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7월 넷째주 메시지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생을 맛보며 사는 길
7월 넷째주 메시지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생을 맛보며 사는 길
요한복음 8장 강해 6부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생을 맛보며 사는 길
말씀 요한복음 8장 51-59
요절 요한복음 8장 51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어떤 사람은 한 번 죽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여러 번 죽는 사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한 번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한자어에도 시사여귀라는 말이 있습니다. 죽음을 보기를 고향에 돌아가는 것처럼 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죽음 앞에서 두려움이나 슬픔이 한 번도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심히 슬퍼하시고 놀라셨습니다.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극복하셨습니다. 심히 슬퍼히시고 놀라시고 심히 두려워하신 예수님은 말씀은 잡고 기도한 후에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죽음을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절 5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우리가 죽음을 극복하도록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우리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생을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천로역정의 마지막 장면에 보면 크리스천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는 소망이가 믿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죽음을 극복하고 영생을 맛보며 죽음의 강물에 뛰어듭니다. 그때 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 제목을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생을 맛보며 사는 길’이라고 정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가운데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생을 맛보며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습니다.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2. 유대인들이 이르되 지금 네가 귀신 들린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네 말은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 하니”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다 죽었습니다. 우리 조상들도 다 죽었습니다. 아담 후에 에녹과 엘리야 외에는 다 죽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핵선언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죽음도 맛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쓰신단짠 맛을 압니다. 그렇다면 죽음의 맛은 어떤 맛일까요? 죽음의 맛은 허무의 맛, 절망의 맛 슬픔의 맛 두려움의 맛 불안의 맛입니다. 시기 질투 미움의 맛입니다. 여러분들 마음 속에 이런 것이 있다면 그는 죽음을 맛보는 사람들입니다. 자주 이런 것을 느낀다면 그는 죽음을 자주 맛보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가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영생을 맛보며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죽음의 맛을 영생의 맛으로 바꿀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영생의 맛은 어떤 맛일까요? 죽음의 맛과 다르게 기쁨의 맛, 평화의 맛, 사랑의 맛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죽음의 맛을 영생의 맛으로 바꾸어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예수님의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죽음의 맛을 생명의 맛으로 바꿀 수 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둠이 조금도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명을 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죽음의 맛을 영생의 맛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맛보며 살 수 있습니다. 비록 육체는 죽어도 다시 살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에 보면 엘리사가 오이의 독을 제거한 사건이 나옵니다.(열왕기하 4장 38절-41절) 엘리사가 길갈에 있을 때,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습니다. 엘리사와 제자들은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엘리사가 사환에게 큰 솥을 걸고 선지자의 제자들을 위하여 국을 끓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제자가 들에서 들오이를 한 아름 따가지고 돌아와 국을 끓였습니다. 제자들이 국을 한 숟가락 먹다가 사망의 독이 있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 소리쳤습니다. 그들은 살기 위해서 국을 먹었는데 죽음의 독으로 국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엘리사가 가루를 가져다가 솥에 넣었습니다. 엘리사는 가루를 넣자 신기하게 솥 가운데 있는 독이 없어졌습니다. 죽음의 맛이 생명의 맛으로 바꾸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에는 사망의 독이 아담 이래 퍼져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어도 그곳에는 독이 있습니다. 결국은 독이 있는 것을 먹다가 결국은 죽어야 합니다. 우리는 슬픔과 불안과 두려움과 미움에 시달리며 살다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죽음의 맛을 생명의 맛으로 바꿀 수 있는 생명의 가루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생명의 가루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죽음의 독이 사라지고 영생의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슬픔과 불안과 미움을 극복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시기와 질투와 미움을 극복하며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평안과 기쁨과 의미를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배려를 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두려움과 슬픔이 몰려올 때 엘리사가 가루를 넣었듯이 우리의 삶에 예수님의 말씀을 넣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잡고 투쟁하는 것입니다. 내 인생에 가장 큰 문제는 불안입니다. 불안이 내가 맛보는 죽음의 맛입니다. 나는 불안이 찾아오면 먹는 말씀의 가루약이 있습니다. 이 상비약을 항상 두 봉지 가지고 다닙니다. 앞서 말씀드린 요한복음 11장 25,26절입니다. 또한 시편 42편 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두 말씀으로 나는 죽음의 맛을 극복하고 영생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죽음을 맛볼 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말씀의 가루약을 항상 가지고 다디다가 먹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잡고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하셨습니다.
“53. 너는 이미 죽은 우리 조상 아브라함보다 크냐 또 선지자들도 죽었거늘 너는 너를 누구라 하느냐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55.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되 나는 아노니 만일 내가 알지 못한다 하면 나도 너희 같이 거짓말쟁이가 되리라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
예수님을 믿으면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고 하자 유대인들은 한 가지 질문을 하였습니다. 아브라함도 선지자도 죽었는데 네가 죽지 않는다고 하면 아브라함이나 선지자보다 더 크냐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아브라함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아브라함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시는 분은 바로 그들이 믿는 하나님 아버지라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친밀하게 아는 사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사랑의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킵니다. 하나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생명이 예수님께로 흘러 들어왔습니다. 예수님도 평생 죽음의 위협 속에 사셨습니다. 실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죽음을 전혀 맛보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서론에서 말한 것처럼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두고 두려움이나 슬픔에 시달리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음을 앞두고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셨습니다. 내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사망 권세가 예수님을 삼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의 권세에 지배당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때 하나님의 말씀을 잡으셨습습니다. 시편 22편, 이사야 53장, 시편 16편 말씀을 잡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고자 하셨습니다. 그 길은 너무 힘든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마음에 슬픔과 두려움을 물리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잡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 번이나 기도하셨습니다. 눈에는 눈물을 흘리며 이마에는 피와 땀을 흘리며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적어도 세 시간을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력을 공급받았습니다. 기도 후에는 슬픔과 두려움이 물러가고 담대함이 생기고 기쁨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전에 제자들에게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 후에 이미 승리하신 확신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맛을 물리치고 생명의 맛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도 그 생명을 나누어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이름은 너희에게 평안을 주고자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지켜서 생명을 공급받는 것은 핸드폰 충전과 비슷합니다. 핸드폰은 그 자체로 생명이 없습니다. 핸드폰 스스로는 에너지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핸드폰이라도 충전을 받지 않으면 쓸모가 없습니다.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충전기를 통해서 전기를 공급받으면 마음껏 살 수 있습니다. 비록 보급형 핸드폰이라도 충전시키면 그 기능을 다 활용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적으로 아무리 능력이 있고 지혜가 있어도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고 결국은 버림 받아 죽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지혜나 능력이 부족해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생명력을 공급받으면 생명력 있는 삶을 살다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충전을 받는 길은 핸드폰을 충전기를 꼽는 것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잡고 순종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잡고 기도하며 순종하였듯이 우리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피땀나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죽음의 맛을 생명의 맛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3) 예수님은 시공을 초월하여 오차원의 세계에 계십니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니”
이제 예수님은 아브라함보다 크냐는 질문에 이제는 직접적으로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예수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고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까지 순종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씨가 대적의 문을 얻고 아브라힘을 씨를 통해서 천하만민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아브라함의 씨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이 태어나기를 갈망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것을 바라보며 즐거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대적 사탄을 이기고 승리할 것을 바라보았습니다. 아브라함의 씨를 통하여 천하만민이 복을 받기를 갈망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예수님 보기를 갈망했다고 하자 유대인들이 다시 예수님에게 물어봅니다. 예수님이 오십도 안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고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예수님은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태초에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기 전에 말씀으로 계셨습니다. 시공을 초월한 세계는 오차원의 세계입니다.
선을 일차원이라고 하고 면을 이차원이라고 하고 공간을 삼차원이라고 하고 시간을 더하면 사차원이라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에 의해서 4차원의 세계가 증명되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빛보다 더 빨리 갈 수 있다면 우리는 과거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빨리 갈수록 시간은 느리게 흐릅니다. 오차원의 하나님 세계는 시간과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입니다. 현재 삼차원의 세계에 사는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기도 하고 보이기도 하는 신비로운 영적인 세계입니다. 사차원으로 오차원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오차원 세계에서 보여주면 그 맛을 볼 수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늘에 오를 때는 눈에 보이다가 더 올라가자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차원의 세계 이론은 과학적으로 오차원의 블렉홀에 의해서 증명이 되었습니다. 이 세계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적용되지 않은 세계입니다. 그 세계는 진실, 아름다움, 사랑, 행복, 그리고 깊은 이해의 지식의 보물을 드러내는 세계입니다. 그 세계가 영생의 세계이고 우리도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바로 그런 5차원의 세계에서 오는 영원히 영생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4) 유대인과 예수님, 누가 죽음을 맛보는 자인가?
“59. 그들이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숨어 성전에서 나가시니라”
이제 유대인은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든지 아니면 예수님을 거절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면 영생하는 길이고 예수님을 거절하면 영벌의 길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쳐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죽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맛보지 않으셨습니다.
죽음을 맛본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면서도 두려움과 슬픔에 시달렸습니다. 시기심과 미움에 시달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이 두려움과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죽은 후에도 열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때가 이르지 않아서 숨어서 나갔습니다. 숨어 나가서 죽음을 맛보는 자들에게 생명의 가루약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결론)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길
결론적으로 요절 51을 읽어보겠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두려움이나 슬픔이 몰려올 수 있습니다. 육신을 가진 우리에게 그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예수님도 잠시 죽음을 맛보았는데 하물며 우리야 어떻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죽음의 맛을 물리치고 영생을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맛을 이기도록 엘리사의 가루약과 같은 약을 보내주셨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요 예수님 말씀이십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면 우리는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고자 투쟁하면 어둠이 물러갑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예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면 죽음과 우리는 멀어집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시공을 초월한 5차원의 세계로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영생을 얻고 죽음을 맛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죽음이 엄습해오지만 우리는 남새벽 목동이 전한 말씀처럼 말씀을 잡고 꾸역꾸역 순종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죽음의 권세가 우리 주위를 물러갑니다. 두려움과 슬픔이 물러가고 평안과 기쁨이 옵니다. 시기와 질투가 물러가고 사랑의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는 사망권세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영생을 맛보며 살다가 다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8장 강해 6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영생을 맛보며 사는 길
말씀 요한복음 8장 51-59
요절 요한복음 8장 51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요한복음 8장 강해 6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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