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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느헤미야 13장 강해 한 개혁자의 근심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11-19 00:00:00
조회수 : 4,28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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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13장 강해 한 개혁자의 근심

느헤미야 131-느헤미야 1331

느헤미야 138.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암몬과 모입 사람을 금지한 성경말씀)

 

“1 그 날 모세의 책을 낭독하여 백성에게 들렸는데 그 책에 기록하기를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 날, 백성에게 모세의 책을 읽어 주었습니다. 그 날은 12:44의 그날과 동일한 날입니다. 성벽 봉헌시 뜨겁게 달아 올랐던 감격과 헌신의 마음 자세가 식기 전인 성벽 봉헌 직후에 계속 정화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특히 12:44부터 본장 3절까지는 3인칭 시점으로 기술된 데 반해 4절 이후부터는 1인칭 시점으로 바뀐다는 점 또한 본절의 그 날과 12:44의 그 날의 동일성을 뒷받침해줍니다.

모세의 책은 주로 모세 율법, 즉 모세 오경을 가리킵니다. 느헤미야갸 철저히 성경 말씀에 따라서 정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책에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하지 못한다.“ 23:3을 요약한 말씀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회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회는 구약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항상 여호와와 함께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반적로 여호와의 회는 언약 공동체로서의 백성들의 모임, 성전(聖戰) 수행을 위해 모인 백성들의 집합, 혹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이는 제의적 의미에서의 회중을 말합니다. 23:3과 관련된 문맥에서 사용된 이 하나님의 회라는 표현은 여호와의 총회와 동일한 의미입니다.

 

(암몬과 모임 사람을 금지한 이유)

 

“2 이는 그들이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하나님께서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을 이스라엘의 공동체에 들어오지 못하게 엄금한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가나안으로 갈 때입니다. 모압족속은 이스라엘과 친족관계이므로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맞아들여야 했습니다. 암몬과 모압 두 족속이 이스라엘 백성과 혈통적으로 한 뿌리입니다. 모두가 데라의 후손입니다.(19-30-38). 그들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서 시작된 족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관계를 고려하여 절대로 그들을 공격하지 말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양식과 물이 꼭 필요한 두 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서, 이스라엘이 저주를 받도록 빌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세 번이나 저주를 빌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막강한 군사력을 소유했던 아모리 족속까지 격파시키자 자신들에게도 그 같은 군사 행동을 취할까 염려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였습니다. 사실상 이 같은 염려는 어처구니없는 기우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형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날 수 있는 길만 비켜주기만 하면 됐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먹을 양식과 마실 물을 돈을 받고 공급해주면 그들은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압 사람들은 발람에게 품삯을 주고 고용하였습니다. 그들은 발람이 이스라엘에게 저주하면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모압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로 한 대가로 발람에게 많은 은금(銀金)을 주었습니다.(22:1824:13). 우리 하나님은 발람의 저주를 바꾸어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비록 발람이 모압 사람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할 마음을 가졌었지만, 하나님의 강권적 역사에 따라 그가 도리어 이스라엘을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빌자 발람은 모압의 여인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유혹하여 바알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이만 사천 명이나 많은 이스라엘 민족을 죽게 하였습니다.

 

(믿음 없는 이방민족의 분리)

 

“3 백성이 이 율법을 듣고 곧 섞인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모두 분리하였느니라

 

백성들은 칠칠절 절기 이래 계속적으로 에스라로부터 신앙적 감화를 받아 즉각적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백성은 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섞여서 사는 이방 무리를 이스라엘 가운데서 모두 분리시켰습니다. 섞인 무리는 함께 사귀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함께 있는 사람의 뜻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사람들 사이에 머물면서 성전 의식에 참여하는 등 이스라엘 사람 행세를 했던 이방인들을 말합니다.

섞인 무리라는 히브리어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했던 이방인들을 가리킬 때 사용하였습니다. 출애굽 당시에는 그들이 아무런 무리없이 이스라엘 백성들로부터 환영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느헤미야 시대의 이방인들은 실제적으로 여호와 신앙에 바로 서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방악습을 끌어들여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해치는 자들이었습니다. 분리케 하였느니라는 구분하다 혹은 나누다의 뜻의 사역형입니다. 느헤미야는 강제적으로 이방인들을 쫓아내었습니다. 이 동사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두 개체를 각기 위치해야 할 곳으로 완전히 갈라놓을 때 사용합니다.

전통적으로 진정한 이방인 개종자들은 이스라엘 사회 내에 받아들여졌습니다. 당시 팔레스틴에 이방인 거주자들이 결코 적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모압 사람 룻도 메시야의 조상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쫓아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비야를 위해서 성전의 방을 만듬)

 

“4 이전에 우리 하나님의 전의 방을 맡은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으므로 5 도비야를 위하여 한 큰 방을 만들었으니 그 방은 원래 소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십일조로 주는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또 제사장들에게 주는 거제물을 두는 곳이라

 

이 일이 있기 전입니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다시 돌아가기 전입니다(6) 우리 하나님 성전의 방들을 맡고 있는 엘리아십 제사장은 도비야와 가까이 지내는 사이입니다. 느헤미야는 우리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전이라고 하여 대제사장 엘리아십이 크게 잘못했음을 지적합니다.

그런데 엘리아십은 도비야에게 큰 방 하나를 내주었습니다. 대제사장은 성전의 사소한 부분에 대한 감독권까지 갖고 있었습니다. 엘리아십이 평상시에 도비야와 연락이 있었습니다. 도비야는 암몬 출신으로서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의 앞잡이였습니다(2:10). 그는 비록 여호와의 선하심이라는 뜻의 히브리식 이름을 가졌지만, 결코 여호와를 예배하는 자는 아니었습니다.

엘리아십은 도비야와 연락하여 (장소, 혈연 또는 시간등에 있어서) 매우 가깝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대제사장에게는 다만 제사장이라는 직함이 적용되는 경우도 허다하므로 대제사장이라고 하지 않고 제사장이라고 하였습니다(대하 24:22:63) 대제사장 엘리아십은 타락하여 성벽 건축을 방해하고 느헤미야늘 죽이고자 한 산발랏의 시종 도비야에게 큰 방을 내어주었습니다. 엘리아십이 여러 개의 곳간을 헐어서 하나의 큰 방으로 만들어 도비야에게 주었습니다.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특별한 밀착 관계를 유지했던 것은 느헤미야의 귀환 전, 곧 오래 전부터였습니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일시 돌아갔었던 B.C. 433-432년 동안에 엘리야십은 도비야에게 방을 내어주었습니다. 그 방은 처음부터 곡식제물과 유향과 그릇과,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과 성전 문지기들에게 주려고 십일조로 거두어들인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제사장들의 몫으로 바친 제물을 두는 곳입니다. 여기서 주어는 삼인칭 복수를 사용하여 여러 개의 방이었음을 암시합니다. 소제물은 고운 가루에 기름과 유향을 섞어서 만든 일종의 무교병으로서 상번제와 안식일 제사 그리고 대부분의 희생 제사와 함께 드려졌던 예물입니다. 유향은 소합향, 나감향, 풍자향 등의 향품을 동일한 비율로 섞어 증거궤 앞에 놓았던 제물입니다. 기명은 성전 제사 때에 사용되던 여러 가지 그릇들입니다. 그것들의 대부분은 최초의 포로 귀환 때 바벨론에서 가져온 것들입니다. 레위 사람, 노래하는 자, 문지기는 세 종류의 레위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레위 지파에 속하였지만, 그 직임에 따라 이와같이 세 종류로 분류되었습니다.

 

(페르시야에서 돌아온 느헤미야)

 

“6 그 때에는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느니라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년에 내가 왕에게 나아갔다가 며칠 후에 왕에게 말미를 청하고 7 예루살렘에 이르러서야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 뜰에 방을 만든 악한 일을 안지라

 

이 모든 일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비웠을 때에 일어났습니다. 그 때에는 문자적으로는 이 모든 동안입니다. 도비야가 엘리아십의 호의에 따라 성전에 속한 방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던 모든 기간입니다. 느헤미야는 바빌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 년에 왕을 뵈러 폐르시아로 갔습니다. 느헤미야가 아닥사스다에게 약속했던 기간이 다 됐거나, 페르시아 왕 아닥사스다의 호출을 받아 페르시아로 갔을 것입니다.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 이년은 B.C. 433년입니다. 바벨론왕 아닥사스다라는 표현은 페르시아 왕들이 바벨론 왕들의 후계자로 자처했던 전통과 관련이 있습니다(5:13).

느헤미야는 얼마간 지나서 왕에게 말미를 얻어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며칠 후에는 문자적으로 날들의 끝에의 뜻입니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다시 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무렵을 의미하는 듯합니다. 바로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하여, 우리는 느헤미야가 B.C. 433년에 페르시아로 돌아가서 정확히 1년만에 팔레스틴으로 귀환했으리라고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입니다.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공동체의 여러 가지 개혁이 완결되지 않았음을 깊이 인식하고 예루살렘에 돌아왔습니다.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일시 돌아갔던 것도 분명히 본의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엘리아십이 하나님의 성전 뜰 안에 도비야가 살 방을 차려 준 이 악한 일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에는 두 개의 뜰이 있었습니다. B.C.4세기 헬라 사가(史家)인 헤카테우스에 의하면 그 성전의 안뜰의 길이가 500규빗이요 광이 100규빗이었다고 합니다

 

(심히 근심하고 성전을 성결케 한 느헤미야)

 

“8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9 명령하여 그 방을 정결하게 하고 하나님의 전의 그릇과 소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놓았느니라

 

느헤미야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여기의 근심하여는 산발랏 일당의 군사적 공격 가능성 때문에 전전긍긍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용했던 단어입니다(4:14). 느헤미야는 도비야가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호의에 따라 성전의 한 방을 차지한 사실을 산발랏 일당의 군사 공격만큼 두려운 일로 여겼습니다. 백성의 최고 지도자였던 그는, 도비야라는 이방인을 통하여 이루어질 이방 문화및 이방 종교의 침투를 심각하게 염려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도비야가 쓰는 방의 세간을 다 바깥으로 내던지고, 말하였습니다. "그 방을 깨끗하게 치운 다음에, 하나님의 성전 그릇들과 곡식제물과 유향을 다시 그리로 들여다 놓아라." 느헤미야는 물과 피를 뿌려서 그 방을 정결하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난 레위인들)

 

“10 내가 또 알아본즉 레위 사람들이 받을 몫을 주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직무를 행하는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로

 

느헤미야가 또 알아보니, 레위 사람들은 그 동안에 받을 몫을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십일조를 내지 않아서 월급을 주지 못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십일조의 원활한 징수를 위하여 레위 사람들을 각 성읍에 주재시켰습니다(10:37).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십일조를 바치지 아니했다는 사실은, 그들이 느헤미야가 자리를 비운 불과 1년 가량의 기간 동안 성전 제사의 절대적 필요성을 무시할 만큼 영적으로 침체했습니다. 받은 바 신령한 은혜를 계속 보존하기란 이렇듯 힘이 듭니다.

그래서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사람들은 맡은 일을 버리고, 저마다 밭이 있는 곳으로 떠났습니다. 성벽 봉헌식 이전에도 레위 사람들의 상당수는 여러 촌()에 흩어져서 농사를 지으면서 살고 있었습니다(12:27).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십일조를 성실히 내겠다는 백성들의 다짐(10:37-39)을 믿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십일조 납부가 중단되자 다시 생업 유지를 강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망하였기로는 생명의 보존을 위한 자구책으로서 위험한 곳으로부터 떠나는 일을 말합니다.

 

(민장들을 꾸짖은 느헤미야)

 

“11 내가 모든 민장들을 꾸짖어 이르기를 하나님의 전이 어찌하여 버린 바 되었느냐 하고 곧 레위 사람을 불러 모아 다시 제자리에 세웠더니

 

그래서 느헤미야는, 어쩌자고 하나님의 성전을 이렇게 내버려 두었느냐고 관리들을 꾸짖었습니다. 민장은 백성들 중 지도적 위치에 있었던 유력한 귀인들입니다. 그들은 백성들을 독려하여 레위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바쳐야 할 책무를 가졌을 뿐만 아니라 십일조를 바치는 일에 있어서 백성들의 모범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책임을 다하지 못하여 레위 사람들이 성전을 떠나 촌으로 흩어졌습니다. 성전의 본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모두 떠나버림으로써 희생 제사와 관계된 일들이 제대로 거행될 수 없었습니다. 버린 바 되었느냐는 배반하다 혹은 모반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의 수동형입니다. 느헤미야는 레위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다시 일을 맡아 보게 하였습니다.

 

(다시 십일조를 드린 이스라엘 사람들)

 

“12 이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곳간에 들이므로 13 내가 제사장 셀레먀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지기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 삭굴의 아들 하난을 버금으로 삼았나니 이는 그들이 충직한 자로 인정됨이라 그 직분은 형제들에게 분배하는 일이었느니라

 

그랬더니, 온 유다 사람들이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가지고 와서, 창고에 들여다 놓았습니다. 백성들이 직접 십일조를 갖고 성전까지 가지고 왔습니다. 느헤미야는 레위 사람들에 의하여 십일조를 징수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직접 성전까지 십일조를 가져온 것은 느헤미야의 호되면서도 충정어린 책망을 백성들이 달게 받아들였음을 암시합니다.

느헤미야는 셀레먀 제사장과 사독 서기관과 레위 사람 브다야를 창고 책임자로 삼고, 맛다냐의 손자이며 삭굴의 아들인 하난을 버금 책임자로 삼았습니다. 느헤미야의 이러한 조처는, 백성의 십일조 납부가 재개되어 성전의 곳간에 재물이 많아진 그 당시의 상황에서 매우 시의적절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재물의 효율적 관리, 특히 분배 문제로 말미암는 불화의 소지를 사전에 제거하기 위하여(10:38) 고지기로서 각계 각층의 세 사람을 세웠습니다(고후 8:18-21). 제사장 셀레먀는 성벽재건에 참여했던 하나냐의 아버지 셀레먀일 가능성도 있습니다(3:30). 여호와의 친구라는 뜻입니다. 서기관 사독은 느헤미야의 부하 관리였던 시드기야일 가능성이 큽니다. 시드기야(여호와는 나의 의이시다)와 사독(의로운)은 모두 의롭다의 의미를 갖는 동일한 어근에서 왔습니다. 서기관은 성전 운영의 국고를 담당하기도 하고 있었습니다(왕하 12:10) 레위 사람 브다야는 에스라의 율법 낭독시 그의 곁에 있었던 레위 사람 브다야일 가능성도 많습니다(8:4). 버금을 삼았나니는 문자적으로 그들이 손에 두었다입니다.

하난이 위의 세 사람을 도와 고지기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위의 세 고지기가 각각 제사장, 서기관, 레위인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하난은 평민 출신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창고직이들 모두 정직하다고 인정을 받는 사람들입니다. 느헤미야는 정직한 사람에게 고지기라는 중책이 맡겼습니다. 여기서 충직한 자는 든든히 세우다, 확실하게 하다, 신실하다 등의 뜻이 있는 동사의 분사입니다. 신뢰할 만한 자 혹은 신임을 받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맡은 일은, 동료들에게 돌아갈 몫을 골고루 나누어 주는 일이었습니다

 

(느헤미야의 상을 바라는 기도)

 

“14 내 하나님이여 이 일로 말미암아 나를 기억하옵소서 내 하나님의 전과 그 모든 직무를 위하여 내가 행한 선한 일을 도말하지 마옵소서

 

"하나님, 내가 한 일을 기억하여 주십시오. 하나님의 성전을 보살핀 일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정성껏 한 이 일을 잊지 마십시오기도합니다. 느헤미야의 이 짧은 기도는 그가 개혁을 어떤 마음으로 했는지 보여줍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의 선한 일에 상주기를 바라는 믿음으로 하였습니다. 선한 일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자비, 사람들 사이의 인자, 긍휼, 하나님을 향한 경건 등을 의미합니다. 여기서는 성전 제사 유지를 위한 느헤미야 자신의 신실한 노력을 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상주심을 믿을 때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개혁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을 범하는 사람들)

 

“15. 그 때에 내가 본즉 유다에서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술틀을 밟고 곡식단을 나귀에 실어 운반하며 포도주와 포도와 무화과와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서 음식물을 팔기로 그 날에 내가 경계하였고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서 재 귀환한 직후일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총독의 자격으로 민정(民情)을 살펴보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새로운 사실을 보았습니다. 특히 본즉은 세밀한 조사 관찰 행동을 묘사할 때 자주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 무렵에 유다에서는, 안식일에도 사람들이 술틀을 밟아 포도주를 만들었습니다. 곡식을 가져다가 나귀에 지워서 실어 나르며, 포도주와 포도송이와 무화과 같은 것을 날라들였습니다. 안식일인데도 사람들이 이런 여러 가지 짐을 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헤미야의 눈에 띄었습니다. 이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 계명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있었다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그들은 성벽 재건 직후 언약을 갱신하면서 안식일 계명을 제대로 지키기로 결단한 바 있습니다. 그들은 그때 자신들과 이방인을 분명히 구별케 해주는 안식일을 온전히 지킴으로써, 종교적, 문화적 순수성 유지를 도모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일년도 못되어 이방인들과의 빈번한 경제적 접촉의 결과로, 오히려 안식일 계명을 경시하는 두려운 상황에 도달하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이같은 안식일 계명의 경시는, 안식일에 일을 하지 않아도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분명한 약속을 믿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에는 사고파는 일을 하지 말라고 경고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 대한 책망)

 

“16. 또 두로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며 물고기와 각양 물건을 가져다가 안식일에 예루살렘에서도 유다 자손에게 팔기로 17. 내가 유다의 모든 귀인들을 꾸짖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15절에 이어 16절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안식일을 범했던 사실에 대해 다룹니다. 두로 사람은 고대 중근동 뿐만 아니라 지중해 지역 전체에 그 명성을 날렸던 페니키아 상인들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에는 두로 사람도 살고 있었습니다. 이방인들의 예루살렘에 사는 행위 자체는 결코 불법이 아니었습니다. 다윗 시대에도 여부스 사람이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습니다(대상 21:15). 뿐만 아니라 느헤미야 당시에도 유대인들과의 무역에 종사하는 많은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거주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물고기와 갖가지 물건을 예루살렘으로 들여다가, 유다 백성에게 팔았습니다. 물고기는 이스라엘 백성에 의하여 매우 애호되던 식품이었습니다. 두로 사람들은 이 물고기를 자신들이 살고 있던 지중해 연안에서 잡았거나, 혹은 갈릴리 바다에서 다른 사람들이 잡은 것을 사와서 팔았을 것입니다. 이 물고기는 어문을 통해서 예루살렘 안으로 반입됐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들을 보고 유다의 귀족들을 꾸짖었습니다. "안식일을 이렇게 더럽히다니, 어쩌자고 이런 나쁜 일을 저지르는 거요?” 느헤미야의 귀인들에 대한 이러한 책망은, 귀인들이 안식일을 범하는 일에 오히려 앞장 섰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득권을 남용하여 자신들의 식탐과 물욕 충족을 위하여 안식일을 범하기 일쑤였을 것입니다. 안식일을 범하는 일은 십계명 중 제4계명을 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를 다시 초래케 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심각한 악행이었습니다.

 

(역사를 타산지석으로 삼을 것)

 

“18. 너희 조상들이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래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을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안식일을 범하여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더욱 심하게 임하도록 하는도다 하고

 

당신들의 조상도 똑같은 일을 하다가, 우리와 우리 도성이 모두 하나님의 재앙을 받지 않았소? 이 성읍은 단수라는 점에서 예루살렘을 가리킴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음로써 그 형벌로 수도 예루살렘이 완전히 훼파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당신들이야말로 안식일을 더럽혀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위에 진노를 내리시도록 하는 장본인들이오. 라고 책망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도록 하는 대책)

 

“19.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갈 때에 내가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나를 따르는 종자 몇을 성문마다 세워 안식일에는 아무 짐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20. 장사꾼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 번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므로21. 내가 그들에게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 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후부터는 안식일에 그들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

 

19절부터 22절까지에서는 안식일을 보다 잘 지키도록 하기 위한 시책이 언급됩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이 되기 전날은, 해거름에 예루살렘 성문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성문들을 닫도록 하고, 안식일이 지나기까지 문을 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는 문자적으로 예루살렘 성문에 그림자가 드리워 질 때의 뜻입니다. 밤이 되기 얼마 전의 시간에 문을 닫았습니다. 느헤미야가 일몰 시간이면 닫았던 성문을 보다 이른 시간에 닫도록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또,자신을 돕는 젊은이들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들이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일상적으로는 예루살렘 주민 중 그날의 당번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성문을 지켰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이 어떤 대가를 보장받고 장사꾼들을 예루살렘 시내로 들여놓을 가능성을 염려하여 자신의 심복들을 성문마다 배치하였습니다. 그 뒤로도, 장사하는 이들과 갖가지 물건을 파는 상인들이 예루살렘 성 밖에서 자는 일이 한두 번 있었습니다.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상품을 들여와 팔기 위한 장삿속 때문이었습니다. 장사꾼들이 성밖에서 군거(群居)하며 떠들어대는 소리가 매우 요란했을 것이며, 또 백성들이 성벽 아래의 물건들을 구경하기 위해 성문 혹은 성벽 쪽으로 몰려들어 혼란을 야기시켰을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들도 꾸짖었습니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성 밑에서 잠을 자고 있소? 다시 한 번만 더 그렇게 하면, 잡아들이겠소." 그랬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다 지역의 합법적 총독이었기 때문에(5:14), 그 지역 내에서는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사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방인들도 유다 땅에서는 유대법, 즉 하나님의 율법의 적용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8). 비록 유다가 페르시아의 속국이긴 했지만, 유다는 페르시아의 회유 정책에 따라 하나님의 율법을 자신들의 법률로 삼을 수 있는 자치권을 허용받았었습니다. 느헤미야가 책망한 그 다음부터 안식일에는, 그들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상을 바라는 기도)

 

“22. 내가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정결하게 하고 와서 성문을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하였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나를 위하여 이 일도 기억하시옵고 주의 크신 은혜대로 나를 아끼시옵소서

 

느헤미야는 또 레위 사람들에게, 몸을 깨끗하게 하고 와서 성문마다 지켜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라고 하였습니다. 성문을 지키는 일은 성전을 지키는 일과 불가분의 관계였습니다. 성문 파수가 안식일 준수를 목적으로 하는 종교적 성격이었다는 점 등에서, 레위인들은 정결 의식을 거쳐야 했습니다. 성문에는 이미 평민들과 느헤미야의 종자(19)가 성문 파수를 위해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레위 사람까지 배치한 까닭은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를 보다 잘 아는 그들을 통해 성문 파수가 완전히 이루어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레위 사람들은 성벽 파수의 직무를 부여받았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벽 파수의 감독 직무였을 뿐입니다(7:1). 느헤미야는 금번에 그들을 감독의 자격이 아닌 직접적인 성문 파수 담당자로 발령한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 내가 한 이 일도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지없이 크신 주님의 사랑으로 나를 너그러이 보아주십시오." 느헤미야가 비록 자신이 선한 일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칭찬을 받기에는 지극히 미흡하다고 느껴서 너그러이 보아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겸손히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문자적 의미는 나의 하나님 큰 사랑을 베푸시옵소서입니다. 여기의 은혜(헤세드)는 신적인 언약에 근거한 불변적 사랑을 뜻합니다. 느헤미야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행하였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보시고 상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방인과 결혼한 사람들)

 

“23. 그 때에 내가 또 본즉 유다 사람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 여인을 맞아 아내로 삼았는데 24. 그들의 자녀가 아스돗 방언을 절반쯤은 하여도 유다 방언은 못하니 그 하는 말이 각 족속의 방언이므로

 

23절과 같은 이방인과 결혼한 문제는 에스라의 개혁조치가 있었던 B.C. 458년 이후에는 크게 노출된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그 같은 풍조가 간간이 있기는 했었지만(6:18 10:30), 그 풍조가 사회 문제화된 것은 느헤미야가 페르시아에 다녀왔던(6) 그 이후였습니다. 그 때에 느헤미야가 또 보니, 유다 남자들이 아스돗과 암몬과 모압의 여자들을 데려와서 아내로 삼았습니다. 아스돗은 블레셋의 일파로서 유다 땅 서쪽에 위치했었으며(4:7) 암몬과 모압은 모두 유다 땅 동쪽에 위치했었습니다. 이들 모두 유다 땅과 인근 지역이었던 까닭에 쉽사리 이스라엘 백성들의 통혼대상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절반 이 아스돗 말이나 다른 나라 말은 하면서도, 유다 말은 못하였습니다. 통혼의 심각한 결과가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남성과 결혼한 이방 여인들이 그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모국어를 가르침으로써 히브리어를 못하였습니다. 이방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의 절반이 아스돗 말이나 다른 나라 말은 하면서도, 유다 말은 못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히브리어 원문상으로 해석이 애매한 부분입니다. 이에 대한 논란이 많으나, 통혼한 이들의 자녀들 중 절반 가량은 아스돗 방언이나 기타 이방 언어로는 말할 수 있어도 유다 방언은 제대로 못했다는 의미입니다.(NIV, Half of their children spoke the language pf Ashdod orthe language of one of the other peoples, and did not know how to speak thelanguage of Judah).

언어는 한 민족을 공통적인 유대 관계로 맺어주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입니다. 더구나 히브리어가 종교 의식상의 언어였기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 민족 언어의 상실은 곧 하나님 말씀의 상실을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의문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을 비운지는 불과 1년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해서 통혼이 진행됐고 또한 태어난 여러 자녀들이 이방 언어에 그토록 깊이 젖어들게 되었느냐는 점입니다. 이와 같은 통혼과 그에 따른 이방 언어 사용의 문제가 이방 민족들이 살던 지역과 인접한 변방(邊方)에서 주로 야기되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과 그 인근 지역에서만 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비록 느헤미야가 페르시아로 가기 전부터 통혼이 간간이 진행됐지만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느헤미야는 페르시아로부터 재귀환한 후에야 변방 지역의 순시를 통하여 백성들의 통혼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통혼한 자들에 대한 책망)

 

“25. 내가 그들을 책망하고 저주하며 그들 중 몇 사람을 때리고 그들의 머리털을 뽑고 이르되 너희는 너희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지 말고 너희 아들들이나 너희를 위하여 그들의 딸을 데려오지 아니하겠다고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라 하고

 

이방인과 결혼한 사람들에 대한 느헤미야의 행동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결과에 따른 경고적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그 아버지들을 나무라고, 저주받을 것이라고 하면서 야단을 쳤습니다.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저주를 선포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통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린 자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리라는 사실을 선포하였을 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몇몇을 때리기도 하였으며, 머리털을 뽑기까지 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총독의 자격(5:14)으로 중한 체벌이나 가산 몰수의 징계를 통혼자들에게 가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본문의 행동은 체벌이라기보다는 느헤미야 자신의 극단적 불쾌감과 격노의 표시입니다. 머리털을 뽑는 것은 진노를 나타내거나 모욕이나 경멸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삼하 10:450:6). 그런 다음에, 하나님을 두고서 맹세하게 하였습니다. 너희는 너희 딸들을 이방 사람의 아들에게 주지 말아라. 너희와 너희 아들들도 이방 사람의 딸을 아내로 데려와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역사교육을 통한 방향제시)

 

“26.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는 많은 나라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그를 왕으로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그를 범죄하게 하였나니27. 너희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아 이 모든 큰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죄를 지은 것도, 바로 이방 여자와 결혼한 일이 아니냐? 솔로몬이 이방 후궁들의 꾀임에 빠져 이방신들을 섬겼습니다. 어느 민족에도 솔로몬처럼 축복을 받은 왕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큰 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강성한 국가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이방인들로 부터도 칭송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솔로몬에게 압살롬과 아도니야 등 이복 형들의 잇단 왕위 승계투쟁이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이 부정하게 취한 여인 밧세바의 소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이요 은혜입니다.

그가 이런 은혜를 받고도 죄를 짓게 된 것은 이방 아내들 때문입니다. 그는 천 명의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정략적인 결혼이라고 합리화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는 여자들의 입김에 휘둘리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이방여인과 결혼은 심각한 것입니다. 이제 너희가 이방 여자들을 아내로 데려와서, 이렇게 큰 잘못을 저지르며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는데, 우리가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느냐고 책망하였습니다. 통혼자들이 이방 여인들과 단호히 결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회개하고 새로워져야 합니다.

 

(대제사장에 대한 책망)

 

“28.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 요야다의 아들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으므로 내가 쫓아내어 나를 떠나게 하였느니라

 

대제사장 엘리아십의 손자인 요야다의 아들 가운데 하나가 호론 사람 산발랏의 사위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엘리아십의 아들 요야다의 아들 하나로 번역함이 더 타당합니다. 느헤미야가 산발랏의 사위가 된 요야다의 아들을 다만 하나라고 하여 이름을 밝히지 아니한 것이 특이합니다. 그가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축출되어 그의 이름도 명부에서 도말됐기 때문인 듯합니다. 따라서 느헤미야는 그 같은 이름을 이방인과의 통혼 문제를 다루고 있는 본 문맥에 기록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엘리아십은 느헤미야가 귀환했던 B.C. 444, 13년 전에 이미 대제사장이었습니다. 그의 손자가 결혼 적령기가 됐다는점 등으로 볼 때 그 당시 꽤 연로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야다는 엘리아십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에 올랐었을 것입니다.

산발랏은 사마라아의 총독입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 건축을 방해하고 느헤미야를 죽이고자 한 자입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이라는 표현은, 산발랏의 가문이 결코 이스라엘 백성 특히 대제사장 가문과는 결혼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암시해줍니다. 느헤미야는 산발랏의 사위가 된 그자를, 자신 앞에서 얼씬도 못하도록 쫓아냈습니다. 요야다의 아들 부부가 함께 사마리아로 쫓겨났습니다. 이처럼 느헤미야가 강경책을 쓸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요야다의 아들이 산발랏의 딸과 이혼하기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이세벨의 딸 아달랴가 유다의 며느리로 오면서 유다는 결단이 난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결혼 문제를 철저히 다루어야합니다. 느헤미야는 이전에도 산발랏의 신복 도비야가 성전의 방을 차지한 것을 책망한 적이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종교지도자의 중심부를 개혁하였습니다.

 

(타락한 제사장과 레위인에 대한 기도)

 

“29.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느헤미야의 하나님, 그들을 잊지 말아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들은 제사장 직을 더럽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만민 중에서 구별되어 선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중에서도 제사장을 특별히 성별하여 그 직분을 통하여 당신의 거룩을 드러내기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그 같은 제사장이 율법이 엄히 금하는 이방 여인과 통혼했다는 사실은 곧 그 거룩한 직분을 욕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언약을 저버린 자들입니다. 이 언약은 레위 지파가 하나님을 위한 열심으로서 범법자들을 처단했던 그 정신을 계승하여,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계속하여 이스라엘의 거룩성 유지에 힘써야 한다는 언약입니다. 느헤미야는 레위 사람의 통혼을 책망하는 문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레위 사람까지를 거론하여 책망하고 있습니다. 21:14은 오직 제사장의 통혼 금지 규정이 있습니다.

 

(레위사람을 세운 것에 대한 상을 기도함)

 

“30.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31.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

 

느헤미야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에게 영향을 받은 이방 사람의 부정을 모두 씻게 한 뒤에, 임무를 맡겨 저마다 맡은 일을 하게 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제사장들을 권면하여 그들과 함께 살던 이방 여인들을 모두 내보내도록 하였습니다. 임무를 맡긴 것은 문자적으로는 다만 각각 그 일을 맡겼다입니다.

느헤미야의 페르시아 여행 기간 동안 일부 와해된 반차 조직을 재정비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때를 정하여 주어서, 제단에서 쓸 장작과 처음 거둔 소산을 바치게 하였습니다. 나무는 상번제 등에 계속적으로 소용됐던 화목(火木)을 가리킵니다(10:34). 처음 익은 것은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생계 유지에 필요했던 여러 헌물 중의 대표적인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 13장 강해 한 개혁자의 근심

느헤미야 131-느헤미야 1331

느헤미야 138. 내가 심히 근심하여 도비야의 세간을 그 방 밖으로 다 내어 던지고

느헤미야 13장 강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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