여자와 예수님만 남았습니다. 우리는 아무 죄없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남은 아무 죄가 없으므로 우리를 돌로 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심판하실 수 있습니다. 음행한 자를 지옥 불에 넣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서 죄를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회개하는 즉시 어떤 죄도 용서하여주십니다. 다윗이 죄를 범하고 내가 주께만 죄를 범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 말은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나의 죄를 정죄하고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그가 이런 죄를 하나님 앞에서 발견하고 회개하였을 때 하나님은 즉시 그의 죄를 사하였다고 선포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다시 죄를 짓지 않도록 훈련을 하셨지만 즉시 용서하셨습니다.
(4) 예수님은 여인을 용서하시고 죄와 싸우라고 하십니다.
“11b.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죄를 범허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 예수님은 용서의 주님이십니다. 용서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용서를 함부로 하면 공의가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간음한 자를 돌로 치라고 말씀하신 분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구약의 하나님과 예수님은 다른 분이 아니라 동일한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여인의 죄를 용서하시면 일구이언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구이언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이 여인의 죄를 용서하실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여인을 대신하여 정죄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공의를 이루시고 여인을 용서하여 여자도 의롭고 하나님도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회개한 모든 사람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여자가 다시 죄를 범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죄의 본성이 있어서 마음으로도 음욕을 품지 않고 살기는 어렵습니다. 사회분위기가 죄를 짓도록 합니다. 그래도 죄와 싸워야 합니다. 만약에 은혜를 헛되이 여기고 고의로 다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다시 죄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녀는 대신 정죄 받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고 죄와 싸우며 살아야 합니다. 그녀가 투쟁하면 주님이 은혜로 죄를 짓지 않게 여인을 도우십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은 우리 안에 성령님을 주셔서 우라가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육신의 소원을 죽임으로 죄와 싸워야 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을 알고 죄를 무서워하며 죄짓기를 두려워해야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신 성전된 우리의 몸을 음행으로 더렵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면 점점 더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결론 죄사함을 받고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요절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11b.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간음한 자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같은 죄인인 우리 인간은 아무도 돌을 던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무 죄없는 예수님 자신도 여인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왜 이런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 행동을 하셨을까요? 첫째는 여자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여자가 그 은혜를 기억하고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우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오셔서 그녀가 거룩하게 살게 도우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기억하고 거룩하게 살아서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몸을 거룩하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거룩하게 만들어서 행복한 가정 행복한 교회를 만들어가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8장 일부 강해 돌로 치라고 하신 하나님이 돌로 치지 말라고 하신 이유
요한복음 8장 1-11
요절 요한복음 8장 7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요한복음 8장 강해 일부 끝.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
393 |
![]() ![]() |
천안UBF | 2025-07-05 |
392 |
![]() ![]() |
천안UBF | 2025-07-04 |
391 |
![]() ![]() |
천안UBF | 2025-06-28 |
390 |
![]() ![]() |
천안UBF | 2025-06-26 |
389 |
![]() ![]() |
천안UBF | 2025-06-19 |
388 |
![]() ![]() |
천안UBF | 2025-06-14 |
387 |
![]() ![]() |
천안UBF | 2025-06-14 |
386 |
![]() ![]() |
천안UBF | 2025-06-13 |
385 |
![]() ![]() |
천안UBF | 2025-06-07 |
384 |
![]() ![]() |
천안UBF | 2025-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