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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스바냐 3장 강해 이스라엘을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10-25 00:00:00
조회수 : 4,365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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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바냐 3장 강해 이스라엘을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스바냐 31-20

요절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3장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역사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패역한 예루살렘)

 

“1.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2.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망하고야 말 도성, 반역하는 도성, 더러운 도성, 억압이나 일삼는 예루살렘도성에게 말씀하십니다. 성읍이 구체적으로 어디를 의미하는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으나, 본절 이후에 선지자, 제사장, 성소등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예루살렘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선지자 스바냐는 예루살렘의 죄악에 대해 세 가지 수식어를 붙여 고발하고 있다.

첫째로 패역하고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반역하여 순종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2).

둘째로, ‘더러운입니다. 그들은 이교도들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이 의식적으로 불결했습니다.(4). 예루살렘은 외부적으로 깨끗한 것처럼 보였으나 실제적으로 매우 부패하였으며 부정하였습니다.

셋째로 포학한입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들 간에 포학하였습니다. 그들은 타인의 권리와 위치를 무시하고 광포하게 대하였습니다(3). 예루살렘 거민들은 가난한 자들이나 과부들 혹은 고아들의 권리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였습니다.

그들은 불순종하고 우상 숭배하고 이웃을 고통스럽게 하는 세 가지 죄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도덕적 신앙적 인간적으로 더러워졌습니다. 주께 순종하지도 않고, 주의 충고도 듣지 않고, 주를 의지하지도 않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지도 않습니다. 예루살렘의 대표적인 죄악은 패역입니다. 그들은 삶속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교훈을 듣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소유한 재물을 의지하였습니다(1:11). 또한 그들은 인생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기를 거절하였으며 자신들의 생각과 방법대로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의지하고 강대국을 의지하였습니다.

 

(지도자들의 타락)

 

“3.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의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4. 그의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 그의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

 

예루살렘 안에 있는 대신들은 으르렁거리는 사자들입니다. 방백들은 모든 일을 정의와 공평으로 행해야 할 예루살렘의 지도자들로, 귀족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지도자로서 백성들을 잘 인도하기보다는 먹이를 찾아 부르짖는 사자처럼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습니다. 재판관들은 이튿날 아침까지 남기지 않고 먹어 치우는 저녁 이리 떼입니다.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이라는 표현은 재판장들이 갖고 있던 탐욕과 약탈성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배를 곯은 짐승이 먹이를 남겨두지 않고 한꺼번에 먹어치우는 것처럼 불의한 재물을 축적하기 위해서 재판을 굽게 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피포식자를 찢어 남김없이 착취하였습니다. 그들은 탐욕스럽게 잔인하게 약탈하였습니다.

예언자들은 거만하며 경솔하여 믿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경솔하고는 악하고 방탕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되었습니다(9:4). 또한 간사한은 신실하지 못하고 거짓으로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들이며 오직 하나님께 충성을 다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스바냐 당시 예루살렘 선지자들은 간사하여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하였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대변하지 않고 오직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인간의 마음을 충족시키는 거짓 예언을 일삼았습니다.

제사장들은 성소나 더럽히며 율법을 범하는 자들입니다. 성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데쉬는 성소를 의미하기보다는 거룩한 것을 가리킵니다. 제사장들은 제사 의식을 행함에 있어서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별하여 드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분별하게 성물을 바침으로 하나님을 모독하였습니다. 또한 그들은 율법을 준수해야 하는 직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나 행동, 곧 생활전반을 통해서 율법에 어긋나는 일들을 거침없이 행하였습니다.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들이 거짓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른 말보다 듣기 좋은 말만합니다. 제사장은 우상숭배로 성소를 더럽힙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심판하십니다.

 

(변함없이 공의를 행하시는 여호와)

 

“5. 그 가운데에 계시는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빠짐없이 자기의 공의를 비추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그러나 그 안에 계신 주께서는 공평하시어, 부당한 일 하지 않으십니다. 아침마다 바른 판결을 내려 주십니다. 아침마다 해가 어김없이 뜨듯이 정확하게 어김없이 공의를 나타내십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예외없이 불의를 행한 반면 여호와는 공의를 행하십니다. 아침마다 공의를 나타내시거늘은 예루살렘의 재판장들이 먹이를 이튿날 아침까지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과 대조를 이룹니다(3).

더욱이 아침마다는 아침이 되면 해가 어김없이 돋아 빛을 비추는 것처럼(6:3) 하나님께서는 변개함 없이 지속적으로 공의를 행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도 악한 자는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는 앞서 언급된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3,4). 하나님께서는 아침마다 계속적으로 공의를 드러내시나 예루살렘거민들은 완고하여서 자신들의 죄악과 수치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백성을 심판하심)

 

“6. 내가 여러 나라를 끊어 버렸으므로 그들의 망대가 파괴되었고 내가 그들의 거리를 비게 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들의 모든 성읍이 황폐하며 사람이 없으며 거주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여호와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뭇 나라를 칼로 베었습니다. 성 모퉁이의 망대들을 부수고,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자를 없애어, 거리를 텅 비게 하였습니다. 스바냐는 열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졌음을 예시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러나 열국이 구체적으로 어느 나라를 가리키는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만 자신의 힘과 경제력을 믿고 교만해진 모든 열국들은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전혀 없을 정도로 황폐해졌음이 드러날 뿐입니다.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여서 사람도 없게 하고, 거기에 살 자도 없게 하였습니다.

 

(사랑을 믿고 변화되어야함)

 

“7.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들의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

 

여호와가 예루살렘에게 일렀습니다. 예루살렘만은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여호와가 가르치는 대로 하라고 하였습니다. 스바냐는 하나님께서 열국을 심판하신 일을 예시하신(6) 목적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갑자기 열국을 심판하신 일을 설명하시는 것은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죄로 인해 심판을 당한 열국을 보고 반성하여 돌아오도록 권고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심판당한 열국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돌아서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만약 예루살렘이 돌아선다면 이미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신 것을 돌이키셔서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을 분명하게 선포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그 자체가 목적을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로 돌아서도록 하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들이 회개하면 지난 날의 잘못을 묻지 않습니다. 지금 돌아오면 용서하십니다. 지금 돌아오면 과거의 더러운 것을 묻지 않습니다. 오늘의 회개를 통하여 과거를 용서하십니다. 과거의 의가 있어도 지금 죄를 지으면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러면 여호와가 벌하기로 작정하였다가도 그들이 살 곳을 없애지는 않겠다고 하였는데도 예루살렘 사람들은 새벽같이 일어나서 못된 일만 골라 가면서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고를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심판을 작정하신 것조차 변경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은 완고하여서 그 경고를 무시하고 더욱더 악을 행하기를 즐겨하였습니다.

우리는 과거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과거의 죄나 빚이 있으면 계속 우리를 괴롭힙니다. 신앙은 오늘 회개하고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께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셨으니 나도 나를 용서해야합니다. 여기에 복음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 교훈을 받아들이면 과거를 묻지 않습니다.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였으나 복을 주십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부지런히 옛날의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입니다. 들을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듣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감동이 있어야 말씀이 들립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번만 들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객관적 계시와 주관적 계시가 있습니다. 구원이 있다고 해도 듣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원하심)

 

“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노와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여러 나라를 소집하며 왕국들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경건한 자들에게 여호와를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여호와 주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가 증인으로 나설 날까지 기다리라고 하십니다. 스바냐는 예루살렘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악을 즐겨 행하는 예루살렘의 부패와 죄악 때문에 일어난 결과임을 언급합니다.

한편 나를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는 너희는은 열국을 가리키는 듯 보이나 그럴 경우 앞절과의 문맥상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너희는은 예루살렘의 경건한 날은 자들이나 예루살렘 자신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권고를 무시하고 악을 행하는 예루살렘에게 심판하실 것을 선언하십니다. 여호와가 민족들을 불러 모으고, 나라들을 모아서, 불같이 타오르는 여호와의 이 분노를 예루살렘에 회개치 않는 자들에게 쏟아 놓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타 없어질 것입니다.

'내가 뜻을 정하고'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음을 시사합니다. 그 심판은 열국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한편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심판을 뜻합니다(1:1-3). 심판의 목적은 하나님 자신이 죄를 얼마나 싫어하시며 죄에 대하여 분노하시는가를 온 땅이 알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온 땅이 심판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깨끗게 하심)

 

“9. 그 때에 내가 여러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한 가지로 나를 섬기게 하리니 10.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강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바칠지라

 

개역 성경에는 히브리어 키가 번역되어 있지 않습니다. 혹자는 키를 원인으로 해석하여 왜냐하면으로 이해하나, 본절의 키는 반의 접속사로 보아 그러나로 해석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앞절에서는 심판을 예고하는 반면 본절은 회복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는 여호아가 뭇 백성의 입술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다 나 주의 이름을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여호와를 섬기게 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앞절에서 언급된 심판 이후의 때를 가리킵니다.

심판 이후에 벌어진 결과는 열방의 회개입니다. 열방의 입술은 하나님보다 우상을 찾으며 찬양하던 부정한 입술입니다(16:4).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서 그들의 부정한 입술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이런 입술의 정화는 마음의 정화를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그 결과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그들은 더 이상 아무런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우상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오직 만군의 여호와이신 하나님의 이름만을 부르게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을 일심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일심으로는 문자적으로 한 어깨를 가리킵니다. 이는 어깨를 맞대고 짐을 나르는 짐꾼의 행위에서 비롯된 것으로, 합심하여 하나님께 순종함을 뜻합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을 한 마음으로 섬기게 하십니다.

에티오피아 강 저 너머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들, 여호와가 흩어 보낸 사람들이, 여호와에게 예물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내게 구하는 백성들과 내가 흩은 자의 딸은 동격으로, 돌아오는 이방열국을 가리키기보다는 유대인 중의 남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내가 흩은 자의 딸은 이방열국을 지칭할 수 없으며 오직 유다를 지칭하는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방 국가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진실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유다입니다. 그들은 이방 국가에 흩어진 하나님의 백성들이며 진실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유다입니다. 이방 열국에 흩어진 유다가 여호와께 돌아와 예물을 드립니다. 유다의 남은 자들은 구스, 2:12에서 심판받을 것이라고 언급된 열국에서 돌아와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패역하고 더러운 죄를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씻지 못하자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입술을 깨끗게 하십니다. 전쟁을 통하여 지진을 통하여 핍박을 통하여 정화시킵니다. 하나님이 직접 정결케 합니다. 스스로 더러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어떤 분이 새벽 기도를 잘 나가지 못하였습니다. 중요한 병에 걸려서 수술하고 회복되었습니다. 그 후에 그 사람은 새벽기도 나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 사건이 꼼짝 못하고 나오게 하십니다. 중한 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깨끗게 하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끊지 못하고 버리지 못하고 미루던 것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찬송을 온전케 하고 입술을 깨끗게 하십니다. 일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십니다. 일심으로 섬기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만드는 작품입니다.

 

(겸손하게 하시는 하나님)

 

“11.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네 가운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들을 제거하여 네가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라

 

그 날이 오면, 예루살렘은 여호와를 거역한 온갖 잘못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가 거만을 떨며 자랑을 일삼던 자를 이 도성에서 없애 버리십니다. 유다의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포로 생활을 하며 이방인들로부터 수치와 멸시를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하시는 날에는 결코 죄로 인해서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변화시키며 교만한 자들을 제하여 버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는 자신들을 높이며 즐거워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유다의 남은 자들 중에는 결코 교만한 자들이 없을 것이며 오직 겸손한 자들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유다백성을 겸손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건을 통하여 겸손하게 하십니다. 헛된 자랑을 제하십니다.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습니다.

모든 죄와 근심의 근원은 교만입니다. 다른 사람을 반갑게 대하지 못하고 고독한 것은 교만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고마운 사람입니다. 캄캄한 밤에 혼자 차를 몰고 가면 고독합니다. 저쪽에 불빛이 보이면 따라가서 같이 갑니다. 몇 대의 차가 모여 갑니다.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같이 갑니다. 이 세상은 혼자 못합니다. 혼자 고독한 것은 마음을 열지 못하고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 심판을 통하여 교만을 제하고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하십니다. 예루살렘이 다시는 여호와의 거룩한 산에서 거만을 떨지 않을 것입니다.

 

(겸손한 자를 구원하시는 하나님)

 

“12.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네 가운데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거짓된 혀가 없으며 먹고 누울지라도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그러나 여호와가 이 도성 안에 주의 이름을 의지하는 온순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남길 것입니다. 본 구절은 앞절과 대조를 이룹니다. 돌아온 남은 자들은 교만한 자들이 아니라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입니다. 이것은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자들이 누려야 할 팔 복중에서 첫 번째 마음이 겸손한 자와 동일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5:3).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의 구원 사상은 비단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에서도 많이 나타납니다(22:26 25:9 69:33 147:6 11:4 32:7 2:7). 그들은 마음이 가난하고 겸손한 자들입니다.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이 유다의 남은 자들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며 의지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기대하는 자들이었습니다(14:30). 이스라엘에 살아 남은 자는 나쁜 일을 하지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고, 간사한 혀로 입을 놀리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잘 먹고 편히 쉴 것이니, 아무도 그들을 위협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회복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의 상태를 나타냅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악행이나 죄를 범하는 말이나 궤휼한 혀가 있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평안과 안전을 보장받게 됩니다. 여기서 먹으며 누우니는 목축용어입니다. 하나님은 유다의 남은 자들의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보호하시며 공급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참평화와 안전을 주십니다 우리 인간의 의지가 이루는 것이 하나님이 당신의 능력으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낮추고 구원을 하십니다.

 

[구원받은 자의 기쁨]

 

“14.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예루살렘 도성 시온은 노래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즐거이 외치라고 하십니다. 도성 예루살렘은 마음껏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시온의 딸과 이스라엘, 그리고 예루살렘 딸은 모두 동격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는 승리의 확신에서 비롯된 찬양이며, 기쁨에서 비롯된 외침입니다. 그들은 승리의 확신가운데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세 가지 이유)

 

“15. 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본절은 14절에 언급된 찬양의 이유입니다. 그것은 모두 세 가지입니다.

첫째, 주께서 이스라엘에 대한 징벌을 그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에 대한 심판을 거두셨다는 사실은 이미 그들의 죄악이 모두 사하여졌음을 시사합니다. 남은 자들은 교만한 자들이 아니라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을 떠나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이며, 그 결과 남은 자들에게는 더 이상 심판이 없게 될 것입니다.

둘째, 시온의 원수를 쫓아내셨습니다. 너의 원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때 사용하신 도구들입니다. 이미 남은 자들은 범죄함과 형벌이 사라졌기 때문에 더 이상 심판의 도구인 원수들, 곧 교만한 이방 열국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셋째, 이스라엘의 왕 주께서 시온과 함께 계셔서 통치하십니다.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시온이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남은 자들은 이스라엘의 왕되신 하나님의 보좌 앞에 모이게 될 것이며, 하나님은 시온에 있는 그 보좌에서 왕노릇하실 것입니다. 여호와는 남은 자들의 왕으로서 보호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더 이상 악한 일이나 화나 재앙이나 두려워해야 할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이제 낙심할 필요가 없음)

 

“16. 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그 날이 오면, 사람들이 예루살렘에게 말할 것입니다. 시온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할 것입니다. 힘없이 팔을 늘어뜨리고 있지 말라고 하십니다. 네손을 늘어뜨린다라는 것은 절망이나 낙심하는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삼하 4:1 13:7 6:24 12:12). 남은 자들은 이제 절망하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이미 지나갔으며 여호와께서 자신들의 왕이 되셔서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 시온의 하나님이 시온과 함께 계십니다.

 

(유다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본 구절은 남은 자들이 손을 늘어뜨리지 말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승리하신 전능자요 구원자이십니다. 남은 자들이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는 구원자 되신 하나님께서 그들가운데 거하며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는 너를 보호하시는 전사와 같은(like warrior, to keep you safe, NEB), 혹은 승리하시는 전사(a warrior who givesn victory, RSV)입니다. 둘째는 승리한 전사(victorious warrior, JB). 혹은 전능한 구원자(mighty savior, NAB)입니다. 결국 남은 자들과 함께 거하시는 여호와는 승리하신 구원자이시며 전능하신 분이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을 사랑하여 보고서 기뻐하고 반기십니다. 잠잠히 사랑히심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KJV에서는 그가 자신의 사랑안에서 안식하실 것이다(he will rest in his love)라고 번역하였습니다. RSV에서는 그가 자신의 사랑 안에서 너를 새롭게 하실 것이다(he will renew you in his lov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는 사본에 따라 잠잠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하리쉬가 다른 것에서 기인한 것입니다. 맛소라 본문에서는 야하리쉬를 그대로 사용하여 KJV처럼 안식할 것이다라는 의미로 봅니나, 다른 사본에서는 RSV가 따르는 것처럼 하다쉬(새롭게 하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로 인해서 즐거워 하시며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안식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으로 새롭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예루살렘을 보고서 노래하며 기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여 기뻐하고 새롭게 하고 노래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뻐하는 이스라엘)

 

“18.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은 네게 속한 자라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치욕이 되었느니라

 

축제 때에 즐거워하듯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기뻐하실 것입니다. 대회는 초막절만을 가리키기보다는 예루살렘에 모여서 참예해야 했던 이스라엘의 모든 절기를 가리킵니다. 이방 열국에 흩어졌던 남은 자들은 절기가 되어도 사실상 그 축제에 참예할 수 없었기 때문에 늘 근심하며 안타까워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여 심판 도구인 이방 열국의 침략을 당하였으며 그것으로 인해 수치와 경멸을 당하였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이 당하게 된 그 경멸과 수치는 남은 자들에게 무거운 짐과 애통거리가 되었습니다. 여호와가 그에게서 이방 땅에서 받던 두려움과 슬픔을 없애고, 그들이 다시는 모욕을 받지 않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하나님)

 

“19. 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 때가 되면, 시온을 억누르는 자들을 여호와가 모두 벌하십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심판의 때, 곧 남은 자들을 구원하는 때입니다. 너를 괴롭게 하는 자는 15절의 원수와 동일한 표현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제까지 지속적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모든 이방 열국들을 심판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60:14). 없어진 이들을 찾아오고, 흩어진 이들을 불러 모으십니다. 흩어져서 사는 그 모든 땅에서, 명절을 지키지 못하여 부끄러움을 겪던 여호와의 백성이 명절을 지키며 칭송과 영예를 받게 하십니다.

구원을 얻은 남은 자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저는자, 쫓겨난 자, 그리고 수욕받는 자입니다. 이것은 12절의 곤고하고 가난한 자들의 또 다른 표현으로, 구원받아 남은 자들은 철저한 고난을 통해서 겸손하여진 자들임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당한 모든 고난들, 다시 말해서 저는 것, 쫓겨나는 것, 그리고 수욕을 당하는 것과 같은 처참한 상태에서 완전히 회복될 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칭찬과 명예, 그리고 영광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 때가 되면, 여호와가 예루살렘 거민을 모으십니다. 이끌고와 모을지라는 이방 열국에서 조국 이스라엘이 당한 치욕을 애통해 하며 절기 축제에 참예하지 못함으로 안타까워하던 자들이, 하나님의 이끄심과 모으심을 통해서 하나님의 성산으로 돌아오게 됨을 시사합니다.

그 때에 여호와가 그들을 고향으로 인도하십니다. 사로잡혀 갔던 이들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데려오고, 이 땅의 모든 민족 가운데서, 그들이 영예와 칭송을 받게 하십니다. 너희 자로잡힘을 돌이킬 때에는 2:7의 반복입니다. 이것은 남은 자들이 이방 열국의 포로 생활에서 돌이켜 하나님에게로 돌아오게 됨을 뜻합니다. 그 역사는 너희 목전에서, 곧 머지않은 미래에 유다 백성들이 보는 가운데서 성취될 것입니다. 또한 남은 자들이 돌아올 때는 포로 생활 동안에 당한 수욕과는 비교할 수 없는 칭찬과 명성과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 주가 말씀하셔서 반드시 이루실 것을 보증하여주십니다. 이것은 이제까지 언급된 남은 자들에 대한 회복의 약속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성취하실 것임을 보증하는 표현입니다. 남은 자들의 회복과 구원, 그리고 영광된 모습으로의 변화는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스바냐 3장 강해 이스라엘을 잠잠히 사랑하시는 하나님

스바냐 31-20

요절 스바냐 3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스바냐 3장 강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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