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6월넷째주 메시지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요한복음 17장 강해 오부 교회가 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요한복음 17장 24-26
요절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사람들은 예정론을 결정론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정론은 모든 것이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예정론은 하나님이 우리의 인격을 존중하며 인도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결정한 것이 아니라 예정해놓았습니다. 특히 하나님은 로마서에 보면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 예정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아신 자들을 정하시고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게 한 자들을 영화롭게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지만 우리도 영화롭게 되기 위해서 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17장 처음 기도에서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17장의 마지막 기도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교회를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미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편에서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1) 예수님과 항상 함께 있어야 합니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은 이전에 자신이 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하신 영광을 보여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창세 전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창조주였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으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영광을 다시 보여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주셨고, 예수님을 부활 승천하게 하사 다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여 시공의 제한을 받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고 썩지 않는 신령한 몸을 입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지금 승천하여 새하늘과 새땅에서 하나님과 함께 참 자유를 누리시고 그리스도로서 영광을 누리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신만 영광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주신 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그 영광을 보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사랑하셔서 주신 그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교회도 보기를 원합니다. 지금 이땅에서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에게 믿음으로 무덤에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마르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사로를 살리십니다. 뿐만아니라 미래에 다시 새로운 몸으로 살리사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성도들이 어떻게 지금 여기서 예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을까요? 미래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나와 함께 있어’ 그 영광을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그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랑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결혼하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 함께 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육신의 모습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별명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도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실 때 지성소와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시작에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 예수님을 소개하시고 끝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는데 문제는 우리가 예수님이 함께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첫째,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해야 합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은 더러운 죄가 있으면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을 받아 깨끗해져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와 영원토록 함께 하십니다. 죄사함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한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 예수님이 함께 하시려면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우리가 지속적으로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탕자의 비유에 보면 아버지는 아들과 영원히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하였습니다. 아무리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있고 싶어도 아들이 아버지를 떠나면 아버지는 아들과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버지와 함께 하려면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여려분은 하나님을 사랑하시나요? 물론 사랑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 생활을 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 스마트폰을 더 사랑합니다. 스마트폰은 놓고 오면 큰 일나는 줄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옆에 계시지 않는데 아무 문제 의식이 없을 수 있습니다. 말씀보다 스마트폰에 더 눈이 갑니다. 스마트폰은 매일 매시간 충전하면서 성령이 소멸되어 성령님의 충전 양이 바닥이 났는데 모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스마트폰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한 정도를 항상 확인해야 합니다. 그와 같이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 충만함을 받을 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사 영화롭게 하십니다.
셋째. 예수님이 우리와 영광 중에 함께 하려면 우리가 고난 중에도 예수님과 함께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을 가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고 부활을 통하여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꽃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시밭길이 더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다가 고난 앞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하지 못합니다. 이들이 회개하고 변화되어 예수님의 고난에도 함께 하는 자들이 될 때 예수님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영광에 함께 하기를 원한다면 고난 중에도 예수님과 함께 해야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좋은 일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이 올 때도 있습니다. 고난이 올 때도 예수님을 떠나지 말고 함께 해야 합니다.
창세기에 에녹이 하나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에녹의 시대는 죄로 가득한 시대였습니다. 라멕의 시대 이후의 시대로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죽이고 자랑하였습니다. 에녹은 비록 고난이 있어도 세상이나 자신의 육신의 소원을 따르지 않고 말씀과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서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에녹과 함께 하여주시고 에녹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나라로 옮기셔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노아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의 사상이 악하고 그 문화가 악했습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노아만이 오리 속에 있는 백조와 같이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노아는 그 시대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고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말씀대로 비가 내리기 전에 방주에 들어가고 말씀하셨을 때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함께 하시고 노아를 영화롭게 하셔서 홍수에서 구원하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의 미래를 반드시 영화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시면 그 영광을 지금 이 세상에서도 보게 하십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에서 예수 믿는 우리를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히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영광을 지금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초막이나 궁궐이나, 높은 산이나 거친 들이나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습니다.
야곱은 의롭게 살고자 하였습니다. 장자의 명분을 사고 믿음의 결혼을 하고자 하였습니다. 에서는 이런 야곱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부모를 떠나 돌베게를 베고 잤습니다. 잠자리도 열악하였고 미래도 막막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그와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가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알았을 때 그곳을 벧엘이라고 하였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 하나님 나라라는 말입니다. 야곱은 돌베베를 베고 잔 그 거친 들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 후에 하나님보다 아내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느라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그가 에서가 자신을 죽이고자 할 때 비로소 거듭나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잠시 연약한 점이 있었지만 벧엘 서원을 갚으심으로 그는 항상 주님과 함께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함께 하는 야곱을 이 땅에서 영화롭게 하였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2)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야 합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여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사옵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 알았사옵나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의로우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아버지입니다. 예수님은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었습니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 있는 인간을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도 의롭고 예수 믿는 사람들도 의롭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들이 사랑의 관계성을 맺혔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의를 이루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의롭다 함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의로운 삶을 살지 않습니다. 의로우신 아버지는 그들과 함께 하실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세상 사람과 달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보내신 줄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로 알았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자신의 공로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은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십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습니다. 이것을 이신칭의라고 하여 기독교의 핵심 교리입니다. 하나님은 의롭게 된 우리를 영화롭게 하여주십니다.
우리가 의롭게 되었으면 우리도 이제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완전히 의롭게 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고 의롭게 살려고 애쓰는 우리를 하나님은 의롭다고 인정해주십니다. 이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과연 여자가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음욕을 품어도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여자가 거룩하게 살고자 투쟁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회개하고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사는 그녀를 의롭다고 인정해 주시고 영화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살려면 하나님의 법을 지켜야 합니다. 세상의 법도 지키고 교회의 법도 지켜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부부 간에도 지켜야 할 선이 있습니다. 목자들 간에도 선이 있습니다. 이 선은 도로의 중앙선과 같은 것입니다. 이 선을 넘으면 사고가 나고 위험해집니다. 이 선을 넘지 않는 것이 공의롭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롭게 사는 것은 죄악된 본성으로 불가능합니다. 우리 힘으로 하나님의 법을 지키다 보면 자기 의에 빠져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기 쉽습니다. 자신의 불의에 빠져 눕기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법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법을 지키고자 성령의 도우심으로 의롭게 살고자 애를 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의롭게 할고자 애쓰는 우리를 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3) 계속해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26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알게 하였고 또 알게 하리니 이는 나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나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니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였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알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의 끝이 아니라 신앙의 시작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자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더 알게 하십니다. 계속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고 더 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서 의를 이루신 사랑의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이 공의와 사랑이 만나는 곳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매일 십자가를 통하여 의로우시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알고 알아가야 합니다. 호세아는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임하심은 새벽 빛과 같이 어김이 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비와 같이 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구가 태양을 돌고 매일 자전하듯이 정확하게 일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말씀을 따라서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공의를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죄로 인하여 심판하시지만 자신의 아들을 죽이시면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하지만 믿지 않으면 우리를 지옥 불에 넣으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이 공의롭고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알아가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세상의 공의와 다릅니다. 세상의 공의는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고 판단하고 정죄함으로 이루어지는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내가 십자가를 짐으로 이루어지는 공의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허물과 연약함을 감당함으로 공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연약함을 감당하며 희생합니다. 목자는 양들의 영약함을 감당하고 예수님을 믿고 헌신하도록 돕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야 구원역사가 일어납니다.
예배당 뒤편에 탁구대가 있었습니다. 옆집 권성자씨께서 시끄럽다고 하여 치웠습니다. 우리의 희생을 통해서 공의를 이룬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 옆집이 복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뒤편을 정리하고 그곳에 파라솔을 놓고자 하였습니다. 그것도 애들이 놀고 우리가 이야기하면 시끄럽다고 치워달라고 하였습니다. 그것도 치워서 앞으로 옮겼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희생을 통해서 공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그때 이웃 집에 복음이 전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을 알게 하였고 알게 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공의를 알았지만 죽을 때까지 계속하여 공의의 하나님을 배워가야 합니다. 나의 십자가를 지면서 공의를 이루어 가야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공의의 하나님을 알아갈 때 예수님은 두 가지 복을 주십니다.
첫째, 예수님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공의를 실천하는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사랑을 주십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예수님처럼 대하여주십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사랑을 주셔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도우십니다.
둘째,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예수님이 항상 우리 안에 살아계십니다. 내 마음의 중심에 있는 의자에 예수님이 앉으십니다.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 되어 주십니다. 우리는 이제 나는 죽고 예수님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 살아갑니다. 영생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공의를 이루신 하나님을 알아가는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를 원합니다. 아멘
(결론)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영화롭게 됩니다.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도 이미 영광스럽게 되었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럽게 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럽게 하여주십니다. 죽은 후에도 영광스럽게 하시지만 이 세상에서도 그 영광을 맛보게 하십니다. 로마서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스럽게 예정하셨다고 하십니다. 예정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며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영광스럽게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는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죄사함을 받고 성령님을 받고 예수님을 사랑하며 고난에도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예수님을 예수님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고 의롭게 살기 위해서 힘을 써야 합니다.
셋째는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기에 힘써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내가 십자가를 지면서 다른 사람을 의롭게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죄와 허물을 감당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를 예수님처럼 사랑하여 주십니다. 그 사람 안에 사랑을 주셔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도와 주십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을 알아갈 때 예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맹자에 군자 유어의요 소인 유어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군자는 의에게 민감하고 소인은 이익에 민감하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나에게 유익이 되느냐 손해가 되느냐를 따집니다. 유익이 되면 하고 손해가 되면 하지 않습니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돈을 주든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덥석 받습니다. 그 돈이 어떤 돈인지 어떤 목적으로 주는지 샆피지 않습니다. 그러다 돈의 덫에 걸립니다. 그러나 군자는 의로움에 민감합니다. 어떤 이익을 주어도 의가 아니면 하지 않고 어떤 손해가 되어도 의라면 따라서 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고 선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 선을 지킵니다. 물론 이렇게 살면 우리는 손해를 봅니다. 그러나 잠시 손해 보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에서 보면 이익입니다. 무엇보다 의를 따라서 사는 자들에게 영광스럽게 하시고 영생을 주십니다. 우리는 이미 영생을 얻고 앞으로 영광스럽게 예정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공의로운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하나님 나라에서 맛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죽은 후 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맛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요한복음 17장 강해 오부 교회가 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요한복음 17장 24-26
요절 24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요한복음 17장 강해 오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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