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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주일말씀

2월 셋째주 메시지 나귀타신 왕의 왕

작성자 : 천안UBF
작성일 : 2026-02-14 13:49:20
조회수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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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셋째주 메시지

요한복음 12장 이부 나귀새끼 타신 왕의 왕

말씀 요한복음 129-19

요절 요한복음 1215 이는 기록된 바 ㄱ)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헨델의 메시야에 나오는 것처럼 예수님은 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왕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왕의 왕이 나귀새끼를 타고 들어가십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로마의 통치에서 구원하시고 최강의 이스라엘 나라를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하고 뜨겁게 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독립시키고 나를 부강하게 만들어주시기 위해서 들어가는 왕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말을 타고 들어가지 나귀새끼를 타고 들어가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나귀새끼를 타고 들어가신 예수님은 어떤 왕이고 그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 배우고자 합니다.

 

(1)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뿐 아니라 나사로까지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9 유대인의 큰 무리가 예수께서 여기 계신 줄을 알고 오니 이는 예수만 보기 위함이 아니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려 함이러라10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11 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가시기 전 예루살렘 근교에 있는 베다니의 나사로의 집에 들어가셨습니다. 나사로의 동생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해서 음식을 섬겼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아낌 없이 부어드렸습니다. 그 머리털로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향유 냄새가 나사로의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집에 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대인의 큰 무리가 나사로의 집으로 예수님을 보러 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만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도 보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들은 썩은 시체로 있다가 살아나 음식을 먹는 나사로를 보면서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요 만왕의 왕으로 믿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자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자고 하였습니다. 그 해의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 한 사람을 죽여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침략에서 지키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면 유대인이 말살 당할 것을 염려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여서 이스라엘을 살리자는 명분은 좋았지만 실제는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대제사장인 가야바를 통하여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서 죽으시는지를 예언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는 이유는 첫째는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고자 죽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대신 죽으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둘째는 이스라엘뿐 아니라 세계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을 모아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죽으시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이 하나 될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린 후부터 본격적으로 예수님을 죽이고자 행동에 들어갔습니다.(11:53) 그들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겠다는 현상금까지 걸었습니다.(57) 이제는 예수님을 죽일 방법을 구체적으로 모의하였습니다. 가룟유다는 이런 종교지도자들의 계획을 알고 예수님을 팔아서 돈을 벌고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대제사장들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살리신 나사로까지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나사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분위기는 살벌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이런 살벌한 분위기를 아셨습니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에서 예수님은 어떻게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까?

 

(2) 큰 무리들은 종려나무를 들고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

 

“12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13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님은 지금까지 비밀리에 행동하였습니다. 초막절에도 명절 중간에 은밀히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유월절 가까운 때도 빈들 가까운 조용한 에브라임 지역에서 잠시 머무셨습니다.(11:51) 그러나 이제는 유월절 주일을 맞이하여 공개적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면 신고하라는 명령 속에서 예수님이 공개적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은 유월절에 십자가에 죽고자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 주일날 예루살렘에는 유월절 명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고자 큰 무리가 모여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명절이 되면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모여듭니다. 이날은 일요일로서 종려주일입니다. 큰 무리는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대대적으로 환영하였습니다. 종려 가지를 가지고 나서서 외쳤습니다. 종려가지는 승리를 상징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승리의 주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그들은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여!” 찬송했습니다. 호산나는 주여, 구원하소서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구원자 예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라고 했는데 주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요, 이스라엘의 왕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을 이렇게 열렬하게 환영하는 것은 예수님이 그들을 로마의 통치에서 구원하여주실 것을 소망했기 때문입니다.

bc722년에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서 망했습니다. bc 586년에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서 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한 지 거의 600년이 흘렀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은 폐르시아, 그리스, 로마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이런 통치를 받으면서 그리스도가 오시면 모세처럼 그들을 식민통치에서 구원하시고 독립 국가를 세울 것을 믿었습니다. 다윗과 같은 부강한 나라를 세울 것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첫 번째 표적으로 물을 포도주로 바꾸셨습니다. 그들은 이를 보면서 예수님이 물을 피로 바꾼 모세와 같은 선지자로 생각하였습니다. 모세가 430년 애굽노예살이에서 건진 것처럼 예수님이 600년의 식민 통치에서 구원하실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그들은 이를 보자 모세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를 준 것을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들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실 그리스도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아서 임금을 삼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이사야가 예언된 대로 태어날 때부터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을 다윗과 같은 그리스도로 생각하였습니다. 다윗이 눈먼 이스라엘의 눈을 뜨게 하고 이방인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병든 이스라엘을 치료하시고 이스라엘을 영광스럽게 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죽어서 냄새나는 이스라엘을 살리셨습니다. 그들은 에스겔이 예언한 것처럼 예수님을 통하여 마른 뼈와 같은 이스라엘이 다시 일어나 큰 군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로마에서 독립시키는 것은 당연하고 이스라엘의 황금기를 만들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이 큰 군대가 되어 세계에 패권을 쥐는 세계 최강국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하였듯이 이스라엘이 세계를 지배할 것을 믿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은 그런 열망으로 종려나무를 들고 예수님을 열렬하게 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그런 왕이 아닌 것을 잘 아시죠? 예수님은 정치 경제적인 독립과 번영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물론 예수님은 이런 문제도 해결해 주시고 해결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근본문제인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오셨습니다. 우리를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시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서 하나님 나라의 독립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를 온 세계에 건설하고자 오셨습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갔는지 보면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3)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는 왕이십니다.

 

“14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15 이는 기록된 바 ㄱ)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임이 생각났더라

 

예수님은 흑토마나 백마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지 않았습니다. 나귀를 타셨습니다. 다 큰 나귀도 아닌 한 어린 나귀 새끼를 타셨습니다. 아무도 타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습니다. 이것은 스가랴 99절 말씀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요한은 시온의 딸아 두려워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는 말씀이라고 말합니다. 스가랴서에는 조금 다르게 나옵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사람들은 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님을 열렬히 환영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기아차 레이를 타고 서울에 들어가는 대통령을 사람들이 태극기를 들고 환영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에서 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님은 어떤 왕인가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첫째, 겸손한 평화의 왕이십니다. 스가랴의 예언대로 예수님은 겸손하여 나귀새끼를 타셨습니다. 나귀는 물건을 싣거나 사람을 태우기 위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군림하여 다스리는 왕이 아니라 겸손히 섬기는 왕이십니다. 나귀 중에도 새끼를 타신 것은 겸손한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평화를 줍니다. 예수님은 평화를 주시는 왕입니다. 평화의 왕 솔로몬도 나귀를 타고 입성했습니다.

당시에 로마 황제 가이사는 백마를 타고 칼을 차고 성에 들어갔습니다. 은 전쟁을 할 때 쓰는 병기입니다. 백마는 군림하고 지배하는 것입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말을 듣지 않으면 죽였습니다. 말을 듣지 않는 나라는 무자비하게 정복하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어 다스렸습니다. 세상 왕은 권위를 부르고 자신의 마음대로 통치하십니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가차없이 처벌합니다. 이런 왕의 다스림을 받으면 두렵습니다.

그러나 나귀 타신 예수님은 섬기는 왕이십니다. 우리를 믿고 기다려 주시며 우리가 행복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으면 마음에 평화를 누립니다. 서로 간에도 화목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마음에 성령님으로 오셔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주십니다. 파도 속에서도 숙면을 취하고 전쟁 중에도 단잠을 자는 평화를 주십니다. 사람과 나라 사이에도 싸움을 그치고 평화롭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칼과 활을 녹여서 쟁기를 만들게 하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사자와 어린양이 함께 살게 하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기쁨을 주시는 구원의 왕이십니다. 스가랴에서 예수님은 구원을 주시는 왕이니 크게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에서 구원하십니까? 정치적인 식민지와 경제적인 궁핍에서도 구원하시지만 이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죄값을 치루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십니다.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사탄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나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돈을 벌고 독립을 해도 엄청 기쁩니다. 우리는 일제에서 독립했을 때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사망권세에서 해방될 때 그보다 훨씬 큰 최고의 기쁨을 누립니다.

셋째, 예수님은 공의로 다스리는 공의의 왕이십니다. 스가랴에 보면 예수님은 공의로운 왕이라고 하였습니다. 범대로 우리를 통치하시는 왕이십니다. 죄에 대해서 벌을 주시고 선을 행하면 상을 주십니다. 죄를 지은 만큼 벌을 받는 것이 공의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공의는 은혜로 만들어가시는 공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벌을 받으심으로 공의를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이 받으신 벌이 세상 사람들이 받은 벌과 동등한 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죄를 지은 자라도 회개하면 용서하시고 믿어주십니다. 죄에 대해서 훈련을 주시지만 죄인을 버리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과거를 보지 않고 변화된 미래를 보십니다. 이런 공의를 은혜적인 공의라고 합니다. 우리가 내 대신 벌을 받으신 공의의 예수님을 알 때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죄를 회개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왜 나귀새끼를 타셨는지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야 나귀새끼를 탄다는 스가랴 말씀이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된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심기는 평화의 왕으로서, 죄에서 구원하시는 왕으로서, 공의로 대신 심판 받으신 왕이 되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왕이 되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죽으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진정한 왕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유대인의 왕이라는 명패가 붙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종려나무를 들고 환영한 의미도 알게 되었습니다. 무리들이 정말 예수님을 환영하는 것은 그들을 식민지와 가난에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죄와 사망과 사탄에서 구원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을 죽이는 일이 쓸데 없다

 

“17 나사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때에 함께 있던 무리가 증언한지라18 이에 무리가 예수를 맞음은 이 3)표적 행하심을 들었음이러라19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하되 볼지어다 너희 하는 일이 쓸 데 없다 보라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 하니라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입성했을 때 왜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했는지 말씀하십니다. 나사로를 살릴 때 함께 있던 사람들이 무리가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린 일을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증언하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예수님이 하나님이시오 그리스도요 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이 그들을 로마의 통치에서 구원하시고 세계 최강의 이스라엘을 만들 것을 믿고 열렬히 환영하였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환영하자 바리새인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너희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이 쓸데 없다 온 세상이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였습니다. 이 후에 유대인뿐 아니라 헬라인까지도 예수님께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나 이방인들이 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하나님으로 높임 받고 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지만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하는 일이 쓸데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망이 예수님을 죽이지만 죽음이 예수님을 가두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보고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외쳤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애굽 마술사의 지팡이를 삼겼듯이 예수님의 부활이 세상의 사망을 삼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십니다.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은 지금 우리의 마음에 지금은 성령으로 오셔서 우리를 다스립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들에게 성령님을 주셔서 성령님으로 우리의 왕이 되십니다. 지금은 예수님도 왕이지만 동시에 사탄도 세상의 임금으로 통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상의 왕 사탄과 공존하는 세상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예수님이 우리 마음의 왕이 되어 평화와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탄보다 더 크고 좋으신 분이므로 사탄의 역사에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때는 예수님이 홀로 다스리는 왕이 되십니다. 사탄을 잡아서 불못에 던집니다. 우리 몸도 변화되고 자연 만물도 변화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종교지도자를 통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것이 다 쓸데 없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왕이 될 것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셔서 왕이 되십니다.

 

15절을 보십시오 이는 기록된 바 ㄱ)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예수님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하실 것으로 생각하고 세계 최강의 이스라엘을 만들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들은 종려나무를 흔들며 열렬히 예수님을 환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는 의미를 알지 못했습니다. 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님은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가 아니십니다. 인간을 죄와 사탄에서 구원하여 참 기쁨을 주시는 왕이십니다. 우리를 겸손히 섬겨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공의로 자신이 심판 받으셔서 우리를 거룩하게 살게 하시는 공의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세상의 왕 사탄을 쫓아내고 우리의 진정한 왕이 됩니다. 평화와 공의로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를 만드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타시는 나귀새끼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나귀새끼로 예수님을 나의 삶에 태울 때 우리는 진정 평화와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모시고 살아갈 때 예수님은 우리의 삶에서 나와 함께 살아가길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예수님으로 인하여 나귀로 사는 우리도 영광스럽게 될 것입니다. 아멘

 

요한복음 12장 이부 나귀새끼 타신 왕의 왕

말씀 요한복음 129-19

요절 요한복음 1215 이는 기록된 바 ㄱ)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요한복음 12장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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