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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룻기 4장 강해 값을 치른 보아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06-20 00:00:00
조회수 : 4,593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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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 4장 강해 값을 치른 보아스

말씀 룻기 41-룻기 420

요절 룻기 410

 

우리집 개(dog)인 아비가일이 다섯 마리의 새끼를 낳았습니다. 아비는 새끼를 낳기 위해서 새끼를 낳기 전에는 먹지도 못했습니다. 새끼를 낳은 후에는 개집에 틀어박혀서 두문불출하였습니다. 그는 새끼를 위해서 값을 치른 것입니다.

룻은 남편을 잃은 과부입니다. 땅도 다 팔렸습니다. 엘리멜렉의 가까운 친족은 룻의 집에 기업무르는 것을 거절합니다. 그러자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집에 기업을 무르는 책임을 집니다. 룻을 위해서 땅을 사주고 남편이 되어줍니다. 기업무른다는 것은 물질적인 값을 치르고 명예까지 희생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축복하셔서 보아스와 룻에게서 오벳이 태어나고 생명이 회복되게 하십니다. 여기서 다윗이 태어나고 예수님이 태어나게 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을 회복시켜주십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하여 생명이 회복되는데는 대가를 치러야 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멘

 

(공개적인 기업무르는 의식)

 

1-2절을 보십시오.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

 

보아스는 룻에게 가까운 친족이 있는데 그 사람이 기업을 무르지 않으면 내가 기업을 무르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보아스는 약속대로 기업무를 자에게 룻의 기업을 무를 것인지 물어보고자 합니다. 보아스가 모든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공개적인 장소인 성문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성은 넓고 튼튼하여 자동차가 다닐 수 있을 정도입니다. 우리 나라의 시장이나 우물과 같습니다. 성문 앞에서 주로 재판을 하였습니다. 보아스는 성의 열 명의 장로를 불러서 성문에 앉게 하여 증인으로 삼았습니다. 기업무르는 것을 장로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하여 뒤탈이 없게 하였습니다. 보아스가 말한 엘리멜렉의 가까운 친족으로서 기업을 무르는 자가 지나갔습니다. 보아스는 그를 어이! 하고 불러 그를 성문에 앉게 하였습니다. 성주위에는 많은 베들레헴 성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토지를 사겠다는 자)

 

3,4절을 보십시오.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내가 여기 앉은 이들과 내 백성의 장로들 앞에서 그것을 사라고 네게 말하여 알게 하려 하였노라 만일 네가 무르려면 무르려니와 만일 네가 무르지 아니하려거든 내게 고하여 알게 하라 네 다음은 나요 그 외에는 무를 자가 없느니라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

 

보아스가 그 기업무르는 자에게 우리의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니 그 기업인 토지를 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형제라고 하여 공동체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그가 그 토지를 살 것인지 사지 않을 것인지 분명히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사지 않으면 자신이 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엘리멜렉의 토지를 사겠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룻의 집에는 계승자가 없습니다. 그는 룻의 집에서 토지를 사면 그 토지가 자신의 이름으로 계승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는 더 많은 토지를 소유하게 됩니다. 우리는 돈을 가지면 원하는 토지를 마음대로 살 수 있지만 그들은 마음대로 살 수 없습니다. 자신의 기업 토지만 살 수 있습니다. 아니면 가까운 친척의 토지만 살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예와 이익을 따라서 토지를 사겠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기업에 손해를 보지 않고자 하는 자)

 

5,6절을 보십시오. “보아스가 이르되 네가 나오미의 손에서 그 밭을 사는 날에 곧 죽은 자의 아내 모압 여인 룻에게서 사서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야 할지니라 하니 그 기업 무를 자가 이르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내가 무를 것을 네가 무르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기업무르는 자가 기업을 사겠다고 하자 보아스는 기업무르는 자가 밭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한 가지 더 책임이 있다고 말합니다. 룻과 결혼하여 그 자녀를 낳고 자녀에게 죽은 엘리멜렉의 이름으로 그가 산 토지를 주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기업무르는 사람은 그렇게 하면 자신은 돈만 손해보고 자신의 기업에 이익이 되지 않게 됩니다. 그는 결혼까지 해서 죽은 자의 자식을 낳아야 한다면 자신의 재산과 명예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그녀의 땅을 사지 못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기업을 무르는 것은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돈을 지불해야하고 자신의 명예까지 내어놓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는 돈을 지불하고자 하였지만 자신의 명예를 내어놓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땅을 사도 그 땅이 자신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지 않음으로 자신이 손해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이기적이어서 기업을 무르는 사회적인 책무를 하지 않았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는 기업을 무른다는 것입니다. 기업을 무른다는 뜻은 무엇입니까?

 

(기업무를 자)

 

기업(基業) 무를 자란 룻기에 자주 나오는 표현이기는 하지만 이해하기가 쉽지 만은 아니한 개념입니다.. 성경 독자들이 기업 무를 자”(2:20 3:9 4:1, 3, 4, 8, 14)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하라”(3:13, 3)무르다”(4:4a,b,6a,b)라는 표현을 이해하는 데는 두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업이라는 명사나 무르다라는 동사가, 합하여 일반적인 뜻과는 달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룻기에 반영된 사회적 배경이나 풍습, 특히 친족 사이의 사회적 의무나 책임 등에 관한 관습이 우리 나라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어서 설명을 덧붙여야 합니다.

기업 무를 자라고 할 때 기업, 우리가 요즈음에 흔히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을 일컬을 때 쓰는 바랄 기()기업”(企業)이 아니고, 우리가 요즈음에 별로 잘 쓰지 않는 터 기()기업”(基業)입니다. 기업은 대대로 물리어 내려오는 재산이나 사업을 일컫는 말입니다. 아니면 아내나 남편을 말합니다. “무르다라는 동사 역시 그렇게 쉬운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는, “물건을 되돌려 주고, 값으로 치렀던 돈을 되찾는 것을 뜻합니다. 장기나 바둑 둘 때 한 수만 물려줘라는 표현을 써서 되돌린다고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서는 물건(··)을 도로 찾고, 값으로 받았던 돈을 샀던 사람에게 되돌려 주는 것을 뜻합니다. 성경에 기업 무를 자의 책임을 행하다라는 표현은 친족으로서의 책임을 수행한다는 뜻인데, 다음의 네 가지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친족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첫째는, 친족 형제가 아내를 홀로 남기고 고인이 되면, 고인의 가까운 친족 중에 한 사람이 그를 아내로 맞이하여 고인의 이름과 유산을 이을 아들을 낳아 주는 경우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기업무를 자의 책임을 행하라는 것은 바로 고인이 된 친족의 아내를 자기 아내로 데려 가는 친족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종을 자유인으로)

 

둘째는, 친족 중에서 어떤 사람이 가난하게 되어 그가 자신의 몸을 팔아 어느 누구의 종이 되었을 때가 있습니다. 가까운 친족 중 한 사람이 그 종 주인에게 몸값을 갚아 주고 그 친족을 데리고 와서 자유인이 되게 하는 경우입니다.(25:47-55).

 

(밭의 소유권 회복)

 

셋째는, 어떤 사람이 가난해져서 유산으로 받은 밭(基業)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을 때, 가까운 친족 중에서 나서서 그 밭을 다시 되돌려 사서 본래의 주인의 소유권을 회복시켜 주는 경우입니다.(25:26,33 4:4,6).

 

(원수를 갚아주는 경우)

 

넷째는, 친족 중에 누가 억울하게 살해되었을 때 그 가해자를 잡아 죽여 원수를 갚아 주는 경우입니다.(35:19-27). 이렇게 원수 갚아 주는 행위 역시 친족으로서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경우 우리말 개역성경은 그 원수 갚아 주는 사람을 기업 무를 자라 하지 않고 피의 보수자(報酬字)”라고 하였습니다.

 

(대신 결혼하고 땅을 사줄 남자)

 

위의 네 경우 가운데서 첫째와 둘째 경우에는 기업 무를 자란 표현이 적절하지 않습니다. 네 가지 경우를 폭넓게 담으려면 친족으로서의 책임을 수행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이 좋습니다. 현대어로 가까운 표현을 찾는다면 노블리스 오블라제라는 말일 것입니다. 사회적인 책임이라는 뜻이지요. 구체적으로 말하려면, 첫째 경우는, “결혼해 줄 남자, 둘째 경우는, “몸값을 지불해 줄 사람으로, 셋째 경우는 그대로 기업을 무를 사람으로, 넷째 경우는 그대로 원수 갚아 줄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룻기에서 나오는 기업 무른다는 의미는 첫째와 셋째의 의미입니다. 대신 자녀를 낳아주는 의미이고 또 하나는 대신 땅을 사는 자입니다. 여기서 무르다는 표현은 영어 성경에 구속하다는 속량하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기업을 무른다는 것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책임을 지고 룻도 시어머니의 이름도 책임을 지게 하였습니다.

 

(신을 벗어서 사회적인 책임을 회피함)

 

7-8절을 보십시오.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옛적 이스라엘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해서는 신을 벗어 이웃에게 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경우라면 도장을 찍거나 서명을 하는 경우와 같습니다. 기업무를 자는 신을 벗어서 보아스에게 주며 나는 기업을 무르지 않을 테니 네가 기업을 무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기업을 무르지 않으면 자신의 사회적인 책임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적으로는 죄가 아니지만 윤리적으로는 죄에 가까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사람에게 침을 뱉어서 모욕을 줍니다. 친척은 무너져 가는 집에 대해서 값을 치르기를 거부하였습니다. 무너지는 가문을 떠안기를 거부하였습니다.

 

(기업을 무르는 보아스)

 

9,10절을 보십시오.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 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보아스는 백성들과 장로들 앞에서 자신이 룻의 집에 기업을 무르는 것에 대해서 선언했습니다. 그는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룐의 집에서 밭을 산 것을 증거하였습니다. 룻을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끊어지지 않게 할 것도 증거하였습니다. 보아스는 룻을 위해서 돈도 희생하고 자신의 명예도 희생하였습니다. 그런 희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가 계승되었습니다.

 

(베레스의 집 같게 되기를)

 

11,12절을 보십시오.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룻을 기업무르는 일에 증인을 섰습니다. 그들은 보아스와 룻을 축복하였습니다. 다말이 라헬과 레아와 같이 열두아들을 낳아주도록 축복하였습니다. 라헬과 레아는 자녀의 복을 많이 받아 열두 아들을 낳은 여자들입니다. 그들에게서 열두지파가 태어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모압여자 룻을 열두지파의 반열에 들어가게 하였습니다. 자녀가 에브라다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축원했습니다. 이 젊은 여자로 하여금 그에게 상속자를 주어 그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와 세레와 같게 하시기를 축원했습니다.

유다가 다말을 위하여 아기를 낳아준 것도 하나의 기업을 무르게 해준 좋은 예입니다. 다말은 남편이 죽고 시동생이 죽어서 기업을 무를 수 없었습니다. 셋째가 있었는데 남편으로 주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시아버지와 자서 시아버지가 기업을 무르게 하였습니다. 그는 기업을 무르게 하기 위해서 시아버지와 잠을 자는 일에 자신을 희생하였습니다. 그래서 12절에 베레스에 아기를 낳아줄 다말의 집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였습니다. 기업을 무르는 것에는 희생이 따릅니다.

 

(기업을 무르는 예수님)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기업무르는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값을 대신 치러주었습니다. 우리는 룻이 땅을 잃었던 것처럼 죄로 인하여 사단에게 생명을 팔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죽음으로 생명이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생명의 값을 치르시고 우리의 생명을 피값으로 사서 대신 찾아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명예를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여 우리에게 새 생명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여 새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치욕을 당하고 명예까지 희생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복되고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기업을 물어주신 것은 큰 은혜입니다.

우리가 전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를 위하여 대신 생명의 희생을 하는 것입니다. 그의 죄값을 대신 치러야합니다. 명예까지 희생하고 모욕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핍박과 고난이 따릅니다. 그러나 그를 통하여 생명이 자랍니다.

보아스가 기업을 물었을 때 하나님은 그곳에서 위대한 왕 다윗이 태어났습니다. 그곳에서 예수님이 태어났습니다. 이런 구속의 개념은 유다의 대속에서도 나타납니다. 유다는 베냐민이 종으로 잡히게 되었을 때에 자신이 대신 종이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며느리와 잠을 자고 동생을 판 유다를 메시야의 조상으로 세워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직도 예수님 믿지 않는 자의 기업무를 자를 찾으십니다.

 

(생명의 회복자)

 

13-15절을 보십시오. “이에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고 그에게 들어갔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게 하시므로 그가 아들을 낳은지라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이르되 찬송할지로다 여호와께서 오늘 네게 기업 무를 자가 없게 하지 아니하셨도다 이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 유명하게 되기를 원하노라 이는 네 생명의 회복자이며 네 노년의 봉양자라 곧 너를 사랑하며 일곱 아들보다 귀한 네 며느리가 낳은 자로다 하니라

 

보아스가 룻을 맞이하여 아내로 삼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임신하게 하셨으므로 그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여호와를 찬송하였습니다. 나오미에게 기업 무를 자를 허락하여주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룻기는 보아스의 희생을 통해서 슬픔이 찬송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아이의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유명하게 되기를 기원하였습니다. 나오미가 낳은 아이는 나오미의 생명의 회복자이며 노년의 봉양자라고 노래하였습니다.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고 활활 타오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오미의 죽은 생명을 회복시켜주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사랑하는 며느리고 일곱 아들보다 귀한 며느리입니다. 며느리를 수많은 아들보다 더 나은 자로 잘 두었습니다. 진정한 아들은 부모와 함께 하는 자고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입니다. 며느리 룻은 시어머니를 끝까지 따르고 봉양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아들처럼 귀한 룻이 자녀를 낳았습니다.

룻에게 생명을 주신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시고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는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값을 치른 자를 쓰셔서 친히 구원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값을 치르고 하나님 나라를 회복시켜주십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어떤 사람도 절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영접하는 자에게는 풍성한 은혜를 주십니다.

 

(보아스는 다윗을 낳고)

 

16-20절을 보십시오.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베레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았고 람은 암미나답을 낳았고 암미나답은 나손을 낳았고 나손은 살몬을 낳았고 살몬은 보아스를 낳았고 보아스는 오벳을 낳았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이웃사람들은 나오미가 아들을 낳았다고 하며 그 이름을 오벳이라고 지어주었습니다. 룻기의 저자는 보아스의 이름을 빼고 엘리멜렉의 이름을 넣어야 하는데 보아스의 이름을 그대로 넣어주었습니다. 하나님은 보아스의 희생을 받으시고 보아스의 이름을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보아스의 명예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룻에게 생명의 부활을 주었을 뿐 아니라 보아스에게도 명예의 부활을 주었습니다. 십자가에 죽는 자에게 부활의 영광이 있습니다. 오벳은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입니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가 되고 룻은 다윗의 증조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 가문에서 유다의 왕이 왔고 메시야가 태어났습니다. 아멘!

 

(값을 치름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

 

결론적으로 룻기에는 값을 치른 사람들이 나옵니다. 룻기 강해서를 만든다면 값을 치름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룻기에는 값을 치른 많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일하심으로 값을 치르는 경우입니다. 나오미는 남편과 두 아들을 잃는 값을 치렀습니다. 나오미는 이 값을 치른 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영접하였습니다.

둘째는 자원하여 값을 치르는 경우입니다. 보아스는 땅을 사고 남의 아내와 결혼하여 아기를 낳아주는 값을 치렀습니다. 룻은 남편을 잃는 값을 치렀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 편에서 영접하였습니다. 그는 뿐만아니라 시어머니를 따르고 밀이식을 주워서 공양하고 순종하는 값을 치렀습니다. 이것은 자원함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타율적인 값과 자율적인 값을 동시에 치렀습니다.

이 세 명 중에 누가 가장 바람직한 값을 치른 것입니까? 보아스입니다. 그는 자원하여 값을 치렀습니다. 우리나라는 50-70년대 타율적인 값을 많이 치렀습니다. 그러나 이제 선진국이 된 지금 자율적으로 값을 치러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힘써 값을 치름으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를 기도합니다.

보아스처럼 값을 치른 대표적인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업을 물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전적으로 자원하여 값을 치르셨습니다. 생명을 희생하고 명예까지 희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유진희 형제와 신선아 자매가 시험에 떨어지는 희생을 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어제 우리 큰형의 칠순이었습니다. 큰형은 지금 예수님을 믿고 건강하게 살고 계십니다. 십삼년 전에 심장병으로 거의 죽음의 문턱에 갔습니다. 그러나 그 값을 하나님의 사랑편에서 받아들이고 형은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어 지금은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나에게 추도예배를 인도하라고 하십니다. 이번 칠순잔치에도 내가 사회를 보아 진행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도 조금 값을 치렀습니다. 나도 형이 병이 걸렸을 때 기도하였는데 눈물이 갇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서 나도 형의 구원에 조금 값을 치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심으로 우리의 생명이 회복되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같이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기업을 무르는 자들이 되어야합니다. 자녀를 위해서 그리고 양들을 위해서 값을 치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값을 치를 때 생명이 회복되는 일이 일어납니다. 생명의 회복은 값을 치르는 데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값을 치름으로 생명이 회복되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룻기 4장 강해 값을 치른 보아스

말씀 룻기 41-룻기 420

요절 룻기 410

룻기 4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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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룻기] 룻기 3장 강해 기업무를 자를 찾는 룻 오요한 2008-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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