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5월 둘째주 메시지 성령님이 주시는 두 가지 기쁨
요한복음 16장 강해 2부 성령님이 주시는 두 가지 기쁨
요한복음 16장 12-27
요절 16장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성령님이 오신 것은 예수님이 계실 때보다 큰 유익입니다. 성령님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십니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큰 기쁨을 주십니다. 이 기쁨은 짝퉁인 재미와 다른 것입니다. 재미는 게임을 하면서 얻을 수 있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얻을 수 있고 세상적인 쾌락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은 마음에서 솟아나는 기쁨입니다. 샘솟는 기쁨이요, 영원한 기쁨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이 기쁨을 압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이 주시는 이 기쁨을 다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신앙생활 할수록 기쁨이 더 커지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쁨이 사라진 사람은 이 기쁨을 다시 되찾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성령님은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고 하나님 나라를 알려주십니다.
“12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리라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예수님은 지금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하시고 싶은 말씀이 많습니다. 요한복음 13장부터 16장까지 그것을 4장에 걸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락방 강화에서 아직도 더 많은 말씀을 하시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감당하지 못함으로 그만 말씀하시고자 하십니다. 아직 성령님을 받지 않은 제자들은 그 말을 다 알아듣지도 못하고 다 감당하지도 못합니다. 앞으로 오실 성령님께 배턴을 넘겨서 제자들이 성령님을 통해서 말씀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성령님이 그들을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진리를 ‘그 진리’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바로 그 진리요 그 길이요 그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든 진리’라고 하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서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성령입니다. 성경 말씀은 성령으로 기록된 말씀이고 성령님은 성경 말씀으로 친히 일하십니다. 진리의 성령님이 오시면 모든 성경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좋은 성경선생입니다. 성령님은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지도와 같습니다. 성령님은 그 지도를 우리의 삶에 적용시켜주시는 네비게이션입니다. 네비게이션이 없고 지도만 있을 때 운전하려면 많이 불편했습니다. 운전하면서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아니면 약도를 그려서 약도를 보고 운전을 해야 했습니다. 운전할 때마다 표지판을 살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공위성을 통해서 네비게이션이 생기고 그 지도를 실시간마다 운전자에게 적용해주니 나같은 길치도 운전하기가 아주 편리해졌습니다. 그와 같이 성령님은 성경 말씀을 나의 삶에 적용하여 나의 삶을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려면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이 주시는 소원을 따라서 행하면 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에게서 들은 것을 말하며 우리에게 장래 일을 알리십니다. 장래 일을 알리는 것을 점쟁이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와 결혼해야 하는지 어느 대학을 가야하는지 어느 주식을 사야 대박이 나는지 점챙이처럼 성령님이 알려주시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그렇게 점쟁이처럼 장래 일을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여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직접 누구랑 결혼하라고 알려주시지 않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서 누구와 결혼하고 싶은 소원을 두고 우리 스스로 판단하고 행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결국 인도하시고 알려주시는 장럐 일은 무엇일까요? 영원한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곳으로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은 바울에게 마게도냐로 인도하여 유럽에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성령님은 바울에게 로마도 보야야 한다는 환상을 보게 하시고 로마를 통해서 세계선교를 하게 하셨습니다. 마지막에는 바울을 죽어서 가는 하나님 나라로 그를 인도하여주십니다.
악뮤의 소문의 낙원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뮤비챌린지하는 영상이 많습니다. 이 노래를 들으며 그 나라는 불치의 병이 없다는 가사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치고 병든 나그네여 우 외톨이 나그네여 당신의 불치병은 그곳에 존재할 수 없어요 우린 모두 그곳을 찾아 떠나왔죠” 그곳에는 슬픔도 고통도 눈물도 없는 곳입니다. 성령님은 성경 말씀으로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을 떠나 불치의 병이 없는 그 하나님 나라로 가자고 우리를 초청하십니다.
이찬혁의 장례희망이라는 노래도 있습니다, 장례 희망이 오늘 말씀의 장래 희망과 동음이의어로 쓰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장래에 파티와 같은 장례식의 희망을 노래합니다. 그 장례식에는 축하와 환호성 박수갈채가 나오는 곳입니다. “미안해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왜냐면 난 천국에 있기 때문에 오자마자 내 몸집에 서너 배 커다란 사자와 친구를 먹었네” 이찬혁은 사자와 친구가 되어 뛰어노는 너무 좋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 죽어서 이 하나님 나라에 가니 장례식이 파티와 같이 즐거웠으면 좋겠다고 노래합니다. 이도 성령님이 알려주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2) 성령님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14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15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성령님은 예수님의 것을 알리십니다. 예수님의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하나님을 알리십니다. 성령님과 예수님과 하나님은 서로 다른 분이지만 사랑 안에서 같은 분이십니다. 이것을 삼위일체라고 하십니다. 성령님은 삼위일체이심으로 예수님과 하나님을 나타내십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나타냄으로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 드러나는 나라입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3번이나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고 주의 이름이 높이 드러나기를 원하나이다”(시편 57:11) 기도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쫓기면서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높이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를 만드십니다. 그러나 사탄은 사람의 이름이 드러나는 사탄의 나라를 만듭니다.
‘사울의 나라’와 ‘다윗의 나라’의 가장 큰 차이는 사람의 이름을 높이느냐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느냐에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이름에 민감하였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아멜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 명령에 불순종하였습니다. 자신을 자랑하고자 아멜렉왕 아각왕을 끌어오고 살진 양들을 끌고 왔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자신보다 인기 있는 다윗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이방인에게 자신이 죽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겨서 자신의 이름을 지키고자 자살하였습니다. 그곳은 사탄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거인 골리앗과 싸웠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복수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죽이고자 하는 사울왕을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웠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자신의 이름은 사람들에게 짓밟혀도 자신의 살인, 간음 죄를 공개적으로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자살하지 않고 부끄러워도 끝까지 버티며 살아갑니다. 이런 다윗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모형을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아니라 사람의 이름을 높이는 것은 사탄이 하는 것입니다. 이단일수록 교주의 이름을 높입니다. 일반 교회도 담임 목사의 이름을 높이면 그것은 사이비로 가는 교회입니다. 사람의 이름을 높이면 시기 질투가 생깁니다. 그곳은 사탄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만을 높이면 그곳에는 평화와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만 자랑하고 시기 질투가 사라집니다. 우리는 오직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하나님의 이름만을 높이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3) 조금 있으면 성령님이 오셔서 기쁨을 줍니다.
“16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니17 제자 중에서 서로 말하되 우리에게 말씀하신 바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시며 또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하신 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고18 또 말하되 조금 있으면이라 하신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거늘19 예수께서 그 묻고자 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내 말이 조금 있으면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나를 보리라 하므로 서로 문의하느냐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조금 있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그러면 세상은 기뻐하나 제자들은 근심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 조금 있으면 예수님은 부활하고 하늘에 오르사 성령님으로 다시 오십니다. 그러면 제자들은 근심이 변하여 기쁨이 될 것입니다. 마치 여자가 해산할 때 잠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근심이 평생의 기쁨이 됩니다. 아이를 낳은 기쁨으로 해산의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않고 다시 아이를 낳고자 합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여 성령으로 다시 오시면 제자들은 십자가의 고통을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성령님은 십자가 해산 후에 아기처럼 제자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제자들은 기쁠 것이요 그들의 기쁨을 누구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조금 있으면’ 이라는 말을 일곱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근심은 잘간이라는 것을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반면에 성령님이 주시는 기쁨은 영원합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본다면 지긍의 고난은 잠깐입니다. 눈깜박할 사이에 지나가는 것입니다.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잠깐 고난을 받고 있습니다. 질병의 고난, 물질의 고난, 실패의 고난, 인간관계의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잠깐이요 그 후에는 영원한 기쁨이 올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시편 30편 5) 이라고 하였습니다. 잠깐의 슬픔이 가면 영원한 기쁨이 옵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보면 잠깐의 고난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령님이 오시면 성령님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주십니다. 복음은 기쁨입니다. 천사는 예수님이 태어난 것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였습니다. 동방박사는 예수님의 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별을 찾아 예수님을 만나러 갔을 때 그들은 별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기쁨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성경 말씀을 보며 별을 찾아갔습니다. 그들이 다시 별을 찾았을 때 그들은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왜 예수님을 믿는데 기쁨이 있을까요? 예수님은 성령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새포도주입니다. 제가 술을 자주 먹는 분에게 왜 술을 먹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기뻐서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돈도 많이 들고 건강도 안 좋아져서 문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새술은 우리에게 참 기쁨을 주시고 돈도 안 들고 건강도 좋아집니다.
성경 중에 기쁨의 서신이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노년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곳에서 무엇이 기쁘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그곳에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자신은 갇혔지만 감옥에서 바울을 통하여 가이사 시위대에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감옥 밖에서 자신을 생각하며 사람들이 복음을 전해졌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을 바울을 시기하여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으로 하나, 겉치레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해지는 것은 그리스도니 내가 기뻐하고 기뻐한다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기 중심이 아니라 예수님 중심이므로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빌립보 성도들에게도 기뻐하라고 합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다시 말하노리 기뻐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평생에 가장 기뻤을 때를 생각하면 누구나 처음 거듭나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았을 때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기쁨을 지속적으로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동방박사처럼 별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이 충만하여 이 기쁨을 항상 누리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4) 성령님이 오시면 예수님 이름으로 직접 기도할 수 있습니다.
“23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1)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2 5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26 그 날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할 것이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니 27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믿었으므로 아버지께서 친히 너희를 사랑하심이라”
성령님이 오시기 전까지는 중보자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갔습니다. 성도들은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왕을 통해서 나갔습니다. 예수님이 육신으로 살아계실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기도하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오신 후에는 그들이 중보자를 통해서 나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직접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기도하고 예수님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오신 그리스도인 것을 믿었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들이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 그들의 기쁨이 충만하게 됩니다.
가톨릭에서는 마리아나 사도들이나 성인들의 이름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님을 받을 때도 기쁘지만 기도의 응답을 받을 때도 기쁩니다. 특히 오랜동안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이루어질 때 기쁩니다. 우리가 기쁨을 얻으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예수님으로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때까지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친히 사랑하사 기도에 응답하여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우리에게 기쁨을 충만하게 하십니다.
한나는 사무엘을 낳은 후에 사무엘로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을 주신 하나님을 기뻐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사무엘을 낳은 후에 하나님을 소유하고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나는 자녀들에게 내가 만난 하나님을 물려주고 싶었습니다. 아들 딸이 오랜 기도 끝에 취업하였을 때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물론 공무원이라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은 기쁨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직장을 달라는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으로 기뻤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기뻐하면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으로 기뻐하면 우리의 기쁨은 영원히 갑니다. 딸이 임고에 합격하였을 때 합격한 것으로 기뻐하면 그 기쁨은 6개월도 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기뻐하면 그 기쁨이 영원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결론 성령님은 두 가지 기쁨을 줍니다.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성령님이 우리를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하십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재미 있는 나라가 아니라 기쁨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 기쁨을 맛보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기쁨이 충만하게 살 수 있을까요?
첫째, 성령님이 기쁨이십니다. 거듭나 성령을 받을 때 기쁨을 얻습니다. 성령님은 새술로서 우리에게 새기쁨을 주십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성령님을 소멸시키지 말고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이 기쁨을 지속할 수 있습니다. 기쁨이 샘물처럼 점점 솟아납니다.
둘째는, 기도가 응답될 때 기도를 응답하신 하나님으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오랜 기도 끝에 응답될수록 기쁨은 큽니다. 간절히 기도할수록 기쁨은 큽니다.
아브라함은 25년 기도 끝에 이삭을 낳았습니다. 이삭은 웃음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는 캠퍼스 제자양성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자녀를 제자로 키우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부모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기도해야 합니다. 이 기도가 응답될 때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우리가 제자양성을 통하여 성령님과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쁨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6장 강해 2부 성령님이 주시는 두 가지 기쁨
요한복음 16장 12-27
요절 16장 22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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