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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나훔 1장 강해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10-20 00:00:00
조회수 : 3,273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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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훔 1장 강해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

나훔 11-나훔 115

요절 나훔 1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오늘부터 나훔서를 공부하려고 합니다. 이 나훔서는 교만하고 사악한 앗수르에 대해 담대히 저주와 멸망을 선포하는 책입니다. 나훔이라는 이름의 뜻은 위로자인데 앗수르의 가혹한 통치와 억압 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무한한 위로를 증거하고 있습니다(1:2-8).

나훔과 비슷한 이름이 느헤미야이지요. ‘여호와께서 위로하신다또는 여호와의 위로라는 뜻이지요. 이 나훔은 엘고스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 엘고스는 유다 남쪽 지방의 한 성읍인 시므온 지역에 속한 마을로 추정됩니다. 그 외에는 나훔에 대해 별로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그가 예언 활동을 한 시기는 주전 633-612년으로 추정합니다.

나훔서는 이미 북왕국 이스라엘이 함락되었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간 이후에 유대 땅에서 선포되었습니다. 청자는 물론 앗수르 나라의 백성들, 특히 니느웨 사람들 그리고 유다 백성들입니다. 주전 약 700년경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니느웨를 수도로 정하였는데 앗수르는 612년에 페르시아에 의해 멸망됩니다.

이 앗수르는 주전 722년 이스라엘이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당할 때 이스라엘을 심판하는 도구였습니다. 이 앗수르가 이제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나훔 선지자가 예언하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앗수르 군대는 매우 잔인하고 포악하기로 유명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서도 나훔 선지자는 전혀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않고 담대하게 그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살펴 본 오바댜서와 같이 나훔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교만하고 사악한 앗수르 족속들에게 내려질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는 동시에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금 확증합니다. 그러므로 이 나훔서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 심판과 구원을 다시금 말씀하십니다.

1장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은 서론이며 2-8절은 심판주이신 하나님의 권능을 말씀합니다. 9-15절은 니느웨의 심판과 동시에 유다의 구원에 대해 말씀합니다.

 

(니느웨가 심판 받게 된 이유)

 

“1. 니느웨에 대한 경고 곧 엘고스 사람 나훔의 묵시의 글이라

 

이것은 엘고스 사람 나훔이, 니느웨가 형벌을 받을 것을 내다보고 쓴 묵시록입니다. 나훔은 죄악으로 가득 찬 니느웨에 대해 멸망을 선포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음을 선포합니다.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살던 백성들은 나훔서가 기록되기 100년 전에는 요나의 경고를 받아들여 회개함으로써 하나님의 심판을 모면한 바가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다시 하나님의 뜻을 배반하고 더욱 교만해져서 결국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개역 성경에 나오는 경고(oracle)’라고 하는 단어는 문자적으로 무거운 짐(burden)’이란 뜻이 있습니다.(23:5 왕하 5:17)

이 나훔의 예언은 니느웨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선포가 될 것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니느웨는 티그리스 강변에 위치한 도시로 노아의 아들인 함의 손자 니므롯 (10:11-12)에 의해 창건된 도시를 기초로 하여 세워진 성읍이었다고 합니다.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는 하나님]

 

“2. 여호와는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르는 자에게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

 

2-8절은 심판주이신 하나님의 권능과 언약을 지키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특히 자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노래하면서(18:29 3:4-7)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2), 오래 참으시고 (3), 전능하시며 (3-6), 선하시며 (7), 거룩하신 분 (8)으로 묘사합니다.

나훔은 니느웨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원인과 그 필연성을 밝히고 있습니다. 주님은 죄에 대해서 질투하시며 원수를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주는 원수를 갚으시고 진노하십니다. 당신을 거스르는 자에게 원수를 갚으시며, 당신을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하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기에 인간의 죄에 대해 질투하시며 보복하십니다. 여기서 질투(투기)한다는 것은 대적들에 대한 하나님의 열심 또는 강력한 감정을 뜻합니다.

아가서에는 하나님의 질투는 스올처럼 잔인하다고 하셨습니다. 보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반복적이며 점증법적인 표현을 통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보수하신다는 의미는 곧 그 백성의 대적들 앞에서 그 백성의 권익을 옹호해주신다는 말입니다. 그분이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분이 자기 백성에 대해 질투하시는 분이시며, 자기 백성을 보호해 주시려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심판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에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도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죄 때문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자에게는 용서의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들, 하나님의 사랑과 그 법을 무시하는 자들에게는 확실하고도 철저한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죄에 대해서 벌하시는 하나님)

 

“3.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 4. 그는 바다를 꾸짖어 그것을 말리시며 모든 강을 말리시나니 바산과 갈멜이 쇠하며 레바논의 꽃이 시드는도다 5. 그로 말미암아 산들이 진동하며 작은 산들이 녹고 그 앞에서는 땅 곧 세계와 그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들이 솟아오르는도다 6. 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주는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고 권능도 한없이 많으십니다. 죄인을 결코 사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십니다. 회개하기까지 오래참고 기다리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칫 이 세상의 악한 자들이 즉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지 아니할 때 실망하기 쉽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김일성을 그렇게 호의호식하도록 허락하셨을까, 김정일을 왜 당장 심판하시지 않을까 의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에 분명히 그 공의는 드러날 것입니다.

주님은 절대로, 죄를 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는 않으십니다. 회오리바람과 폭풍은 당신이 다니시는 길이요, 구름은 발 밑에서 이는 먼지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권능이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회오리바람과 폭풍이 얼마나 위협적인지는 요즈음 카리브 해 연안에 부는 허리케인을 보면 잘 알 수 있겠지요. 이제 니느웨를 심판하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황폐케 하는 회오리바람과 폭풍처럼 파괴해 버리시는 분이 되실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다를 꾸짖어 말리시고, 모든 강을 말리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 심판이 얼마나 두려운가에 대해 여러 가지 자연 현상에 대한 하나님의 통치하심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바다를 꾸짖어 말리우심은 홍해 사건을 암시하고 강을 말리우심은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너던 사건을 암시합니다. 바산과 갈멜의 숲이 시들며, 레바논의 꽃이 시듭니다. ‘바산은 팔레스틴 동북쪽에 위치한 산으로서 비옥한 토양과 방대한 목장으로 유명합니다(4:1). 갈멜은 팔레스틴의 서쪽에 있어 포도 재배로 유명합니다. 레바논은 북쪽에 있어 꽃과 나무로 유명했습니다. 이 세 지역은 이스라엘 전 국토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지역이었는데 이들이 쇠한다는 것은 곧 팔레스틴의 모든 영광이 쇠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앗수르의 심판을 선포하던 나훔 선지자가 팔레스틴을 갑자기 언급하는 것은 이 팔레스틴을 하나의 모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주 앞에서 산들은 진동하고, 언덕들은 녹아 내립니다. 주의 진노가 불같이 쏟아지면, 바위가 주 앞에서 산산조각 납니다. 그의 앞에서 땅은 뒤집히고,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곤두박질합니다.

주님께서 진노하실 때에 아무도 감히 버틸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분노를 터뜨리실 때에 아무도 감히 견딜 수 없습니다. 나훔은 수사학적인 질문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할 자가 없을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왕하 1835을 보시면 산헤립의 군대장관은 다음과 같이 히스기야를 모욕합니다. “여러 민족의 신들 가운데서, 그 어느 신이 내 손에서 자기 땅을 구원한 일이 있기에, 주 너희의 하나님이 내 손에서 예루살렘을 구원해 낸다는 말이냐?” 그러나 최후의 승리자는 앗수르가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이제 머지않아 배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전하신 산성임)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8.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주는 선하시므로, 환난을 당할 때에 피할 피난처가 되십니다. 주께 피하는 사람은 주께서 보살펴 주십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동시에 그를 의뢰하는 자에게 선하시며 신실하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자기들이 요새 안에 있으니 아주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시는 그 위로와 안전함에 비한다면 그들의 안전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잠시 잠깐의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침략을 받을 때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사야에게 기도부탁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손에 피한방울 묻히지 않고 185천의 앗수르의 대군을 물리치게 도우셨습니다. 히스기야에게 하나님은 산성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범람하는 홍수로 쓸어 버리시고, 원수들을 흑암 속으로 던지십니다. 여기서 범람하는 홍수는 앗수르의 수도였던 니느웨를 침략하려고 오는 바사, 즉 페르시아를 가리킵니다. 이와 동시에 니느웨가 멸망할 때 실제로 티그리스 강과 고스르 강이 범람하여 니느웨 성벽의 일부가 유실되었다고 합니다.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겠다는 말씀은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간들의 영적 상태, 그들의 피할 수 없는 패배, 그리고 궁극적인 영원한 심판 등에 대한 상징입니다.

 

(유다에 재난이 다시 없음)

 

“9. 너희는 여호와께 대하여 무엇을 꾀하느냐 그가 온전히 멸하시리니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그들이 아무리 주를 거역하여 음모를 꾸며도 주께서는 그들을 단번에 없애 버리실 것이니, 두 번까지 수고하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9-15절은 니느웨에 대한 심판과 유다의 구원에 대해 말씀합니다. ‘두 번까지 수고하지도 않으실 것이다는 표현은 비록 앗수르가 북왕국 이스라엘은 멸망시켰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는 남왕국 유다는 멸망시킬 수 없을 것임을 뜻합니다. 사실 앗수르 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려던 자신의 계획이 실패한 후 앗수르는 예루살렘을 재공격할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사악한 산헤립의 죽음)

 

“10. 가시덤불 같이 엉크러졌고 술을 마신 것 같이 취한 그들은 마른 지푸라기 같이 모두 탈 것이거늘 11. 여호와께 악을 꾀하는 한 사람이 너희 중에서 나와서 사악한 것을 권하는도다

 

그들은 가시덤불처럼 엉클어지고, 술고래처럼 곯아떨어져서, 마른 검불처럼 다 타 버릴 것입니다. 가시덤불처럼 엉클어지고라는 표현은 앗수르인(니느웨인)들이 서로를 해치며, 하나님과 그의 백성에게 더욱 성가신 존재였다는 말입니다. 주를 거역하며 음모를 꾸미는 자, 흉악한 일을 부추기는 자가, 바로 너 니느웨에게서 나왔습니다. ‘음모를 꾸미는 자는 앗수르의 산헤립 왕을 가리킵니다.(재위 주전 705-681) 그는 주전 701년에 유다를 위협하고 하나님을 모욕하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을 함락하지 못했습니다.(36-37) 그는 고국에 돌아가 아들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힌 앗수르의 멸망)

 

“12.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그들이 비록 강하고 많을지라도 반드시 멸절을 당하리니 그가 없어지리라 내가 전에는 너를 괴롭혔으나 다시는 너를 괴롭히지 아니할 것이라 13. 이제 네게 지운 그의 멍에를 내가 깨뜨리고 네 결박을 끊으리라

 

여호와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힘이 막강하고 수가 많을지라도, 잘려서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비록 여호와가 이스라엘을 괴롭혔으나, 다시는 이스라엘을 더 괴롭히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가 이제 이스라엘에게서 그들의 멍에를 꺾어 버리고, 그들을 묶은 사슬을 끊으실 것입니다. 이제 여호와를 대적하는 무리들이 멸망당한 후 하나님의 백성들은 위로와 위안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이 약속의 말씀은 나 주가 말한다.’라는 문구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동안 어느 누구의 침략도 받아 본 적이 없는 초강대국 앗수르와 그 수도 니느웨에 대해 선포하신 이 경고의 메시지가 반드시 성취될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앗수르의 마지막 왕이었던 앗수르바니팔(주전669-627)은 이집트를 정복한 후 유다 왕 므낫세에게 조공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멍에를 이제 여호와 하나님께서 깨뜨리시며 그 결박을 끊으시겠다고 선포합니다.

 

(앗수르의 완전한 멸망)

 

“14. 나 여호와가 네게 대하여 명령하였나니 네 이름이 다시는 전파되지 않을 것이라 내가 네 신들의 집에서 새긴 우상과 부은 우상을 멸절하며 네 무덤을 준비하리니 이는 네가 쓸모 없게 되었음이라

 

주님께서 니느웨를 두고 명하신 것이 있습니다. 니느웨에게서는 이제, 그의 이름을 이을 자손이 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니느웨 산당에서 새겨 만든 신상과 부어 만든 우상을 다 부수어 버리십니다. 니느웨가 쓸모 없게 되었으니, 여호와가 이제 니느웨의 무덤을 파 놓으십니다. 산헤립이 섬기는 신들의 집은 이제 산헤립의 죽음을 증거해 주는 것이 될 것입니다(왕하 19:37).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니느웨의 여신 이스달의 신상이 니느웨의 파괴된 잔해들 속에 머리가 잘린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 예언은 겔 32:22-23에 성취됨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곳에는 앗시리아가 묻혀 있고, 그의 군대가 함께 묻혀 있다. 사방에 그들의 무덤이 있다. 그들은 모두 칼에 찔려 죽은 전사자들이요, 칼에 쓰러진 자들이다. 앗시리아의 무덤은 구덩이의 가장 깊은 밑바닥에 마련되었고, 그 무덤의 둘레에는 앗시리아의 군대가 묻혀 있는데, 그들은 모두가 칼을 맞고 쓰러진 자들, 칼에 찔려 죽은 전사자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사람들에게 겁을 주던 자들이다.”

 

(아름다운 소식을 전함)

 

“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보아라,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 평화를 알리는 사람이 산을 넘어서 달려옵니다. 유다는 그의 절기를 지키고, 그의 서원을 갚으라고 하십니다. 악한 자들이 완전히 사라졌으니, 다시는 그를 치러 오지 못합니다.

그동안 유다를 괴롭혀 왔던 앗수르가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멸망함과 동시에 유다에 평화의 소식이 전하여집니다. 여기서 좋은 소식은 무려 백 여 년 간 이스라엘을 압제하던 앗수르의 멸망에 관한 소식입니다. 나훔 선지자는 이것이 마치 이미 일어난 일처럼 예언을 합니다.(예언자적 완료시제)

물론 이 예언의 성취는 주전 612년 앗수르가 멸망(2:13-15)하고 유다 왕 요시야의 종교 개혁(왕하 22:3-23: 27)으로 나타났지만,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될 구원의 복음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이사야 선지자는 사 52:7에서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서도 이것을 바벨론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어 돌아오는 것으로도 사용합니다. 특별히 샬롬(‘화평’)의 선포는 이사야서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보여 주면서 (9:6, 7 32:17 53:5 54:10, 13 55:12 57:19) 구속의 약속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동시에 이는 또한 신약의 복음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이 아름다운 시적 표현은 사도 바울에게서 구원의 복음으로 인용되었습니다(10:15)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죄와 마귀의 쇠사슬에서 건지시고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신 아름다운 소식이 될 것입니다.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그를 의뢰하는 자에게 피난처가 되시지만 동시에 죄에 대해서는 철저히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러한 사랑과 공의에 입각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하지만 앗수르와 같이 사악함과 폭정에 의해 세워진 나라는 결국 패망하고 맙니다.

11:22에 보시면 사도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이방인의 구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생각해 보십시오. 넘어진 사람들에게는 준엄하시지만,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에게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사람도 잘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영적으로 각성하면서 우리의 삶이 주님 보시기에 온전하면서 거룩한 주의 백성답게 경건을 연습하고 주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의지하면서 아직도 믿지 않는 많은 심령들에게 복음 들고 가서 전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나훔 1장 강해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

나훔 11-나훔 115

요절 나훔 115 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유다야 네 절기를 지키고 네 서원을 갚을지어다 악인이 진멸되었으니 그가 다시는 네 가운데로 통행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시니라

나훔 1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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