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2024년 성탄 1강 메시지 평화를 주러 오신 아기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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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성탄 1강 평화를 주러 오신 아기 예수님
말씀/ 이사야 9:1-7
요절/ 이사야 9: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요즘 전쟁이 많습니다. 러우 전쟁, 이팔전쟁이 있습니다. 여야, 진보 보수간에 갈등도 심합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은 예수님을 믿는 가정 안에, 교회 안에서도 싸움이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싸움을 그치고 평안을 누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화목한 가정, 화목한 교회, 화목한 국가를 만들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평화를 주는 한 아기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한 아기 예수님을 영접하고 화목한 공동체를 만들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예수님은 큰 빛으로 오셨습니다.
“1.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누어졌습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을 남유다로 쫓아냈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을 앗수르에 침략 의해서 망하게 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은 혼혈족이 되고 혼합종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방인처럼 되었습니다. 갈릴리는 북이스라엘의 최북단으로 완전 이방화되었습니다. 유대인은 갈릴리 사람들을 이방인 취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갈릴리 땅을 이방인 땅처럼 멸시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700여년 멸시를 당하자 겸손해졌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갈릴리에 보내셔서 멸시 받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자 갈릴리 사람들은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열두 제자가 대부분 갈릴리 출신이고 그들은 영광스러운 인류의 스승이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갈릴리를 사모하여 갈릴리에 성지 순례를 하고자 합니다.
갈릴리는 북쪽 앗수르의 침략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다가 광풍으로 죽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질병으로 노환으로 자연사하였습니다. 갈릴리는 흑암 같은 사망권세가 있었습니다. 사망은 그늘이 있습니다. 그들은 사망의 그림자인 두려움과 우울감이 있었습니다. 허무와 무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어두웠습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큰 빛을 비추었습니다. 큰 빛 예수님이 그곳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 안에는 죽음이 없고,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자 갈릴리 사람들에게는 어둠이 없어졌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평안이 왔습니다. 슬픔이 없어지고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누구나 사망의 그늘이 내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어둠에 있으면서도 어둠에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들이 어둠에서 빛으로 나와야 비로소 과거에 얼마나 어둠 속에 있었는지 알게 됩니다. 사람은 사망의 어둠 때문에 어둔 것인데 그것을 모르고 사람탓, 환경탓을 합니다. 이 어둠과 그늘은 돈으로 권력으로 인간적인 사랑으로 물리치고자 합니다. 그런 것은 어둠을 물리칠 수 없습니다. 오직 큰 빛되신 생명의 예수님이 오실 때만 어둠이 사라집니다. 하나님은 어둠을 물리칠 뿐 아니라 빛을 비추는 자로 삼아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어나 빛을 비추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일어나 빛을 비추면 하나님은 우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2) 예수님은 평화를 주러 오셨습니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창성케 하시고 즐거움을 주십니다. 농사를 지은 후 가을에 추수하는 즐거움을 주십니다. 전생에서 승리한 후에 탈취물을 나누는 즐거움을 주십니다. 기드온 300용사가 미디안을 물리친 큰 승리가 있었던 것처럼 큰 승리로 즐거움을 주십니다. 본문에는 즐거움이라는 단어가 네 번이나 반복되어 예수님이 주시는 즐거움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침략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앗수르의 멍에를 메고 앗수르를 섬겨야 했습니다. 어깨에는 앗수르의 채찍과 막대기를 맞았습니다. 앗수르 후에는 바벨론과 페르시아와 그리스와 로마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군인들이 신을 신고 그들과 어지러이 싸우고 피 묻은 겉옷을 입고 그들과 대항하여 싸웠습니다. 그들은 복수를 다짐하며 살았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들에게 복수하며 싸웠고 복수의 악순환이 일어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그리스도가 오면 로마의 막대기 채찍, 그리고 멍에를 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셔서 그들의 기대대로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각시탈을 쓰고 로마를 통쾌하게 복수하지 않으셨습니다. 충분히 로마와 싸울 수 있는 힘 있는데 로마와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사이다 같은 시원한 역사를 이루지 않았습니다. 아기로 오셔서 아기로 사탄과 싸우셨습니다. 아기는 힘이 없습니다. 연약하고 무력합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기처럼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고구마와 같이 답답한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사탄과 싸우신 것입니다. 사탄을 싸워서 이기는 길은 대신 죄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심으로 사탄의 채찍과 막대기와 멍에를 꺾으셨습니다. 우리가 사람들과 싸우면 사탄의 계략에 말려드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를 통해서 서로 망해서 죽게 합니다. 이 사탄을 이기는 유일한 길은 상대방의 죄를 나의 죄로 생각하고 그의 방패가 되어 대신 비방을 받아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방패막이가 되어 줄 때 사탄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인류의 방패막이가 되어 비방의 표적이 되었을 때 예수님은 로마를 이기고 로마를 복음화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세계를 복음화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주위에는 약자를 억압하고 채찍질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의 싸움뿐 아니라 가정과 교회 안에도 싸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악을 악으로 갚고자 합니다. 그러면 악순환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사탄의 간교한 계략입니다. 우리는 사람과 싸우지 말고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 우리는 심판을 공의의 하나님께 맡기고 그들의 죄를 대신 감당하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그들을 대해야 합니다. 내 손에 피를 묻히지 말고 하나님의 손에 피를 묻히게 해야 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나에게 고통을 준 사람들을 복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탄을 이기고 큰 승리를 얻는 길입니다. 싸움이 사라지고 참 평화를 얻는 길입니다.
(3) 예수님은 한 아기로 오셔서 평화를 주십니다.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오는 것은 한 아기의 탄생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칼을 가지고 불로 오지 않습니다. 평화로운 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연약한 모습으로 오십니다. 한 아기로 오셔서 나이 30이 되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평화를 가져옵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여 왕이 되십니다. 그 어깨에 정사 곧 통치권을 메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하시고 인간을 통치하십니다. 예수님은 다섯 개의 이름을 가지고 있고 그 이름이 평화를 가져오는 이름입니다.
첫째, 예수님은 기묘자입니다. 하나님이 아기로 오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기묘한 일입니다. 우리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는 옳고 그른 것을 따시며 싸워서는 안 됩니다. 이성을 초월한 십자가로 싸워야 평화가 옵니다.
둘째, 모사입니다. 상담자입니다. 상담의 핵심은 경청과 공감입니다. 십자가에서 고통하시며 우리의 아픔을 공감하시고 경청하십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넉넉히 지게 도우십니다.
셋째,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것은 마이티로 마스터키를 의미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문제의 답이라는 말입니다. 분쟁하는 우리에게 십자가의 예수님이 답입니다. 십자가의 사랑만이 분쟁을 종식 시킬 수 있습니다.
넷째, 영존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영원히 보호하시고 공급하시는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를 영원히 보호해주시고 필요를 공급해주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싸움을 일으키는 사탄에서 영원히 보호하여 주십니다.
다섯째, 평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을 때 유대인의 왕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으로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참 평안을 주십니다. 싸우는 사람들과 화목하게 하십니다. 십자가의 예수님만이 참 평안을 주시고 진정한 화목을 주십니다.
(4) 하나님은 공의를 천천히 이루십니다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평화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십니다.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보존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심으로 선으로 악을 대하면 공의가 없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억울한 것처럼 보입니다. 답답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공의를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천천히 공의를 세워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할 때 완전한 공의를 세우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더딘 것 같지만 빠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공의를 세워주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불이나 바람으로 임하여 로마사람을 복수하는 열심이 아닙니다. 로마사람을 한 사람씩 죽이는 통쾌한 방법이 아닙니다. 한 아기와 십자가로 이루는 열심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은 고구마같이 답답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ccm에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열심은 조금 느린 것 같고, 더딘 것 같습니다. 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헛된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정확히 공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열심히 일하셔서 공의를 세우실 것을 믿고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불신에 빠져 조급하게 복수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공의를 이루실 것을 믿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결론) 아기 예수님과 함께 싸움 없는 공동체를 만들자
결론적으로 지금도 분쟁은 계속됩니다. 사탄은 믿는 가정과 교회도 싸우게 합니다. 우리는 싸워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싸우면 사탄에게 지는 것입니다. 사탄은 싸우기를 원합니다. 싸워야 하나님이 교회의 기도를 들을 수 없고 교회가 망한다는 것을 사탄은 잘 압니다. 우리는 사람과 싸워지 말고 사탄과 싸워야 합니다. 사틴을 이기는 싸움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내가 죽는 것입니다. 심판은 하나님께 맡기고 선으로 악을 대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의 방패막이가 되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당신의 손에 피를 흘려서 정확하게 심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을 믿고 사람과 싸우지 말고 십자가의 사랑으로 악을 대해야 합니다. 그때 싸움 없는 화목한 가정, 화목한 교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공의로운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에 십자가를 짐으로 사탄을 이기고 탈취하는 즐거움, 추수하는 즐거움이 넘칠 것을 믿습니다. 아멘!
한 마디) 하나님이 싸우실 것을 믿고 참읍시다.
2024년 성탄 1강 평화를 주러오신 아기 예수님
말씀/ 이사야 9:1-7
요절/ 이사야 9:6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2024년 성탄 1강 평화의 왕 아기 예수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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