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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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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10월 둘째주 메시지 믿는 자에게 죽음은 잠보다 좋은 것이다.

작성자 : 천안UBF
작성일 : 2025-10-10 12:02:01
조회수 : 113

10월 둘째주 메시지 믿는 자에게 죽음은 잠보다 좋은 것이다.

요한복음 11장 강해 이부 믿는 자에게 죽음은 잠보다 좋은 것이다

요한복음 117-16

요절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사람들은 죽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라고 생각하고 그 후에 심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음을 어떻게 보실까요? 11절을 보겠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은 것을 잠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를 살리는 것을 깨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잠으로 보시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온하게 맞이하십니다. 우리는 달콤한 꿀잠을 잡니다. 꿀잠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지요?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보면 죽음은 잠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평온하게 맞이할 뿐 아니라 기뻐하십니다. 죽은 후에 더 좋은 몸으로, 더 좋은 세상에서 다시 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의 제목을 죽음은 잠보다 더 좋은 것이다.’ 라고 잡았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준비하다가 생각해 보니 죽음이 잠보다 좋은 것은 믿는 자에게만 한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 죽음은 심판으로 가는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 제목은 믿는 자에게 죽음은 잠보다 더 좋은 것이다라고 고쳤습니다.

(1) 낮에 다니면 죽을까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7 그 후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유대로 다시 가자 하시니 8 제자들이 말하되 랍비여 방금도 유대인들이 돌로 치려 하였는데 또 그리로 가시려 하나이까 9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10 밤에 다니면 빛이 그 사람 안에 없는 고로 실족하느니라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서 유대로 가자고 하시자 제자들은 유대로 가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방금도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신성모독한다고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하였는데 또 그리고 가려고 하느냐 묻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라고 하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면 자신들도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싶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유대로 가자고 하시자 제자들은 죽음의 두려움에 시달리며 예수님을 만류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고 반문하십니다.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봄으로 받을 헛디디어 넘어지지 않는다(실족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밤에 다니면 그 사람 안에 빛이 없으므로 넘어질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이 비유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 열두 시간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을 하루 중 낮에 비유하였습니다. 대체로 우리가 태어난 것은 아침이고 40대는 한낮이고 80대는 저녁인 것입니다. 나는 저녁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낮에 다니면 날이 밝아서 발을 헛디디어 넘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시간 안에는 죽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맡겨진 사명을 다 끝내지 않는 한 우리는 결코 죽지 않습니다.

내가 스마트폰이 있습니다. 이 스마트폰을 만든 목적이 있습니다. 전화하고 인터넷을 하고 사진을 찍고 네비를 합니다. 그런데 이 스마트폰이 그 기능을 하지 못하면 버립니다. 그리고 새로운 스마트폰을 구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 존재의미가 없어지면 우리는 쓸모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데려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리빙스톤은 사람이 사명이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하였습니다.

바울은 말레데 섬에서 독사가 물자 사람들은 바울이 다 죽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독사를 불에 떨쳐버리고 죽지 않았습니다. 요즘 사도행전 양식에 나오듯이 루스드라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돌로 쳐서 죽은 줄 알고 성밖에 내다 버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죽지 않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바울 일행은 로마로 가다가 유라굴라라는 큰 광풍을 만나 파선하는 배를 타고 14일을 헤매서 다 죽을 죽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죽지 않고 말레데 섬에 도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 번의 죽을 고비에서 바울을 살린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그가 가이사 앞에서 나를 증언할 것이기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전도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는 사명을 가졌습니다. 그는 로마를 통한 세계선교의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은 바울을 살리셨습니다. 또한 로마에서 옥중 서신을 써서 각 교회와 후대에 전할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살리셨습니다. 그는 로마 선교의 사명을 이루고 옥중서신을 쓴 후에 그는 순교하여 죽었습니다. 우리가 죽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한 시간 곧 12시간이 지나야 죽습니다. 우리의 사명이 있는 시간이 12시간입니다. 우리는 12시간 동안에는 결코 죽지 않으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 세상의 빛이 우리 안에 있으면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빛은 예수님이십니다.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인는 죄와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내가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새생명의 빛을 주십니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은 운명주의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섭리의 빛을 가르쳐주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공포의 두려움에 있는 자에게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음은 우리의 마음에 두려움과 절망과 슬픔의 어둠을 줍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부활과 생명의 빛이 되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빛이 그 사람 안에 있는 자요, 빛 가운데 사는 자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않습니다. 죽음의 요소인 두려움이나 슬픔이 있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빛으로 넉넉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죽어도 사니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만 아직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빛 되신 예수님이 마음에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마음에 생명의 빛이 없어서 사망권세에 시달리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 두려워하였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생기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사탄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날 때 생기는 것이 두려움입니다. 사탄은 두려움을 심어서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가고자 합니다. 두려움이 생기면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두려워하는 자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가장 먼저 들어갑니다.(계시록 21:8)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에 두려움이 임하면 두려움을 믿음으로 싸워서 물리쳐야 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물 위를 걷다가 바람과 물결을 보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책망하시며 믿음을 심으시고 베드로를 물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야이로는 딸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였습니다. 야이로가 지속적인 믿음을 가졌을 때 예수님은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세상의 빛이신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심기 원하십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들이 두려움을 극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사랑과 능력과 절제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죽음도 평온하게 맞이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2) 죽음은 잠보다 좋은 것입니다.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2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우리의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잠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잠든 나사로를 깨우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제자들은 나사로가 잠들었으면 깰 것이니 유대에 갈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들은 나사로의 죽음을 잠으로 비유하신 예수님 말씀을 이해 못하고 나사로가 진짜 잠자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어찌하든지 유대 땅에 가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다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잠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을 잠자는 것을 깨우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나사로가 잠들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서 두 가지를 배웁니다.

첫째, 죽음은 잠과 같다는 것입니다. 잠은 우리에게 휴식을 주고 재충전을 하여 다시 활동하게 합니다. 사람은 먹는 것보다 잠을 더 중시합니다. 배가 고파도 먼저 잠을 자고자 합니다. 사람이 잠을 자지 못하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크고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우리에게 잠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잠자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요즘은 잠이 안 와서 많은 사람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잠을 잘 못 잡니다. 수면제나 수면 유도제를 먹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숙면을 취하기를 원합니다. 잠을 통하여 안식을 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잠은 하나님이 믿는 자에게 주시는 최고의 축복입니다.

죽음은 잠과 같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을 통하여 수고를 쉬고 평안한 하나님 나라의 안식에 들어갑니다. 잠이 믿는 자에게 축복이듯이 죽음도 믿는 자에게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잠자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놓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죽음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잠자듯이 평안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둘째, 죽음은 잠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우리는 잠자면 잠들 때 그 모습 그대로 일어납니다. 그 장소, 그 환경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고 살아날 때는 더 좋은 몸으로 살아납니다. 썩지않고 강하고 영광스러운 몸으로 살아나게 됩니다. 더 좋은 장소에서 살아납니다. 더위도 추위도 없는 지진도 화산도 없는 곳에서 살아납니다. 대기나 수질이나 토질의 오염도 없는 깨끗한 곳에서 살아납니다.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는 새하늘과 새땅에서 자유로운 몸으로 살아납니다.

예수님은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에 가심으로 더 나은 곳에서 더 나은 몸으로 부활하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새하늘과 새땅인 하나님 나라에 가심으로 우리도 부활하면 예수님처럼 새로운 몸으로 새 하늘과 새땅에서 살 것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평온하게 맞이할 뿐 아니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의 죽음을 기뻐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3) 부활 신앙을 심을 수 있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15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 16 디두모라고도 하는 도마가 다른 제자들에게 말하되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하니라

 

예수님은 나사로와 함께 있지 않은 것을 기뻐하십니다. 함께 있었다면 나사로의 병을 고치셨을 것입니다. 함께 있지 않아서 나사로는 죽었고 이틀을 머물러서 나사로는 죽고 썩어서 냄새가 났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완전히 죽어서 부활의 믿음을 심을 수 있어서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심으로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줄 수 있습니다. 부활의 예수님을 믿으면 제자들은 죽음을 잠자듯이 맞이할 수 있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안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과 우리에게 부활신앙을 심을 수 있어서 나사로가 죽은 것을 기뻐하십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실제 스데판이 죽을 때 잔다고 하였습니다. 스데판은 하나님 우편에 서신 예수님을 보고 자신을 죽음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그는 죽은 후에 예수님이 계신 새하늘과 새땅에서 예수님과 같이 강하고 영광스럽고 썩지 않는 모습으로 살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나사로뿐 아니라 마리아 마르다도 죽어야 합니다. 장례식 장에 온 모든 유대인들이 죽어야 합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죽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는 죽음을 평온하게 맞이할 수 있고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결론) 믿는 자에게 죽음은 잠보다 좋은 것입니다.

 

11절을 다시 보십시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예수님이 나사로를 깨우러 가지는 말씀을 듣고 도마는 예수님과 함께 죽으러 가자고 하였습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였지만 의리는 있었습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의리를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도마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을 볼 때 그는 부활의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 죽음은 두려운 것이 맞습니다. 그 후에는 심판이 있고 지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에게 죽음은 절대 두려운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무엇이라고 하였죠?

첫째, 죽음은 잠처럼 안식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잠자듯이 평온하게 맞이할 수 있습니다. 도마는 부활의 예수님을 믿었다면 예수님과 함께 안식하러 가자고 말했어야 합니다.

둘째, 죽음은 잠보다 더 좋은 것입니다. 더 좋은 몸으로 더 좋은 장소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기뻐할 수 있습니다. 도마는 부활의 예수님을 믿었다면 예수님과 함께 새하늘과 새땅에서 새로 태어나러 가자고 했어야 합니다.

우리가 부활신앙을 가질 때 우리에게 죽음은 영원한 안식입니다. 번데기가 나비가 되듯이 우리는 새로운 몸으로 새로운 땅에서 자유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다 평온하게 맞이하고 더 나아가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부활을 믿는 자는 죽을 때만 평안하고 기쁜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사는 우리도 평안을 누리며 단잠을 자고 기쁘게 살 수 있습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지금 여기서 평안과 기쁨을 누리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평안을 누리고 기쁘게 살다 다 부활하여 새로운 몸으로 새하늘과 새땅에 들어가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1장 강해 이부 믿는 자에게 죽음은 잠보다 좋은 것이다

요한복음 117-16

요절 1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요한복음 11장 강해 이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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