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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에스라 9장 강해 에스라의 회개 기도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11-26 00:00:00
조회수 : 3,362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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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9장 강해 에스라의 회개 기도

에스라 91-15

요절 에스라 9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는 이방인과 통혼한 이스라엘의 죄를 발견합니다. 에스라는 먼저 이스라엘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합니다. 그의 회개 기도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순수성을 지키고자 결단합니다. 그의 이런 기도를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고 민족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방인과 통혼한 지도자들의 범죄)

 

1,2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방백들이 내게 나아와 이르되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행하여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 하는지라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가져온 예물들을 성전의 제사장에게 바치고 제사를 드린(8:33-35) 후입니다. 에스라가 왕의 조서를 총독에게 보내어 큰 도움을 받은 후입니다.(8:36) 에스라를 위시한 귀환민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때가 5월이었고(7:9)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을 그 해 920일에 모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 시간적 공백이 에스라 도착 후 4개월을 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방백들이 스가랴에게 나아와 보고 하였습니다. 방백들이 어떤 신분인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이들이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그리고 일반 백성 등 각 계층을 대표 주관하던 지도자들일 것 같습니다. 이들은 에스라가 팔레스틴에 오기 전에 이미 이 같은 위치에 올라 있었습니다(10:14, 16).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가나안 땅 백성에게서 떠나지 아니하였다고 보고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구성했던 세 계층입니다. 그들은 세 계층을 말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이 각 계층에 보편적으로 퍼져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과 헷 사람들과 브리스 사람들과 여부스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모압 사람들과 애굽 사람들과 아모리 사람들과 가증한 통혼을 하였습니다. 가나안 원주민을 포함한 팔레스틴 및 인근 지역의 거주민들과도 통혼하였습니다.

그들이 이방인과 통혼하는 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기존의 것으로부터의 완전한 절교 및 단절을 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대상 23:13 10:28)

암몬, 모압, 애굽인들은 가나안 땅 이외의 인근 지역에서 살던 족속들입니다. 여기에는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었던 에돔 족속(36:9)도 당연히 포함될 것입니다.

가증한 일에 해당하는 말은 우상 숭배와 같이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만한 범죄 행위를 말합니다.(7:26 왕상 21:26 14:1 53:1) 그들은 이방인들과의 통혼하는 가증한 일을 하였습니다.(2).

2절의 주어는 레위 사람들입니다. 레위 사람들은 하나님께 온전히 드려진 사람들입니다. 레위 사람들이 가나안 사람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였습니다.

그들의 딸을 취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딸들을 이방인 남자에게 시집을 보내기도 했습니다.(12). 다만 여자가 이방인에게 시집가는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순수성을 깨뜨릴 염려가 없다는 점에서 크게 거론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같은 이방인과 통혼하는 일은 율법에서 엄격히 금지되고 있는 것들입니다(34:16 7:3). 거룩한 자손은 문자적으로 거룩한 씨를 말힙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에 의해서 선택되었으며(19:6), 이방인들에 대한 빛의 사명을 부여받은 거룩한 자들입니다.(42:6)

섞이게 한 것은 보증하다 혹은 혼합하다, 사귀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의 사역형입니다. 자신의 유익만을 좇아 사귀지 말아야 될 사악한 대상과 깊은 교제 관계를 유지하였습니다.(106:35 24:21). 그들은 불신자와 결혼하여 우상을 섬겼습니다.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방백들과 두목들(하사림)에는 앞에 그를 뜻하는 정관사가 있습니다. 이것은 방백 모두가 이방인과 통혼하는 죄 중에 있지 않았음을 시사해줍니다. 그 방백 중 일부는 다른 방백들의 범죄 사실을 에스라에게 고소하러 올 정도로 바르게 살았습니다(1).

두목은 관리를 뜻하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꽤 넓은 의미로서의 지도자를 뜻합니다. 우리는 이 단어가 방백 다음에 나온다는 점을 근거로 하여 방백보다 한 단계 아래의 지도자라고 단정할 수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이 두목을, 백성들에 의해서 선출되어 어떤 공회와 같은 것을 구성했던 직분자들로 봅니다. 여기서 위의 두 단어가 나란히 언급된 것은 지도층 인사들을 포함하여 백성들의 타락이 보편적이었음을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입니다.

이 죄는 은밀하게 가리우다, 죄를 범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에서 온 명사입니다.

 

(기가 막힌 에스라)

 

3,4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일 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내가 저녁 제사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더니

 

에스라가 이 말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았습니다. 이 말을 듣고는이 말을 듣고 있을 때에 혹은 듣고 있으면서(NIV)로 번역해도 됩니다. 에스라가 자신에게 고소하던 방백(1)의 말을 듣고 있는 도중에 이런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도자들의 타락이 에스라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으로 들렸습니다.

속옷과 겉옷을 찢어 에스라가 극도의 슬픔에 빠졌음을 보여줍니다.(37:29, 34 삼하 13:19 1:20). 지도자들을 필두로 해서 백성들이 이방인과의 통혼하여 이스라엘 공동체가 신앙적인 순수성을 상실하게 될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이것이 에스라에게 큰 슬픔을 주었습니다.

사실상 이러한 범죄가 에스라 도착 전에 이미 이뤄졌지만 에스라는 그들의 죄를 자신의 죄로 생각하고 슬퍼하였습니다.

머리털과 수염을 뜯는 것은 분노와 불쾌감을 표출하는 행동입니다(13:25 50:6). 에스라는 이런 모습을 하고 공개 석상에 나타나 백성들에게 자신의 분노와 슬픔을 전달하였습니다.

기가 막혀는 놀라다의 뜻을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어떤 충격적 사실로 인하여 넋을 잃는 듯한 심리적 상태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4:19 8:27).

그러자 이스라엘 하나님의 말씀으로 떠는 자가 사로 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에스라에게 모였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죄에 대해서 분노하고 슬퍼하였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언약이 맺어졌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하나님의 호칭입니다.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는 율법을 철저히 준수하고자 했던 자들을 지칭하는 말로 여러 차례 사용된 바 있습니다(10:3 66:2, 5). 이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백성들의 타락상을 에스라에게 보고하러 왔던 방백들을(1) 말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죄악에 빠져있는 사실(2)로 인하여 두려움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들이 이런 두려움을 갖고 있는 까닭은, 이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등 멸망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범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징계의 결과임(대하 36:12-16)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어떤 상서롭지 못한 돌발적 상황이 벌어진 즈음에, 그것으로 인한 좋지 못한 결과를 예상함으로써 두려움을 느끼는 것입니다.(7:3 삼상 4:13)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은 에스라의 심정적 반응에 동조하며, 그 대책을 논의하기 위하여 에스라에게 모여들었습니다.

에스랴는 저녁 제사를 드릴 때까지 기가 막혀 앉았습니다. 저녁 제사 드릴 때는 오후 3시의 기도하는 시간입니다(3:1). 저녁 제사에서 제사는 주로 피없는 제물을 가리킵니다. 저녁에 정례적으로 드려지던 소제였음이 분명합니다.

 

(에스라의 회개하는 자세)

 

5-6절을 보십시오.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꿇고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향하여 손을 들고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저녁 제사를 드릴 때에 스가랴가 근심 중에 일어나서 속옷과 겉옷을 찢은 채 무릎을 끓었습니다.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손을 들고 기도하였습니다.

근심은 자기를 낮추다, 자책하다 등의 뜻을 지닌 동사에서 파생된 말합니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 연대감을 느끼면서 깊이 고민하였습니다.(16:29, 31 119:107 53:7). 후기 유대교 문헌에서 이 말은 금식을 뜻하는 말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이 기간에도 에스라는 금식을 했을 것으로 보이나, 8:21이나 10:6에서와는 달리 여기서는 금식을 강조하지는 않습니다.

일어나서는 문자적 의미의 일어남보다는 어떤 결정적 행동을 하기에 앞서 이뤄지는 의지적 결단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1:5). 보통 이스라엘 사람이 서서 기도한 것과 비교한다면, 무릎을 꿇고 하는 기도의 자세는 자신의 겸손과 고통을 특별히 표시하는 것입니다.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은 기도할 때 흔히 하는 모습입니다(9:29 왕상8:22 1:15).

에스라는 자신의 하나님께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의 부끄러워는 (실패로 인하여 스스로) 부끄러워하다, 혹은 (신뢰의 대상에)실망하다, 당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의 파생형입니다.(42:17 22:22 10:6),

에스라는 백성들의 지도자로 세워졌으나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치 못했다는 자책감과 실망감이 있습니다. 범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에스라가 느끼는 신앙적 연대감 등을 보여줍니다.

뜨뜻하여는 부끄럽게 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의 수동형으로서, 앞의 부끄러워와 거의 동일한 의미입니다(35:4 45:16 31:19). 에스라는 이러한 동의어의 반복 사용을 통하여 자신의 심정을 강렬하게 표출하고 있습니다.

죄악이 많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이후의 금번 범죄(1,2)는 물론이고 포로로 끌려가기 전부터의 모든 범죄를 포함합니다(7). 그들의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치고 있습니다. 정수리에 넘치고 하늘에 미친다고 대구법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범죄의 심각성을 강조합니다.

특히 우리는 본절 전반 절에서 1인칭 단수로, 후반절에서는 1인칭 복수로 표현되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3-5절에서도 드러나듯이 에스라는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더 나아가서는 조상들의 죄악에까지 깊은 공범 의식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백성을 위해 중보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그들과 동일시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그럼으로써 타락한 무리들을 회개에로 인도하고자 했습니다.

 

(조상들의 죄를 회개함)

 

7-9절을 보십시오.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우리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의 죄가 심하매 우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우리와 우리 왕들과 우리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사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이스라엘은 조상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죄가 심하였습니다. 아브라함 시대 혹은 출애굽 직후(7:39)에서 에스라 당시까지의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가리킵니다.(9:6-35). 포로 전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가 포로 후의 백성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아 우리의 죄가 크다도 합니다.

18장에 나오는 포로민들의 불평처럼 이 말이 조상들에게 죄를 책임전가하는 말이 아닙니다. 20:5 등에 나오는 말씀처럼, 아비가 지은 죄를 똑같이 범하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이들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여호와의 율례를 좇고자 하고 있습니다.(18:5-9 참조).

그들의 죄악 때문에 이스라엘과 왕들과 제사장들을 여러 나라 왕들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남국 유다와 북국 이스라엘이 여러 차례에 걸쳐 주변 강대국에 의하여 침범을 당하여 왕이나 제사장이 죽임을 당하거나 치욕을 당하였습니다.

왕의 경우 므나헴은 앗수르 왕 불에 의해서(왕하 15:19), 베가는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서(왕하 15:29), 호세아는 앗수르 왕 살만에셀에 의해서(왕하 17:3, 6), 므낫세는 앗수르 왕 앗술바니팔에 의해서(대하 33:11), 요시야는 애굽 왕 느고에 의해서(왕하 23:29), 여호아하스도 느고에 의해서(왕하 23:33), 여호야김과 여호야긴 및 시드기야는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에 의해서(왕하 24:12 25:6, 7) 치욕을 당하거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제사장의 경우도 이런 일들이 허다했습니다(왕하 25:18 52:24). 그들이 칼에 죽으며 사로잡히며 노략을 당하며 얼굴을 부끄럽게 하심이 당시와 같이 되었습니다.

노략을 당한 것도 왕을 포함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의 왕들에게 복속되었던 형태 중의 하나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벨론 왕이 예루살렘 성전의 기명들을 가져간 일입니다.(왕하 25:13-17). 에스라가 귀환한 후에도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타국 땅에 여전히 남아 있었던 날과 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

 

8,9절을 보십시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이 우리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바사 왕들 앞에서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하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페르시아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본토로 돌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여기의 잠간은 B.C. 537년의 최초 귀환 시기부터 B.C. 458년의 제2차 귀환 시기까지의 약 80년을 가리킵니다. 이 기간은 패역함과 불순종으로 얼룩진 이스라엘의 오랜 역사와 대조됩니다.

그들의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그들을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이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포로로 잡혀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으로부터 보호하시고 또한 팔레스틴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에스라에게 있어서는 포로지로부터 팔레스틴으로 귀환한 자들만이 남은 자로 인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10). 거룩한 처소는 성전, 팔레스틴 땅등 모두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는 문자적으로 우리들에게 천막의 말뚝을 주셨다는 뜻을 갖습니다. 천막의 말뚝은 유목 생활을 통해서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목민들이 오랜 여행을 마치고 안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일정한 장소에 천막을 쳐야 합니다. 그때 그들은 천막의 말뚝을 땅에 박아야 하지만, 아무 곳에나 박을 수 없고 자신들이 법적으로 그렇게 할 수 있는 곳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천막의 말뚝은 일정한 장소를 차지할, 혹은 그곳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법적 권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천막 말뚝을 주셨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땅 팔레스틴에 다시 거주할 수 있도록 해주셨음을 말합니다.

물론 이것을 보다 영적으로 말할 경우,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가 새롭게 공고해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점에서 거룩한 처소는 팔레스틴 땅과 성전 모두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남은 자들의 눈을 밝히사 우리가 종노릇 하는 중에서 조금 소생하게 하셨습니다. 이 말은 문자적으로 이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이라는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동안은 하나님에 의해서 죽은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팔레스틴으로의 귀환을 죽은 자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37:1-4).

비록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에게 처음에는 상당한 자유의 제약이 있었으나, 나중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그들은 결코 종 노릇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같은 표현을 쓴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땅에서 정치적 주권을 소유치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종이 되는 것만이 참된 자유를 얻는 것임에도 불구하고(6:18, 22) 그들은 그곳 나라의 왕을 섬기는 처지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조금 소성케 했다는 것은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사람이나 그 후손 중, 아주 소수만 다시 본토로 돌아왔던 사실을 배경으로 하여 이해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종살이를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언제까지나 종살이를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노예가 되었다는 것은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사실을 가리킵니다(8). 원어상 여기의 노예는 앞 구절의 종 노릇하는, 그리고 이어 나오는 복역하는 이라는 단어와 동일한 어근을 갖습니다. 버리지는 용서하다, 돕다 등의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끊다 혹은 떠나다의 의미로서, 깊은 관계 중에 있던 어떤 상대를 배신하여 기존의 관계를 청산하는 행동을 말합니다.(8:22 28:20 왕하 2:2 대하 13:10).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죄악됨에도 페르시아의 왕들에게 사랑을 받게 하여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용기를 주셔서,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짓고, 무너진 곳을 다시 쌓아 올리게 하셨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가 이처럼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울타리는 담벽을 의미합니다. 여기의 울타리는 영적 의미의 하나님의 보호를 가리킵니다.

 

(은혜 받은 후에 이방인과 통혼한 죄를 회개함)

 

10-12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전에 주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얻으려 하는 땅은 더러운 땅이니 이는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그 더러움으로 채웠음이라 그런즉 너희 여자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그들의 딸들을 너희 아들들을 위하여 데려오지 말며 그들을 위하여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구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왕성하여 그 땅의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려 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 주게 되리라 하셨나이다

 

우리의 하나님, 주께서 이렇게까지 하여 주시는데, 이스라엘은 또 다시 주의 계명을 저버렸습니다. 이제 우리가 무슨 말씀을 드릴 수 있겠느냐면서 죄송해 합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범죄하여 회복되기 곤란한 상태에 빠졌던(7)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다시 허락하사 팔레스틴으로 귀환하게 하신 사실(8, 9)을 말합니다. 에스라는 우리라는 말을 써서 에스라가 백성들에 대한 연대의식을 보여줍니다.(3, 6).

11절의 앞에 관계대명사가 있음을 볼 때, 11절은 10절의 주의 계명을 수식하는 구절로 봐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이런 은혜를 잊고 다시 주의 계명을 어기는 죄를 지었습니다.

전에 하나님께서 주의 종 선지자들에게 명령하셨습니다. 선지자들은 모세 오경을 기록한 모세를 포함하여(18:15 34:10 12:10) 이스라엘 전 역사 기간 동안에 활동했던 모든 선지자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주께서는 문자적으로 당신께서 입니다. 그들이 가서 얻으려고 하는 땅은 우상을 숭배하는 더러운 땅입니다. 18:25 20:22 4:5 1:17에 있는 말씀에 가나안 땅을 더러운 땅으로 말합니다. 얻으려는 소유하다 혹은 빼앗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의 부정사로서, 본 단어 앞의 가서 얻으려 하였습니다.

더러운은 구약성경에서 월경을 하는 여인과의 접촉(12:2) 혹은 성적 타락(20:21) 등으로 인한 의식적 부정(不淨)의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여기서는 우상 숭배 및 그것과 관련된 부도덕한 행위들을 뜻합니다(대하 29:5 1:17 7:20 36:17). 땅의 백성과 접촉하는 일은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들과의 접촉은 금해야 합니다.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여 이 끝에서 저끝까지 더러움으로 채웠습니다. 이방 백성들이 더럽고 가증한 일을 행하였다는 말은 신 18:9 왕하 16:3 21:2 대하 28:3 33:2 등의 말씀이 종합된 것으로서 그 땅이 왜 더러운 땅인지 그 이유를 말해줍니다.

본절에서 원용된 사항들이 대체로 신명기서의 내용이라는 점은, 에스라가 신명기서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시사합니다. 이방 백성들은 가나안 원주민을 가리키며(1), ‘가증한 일을 행하여는 혐오하다 혹은 몸서리치도록 싫어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와 방법을 나타내는 전치사가 합해져서 이루어진 단어입니다.

12절 또한 11절과 같이 10절의 주의 계명을 수식합니다. 계명은 이스라엘의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딸들을 며누리로 데려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7:3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여자를 데리고 오는 것에 대해서만 대부분 말하는데(2절 창6:2 26:34 34:16 3:6) 반하여, 여기서는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도 유일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직 에스라 시대에만 딸들을 이방인들에게 시집보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방인의 딸들을 데려온 시대에는 반드시 이스라엘백성의 딸을 이방인들에게 시집보내는 일도 수반되었을 것입니다.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했던 일차적 목적이 우상 숭배는 물론 그것과 관련된 타락한 이방 악습의 유입을 막기 위함이었습니다. 신약에서도 불신자와의 결혼은 배격되고 있습니다(고전 7:39 고후 6:14).

그들과 어울려 평화와 행복을 영원히 누리며 살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23:6에서 모세가 모압과 암몬 족속에 대해서 언급했던 명령입니다.

이처럼 모압과 암몬에 해당되는 특별한 명령인데도 여기서 이방인 전체 민족에 대해서 적용되고 있는 까닭은 모압과 암몬 이외의 다른 민족들도 또한 하나님의 백성과 교제를 가질 만큼의 윤리적 수준을 전혀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입니다.(19:1-20:6 23:1-18 46:1-28 47:1-7 48:1-47 49:1-22), 실제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암몬 및 모압 족속과도 통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평강의 문자적 의미는 그들의 평화로서 개인적 건강, 마음의 평화 및 정치적 안정을 주로 가리킵니다(왕상 4:25). 형통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선을 뜻하며, 보다 내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을 가리킵니다. 이 말씀은 그들의 평화와 행복을 바라지 말라 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과 평화와 행복을 공유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과 교제하지 말아야 합니다.(23:32 34:12).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이 왕성하여 그 땅에서 아름다운 것을 먹으며 그 땅을 자손에게 물러주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주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계명을 어겼음을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이방인과 통혼을 하지 않고자 결단함)

 

13-15절을 보십시오. “우리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당하였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이만큼 백성을 남겨 주셨사오니 우리가 어찌 다시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들과 통혼하오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어찌 우리를 멸하시고 남아 피할 자가 없도록 진노하시지 아니하시리이까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하니라

 

이스라엘의 악한 행실과 큰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는 모든 일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죄악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셔서 이 만큼 백성을 남겨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엄격히 공의대로 하셨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완전히 멸망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벨론 포로 사건을 끝으로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막을 내려버렸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자가 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형벌이 가벼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이스라엘 사람이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이 가증한 백성과 통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피할 자가 없도록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완전히 멸망케 하지 않으시고 일부를 남겨주셨음에도(13) 불구하고 또다시 범죄한 이상 이스라엘은 멸망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백성의 대표 자격으로 이스라엘의 죄를 철저히 자복하고 결단 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간절한 심정으로 죄의 용서를 구하고 있습니다.

주의 계명을 거역하고 에서 거역하고는 원래 파괴하다 혹은 깨뜨리다의 뜻을 갖습니다. 이 단어가 구약 성경에서 53회 사용되는 중 23회는 직접 목적어로 언약이라는 단어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는 곧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는 행위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26:15 17:18 11:10). 진노하사는 언약적 책무를 이행하지 않고 범죄에 빠진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를 가리킬 때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1:37 왕상8:46 대하 6:3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는 의로우십니다 의롭도소이다는 여기 번역 그대로 공의로우시다의 의미로 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절시켜도 당연함을 말합니다. 그들이 남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도리어 범죄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서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스가랴는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고백합니다.

에스라 9장 강해 에스라의 회개 기도

에스라 91-15

요절 에스라 9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 9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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