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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역대하 29장 강해1 히스기야의 나라 사랑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9-11 00:00:00
조회수 : 5,933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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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9장 강해 히스기야의 나라 사랑
역대하 29장 1-역대하 29장 36
요절 역대하 29장 10.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니

[다윗처럼 정직히 행한 히스기야]

“1. 히스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십구 년 동안 다스리니라 그의 어머니의 이름은 아비야요 스가랴의 딸이더라 2.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실과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스물아홉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히스기야의 통치 기간은 공식적으로 B.C. 728년에서부터 B.C. 687년까지입니다 그의 42년간의 통치 기간에는 그가 병에서 회복되어 수명을 연장 받은 15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의 어머니 아비야는 스가랴의 딸입니다. 그는 아버지 아하스와 달랐습니다. 그는 조상 다윗이 한 모든 것을 그대로 본받아, 주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였습니다. 역대기에서 통치에 대한 평가를 말할 때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라고 평가받은 왕은 히스기야와 요시야(34:2) 뿐입니다.

(제사장 레위인과 성전을 성결케 한 히스기야)

“3. 첫째 해 첫째 달에 여호와의 전 문들을 열고 수리하고”

히스기야는 왕이 되던 그 첫 해 첫째 달입니다. 히스기야의 통치 첫해, 니산월(태양력으로는 3, 4월)을 가리킵니다. 히스기야가 통치권을 맡은 해라기보다는, 단독으로 통치권을 맡았던 해인 B.C. 725년에 해당합니다. 히스기야는 닫혔던 주의 성전 문들을 다시 열고 수리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전 문이 폐쇄된 것은 히스기야의 부친인 아하스 왕이 통치하던 때였습니다(28:24), 그는 여호와의 전 마당에 다메섹 신들의 우상을 세워 성전을 더럽혔습니다. 경건한 히스기야는 실질적인 통치권을 부여받자마자, 성전을 열고 복구하고 우상을 척결하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왕하 18:16에 따르면 히스기야는 그 당시 여호와의 전 문과 기둥에 금을 입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애라)

“4.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동쪽 광장에 모으고 5. 그들에게 이르되 레위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이제 너희는 성결하게 하고 또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그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없애라”

1-3절은 히스기야가 성전을 정결케 한 사건을 총괄적으로 요악한 것이고, 4절부터 19절까지는 성전을 정결케 하는 과정을 사건 서술의 형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또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성전 동쪽 뜰에 모았습니다. 동편 광장의 위치는 대체적으로 성전의 동편 외곽지에 있는 광장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이곳은 스 10:9의 하나님의 전(殿) 앞 광장이나, 느 3:268:1, 3, 16에 기록된 수문(수문) 앞 광장과 동일한 곳으로 추정됩니다. 동편 광장은 성전을 벗어나 수문으로 나가는 광장입니다. 이곳에서 백성들이 곧잘 모였습니다. 성전이 닫혀져 방치된 것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제사장과 레위인 무리가 거기에서 모였습니다, 이 광장은 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데 용이했습니다. 성전 마당조차 우상 숭배로 많이 더럽혀져 있어 모일 수 없었습니다.
5,15,16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당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가운데 우상으로 더럽혀져 있던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먼저 자신을 정결케 하도록 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모였을 가능성도 큽니다. 히스기야는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레위 사람들은 왕의 말을 잘 들으라고 합니다. 이제 그대들 자신을 먼저 성결하게 하라고 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성전의 일을 수행할 때, 몸을 정결케하는 일은 규례에 따른 의무였습니다(대상 15:12, 14). 이처럼 히스기야가 성전을 성결케하기 위하여 성결의 법에 다라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에게 먼저 자신들을 성결케 하라고 명령합니다. 여호와를 향한 신실함과 경외심을 가지라는 말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성결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히스기야는 이스라엘 전체의 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었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절대적이라는 이해가 있었습니다. 또 그대들의 조상이 섬긴 주 하나님의 성전을 성결하게 하라고 합니다. 더러운 것을 성소에서 말끔히 없애도록 하라고 명령합니다. 여기서 그 더러운 것은 불결함을 가리킵니다. 더러운 것은 우상 숭배와 관련하여 다메섹 단의 모양대로 만든 제단을 비롯해서, 온갖 우상 숭배를 위해 사용된 기구들과 그에 관계된 불결함을 말합니다. 유사어로 16절에 더러운 것이 나오는데 이 또한 우상의 가증스러운 것을 가리킵니다. 히스기야는 여호와의 전을 성결케 하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고자 하는 첫 행동 지침이었습니다.
본절에서 성소는 성전 내부의 건축물만을 가리키지 않고, 성전 전체 구석구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성전 제사와 관련되는 모든 장소와 사람, 그리고 성전 기구들을 총체적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성전 전체를 구석구석 정결케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버린 조상들의 죄를 인식하는 히스기야)

“6. 우리 조상들이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버리고 얼굴을 돌려 여호와의 성소를 등지고 7. 또 낭실 문을 닫으며 등불을 끄고 성소에서 분향하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므로”

히스기야는 먼저 조상들의 죄를 회개합니다. 그들의 조상이 죄를 지어, 주 우리의 하나님 앞에서 악한 일을 하였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열조란 아하스와 그 당시의 사람들을 가리키며 구체적인 범죄 내용은 7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에게서 얼굴을 돌이켰습니다. 성경에서 얼굴은 항상 인격의 표현으로 인격적인 관계와 연관되어 나타납니다. 상대에 대한 인격의 총체, 즉 마음의 표현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얼굴을 돌이켜라는 표현은 그들이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으며, 여호와에게서 그 마음이 떠났음을 나타냅니다다. 열조들은 주께서 거하시는 성소를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성전 제사를 폐하고, 우상 숭배하였습니다.. 삶의 방식까지도 우상을 적극적으로 섬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성전으로 드나드는 현관 앞 문들을 닫아 걸었습니다. 28:24 에 따르면 아하스는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여호와께 대한 모든 성전 예배를 완전히 폐지하였습니다. 조상들은 등불도 끄고, 분향도 하지 않고, 성소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왕하 16:10-16에는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 마당에서 계속해서 번제를 드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그러한 아하스의 번제는 다메섹의 신들에게 드려진 것이요. 여호와께 드려진 번제라고 할 수 없습니다. 히스기야는 아버지의 이런 죄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깨달은 히스기야)

“8.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진노하시고 내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신 것을 너희가 똑똑히 보는 바라 9. 이로 말미암아 우리의 조상들이 칼에 엎드러지며 우리의 자녀와 아내들이 사로잡혔느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주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해 진노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다를 내어버리사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28:19에서는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고 이와 유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놀람과 비웃음의 이 세 단어들은 불같은 여호와의 진노하심과 심판하심으로 당하는 극심한 고통을 나타냅니다. 이 말은 선지자들의 말 가운데 많이 나타나는 표현입니다. 특히 예레미야가 많이 사용했습니다. 유다가 아하스 치하에서 아람과 이스라엘에 의해 곤욕을 치른 것과 블레셋과 에돔으로부터 당한 수치스러운 패배, 그리고 앗수르의 디그랏 빌레셀에게 당한 고통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유다가 범죄로 인하여 겪게 된 고난을 내버려 두시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선하심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직접 보아서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죄로 인하여 조상들이 칼에 맞아 죽고, 유다의 자식들과 아내들이 사로잡혀 갔습니다. 히스기야는 나라가 어려움에 처한 사실을 하나님 편에서 정확히 해석하였습니다. 고난을 하나님 편에서 정확히 바라보아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와 연약을 세우고자 하는 히스기야)

“10.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니 11. 내 아들들아 이제는 게으르지 말라 여호와께서 이미 너희를 택하사 그 앞에 서서 수종들어 그를 섬기며 분향하게 하셨느니라”

이제 히스기야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그 맹렬한 진노를 유다에게서 거두시기를 바라십니다. 히스기야는 나라를 사랑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언약을 세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성전을 향한 열정이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성전을 건축할 마음을 품었던 다윗의 열정과 유사합니다(6:7대상 22:728:2).
역대기 저자는 여호와와 언약을 세우기 위해 히스기야가 성전을 성결케 했다고 합니다. 히스기야가 언약을 세운다는 것은 이미 주어진 언약의 의무를 수행한다는 의미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그리고 모세와 다윗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세운 언약을 새롭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의 언약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면 천대까지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에게는 삼사대까지 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들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도록 하라고 합니다. 게으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움츠리다라는 뜻의 단순수동 동사 미완료형으로서, 본구절은 너희 자신을 움츠리지 말라 또는 방심하지 말라는 뜻을 갖습니다. 방종하는 가운데 참여치 말라는 의미를 나타냅니다(욥 27:8). 히스기야는 중요한 시점에서 규모없이 아무렇게나 행동하거나, 어리석게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을 경계하라고 합니다. 주께서는 레위인들을 선택하셔서, 주께 분향하게 하시고, 백성을 인도하여 주께 예배드리게 하셨습니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이미 율법에 명시한 바(신 10:8)와 같이 특별히 구별된 직분자임을 가리킵니다(26:18대상23:13). 따라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하여금 그들이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위치를 알게 하여,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고, 그렇게 역할을 신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것임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개혁에 참여하는 레위 사람들)

“12. ○이에 레위 사람들이 일어나니 곧 그핫의 자손 중 아마새의 아들 마핫과 아사랴의 아들 요엘과 므라리의 자손 중 압디의 아들 기스와 여할렐렐의 아들 아사랴와 게르손 사람 중 심마의 아들 요아와 요아의 아들 에덴과 13. 엘리사반의 자손 중 시므리와 여우엘과 아삽의 자손 중 스가랴와 맛다냐와 14. 헤만의 자손 중 여후엘과 시므이와 여두둔의 자손 중 스마야와 웃시엘이라”

본문에서 그핫과 므라리와 게르손의 자손들을 열거함은 레위 족속 전체를 언급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대상 6:1,16-19). 그런데 각 자손들 가운데 2명씩 열거한 것은 적어도 그들이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거나, 의도적으로 선출된 대표들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레위 사람들이 나서니, 고핫의 자손 가운데서는 아마새의 아들 마핫과 아사랴의 아들 요엘이 나왔습니다. 마앗은 그핫 자손 사무엘의 계보에 나타납니다(대상6:35). 요엘은 마핫과 동일한 계보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대상 6:36). 므라리의 자손 가운데서는 압디의 아들 기스와 여할렐렐의 아들 아사랴가 나왔습니다. 기스는 므라리 자손 에단의 계보에 나타납니다(대상 6:44). 아사랴는 31:13에서 하나님의 전을 관리하는 자로 나타납니다. 게르손 자손 가운데서는 심마의 아들 요아와 요아의 아들 에덴이 나왔습니다. 에덴은 레위인의 족보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그는 백성이 드린 예물을 그 형제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하였습니다(31:12ff.). 엘리사반의 자손 가운데서는 시므리와 여우엘이 나왔습니다. 엘리사반은 모세 시대의 그핫 사람들의 족장으로서(출 6:22민 3:30대상15:8), 그핫, 므라리, 게르손과 동등한 위치에서 항상 독립된 계보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시므리는 므라리의 자손 중 호사의 아들의 이름과(대상 26:10), 시므온 족속 중에서(대상 4:37) 그 이름이 나타납니다. 아삽의 자손 가운데서는 스가랴와 맛다냐가 나왔습니다. 스가랴와 맛다냐 두 이름은 다른 곳에서도 아삽 자손의 계보 가운데 함께 나타납니다(20:14느 11:1712:35,41). 아삽은 헤만, 여두둔과 함께 노래와 음악을 맡은 족장들입니다(대상 25장). 헤만의 자손 가운데서는 여후엘과 시므이가 나왔습니다. 여우엘은 레위인의 명단에 자주 나타나는 이름인데, 엘리사반과 함께 언급된 곳은 본문 밖에 없습니다. 여두둔의 자손 가운데서는 스마야와 웃시엘이 나왔습니다. 스마야는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이름으로,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도 나옵니다(대상9:16). 웃시엘은 개인의 이름으로는 드물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헤만 자손의 음악 담당자로 이름이 나오고(대상 25:4), 레위 족속의 이름으로 나타납니다(대상 15:10)

(자신과 성전을 깨끗게 한 레위 사람들)

“15. 그들이 그들의 형제들을 모아 성결하게 하고 들어가서 왕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명령한 것을 따라 여호와의 전을 깨끗하게 할새 16. 제사장들도 여호와의 전 안에 들어가서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을 끌어내어 여호와의 전 뜰에 이르매 레위 사람들이 받아 바깥 기드론 시내로 가져갔더라”

이들이 동료 레위 사람들을 모아 성결 예식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형제란 레위 지파의 지도자 14명과 그의 가계에 속한 모든 레위인들을 가리킵니다. 이로 볼때, 히스기야의 개혁 운동은 모든 민족들의 호응을 얻는 대역사로 진행되었을 것입니다. 왕이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성전 안으로 들어가서, 주의 율법에 따라 주의 성전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명령은 모세의 율법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백성들은 히스기야의 명령을 여호와의 명령과 동일하게 여겼습니다. 온 회중이 이에 동의했을 것이 확실합니다. 제사장들이 주의 성전을 깨끗하게 하려고 그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전절(前節)에서는 레위인들이 성전의 외부와 건물 전체를 성결케 하였고(15절). 본절에서는 제사장들이 성전 내부, 즉 성소와 지성소를 성결케 하였습니다. 성소에는 재사장들만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레위인들은 그곳을 성결케 하였다고 기록하고 일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이 주의 성전 안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을 주의 성전의 뜰로 끌어내어 놓으면, 레위 사람들이 그것들을 성 밖 기드론 골짜기로 가져다 버렸습니다. 여기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 간의 역할 분담이 잘 이루어져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전을 16알 동안 성결케 함)

“17. 첫째 달 초하루에 성결하게 하기를 시작하여 그 달 초팔일에 여호와의 낭실에 이르고 또 팔 일 동안 여호와의 전을 성결하게 하여 첫째 달 십육 일에 이르러 마치고”

첫째 달 초하루에 성전을 성결하게 하는 일을 시작하여, 여드렛날에는 주의 성전 어귀에 이르렀습니다. 또 여드레 동안 주의 성전을 성결하게 하는 일을 하여, 첫째 달 십육일에 일을 다 마쳤습니다. 처음 8일 간은 성전 마당에 있는 것들을 깨끗이 제거하여 태웠고, 그리고 또 8일 간은 성전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정결케 하여, 약16일 만에 성결케 하는 일을 마쳤습니다. 이는 니산 월 14일에 시작되는 유월절과 이틀이 겹치게 됩니다. 따라서 유월절 절기를 염두에 두고 성전을 청결케 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성결케 하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다쉬는 구별하다, 성스럽게 지키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여호와의 전을 깨끗케 하는 작업을 통해서 그들은 여호와의 거룩하심올 인정하였으며, 여호와 예배가 외적으로 회복되었음을 나타냅니다.

(히스기야왕에게 개혁을 보고함)

“18. 안으로 들어가서 히스기야 왕을 보고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온 전과 번제단과 그 모든 그릇들과 떡을 진설하는 상과 그 모든 그릇들을 깨끗하게 하였고 19. 또 아하스 왕이 왕위에 있어 범죄할 때에 버린 모든 그릇들도 우리가 정돈하고 성결하게 하여 여호와의 제단 앞에 두었나이다 하니라”

포로기 이전과 이후의 연속성을 강조합니다. 레위 사람들이 히스기야 왕에게 돌아가서, 다음과 같이 보고하였습니다. 그들은 왕궁에 있는 히스기야 왕에게로 가서 모든 일의 경과를 자세히 보고하였습니다. 주의 성전 전체와, 번제단과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와, 거룩한 빵을 차리는 상과, 거기에 딸린 모든 기구를,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아하스 왕께서 왕위에 계시면서 죄를 범할 때에 버린 모든 기구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다시 봉헌하였습니다. 그 모든 기구를 주의 단 앞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범죄할 때에 모든 기구는 아하스가 훼파했거나, 내다 버린 전(殿)의 기구들을 말합니다.(28:24), 구체적으로 놋제단과 놋바다, 그리고 놋대야 등입니다(왕하16:14,17). 히스기야는 이것들을 다시 수리하고 복구하여 원래 놓아야 할 위치인 여호와의 단, 즉 빈제단 앞에 두었습니다.

[번제와 속죄제를 드린 히스기야]

“20. ○히스기야 왕이 일찍이 일어나 성읍의 귀인들을 모아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서 21. 수송아지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와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숫염소 일곱 마리를 끌어다가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제물로 삼고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을 명령하여 여호와의 제단에 드리게 하니”

히스기야 왕은, 성전 청소를 한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도성에 있는 대신들을 불러모아, 주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여기서 귀인들이란 주로 방백들(24:1730:1-4)을 말합니다. 이렇게 귀인들을 불러 모으는 것은 국가적인 일이 있을 때 통례적으로 흔히 있는 일입니다.
본절에는 히스기야가 제사를 위해 드린 속죄 제물을 세부적으로 열거하고 있습니다. 왕가의 죄와 유다 백성의 죄를 속죄받으려고, 그는 황소 일곱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와 어린 양 일곱 마리와 숫염소 일곱 마리를 끌어다가, 속죄제물을 삼았습니다.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과 어린 양 일곱은 번제를 위한 제물입니다(24절). 히스기야는 온전한 순종을 결단합니다. 숫염소 일곱은 속죄 제물입니다(23절). 회개하고 죄사함을 위한 노력을 합니다. 여기서 일곱이라는 수는 완전하고 구별된 의미를 가진 수이기 때문에, 여호와께 드리는 제물의 수를 일곱으로 하고있습니다(민 28:11 ff. 겔 45:23).

한편, 이 두 종류의 제사는 성전을 성결케 하여 재봉헌하는 의미를 지닙니다.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주의 단에 드리게 하였습니다. 히스기야는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제물을 드리게 하엿습니다. 일반적으로 번제는 여호와와 화해하기 위한 제물이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표합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함을 의미합니다.
제사장이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도 번제를 드렸습니다(레 1:3, 414:2016:24). 따라서 히스기야가 번제물을 나라와 성소와 유다를 위하여 속죄 제물을 삼은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위한 제사를 의미합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백성이 총체적으로 여호와와 언약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예배에서 번제는 필수적이었습니다. 그것은 백성들의 일반적인 죄를 용서해 주어 평안을 주는 기능을 가졌습니다. 속죄제는 특정한 범죄를 용서받기 위해 드려졌습니다. 따라서 여기서의 제사는 단순히 성전의 재봉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아하스 때에 이스라엘 전체가 범죄한 모든 일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사죄를 구하는 제사입니다.

(번제와 속죄제를 드림)

“22. 이에 수소를 잡으매 제사장들이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리고 또 숫양들을 잡으매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또 어린 양들을 잡으매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23. 이에 속죄제물로 드릴 숫염소들을 왕과 회중 앞으로 끌어오매 그들이 그 위에 안수하고 24 제사장들이 잡아 그 피를 속죄제로 삼아 제단에 드려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속죄하니 이는 왕이 명령하여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음이더라”

사람들이 먼저 황소를 잡으니, 제사장들이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렸습니다. 제사장이 번제 의식의 규례를 따라 수소를 잡고 그 피를 받아 제단에 뿌리고, 또한 숫양과 어린 양도 그렇게 하였습니다. 수소, 또는 수송아지의 희생제사에 관한 최초의 언급은 출 24:5에서 발견되어지고, 출 29:1,3레4:38:2,14 등에서도 발견됩니다. 숫양의 희생 제사는 창 22:13에서 최초로 언급되는데,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 숫양으로 제사하였습니다. 숫양의 희생 제사는 출29:15-21과 레 5:158:2, 22 등에서도 발견됩니다. 어린 양의 희생 제사는 출12:3-7과 출 29:38 등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숫양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다음에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제단에 뿌렸습니다.
마지막으로, 속죄제물로 드릴 숫염소를 왕과 회중 앞으로 끌어왔습니다. 숫염소는 일반적으로 번제로 드려졌습니다(레 1:103:12). 숫염소가 속죄제로 드려진 사실은 본절에서 처음으로 언급되며, 그 이후에 스 8:35에서 한번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 위에 손을 얹고, 제사장들이 제물을 잡아, 그 피를 속죄제물로 제단에 부어서, 온 이스라엘의 죄를 속죄하였습니다. 왕과 회중은 제사장이 이끌어 온 숫염소의 머리에 손을 얹어 속죄제의 의식올 거행했습니다.
본래 제물로 드려지는 짐승의 머리에 안수하는 의식은 번제가 드려질 때 행하여졌습니다(레 1:4). 그러나 여기서는 안수는 속죄제를 강조하기 위해서 행해졌습니다. 아하스로 말미암아 저질러진 여호와께 대한 범죄를 염두에 두고, 이스라엘 전체를 위한 구속을 강조함으로써 속죄제를 더욱 의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서, 온 이스라엘을 속하라는 어명을 내렸습니다. 속죄제의 피는 번제의 피와는 아주 다르게 처리됩니다. 번제의 피는 단에 뿌리는 반면에(22절), 속죄제의 피는 번제단 뿔에 손가락으로 찍어 바르고 그 단 밑에 쏟아버렸습니다.(레 4:25, 34).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라는 말은 단순히 남유다만을 가리키지 않고 이스라엘 12지파 모두를 가리킵니다(30:5). 유다를 위하여 드린 것(21절)과 대조를 보이는데, 히스기야 왕은 속죄 받아야 될 대상을 북왕국까지 확대하고 있었습니다.
이와같이 히스기야의 속죄 행위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 시행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이 전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의 합법적인 성소였기 때문입니다. 속죄하니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계속해서 덮어 버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고 주로 보상하다(atone), 화해하다(reconcile) 등의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 단어는 역청으로 칠하여 덮다, 구속하다, 화해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강조형 능동 부정사입니다. 이러한 제사는 그리스도의 구속을 바라보게 하는 임시적인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구약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희생 제물을 통한 구속으로 죄가 없다고 인정되었으며 이러한 속죄 제사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바른 관계가 유지되었습니다.

(찬양의 제사를 드린 히스기야)

“25. ○왕이 레위 사람들을 여호와의 전에 두어서 다윗과 왕의 선견자 갓과 선지자 나단이 명령한 대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게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선지자들로 이렇게 명령하셨음이라”

왕은, 주께서 다윗 왕에게 지시하신 대로 모든 일을 하였습니다. 본문을 원문대로 직역하면, 여호와의 손 안에서 그의 선지자들의 손으로 하신 명령 때문이라(For in the hand of YHWH the command by thehand of His prophets)는 말입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손과 그의 선지자의 손은 설명적 동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선지자들의 중개에 의하여 하나님의 명령이 수행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 선지자들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에는 손이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어떤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잡는 힘을 상징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지시 아래 모든 일이 수행되었음을 말합니다. 선지자들이라는 호칭 속에는 다윗이 포함되지 않습니다. 물론 8:14에서는 다윗을 가리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기서는 갓과 나단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손, 권능 아래 있던 선지자들의 명령에 의해서 다윗이 이 일들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본절의 선지자라는 호칭은 다윗보다 선지자들을 지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본절은 하나님을 그 주체로서 더욱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레위 사람들을 성전에 두어서 악기를 연주하게 하였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로 하여금 찬양케 하고 악기를 연주토록 한 사람은 다윗이었습니다(8:14). 이러한 다윗의 사역에 선지자 갓과 나단이 관여했다는 언급은 본절 이외의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짐작컨대 갓과 나단은 성전 예배와 레위인들을 24반차로 나누는 일에 관여했을 것입니다(대상 29:29). 히스기야는 레위 사람들을 시켜서, 주의 성전에서 심벌즈와 거문고와 수금을 연주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주께서 다윗 왕의 선견자 갓과 나단 예언자를 시켜서, 다윗 왕에게 명령하신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속죄의 제사를 드린 후에 찬양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림)

“26. 레위 사람은 다윗의 악기를 잡고 제사장은 나팔을 잡고 서매 27. 히스기야가 명령하여 번제를 제단에 드릴새 번제 드리기를 시작하는 동시에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 나팔을 불며 이스라엘 왕 다윗의 악기를 울리고 28. 온 회중이 경배하며 노래하는 자들은 노래하고 나팔 부는 자들은 나팔을 불어 번제를 마치기까지 이르니라”

그리하여 레위 사람들은 다윗이 만든 악기를 잡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잡았습니다. 다윗의 악기는 다윗이 만들어 예배에 사용케 했던 악기들을 가리키는데(대상23:5), 앞절(25절)에서 열거한 악기들입니다(대상 15:16 참조). 제사장이 나팔을 부는 일은 제사장의 임무입니다(5:12대상15:2416:6). 히스기야가 번제를 제단에 드리라고 명령하니, 번제가 시작되는 것과 함께, 주께 드리는 찬양과, 나팔 소리와 이스라엘의 다윗 왕이 만든 악기 연주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여호와의 시로 노래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쉬르-야웨는 문자 그대로 여호와의 노래(NASB)를 의미하는데, 히스기야 당시에 정경화된 시편들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다윗의 악기를 울리고는 다윗의 악기에 의하여인데, 악기의 연주가 회중의 노래나 제사장의 나팔 연주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온 회중이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번제를 다 드리기까지 노래하는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고, 나팔 부는 사람들은 나팔을 불었습니다. 모든 회중들의 경배가 있으면서 노래와 나팔 연주가 계속되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다윗의 악기를 연주하는 것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노래하는 자 중에 다윗의 악기를 연주하는 자가 있었음을 의미합니다(23:12 대상 25:1ff.).

(하나님을 찬송하게 함)

“29. ○제사 드리기를 마치매 왕과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다 엎드려 경배하니라 30. 히스기야 왕이 귀인들과 더불어 레위 사람을 명령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매 그들이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예배하니라”

제사를 마친 다음에, 왕과 온 회중이 다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번제와 속죄 제사를 마치자, 왕과 그 함께 있는 자가 다 엎드려 경배하여 예배의 절정을 이룹니다. 경배하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단지 육체적인 자세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자세를 말합니다. 존경과 경외가 커지고, 충성심이 점점 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는 제사에 참여한 자들이 심령에 큰 감흥이 있어서 우러난 행동입니다.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 히스기야 왕과 대신들이 레위 사람들을 시켜서, 다윗과 아삽 선견자가 지은 시로 주를 찬송하게 하니,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경배하였습니다 그들은 기쁨으로 찬양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詩)는 27절에서 이미 언급한 여호와의 시를 달리 표현한 것입니다. 히스기야 시대에 정경화되어 있던 시편들 가운데는 다윗의 시편인 1권과 4권, 그리고 솔로몬의 시편인 2권(시 42-72편), 선견자 아삽의 시(시 50, 73-83편) 등이 포함됩니다. 역대기 저자는 본절에서 레위인들이 바로 이러한 시편들로 하나님을 찬양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삽을 선견자라고 불렀는데, 성경에서는 아삽의 자손들이 성전 예배시에 노래하는 직분을 맡은 레위인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20:14대상 6:3915:1925:1, 2스 2:413:10느 7:4411:2212:46). 이 선견자라는 칭호는 레위인 헤만(대상 25:5)과 여두둔(35:15)에게도 주어졌습니다.

(감사예물을 드림)

“31. ○이에 히스기야가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제 스스로 몸을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께 드렸으니 마땅히 나아와 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으로 가져오라 하니 회중이 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오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또한 번제물도 가져오니 32. 회중이 가져온 번제물의 수효는 수소가 칠십 마리요 숫양이 백 마리요 어린 양이 이백 마리이니 이는 다 여호와께 번제물로 드리는 것이며 33. 또 구별하여 드린 소가 육백 마리요 양이 삼천 마리라”

히스기야가 나서서 이제 제사장들이 몸을 깨끗하게 하여서, 주께 거룩하게 구별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이제 몸을 깨끗케 하여 여호와께 드렸다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너희가 여호와께로 향한 너희 손을 가득 채웠으니(you have filled your hand to YHWH, Green)입니다. 이 구문은 주로 무엇을 구별하여 여호와께 봉헌하는(consecrate)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문을 앞서 드린 제사와 연관지워 볼 때, 제사에 참여한 모든 회중과 제사장, 레위인이 성결케 되었음을 가리킵니다.
히스기야는 제사와 찬양, 그리고 온 회중과 왕의 경배를 마치자, 백성들로 하여금 화목제물과 감사제물을 여호와의 전에 바치도록 권고했습니다. 백성들은 가까이 나아와, 제물과 감사제물을 주의 성전으로 가지고 오라 하고 선포하였습니다. 제물과 감사 제물에서 제물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제바힘은 희생 제물 전체를 가리키는 총체적인 개념입니다. 여기서는 화목제의 성격을 지닌, 감사를 표현하기 위한 희생 제물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레 7:11-21, 29-36). 감사 제물은 이미 받은 어떤 특별한 은혜 때문에 드리는 희생제물을 가리킵니다. 여기서는 성전에서 여호와의 예배가 다시 새롭게 시작된 것을 기뻐하여 드린 제물을 말합니다. 이 희생 제물은 기름을 떼어서 제단 위에서 태우고, 가슴과 오른쪽 넓적다리 부분은 제사장에게 바치며, 나머지 부분은 제물을 드리는 자들이 먹게 되는데, 유월절 절기 때와 유사하게 치러 집니다. 감사제물은 화목제물과 유사합니다. 본래 번제와 속죄제의 경우, 제물을 드리는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돌아가지 않습니다. 속죄제의 경우 태우지 않는 부분이 제사장에게 돌려졌으며, 더욱이 번제는 완전히 태워지는 것으로 그 제물은 마음에 원하는 자만이 바칠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드디어 회중이 제물과 감사제물을 가져 왔습니다. 더러는 그들의 마음에 원하는 대로 번제물을 가져 오기도 하였습니다. 회중이 가져 온 번제물의 수는, 수소가 칠십 마리, 숫양이 백 마리, 어린 양이 이백 마리였습니다. 이것은 다 주께 번제물로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번제물과는 달리 구별하여 드린 제물은, 소가 육백 마리, 양이 삼천 마리였습니다. 회중들이 스스로 자원하여 가져 온 번제물의 수효가 엄청나게 많은 것은 당시에 회중들의 신앙이 얼마나 열정적이었고 순수하였던가를 잘 말해줍니다. 여기서 언급된 동물들은 감사 제물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감사 제물들을 대부분 백성들이 먹고 즐겼을 것입니다.

(제사장이 부족함)

“34. 그런데 제사장이 부족하여 그 모든 번제 짐승들의 가죽을 능히 벗기지 못하는 고로 그의 형제 레위 사람들이 그 일을 마치기까지 돕고 다른 제사장들이 성결하게 하기까지 기다렸으니 이는 레위 사람들의 성결하게 함이 제사장들보다 성심이 있었음이라”

그런데 번제로 바칠 짐승을 다 잡아 가죽을 벗기기에는 제사장의 수가 너무 모자랐습니다. 레 1:6에 따르면 번제로 드릴 짐승을 잡고 그 가죽을 벗기며 각(脚)을 뜨는 일은 예배자들이 해야할 일입니다. 그런데, 역대기 기자는 이 일을 제사장의 임무로 간주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레위기와의 차이에 대하여 보통 두 가지 견해가 지배적인데, 제물을 공적으로 드릴 때는 그 일을 제사장들이 수행하였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따라서 이 일은 특징적인 제사장의 직무가 아니기 때문에 레위인들이 도울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탈무드 문학에서는 제사장들이 도살자들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당시 이 일을 맡아 볼 제사장들이 부족했던 것은 번제 제물의 수가 너무 많았거나(32,33절), 아하스 왕 이후로 우상 숭배로 한 제사장들(28:24,25왕하 16:15,1618:4)이 히스기야 왕으로부터 직무 정지를 받아 그 수가 감소되었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래서 우상 숭배에 가담한 제사장들은 다시 성결함을 받아야 했던 것입니다. 제사장이 이 일을 끝낼 때까지, 성결 예식을 마친 제사장들이 보강될 때까지, 제사장들의 친족인 레위 사람들이 제물 잡는 일을 거들었습니다. 사실, 자신들의 성결을 지키는 일에는, 제사장들보다는 레위 사람들이 더욱 성실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레위인들보다 훨씬 더 정치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고 또 그들이 국정 전반에 크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기 때문에, 레위인들보다 오히려 덜 종교적이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에도 소극적이었을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비록 직분때문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려고 했어도, 레위인들보다 성심이 부족했던 것은 그들이 아하스의 우상 숭배에 더 많이 관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쁨으로 드림)

“35. 번제와 화목제의 기름과 각 번제에 속한 전제들이 많더라 이와 같이 여호와의 전에서 섬기는 일이 순서대로 갖추어지니라 36.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셨으므로 히스기야가 백성과 더불어 기뻐하였더라”

본절에서는 위에 언급된 일 이외에 다른 많은 일들로 제사장들이 분주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단 위에 피를 뿌리고 제물을 태우는 일 외에 감사 제물과 화목 제물, 자원하는 번제물(31절) 등을 처리해야 했기 때문에 모든 번제 짐승의 가죽을 벗기는 일까지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제물을 다 태워 바치는 번제물도 바쳐야 할 뿐 아니라, 이 밖에도 화목제물로 바치는 기름기도 태워 바쳐야 하였습니다. 번제와 함께 드리는, 부어 드리는 전제의 제사도 제사장들이 맡아서 하였습니다. 전제(the drink-offering)에는 포도주가 사용되었데 피를 붓는 것처럼 제단 밑에 부었던 것 같습니다(민 15:1-16). 이렇게 하여, 주의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일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성전을 성결케 하고 재봉헌하는 일 뿐만 아니라 정규적인 성전 예배가 완전히 부활되었습니다. 예배가 완성된 것이니다. 일이 이렇듯이 갑작스럽게 되었어도, 하나님이 백성을 도우셔서 잘 되도록 하셨으므로, 히스기야와 백성이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을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은혜로 보고 그 일이 속히 이루어진 것을 히스기야와 백성들이 기뻐하였다는 뜻입니다. 이와같이 사악한 아하스의 배교(背敎)로 인하여 우상을 섬기던 상태에 있다가 여호와께 대한 열심과 충성의 상태로 급속하게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아하스 치하에서도 히스기야와 같은 신실한 자들을 예배해 두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와 같은 오묘한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그들은 기뻐한 것입니다. 이처럼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은 인간의 시각에서 볼 때는 갑작스럽게 된 일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오랜 준비 과정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잠 16:1).
역대하 29장 강해 히스기야의 나라 사랑
역대하 29장 1-역대하 29장 36
요절 역대하 29장 10. 이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더불어 언약을 세워 그 맹렬한 노를 우리에게서 떠나게 할 마음이 내게 있노니
역대하 29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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