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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느헤미야 3장 강해 다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11-04 00:00:00
조회수 : 4,207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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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3장 강해 다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느헤미야 31-332

요절 3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오늘 말씀에는 성벽을 건축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 다음은 이라는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 다음은 그 다음에 이어서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벽 건축에 빠진 자도 있고 두 배를 한 자도 있습니다. 그들은 자원하여 성벽을 건축하였습니다. 우리도 여우같은 사단이 우리에게 들어오지 못하도록 연합하여 성벽을 건축해야합니다. 우리 함께 다 십계명을 지킴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대제사장들과 제사장들의 성벽 건축)

 

“1. 그 때에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그의 형제 제사장들과 함께 일어나 양문을 건축하여 성별하고 문짝을 달고 또 성벽을 건축하여 함메아 망대에서부터 하나넬 망대까지 성별하였고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3. 어문은 하스나아의 자손들이 건축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4.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아의 아들 므레못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중수하였고5.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중수하였으나 그 귀족들은 그들의 주인들의 공사를 분담하지 아니하였으며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팔레스틴에 귀환했던 대제사장 예수아의 손자입니다(12:10). 그런데 나중에 그의 손자가 산발랏의 딸과 결혼했고(13:28), 또한 그는 이방인 도비야(2:10)에게 성전의 방을 내어줄(13:4, 7) 만큼 산발랏 일당과 깊은 관계를 맺게 됩니다. 그렇다면 엘리아십이 처음에는 느헤미야를 도와 헌신적으로 재건 사업에 참여하다가 나중에 산발랏 일당에게 매수당했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불온한 마음을 가진 채 단지 백성들의 눈을 의식하여 형식적으로 재건 사역에 참여하였을 뿐이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어쨌든 보다 분명한 것은,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 할 대제사장이 재건 사역에 앞장 서서 협력하였음을 느헤미야가 부각시키려 했다는 사실입니다. 그 형제 제사장들을 엘리아십의 친형제들로 볼 수는 없습니다. 다만 엘리아십처럼 아론의 후손들로서의 제사장들을 가리킵니다(3:2).

양문은 예루살렘의 북동쪽 모퉁이에 위치했었습니다. 희생 제사에 소용되는 양과 염소들은 바로 이곳을 통해서 들어갔습니다. 이 양문을 통해 들어간 희생 제사용 짐승은 이 문 옆의 못에서 씻겨진 후 성전으로 옮겨갔던 것 같습니다. 5:2의 양문은 바로 이곳을 가리킵니다.

성별하고라는 말이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의 재건 사역에서만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이 대표 자격으로 하나님께 바쳤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이방 여인을 취한 사실로 인하여 회개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명단을 제시하면서 그 중 유독 제사장들만이 속건제를 드린 사실을 언급한 것과 같습니다(10:18, 19).

함메아 망대는 양문의 서쪽에, 하나넬 망대는 어문(3)의 서쪽에 각각 인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두 망대 사이에는 짧은 성벽과 그 중간에 어문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제사장들이 북쪽 성벽의 재건을 담당한 것은, 그곳이 그들의 활동 무대였던 성전과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었습니다.

2절에서 부터 5절까지는 하나넬 망대의 서쪽 성벽 약 210m의 건축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엘리아십(1)을 위시한 제사장들이 건축한 성벽에 연이어서의 의미입니다. 본절의 여리고 사람은 자신들의 조상이 포로로 끌려가기 전에 여리고에 살고 있었음은 알았으나, 자신들의 족보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던 자들로 추측됩니다(2:34).

이므리의 아들 삭굴에 대해 별 달리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삭굴은 염두에 두는의 의미입니다.

어문(魚門)은 예루살렘 북쪽 성벽의 좌측에 위치한 문으로서, 갈릴리 바다 및 요단 강에서 잡힌 물고기들이 바로 이곳을 통해서 들어왔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진 듯합니다. 이 문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구절들은 본서 12:39과 대하 33:14 그리고 스바냐 1:10 등입니다.

하스나아는 스나아라는 지명(地名) 앞에 정관사 하가 붙은 것으로 봐야합니다(2:35 ). 따라서 하스나아의 자손들도 2절의 여리고 사람들처럼, 자신의 조상이 스나아라는 곳에 살고 있었음은 알았으나 그 족보를 밝히지 못함으로 인하여 조상의 이름 대신 지명을 통하여 구별되고 있습니다(2:35).

그 들보를 얹은 것은 지붕을 올림으로써 건축을 마무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물쇠는 오히려 빗장을 가리키며, 빗장은 앞의 빗장을 물고 있는 소켓(sockets)을 뜻합니다.

므레못은 말기야(11)와 함께 에스라와 느헤미야의 사역에 모두 관계되는 자로서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귀환하면서 가져온 물품들을 인수했던 제사장이었습니다(8:33). 학고스의 자손은 그 종족과 보계가 이스라엘에 속하였는지 증거할 수 없는 자들이었습니다(2:59, 61).

므세사벨의 손자 베레갸의 아들 므슬람은 자신의 딸을 도비야(2:10,19)에게 며느리로 주는 등 사마리아 사람들과 밀착된 관계를 맺었던(6:18) 제사장입니다(30). 그가 성벽 재건에 참여한 이유는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경우와 유사할 것입니다(1절 주석 참조). 므술람이라는 이름은 동맹한이란 뜻입니다. 바아나의 아들 사독은 에스라가 제안한 언약문에 인친 자로만 알려졌을 뿐입니다(10:21).

6절의 언급으로 미루어 볼 때, 드고아 사람들의 작업 몫은 옛 문과 인접한 동쪽 성벽의 한 부분이었을 것입니다. 드고아는 예루살렘 동남쪽 약 14.5Km 지점의 불모지에 자리 잡았던 성읍으로서, 아라비아 사람 게셈(2:19)에 의해서 공격받기 쉬웠던 입지 조건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드고아 사람들은 출신지역에 따라 분류된 포로 귀환자 명단(2:20 - 35)에 나오지 않음을 볼 때, 자신들의 족보를 잊어버린 사람들은 아닌 듯합니다. 드고아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의 공격을 쉽사이 받을 수 있는 지역입니다.

그곳의 귀족들은 오히려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아니했다는 등의 특별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는 조상의 이름을 통한 가족 분류 방식을 포기하고 이같이 동리의 이름을 통해 이들을 분류하고 있습니다. 드고아 귀족들은 자신들의 목들을 자신들의 주()들의 역사에 가져오지 않았다 원어적인 뜻이 있습니다. 멍에 메기를 거절하는 황소의 모습에 빗대어서(27:12) 성벽 재건 사역에 동참치 않은 귀족들을 암시적으로 비난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 주는 누구를 가리킬까? 본절의 주가 복수라는 점에서 하나님으로 볼수 없으므로 느헤미야를 도와서 일을 하던 감독자들로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주들은 문자적 의미는 높임을 받는 자입니다. 귀족들이 아라비아 사람 게셈의 보복이 두려워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게셈과 상당히 깊숙한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드고아 사람들은 귀족들이 참여하지 않아도 함께 참여하였습니다. 지도자를 탓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성벽 건축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

 

“6. 옛 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드야의 아들 므술람이 중수하여 그 들보를 얹고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7. 그 다음은 기브온 사람 믈라댜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강 서쪽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 및 미스바 사람들과 더불어 중수하였고8. 그 다음은 금장색 할해야의 아들 웃시엘 등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향품 장사 하나냐 등이 중수하되 그들이 예루살렘의 넓은 성벽까지 하였고9.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의 절반을 다스리는 후르의 아들 르바야가 중수하였고10. 그 다음은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가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하삽느야의 아들 핫두스가 중수하였고11.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핫숩이 한 부분과 화덕 망대를 중수하였고12. 그 다음은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할로헤스의 아들 살룸과 그의 딸들이 중수하였고13. 골짜기 문은 하눈과 사노아 주민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분문까지 성벽 천 규빗을 중수하였고

 

6절에서부터 11절까지에서는 약 600m 가량의 성벽 재건 작업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옛문은 왕하 14:13과 램 31:38의 모퉁이 문과 동일시 됩니다. 예루살렘 북쪽 약 30Km 지점에 있던 여사나(대하 13:19)라는 곳으로 향하는 도로로 통하는 문이었습니다. 요야다는 여호와께서 알고 계시다의 뜻입니다. 다른 곳에서는 일체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므술람은 동맹한의 뜻입니다.

기브온사람은 출신 지역에 따라 분류된 포로 귀환자 명단(2:20 - 35)에 들어 있습니다(7:25). 이 기브온은 예루살렘 북쪽 약 9Km 지점에 위치했습니다. 믈라댜는 여기서만 나오는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자유케 하셨다의 뜻입니다. 메로놋은 기브온 북동쪽약 5Km 지점이었을 것입니다(대상 27:30).

야돈은 여호와께서 지배하신다의 뜻이 있는 여도니야의 단축형입니다. 강 서편 총독의 관할에 속한 기브온 미스바 사람들 대해서는 강 서편 총독이 유다를 방문할 때마다 임시로 머물던 곳이 미스바에 있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이곳은 가까운 사람들끼리 연합하였습니다. 성을 연합하여 건설하였습니다. 7절에서는 가까운 지방 사람들끼리 힘을 합하는 모습이 언급된 데에 이어서, 8절에서는 특별한 직업의 소유자들끼리 협력하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같은 지역이나 동업자끼리 연합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었습니다.

고대 중근동 사회에서는 금장색은 순금이나 금박으로 장신구와 우상등을 만드는 일에 주로 종사했었습니다(40:19 41:7 46:6 10:9, 14 51:17). 포로 귀환후의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우상 숭배가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본문의 금장색은 장신구 등의 제조에만 관계하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본절과 31, 32절은 이 금장색들이 자신들끼리의 동업자 조합을 형성하고 있었을 가능성을 짙게 풍기고 있습니다. 더구나 여기의 금장색이라는 단어가 복수라는 사실은 그 가능성을 더욱 높게 합니다.

향품 장사는 애굽이나 인도 등지에서 완제품을 수입해서 팔거나 혹은 식물에서 향품을 직접 추출해내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이런 직종에 종사했던 인물로 성경에 최초로 언급되는 자는 브사렐입니다(37:1, 29). 이러한 향품은 분말 혹은 액체의 형태였고, 조그만 용기에 보관되어 여인들에 의해서 지참되었습니다(3:20). 이 같은 향품의 주된 용도는 몸의 냄새를 상쇄시키는 것이었고 장례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금장색이나 향품 장사는 시간 할애가 용이하였습니다. 그들은 다른 직업의 소유자보다 수입이 많은 관계로 경제적으로 넉넉했기 때문에, 성벽 재건 사업에 적극적일 수 있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들은 그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 보통 중류 계급으로 분리되었다고 합니다.

넓은 성벽은 B.C. 7세기 초에 히스기야왕에 의해 건축된 벽으로서 B.C. 722년에 사마리아가 함락된 이후 북이스라엘의 피난민들을 수용하기 위해 넓힌 것입니다. 1970, 71년에 아비갓은 성전 서쪽 방향 270m 정도 지점에서 6.7m 정도되는 두께의 성벽을 발굴한 바 있으며 이것은 본문의 넓은 성벽과 동일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지방은 원래 주위나 혹은 물레가락의 뜻을 지니며 한계가 명확하지 않은 주변 지역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여기의 예루살렘 지방은 예루살렘 시내 지역이 아닌 예루살렘과 붙어있는 변두리 지역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9절의 다스리는 자는 본서에서 보통 방백으로 번역된 단어로서(10:14) 그 당시의 유다 지역이 조그만 단위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음을 시사해줍니다. 해당 지역의 책임 관리자 르바야 혼자서만 재건 사역을 감당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의 주도하에 해당 지역내의 주민들이 이 일에 협력하였을 것입니다.

10절의 자기 집과 마주 대한 곳은 예루살렘 서쪽의 급경사지로 추측됩니다. 하림은 스룹바벨과 함께 최초로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이었습니다(2:32). 따라서 여기의 아들은 자손으로 번역됨이 타당합니다.

말기야는 여호와는 왕이시다의 의미를 가지는데 23절의 베냐민과 형제인 듯합니다(10:31, 32). 바핫모압도 최초로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2:6)입니다.

11절의 한 부분은 문자적으로 두 번째 부분으로서, 이미 배정됐던 몫 이외의 또 다른 부분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말기야와 핫숩은 여기 이외에 다른 부분의 축성(築城)작업도 부여받았던 셈입니다(23).

풀무 망대는 12:38 대하 26: 9등으로 볼 때 골짜기 문과 넓은 성벽의 중간 지점에 위치하였던 곳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이 같은 명칭이 붙여진 것은, 그곳에서 빵이 구워졌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 다음은 풀무 망대와 골짜기문(13) 사이의 성벽 부분을 말합니다. 일자형(一字型)에 길이 약 450m 정도입니다.

예루살렘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자는- 예루살렘을 둘러싸고 있었던 지역의 한 부분을 다스리던 사람을 가리킵니다(9). 할로헤스라는 이름은 속삭이는자. 혹은 마술사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와 동일한 이름이 에스라의 언약문에 인친 자들의 명단 중에 나온다는 사실은, 이 이름이 구체적인 개인명임을 입증해줍니다(10:24). 여기의 아들은 오히려 자손의 의미로 봐야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그 딸들은 히브리 원문의 문자적 의미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말합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무너진 성벽의 재건을 위해서 여자들도 동원됐습니다. 딸들은 남자 형제가 없을 경우 아버지의 이름과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36:8) 본서의 3장은 여자들까지 참여하여 성벽 재건에 대한 백성들의 열심을 강조하는(8) 문맥적 특색을 갖고 있습니다.

하눈은 30절에서는 살랍의 여섯째 아들로 묘사되고 있으며 그 이름은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의 의미를 갖는 하나니엘, 혹은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다의 뜻을 갖는 하나니야의 단축형으로 짐작됩니다.

또한 사노아는 예루살렘 남서쪽 약 22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성읍입니다(15:34). 일천 규빗은 약 450m의 길이입니다. 북쪽 성벽 약 200m 정도를 네 집단에서 담당했던 것(2-5)과 비교해보면 매우 작은 성읍 사노아의 거민들이 이렇게 많은 분량을 담당하였다는 사실은 특이하게 보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사노아 거민들이 큰 열심을 냈었다는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힘에 지나도록 충성하였습니다. 아니면 그들이 담당했던 성벽의 파괴가 극심하지 않았었다는 측면 모두가 인정될 수 있을 것입니다.

 

(힘써 중수한 사람들)

 

“14. 분문은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중수하여 문을 세우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었고15. 샘문은 미스바 지방을 다스리는 골호세의 아들 살룬이 중수하여 문을 세우고 덮었으며 문짝을 달고 자물쇠와 빗장을 갖추고 또 왕의 동산 근처 셀라 못 가의 성벽을 중수하여 다윗 성에서 내려오는 층계까지 이르렀고16. 그 다음은 벧술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아스북의 아들 느헤미야가 중수하여 다윗의 묘실과 마주 대한 곳에 이르고 또 파서 만든 못을 지나 용사의 집까지 이르렀고17. 그 다음은 레위 사람 바니의 아들 르훔이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하사뱌가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고18. 그 다음은 그들의 형제들 가운데 그일라 지방 절반을 다스리는 헤나닷의 아들 바왜가 중수하였고19. 그 다음은 미스바를 다스리는 예수아의 아들 에셀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까지 이르렀고20. 그 다음은 삽배의 아들 바룩이 한 부분을 힘써 중수하여 성 굽이에서부터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문에 이르렀고32. 성 모퉁이 성루에서 양문까지는 금장색과 상인들이 중수하였느니라

 

벧학게렘 지방은 벧학게렘이라는 성읍과 전혀 다릅니다. 여기서 지방은 어떤 성읍과 인접해 있는, 혹은 둘러싸고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9). 벧학게렘은 예루살렘 남쪽 약 5Km 지점에 위치했습니다. 미스바 지방은 미스바와는 전혀 다릅니다.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 약 12.8Km에 위치했습니다.

왕의 동산은 기드론 골짜기 남단, 즉 그 골짜기가 힌놈의 골짜기와 만나는 곳에 위치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성벽 바깥에 있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IDB, 왕하 25:4 39:4 52:7). 셀라못은 실로암못과 동일시 되는 것으로서(8:6 9:7). 그 물이 넘쳐 흘러서 기드론 골짜기와 힌놈의 골짜기가 마주치는 곳에 위치했던 왕의 동산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결국 이 셀라 못은 왕의 동산의 수원(水源)이었던 셈입니다. 그런데 이 못이 예루살렘 본성(本城)의 바깥 쪽에 위치했었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그 못과 그 물을 이용하는 자들의 보호를 목적으로 별도의 성벽이 쌓아졌었으므로 셀라 못은 성벽에 둘러싸여 있게 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본 문구의 성벽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예루살렘의 동쪽 성벽의 가장 남쪽 부분 약 100m를 가리키며 셀라 못의 동쪽성벽입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것은 셀라 못가의 성벽이라고 할 만합니다.

다윗성은 예루살렘의 동남쪽의 한 구릉지대로서, 기혼 샘의 북서쪽에서부터 남쪽까지 뻗어 있었습니다(삼하 5:7, 8). 그리고 층계는 기드론 골짜기로 내려갈 수 있었던 계단이었습니다.

벧술 지방은 예루살렘 남쪽 약 21Km지점에 위치한 벧술이라는 성읍(15:58) 그 자체를 뜻하지 않고 다만 그 성읍의 인접 지역을 가리킬 뿐입니다(9). 본절의 느헤미야는 본서의 저자인 느헤미야와 동명 이인입니다.

다윗의 묘실은 묘실이 복수라는 점에서 다윗 왕 한 사람만의 무덤이 아니라 다윗부터 시작해서 그 후예들의 공동 묘지였음이 분명합니다(대하 28:27). 그 위치는 다윗 성(15)의 남쪽곧 시온산 어디였을 것입니다(왕상 2:10). 히스기야 왕이 산헤립에 의해서 포위됐을 때, 히스기야는 기혼의 샘 물을 막은 후 고랑을 파서 그 물이 다윗 성 안쪽으로 흘러 들어오도록 해서 식수(食水) 문제를 해결했었습니다(왕하 20:20 대하 32:3, 4). 그때 그 흘러 들어온 물이 한 곳에 모이도록 해놓은 시설이 곧 여기의 파서 만든 못이었습니다(22:9 11).

용사의 집은 다윗의 충실한 부하들이었던 용사들(삼하 23:8 대상11:10)이 사용했던 병사(兵舍)였습니다.

17절에 성전 봉사에 바빴을 레위 사람이 성벽 재건에 참여했다는 사실은 매우 고무적입니다. 이는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운동에 대한 백성들의 호응이 적극적이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포로 귀환 후에는 레위인의 일부가 성읍의 행정에만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벽 재건에 동참하였을 것입니다.

그일라 지방은 예루살렘 서남쪽 약 24Km지점에 위치한(삼상23:1 - 13) 그일라와는 전혀 다릅니다(9, 12, 14). 하사뱌는 여호와께서 참작하셨다의 뜻입니다. 그 지방을 대표하여 중수하였다는 말은 그곳 주민들을 통솔하는 등 그성벽 재건 공사의 주체(主體)가 된 것을 가리킵니다. 이 같은 역할은 한 지역을 다스리는 자로서 그 비장 모든 사람이 성벽 재건에 참여한 것입니다.(9).

18절의 바왜는 빈누이의 오기(誤記)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왜라는 이름은 구약 성경이나 그밖의 문헌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9절의 한 부분은 이미 배당된 몫 이외의 또 다른 부분(11)을 가리키므로, 본장 어디에든 빈누이가 느헤미야로부터 할당받은 작업 몫에 대한 언급이 있어야 하나 그렇지 못합니다. 더구나 10:9에는 빈누이라는 레위 사람이 헤나닷의 자손으로 묘사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본절의 바왜를 빈누이로 고치고, 이 빈누이가 24절을 참고할 때 느헤미야로부터 두 몫의 성벽 공사를 할당받았다고 결론지어야 할 것입니다. 이 빈누이는 에스라의 언약문에 인을 치기도 하였습니다(10:9).

미스바는 예루살렘 북쪽에 위치했던 한 성읍 미스바를 가리킵니다. 에셀은 도움 혹은 구원의 뜻입니다. 한 부분은 배당된 몫 이외에 또달리 배당된 별도의 작업 몫을 가리킵니다(11). 따라서 본절의 에셀은 본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작업 몫 이외에 이미 또 다른 부분을 배당받았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에셀이라는 이름은 본장 어디에도 안 나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이 함께 한 재건 사역이 본문의 에셀이 감당한 또다른 한 부분이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7).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 맞은편은 문자적으로 모퉁이에 있는 군기고로 오르는 곳 앞의 뜻입니다. 여기서 모퉁이는 성벽이 날카롭게 꺾어지는 곳을 의미합니다(대하 26:9). 본절에서 느헤미야가 성 굽이에 있는 군기고라고 군기고를 한정적으로 표현한 까닭은 예루살렘에는 여러 군데에 군기고가 있었던 때문이었습니다(22:8).

삽배는 스 10:28에서 이방 여인을 취했다가 회개한 자로 언급됩니다.

바룩은 본서 10:6, 8을 볼 때, 제사장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 같은 사실은 여기의 한 부분에 대한 중요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바룩은 다른 제사장들과 함께 성벽 재건에 동참했었고(1) 이제 그와는 별도로 또 다른 한 부분을 맡아서 공사를 했던 것입니다.

힘써는 맹렬하다, 타오르다 혹은 진노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의 사역형으로서 뜨겁게 되다 혹은 열심을 품다의 의미입니다. 이 같은 단어는 앞의 한 부분이라는 말과 매우 잘 조화됩니다. , 그는 열심을 품어서 이미 자신에게 맡겨졌던 공사를 재빨리 완료하고, 또다시 새로운 부분에 대한 공사에 뛰어 들었던 것입니다. 성 굽이는 군기고가 있는 성의 모퉁이를 가리키며 집문에는 집 문 맞은편의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16, 19). 만일 본절의 집 문에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엘리아십의 집이 성벽과 붙어있었다는 오해를 낳게 될 것입니다.

 

(외국인으로 건축한 사람들)

 

“21. 그 다음은 학고스의 손자 우리야의 아들 므레못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 엘리아십의 집 모퉁이에 이르렀고22. 그 다음은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이 중수하였고23. 그 다음은 베냐민과 핫숩이 자기 집 맞은편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아나냐의 손자 마아세야의 아들 아사랴가 자기 집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24. 그 다음은 헤나닷의 아들 빈누이가 한 부분을 중수하되 아사랴의 집에서부터 성 굽이를 지나 성 모퉁이에 이르렀고25. 우새의 아들 발랄은 성 굽이 맞은편과 왕의 윗 궁에서 내민 망대 맞은편 곧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바로스의 아들 브다야가 중수하였고26. (그 때에 느디님 사람은 오벨에 거주하여 동쪽 수문과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내민 망대까지 이르렀느니라)27. 그 다음은 드고아 사람들이 한 부분을 중수하여 내민 큰 망대와 마주 대한 곳에서부터 오벨 성벽까지 이르렀느니라28. 마문 위로부터는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29. 그 다음은 임멜의 아들 사독이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동문지기 스가냐의 아들 스마야가 중수하였고30. 그 다음은 셀레먀의 아들 하나냐와 살랍의 여섯째 아들 하눈이 한 부분을 중수하였고 그 다음은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이 자기의 방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였고31. 그 다음은 금장색 말기야가 함밉갓 문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하여 느디님 사람과 상인들의 집에서부터 성 모퉁이 성루에 이르렀고

 

학고스는 스 2:61에서 자신들의 계보를 증명치 못하여서 성전 봉사에 참여치 못했던 제사장 가문의 조상으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기의 손자는 자손으로 번역함이 타당합니다.

그리고 므레못은 스 8:33에서 에스라가 바벨론에서 가져온 물품을 인수했던 제사장으로 언급됩니다. 므레못도 20절의 바룩처럼 자신에게 맡겨졌던 최초의 작업 몫을 재빨리 마치고, 본절의 또 다른 성벽 공사에 뛰어들었음이 분명합니다(20).

21절의 므레못이 엘리아십의 집 문에서부터...모퉁이에 이르렀다는 것은 므레못의 공사량(工事量)이 비교적 적었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귀환 당시의 예루살렘은 그 경제 형편이 좋지 못했습니다.(1:3) 대제사장은 그 당시 행정적 측면을 관장했었던 총독보다 권한이 비교적 적었습니다.(5:9) 그런데 므레못이 이처럼 적은 몫 만을 담당했던 까닭은, 그 부근의 공사 조건이 심히 나빴기 때문일 것입니다( 2:14). 아무튼 므레못이 대제사장 집 앞의 성벽 공사를 담당했었다는 사실은, 그가 그 당시 신실한 제사장으로 인정되고 있었다는 좋은 증거라 하겠습니다.

평지에 사는문자적으로 평지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평지는 예루살렘의 주변지역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에브라임 산지에 대해서도 적용됐습니다.(삼하 18:23 ) 특히 본서에서 예루살렘 주변을 나타내는 데 사용됐습니다(12:28) 평지에 사는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시내에 살며 성벽 재건에 최초로 나섰던 제사장들(1)과는 분명히 구별됩니다.

베냐민은 하림 자손으로서 11절의 말기야와는 형제 혹은 근친인 듯합니다(11절 스 10:31, 32). 그리고 핫숩은 바핫모압 자손으로서 베냐민의 형제 말기야와 함께 풀무 망대를 재건했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본절의 핫숩은, 한 곳에서는 하림 자손의 말기야와 함께, 또 다른 곳에서는 그형제 베냐민과 함께 공사를 하는 등 두 몫을 담당했던 셈입니다(11).

가까운 부분은 구약 성경에서 대부분 옆에 혹은 곁에로 번역되는 단어(39:16 삼상 5:2 왕상10:19)이지만 문맥상 19절의 맞은편과 동일한 의미로 이해됩니다. 아무튼 이 문구나 앞에 자기 집 맞은편 부분이라는 문구는,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 사업의 추진과 관련해서 공사 담당자의 편의를 최대한으로 고려해주었음을 보여주는 분명한 증거입니다. 아사랴라는 이름은 여호와께서 도우셨다의 뜻입니다. 빈누이는 18절에 나오는 헤나닷의 아들 바왜와 동일 인물입니다(18). 이 사람은 동쪽성벽의 남쪽 부분을 건축한 다음 여기서 또 다른한 부분의 성벽 건축을 담당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사랴의 집에서부터는 아사랴의 집 끝 모퉁이에서부터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사람의 집 근처, 곧 아사랴의 집 맞은편 쪽은 아사랴 자신이 직접 성벽 공사를 하였기 때문입니다(23). 성굽이는 성벽의 처음 꺾여진 부분을 뜻합니다(19). 모퉁이도 굽이와 거의 같은 뜻으로서, 여기서는 성의 꺾여진 부분이 원래의 방향대로 다시 꺾여진 부분을 가리킵니다.

발랄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의 의미로서 구약 성경 중 본절에만 나오는 이름입니다. 우새도 오직 여기에만 나오는 이름으로 여호와께서 들으셨다의 뜻입니다. 왕의 윗 궁에서 내어민 망대의 윗은 높은의 의미로서 왕궁을 수식한다기보다는 망대를 수식한다고 봄이 더 무난합니다. 왕의 궁에 대해서는 이 왕궁이 이미 언급된 남쪽의 다윗 성(15)과 다른 이름으로 구별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솔로몬의 왕궁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시위청에서 가까운 부분은 시()외곽을 감싸는 성벽의 일부가 아니라 솔로몬 왕궁 외곽의 내어민 망대와 연결된 내성벽(內城壁)의 일부입니다. 시위성은 영역본 흠정역의 번역대로 감옥으로 봄이 타당할 것입니다(12:39 32:2).

바로스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한 가족의 조상이었습니다(2:3). 따라서 여기의 아들은 자손으로 고쳐야 합니다. 브다야는 여호와께서 속량하셨다의 뜻입니다. 때에는 그리고 혹은 그런데의 뜻입니다.

26절 느디님 사람은 외국인으로 성전에서 봉사한 사람들입니다. 외국인들까지 이스라엘 사람으로 귀화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성벽을 건축하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수문은 기혼 샘 반대편에 위치한 듯합니다. 그렇다면 이 문은 동쪽 성벽의 남쪽에서 북쪽에 이르는 중간지점에 채 못미치는 곳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 문 앞에는 넓은 광장이 있어 공중 집회시 이용되었습니다(8:1). 마주 대한 곳은 동편 수문과 내어민 망대 사이의 성벽 부분입니다. 드고아 사람들은 자신들의 방백의 협조나 지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쪽 성벽의 한부분에 대한 공사를 담당했었습니다(5).

마문은 동쪽 성벽에 있었던 한 문으로서(31:40), () 혹은 말을 탄 사람들이 시내로 들어갈 때 이용됐었습니다. 아무튼 이 마문은 솔로몬의 옛왕궁으로 연결되는 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한편, 위는 마문 북쪽성벽을 가리킵니다.

제사장들이 각각 자기 집과 마주 대한 부분을 중수한 것은 이미 북쪽 성벽공사에 참여했던 므레못이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집 근처를 별도로 공사했었던 것과 유사한 경우입니다(21). 본절의 제사장들도 이미 므레못처럼 북쪽 성벽 공사에 참여했었고(1), 다시 또 다른 몫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임멜은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제사장 가족의 한 조상이었습니다(2:37). 따라서 본절의 아들은 자손으로 번역되어야 합니다.

또한 임멜은 다윗이 세운 제사장 조직 중 열 여섯째 반차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대상 24:14). 여기의 동문은 외성벽과는 상관 없이, 성전 건물에 속했던 문이었던 것 갈습니다(40:6, 10). 그 문은 스룹바벨 성전 재건 때에 복구되지 못했다가 금번에 성벽의 한 부분으로서 복구된 듯합니다. 이처럼 동문이 성전 건물에 속했다는 사실은, 동문 지기가 레위인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됩니다.

하나냐는 8절에서 향품 장사로 묘사되는 하나냐와 동일한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 본절의 한 부분은 하나냐가 다른 부분의 성벽 공사도 담당했었음을 시사하며(11), 이것은 곧 여기의 하나냐가 8절의 하나냐와 동일 인물임을 입증합니다.

여섯째 아들이라는 수식 문구는 살랍의 많은 아들 중에서 오직 말째에 가까왔을 한 아들인 하눈만이 성벽 재건에 참여했었음을 강조하려는 것인 듯합니다. 4절의 므술람과 동일 인물임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본절의 므술람도 두 곳의 성벽을 재건한 셈입니다. 침방은 일반적인 의미의 방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특별하게는 성전에 속한 여러 방들에 대해 적용되는 단어입니다(12:44 13:7). 따라서 본절의 자기 침방은 므술람이 제사장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임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자기 침방과 마주 대한 부분은 성전과 가까운 성벽을 가리킵니다. 금장색은 8절의 금장색과는 달리 단수입니다.

함밉갓 문의 하미프카드는 삼하 24:9에서는 인구 조사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본절의 함밉갓 문은 히브리 단어의 음역을 그대로 따르기 보다는 차라리 의미적으로 번역해서 소집문(RSV, the Muster gate the Inspection gate)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이는 백성들이 특별한 일이 발생했을 경우에 그 문 앞으로 소집되었음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문의 위치는 동편 수문과 연결된 성벽에서 북쪽으로 약 90m 지점입니다. 따라서 이 함밉갓문의 마주 대한 부분은 동쪽 외성벽의 거의 북쪽 끝부분이 되는 셈입니다.

느디님 사람의 집은 그들이 성전 봉사를 하는 동안에만 사용했던 거처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느디님 사람의 집은 오벨 근처에 있었습니다(26). 상고들은 돌아다니다의 뜻을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활동 반경이 상당히 넓은 상인을 가리킵니다. 아들은 먼 곳에서 물건을 구입해서 팔거나 혹은 자기의 고향 물건을 먼 곳까지 가져가서 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금장색이나 향품장사처럼 동업 조합(guild)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이 복수명사는 이들이 동업 조합을 구성하고 있었으리라는 주장을 뒷받침해 줍니다.

성 모퉁이 누()는 성벽의 북동쪽 부분에 있었던 다락방 종류였던 것 같습니다. 마치 망대와 같은 기능을 했을 것입니다. 성벽 공사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특수한 직업에 종사했던 금장색과 상인들의 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8). 양문은 제사장들에 의해 복구된 바 있습니다(1).

하나님은 그 다음 사람을 찾으십니다. 모두가 연합하여 하나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십니다. 합심하여 하나님의 법을 지킴으로 사단의 공격을 막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그 다음을 찾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원하여 은혜로 하나님의 법을 지켜 거룩한 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느헤미야 3장 강해 다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느헤미야 31-332

요절 32 그 다음은 여리고 사람들이 건축하였고 또 그 다음은 이므리의 아들 삭굴이 건축하였으며

느헤미야 3징 강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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