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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느헤미야 6장 강해 악한 음모로부터의 승리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11-08 00:00:00
조회수 : 4,132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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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6장 강해 악한 음모로부터의 승리

느헤미야 61- 19

요절 느헤미야 6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5장에서 대외적인 문제를 타개한 느헤미야는 이제 6장에서 또다시 외부의 적들의 음모와(1-4) 모함(5-9) 및 공갈, 협박(10-14)에 직면하기에 이릅니다. 대대적인 기습공격의 무용성을 깨달은 산발랏 일당은 성벽 재건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러 마지막 계교를 짜내었는데, 그것은 성벽 재건의 주동자요 책임자인 느헤미야를 암살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 음모를 극복하고 승리합니다.

 

(성벽 건축 소식을 들은 산발랏)

 

“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느헤미야가 성벽을 쌓아 올려 무너진 곳을 다 이었다는 말이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랍 사람 게셈과 그 밖의 우리 원수의 귀에까지 들어갔습니다. 나머지 우리의 대적들은 산발랏에 동조하여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하던 또 다른 자들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을 가리킵니다(4:7). 그러나 그 때까지도 성문들의 문짝은 만들어 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문짝은 건축 공사를 할 때에 마지막으로 달게 된다는 점에서 볼 때, 본 문구는 성벽 공사가 전반적으로 완료되기 일보 직전에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를 해하고자하는 대적들)

 

“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산발랏과 게셈이 느헤미야에게 전갈을 보내 왔습니다. 여기에 도비야라는 인물의 이름이 빠져있는 것은 본절의 두 인물이 총독 혹은 족장(2:19)인데 비해 도비야는 다만 그 총독의 막료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2:10). 오노 들판의 한 마을로 오라고 합니다.

오노 평지의 평지는 나누다 혹은 쪼개다의 뜻을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오히려 계곡으로 번역해야 적당합니다. 오노는 예루살렘 북서쪽 약 32.4km 지점에 위치했습니다. 이곳은 그 당시로서는 사마리아와 아스돗 사이의 중립 지대로서, 완전한 이스라엘 땅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 같은 점을 감안한다면, 산발랏 일당이 오노를 느헤미야와의 면담 장소로 택한 것이 느헤미야를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꾀어내어 살해하려는 음모에 따른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촌에서에 대해서는 여러 마을들 중의 하나에서를 의미합니다. 산발랏 등이 여러 마을들 중의 하나에서 만나자고 함으로써 느헤미야로 하여금 그 마을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할 경우 그로부터 의심을 덜받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노평지에서 좀 만나자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그 말 속에 그들이 느헤미야를 해치려는 흉계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안심시켜서 제3의 장소로 불러 내어 거기서 죽이는 일이 흔했던것 같습니다(4:8 41:1-3). 바로 이러한 습속을 아는 느헤미야는, 외딴 곳으로 자신을 나오라는 대적들의 제안에 어떤 혹막이 숨겨져 있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느혜미야가 이처럼 재빨리 그 음모를 눈치 챈 것은, 느헤미야도 나름대로의 첩보망을 갖고 있었던 때문일 가능성도 큽니다.

 

(대적에게 내려갈 수 없다는 느헤미야)

 

“3. 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4. 그들이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사람을 보내되 나는 꼭 같이 대답하였더니

 

느헤미야는 그들에게 사람을 보내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습니다. 자신은 지금 큰 공사를 하고 있으므로, 내려갈 수 없다고 합니다. 내려갈 수 없다는 말을 통해 우리는 오노가 예루살렘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지대였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오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적들의 땅과 인근해 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낮추어 언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 이 일을 중단하고, 여기를 떠나서, 당신들에게로 내려가라는 말이냐고 반문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똑같은 것을 네 번씩이나 요구해 오고, 그 때마다 느헤미야도 똑같은 말로 대답하였습니다. 대적들의 반복된 메시지의 전달은 그들이 성벽 재건의 방해를 위해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느헤미야는 음모섞인 대적들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합니다. 느헤미야가 일 때문에 가지 못하겠노라 한 것 자체도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성벽 재건이 크게 진척된 것은 사실이었으나, 문을 달아서 작업을 마무리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입니다(1).

 

(느헤미야를 반역자로 모는 대적자들)

 

“5.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다섯 번째도, 산발랏이 심부름꾼을 시켜서 같은 내용을 보내 왔습니다. 심부름꾼이 가지고 온 편지는 봉하지 않았습니다. 고대의 공식 문서는 양피지 등에 기록된 뒤 끈으로 묶여 인장으로 날인되어 봉해졌었습니다. 이는 작성된 내용의 변조를 막아서 그 문서의 신빙성을 보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발랏 일당이 인봉치 않은 편지를 보낸 까닭은, 편지의 내용을 백성들도 알게 해서 놀라게 하며, 느헤미야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나오게끔 촉구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과 유다 사람들이 반역을 모의하고 있고, 당신이 성벽을 쌓는 것도 그 때문이라는 소문이 여러 민족 사이에 퍼져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산발랏의 다섯 번째 편지의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한 마디로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실에 대해 모반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방 사람은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을 가리킵니다(4:7).

가스무도 이 사실을 확인하였다고 합니다. 가스무가 이방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느헤미야의 모반 사실을 확증했다는 뜻입니다. 가스무는 느헤미야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게셈으로 불리워지던 인물의 아라비아식 이름입니다. 더구나 가스모의 보고에 따르면, 당신은 그들의 왕이 되려고 하고 있다고 협박하였습니다.

느헤미야가 성을 건축했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그 안에 살던 백성들을 의적의 칩입으로부터 보호하려는데 있었습니다(1:3). 따라서 느헤미야가 모반을 꾀한다는 소문은 말할 나위도 없이 대적들이 지어내어 퍼뜨린 완전한 허위였음이 분명합니다. 휠씬 이전에 있었던 성전 재건의 시도도 바로 이와같은 허위 보고가 페르시아 왕실에 올려짐으로써 좌절되었습니다(4:11-23). 바로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던 산발랏은 금번에도 그와 유사한 헛 소문을 퍼뜨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을 중지시키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만나자는 대적자들)

 

“7.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지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예루살렘에서 당신을 왕으로 떠받들고서 유다에 왕이 있다고 선포하게 할 예언자들까지 이미 임명하였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느헤미야가 왕이 되려한다는 말은 산발랏의 거짓말입니다. 사실 왕족도 아닌 느헤미야가(2:3), 스룹바벨과 같은 직계 왕족도(2:2) 왕에 오를 수 없었던 포로 후 시대의 상황에서 스스로 왕이 되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네가 선지자를 세워는 스룹바벨 시절에 생긴 건축 사역의 재개를 위하여 활약했었던 학개 및 스가랴 선지자의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예언(2:22,239:)을 알고 있었던 산발랏의 거짓말입니다. 산발랏은 거의 1세기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들의 메시아 예언을 왜곡시켜서, 느헤미야가 그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선지자의 도움을 받아 왕에 오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헛된 주장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이제 곧 왕에게까지 보고될 것이라고 합니다. 왕에게 보고한다는 말은 산발랏은 느헤미야를 모반 혐의로 고소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시사함으로써 그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사실 아닥사스다 왕 시대에는 페르시아 정복지 전역에 걸쳐서 모반이 끊이지 아니했었습니다. 특히 많은 권력을 쥐고 있었던 술 관원들의 모반이 잦았었습니다. 술 관원 출신이었던(1:11) 느헤미야가 모반을 하고 있다는 고소는 비록 그것이 무고(誣告)이기는 했지만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서 진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적지 않았습니다. 산발랏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서 느헤미야를 협박하려 드는 것입니다. 그러니 산발랏은 만나서 함께 이야기하자고 합니다.

 

(그들의 말을 단칼에 부정함)

 

“8.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단 몇 마디의 말로써 산발랏의 장황한 참소(6, 7)를 기각시켜 버리고 있습니다. 만일 산발랏의 무고가 아닥사스다왕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경우 느헤미야가 곤란한 문제들에 직면할 가능성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신뢰한 때문이었습니다(9). 느헤미야는 그에게 회답을 보냈습니다. 당신이 말한 것은 사실이 아니오. 당신이 마음대로 생각하여 꾸며낸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지어낸은 구약성경 중 본절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나타나는 왕상 12:33에서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소견에 옳은 대로 어떤 계획을 세우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밖의 성경 외적 문헌에서도 이 단어는 거짓을 꾸미다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따라서 여기서 이 단어는 타인을 해롭게 할 목적으로 진실을 교묘히 왜곡시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손을 힘있게 해달라는 기도)

 

“9.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그들은 느헤미야 일행에게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가 겁을 먹고 공사를 중단하여, 끝내 완성을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발랏 일당의 집요한 심리전에 의해서 낙심에 빠졌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4:4). 이제 다시 산발랏은 느헤미야를 회유. 협박함으로써, 그런 결과를 재차 얻으려고 했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성벽 재건을 신속히 추진하려고 애쓰던 느헤미야에게 큰 장애 요소였음에 분명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 나에게 힘을 주십시오! 기도합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담대한 마음을 허락해 주실 것을 소원하였습니다.(NIV) 하나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기도로 두려움과 낙심을 극복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전에 피하자는 스마야)

 

“10.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10절에서부터 19절까지에서는 산발랏 일당의 또 다른 음모가 언급됩니다. 그런데 이 음모에는 느헤미야 진영에 있는 사람, 더욱이 선지자가 가담하였다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입니다. 하루는, 스마야를 만나려고 그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는 들라야의 아들이며, 므헤다벨의 손자입니다. 이 사람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전에도 들어갈 수 있었던 신분의 소유자라는 본절의 암시로 볼때 제사장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또한 그는 그 당시에 선지자 행세를 하기도 했었습니다(12). 그는 문밖 출입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스마야 자신처럼 은둔하지 않으면 느헤미야가 암살을 당할 위험이있음을 암시하려는 술수였습니다. 아니면 마치 감금되어 있었던 것처럼 꼼짝하지 않음으로써 느헤미야로 하여금 스마야 자신을 찾아 헤매도록 하려고 한 술수였습니다.

스마야가 느헤미야에게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으로 가자고 합니다. 스마야는 산발랏 일당의 암살을 모면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피신하자고 제안합니다. 외소는 ...의 중앙을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성소를 가리킵니다(48:21). , 성전 현관과 지성소의 사이입니다. 성소 안으로 들어가서, 성소 출입문들을 닫자고 합니다. 성소와 성전의 현관 사이의 잣나무로 만들어진 문입니다(왕상 6:34). 자객들이 그대를 죽이러 올 것이오. 그들이 밤에 와서, 반드시 그대를 죽일 것이오라고 말합니다. 느헤미야의 공포심을 가중시키기 위한 반복입니다.

스마야는 이미 자신의 경고 서두에서 죽이러 올터이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것은 산발랏 일당이 보낸 자객들이 느헤미야를 암살하기 위해서 사마리아로부터 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대규모 공격은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에 의해서 쉽게 눈에 띄어(4:9, 22) 실패할 가능성이 많았던 반면, 느헤미야 개인에 대한 스마야의 암살 협박은 느헤미야에게 대단한 두려움을 안겨줄만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성소에 피하자고 합니다. 사실 살해 위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도망가서 제단 뿔을 잡는 것은, 모세 율법에 규정되어 있었습니다(21:12,13왕상 1:50-532:28). 따라서 스마야의 제안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음흉한 함정이 깔려 있었습니다(12).

 

(성소로 피하라는 음모를 거절)

 

“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느헤미야는 두 가지의 이유를 들어서 성전으로 피신하라는 스마야의 음모적인 권고를 거절합니다. 느헤미야는 대답하였습니다. 나 같은 사람더러 도망이나 다니란 말이냐고 합니다. 이것은 느헤미야가 성전으로의 피신을 거절한 첫째 이유입니다. , 그는 페르시아 왕실로부터 임명된 총독의 신분으로서 생명의 위협이있다고 해도 몸을 숨기는 것은 타당치 않음을 그 이유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느헤미야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련을 앞장서서 극복해야 할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비록 죽음이 눈앞에 닥쳐왔다 하더라도 초연함으로써 백성들의 모범이 되고자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나 같은 사람이 성소에 들어갔다가는 절대로 살아 나올 수 없소. 나는 그렇게는 못한다고 합니다. 성전으로의 피신을 거절한 두 번째 이유입니다. 사실 모세 율법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자에게는 성전으로서의 피신을 허용하였습니다(21:12, 13). 그러나 그러한 피신은 특정한 경우에 제한되었으며, 외국인 특히 이방 군대에 의한 경우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느헤미야와 같은 상황에서의 성전으로의 피신은 제사장 이외의 사람은 성전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행위였습니다, 율법은 이러한 범법자는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18:7).

 

(뇌물을 받은 스마야)

 

“12.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느헤미야는 그 때에 그가 하나님이 보내신 예언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느헤미야의 이러한 깨달음은 스마야의 음모섞인 권고를 듣는 즉시 있었을 것입니다. ,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자신에게 범법행위를 권하는 그 사실을 통해서 그 즉시 그가 하나님의 참 선지자가 아님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참선지자의 여부는 그의 메시지 및 행실를 통해서 분별될 수 있음(7:15-20)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매수되어서, 자신을 해치는 예언을 하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뇌물을 받고는 원래 고용하다 혹은 보답하다는 의미로서 어떤 악한 일을 애써 해주는 대신 그에 대한 삯을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23:49:4왕하 7:6).

산발랏 도비야로 주어를 두 사람 언급하면서 단수 어미의 동사를 사용한 것은, 두 사람 중 먼저 언급된 도비야의 역할을 특별히 강조하려는 느헤미야의 의도때문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도비야는 거짓 선지자 스마야를 매수하는데 있어서 계획부터 실행 과정까지 직접 담당했으며, 산발랏은 그것을 후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뇌물을 준 이유)

 

“13.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그들이 스마야를 매수한 것은, 느헤미야에게 겁을 주어 성소를 범하는 죄를 짓게 하여서, 자신의 명예를 떨어뜨리고 자신을 헐뜯으려는 속셈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분석한 바, 곧 도비야가 스마야를 매수한 삼중적인 이유를 말씀합니다. 도비야가 스마야를 매수하여 느헤미야에게 거짓 예언을 하게끔 한 가장 큰 이유는 느헤미야를 두렵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산발랏이 보낸 자객이 밤 중에 느헤미야를 암살할 것이라는 경고는, 느헤미야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넉넉했습니다. 제사장이 아닌 느헤미야를 성소에 들어가게 함으로서 느헤미야를 범죄케하고자 하였습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스마야의 공갈에 심약(心弱)해져서 성전으로 피신하는 잘못을 범했을 경우 성소에 들어가는 죄를 범하였다고 공갈치고자 하였습니다.

 

(대적들을 대항한 기도)

 

“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느헤미야는 나의 하나님, 도비야와 산발랏이 한 일을 잊지 말아달라고 기도합니다. 예언자 노아댜와 그 밖에 자신에게 겁을 주려고 한 예언자들이 자신에게 한 일을 잊지 말아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느헤미야가 얼마나 신앙적 인물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그는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겸손한 마음을 보여줍니다. 원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갚지 아니하고 하나님 손에 넘기라는 율법의 정신을(32:3594:112:19) 이행하고자 했음을 보여줍니다.

느헤미야에게 이처럼 많은 대적들이 있었던 까닭은 산발랏이 일찍이 많은 사람들을 포섭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느헤미야가 상류층에 대해 엄격한 정책(5)을 편 때문이었습니다.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이 누구이며 느헤미야에 대해 어떤 일을 했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이들은 본절의 언급처럼 스마야와 함께 느헤미야를 대적했던 무리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도록 특별히 부르심 받은 선지자들이 오히려 그뜻을 정면으로 거스린 일에 대해,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하기를 기도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이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치 않고 스마야의 행위에 대해서만 특별히 다른 까닭은, 스마야의 경우 그 대적 행위가 너무도 교활하고 사악하여 나머지 악한 선지자들의 계교를 대표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성벽의 완성과 대적들의 낙담)

 

“15. 성벽 역사가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나매 16. 우리의 모든 대적과 주위에 있는 이방 족속들이 이를 듣고 다 두려워하여 크게 낙담하였으니 그들이 우리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이루신 것을 앎이니라 17. 또한 그 때에 유다의 귀족들이 여러 번 도비야에게 편지하였고 도비야의 편지도 그들에게 이르렀으니18.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 스가냐의 사위가 되었고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 므술람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으므로 유다에서 그와 동맹한 자가 많음이라 19. 그들이 도비야의 선행을 내 앞에 말하고 또 내 말도 그에게 전하매 도비야가 내게 편지하여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하였느니라

 

성벽 공사는 오십이 일 만인 엘룰월 이십오일에 끝났습니다. 오늘날의 대다수 학자들은 성벽이 없어서 예루살렘 거민이 당했던 참상을 잘 알고 있던(1:32:17) 느헤미야가 성벽 공사를 급히 서둘렀을 것이라고 합니다. 느헤미야의 성벽 재건 사업과 거의 동시대에 이뤄졌던 아테네의 성벽 공사도 단 한 달 만에 끝났었음을 근거로 오십이일과 같이 빨리 맞쳤다고 봅니다.

엘룰월은 양력으로는 8,9월이지만 유대 민간력으로 12 월이었습니다. 따라서 민간력으로 계산할 경우, 성벽 재건 공사는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B.C.444년 그 해에 완공된 셈이 됩니다. 특히 이 공사는 민간력으로는 압월(11)사일부터 엘룰월(12)까지, 양력으로는 7월중순 경부터 9월 중순까지의 덥기는 하나 비가 오지 않는 건기(乾期)에 시행된 고로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모든 원수와 주변의 여러 민족이 이 소식을 듣고, 완공된 성벽도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우리의 원수는, 이 공사가 우리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모든 대적은 보다 구체적으로는 산발랏을 비롯한 이방 민족들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2:19). 사면 이방 사람들은 그 지도자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본서에 언급되고 있는 사마리아 사람, 암몬 사람, 아라비아 사람. 아스돗 사람(4:7) 이외에, 베니게 사람과 수리아 사람 등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가 꺾였습니다. 낙담했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그들의 눈 앞에서 넘어졌다의 뜻입니다. 그 구체적 의미는 자신감을 상실했다(NIV), 자존심을 손상당했다입니다. 수많은 장애 요인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토록 빠른 시기에 재건 공사가 완공된 것이 그들의 눈에 가히 기적으로 보여졌음이 분명합니다. 아무튼 이 같은 그들의 반응은, 끊임없이 느헤미야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렵게 하려고 했던 그들의 시도(9, 13, 14)에 걸맞지 않습니다. 사실 대적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협박하여 재건 사업을 중단하게 만들려고 획책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반대로 더 큰 두려움을 그 대적들에게 임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곧 4:4에 기록된 느헤미야의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의 극적인 전환은 대적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증거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17절에서부터 19절까지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선지자들(14) 이외에도 느헤미야에 대한 또 다른 적대 세력이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느헤미야는 여기서 이러한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성벽 공사가 단시간에 끝날 수 있었던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지도층 인사들이 느헤미야의 대적들과 내통하고 있었습니다. 귀인들(5:7)은 느헤미야에 관한 모든 정보를 여러 방식으로 탐지하여 그것을 도비야에게 신속하게 넘겼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온 도비야의 편지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재건 공사에서 손을 떼게끔 내부 공작을 꾸미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개인 및 성벽 재건 상황에 관한 정보를 입수하게끔 지령을 내리는 일을 가리킬 것입니다(19). 그 무렵에 유다의 귀족들이 도비야에게 편지를 자주 보내고, 도비야도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곤 하였습니다. 도비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부와 얼마나 깊이 밀착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또한 이것은 이방인과의 통혼을 금지시켰던 에스라의 개혁(9,10)이 이들에게 잊혀지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도비야는 아라의 아들인 스가냐의 사위입니다. 아라는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어떤 가족의 조상입니다(7:102:5). 따라서 아라의 아들은 아라의 자손으로 번역되어야 적절합니다. 스가냐는 3:29에서는 동문지기로 언급되고 있으며 그의 아들은 성벽 재건에 참여하기도 하였습니다(3:29). 바로 그런 점에서, 스가냐 일가는 당시에 이스라엘 사회에서 상류층으로 분류됐을 것이 분명합니다. 도비야는 바로 이 같은 유력한 가문과 정략적으로 결혼함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중대시키려고 하였습니다.

도비야의 아들 여호하난도 베레갸의 아들인 므술람의 딸과 결혼하였습니다. 도비야가 이스라엘 백성 중 유력한 사람의 사위가 된 데이어서, 또한 유력한 사람과 사돈 관계를 맺었음을 말해줍니다. 므술람은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에서 두 몫을 맡아 담당했던 제사장이었습니다(3:4, 30). 여호하난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에는 그와 동맹을 맺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18절 말씀은 히브리 원문에는 본절의 초두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원문에는 왜냐하면의 뜻을 갖는 접속사가 있어서, 본 문구가 17절의 이유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동맹한은 주인이 되다 혹은 지배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 에서 파생된 명사이고, 맹세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입니다. 그러므로 본절의 동맹한이라는 말은 ...을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맹세를 뜻한다. 따라서 본 문구는 유다 사람들 상당수가 도비야를 섬기기로 하는 서약을 했다는 뜻임이 분명합니다. 추측컨대, 도비야가 유다 사람들과 혼인 관계를 맺거나 동맹을 맺은 것은, 그가 산발랏의 고위 행정관으로서 예루살렘에 머물던 시절의 일이었을 것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총독의 자격으로 오기 전까지는 산발랏이 유다 땅에 자신의 부하 도비야를 파견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을 듯합니다(5:15 주석 참조). 그들은, 느헤미야 앞에서도 서슴없이 도비야를 칭찬하였습니다. 유력한 유대인들 중 도비야와 내통하고 있었던 자들이 도비야와 느헤미야 사이에서 매개자 역할을 하였음을 보여줍니다. 무력으로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고자 했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대적들은 이제 음해(陰害)의 방향을 수정하여 외면적으로 우호와 친선을 가장하기도 하고 위협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여 계속 교란책을 펴나갔습니다. 내통자들이 도비야의 좋은 면을 부각시키기 위해 선행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중에는 도비야의 스마야에 대한 재화(財貨) 증여(12)가 뇌물이 아니고 자선이었음을 강조하는 내용도 포함될 것입니다. 그들이 이같이 거짓말을 한 까닭은, 느헤미야로 하여금 도비야에 대한 경계심을 풀도록 하여 도비야의 성벽 재건 방해 운동을 성공케 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내통자들은 느헤미야가 하는 말은 무엇이든지 다 그에게 일러바쳤습니다. 내통자들이 느헤미야의 일거수 일투족을 탐지하여 도비야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래서 도비야는 느헤미야에게 협박 편지를 여러 통 보내서 위협하였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말씀을 따라서 살았습니다. 말씀을 따라서 살았을 때 안전하였습니다. 말씀은 지뢰밭과 같은 곳에서 우리를 지켜주시는 안전 지대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말씀이 여러 사탄의 모함과 함정에서 지켜주실 것입니다. 아멘

느헤미야 6장 강해 악한 음모로부터의 승리

느헤미야 61- 19

요절 느헤미야 6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느헤미야 6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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