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10월 셋째주 메시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10월 셋째주 메시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1장 3부 강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1장 17-27
요절 요한복음 11장 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오늘 말씀은 내가 대학 3학년 때 여름수양회에서 저녁 메시지로 전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접하고 사망권세에 시달리던 나는 충격을 받아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이 말씀을 믿고 묵상하며 3,4학년을 살았을 때 하나님은 풍성한 열매를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그런 은혜가 임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담 이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사망권세가 지배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다 죽었고 사망권세에 시달리며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절망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오심으로 생명의 역사로 바뀌었습니다. 초상집과 같은 이 세상이 잔칫집과 같이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자신을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이 개인의 삶과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제목을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라고 잡았습니다. 우리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사망권세를 이기고 생명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마르다의 부활 신앙에는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 18 베다니는 예루살렘에서 가깝기가 한 오 리쯤 되매 19 많은 유대인이 마르다와 마리아에게 그 오라비의 일로 위문하러 왔더니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24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님이 베다니에 갔을 때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었습니닥. 더운 날씨에 시체가 부패하여 냄새가 나고 있었습니다. 마르다 집은 예루살렘 근교에 있어서 예루살렘에서 많은 사람이 조문하러 와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셨다고 하자 조용한 마리아는 집에 있고 행동적인 마르다는 동구밖으로 나가서 예수님을 맞이 하였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보자마자 “주님이 여기 계셨다면 오빠가 죽지 않았을 거에요” 인사를 하였습니다. 오빠가 죽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예수님이 그들과 같이 계시지 않아서 죽었다는 생각에 예수님에 대해서 원망을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제라도 주님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주실 줄 안다고 예수님께 막연한 기대를 표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구체적으로 ‘네 오빠 나사로가 살리라’고 나사로의 다시 살아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안다고 하였습니다. 마르다는 부활신앙이 있는 것 같지만 세 가지 점에서 그녀의 부활 신앙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그의 부활신앙은 지식적입니다. 그는 두 번 다 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죽으면 그 후에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신학적인 지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지만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종말에 우리의 이 모습 그대로 살아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바리새인의 영향을 받아 마지막날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르다와 같이 부활에 대한 신학적인 지식은 현재 아무 힘이 되지 못합니다. 마르다는 현재 아쉬움 원망 슬픔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안다는 말 대신에 믿나이다고 믿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활신앙으로 현재 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둘째, 마르다의 부활신앙은 막연합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구체적으로 자신의 오빠 나사로가 살 것을 믿지는 못하였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막연하고 추상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주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부활의 주님이 나의 시험, 제자양성, 병의 치료를 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셋째, 마르다의 부활신앙은 미래적이었습니다.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현재는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릴 것을 믿지 못하였습니다. 현재는 나사로의 죽음으로 원망과 아쉬움과 슬픔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부활신앙이 있는 것 같지만 부활신앙이 없는 것입니다. 신앙은 현재입니다. 우리는 현재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해야 합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지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부활신앙을 가진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 일하시고 마지막 날에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
예수님은 추상적이고 미래적이고 지식적인 부활 신앙을 가지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niv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Jesus said to her, "I am the resurrection and the life.” 예수님은 현재형으로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현재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시간을 초월하여 계신 예수님은 항상 현재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우리가 현재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두 가지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첫째,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비록 죽어도 다시 삽니다. 믿는 자에게는 영원한 죽음은 없고 잠시 자는 잠만 있을 뿐입니다. 바리새인이 믿은 것처럼 이 모습 이대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한 몸으로 다시 삽니다. 지난 주 말씀처럼 믿는 자에게 죽음은 잠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더 좋은 곳에서 살아날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고 자유로운 모습으로 살아날 것입니다.
둘째, 살아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어도 육신을 죽습니다. 그렇다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요한복음 8장 51,52절은 이 말씀을 풀어서 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에 기초해 볼 때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씀은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사망권세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 몸은 죽지만 우리 영혼은 죽음을 맛보지 않습니다. 죽음은 맛이 있습니다. 원망 아쉬움 슬픔 두려움 허무 부정적인 생각 실패의식이 죽음이 주는 맛입니다. 우리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현재 죽음의 권세에 시달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왜 사망권세에 시달리고 사망의 맛을 보며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였지만 첫사람 아담도 사망과 심판을 선포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담은 “나는 사망이요 심판이니 내 후손으로 태어나는 자는 살아도 영원히 죽음을 맛보고 살다가 죽어서는 영원한 심판을 받는데 이것을 네가 아느냐?” 라고 선포하였을 것입니다. 아담도 현재형으로 선포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자연스럽게 태어나자마자 다 늙고 죽고 사망권세에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죽음은 현재 살아있는 우리를 지배합니다. 사가랴는 찬송시에서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누가복음 1장 78,79) 우리는 사망의 그늘에 앉아 있는 있습니다. 사망의 그늘은 우리에게 두려움과 슬픔과 절망과 허무와 부정적인 생각을 심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돋는 해처럼 임하여 우리를 평강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사망이 주는 생각이 안 들을까요? 아닙니다. 지금은 사탄이 통치하고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육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망권세가 우리를 지배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생각이 들어도 우리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이를 넉넉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이를 믿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것과 예수님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것은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서 사망권세에 시달리는 것은 우리가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자연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망권세를 물리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하셨습니다. 믿는 것은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일이므로 노동력이 들어갑니다. 우리는 힘이 들어도 믿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면 사망의 어둠이 물러갑니다.
예수님 안에는 죽음이 없습니다.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으로 가득하고 빛으로 가득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어둠을 넉넉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음의 맛을 생명의 맛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실 대학교 1학년 때 이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사망권세를 싸웠다고 하였는데 그 후에도 이 사망권세가 없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사망은 나의 마음에 실패의식과 불안을 심어주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대학교 일할 때 사망권세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싸우는 것을 배운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밀려올 때마다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하고 다녔습니다. 그 자체가 나의 믿음이었고 하나님은 이런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때로는 왜 이렇게 사망권세가 지독하게 나를 따라다니는가? 왜 없어지지 않는가? 화가날 때가 있습니다. 사망권세가 사람들을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망권세는 역사성이 있고 경험적이기 때문입니다. 아담 후에 에녹과 엘리야 외에는 다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들으며 경험하며 자랐습니다. 우리 주위에 가까운 사람이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부모님도 돌아가신 분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고 들으며 우리 마음에는 죽음이 믿음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나도 죽는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오랜 조상들부터 죽음이 역사성 있게 사람을 지배하여 왔습니다.
이천 년 전에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 주위에 아직 부활한 사람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우리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말씀에서 배웠지만 죽음이 가득한 현실 속에서 생명보다 죽음이 우리를 지배합니다. 비록 예수님이 부활하였지만 죽음을 싸워서 이기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온전히 믿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믿는 노동이 필요합니다. 말씀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선포하시면서 이것을 네가 믿느냐 믿음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마르다는 예수님의 질문을 듣고 어떻게 사망권세를 극복하였습니까?
(3) 마르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는 예수님을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믿음을 고백하였을 때 사망권세가 물어갔습니다. 사망의 맛이 생명의 맛으로 바뀌었습니다. 마르다처럼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에 대해서 믿음을 고백하는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입니다. 우리는 항상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기도시간에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혼자서 하는 것이 어려우므로 우리는 부활을 믿는 사람들과 함께 교제히야 합니다. 그들을 통하여 부활신앙을 공유해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가 죽음을 맛보지 않게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부정적인 말이 나오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긍정적인 말을 해야합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큰 소리로 고백해야 합니다. “내가 믿습니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십시오.” 기도해야합니다. 주님은 그 말을 들으시고 일하십니다.
미국에서 수녀들이 치매에 걸리지 않는 것을 보고 데이빗 스노든 박사가 뇌기증을 받아 연구하였다고 합니다. 수녀들의 뇌비밀을 연구하였습니다. 1986년 평균연령이 75세가 넘는 수녀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20년간 678명의 수녀들을 뇌를 부검하였습니다. 도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뇌에 베타아미노산들 단백질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치매에 걸리지 않고 많은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였습니다. 그 이유를 연구해 보니 이들의 일기장에는 긍정적인 말로 가득찼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기쁘고 행복합니다. 고랍습니다.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이런 말이 가득차 있었다고 합니다. 또하나는 수녀들이 모여서 함께 삶을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며 나누고 노동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서로 좋은 관계를 맺으며 살았습니다. 매일 성경을 암송하며 공부하였습니다. 그때 비록 뇌는 이미 치매현상이 있지만 그들은 치매에 걸지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죽음을 이길려면 말을 잘 해야 합니다. 짜증난다. 힘들다 피곤하다 힘들다 불안하다 걱정된다는 말대신에 감사와 사랑과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들의 삶의 목적이 분명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우리도 이런 말을 하면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아멘
(결론)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아담은 나는 사망이요 심판이니 내 몸에서 태어나는 자는 죽으면 심판을 받겠고, 살았을 때는 영원히 사망권세에 시달릴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사망권세가 지배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우리가 사망권세에 시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원망하고 절망하고 두려워하고 슬퍼합니다. 허무하고 실패의식에 시달립니다. 부정적인 말을 합니다. 원망하고 절망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이 어둔 세상에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오늘의 요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잠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여 시공을 초월한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 안에는 부활과 생명이 있습니다. 현재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사망권세를 넉넉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어둠을 물리칠 빛이 있습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우리에게는 바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 있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도 이 부활과 생명을 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 안에서 사망권세를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기쁨과 평안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감사와 소망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사망권세를 이기고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죽은 후에 다시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한 몸으로 부활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죽음을 넉넉히 이기게 도우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요한복음 11장 3부 강해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한복음 11장 17-27
요절 요한복음 11장 25,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강해 3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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