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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느헤미야 9장 강해 역사를 보는 영적 통찰력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11-13 00:00:00
조회수 : 5,723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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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9장 강해 역사를 보는 영적 통찰력

느헤미야 91-느헤미야 938

요절 느헤미야 97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초막절 후의 회개)

 

“1. 그 달 스무나흗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2. 모든 이방 사람들과 절교하고 서서 자기의 죄와 조상들의 허물을 자복하고

 

그 달 이십사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서 금식하면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먼지를 뒤집어썼습니다. 이십사 일은 초막절 행사가 완전히 끝난 22일의 이틀 후였습니다. 따라서 여기 언급되는 백성들의 모임은 초막절 행사와는 관계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백성들이 다시 모인 것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들의 잘못을 회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비록 그들이 칠월 초하루날에 죄를 인하여 슬피 울기는 했지만(8:9), 나팔절과 초막절 절기를 기쁨으로 지키기 위해서 온전한 회개를 할 수 없었습니다(8:9, 10). 에스라는 중요한 절기들이 지난 한날을 택해서 백성들로 하여금 철저한 회개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한 것입니다.

굵은 베...티끌은 죄의 자각(自覺)으로 인한 애통한 마음의 외적인 표시입니다. 죄의 회개와 관련하여 금식이 언급되는 부분은 삼상 7:6이고, 굵은 베옷을 입고 우는 경우는 창 37:34과 왕상 21:27이며, 그리고 머리에 티끌을 무릅쓰는 것은 삼상 4:12등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모든 이방 사람과 관계를 끊었습니다. 절교는 통혼(通婚)으로 인한 이방인을 쫓아내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의 절교는 사업상으로 친교를 갖던 이방인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기로 헌신, 결단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제자리에 선 채로 자신들의 허물과 조상의 죄를 자백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죄에 대한 책임의 연대 의식은 구약에서 종종 발견됩니다(106:6). 이러한 연대성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사실에 기반을 둡니다. 실제로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들의 죄로 인한 고통을 여전히 받고 있었습니다(1:3). 이 같은 사실은, 조상들의 죄가 후손들과 전혀 무관하지 않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의 죄는 33-37절에 그리고 열조의 허물은 16-7절에 각각 언급됩니다.

 

(말씀을 공부하고 회개함)

 

“3. 이 날에 낮 사분의 일은 그 제자리에 서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낮 사분의 일은 죄를 자복하며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는데

 

모두들 제자리에서 일어나서, 낮의 사분의 일은 주 하나님의 율법책을 읽고, 또 낮의 사분의 일은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고, 주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하루를 밤과 낮의 각 사등분씩 팔등분(八等分)했습니다. 본절의 낮 사분지 일은 오전 6시부터 9시까지를 가리킵니다. 율법책을 낭독한 처소는 사역자의 자리와 구별되어 백성들에게 지정된 자리를 뜻합니다. 율법책을 낭독하고는 백성들이 직접 율법책을 읽은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에스라가 높은 강단 위에서 낭독하면(8:3, 4) 백성들 중간중간에 위치했던 레위인들이 백성들의 상용어인 아람어로 번역해주는 것입니다(8:7, 8). 여기의 낮 사분지 일은 오전 9시부터 정오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죄를 자복하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결과입니다(8:92:37).

 

(레위 사람들의 회개를 위한 간구)

 

“4.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단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단 위에는 레위 사람인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가 올라서서, 주 하나님께 큰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본절에 열거되는 사람들의 신상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고 그들의 맡은 역할 또한 구체적으로 언급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아...그나니는 레위 사람의 대에 올라서서 로 번역함이 더 낫습니다(KJV, the stairs of the Levites RSV, the stairs of Levites) 이들을 모두 레위인 출신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LB, NIV)). 예수아는 에스라를 도와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해석해 주었던 레위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8:7). 여기서 부르짖고는 고난을 당하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위하여 소리내어 간구하는 행동을 가리킬 때 자주 사용됩니다(6:7삼상 8:18대상 5:2022:5). 따라서 본 문구는 이스라엘의 죄 문제 해결을 하나님께 간구하는 행동입니다.

 

(레위 사람의 찬양)

 

“5. 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에서 뛰어남이니이다

 

본절에 등장하는 사람들 또한 4절에서의 대에 올라 있었던 자들로 짐작됩니다. 그 근거로서 4절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은 레위 사람 중 세 사람이 본절에서 다시 언급됩니다. 레위 사람인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가 외쳤습니다. 갓미엘은 하나님의 존전의 의미입니다. 이 사람은 10:9의 갓미엘과 동일인일 것입니다. 하삽느야는 여호와께서 생각하심의 의미입니다. 에스라와 함께 바벨론에서 귀환했던 하사뱌(10:11)와 동일 인물로 추정됩니다. 스바냐는 여호와께서 숨기셨다의 뜻입니다. 브다히야는 여호와께서 여셨다의 의미입니다.

"모두 일어나서, 주 너희의 하나님을 찬양하여라."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주의 영화로운 이름은 찬양을 받아 마땅합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초월적 속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여호와께서 백성들의 신뢰의 대상이 될 만하며, 또한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분임을 강조합니다.(3:17). 주의 이름을 높이는 것은 성경 전반의 한결같은 명령입니다(20:772:1915:4). 사람을 만드신 목적 중 하나가 사람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며 또 사람으로부터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 위함인 것은 분명합니다(43:21). 따라서 우리가 여호와를 찬양하는 일은 의무이자 영광스러운 특권이기도 합니다. 어떠한 찬양이나 송축으로도, 주의 이름을 다 기릴 수가 없습니다. 이름은 히브리적 사고를 통해서 볼 때 인격과 동일합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

 

“6.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여기서부터 38절까지는 백성들의 회개 기도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를 인도한 것은 레위인들이었고(5) 에스라는 이들의 배후에서 교육하고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합니다. 이 기도문을 시편 밖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답고 완전한 예배 기도문들 중의 하나라고 평합니다.

백성들의 거듭되는 배역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이 기도는 하나님의 은총과 능력을 다음과 같이 회고합니다. (1)창조에 있어(6), (2) 예굽과 홍해에서(9-11), (3)광야와 시내에서(12-21), (4)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22-25), (5) 사사들을 통해서(26-28), (6)선지자들을 통해서, 그리고 (7)현재의 상황을 통해(32-37) 하나님은 은총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주님만이 홀로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뜻으로서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이라는 문구(5)와 매우 잘 어울립니다. 이 칭호는 하나님께서 인위적으로 조작된 이방신들과는 비교될 수 없는 존재이심을 강조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86:10). 주께서는 하늘과, 하늘 위의 하늘과, 거기에 딸린 별들을 지으셨습니다. 하늘은 대기권 혹은 궁창(1:8), 하늘들의 하늘은 보다 멀리 떨어져 있는 하늘, 즉 우주를 가리킵니다(10:14왕상 8:27148:4). 일월성신은 문자적으로는 모든 군대들의 뜻으로서, 주로 천사들을 가리킬 때 사용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문맥상 별들을 가리킨다고 봐야 합니다(1:16, 1795:4, 5104136:5-9). 이 천사들이나 별들은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면에서 서로 밀접한 연관성을 보여줍니다(148:36:1-44:8, 9).

하나님은 땅과 그 위에 있는 온갖 것, 바다와 그 안에 있는 온갖 것들을 지으셨습니다.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은 지구와 (1:1, 9, 10), 지구에서 살도록 창조된 모든 동식물과 사람을 주님이 지으셨습니다.(1:20-30). 지으시고는 만들다의 의미입니다. 여기에는 창조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1:16). 주께서는 이 모든 것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하늘의 별들이 주께 경배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주어 보존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자연 세계를 만드시고 그것의 질서가 유지되도록 섭리하십니다.(벧후 3:7) 생물을 지으시고 그 생명을 계속 연장시켜 주십니다.(36:6). 따라서 일단 창조된 피조물은 스스로 자기 보존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신 하나님)

 

“7.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주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택하시어 바빌로니아의 우르에서 이끌어 내시고,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고쳐서 부르셨습니다. 레위인들은 그 많은 사람들 중 오직 아브람만을 택하신 사실로 인하여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는 그 다음 문구들에 의하여 수식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메소포타미아 땅에서 우상을 섬기던 아브람(24:2)에게 영광 중에 임하여서(7:2) 고향을 떠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11:3112:17:3). 우상을 섬기던 아브람을 본토 갈데아우르에서 떠나게 한 것은 실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요 그야말로 찬양받을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갈대아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체를 가리킵니다. 한편, 우르는 메소포타미아 지역 중 페르시아 만에서 약 250km쯤 떨어진 남부에 위치했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이 주로 거주했던 닙불은 우르로부터 북쪽으로 약 15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람과 더불어 후손에 관한 언약을 맺으면서 그에게 열국의 아버지란 뜻의 아브라함 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17:1-8). 그를 통하여 새로운 큰 민족을 이루실 소망을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으로 주신 하나님)

 

“8. 그의 마음이 주 앞에서 충성됨을 보시고 그와 더불어 언약을 세우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의 땅을 그의 씨에게 주리라 하시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매 주는 의로우심이로소이다

 

아브라함의 마음이 주 앞에서 진실함을 아시고,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여부스 사람과 기르가스 사람의 땅을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그와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어떤 선행이나 공로 때문에 그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을 때(15:6 4:1-1)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 하셨고, 그 의() 때문에 그는 언약 백성의 조상으로 삼으셨습니다. 그의 믿음조차도 그의 공로가 될수 없는 것은(4:2). 그것 역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이기 때문입니다(7:2, 32:8, 9).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 외아들 이삭을 희생제물로 기꺼이 바치고자 했던 실천적 신앙 또한 간과될 수는 없습니다(2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15:7, 18-21). 이 약속이 이루어진 것은, 약속이 있은 지 430년이 지난 후였습니다(12:403:17). 즉 그 약속은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너 그 땅을 정복함으로써 성취된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 당시 가나안 땅에 거주했던 대표적인 일곱 족속 중에는 본문의 아모리 족속 대신 히위 족속과 블레셋 족속이 들어갑니다(9:1, 2). 그리고 아브라함 당시의 가나안 땅에는 초기 원주민들, 곧 르바, , 호리, 수스, 아낙 족속 등이 거주하였습니다. 주께서는 의로우셔서, 말씀하신 것을 지키셨습니다. 이 앞에는 개역 성경에서 번역치 아니한 접속사 키가 있습니다. 따라서 왜냐하면 당신은 의로우시기 때문입니다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지켜질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이 있습니다.

 

(홍해에서 부르짖음을 들으신 하나님)

 

“9. 주께서 우리 조상들이 애굽에서 고난 받는 것을 감찰하시며 홍해에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주께서는, 우리 조상이 이집트에서 고난받는 것을 보시고, 홍해에서 부르짖을 때에 들어주셨습니다. 여기서부터 12절까지에서는, 출애굽시에 하나님이 그 크신 권능으로 백성들을 구출하신 사실에 대해 언급합니다. 이는 성경 저자들에 의해서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구원 사건으로 간주되었습니다(78:12105:27-37 106:7 135:8,9136:10).

애굽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들에게 호의적이었던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서면서(1:8) 중한 노역에 동원되는 등 핍박을 받았습니다.(1:11). 이러한 일이 있을 때 백성들의 부르짖음이 있었고, 그것이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2:23). 감찰하시며는 원래 보다 혹은 알다의 뜻으로서, 자세히 살펴서 실제적 사실을 바로 파악하는 것입니다(삼상 24:15왕상 10:7왕하 7:13). 홍해에서 부르짖음이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는 탈출했으나 홍해가 그들을 가로막고 더구나 애굽의 추격군이 바싹 다가왔을 때였습니다(14:10). 그때 하나님은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통하여 홍해가 갈라지도록 역사하셨습니다(14:21, 22). 부르짖음은 4절의 부르짖고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하지만 부르짖음의 이유는 다릅니다(4). 그런데 여기서 본서의 저자가 시간상 10절의 내용보다 뒤지는 사건을 먼저 언급한 것은 고난을 감찰하신 사건과 부르짖음을 들으신 사건을 함께 묶어 언급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부각시키고자 함이었습니다.

 

(바로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10. 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의 나라 온 백성을 치셨사오니 이는 그들이 우리의 조상들에게 교만하게 행함을 아셨음이라 주께서 오늘과 같이 명예를 얻으셨나이다11. 또 주께서 우리 조상들 앞에서 바다를 갈라지게 하사 그들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 같이 통과하게 하시고 쫓아오는 자들을 돌을 큰 물에 던짐 같이 깊은 물에 던지시고

 

이집트 사람들이 우리 조상을 업신여기는 것을 아시고, 이적과 기사를 베푸셔서, 바로와 그의 모든 신하와 그 나라 온 백성을 치셨으며, 그 때에 떨치신 명성이 오늘까지 이릅니다. 여기서 이적은 성경에서 주로 징조 및 표적등으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직접적으로는 초자연적인 놀라운 사건을 가리키지만 그 사건에 담겨있는 의미를 더 강조합니다(7:3왕하 19:29105:27). 이 단어는 요한복음에서 기적의 의미를 강조하는 표적과 같은 뜻입니다.(2:18). 기사는 특별히 놀라운 사건 그 자체에 강조점이 있는 단어입니다(32:20, 21). 따라서 이것은 복음서 등에서 흔히 기사나 기적으로 번역되는 거의 같은 의미입니다(24:2413:224:482:19살후 2:9). 하나님은 바로에 대하여 그리고 그 나라 온 백성에 대하여 치셔서 하나님께서 이적과 기사를 누구에게 베푸셨는지 그 대상을 말해주십니다.

하나님은 바로가 교만히 행하여서 바로 및 애굽 백성들에게 이적과 기사를 보이셨습니다. 교만이 행함은 끓어오르다, 거만(오만)하다는 뜻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맞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것을 뜻합니다(18:111:4317:13 18:2050:29). 구체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한 노역을 부과하고 아들이 태어날 경우는 죽이는 악행을 범한 것을 가리킵니다(1:11, 22). 그리고 아셨음이라는 남녀가 성관계를 통해서 상대를 알듯이 어떤 사물에 대한 분명한 지식을 갖는 것을 가리킵니다(4:11:8).

출애굽 당시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권능이 너무도 놀라웠기 때문에, 그 영광스러운 명성이 오늘날까지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NIV, You made a name for yoursself, which remains to this day). 실제로 애굽에 대해 베푸신 기적과 기사로 인하여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방 백성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되셨습니다(9:1614:17 15:14-162:10). 조상 앞에서 바다를 가르시고, 그들이 바다 한가운데를 마른 땅처럼 지나가게 하셨지만, 뒤쫓는 자들은, 깊은 바다에 돌이 잠기듯이, 거센 물결에 잠기게 하셨습니다. 14:9-31 내용의 요약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라졌던 물을 합치심으로써 그 가운데 있던 애굽 군대를 수몰(水沒)시키신 것을 가리킵니다(15:10, 11).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12.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들이 행할 길을 그들에게 비추셨사오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이 가는 길을 밝히 비추어 주셨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은 별개의 두 기둥이 아닙니다. 다만 한 기둥이 낮과 밤에 따라 이중적인 현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14:24). 이 두 기둥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신적 임재의 표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 중에 임재하셔서, 낮에는 서늘한 구름기둥으로 사막의 뜨거운 햇빛과 열기로부터, 밤에는 찬란한 불이 되어(9:15, 16) 사막성 혹한(酷寒)이나 동물의 침입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셨던 것입니다.

 

(정직한 계명을 주신 하나님)

 

“13. 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그들과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그들에게 주시고

 

몸소, 시내 산에 내려오시며, 하늘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셔서, 바른 규례와 참된 율법, 좋은 율례와 계명을 주셨습니다. 14절과 함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 산 언약, 즉 모세 언약을 주신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시내 산 언약을 주시기 위해서 우뢰. 번개. 구름. 나팔 소리와 함께 불 가운데에 임재하셨습니다.(19:16-18). 이때 백성들은 두려움 중에 자신들을 성결케 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기다렸었습니다(19:1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같이 규례 등을 주신 까닭은, 백성들로 하여금 그것들을 삶의 기준으로 삼게 하여 당신의 백성답게 살게끔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9:25:48벧전 1:15). 하나님은 이렇게 하심으로써 당신의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통하여 당신의 형상 혹은 성품을 만민 중에 드러내려고 하셨던 것입니다(5:16). 바로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의해서 특별한 존재들로 선택되었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7:6).

여기의 규례는 자신의 신분에 합당한 행동의 규범 혹은 선악의 분별을 가능케 해주는 삶의 기준(18:4103:6)을 가리킵니다(8:18). 이 규례는 원래는 백성들 간의 시비를 가리는 일상적 법률이었을 것이나, 시내 산 언약이 백성들에게 주어지면서 거룩한 율법을 가리키는 표현들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정직한은 곧 바르다 혹은 곧바르게 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형용사로서 백성의 삶을 바르게 해주는 규례의 탁월성을 강조하는 단어입니다. 아무튼 본서 기자는 본절에서 이같은 수식적인 형용사를 반복 사용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예찬(禮讚)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시편 119편에서 능히 발견됩니다. 그 밖에 하나님의 율법의 또 다른 명칭인 계명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지시하신 명령을 가리킵니다. 진정한 율법은 구약성경에서 광범위한 의미로 사용되므로, 함부로 그 뜻을 단정하기는 곤란합니다. 다만 이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뜻을 수록한 법전(法典)으로서의 측면을 강조한 말입니다. 진정한은 확실한, 참된, 신실한등의 뜻으로서 여기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있으리만큼 참된의 뜻으로 쓰였습니다(24:149:16대하 18:15). 율례는 넓은 의미에서는 율법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으로서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주신 의무와 그에 부속된 약속까지를 가리킵니다.

 

(안식일을 주신 하나님)

 

“14. 거룩한 안식일을 그들에게 알리시며 주의 종 모세를 통하여 계명과 율례와 율법을 그들에게 명령하시고

 

주의 거룩한 안식일을 알려 주시고, 주의 종 모세를 시키셔서 계명과 규정과 율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13절이 하나님께서 친히 강림하셔서 당신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주셨음을 강조한다면, 본절은 하나님이 그 말씀을 모세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주셨음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13절과 14절은 본질적으로 동일한 내용입니다. 저자는 유사한 내용의 반복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당신의 말씀을 주신 일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안식일이 본절의 초두에 언급되고 있는 것은, 안식일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20:8-1123:12). 오랜 포로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고 지엄하신, 안식일 준수에 관한 계명이 철저하게 이행되지 않았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랍비들은 안식일의 규례는 모든 계명들보다 중요하다고까지 하였습니다. 이러한 안식일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가나안 칠 족속의 정복을 통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땅에서의 예표적 안식(4:8)입니다. 믿음을 통한 성도들의 이 땅에서의 영적 안식(11:28 4:3)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통한 모든 성도들의 신천 신지(新天新地)에서의 완전한 안식(21:4)을 예표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만나와 물을 주신 하나님)

 

“15. 그들의 굶주림 때문에 그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들의 목마름 때문에 그들에게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또 주께서 옛적에 손을 들어 맹세하시고 주겠다고 하신 땅을 들어가서 차지하라 말씀하셨사오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굶주릴까 보아 하늘에서 먹을거리를 내려 주시고, 목마를까 보아 바위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셨습니다. 주께서 손을 들어 맹세하며 주시겠다고 한 그 땅에 들어가서, 그 곳을 차지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5절부터 21절까지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거역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하나님은 배고픈 백성들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16:1211:6). 물론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메추라기 고기를 먹이기도 하셨지만 메추라기는 계속적으로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의 탐욕에 따라 징벌의 성격으로 주어진 것(11:4, 31-45)이라는 점에서 여기서 말하는 하늘 양식(78:24105:40)으로 보기는 힘듭니다.

하나님은 르비딤에서(17:1-7)와 신 광야에서(20:2-13)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반석을 지팡이로 치자 거기서 마실 물을 내어주셨습니다.(78:24105:4148:21). 주께서...주마 하신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뜻합니다(15:18-21 26:3 28:13). 그리고 차지하라 명하셨사오나는 출애굽 직전에 모세에게 (3:8), 출애굽 후 모세를 포함한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차지하라고 명령하신 것을 가리킵니다(23:3134:2-1211:24).

 

(불신으로 가나안 땅 들어가기를 거역한 이스라엘)

 

“16. 그들과 우리 조상들이 교만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그러나 우리 조상은 거만하여, 목이 뻣뻣하고 고집이 세어서, 주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저희와 우리 열조의 접속사 ...와를 해석적인 의미로 이해하여, 차라리 저희 곧 우리 열조로 번역함이 보다 적절합니다. 목을 굳게 하여라는 이 표현은 말을 듣지 않고 뻗대는 완고한 황소의 모습에서 빌어온 것으로서(32:910:16왕하 17:14대하 36:137:26) 하나님의 뜻을 거듭하여 거스리는 백성들의 불순종을 나타냅니다. 그들은 황소고집을 피우며 가나안 땅을 들어가지 않고자 하였습니다.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한 자들)

 

“17. 거역하며 주께서 그들 가운데에서 행하신 기사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나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시라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 더디 노하시며 인자가 풍부하시므로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셨나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께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주께서 보여 주신 그 놀라운 일들을 곧 잊었습니다. 뻣뻣한 목에 고집만 세어서, 종살이하던 이집트로 되돌아가려고, 반역자들은 우두머리를 세우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는 용서하시는 하나님, 은혜로우시며, 너그러우시며, 좀처럼 노여워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많으셔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거역하며는 거절하다 혹은 싫어하다의 뜻으로서, 자신에게 부과된 어떤 일의 실행을 극력 기피하는 것을 가리킵니다.(7:1425:7삼상 8:1977:2) 율법 준수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할 때만 가능합니다(20: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 아니하는 일은 곧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기로 작정한 것과 다름없습니다.

기사는 기이한 일을 행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의 수동형 분사로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삼하 1:26대상 16:937:575:1). 한 두목을 세우고...돌아가고자 하는 생각은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자들 중 상당수로부터 비관적인 소식을 전해들은 낙심한 백성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었습니다(14:4). 물론 그러한 생각이 구체화되지는 않았으나 그 생각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불신에 기인한 만큼 커다란 범죄임에 분명하였습니다. 디디 노()하시며는 은혜로우시며 긍휼히 여기시며의 구체적 국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생각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기도를 들으사 백성들에 대해 형벌을 내리지 아니하셨습니다(14:13, 19).

 

(송아지 우상을 만든 자들)

 

“18. 또 그들이 자기들을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이르기를 이는 곧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한 신이라 하여 하나님을 크게 모독하였사오나

 

더욱이, 우리 조상은, 금붙이를 녹여서 송아지 상을 만들고는 우리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우리의 하나님이다 하고 외치고, 주님을 크게 모독하였습니다. 본절의 사건은 앞절의 사건보다 분명히 시간적으로 앞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순서를 바꾸어 언급한 것은, 본절의 사건이 그 범죄의 질에 있어서 보다 사악하기 때문입니다. 앞절의 사건은 생각에 그쳤지만, 본절의 사건은 생각을 거쳐 행위로 구체화 되기까지 하였습니다. 여기서 저자는 하나님에 대한 백성들의 죄의 강도가 더 높아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자비를 베푸셨음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송아지를 부어 만들와 같은 범죄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받기 위해 시내 산으로 올라가 있는 동안 행해졌었습니다. 즉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 오른 지 40일이 되도록 내려오지 않자(24:18), 그가 죽었을 것으로 보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뒤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32:1-4). 이 같은 범죄의 주요 원인은 하나님께 대한 강력한 불만과 불신앙이었습니다. 특히 이 범죄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행해졌다는 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이 두드러집니다(20:1-6). 그 당시 백성들의 범죄는 우상을 만들었다는 데 있었지 다른 신을 섬겼다는 데 있지는 않았습니다.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라는 말은 백성들이 여전히 여호와를 섬길 의향을 갖고 있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백성들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분이 여호와인 것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독하였으니는 업신여기다 혹은 멸시하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극한적 행동을 통하여 어떤 대상을 능욕하는 것을 가리킵니다(74:835:12).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보호하신 하나님)

 

“19. 주께서는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광야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낮에는 구름 기둥이 그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길을 인도하며 밤에는 불 기둥이 그들이 갈 길을 비추게 하셨사오며

 

그런데도 주께서는 언제나 그들을 불쌍히 보셔서, 차마, 그들을 광야에다가 내다 버리지 못하셨습니다. 연하여 긍휼을 베푸사는 문자적으로는 당신의 크신 긍휼 때문에의 의미입니다(NIV). 긍휼의 히브리어 라함은 자궁을 뜻하는 레헴과 같은 어원을 가진 말로서, 사랑스러운 자 혹은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자에게 깊은 관심과 연민을 나타내는 것을 뜻합니다. 낮에는 줄곧 구름기둥으로 그들을 이끌어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이 가는 길을 밝히 비추어 주셨습니다.

 

(만나와 물을 주신 하나님)

 

“20. 또 주의 선한 영을 주사 그들을 가르치시며 주의 만나가 그들의 입에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들의 목마름을 인하여 그들에게 물을 주어

 

선한 영을 주셔서, 그들을 슬기롭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입에 만나가 끊이지 않게 하시며, 목말라 할 때에 물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장로와 유사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예언을 하게 하셨습니다.(11:17, 25). 혹자는 여기의 선한 영을 이원론적으로 보고 악한 영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파악하려고 합니다. 즉 이들은 포로 후기 시대의 신()개념이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분명히 잘못입니다. 이스라엘에서 휠씬 이전에 벌써 여호와의 신(삼상 16:14), 악신(삼상 16:14). 거짓말하는 영(왕상 22:23) 등의 용어가 사용됐다는 것은, 본절의 선한 신이 페르시아의 영향에 의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단적인 증거입니다.

 

(시십년 옷을 입히신 하나님)

 

“21. 사십 년 동안 들에서 기르시되 부족함이 없게 하시므로 그 옷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사오며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이나 돌보셔서, 그들이 아쉬운 것 없게 하셨습니다. 옷이 해어지지도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도 않았습니다. 본절은 신명기 2:78:429:5의 인용인 듯합니다. 사십 년은 출애굽해서 가나안에 입성하기까지의 기간입니다(13:18). 기르시되는 유지시키다 혹은 먹을 것을 주다의 의미입니다(삼하 20:3왕상 18:13).

 

(시혼과 바산 땅을 주신 하나님)

 

“22. 또 나라들과 족속들을 그들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 그들이 시혼의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였나이다

 

여러 나라와 민족들을 우리 조상에게 굴복시키셔서, 우리 조상이 시혼 땅, 곧 헤스본 왕의 땅과 바산 왕 옥의 땅을 차지하고, 그것을 나누어서 변방으로 삼았습니다. 본절의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본절에서는 여호수아의 활약상을 굳이 부각시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나라들과 족속들을 저희에게 각각 나누어 주시매는 차라리 나라들과 족속들을 저희에게 붙이셨고, 그것들을 나누어 주셨다로 번역해야 보다 적절합니다. 이같이 번역해야 할 기본적 이유는 우선 주시매가 원문상 나누어 보다 앞에 위치해 있기 때문입니다. 주시매는 성전(聖戰)의 차원에서 이해할 때, 하나님께서 특정한 대적들을 진멸하시고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그들에 대한 완전한 승리를 보장해주시는 것을 가리킵니다(10:3011:81:4). 그리고 나누어는 정복된 가나안 땅을 백성들에게 기업으로 분배해주는 일을 나타내는 이 사용된 단어입니다(13:718:5, 10). 시혼의 땅...차지하였나이다는 이 언급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동부의 땅을 정복한 것에 해당됩니다. 요단 서쪽의 가나안 땅 정복에 관한 언급은 24, 25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지경의 땅들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실 작정을 하셨고. 그 하나님의 절대적 의지가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성취되었던 것입니다.

시혼은 아모리 족속의 일대를 다스리던 왕이었습니다. 헤스본은 시혼이 다스리던 땅의 수도였습니다. 따라서 헤스본 왕은 시혼을 의미합니다. 그 땅의 위치는 모압 땅의 북쪽이며, 사해 북단에서 북동쪽으로 약 25km 지점에 해당합니다. 이 땅은 르우벤 지파에게 정복됐었습니다. 바산 왕 옥의 땅은 시혼의 땅 북쪽 지역으로서, 므낫세 반 지파에 의해 정복되었습니다(21:33). 바산은 비옥하고 돌이 없는 평지의 뜻으로서, 그 범위가 북으로는 헤르몬 산, 동으로는 예벨 드루즈, 서로는 갈릴리 바다 동쪽의 산지(山地), 남으로는 야르묵 이남 약 10km 지점까지였습니다. 그 지명이 의미하듯이, 이 지역은 해발 480-690m에 이르는 고원 지대로서 밀재배와 목축에 적당했고(22:12) 상수리 숲으로도(2:1327:6) 유명했습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신 하나님)

 

“23. 주께서 그들의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시고 전에 그들의 열조에게 들어가서 차지하라고 말씀하신 땅으로 인도하여 이르게 하셨으므로

 

주께서는 우리 조상의 자손을 하늘의 별만큼이나 불어나게 하시고,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땅으로 인도하셔서, 그 곳을 차지하게 하셨습니다. 그 자손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신다는 약속은 아브라함에게 최초로 주어졌었습니다(12:213:1615:5). 이러한 약속은 성취되어 출애굽 전에 이미 이스라엘 백성들은 엄청난 숫자로 불어나 있었습니다(1:7). 출애굽 직후의 인구 조사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정만 육십만 명이 넘었습니다(1:46). 하나님은 땅과 자손에 대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축복으로 주신 하나님)

 

“24. 그 자손이 들어가서 땅을 차지하되 주께서 그 땅 가나안 주민들이 그들 앞에 복종하게 하실 때에 가나안 사람들과 그들의 왕들과 본토 여러 족속들을 그들의 손에 넘겨 임의로 행하게 하시매

 

자손이 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할 때에, 그 땅에 살던 가나안 사람들을 그 자손에게 굴복시키고, 왕들과 그 땅의 이스라엘 백성마저 자손이 좋을 대로 하게 하셨습니다. 22절이 요단 동쪽 땅의 정복 사실을 다루고 있는 반면, 24절은 요단 서쪽, 즉 가나안 땅의 정복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가나안 거민은 가나안 땅에 살던 여러 족속들을 가리킵니다(8절출 3:8). 이스라엘 자손은 요새화된 성채들과 기름진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가데스를 출발한 이스라엘의 열 두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정복하기 곤란할 만큼 요새화되어 있는 견고한 성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13:28). 실제로 여리고(2:5), 아이(7:2), 립나(10:29,30), 라기스(10:31,32), 하솔(11:1-13)등 가나안 땅 대부분의 성읍들이 요새화되어 있었습니다. 따라서 바로 이와 같은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은혜라고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묘사될 만큼 비옥하여 기름진 땅이라고 합니다(14:7,88:7-9삼상 14:25-27왕하 18:32).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과 이미 파 놓은 우물과 포도원과 올리브 밭과 과일이 흐드러지게 열리는 나무를 차지하였습니다. 모든 아름다운 물건을 채운 집은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기는 곤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가나안 땅에서 누리게 될 풍족한 삶과 물질적 축복을 회화적(繪畵的)으로 표현한 것입니다(6:11)

팔레스틴 땅에서는 연중 강우량이 매우 적었기 때문에 각 가정마다 우물을 파서 사용하였으며, 비가 올 때에 빗물을 저장할 물탱크도 필요하였습니다(왕하18:315:15).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미 B.C.1200년 경에 방수 처리된 물탱크 제조기술을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포도원과 감람원은 팔레스틴에서는 가장 보편적인 과일 산출 근거였습니다. 허다한 과목은 무화과 나무, 모과 나무, 사과 나무, 편도(扁桃)나무, 호두 나무, 살구 나무, 뽕나무 등을 가리킵니다. 항상 전반적으로 양식이 부족했던 고대 사회에서 배부르게 먹고 살진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축복을 받았었는지를 밝혀 말해줍니다.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는 문자적으로는 당신의 큰 복 안에서 먹고 마시며 즐겼다의 의미입니다. 칠십인역은 주의 큰 복 안에서 마음이 뺐겼다로 번역하였습니다.

 

(주를 모독한 이스라엘 백성들)

 

“25. 그들이 견고한 성읍들과 기름진 땅을 점령하고 모든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과 판 우물과 포도원과 감람원과 허다한 과목을 차지하여 배불리 먹어 살찌고 주의 큰 복을 즐겼사오나26.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지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주를 심히 모독하였나이다

 

25절까지의 내용이 출애굽 사건부터 여호수아의 사망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면, 27절에서부터는 사사 시대 이후의 내용이 다루어집니다. 그렇다면 26절에 언급되는 백성들의 패역은 포로기 이전의 이스라엘 전 역사 기간을 포괄하는 내용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런 은혜를 받고도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주께 반역하였으며, 주께서 주신 율법을 등졌습니다. 순종치 아니하고는 개역 성경과 같은 소극적 의미로보다는 보다 적극적 의미인 배반하여 혹은 거역하며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78:17106:713:16). 거역하며 이 단어는 앞의 마라와 거의 비슷한 뜻이지만, 그보다 더 적극적 반역의 행위를 가리킵니다(왕하 18:20대하 36:39:5). 율법을 등 뒤에 두고는 하나님의 율법의 가르침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행동하는 것을 가리킵니다(50:17).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고 음란했습니다.

하나님은 주의 선지자들을 보내서 이들을 책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께로 돌아가라고 타이르던 예언자들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렇듯 엄청나게 주님을 욕되게 하였습니다. 구약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거의 대부분 백성들의 죄악을 낱낱이 지적하고 회개하라고 부르짖는 내용이었습니다(삼상 7:3). 따라서 이러한 그들의 사역의 성격상 많은 핍박이 뒤따랐습니다.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등의 선지자가 백성들에 의하여 살해당했다고 밝힙니다. 이 밖에 아합과 이세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선지자도 적지 않았습니다(왕상 18:4). 심지어 유다의 요아스왕은 자신의 은인이었던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를 죽이기까지 했습니다(대하 24:2223:3711:47). 선지자들을 죽인 일 자체가 하나님을 욕보인 것입니다(18). 왜냐하면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리인로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자이기 때문에 이같이 선지자를 해하는 일은 곧 하나님을 해하려는 것과 동일한 것입니다.

 

(사사들을 통해 구원하신 하나님)

 

“27. 그러므로 주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 넘기사 그들이 곤고를 당하게 하시매 그들이 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에게 구원자들을 주어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주께서는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내맡기시어 억압을 받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의 사후(死後). 백성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함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변의 이방 민족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공격하여 압제케 하셨습니다. (3:7,8). 그러나 억눌림을 받고 주께 부르짖으면, 주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그들을 끔찍이도 불쌍히 여기시어, 원수의 손아귀에서 그들을 건져낼 구원자들을 보내 주시곤 하셨습니다. 부르짖음은 고통이 너무 심한 나머지 그것으로부터의 구원을 위하여 애타게 간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26:74:3) 구원자들을 주어...구원하셨거늘 여기의 구원자들은 구하다 혹은 구원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의 사역형 분사형으로서 구체적으로는 사사들을 가리킵니다(2:163:9).

 

(열 번이나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

 

“28. 그들이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 버려 두사 원수들에게 지배를 당하게 하시다가 그들이 돌이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여러 번 주의 긍휼로 건져내시고

 

그러나 편안하게 살만하면, 주께서 보고 계시는데도, 이스라엘은 또다시 못된 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럴 때에는, 주께서 그들을 원수의 손에 버려 두셔서, 억눌림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다가도 다시 돌이켜 주께 부르짖기만 하면, 주께서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불쌍히 여기시어, 구하여 주시곤 하셨습니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사로부터 구원을 받은 후 태평 시대를 맞이했었습니다(3:11,30).

그러나 사실상 이 기간은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시험을 받는 기간이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백성들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지 안 섬기는지를 시험받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만일 백성들이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만 섬겼다면, 그들이 다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을 까닭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태평 기간 동안 백성들이 다시 우상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시험을 통과치 못했습니다.(3:11,12).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범죄-환난-회개-구원이라는 악순환이 수 차례 되풀이되어 하나님이 긍휼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사사의 특징이 백성들을 외적의 압제로부터 구원할 필요성이 있을 때마다 세우심 받은데 있었음을 감안한다면 사사 시대 동안 이스라엘에 사사가 최소한 열 명이 넘었다는 것은 곧 위와 같은 악순환이 10번 이상 계속적으로 반복됐음을 뜻합니다.

 

(왕정시대 주의 계명을 불순종한 사람들)

 

“29.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그들에게 경계하셨으나 그들이 교만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에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돌이켜 주의 율법대로 바로 살라고, 주께서 엄하게 타이르셨지만, 그들은 거만하여 주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주께 등을 돌리고, 목이 뻣뻣하여 고집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복종하지 않았습니다. 29절과 30 절은 굳이 시대적으로 구별할 경우, 왕정 시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경계하셨으나는 증인을 의미하는 에드라는 명사에서 파생된 동사로서, 증인이 되다 혹은 경고하다의 뜻입니다. 특별히 이 단어는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경고의 메시지 자체, 혹은 여러 가지 것들을 증거로 삼으면서 악행자에게는 반드시 그에 따른 형벌이 있게 됨을 알리는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4:268:1932:46왕상 21:1311:732:10,25,44).

하나님은 지키기만 하면 살게 되는 법을 주셨지만, 오히려 그 법을 거역하여 죄를 지었습니다. 준행하면...삶을 얻는...계명은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진정한 삶은 주께서 베푸신 계명들에 근거하여 전심으로 그 법도를 따르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을 뿐입니다. 본문을 협의적으로 이해하면, 율법을 지켜 외적 부정(不淨)에서 벗어남으로 인하여 성전 출입의 자격을 얻는 것을 말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18:520:11). 왜냐하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성전에서의 하나님과의 교제 만큼 더 가치있는 삶의 국면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볼 경우에 여기의 계명은 레위기적 의식법을 주로 가리킨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라는 이 비유는 짐을 실은 짐승이 앞으로 가게 하려는 주인의 의사를 거스려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으려 취하는 몸짓을 말합니다. 혹은 황소가 멍에를 메지 않으려고 뒤로 버팅기는 것등과 관련이 있습니다(4:167:11).

 

(앗수르와 바벨론에 넘기신 하나님)

 

“30. 그러나 주께서 그들을 여러 해 동안 참으시고 또 주의 선지자들을 통하여 주의 영으로 그들을 경계하시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고도

 

그러나 주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여러 해 동안 참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과 앗수르에 붙이시기 전까지는 그들에 대해서 특별한 징벌을 하지 않으시고 여러해 참으셨습니다. 북국 이스라엘의 경우,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의 적극적 반역(왕상 12:25-29)에도 불구하고 무려 200여 년을 참으셨습니다. 그리고 남국 유다에 대해서는 북국에 대해서 보다도 약 135년을 더 인내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언자들을 그들에게 보내시어 주의 영으로 타이르셨지만, 사람들은 귀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주께서는 그들을 여러 나라 백성에게 넘기셨습니다. 하나님은 북국 이스라엘은 B.C.722년 앗수르에, 남국 유다는 B.C. 568년 바벨론에 각각 끌려가게 하셨습니다.(왕하 17:2325:2142:24).

 

(아주 멸하지 않으신 하나님)

 

“31. 주의 크신 긍휼로 그들을 아주 멸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도 아니하셨사오니 주는 은혜로우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이니이다

 

그러나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을 끔찍이도 불쌍히 여기셔서, 멸망시키지도 않으시고, 버리지도 않으셨습니다. 31절에서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해방시키셨던 사실을 간접적으로 그러나 강조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1:1-34:27).

 

(미래에 긍휼을 구하는 기도)

 

“32. 우리 하나님이여 광대하시고 능하시고 두려우시며 언약과 인자하심을 지키시는 하나님이여 우리와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이 앗수르 왕들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당한 모든 환난을 이제 작게 여기지 마옵소서

 

우리 하나님, 위대하고 강하고 두렵고, 한 번 세운 언약은 성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 앗시리아의 왕들이 쳐들어온 날로부터 이 날까지, 우리가 겪은 환난을, 우리의 왕들과 대신들과 제사장들과 예언자들과 조상들과 주의 모든 백성이 겪은 이 환난을 작게 여기지 마십시오.

여기서부터는, 과거 역사의 회고에서 미래에 대한 전망과 그에 대한 대처 방안의 모색으로 내용이 전환됩니다. 능하시고의 이 단어는 하나님의 전능성(10:179:6),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원수들과 대신 싸우시는 측면(15:6삼상 14:624:8,42:13을 강조할 때 사용됩니다. 앗수르 열왕은 하나님의 도구가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했으며(10:5) 이들의 뒤를 이어 바벨론 왕들이 또 징벌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에스라 당시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페르시아 왕들의 지배 하에 있었습니다. 징계의 도구로 쓰였던 앗수르 열왕에는 불(왕하 15:19,20), 디글랏빌레셋 3(왕하15:2916:7대상 5:6,26대하 28:20), 살만에셀(왕하 17:3), 사르곤 5(20:1), 산헤립(왕하 18:13-16), 앗술 바니팔(대하 33:11)등이 포함됩니다.

 

(주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33. 그러나 우리가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주께서는 진실하게 행하셨음이니이다34. 우리 왕들과 방백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이 주의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며 주의 명령과 주께서 그들에게 경계하신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고35. 그들이 그 나라와 주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큰 복과 자기 앞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을 누리면서도 주를 섬기지 아니하며 악행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우리에게 이 모든 일이 닥쳐왔지만, 이것은 주의 잘못이 아닙니다. 잘못은 우리가 저질렀습니다. 주께서는 일을 올바르게 처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 취하신 하나님의 모든 조치가 공의롭고 정당하였습니다(9:143:5,6). 이어지는 문구에서 그 이유가 설명됩니다. 우리의 왕들과 대신들과 제사장들과 조상들은 주의 율법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주의 계명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타이르시는 말씀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나라를 세우고 주께서 베푸신 큰 복을 누리면서도, 눈 앞에 펼쳐 주신 넓고 기름진 땅에 살면서도, 주를 섬기지도 않고,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도 않았습니다. 이 부분은 앞절의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에 대한 부연 설명에 해당됩니다. 그 중에서 34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 행위가 전 역사를 통해 모든 계층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등 대단히 보편적이었음을 지적합니다. 35절은 이스라엘의 범죄가 배은 망덕(背恩忘德)의 성격을 띄고 있는 지극히 사악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나라는 독립된 국가를 말합니다. 바벨론 포로기나 포로 귀환기의 민족적 예속 상태와 대조됩니다. 넓고 기름진 땅의 넓고는 출애굽 이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고센의 삼각주(47:27)보다 팔레스틴이 더 넓다는 사실입니다. 팔레스틴은 경작 가능 지역의 비율이 애굽보다 높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력 여하에 따라 팔레스틴 이외의 땅도 정복할 수 있게 (왕상 4:21) 약속되었다는 사실(3:8)을 말합니다. 기름진은 살지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의 사역형이므로 기름지게 한으로 번역되어야 타당합니다. 결국 이것은 모든 훌륭한 자연적 조건도 철저하게 하나님으로 부터 말미암은 축복이라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11:14147:8).

 

(포로에서 돌아온 시대 상황)

 

“36.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는데 곧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사 그것의 열매를 먹고 그것의 아름다운 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나이다37.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주께서 우리 위에 세우신 이방 왕들이 이 땅의 많은 소산을 얻고 그들이 우리의 몸과 가축을 임의로 관할하오니 우리의 곤란이 심하오며

 

그러나 보십시오. 오늘 이처럼 우리는 종살이를 합니다. 다른 곳도 아니고, 좋은 과일과 곡식을 먹고 살라고 우리 조상에게 주신 바로 그 땅에서, 우리가 종이 되었습니다. 본절과 다음 절에서 포로에서 돌아온 시대의 상황에 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을 여전히 종의 상태에 있는 것으로 인식하여 오늘 종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비록 바벨론땅에서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올 수는 있었지만 예전의 주권(主權)을 되찾지 못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페르시아의 종이었음이 분명했습니다. 실과를 먹고...소산을 누리게 하신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 시대 이래 살기 시작하여 바벨론 땅으로부터 귀환해서도 살고 있었던 팔레스틴 땅을 가리킵니다(24,25,35). 땅에서 나는 풍성한 소출은, 우리의 죄를 벌하시려고 세운 이방 왕들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 왕들은 우리의 몸뚱이도, 우리의 가축도, 마음대로 부립니다. 이처럼 우리는 무서운 고역을 치르고 있습니다.

페르시아 정부가 유대인들로부터 세금을 거두어들여가므로 많은 소산을 얻었습니다(4:13). 그 당시 페르시아 정부가 유대인들로부터 징수해 간 세금 액수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시 동일하게 페르시아의 피정복지였던 수리아의 세금 납부액이 일 년에 은 삼백 달란트였다는 헤로도투스의 역사 기록을 통해서, 유대인들의 고통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가 몸과 육축을...관할하였다는 것은 전쟁과 관련한 징병(徵兵)이나 징발(徵發)을 뜻합니다. , 페르시아 정부는 외국과의 전쟁을 위하여 유대인들을 병사(兵士)로 뽑아갔거나, 필요한 물자를 거두어갔던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아닥사스다 왕의 고관이었던 에스라(혹은 느헤미야)가 이처럼 페르시아 제국을 비방하는 투의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기도는 반역을 기도하려는 내용이나 페르시아의 잔학상을 고발하려는 내용이 아니며, 단지 언약에 불충실한 백성들에게 닥칠 수밖에 없었던 환난을 표현하고자 하는 데 중점을 둔 것입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세움)

 

“38. 우리가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이제 견고한 언약을 세워 기록하고 우리의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다 인봉하나이다 하였느니라

 

이 모든 것을 돌이켜 본 뒤에, 우리는 언약을 굳게 세우고, 그것을 글로 적었으며, 지도자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그 위에 서명하였습니다. 38절은 9장과 10장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고리 역할을 하며 내용상으로 10장의 첫절로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견고한 언약을 세워는 문자적으로 견고함을 잘라입니다. 이는 언약이라는 용어의 기원을 밝혀줍니다. , 계약 당사자들이 계약 의무를 다짐하기 위해, 그리고 언약을 어겼을 경우에는 죽음을 면치 못한다는 상징적 의식으로서 짐승을 잡아 둘로 쪼갠 후 그 사이를 지나면서 엄숙히 선서하던 고대 사회의 계약 체결 관습에서 유래하여 언약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섬기겠다고 결단하고 언약하였습니다. 하나님만을 경외하겠다고 언약하였습니다. 방백들...레위 사람들...제사장들 이들은 모두 백성들의 지도자들입니다. 여기서 지도자들이 먼저 죄악에서 떠나 모범적인 삶을 살아가겠다는 결단이 암시되고 있습니다. 인을 치나이다 - 문자적으로는 도장 위에 있나이다입니다. 이는 구체적으로 진흙에 새겨 구워 만든 도장을 언약문(言約文)에 찍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느헤미야 9장 강해 역사를 보는 영적 통찰력

느헤미야 91-느헤미야 938

요절 느헤미야 97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느헤미야 9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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