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5월 첫주 메시지 성령님이 오신 것이 예수님이 오신 것보다 더 유익하다
요한복음 16장 강해 일부 성령님이 오신 것이 예수님 오신 것보다 더 유익이다
요한복음 16장 1-11 성령님이 오신 것이 예수님 오신 것보다 더 유익이다
요절 요한복음 16장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우리는 성탄절을 크게 기념합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오심으로 많은 유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많은 사람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성탄절보다 더 크게 기념해야 할 날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 강림절입니다. 성령님이 오신 것이 예수님이 오신 것보다 더 큰 유익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오셨다가 떠나심으로 근심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상을 말하는데 예수님이 떠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떠나지 않으면 성령을 보낼 수 없고 예수님이 떠나야 성령님이 오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예수님이 오셨을 때보다 더 큰 유익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어떤 점에서 예수님이 오신 것보다 더 유익이 되는지 배우고자 합니다. 아멘
(1) 박해를 받을 때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3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 4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받을 박해를 말씀하십니다. 출교를 당해서 사회적으로 매장당합니다. 눈뜬 맹인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고백했다고 출교 당하였습니다. 심지어 죽이는 자도 있습니다. 사도 야고보를 비롯하여 많은 선배들이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렇게 박해하면서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고 합니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기 전에 성도들을 잡아들이고 죽이는 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울은 열심은 있지만 하나님을 잘 몰라서 예수 믿는 자를 박해한 것입니다. 많은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처럼 무지한 열심으로 성도들을 박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지금까지는 제자들이 박을 박해를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까지 말씀하지 않으신 것은 예수님이 함께 하시며 제자들을 보호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떠나야 함으로 제자들이 박을 박해를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이 박해를 받을 때 실족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실족은 불신에 빠져서 예수님을 떠나는 것입니다. 그들이 박해 받을 때 실족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그들이 말씀을 기억하고 박해를 극복하게 도우십니다.
박해를 받을 때 실족하는 사람도 있고 신앙이 더 성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말씀에 뿌리를 내린 사람은 성장하고, 말씀에 뿌리가 없는 사람은 실족합니다. 박해는 해와 같습니다. 깊이 뿌리를 내린 식물은 해가 뜰 때 잘 자랍니다. 그러나 뿌리가 없는 식물은 해가 뜰 때 말라 버립니다. 박해가 문제가 아니라 말씀에 뿌리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박해를 박을 때 말씀을 기억하고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려야 합니다. 말씀에 뿌리를 내리면 우리는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는 오천 살 된 나무라고 합니다. 나무가 천년을 자라기 위해서는 반드시 가뭄이라는 박해를 겪어야 한다고 합니다. 가뭄을 겪어야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리지, 좋은 환경만 있으면 뿌리를 내리지 않습니다. 가뭄에 뿌리를 깊이 내리면 가뭄을 이길 뿐 아니라 비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고 더 강하게 자랄 수 있습니다. 항상 좋은 환경에 있는 나무는 뿌리를 내릴 필요가 없어 뿌리를 조금 내립니다. 뿌리가 약한 나무는 비바람이 불면 다 넘어져 죽게 됩니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포로기라는 박해를 통해서 말씀에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구약성경 39권이 포로기를 겪으며 집대성되었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의 십자가 박해에 뿌리를 내린 종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초기 기독교도 로마시대의 박해를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순수한 믿음에 뿌리를 깊이 내리고 복음을 세계화 하였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와 육이오를 통해서 복음 신앙에 뿌리를 깊이 내렸습니다. 그랬을 때 지금 우리나라에 자라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여러 어려움이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어려움, 직장의 어려움, 자녀의 어려움, 건강의 어려움을 겪는 분이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환영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때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뿌리를 깊이 내리면 우리는 평생 신앙생활을 잘 하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나타내고 후손들에게도 좋은 유산을 물려줄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할 수 있습니다.
나 개인적으로 보아도 고난의 때 신앙의 뿌리를 내렸습니다. 만성 질병을 통하여, 천안 와서 직장이 없고 제자양성도 안 될 때, 제자들이 여러 문제가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과 갈등이 있을 때 복음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특히 나는 한 목자의 조현병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뿌리를 깊이 내릴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말씀에 뿌리를 깊이 내려서 거목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예수님이 계실 때보다 실상은 더 유익합니다.
“5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6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지금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가는데 예수님이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다고 하십니다. 물론 도마가 어디로 가시느냐고 물은 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는다고 하신 말씀은 제자들이 예수님이 가시는 의미를 묻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로 가는 사역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은 예수님이 가시자 한 자리 하지 못할 것 같아서 불확실한 미래로 불안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지 못할 것 같은 피해의식에 시달렸습니다. 그들은 자신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었지 예수님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이 떠나 가는 것이 실상은 제자들에게도 유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상은 실제 현상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실상을 알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가시지 않으면 보혜사가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가시면 보혜사가 오십니다.
보혜사는 어떤 분이라고 하였죠? 보혜사는 페라클레토스로 성령님의 다른 이름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여러 이름으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격적으로 돕는 분이십니다.(Helper (돕는 자 / 조력자)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하도록 우리를 신뢰하고 기다려주시고 도와 주십니다. 우리가 어떻게 할지를 모를 때 지혜를 주셔서 신의 한 수를 알게 하십니다. Counselor (상담자)입니다. 슬플 때 어머니처럼 우리를 위로해주십니다. Comforter (위로자)입니다. 악동뮤지션의 기쁨, 슬픔, 아름다움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기쁨 뒤에 오는 슬픔도 찬란하게 아름답다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퍼즐을 맞추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또한 우리가 사탄의 공격을 받을 때 우리의 편이 되어 우리를 옹호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Advocate (변호사 / 옹호자)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똑같이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보혜사이시고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가가 되십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똑 같이 하지만 성령님이 오신 것이 예수님이 육신으로 계실 때보다 유익한 것이 더 많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시공의 제한을 받았습니다. 성령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가시고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실상은 더 유익입니다. 저는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성령님이 오시는 것이 어떤 점에서 제자들에게 유익한 지 네 가지를 생각하였습니다.
첫째, 성령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여주십니다. 성령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음으로 우리 안에 내주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체가 있으므로 내주하실 수 없었습니다. 우리 곁에는 계셨지만 우리 안에 들어올 수는 없었습니다. 구약에서도 내주가 있었지만 일시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영이시므로 우리 안에 내주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생명이 되어주시고 항상 우리와 함께 하여주십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를 가든지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둘째, 성령님은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유대에 있는 몇몇 사람들과만 함께 하셨습니다. 구약에서도 성령님은 대제사장이나 왕이나 선지자 몇 사람과만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신 후 전 지구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자자손손이 함께 하실 수 있습니다. 성령님이 오셔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과 함께 하심으로 성령님이 민주화된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생전의 열두제자나 구약의 모세나 다윗왕이나 엘리야보다 더 큰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성령님은 우리에게 자유를 주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무엇이든지 없어지면 불안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40일간 없어지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불안해져서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제자들도 육신을 가진 예수님이 떠나신다고 하자 근심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를 영원히 떠나지 않기 때문에 불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영원한 평안을 주시고 영원한 기쁨을 주십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유를 주십니다. 만약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우리가 화장실 갈 때나 샤워하실 때도 지켜보신다면 부담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에게 부담을 주시지 않고 자유를 주십니다.
넷째, 성령님은 우리를 자립적이 되게 하십니다. 육신을 가진 예수님은 제자들을 의존적이 되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인간 예수님을 의지하고 연약하고 무능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우리를 안에서 도와주심으로 우리를 자립적 신앙을 갖게 하고 능력 있게 하십니다. 우리가 기쁨으로 자원하여 하나님음 섬기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함으로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여러 표적과 기적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지금 여기에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을 알게 하십니다.
실제 복음서의 제자들과 사도행전의 제자들을 비교해 보면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님이 오신 것이 유익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순절 이후에 성령님을 모든 육체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쳤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진실한 사람, 견손한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회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제자들처럼 성령님이 주시는 이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3) 성령님은 박해하는 세상의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분명히 깨닫게 하십니다.
“8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10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11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
지금까지는 성령님이 제자들을 도우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성령님께서 세상의 죄를 책망하시고 그들에게 의와 심판에 대해서 확신을 갖게 하십니다. 여기서 책망한다는 말은 책망하다는 뜻도 있지만 실상을 확실히 드러내다는 뜻도 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그릇된 생각을 꾸짖어 바라잡는다’로 번역되었습니다. 가장 좋은 번역 같습니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에게 세 가지를 책망하고 확신시켜주십니다.
첫째, 성령님은 세상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책망하십니다. 대체로 죄는 도적적이거나 법적인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는 관계성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깨뜨리고 사람들과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그 죄 중에 대표적인 것으로 불신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과 관계성이 깨어지고 사람들과 자연과의 관계도 깨어졌습니다. 불신 외에도 관계성을 깨는 것으로 탐심과 교만과 거짓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금한 것을 하고자 하는 탐심, 인간이 하나님이 되고자 하는 교만, 심판을 부정하는 거짓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었습니다.
미국과 이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 전쟁이 일어난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할 수 있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불신과 탐심과 교만과 거짓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자신을 공격할 것이라고 불신하였습니다. 미국은 이란이 핵을 개발하면 자신들을 공격을 할 것이라고 불신합니다. 전쟁을 통하여 자신의 나라의 유익을 얻고자 탐심이 있습니다. 미국과 러시아는 이란과 우크라이나 보다 강하다는 교만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 외에도 전쟁을 하면 자신들이 이기고 이익을 볼 것이라는 거짓에 속고 있습니다.
이런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려면 우리는 진실해야 합니다. 잘못했으면 진실하게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교만 탐심 불신을 회개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게 도우십니다.
둘째, 성령님은 의에 대해서 바로 잡아주십니다. 의좋은 형제라는 말도 있듯이 의는 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를 깨닫고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습니다. 고행과 선행으로 의로워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죄인이므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지옥에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세상 사람을 대신하여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가심으로 세상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회복시켰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이 심판을 받으셨으므로 우리는 의로워졌다는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므로 우리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가 되었음을 확신시켜주십니다. 우리는 의롭게 되었을 뿐 아니라 이제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의롭게 살아야 하나님과 사람들과 관계성이 점점 회복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의롭다는 확신을 시켜주실 뿐 아니라 우리가 의롭게 살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십니다. 점점 관계성이 좋아지게 하십니다.
셋째, 성령님은 사탄이 심판을 받았다는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사탄은 관계성을 깨고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놈입니다. 사탄이 있는 한 우리는 다시 죄를 짓고 관계성이 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때 사탄은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사탄을 완전히 이기고 승리할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은 우리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승리하였다는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우리에게 사탄을 이기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십니다.
이전에 박찬호가 메이져 리그에서 124승을 하였습니다. 당시에 미국에서 경기를 이기면 이긴 경기를 텔레비전으로 그 이튿날 아침 다시 우리나라에서 중계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천안종로학원에 다닐 때인데 학원에 가면 쉬는 시간에 박찬호 경기를 틀어줍니다. 우리는 박찬호가 이미 이긴 경기를 보는 것입니다. 때로는 막찬호가 홈런을 맞고 만루에 몰리기도 하지만 보는 사람은 가슴을 조이고 불안하지 않습니다. 이이 이긴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이미 승리하셨고 이미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알고 사탄과 싸우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탄에게 홈런을 맞고 만루 위기에 놓일 때도 있지만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사탄에 의해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관계가 깨어져 고생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안해하지 않습니다. 만루에 몰리면 이제 졌다고 생각하고 티비를 끄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는 어떤 위기에도 우리의 삶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들과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승리를 확신하고 하루하루 평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승리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더 좋은 관계성을 맺어갈 수 있습니다.
결론 성령님이 오신 것이 실상은 유익입니다.
7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예수님이 오심으로 많은 유익이 있었습니다. 많은 병자가 치료되고 귀신이 나가고 빵을 먹고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천국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떠났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떠남으로 근심이 가득하였지만 실상은 예수님이 떠난 것은 예수님이 오신 것보다 더 유익합니다.
예수님이 가시고 성령님이 오셨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과 항상 함께 하여주시고 자유를 주시고 자립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하시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세상 사람들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들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믿은 자들에게 하나님과 사람들의 사랑의 관계성을 지속적으로 맺게 하심으로 천국에 간다는 승리의 확신을 주십니다.
그런데 이런 유익을 못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안 보인다는 장점 때문입니다. 우리는 안 보이시는 예수님을 말씀을 통해서 만나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에 순종할 때 우리는 이 성령님의 많은 유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이 오심으로 생긴 많은 유익을 점점 더 누리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6장 강해 일부 성령님이 오신 것이 예수님 오신 것보다 더 유익이다
요한복음 16장 1-11 성령님이 오신 것이 예수님 오신 것보다 더 유익이다
요절 요한복음 16장 7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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