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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미가서 1장 강해 이스라엘의 파멸을 애통하는 미가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9-11-09 00:00:00
조회수 : 3,18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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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서 1장 강해 이스라엘의 파멸을 애통하는 미가
미가 1장 1-미가 1장 16절
요절 미가 1장 8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

미가는 이사야와 같은 동시대에 선지자입니다. 그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심판을 예언합니다. 성전에서 불이 나오고 온세상은 녹아납니다. 산 산태처럼 온 세상은 무너집니다. 그러나 이런 파멸은 새로운 건축을 위한 의미 있는 파멸입니다.

(이스라엘이 망하기 전에)

1절을 보십시오.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때는 유다의 왕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가 대를 이어 가면서 유다를 다스리던 기간입니다. 미가의 예언 활동 기간을 나타내는 세 왕의 재위 기간은 약 63년입니다(B.C.750-687). 미가가 63년에 걸쳐 예언한 것은 아니고 세 왕의 시대에 걸쳐 예언한 것입니다. 2-7절에 언급된 사마리아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볼 때 미가서가 사마리아의 멸망 시기인 B.C.722년 이전의 예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26장 18,19에 따르면 히스기야 왕 시대에 미가가 받은 말씀을 전한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은 베가와 호세아가 통치한 시대입니다. 비씨 700년 경에 북이스라엘이 망하기 20년까지 미가에게 임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미가서는 주님께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어찌 될 것인지를,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보여 주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묵시는 여호와의 말씀으로 이 책이 여호와의 권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것을 전한 미가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말씀 선포의 권위를 갖고 있습니다. 미가는 이사야 아모스등의 선지자와 함께 남유다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의 타락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모스 6장을 보면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정의와 공의를 쓸개와 쓴 쑥으로 바꾼 자들입니다. 다른 선지자들이 이스라엘과 주변국에 대해서 예언하였다면 미가는 오로지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서 예언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를 열방에 고소하시는 하나님)

2절을 보십시오. “백성들아 너희는 다 들을지어다 땅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들아 자세히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대하여 증언하시되 곧 주께서 성전에서 그리하실 것이니라” 하나님은 뭇 민족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모두 귀를 기울여 들어야합니다. 땅과 거기에 있는 만물들은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땅과 거기 있는 모든 것들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백성들과 대구를 이루는 표현입니다. 땅과 거기에 있는 것들은 열방을 의미합니다. 들을지어다(쉐마)는 법정에서 고소할 때 사용된 용어입니다. 주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죄를 열방에게 밝히십니다. 미가는 땅의 모든 백성들에게 이스라엘과 유다의 심판을 자세히 전하고 있습니다. B.C.8세기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을 열방에 고소하시는 것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 열방이 당할 멸망의 전조임을 시사합니다. 열방은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이라도 범죄할 경우 심판하시는 것을 보고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늘 성전에서 이스라엘의 죄를 증언하시는 음성을 열방은 들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멸망과 그 이유를 증거하시는 장소인 성전은 그 처소(3절)와 대구를 이루는 것으로 지상의 성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하늘을 의미합니다(시 11:4 사 63:15).

(이스라엘의 우숭숭배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3,4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하나님이 두려운 모습으로 강림하십니다. 하나님이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십니다. 높은 곳은 군사 요충지(신 33:29겔 36:2), 산의 정상, 이방신전(렘 7:31겔 20:29)등을 의미합니다. 문맥상 산(4절)과 우상 숭배(5-7절)가 어급되는 것으로 보아 높은 곳은 이방 신전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땅의 높은 곳에 산당을 세우고 그곳에서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그곳에 강림하시면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밀초같고 물같이 녹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 처소에서 나와 땅에 임재하여 심판하십니다. 세상은 마치 양초가 불에 녹듯이 녹을 것이고 밀이 불에 타듯이 타버릴 것입니다. 물을 전혀 흡수하지 못하는 진흙 땅에 내린 비가 홍수를 이루어 엄청난 피해를 주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은 심판당할 것입니다. 미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세상의 모습을 비유적으로 표현하여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당할 파괴가 얼마나 처참한 것인가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의 죄악을 철저히 심판하십니다. 시내산에서 강림하실 때 천둥이 울리고 번개가 치고 나팔소리가 울리고 땅이 진동하던 그 모습으로 오십니다.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우상숭배)

5절을 보십시오.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이스라엘이 망하는 것은 정치경제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죄와 허물 때문입니다. 이 모든 심판이 거역하기만 하던 야곱의 허물 때문입니다. 못할 짓만 하던 이스라엘 가문의 죄 때문입니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병행구를 이루는 다음 행위 야곱과 사마리아, 유다와 예루살렘처럼 대구를 형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야곱과 이스라엘은 동의어로 사용되어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곧 이스라엘 전체를 의미합니다. 야곱의 허물은 이스라엘의 반란(왕상 12:19)이나 모압의 반란(왕하 3:7)을 지칭할 때 사용된 단어로 윤리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에 대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어긋나다(to miss)에서 유래된 단어로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허물과 죄는 각각 죄의 적극적인 면과 소극적인 면을 나타냅니다. 죄는 상처와 같은 것이고 허물은 그로 인한 딱지와 같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과 좋지 않은 관계에 있다가 그 사람과 화해했습니다. 비슷한 사건이 생기면 그 사람이 다시 생각납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화가 납니다. 이것이 허물입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는 것은 그들이 저지른 죄악 때문입니다. 거역하기만 하던 야곱의 죄, 그것은 누구의 짓입니까? 그것은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가 행한 것입니다. 못할 짓만 하던 유다 가문의 죄, 그것이 누구의 짓입니까? 그것은 유다의 수도인 예루살렘이 행한 것입니다. 이 말씀은 두 개의 수사 의문문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수사 의문문에 해당하는 무엇이뇨는 문자적으로 누구냐라는 의미로 사마리아나 예루살렘을 의인화한 것입니다. 무엇은 인격을 가진 대상을 지칭할 때 사용된 것으로 이스라엘 전체가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했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7절에서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창기로 표현한 데서 보다 더 분명해집니다. 유다의 산당은 높은 곳(3절)과 동일한 단어로 우상숭배지를 가리킵니다. 뿐만 아니라 산당은 죄와 동격으로 사용되기도 하기 때문에(호 10:8) 여기서 야곱의 허물과 죄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렇게 심판하시는 이유는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들은 수도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서부터 하나님을 버리고 높은 산당에서 아세라 목상을 섬겼습니다. 우상이 그들의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우상을 섬긴 후에는 음행하였습니다.

(우상숭배로 망하는 사마리아)

6,7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내리고 그 기초를 드러내며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죄악이 시작된 사마리아를 빈 들의 폐허로, 포도나 가꿀 밭으로 만드십니다. 그 성에 쌓은 돌들은 골짜기에 쏟아 붓고, 성의 기초가 드러나게 하십니다. 우상숭배로 영적 행음의 죄를 범한 사마리아는 하나님의 임재로 완전히 파멸될 것입니다. 사마리아는 마치 농부가 밭을 경작할 때 나오는 돌들을 한쪽 구석에 모아놓은 돌무더기처럼 폐허가 될 것입니다. 들판에 돌이 쏟아져 있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소로 변할 것입니다. 그 지대를 드러내며 라는 표현은 문자적으로 사마리아 성의 기초가 파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표현은 하체를 범한다는 뜻을 상기시키기도 합니다(레 2011,17,18,20,21,) 이것은 구약 성경에서 행음이나 음행을 가리킬 때 사용된 것으로(삼하 6:20 겔 16:36 23:18호 2:10) 7절에서 언급되는 사마리아의 우상 숭배를 암시합니다. 우상을 섬기던 높은 지대에 있는 돌들을 골짜기로 쏟아냅니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돌무더기 같이 만드십니다. 사마리아에 새겨서 만든 우상을 모두 박살내십니다. 우상을 모두 부수어서 쓰레기 더미로 만드십니다. 우상을 숭배하여 모은 재물을 모두 불에 태우십니다. 음행의 값은 형상을 뜻하는 어근에서 유래한 것으로, 문맥상 하반절에 기생의 값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화대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음행의 값은 사마리아가 우상에게 드린 제물이나 우상들이 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마리아인들의 재산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서, 사마리아인들이 섬겼던 목상들을 비롯한 모든 우상들은 훼파를 당할 것이며 그들이 드렸던 제물이든 우상이 준 재산이든 모두 파괴당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한 사마리아의 함락(B.C.722-721)에서 성취됩니다. 우상에게 몸을 팔아서 화대로 긁어 모았으니, 이제 모든 것이 다시 창녀의 몸값으로 나갈 것입니다. 잘못된 가운데서 이루어진 수고를 다 없애십니다. 그들은 창녀가 몸을 팔아서 번 돈과 같이 우상을 숭배하여 돈을 벌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현재 우상이 그들을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잠시 후에 있을 심판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우상을 숭배한 후에 오는 일시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우상으로 번 돈은 결국 앗스르의 침략으로 다 빼앗기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돈이나 명예나 족보나 자신이 우상이 됩니다. 우리가 겸손하지 못하게 하는 것 진실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우상입니다. 이런 가운데서 번 돈은 다 사라집니다.

(유다의 멸망을 슬퍼하는 미가)

8,9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 이는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 그것이 유다까지도 이르고 내 백성의 성문 곧 예루살렘에도 미쳤음이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멸망을 깨닫기 전까지 슬퍼할 줄을 모릅니다. 그러나 미가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깨닫고 슬퍼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짐승같은 자입니다. 짐승은 죽는 그날까지 평안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죽기 전에 두려워합니다. 미가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을 보고 있습니다. 그는 애통하고 애곡하였습니다. 미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알고 고통합니다. 벌거벗은 몸으로 들개같이 다니며 타조같이 애곡하였습니다. 미가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 앞에 놓인 운명을 바라보고 애통해 하는 모습입니다. 당시 죄인이나 노예는 허리에 동여매는 옷만을 입었을 뿐 신발은 신지 못했습니다. 미가는 벌거벗은 몸으로 상징적인 행동을 취하여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이 앞으로 당할 운명, 곧 앗수르의 포로생활을 암시하였습니다. 미가는 선지자 이사야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벌거벗은 몸으로 끌려갈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진노를 돌이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가가 심판을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알고 그토록 애곡하며 애통해 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하는 사마리아의 죄가 더 이상 치유될 가능성조차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 심판이 사마리아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유다, 곧 예루살렘에게까지 미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가는 이스라엘의 심판을 현재 느끼고 이스라엘의 죄악을 대신하여 슬퍼하였습니다. 미가 뿐 아니라 예레미야나 이사야도 이스라엘의 멸망을 생각하며 슬퍼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미가와 같이 슬퍼 통곡하는 선지자가 있기 때문에 유다는 망하지만 완전히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미가와 같은 선지자의 눈물을 받으시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 다시 회복시키십니다. 그들에게서 메시야를 보내사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십니다. 집을 나간 탕자는 철없이 집을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미래를 아는 아버지는 마음이 아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의 지각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미리 보는 슬픔이 있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떨어진 것을 염려함)

10절을 보십시오. “가드에 알리지 말며 도무지 울지 말지어다 내가 베들레아브라에서 티끌에 굴렀도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가드에 알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드는 불레셋의 성읍입니다. 이스라엘에게 가드가 알지 못하도록 공개적으로 울지 말라고 하십니다. 가드에 고하지 말며는 다윗이 사울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과 연관됩니다(삼하 1:20). 다윗은 백성들에게 블레셋 성읍인 가드 사람들이 사울 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알아서 기뻐하지 않도록 가드에 알리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다윗이 사랑하는 자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처럼 미가도 이스라엘의 패망을 슬퍼합니다. 유다를 함락하기 위해서 쳐들어오는 앗수르의 침략이 가드에서 시작되며 가드도 멸망됨을 시사합니다. 미가는 다윗의 조가를 인용하여 가드 거민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멸망의 징조를 깨닫지 못하도록 호곡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미가는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멸망을 기뻐하지 못하도록 이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베들레아브라에서 먼지나 들쓰고 뒹글라고 합니다. 베들레아브라의 티끌 속에 숨어서 통곡하라고 합니다. 베들레아브라의 뜻은 먼지의 집입니다. 티끌에 굴지어다는 애곡과 슬픔의 표시로서 베들레아브라 사람들이 재난으로 인해서 자신들의 성읍 이름의 뜻과 같이 먼지 속에서 구르게 될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들에게 모욕받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며 하나님을 욕합니다. 미가는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 염려하고 있습니다. 우리 신자들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징계하십니다. 그러나 이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을 당하는 것이 두려운 일입니다.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11-14절을 보십시오. “사빌 주민아, 너는 벗은 몸에 수치를 무릅쓰고 나갈지어다. 사아난 주민은 나오지 못하고 벧에셀이 애곡하여 너희에게 의지할 곳이 없게 하리라 마롯 주민이 근심 중에 복을 바라니 이는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성문에 임함이니라 라기스 주민아 너는 준마에 병거를 메울지어다 라기스는 딸 시온의 죄의 근본이니 이는 이스라엘의 허물이 네게서 보였음이니라 이러므로 너는 가드모레셋에 작별하는 예물을 줄지어다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 왕들을 속이리라” 사빌에 사는 사람들은 벌거벗은 몸으로 부끄러움을 당하며 사로잡혀 갈 것입니다. 사빌은 유대로 들어오는 길목입니다. 사빌은 아름다운 혹은 순결한이란 의미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이름과 정반대입니다. 그곳 거민들은 재난을 당하여 벗은 몸, 곧 포로된 자들이 당하는 모욕과 수치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사 20:4). 사아난에 사는 사람들은 감히 그 성읍에서 나오지도 못할 것입니다. 사아난은 유다의 아래 지역에 위치한 성읍으로 그 의미는 전쟁을 하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다 입니다. 성읍 이름의 뜻과 달리 용감한 사나난 거민들은 적들이 침략할 때 겁에 질려서 성읍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성문을 굳게 닫고 성읍 안에서 갇혀 살게 될 것입니다. 벳에셀이 통곡하여 그들로 의지할 곳이 없게 할 것입니다. 벧에셀은 본절에만 나타나는데, 아마도 예루살렘 근처에 위치한 지명으로 근처의 집이란 의미를 지니는 도피처를 가리키는 듯합니다. 벧에셀 거민들이 의지할 수 있는 성읍이 주변에 없을 정도로 앗수르의 침략으로 황폐해지며 결국 벧에셀도 파멸될 것을 시사합니다. 여호와나 주가 예루살렘 성문에까지 재앙을 내렸으므로, 마롯에 사는 사람들은 고통을 받으면서 거기에서 벗어나기를 기다립니다. 마롯은 고통 혹은 수고등의 의미입니다. 마롯 거민들은 성읍의 이름이 갖는 뜻과는 달리 평안과 축복을 기대하나 여지없이 고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미가는 지금까지 북이스라엘의 심판을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남유다의 심판을 예언합니다. 그들은 그들이 소망하는 이름과는 반대의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재앙이 예루살렘 성문에 임합니다. 예루살렘 성문은 재난과 슬픔의 시작을 알리는 9절의 내 백성의 성문 예루살렘과 같습니다. 예루살렘도 재난에서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앗수르를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셔서 예루살렘 역시 파멸하실 것입니다. 라기스에 사는 사람들은 군마에 병거를 매어야 합니다. 라기스(라키쉬)는 준마(라레케쉬)와 운율을 이룹니다. 라기스는 병거로 무장한 성읍이며, 그곳 거민들은 전쟁에 능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앗수르의 침략소식을 듣고 준마를 매어 전쟁을 치를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쟁을 준비한 그 결과는 파멸입니다. 그들은 준비를 타고 도망을 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라기스가 멸망당하는 이유를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의 딸 예루살렘의 죄가 라기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라기스를 통해서 우상들이 이스라엘에 유입되었습니다(5-9절). 이스라엘의 우상 숭배 허물이 라기스에서 보였습니다. 이곳은 앗수르의 산헤립이 쳐들어온 곳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모레셋 가드 백성에게는 작별의 선물을 주어야합니다. 모레셋은 모레쉐트(결혼지참금, 송별금)와 유사입니다. 미가는 발음상의 유사함을 이용하여 청중들로 하여금 가드모레셋에 대한 예언의 내용을 결혼 지참금과 연결 짓도록 유도하는 듯합니다. 신부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신랑의 집으로 떠나듯이 미가 선지자의 고향인 가드모레셋은 유다에서 떨어져 나가 포로가 될 것입니다. 악십의 집들이 이스라엘 왕들을 속일 것입니다. 악십은 메마른 시냇물을 가리킬 때 사용된 단어로(렘 15:18) 기만을 뜻합니다. 갈증에 허덕이는 자가 메마른 시냇물을 만났을 때 느끼는 배신감처럼 유다 열왕들이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해 익삽사람에게 도움을 청하나 악십 사람들은 도움을 주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부모들의 탄식)

15,16절을 보십시오. “마레사 주민아 내가 장차 너를 소유할 자로 네게 이르게 하리니 이스라엘의 영광이 아둘람까지 이를 것이라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지어다 네 머리가 크게 벗어지게 하기를 독수리 같게 할지어다 이는 그들이 사로잡혀 너를 떠났음이라” 마레사에 사는 사람들은 그들 대적을 마레사에게 데려올 것입니다. 마레사에는 다른 지배자가 옵니다. 마레사는 정복자 혹은 얻을 자를 뜻하는 히브리어 모라쉬와 비슷합니다. 그들은 정복자라는 뜻의 이름의 성읍이었으나 또 다른 정복자인 앗수르에 의해서 정복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둘람까지 피난갑니다. 이스라엘의 영광인 마레사가 아둘람으로 피할 것입니다. 아둘람은 다윗이 사울의 핍박과 추적을 피하여 숨었던 동굴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누렸던 부귀와 영광은 마치 다윗이 동굴로 피한 것처럼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마레사의 부모들은 포로로 잡혀간 사랑하는 아들딸을 생각하며, 머리를 밀고 애곡해야합니다. 머리를 밀어 독수리처럼 대머리가 되어야합니다. 미가는 이제까지 유다의 열두 성읍의 파멸을 예언한 후에 재난의 시작을 예언할 때와 같이 유다의 파멸을 애통해 합니다. 유다의 종말은 바벧론의 침략으로 인해 유배당하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머리털은 능력과 권능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구별된 자들은 머리털을 깎지 않았습니다(민 6:1-21). 그러나 유다는 머리털이 없는 독수리처럼 머리털을 깎이게 되어 하나님의 심판 도구인 바벧론의 침략으로 인해 유배당하는 것입니다. 마레사의 아들딸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서, 사로잡혀 갈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포로로 잡혀갈 것을 과거 시제로 이야기합니다. 부모들은 포로로 잡혀가는 아들들을 생각하며 애통하며 울라고 합니다. 대비하여 머리털을 밀고 슬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진노를 거둘 것입니다.

(심판을 보며 해야할 일)

하나님을 떠나서 우상을 숭배하면 반드시 심판을 받습니다. 우리가 이런 죄악된 자들을 보며 해야할 일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야합니다. 온 몸으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해야합니다. 우상숭배를 떠나게 해야합니다. 둘째는 그들을 위하여 애통하며 애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자의 눈물을 받으십니다. 예수님도 예루살렘의 멸망을 보며 애통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이하여 우는 여자들에게 나를 위해서 울지 말고 예루살렘과 그 딸을 위해서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심판을 앞두고 우리가 해야할 일은 애통하며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이런 미가의 심판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죄인들에게는 불과 유황으로 타는 심판이 있습니다. 주님, 하나님을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을 볼 때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제가 이들을 인하여 애통하며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엑 애통하는 기도의 영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미가서 1장 강해 이스라엘의 파멸을 애통하는 미가
미가 1장 1-미가 1장 16절
요절 미가 1장 8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
미가 1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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