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10월넷째주 메시지 냄새가 나도 믿음으로 돌을 옮기자
11월 셋째주 메시지 냄새가 나도 믿음으로 돌을 옮기자
요한복음 11장 강해 4부 냄새가 나도 믿음으로 돌을 옮기자
말씀 요한복음 11장 28-40
요절 요한복음 11장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우리가 부활신앙이 있다면 부활하신 예수님에 기초하여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합니다. 이제는 믿음으로 행동을 해야합니다. 마르다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고 슬픔과 원망을 극복하였습니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에 와서 마르다에게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요절 39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마르다가 믿음으로 돌을 옮겨 놓으면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기를 원하셨습니다.
마르다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고도 무덤의 돌을 옮겨 놓는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시체가 없을 때는 믿음이 있었지만 시체썩는 냄새가 나자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책망하시고 다시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마르다가 냄새가 나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순종하여 돌을 옮기자 예수님은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돌을 옮기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고 살리는 것은 예수님이 할 입니다. 우리는 비록 냄새가 나도 믿음으로 돌을 옮겨야 부활의 예수님이 일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제목을 ‘냄새가 나도 믿음으로 돌을 옮기자’로 잡았습니다.
(1) 나사로 죽음 앞에서 우는 사람들
“28 이 말을 하고 돌아가서 가만히 그 자매 마리아를 불러 말하되 선생님이 오셔서 너를 부르신다 하니 29 마리아가 이 말을 듣고 급히 일어나 예수께 나아가매 30 예수는 아직 마을로 들어오지 아니하시고 마르다가 맞이했던 곳에 그대로 계시더라31 마리아와 함께 집에 있어 위로하던 유대인들은 그가 급히 일어나 나가는 것을 보고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로 생각하고 따라가더니 32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마르다는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집에 가서 마리아를 불러 예수님이 부르시니 가보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도 예수님을 통해서 부활의 믿음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마리아는 급히 일어나 동구 밖 예수님께로 나갔습니다. 조문왔던 유대인들이 곡하러 무덤에 가는 줄 생각하고 함께 마리아와 함께 곡을 하기 위해서 마리아를 따라갔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보고 마르다처럼 울며 하소연하였습니다. ‘주님이 여기 계셨다면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 앞에서 슬피 울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원망과 섭섭함, 오빠 나사로를 이 세상에서 다시 볼 수 없다는 것에 슬피 울었습니다. 동네 사람도 마리아를 따라서 함께 울었습니다. 그들은 무덤에 가서 죽은 나사로 앞에 울어야 하는데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앞에 울었습니다.
이를 볼 때 죽음이 얼마나 우리 인간을 지독하게 붙잡고 괴롭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하지 못하였습니다. 날아가는 새를 떨어뜨린다는 권세자도, 절세미인도, 세계 제일의 부자도 다 죽었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죽음은 특히 우리에게 슬픔을 줍니다. 젊은 사람이 죽었을 때는 더 슬픕니다. 갑자기 질병이나 사고로 죽으면 너무 슬픕니다. 죽음은 많은 사람을 울게 합니다. 아무도 우리의 이 슬픔을 위로해줄 수 없습니다.
키사 고타미라는 사람이 외아들을 잃었습니다. 키사는 말라깽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사람을 살릴 약을 구하다가 석가모니를 찾아와 죽은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석가모니는 아들을 살려주겠다고 합니다. 다만 지금껏 한 번도 죽음이 찾아오지 않은 집에서 겨자씨를 얻어와야 살려준다고 합니다. 키사 고타미는 한 번도 죽지 않은 집을 찾아 온 마을을 헤맸지만, 결국은 단 한 집도 죽음이 찾아오지 않은 집은 한 집도 없었습니다. 그는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죽음이 모두에게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받아들이고 위로를 받았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석가모니는 아무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여서 카사고타미를 위로하였습니다.
세상의 위로는 석가모니의 위로와 같습니다. ‘나만 죽는 것이 아니다 다 죽는다 그러니 그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까운 사람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사람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은 함께 울어주는 것입니다. 마르다 집의 조문객들처럼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울어주는 것뿐입니다. 물론 예수님도 슬퍼하는 마리아와 함께 울어 주었지만 예수님은 그들과 달리 근본적으로 위로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죽음에서 오는 우리의 슬픔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슬퍼하는 마리아와 유대인들을 어떻게 도와주셨습니까?
(2) 분노하시며 불쌍히 여기신 예수님
“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36 이에 유대인들이 말하되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하며
37 그 중 어떤 이는 말하되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이 사람이 그 사람은 죽지 않게 할 수 없었더냐 하더라 38 이에 예수께서 다시 속으로 비통히 여기시며 무덤에 가시니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님은 마리아의 우는 것과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무덤으로 가시며 마리아와 유대인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우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 없어서 우는 줄로 생각하였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였지만 나사로는 살리지 못해서 무능해서 우는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비통히여기며 무덤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는 마리아와 유대인들을 보시고 두 가지 마음을 가지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분노하셨습니다. 비통히 여겼다는 말은 개역성경에 통분히 여겼다는 말로 나옵니다. 통분을 뒤집으면 분통이라는 말이죠. 원어를 찾아보니 헬라어 '엠브리마오마이(ἐμβριμάομαι)
'분노와 격노‘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말은 '말이 콧김을 씩씩거리며 내뿜는 것'을 가리키는 단어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깊은 분노나 격렬한 감정을 의미합니다. ‘분노하다. 격분하다 심하게 흥분하다 으르렁거리다’의 뜻으로 쓰입니다. 예수님은 우는 마리아와 유대인들을 보시고 엄청 분노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에 대해서 이렇게 분노하셨을까요?
먼저는 사탄에 대해서입니다. 사탄은 죄와 사망권세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공격합니다. 사람들을 괴롭히다가 죽여 지옥에 보내서 영원히 고통하게 하고자 합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은 이런 사탄에 대해서 분노하십니다. 나중에는 사탄을 결박하여 불못에 집어넣습니다.
다음에는 사람들의 불신에 대해서 분노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불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연약함에 대해서 이해하시지만 불신에 대해서는 책망하시고 분노하십니다.
예수님이 세 명의 제자들과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입니다. 산 밑에 남은 9명의 제자가 귀신들린 어린아이의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내려 오셔서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으리요?” 분노하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가 할 수 있거든 도와달라고 하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느리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눈물을 흘리며 불신을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회개하는 것을 받으시고 아이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마리아와 유대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진짜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은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는 것이죠? 예수님은 마리아와 유대인들과 함께 슬퍼하며 우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떻게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여 우실 수 있을까요?
예수님도 사실은 나사로와 같이 죽음의 고통을 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님도 육체의 고통에서 오는 슬픔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십자가 죽음의 슬픔을 아시는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을 아시고 위로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슬픔과 고독을 공감만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실제적으로 해결해주십니다.
(3) 돌을 옮겨놓으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무덤에 오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왔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와 마르다에게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돌을 옮길 수도 있습니다. 나사로가 돌을 옮기고 나올 수도 있습니다. 나사로가 돌을 굴리며 나오면 더 극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을까요? 예수님에게 믿음을 보여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믿음을 보여줄 때 나사로를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자 마르다는 벌써 시체가 썩어서 냄새가 나므로 돌을 옮길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않았느냐 책망하시고 다시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돌은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덤을 막은 돌은 일톤 정도의 심히 큰 돌로서 청년 두세 명이 옮길 수 있는 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정말 믿음이 있다면 이 무거운 돌을 옮겨야 합니다. 절망의 돌, 슬픔의 돌, 두려움의 돌, 부정적인 생각의 돌을 옮기고 행동해야 합니다. 혼자 안되면 여럿이서 옮겨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돌을 옮길 때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십니다. 돌을 옮기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고 살리는 것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믿음으로 돌을 옮기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말씀은 지금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기 위해서 돌을 옮겨놓으라고 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임이사야 선교사님의 평생 요절이 되는 말씀입니다. 그는 예수님 믿기 전에 성적이 시들시들하여 c와 d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과 차석을 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목자 교수의 꿈을 가졌습니다. 그는 교수가 되기까지 네 번의 돌을 옮겼습니다.
첫째, 한국에서 공부해도 대학에 들어갈 토플점수가 나오지 안았을 때 믿음으로 미국으로 가서 영어를 공부하였습니다. 먼저 요단강에 발을 디딘 이스라엘 사람을 본받아 미국으로 나갔습니다. 미국에서 토플점수를 따서 미국 대학원에 다시 입학하였습니다.
둘째,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과정에 원서를 냈는데 다 떨어졌습니다. 이제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올려고 컴퓨터실에서 타짜 영화를 보고 있었습니다. 이때는 아내인 드림 선교사님이 돌을 옮겼습니다. 믿음으로 내 남편이 좋은 사람이니 뽑아들라고 교수에게 어필하려고 이사야 선교사 메일에 들어갔습니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것이 바로 돌을 옮기는 것이었습니다. 놀랍게 이사야 선교사는 세이트루이스에 있는 워싱턴 대학에서 추가합격자로 메일이 와 있었고 그날이 마지막 등록일이었습니다. 드림 선교사는 학교를 다 찾아다녀 이사야 선교사를 찾아서 등록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체험하고 드림 선교사는 다시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목자 교수에 대한 의심을 버렸다고 하였습니다.
셋째는 기말과제를 짜깁기를 해서 낸 것입니다. 이것은 미국에서는 학교에서 짤릴 수 있는 큰 잘못입니다. 실제 짤려서 미국에서 돌아온 선교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부탁하고 본인도 기도하고 부총장에게 무릎꿇고 빌었을 때 용서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서 부총장과 관계를 맺고 지금도 연락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넷째는 포닥을 하고 교수 임용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대부분 오년 포닥을 하면 임용되는데 십년을 포닥하면서 임용되지 않았습니다. 면접을 많이 보았으나 계속 떨어졌습니다. 말을 느리게 하고 말을 잘못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선교사는 십 년을 포닥하면서 계속 교수로 트라이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이스턴 일로노이즈 대학교가 되게 하였습니다. 물론 태뉴어가 되기 위해서 앞으로도 옮겨야 하는 돌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계속 돌을 옮길 때 하나님이 앞으로도 은혜를 주실 줄을 믿습니다.
결론 지금도 돌을 옮기면 예수님은 일하신다.
오늘의 요절 39절을 다시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예수님은 시체에서 냄새가 나는 것을 알면서도 돌을 옮기라고 하십니다. 냄새가 나는 것이 믿음을 빼앗아갑니다. 마르다는 믿음이 있다가 시체 썩는 냄새가 나자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시체 썩는 냄새는 야주 역겹습니다. 나는 시체 썩는 냄새는 맡지 못했지만 고기가 썩는 냄새를 맡았습니다. 학원 밑의 정육점이 전기세를 안 내서 전기를 끊자 냉동실에 있는 고기가 썩었는데 이층까지 나서 아주 역겨운 냄새가 났습니다. 사람들은 그 냄새가 시체씩는 냄새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런 냄새를 맡으면 믿음이 사라집니다. 마르다는 냄새가 나도 돌을 옮겨야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눈에 보이는 것도 믿음을 빼앗아 갑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물위를 걸었습니다. 그가 물위를 걷는데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자 베드로는 그것을 보고 믿음이 사라져 물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적은 자여 어찌하여 의심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다시 말씀을 잡고 믿음을 가졌을 때 예수님은 베드로의 손을 잡아 물에서 건지셨습니다. 우리는 눈에 부정적인 것이 보여도 말씀을 잡고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귀로 들리는 사람들의 말이 믿음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야이로는 예수님이 딸을 살리실 것을 믿고 갔습니다. 그러나 딸이 죽었으니 예수님이 오셔도 소용없다는 사람들의 말을 듣고 믿음이 없어졌습니다.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예수님은 ‘두려워말고 믿기만 하라’고 하셨습니다. 야이로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믿음을 가졌을 때 예수님은 죽은 야이로의 딸을 살렸습니다.
우리 가운데 시험을 위해서, 아기를 위해서, 병치료를 위해서 돌을 옮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여러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냄새가 나는 것으로 믿음을 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에는 아무 증거 보이지 않고 귀에는 아무 소리 들리지 않아도 돌을 옮겨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용감하게 말씀을 믿고 지금도 돌을 옮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부활의 능력을 보여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요한복음 11장 강해 4부 냄새가 나도 믿음으로 돌을 옮기자
말씀 요한복음 11장 28-40
요절 요한복음 11장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요한복음 11장 강해 사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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