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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에스라 4장 강해 유대인 홀로 성전 건축을 하고자하는 사람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11-26 00:00:00
조회수 : 5,234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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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라 4장 강해 유대인 홀로 성전 건축을 하고자하는 사람들

에스라 41-에스라 424

요절 에스라 4장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성전 건축을 준비하기 위해서 백향목을 실어왔습니다. 성전 건축 감독자를 세웠습니다. 기초를 놓으며 노인들은 통곡하였고 젊은이들은 기뻐 찬송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주변의 혼합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과 구별되어 홀로 성전을 건축하고자 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집요하게 성전 건축을 방해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성전 건축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전을 어떻게 건축하느냐는 것인가 임을 배우게 됩니다.

 

(혼합주의자의 요청)

 

1,2절을 보십시오. “사로잡혔던 자들의 자손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 함을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 듣고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 이르되 우리도 너희와 함께 건축하게 하라 우리도 너희 같이 너희 하나님을 찾노라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리로 오게 한 날부터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노라 하니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그것에 이주 시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이었습니다.

유다와 베냐민은 분명히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사람 전체를 말합니다. 그 지파 사람들이 귀환자의 주종을 이뤘습니다. 이들 지파 사람들은 보통 인구 계산할 때도 제외되는 등 특례적으로 다뤄지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귀환민들이 주로 거했던 곳이 원래 유다와 베냐민 사람들에게 기업으로 주어졌던 땅입니다.

유다와 베냐민의 대적은 고민하게 하다 혹은 포위 공격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해를 끼칠 목적으로 접근해오는 원수를 말합니다.(33:55 129:1 11:1363:18 30:16 1:2). 이들은 구체적으로 사마리아 사람들을 말합니다.

원래 팔레스틴 땅에는 이런 민족이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북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면서(B.C. 722) 그 백성들을 앗수르 땅으로 끌고 가는 대신 바벨론, 구다, 아와, 그리고 하맛 과 스발와임에서 사람들을 옮겨옴으로써 생겨난 민족이었습니다(왕하 17:23, 24). 사마리아 사람은 타지역에서 옮겨 온 사람과 북국 열 지파 사람들 중 끌려가지 아니한 사람 사이의 혼혈족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신교자였습니다. 그들은 이방의 여러 신(諸神)을 섬겼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여호와를 땅의 신으로서 섬겼습니다(왕하 17:29-33). 사로 잡혔던 자의 자손은 바벨론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을 의미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한다함을 듣고 방해하고자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스룹바벨과 족장들에게 나아와서 자신들도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성전을 건축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스룹바벨과 족장들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정치적으로 영도하던 지도자들이었을(2:2)뿐만 아니라 성전 재건 사업의 주체 세력들이었습니다(3:2). 나아와는 원래(적으로서) 공격하다, (종교적으로) 경배하다 또는 (어떤 목적으로) 가까이 오다라는 의미로서 특별한 목적 달성을 위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행동을 말합니다.(18:23 32:16 삼상 9:18 왕상 20:28). 그들은 표면적으로는 함께 건축하게 하라는 요구가 마치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진실한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그 당시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위한 제단도 사마리아의 그리심 산에 있었습니다(4:20). 그러나 이들은 진정한 예배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새로운 세력에 대한 경계심의 발로에서 접근해왔다고 이해됩니다.

사마리아가 함락된 이후 사마리아에는 앗수르의 식민 정책에 따라 이주해 온 이방인들로 말미암아 혈통과 신앙의 순수성이 상실되고 말았습니다(왕하 17:24-33). 종교적 혼합주의에 빠졌던 그들에게 있어 여호와란 유일신이 아니라 힌두교처럼 여러 신들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배척받을 것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들도 이스라엘 자손과 함께 하나님을 찾고 예루살렘에 온 날부터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구한다는 말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다신교적 혼합주의 신앙을 갖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구하노라는 찾다, 묻다등의 의미로서, 종교 혹은 섬김의 대상으로 삼기 위하여 어떤 초월적 존재를 신뢰하는 것을 말합니다(대상 16:11 대하 30:19).

앗수르 왕 에살핫돈은 북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장본인으로서(왕하 17:24), B.C.681-669년간 재위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고 할 때 하나님께는 문자적으로 그분께의 의미이며, 제사를 드리노라는 희생 제사를 드리다의 의미입니다. 제사는 모든 방식과 형태를 망라한 제사 행위를 가리키는 보편적 용어입니다

 

(유일신 신앙을 지키고자 하는 유대인의 단호한 거절)

 

3절을 보십시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그러면 빨리 효율적으로 건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 이스라엘 민족의 순수성이 상실됩니다.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대적들에게 분명히 말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전축하는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유대의 지도자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전 재건을 하는 데 있어서 신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역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참된 여호와 신앙과 무관한 혼합주의적 종교를 신봉했다는 점에서 이스라엘과 종교적 연관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고레스로부터 성전 재건 사업에 동참하라는 조서를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연관성도 없었습니다. 이방인 내지는 혼혈족이었다는 점에서 혈통적 연관성도 없었습니다.

스룹바벨은 바사왕 고레스가 유대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고레스의 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본토로 자유롭게 돌아가서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며 바벨론 백성들은 성전재건 사업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돌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재물을 지원하라는(1:4) 두 가지 내용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이 홀로 건축하겠다는 것은 여러 가지 정황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결코 국수주의 혹은 분리주의적 사상에 기초한 결론이 아니라 다만 유일신 사상의 신앙적 순수성을 유지하려는 여호와를 향한 열심(25:11 왕하 19:10, 14)에 근거한 태도였습니다.

 

(손을 약하게 하여 성전건축을 방해하는 자들)

 

4-5절을 보십시오.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여 그 건축을 방해하되 바사 왕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으며

 

이로부터 그 땅 백성이 유다 백성의 손을 약하게 하였습니다. 그 건축을 방해하였습니다. 손을 약하게 한 유다 백성은 귀환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본서의 저자는 유다 자손이 귀환자 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또한 그들이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유다 백성으로 표현했습니다.

손은 여기서 능력 및 일을 추진하려는 의욕등을 말합니다.(6:22 왕상 18:46 대상 18:3 29:12 38:4). 약하게 하여는 원래 감하다, 나태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의 강의형입니다. 유대인이 의욕을 상실토록 하며 무기력 상태에 빠지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들은 교활한 방법을 동원하여 온갖 방해 행위를 하였습니다.(6:9 49:24 50:43 316). 방해하되는 놀라다, 두려워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의 강의형입니다. 따라서 이는 여러 가지 방법의 훼방을 통하여 상대를 심리적으로 공포 혹은 불안 가운데로 떨어뜨리는 것을 말합니다.(45:3 대하32:18 83:15 11:44).

바사와 고레스의 때부터 바사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그 계획을 막았습니다. 고레스의 시대부터 바사 왕 다리오가 즉위할 때까지는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됐던 기간입니다. 성전 재건이 중단된 시점은 정확히 즉위 제 고레스왕 4(B.C. 536) 이었을 것입니다.

본서에 그런 기록이 없음에도 이같이 추정할 수 있는 것은, 다니엘서의 기록을 통해서입니다. 다니엘은 예루살렘의 어떤 소식으로 인하여 매우 슬퍼했었는데(10:2). 그것은 틀림없이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됐다는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그때가 바로 고레스 왕 3년이었습니다(10:1). 한편 다리오가 즉위할 때 는 B.C.522 년입니다. 따라서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된 기간은 약 16년 간인 셈입니다.

여기의 다리오는 고레스(B.C. 539-529), 캄비세스(B.C. 523-522)의 뒤를 이어 페르시아의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는 캄비세스를 죽이고 페르시아 왕위를 찬탈한 수메르디스와 싸워 이김으로써 왕에 오를수 있었습니다. 그가 왕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수메르디스에 의해 살해 당했던 캄비세스의 휘하 장수이면서도, 아울러 고레스 왕(이스라엘 백성들을 포로 생활에서 해방시켜준)의 부친 고레스 1세의 형제인 아리야의 증손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본문의 다리오 1세는 즉위하자 조서를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전 재건을 재개할수 있도록 하였습니다(6:1-12).

관리는 조언하다 및 상담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이며 여기서는 페르시아 정부의 고위 공직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페르시아 관리에게 뇌물을 주었습니다. 뇌물을 주는 행동은 공의를 어그러지게 하는 등 매우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에서 성경에서는 엄격히 금지되고 있습니다(23:8 삼상 12:3 17:23). 뇌물을 주어는 삯주고 빌다 혹은 고용하다의 의미에서 파생된 분사형 단어로서, 부정한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특정 인물에게 돈을 주어 자신의 편으로 삼는 것을 말합니다.(30:16 23:4 9:4 6:12).

여기의 경영은 모의하다 혹은 계획하다의 뜻을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페르시아의 공직 공직자와 어근이 동일합니다. 본서의 저자는 본절에서 이 같은 말의 유희(word play)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전 재건 사업이 중단된 것이 페르시아 관리들의 부정적 영향력에 기인한 바 크다는 사실을 암시하려는 듯합니다.

막았으며는 녹이다, 폐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의 사역형으로서 성전 재건 계획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집요한 공작에 의하여 수포로 돌아 갔음을 시사합니다.

 

(아하수에로 왕 때의 고발)

 

6절을 보십시오. “또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니라

 

새로운 아하수에로가 즉위할 때에 그들이 글을 올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을 고발하였습니다. 아하수에로는 에스더를 자신의 왕비로 삼았던 그 왕임이 분명합니다(1:1). 그의 재위 기간이 B.C. 485 년부터 464년까지였다는 점에서, B.C. 516년에 끝난 성전 재건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따라서 여기서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고소했다는 것이, 성전 건축에 대한 훼방을 가리킨다고 보기는 힘듭니다.

저자가 이 같은 고소 사실을 성전 건축과 관련된 문맥에서 언급한 까닭은,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이방 세력들의 훼방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주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고소하니라는 참소, 비방의 의미로서 대적하다의 의미를 갖는 사탄이라는 동사로부터 파생되었습니다. 바로 이 동사에서 대적하는 자 혹은 참소하는 자의 뜻이 있는 사단이 나왔습니다(1:6). 당시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고소한 내용이 분명히 밝혀져 있지는 않습니다. 추측컨대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페르시아 정부에 대해서 반역의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내용의 고소를 하였을 것입니다.

 

(집요한 성벽 재건 방해 공작)

 

7-8절을 보십시오.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습니다.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썼습니다. 7절로부터 23절까지에는 사마리아인들의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한 또 다른 고소 사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저자는 사마리아인들의 사악성과 나아가 하나님의 사업을 훼방하는 사단의 끈질긴 방해 공작을 의도적으로 폭로하고 있습니다.

본절부터 618절까지는 히브리어가 아닌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본서에서 아람어로 기록된 부분은 7:12-24입니다.

아닥사스다는 아하수에로의 아들로서 B.C. 464년부터 424년까지 재위했었습니다. 따라서 금번의 고소도 B.C. 516년에 바쳐진 성전 건축 사업과는 전혀 무관하며 오혀려 3차 귀환 후 느헤미야에 의해 주도 되었던 성벽 재건에 대한 방해와 연관되는 것입니다(4:1 이하).

비슬람은 평화의 아들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식 이름입니다. 미르닷은 신(미드라)의 선물이라는 뜻이 있는 페르시아식 이름이며 이와 동일한 이름의 또 다른 소유자는 세스바살에게 기명을 인계했던 고지기였습니다(1:8). 다브엘은 하나님은 선하시다의 의미를 갖는 아람어식 이름입니다. 아람어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아람어로 번역되었기 때문이라고 번역되어야 가장 무난할 것입니다. 아람어로 기록된 이 문서가 처음에는 다른 언어로 쓴 것을 다시 아람어로 번역된 것임을 말합니다. 이처럼 문서를 아람어로 번역한 까닭은, 비록 정치 군사적으로는 페르시아가 중근동을 제패했으나 국제적 공용어로는 여전히 아람어가 사용됐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비록 로마가 세계를 정복했지만 헬라어가 그 당시의 공용어였던 것과 같습니다.

 

(성벽재건을 고발함)

 

9.10절을 보십시오.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한 그 글에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디나 사람과 아바삿 사람과 다블래 사람과 아바새 사람과 아렉 사람과 바벨론 사람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과 그 밖에 백성 곧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 함께 고발한다 하였더라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한 그 글에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디나 사람과 아바삿 사람과 다블래 사람과 아바새 사람과 아렉 사람과 바벨론 사람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과 그 밖에 백성 곧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 함께 고발한다 하였습니다.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고소한 그 글에 정관사가 있다는 사실로 볼 때, 이는 7절에 언급된 아람어 문서와 동일함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훼방하려던 실질적 주동자들은 7절에 언급된 사마리아 사람들이며, 여기의 페르시아 관리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공범자들 혹은 대리자들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방백은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서 임명된 지방 장관 혹은 총독을 뜻합니다.

르훔은 자비로운 자의 의미를 가지며, 바벨론 여러 신(諸神) 중에서 발견되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서기관은, 왕이 각 지방의 소식을 직접 보고 받기 위해서 파견한 왕의 직속 부하였습니다. 심새는 태양의 아들을 의미합니다. 고소한은 ~을 대항하여(against)의 의미를 갖는 전치사입니다. 따라서 6절의 고소하니라 와는 전혀 다른 단어입니다.

그 동료 디나 사람의 동료는 문자적으로 친구들의 나머지 뜻을 갖습니다. 디나 사람은 사람이나 지역 이름이 아니라 사사 혹은 재판관의 뜻을 갖는 관직입니다(NIV). 디나 사람이 복수라는 점에서 볼 때, 이들은 방백이나 서기관 밑에서 일하던 하위직이었던 것 같습니다. 몇몇 학자들은 이들이 국방업무에 종사했을 것 이라고 추정합니다.

아바삿 사람은 일반적 범주의 관리를 뜻하는 페르시아 계통의 단어입니다. 따라서 이것도 위의 디나 사람처럼 인명이나 지명이 아닙니다. 디블래 사람은 영사, 집정관 혹은 감독을 뜻합니다. 아바새 사람 유프라테스 강 동쪽지역으로부터 옮겨진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아렉 사람은 분명히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에렉에서 옮겨온 자들입니다. 앗수르는 한 때 중근동 전역을 정복 했었습니다.

바벨론이 나중에는 강국으로 변하여 오히려 앗수르를 정복했지만, 그들도 한 때는 앗수르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바벨론 백성들의 일부도 팔레스틴으로 강제로 이주되어 왔습니다.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에서 데해 사람은 인명이나 지명이 아니며 다만 관계대명사일 뿐입니다. 수산 사람 곧 엘람 사람으로 번역됨이 무난합니다. 존귀한 오스납발에서 존귀한은 원어상 위대하며 혁혁한 무공이 있는의 의미입니다.

한편, 오스납발은 앗수르가 추적하다의 의미입니다. 이 이름은 에살핫돈(2)의 별칭이 아니라 앗수르의 후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앗수르바니팔(B.C. 669-626)입니다. 그에게 존귀한 이라는 형용사가 붙여진 까닭은 그의 탁월한 군사. 정치력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본절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페르시아 왕에게 고소하는 데 동조한 마지막 부류들은 바로 이 왕에 의해서 옮겨진 자들이었습니다. 타민족들의 사바리아 지역으로의 강제 이주는 여러 차례에 걸쳐서 이뤄졌으며, 피정복민들의 강제 이주는 앗수르 왕들에 의해서 행해졌던 일관된 통치 정책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성과 강 서편 다른 땅에서 강은 문자적으로 그 강입니다. 이 강은 유프라테스 강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서편은 건너편으로 봄이 정확합니다. 그 당시의 페르시아 및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강 건너편을 팔레스틴 및 페니키아, 곧 두로와 시돈 지방에 대한 총칭으로 이해하였습니다(왕상 4:24). 특히 페르시아 사람들은 그 지역을 아두라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한편 사마리아 성은 팔레스틴의 북부에 있던 한 중심 도시만을 가리킵니다. 이 도시는 예루살렘 북쪽 약 64Km, 지중해 연안에서 약 40Km 떨어진 높은 구릉 지대에 위치했었습니다. 또한 다른 땅은 팔레스틴 북부, 즉 옛 북국 이스라엘이 위치했었던 지역 중 사마리아 성읍을 제외한 전체를 가리킵니다.

 

(반란족이라는 고발)

 

11-12절을 보십시오.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 강 건너편에 있는 신하들은 왕에게 아뢰나이다 당신에게서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을 소개합니다. 초본은 사본의 의미를 갖는 단어로서 아람어에 기원을 둔 페르시아어입니다. 12절의 고소문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아닥사스다 왕에게 보낸 고소 내용의 전체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여기서 초본으로 번역됨이 타당한 것입니다. 그들은 유브라데서 강 건너에서 이글을 쓰고 있습니다.

신복은 문자적으로 당신의 종이란 뜻입니다. 종이라는 표현은 왕과 신하의 관계에서, 신하가 왕에 대해 자신을 낮춰 부를 때 일반적으로 사용된 단어입니다(삼하 14:22 19:14 왕상 1:26). 이들은 이스라엘에 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한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왕에게서 올라온은 시대적 언급을 강조한 것으로 보고 아닥사스다 왕 시절에 일단의 유다 사람들이 팔레스틴으로 귀환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올라온은 나오다 혹은 나아가다의 의미를 갖는 아람어 단어 (2:29 7:3, 8, 20)입니다. 유다 사람은 반드시 유다 지파의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합니다(4). 그들은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루살렘을 이렇게 표현한 까닭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바벨론이나 앗수르와 같은 강대국에 일단 정복됐었지만 번번히 그들에 대해서 반란을 일으켰었던 역사적 사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왕하 18:7 24:1,10,20대하 33:111).

패역하고는 반란을 일으키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형용사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대해서 이 같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그 당시 각지의 반란으로 엄청나게 골머리를 앓고 있었던 페르시아 정부를 자극시키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의 건축하는데는 건축하다 혹은 수리하다의 의미를 갖는 아람어 동사의 분사형이므로 현재 시제로 번역하여 건축을 시작하고 있는 중인 데로 함이 더 좋을 것입니다(NIV). 지대는 아카디아어의 우쑤와 동족어로서 낮은 부분 혹은 기초의 뜻을 갖습니다. 수축하고는 미완료형 동사입니다.

예루살렘 재건 작업이 바벨론 땅에서 귀환한 지 최소한 8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착수되지 못했음을 주목해 본다면,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가 극심했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것은 예루살렘 재건을 위해서도 기초를 수리하는 정도가 아닌 새로 기초를 놓아야 하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임을 시사합니다.

본절의 지대를 수축하고는 기초를 파고 있는 중이었다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여기의 성곽도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B.C 586년에 파괴되었었습니다(왕하 25:10). 이 성은 예루살렘 거민들의 보호를 위해서 매우 필요불가결한 것이었습니다. 이제 예루살렘에 거민들이 다시 살게된 이상, 그곳에는 성곽의 재건이 반드시 필요하였습니다. 건축 하오니는 완성하다 혹은 마치다의 미완료형입니다. 따라서 본문구는 성곽을 완성하고 있는 중이다로 번역해야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 건축을 완성해 가고 있다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고소는 사실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왜냐하면 훨씬 나중인 느헤미야 당시에도 성곽은 여전히 재건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2:13).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고발)

 

13절을 보십시오.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왕은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않을 것을 알라고 하였습니다. 결국은 세금을 내지 않아서 아닥사스다 왕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조공은 고정적로 매년 제국의 국고에 들어갔던, 돈으로 내는 일반적 세금을 말합니다. 잡세는 임대 소득세를 가리키나 인두세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부세는 토지 소유자에게 부과됐던 조세의 의무 전반을 말합니다.

국가 재정이 세금 징수를 통해서 확보됐다는 점에서 볼 때, 세금 납부의 거부는 당연히 페르시아 정부에 의해서 반역 행위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바로 이점을 노려서, 페르시아 정부로 하여금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을 중지케 하려고 하였습니다. 왕들에게 손해가 된다면 왕들의 창고가 고통을 당할 것이다라는 문자적 의미가 있습니다. 이 같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경고는 페르시아 정부에게 대단한 자극이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페르시아는 다리오와 아하수에로 시절 헬라와의 거듭된 전쟁의 결과 엄청난 재정적 곤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왕들은 복수형으로서 (1) 아닥사스다의 후손들 혹은 (2) 아닥사스다의 존귀함을 강조하는 복수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역사를 통한 고발)

 

14-15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제 왕궁의 소금을 먹으므로 왕이 수치 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사람을 보내어 왕에게 아뢰오니 왕은 조상들의 사기를 살펴보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왕들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지라 이 성읍이 무너짐도 이 때문이니이다

 

그들은 바벨론 왕궁의 소금을 먹고 있습니다. 사마리아의 관원들이 페르시아 왕과 밀접한 관계에 있었음을 시사합니다. 사마리아 관원들이 페르시아 왕으로부터 은택을 입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은 페르시아 왕을 기쁘게 할 의무가 있음을 뜻하는 비유인 것입니다.

소금은 고대의 의약품 및 식료품으로 매우 중요하였기 때문에, 경제적 교환 가치가 대단히 컸었습니다. 그래서 소금 생산권의 장악은 곧 권력의 장악과 진배 없었습니다.

그들은 왕이 수치 당함을 차마 볼 수 없어서 사람을 보내어 아뢴다고 하였습니다. 왕의 수치는 옷을 벗기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수치, 불명예의 의미보다는 손해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손해의 뜻도 있으며, 본절에서의 수치는 결국 재정적 곤란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증거로 사기를 살펴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패역한 성읍이라고 하였습니다. 페르시아는 스스로를 바벨론의 합법적인 계승국으로 자처했었습니다. 따라서 열조의 사기에는 바벨론 제국 시절 부터의 역사 기록이 포함될 것이 분명합니다. 심지어는 앗수르 제국의 것도 포함되었을 수 있습니다.

사기는 문자적으로 문서 보관소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였다고 합니다. 본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과 앗수르 등의 강대국에 대해서 강력한 저항을 했던 역사적 사실들과 관련됩니다(4:12참조).

여기의 반역하는12,15절의 패역한과 동일한 단어입니다. 왕들과 각도에 손해된 것을 보고 알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손해된 것은 상처를 주다 혹은 손상을 주다 그리고 고통을 주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각 도는 페르시아 제국 이전의 바벨론 및 앗수르를 가리키거나 아니면 페르시아제국 내의 영지들을 뜻합니다. 이 성읍이 무너진 것도, 그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예루살렘의 파멸은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의 권고를 무시한 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반역한 결과였습니다(왕하 25:20, 21).

 

(땅을 잃을 것이라는 고발)

 

16절을 보십시오. “이제 감히 왕에게 아뢰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이 준공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건너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이제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이 준공되면 왕의 영지가 사라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강 서편 영지는 유프라테스 강 서쪽의 땅을 가리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전에 다욋 왕 및 솔로몬 왕과 므나헴 왕 등의 시대에 이스라엘의 영토가 거의 유프라테스 강에까지 미쳤던 역사적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 말을 했을지도 모릅니다(왕상 4:21 왕하 15:16).

그러나 이러한 언급은 그 당시의 여러 정황으로 봐서는 어불성설의 억지임이 분명합니다. 유대인들에 대한 모함은 13절에 이어 그 과장의 정도가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고소문의 타당성을 인정하는 바사왕)

 

17-20절을 보십시오. “왕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그들 동관들과 강 건너편 다른 땅 백성에게 조서를 내리니 일렀으되 너희는 평안할지어다 너희가 올린 글을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 명령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왕들을 거역하며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반역하는 일을 행하였으며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들이 있어서 강 건너편 모든 땅이 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다 바쳤도다

 

아닥사스다 왕이 방백 르훔을 비롯하여 상소를 올린 사람들에게 조서를 내렸습니다. 그들에게 평안을 비는 인사를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고소가 아닥사스다에 의해서 정당한 것으로 받아 들여졌음을 잘 보여줍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의 고소장이 너무나도 과장된 것이어서, 아닥사스다 왕으로 하여금 겁을 먹도록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입니다.

고대에도 서신 양식에 있어 수신자와 발신자의 이름을 밝히는 것은 기본적인 상례였습니다. 조서를 내린다는 말은 답신을 보냈다가 보다 정확한 번역일 것입니다(NIV). 조서는 반드시 ~에게 돌려져야 하는의 의미를 갖는 페르시아어에서 온 아람어입니다.

평안은 히브리어의 솰롬과 동일한 단어로 고대 중근동에서 이러한 인사법은 매우 보편적이었습니다. 왕은 그들이 올린 상소문을 낭독시키고 역사서를 살펴보았습니다. 낭독시키고는 당시 페르시아 왕실의 관습에 따라 신하를 시켜 대신 읽도록 했습니다. 낭독시키고 그들의 상소문의 진위를 살펴보았습니다. 아닥사스다는 그때 문서 보관소에서 열조들의 사기를 찾도록 명령하였습니다.(15).

한편 여기의 살펴보니는 15절의 살피시면과 동일한 단어로서, 많은 것들 중에서 필요한 것만을 조사하여 찾아내는 행위를 가리킵니다(5:17 6:1). 과연 이스라엘 성읍이 예전부터 왕들을 거역하여 항상 패역하고 반역하는 일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은 앗수르 제국에서부터 시작하여 바벨론 제국을 거쳐서 페르시아 제국까지의 열왕들을 거역하였습니다(15). 한편 본문의 고발은 나름대로 역사적 사실과 일치합니다. 왜냐하면 강한 민족 의식을 지닌 유대 백성은 앗수르와(왕하 18:7) 바벨론의 지배에(왕하 24:1,20) 강력히 반발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패역하고는 반역의 의미를 갖는 명사이며 모반도 위의 패역과 거의 동일한 단어입니다.

이와 같은 동의어의 반복적 언급은 아닥사스다 왕이 사마리아 사람들의 기만전술에 완전히 넘어갔음을 보여줍니다. 옛적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이 있었습니다. 강 건너편 모든 왕들이 이스라엘 왕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쳤습니다.

여기의 큰 군왕은 문자적으로 강력한 왕들의 의미이며, 다윗 및 솔로몬 그리고 북국 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 남국 유다의 웃시야와 히스기야 등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유프라테스 강의 서쪽 상당 부분을 이스라엘의 땅에 포함시켰을 정도로 강력한 군사력을 소유했던 왕들이었습니다(왕상4:21, 24). 특히 솔로몬의 경우 시리아 사막 내의 중요한 오아시스 지대인 다드몰을 건축한 바 있는데(왕상 9:18) 이곳은 유프라테스 강 서편 일대를 장악하기 위한 거점 역할을 했으리라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의 언급은, 사실 이스라엘의 어떤 왕도 강 서쪽땅 전부를 정복한 일은 없었다는 점에서 과장된 표현임이 분명합니다. 모압 및 암몬 족속 그리고 에돔 족속 등이 이스라엘에게 조공을 바쳤던 역사적 사실을 가리킵니다(삼하 8:6-12 왕상 10:14,15).

 

(성벽 건축을 중지하게 함)

 

21,22절을 보십시오. “이제 너희는 명령을 전하여 그 사람들에게 공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 너희는 삼가서 이 일에 게으르지 말라 어찌하여 화를 더하여 왕들에게 손해가 되게 하랴 하였더라

 

이제 조서를 올린 자들은 명령을 전하여 유다 사람들에게 공사를 그치게 하라고 하여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아닥사스다 왕이 쉽사리 사마리아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역사를 그치게 한 것은, 그 당시 페르시아 전역에는 반란 사건이 많아서 그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그가 심히 예민해 있었던 때문이었습니다.

왕이 다시 조서를 내릴 때까지는 건축일을 중지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이 일을 하여 왕에게 손해가 되지 말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아닥사스다의 조서는 그 명령을 어기는 자에 대한 은근한 위협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화는 파괴하다 혹은 손실을 끼치다의 뜻이 있는 동사 해발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손해 혹은 손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더하여는 커지다 혹은 증가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사 의 수동형으로서, 구체적으로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세력 팽창으로 인한 세수 손실의 증가를 가리킵니다.

 

23절을 보십시오.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니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을 비롯하여 조서를 올린 자들에게 낭독하게 하였습니다. 낭독되매는 NIV처럼 낭독되자 마자(as soon as)로 번역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까닭은 본절의 초두에 개역 성경에서는 제대로 번역되지 못한 ~ 하자 마자 를 뜻하는 단어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본 문구는 악한 일을 향한 악인들의 불같은 열심을 잘 보여줍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였습니다. 이것 또한 악인들의 사악한 열심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 급히는 흥분하다 혹은 서두르다의 뜻이 있는 동사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악한 일을 위해서는 무척이나 발이 빠른(3:15) 자들의 죄악에 취해버린 마음 상태를 잘 드러내줍니다(4:16). 여기의 권력은 문자적으로 힘 혹은 군대를 의미 하나 여기서는 군대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억제하여는 팔로써를 의미합니다(2:32)). 따라서 본 문구를 원문에 가깝게 번역한다면 팔과 군대로써가 될 것입니다. 아닥사스다의 조서상으로는 성벽 재건을 중지시키라고 하는 데 그쳤으나, 대적자들은 그 태도로 미루어 볼때 부분적으로 재건된 성벽조차 아예 부숴버렸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 사건을 느헤미야 1:3에 기록된 내용과 동일한 것으로 이해합니다. 역사는 성벽 재건 작업을 의미합니다. 이 같은 공사의 중단은 B.C. 444년에 이루어졌던 느헤미야의 귀환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왕 다리오 제이 년까지 중단되었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이에는 오히려 이처럼 혹은 그와같이로 번역되는 것이 낫습니다. 이에는 본절의 내용이 마치 23절 이전 사건의 직접적 결과인양 말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6-23 절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벽 재건을 방해하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으며 사마리아 사람들의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훼방이 얼마나 극심했는지를 보여주기 위한 하나의 예증으로서 제시되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24절은 그 내용상 5절과 곧바로 이어짐이 분명합니다. 다리오 제 이 년은 페르시아의 연대표에 의하면 다리오 왕은 B.C.522년 부터 485년까지 재위하였으므로, 제 이년은 B.C. 521(혹은 520)년이 되는 셈입니다.

성벽 재건의 의미는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성전을 짓는 것보다 더 중요한 유일신 사상의 믿음의 성전을 짓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레미야가 예언한 700년이 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때를 기다리면 그들의 유일신 사상을 분명히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빨리 교회의 성도를 모으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성도들이 모이느냐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과 그리스도 되심에 기초하여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는 성도를 모으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방해가 있고 시간이 덜리더라도 순수 복음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에스라 4장 강해 유대인 홀로 성전 건축을 하고자하는 사람들

에스라 41-에스라 424

요절 에스라 4장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기타 이스라엘 족장들이 이르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데 너희는 우리와 상관이 없느니라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홀로 건축하리라 하였더니

에스라 4장 강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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