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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주일말씀

8월 다섯째주 메시지 목자와 양의 관계

작성자 : 천안UBF
작성일 : 2025-08-29 15:00:33
조회수 : 99

8월 다섯째주 메시지 목자와 양의 관계

요한복음 10장 강해 일부 목자와 양의 관계

말씀 요한복음 101-6

요절 요한복음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오늘 말씀은 예수님과 인간의 관계를 목자와 양의 관계에 비유하여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인생들의 목자가 되셔서 하신 일이 나오고 예수님의 양인 우리 인간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말씀하십니다. 이를 통하여 예수님과 양들과 관계가 맺힙니다. 생명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오늘 메시지 제목을 목자와 양의 관계로 정했습니다.

요절 4절을 보겠습니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목자는 하나님이 정하신 문으로 들어갑니다. 양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내고 앞서 갑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갑니다. 목자는 양들을 하나님 나라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목자되신 예수님을 잘 따라가서 모두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 목자는 문으로 우리에 들어갑니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양은 양의 우리에 있습니다. 양의 우리는 3미터 정도의 담이 쳐져 있고 문이 나 있습니다. 문에는 문지기가 문을 지키고 있습니다. 목자는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갑니다. 문지기는 목자를 알아보고 목자를 위해서 문을 열어줍니다. 그러나 문지기는 절도나 강도를 위해서 문을 열어주지는 않습니다. 절도나 강도는 문지기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므로 문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다른 데로 넘어서 우리에 들어갑니다. 담을 넘어서 가든지 개구멍을 통해서 들어갑니다. 목자는 양들을 돌보기 위해서 우리에 들어가고 절도와 강도는 양의 우리에 들어와서 양을 훔쳐다 팔아먹기 위해서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양의 우리는 지상에서는 교회이고 죽은 후에는 천국입니다. 양들은 교회와 천국에 있습니다. 교회나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 목자는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문을 통해서 교회나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은 문지기 천사를 통하여 목자를 영접하고 환영합니다. 그러나 강도나 절도는 문으로 들어오게 하지 못합니다. 절도나 강도는 하나님이 만든 문이 아닌 다른 곳으로 교회에 와서 양들을 흠쳐갑니다.

성막에 보면 성막에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문지기가 지키고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만 성막에 들어가게 합니다. 성소에 들어가는 문도 있고 여기는 문지기가 제사장만 들어가게 합니다. 지성소에 들어가는 문도 있고 문지기는 대제사장만 들어가게 합니다. 다른 사람이 들어가면 문지기가 그를 죽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문에는 그룹천사가 불 칼을 가지고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룹천사를 통하여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참목자만 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하고 또한 참 목자를 따르는 사람들도 들어갈 수 있게 해줍니다.

그러면 천국 들어가는 문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713,14절에 보면 예수님은 천국 문을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천국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협착한 문입니다. 그 문은 십자가의 문입니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은 에덴의 문에 그룹천사를 두어 두루도는 불칼로 지키게 하였습니다. 목자가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죄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흠없고 죄없으신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피를 흘려서 사람들의 죄 값을 치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죄값을 치르시므로 하나님이 막아놓은 문을 열고 정당한 방법으로 인간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룹천사들은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신 예수님을 위하여 천국 문을 활짝 열어주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성소와 지성소의 휘장이 찢어져 천국가는 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를 믿으면 그 십자가의 문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만 십자가의 문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우리도 십자가의 문으로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우리도 십자가를 져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악된 본성이 있습니다. 교만과 불신과 탐심이 있습니다. 거짓과 이기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좁은 문보다 넓은 문으로 들어갑니다. 넓은 문은 절도와 강도가 들어가는 문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죄악된 본성을 따라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이 본성을 따라서 살면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도 자신의 본성을 따라서 마음대로 살라고 합니다. 그러면 행복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길은 넓고 편한 길 같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지 못합니다. 그 길은 죽음으로 가는 길이고 지옥으로 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본성을 따라서 넓은 문으로 들어가지 말고 말씀과 성령을 따라서 십자가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생명을 얻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목자는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합니다.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목자는 양의 우리에 들어가서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합니다. 각각 불러 인도한다는 말은 한 마리씩 인격적으로 인도한다는 것입니다. 목자는 양의 이름을 지어주고 양의 이름을 압니다. 점있는 양은 점박이, 눈이 큰 양은 왕눈이, 맘착한 양은 온순이, 싸움 잘하는 양은 투쟁이, 소망이 가득한 양은 소망이, 기쁨이 충만한 양은 조이라고 이름을 지어줍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이므로 우리의 특성을 아십니다. 우리의 단점과 문제와 장점과 은사를 아십니다. 안다는 말은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요한복음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돕는 예수님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가 찾아왔을 때 그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알고자 찾아온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니고데모를 대신하여 저주 받으신 예수님을 믿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음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를 만났을 때 그가 다섯 남편이 있었던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도 다른 한 남자와 동거하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가 목이 마른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가 성령을 받으면 목마름이 해결되고 방황이 그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녀가 죄사함 받고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할 때 성령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가 병이 오랜 것을 아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심으로 낫고자 하는 소원을 심셨습니다. 그가 의존심이 있는 것을 아시고 오직 말씀만으로 일어나 걸어가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는 낫고자 하는 소원을 갖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자립하여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가 어둠 속에 있음을 아셨습니다. 그녀가 죄책감으로 시달리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사망권세가 지배하고 있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죄를 사하시고 그녀에게 성령의 빛을 따라서 살면 거룩하게 살 수 있음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깊은 운명주의에 사로잡혀 있음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섭리의 빛을 가르쳐주시고 섭리를 따라서 일하면 운명을 극복할 수 있음을 말씀하여주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아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자신을 아시는 하나님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시편 1391-4절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다윗은 사울에게 포위 되어서 죽을 고비를 많이 넘겼습니다. 블레셋에 피난 갔을 때 가족들을 아멜렉 사람에게 포로로 빼앗겼습니다.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를 뻔한 적도 있습니다. 때로는 죄를 지어서 가정과 나라에 큰 풍파가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명예심으로 인구 조사를 하여 이스라엘 전역에 전염병이 돌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때도 다윗을 아시고 정확하고 안전하게 인도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장은 잘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서 과거를 돌아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가장 안전한 길로, 가장 정확한 길로 인도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아시고 인도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3) 목자는 양들 앞서 갑니다.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보통 돼지나 소는 뒤에서 채찍으로 몰아갑니다. 그러나 양은 목자가 앞에서 인도합니다. 목자가 앞에서 가면 양들이 목자를 신뢰하고 따라옵니다. 목자와 양은 깊은 신뢰 관계로 맺혀져 있습니다. 목자는 양들에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본을 보입니다. 앞서 가면서 위험을 제거하십니다. 사자와 이리를 만나면 그들과 싸우면서 안전하게 인도하십니다. 그들을 가장 좋은 길로 안전한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삶의 본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우리에게 십자가의 길을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발을 닦아주시고 서로 발을 닦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로서 먼저 섬겨주시고 크고자 하면 다른 사람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하며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많은 지도자들이 권위적으로 명령하고 지시하면서 자신은 행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자신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자녀에게 공부하라고 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가르친 어느 학부모는 아들이 고3일 때 천안에서 자녀가 있는 공주까지 매일 저녁에 갔습니다. 자녀가 잘 때까지 자신도 책을 읽다가 자고 아침에 천안으로 와서 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 아들이 고 3일 때 일년 내내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 분의 두 아들을 서울대 경제 경영학과에 보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배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 부모와 목자들도 자녀와 양들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본이 된다고 하면 많이 부담이 됩니다. 우리는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본이 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배우고자 투쟁하는 본이 되면 됩니다. 우리는 부족하여 넘어질 때가 있습니다. 넘어질 때는 어떻게 넘어지는지를 보여주면 됩니다. 넘어졌다가 일어날 때는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면 됩니다.

야곱이나 다윗은 그런 면에서 본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이기적이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심히 두렵고 답답할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이기심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중심이 되었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얻기만을 하던 자가 어떻게 복의 근원으로 나누어 주는 자가 되었는지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죽을 때는 자식들을 축복하며 어떻게 죽어야 하는지 본을 보였습니다.

다윗도 고난을 많이 받고 죄도 지었습니다. 장인과 아들에게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의 때 하나님께 나가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 죄를 지었을 때 어떻게 회개하고 일어나는지를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부족하더라도 자녀와 양들에게 부모로서 목자로서 좋은 삶의 본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4)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따라갑니다.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양은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 양은 여러모로 부족합니다. 뿔도 없습니다. 발톱도 없습니다. 지독한 근시입니다. 앞발이 짧습니다. 넘어지면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양은 혼자 살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나 양의 위대한 장점이 있습니다. 양은 청력이 아주 발달해 있습니다. 목자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목자가 다른 옷을 입고 와서 이름을 불러도 목자를 따라갑니다. 타인이 목자의 옷을 입고 목자의 목소리를 개인기로 흉내내어도 따라가지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불신과 교만으로 예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양이라면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음성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예수님의 사랑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여러 경로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먼저 자연 만물을 볼 때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여 자연 만물을 다 주신 것을 알게 됩니다. 사람들을 통해서도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때로는 나를 공격하는 사람을 통해서 인생 채찍과 사람 막대기로 사용하여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의 소원을 통해서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가장 확실한 것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말씀이 나의 마음에 임할 때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의 인생을 인도하십니다. 말씀에 은혜를 받고 말씀을 따라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입니다.

 

결론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이고 우리는 예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의 요절 4절을 보십시오.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예수님은 우리의 목자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문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우리 각자를 아시고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 앞서 가시며 사탄을 제거하시고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예수님의 음성을 따라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성령님의 소원을 따라서 살가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좁은 십자가의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여주실 것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목자와 양의 관계입니다. 목자와 양은 사랑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섬김과 순종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목자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따라서 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목자로서 양들과 사랑의 관계를 맺고 양들도 목자들과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맺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0장 강해 일부 목자와 양의 관계

말씀 요한복음 101-6

요절 요한복음 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요한복음 10장 강해 일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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