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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주일말씀

25. 9월 첫째주 메시지 누가 선한 목자일까?

작성자 : 천안UBF
작성일 : 2025-09-05 04:06:09
조회수 : 86

25. 9월 첫째주 메시지 누가 선한 목자일까?

요한복음 10장 강해 이부 누가 선한 목자일까?

말씀 요한복음 107-15

요절 요한복음 10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전에는 지방 관리를 목사라고 불렀습니다. 예를 들어 천안 목사 진주 목사라고 불렀습니다. 목사 목자는 지도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어떤 사람인가 소개합니다. 선한 목자는 절도와 강도와 다른 목자입니다. 선한 목자는 도둑과 삯꾼과 다른 목자입니다. 선한 목자는 어떤 사람일까요? 절도, 강도, 도둑, 삯꾼과 다른 선한 목자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오늘 말씀의 제목을 누가 선한 목자일까?’ 라고 정하였습니다.

오늘 요절 말씀은 11절 말씀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예수님은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소개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사랑합니다. 양들이 선한 목자의 삶의 목적입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서 시간과 물질을 희생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버립니다. 선한 목자의 희생을 통해서 양들은 생명을 얻고 풍성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도 선한 목자 예수님을 배워서 풍성한 삶을 누리고 양들로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1) 선한 목자는 양의 문이신 예수님께 인도하는 자입니다.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이 말씀은 목자가 양들을 데리고 밖에 나가서 임시 우리를 만들어 잘 때를 배경으로 합니다. 너무 멀리 가서 날이 저물어 집에 돌아갈 수 없을 때 임시 우리를 만듭니다. 임시 양의 우리에는 울타리는 있지만 문이 없습니다. 목자가 문에 서서 저녁에 양들을 들여보내고 밤에는 문에 누워서 잡니다. 목자는 양들의 문이 됩니다. 목자는 문에서 우리에 들어가는 양들을 살피며 아픈 양은 치료하여줍니다. 저녁에는 양들은 목자를 통하여 우리로 들어가서 절도와 강도로부터 보호받고 구원을 받고 쉼을 얻습니다. 아침에 양들은 목자를 통하여 우리 밖으로 나와서는 꼴을 얻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십니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은 예수님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천국으로 가는 문이 사람들의 죄로 인하여 막혔습니다. 하나님은 그룹천사가 두루도는 불칼을 가지고 그 문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나라로 가는 문을 여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로 가는 유일한 문이 되십니다. 예수님 외에 천국 가는 문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서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죽음도 슬픔도 고통도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에 나가서 꼴을 얻을 수 있습니다. 꼴은 양들의 먹이가 되는 풀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목자 되신 예수님을 따라가면 예수님은 우리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면 말씀의 꼴을 풍성하게 주시고 성령의 물을 마시게 하십니다. 우리가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건널지라도 예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고 우리를 보호해주십니다. 우리는 목자 되신 예수님 한 분으로 인하여 부족함이 없습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의 잔이 넘칩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는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하십니다. 절도와 강도의 공통점은 양들의 재산과 생명을 탈취하는 자입니다. 절도와 강도의 차이를 살펴보면 절도는 거짓말로 몰래 양들을 훔쳐가고, 강도는 폭력으로 양들을 빼앗아 갑니다. 절도와 강도는 처음에는 양들에게 천사와 같은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양들을 위하는 것처럼 달콤한 말로 다가옵니다. 먹을 것도 줍니다. 그러나 그것은 속임수에 불과합니다. 양들에게 거짓말하여 양들의 생명을 훔쳐가다 팔아 먹습니다. 나중에는 강도가 되어 폭력으로 양들의 생명을 죽여 잡아 먹습니다. 우리가 목자인지 절도와 강도인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절도와 강도는 예수님보다 먼저 온 자라고 하십니다. 예수님보다 먼저 왔다는 것은 양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인도하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 외에 세상의 학문이나 물질이나 성공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 교주나 교회 지도자에게로 인도하는 자도 있습니다. 다른 종교로 인도하는 자가 있습니다. 이들은 금목걸이를 주고 금거북이를 주어 출세하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양들이 원하는 것을 주는 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절도와 강도는 양들을 구원하는 자가 아니요, 양들을 파멸시키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절도와 강도를 따라가면 우리는 잠시 좋을지 모르나 반드시 우리의 전 재산을 탕진하고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금목걸리 금두꺼비를 따라가면 우리 인생을 망칩니다. 우리는 이런 절도나 강도를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우리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문이 되시는 예수님에게로 인도하는 목자를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목자가 선한 목자입니다. 김준곤 목사는 백문일답으로 유명합니다. 모든 질문에 답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앞에 세 가지를 예를 들면 우리 생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우리 삶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우리가 여기 왜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뒤에 두 가지를 예를 들면 우리가 목소리를 높여 외쳐 찬양해야 할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이 시간에 바로 이 시간에 찬양해야 될 그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김준곤목사는 양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선한 목자입니다.

 

(2) 선한 목자는 양들로 생명을 풍성히 얻게 합니다.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절도와 강도와 대조하여 말씀하신 후에 이제는 도둑과 예수님을 대조하여 말씀하십니다. 도둑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자입니다. 절도와 비슷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양들의 재산을 훔치고 생명을 훔쳐 갑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반역하여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하는 자이고 이단들입니다. 압살롬은 아버지 다윗을 반역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습니다. 다윗왕에게 불신을 심고 자신을 신뢰하게 하였습니다. 이단 신( )지는 교회에 침투하여 간과 쓸개를 빼줄 듯이 잘 합니다. 그러다가 천국가는 생명을 훔쳐갑니다. 그들은 추수꾼이라고 하지만 생명을 훔치는 도둑놈들입니다. 이단은 우리의 재산을 빼앗고 우리의 생명을 지옥으로 인도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우리에게 와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하는 것처럼 속삭이지만 나중에 우리의 재산과 생명을 도둑질해 갑니다. 참으로 무서운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도둑과 달리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죄사함을 받고 성령의 새 생명을 얻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새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예수님의 생명은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하십니다. 사랑도 풍성하게 하고 기쁨도 풍성하고 행복도 풍성하게 합니다. 물질도 풍성하게 하고 건강도 풍성하게 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일곱 집사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였습니다. 일곱 집사 중에 하나인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였습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은혜와 권능과 지혜가 충만해집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우리는 감사도 풍성하고 기쁨도 풍성합니다. 섬김도 풍성하고 건강도 풍성하고 물질도 풍성해집니다. 때로는 병들고 가난할 때도 있지만 마음만큼은 풍성해집니다. 기쁨도 감사도 풍성해집니다. 스데반은 죽는 순간에도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였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아브라함과 롯의 손님 대접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살찐 소를 잡고 고운 가루로 떡을 하여 풍성하게 손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롯은 누룩 없이 만든 무교병으로 손님을 인색하게 섬깁니다. 그 차이가 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목자로 모시고 성령님이 충만히 거하여 사랑이 풍성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을 적당히 믿으니 성령이 소멸되어 이기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려면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성령 충만했는데 롯은 왜 성령을 소멸했을까요? 아브라함이나 롯은 둘 다 말씀에 순종하여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절대 신앙으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너는 복이 되리라는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붙잡고 살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절대신앙으로 완전하게 살고자 투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까지 절대 순종하였습니다. 그러나 롯은 하나님과 물질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며 살았습니다. 세상의 물질을 따르며 하나님을 적당히 섬겼습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은 후에 거부가 되었습니다. 롯은 전쟁과 하나님의 심판으로 전재산과 아내를 잃고 굴 숙에서 딸들과 살아갔습니다. 우리가 풍성한 삶을 살려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고 절대신앙으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고집스럽게 순종하며 세상과 타협하지 말아야 우리는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아멘

 

(3)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서 목숨까지 버립니다.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그가 삯꾼인 까닭에 양을 돌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예수님은 절도 강도, 도둑과 자신을 대조하신 후에 이번에는 삯꾼과 자신을 대조하여 말씀하십니다. 선한 목자와 삯꾼은 평상시에는 차이가 없습니다. 둘 다 양들을 돌봅니다. 때로는 삯꾼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돌보므로 양들을 더 열심히 돌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이 오면 선한 목자와 삯꾼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이리가 양을 잡아 먹으러 올 때가 있습니다. 이리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절도와 강도와 도둑과 달리 우리 인간을 파멸시킵니다. 여러 박해를 통해서 우리를 죽이고자 합니다. 이리가 오면 삯꾼은 양들을 버리고 달아납니다. 삯꾼은 자신은 이익을 위해서 목자가 된 사람입니다. 그들은 이리와 싸우다 보면 자신이 손해를 보고 생명도 잃을 수 있습니다. 삯꾼은 자신이 손해보는 일을 하지 않고자 양을 버리고 도망갑니다. 삯꾼이 양들을 버리고 달아나면 이리가 양들을 물어가고 헤칩니다. 삯꾼은 양들이 이리에게 물려 죽어도 마음 아파하지 않습니다. 슬퍼하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양들을 사랑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얻는 도구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는 다릅니다. 이리가 오면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려서 싸웁니다. 목자는 이리와 싸우다가 목숨을 잃기도 합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양을 살려냅니다. 양의 고통이 목자의 고통이고 양의 기쁨이 목자의 기쁨입니다. 목자가 이렇게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목자는 자신의 생명보다 양들을 더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선한 목자입니다. 예수님은 양들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목숨을 바칩니다. 사탄이 인간의 죄로 인하여 인간을 죽이고자 공격합니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죄없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피 흘려죽는 길 외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고 양들을 살리든지 아니면 자신이 살고 양들을 죽이든지 양자택일에서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고 양들을 살리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여 자식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듯이 예수님도 양들을 사랑하므로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립니다.

예수님이 양들을 사랑하는 것은 아버지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과 같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아시고 예수님도 하나님을 아십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은 사랑으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와 같이 예수님 안에 우리가 있고 우리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생명으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우리를 위해서 기꺼이 목숨까지 버리십니다.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이 대신 죽으십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우리는 살아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목자 예수님을 만나서 생명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 양들은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양들을 먹이라고 목자로 세우셨습니다. 우리도 양들을 사랑하고 양들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양들이 나의 이익의 수단이 아니라 양들이 나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양들을 존중히 여기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양들과 생명으로 연결되어 같이 기뻐하고 슬퍼해야 합니다. 위기에 순간에 양들을 대신하여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목자들 중에도 선한 목자와 삯꾼 목자가 있습니다. 선한 목자도 삯꾼처럼 삯을 받습니다. 그런데 무엇이 다를까요? 이해관계를 따라서 움직이면 삯꾼 목자입니다. 대체로 목사들이 월급을 더 많이 주면 양들을 버리고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곳으로 간다고 합니다. 이것은 삯꾼입니다. 청량리 중앙교회를 담임했던 임택진 목사는 어느날 큰 교회에서 청빙을 받았습니다. 임목사님이 고민하였습니다. 그러자 장로님이 와서 월급을 더 올려줄 테니까 가지 말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임목자는 아주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소시장의 소가 아닙니다. 소시장의 소는 돈을 많이 주는 곳으로 팔려가지만 나는 돈을 많이 주는 곳으로 가지 않습니다. 다만 소명을 따라서 움직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그대로 남아서 끝까지 목회를 마쳤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선한 목자는 이익을 따라서 이동하지 않습니다. 손해가 된다고 거절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해관계가 아니라 어느 것이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결론 선한 목자가 됩시다

 

다시한 번 요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선한 목자 예수님은 선한 목자를 절도 강도, 도둑, 삯꾼과 대조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선한 목자는 절도 강도와 다릅니다. 절도 강도는 우리를 지옥으로 인도하지만 선한 목자는 양들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하고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자신이나 물질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선한 목자는 도둑과 다릅니다. 도둑은 우리의 생명을 도둑질하고 파괴하지만 선한 목자는 우리에게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하게 얻게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가 생명을 얻고 풍성히 얻게 하십니다. 사랑이 풍성하고 은혜가 풍성하고 물질도 건강도 풍성하게 하십니다.

선한 목자는 삯꾼 목자와 다릅니다. 삯꾼은 삯을 위해서 양을 먹이지만 선한 목자는 삯이 목적이 아닙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사랑하여 양을 먹입니다. 삯꾼은 위험할 때 양을 버리고 도망가지만 선한 목자는 죄와 사탄에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목숨까지 버리십니다. 선한 목자가 목숨을 버림으로 양들이 살아납니다. 양들은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습니다.

우리가 선한 목자 예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따를 때 생명을 얻고 풍성하게 얻을 수 있습니다. 생명을 풍성하게 얻은 우리는 양들의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선한 목자는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선한 목자가 되고자 투쟁할 수는 있습니다. 양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합니다. 양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해야 합니다.

나에게는 여러 목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선한 목자 하면 두 분이 떠오릅니다. 그분은 나에게 창세기 말씀을 가르쳐주고 삶의 목적과 의미를 찾게 해주신 분입니다. 그분은 내가 많이 교만하고 이기적이어서 나를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한 번은 나의 발을 닦아주면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또한 분은 내가 어둔 내면을 가진 것을 알고 나를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고 내가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도록 도와주신 분이십니다. 나도 그들처럼 선한 목자가 되고자 하나 많이 부족합니다. 우리 모두 양들을 사랑하여 양들을 나의 목적으로 삼고 양들을 섬기며 양들의 발을 닦아주며 양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는 선한 목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0장 강해 이부 누가 선한 목자일까?

말씀 요한복음 107-15

요절 요한복음 1011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요한복음 10장 강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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