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여호수아 22장 강해 두지파 반이 주는 교훈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07-07 00:00:00
조회수 : 4,404

문제지풀이(2)

    iconA_06436A.hwp  (21.00KB)

    iconA_06436B.hwp  (29.50KB)

여호수아 22장 강해 두 지파 반이 주는 교훈
여호수아 22장 1-여호수아 22장 34절
요절 여호수아 22장 30절

이번 대선은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압승으로 끝이 났습니다. 이명박씨는 여러 가지 도덕적인 하자로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당선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경제를 살리기 원하는 시대의 트랜드를 잘 읽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에도 시대의 트랜드가 있습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이 교회에 가장 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평화입니다. 교회이고 가정이고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우리 시대에 보수와 진보, 구세대와 신세대, 남자와 여자, 수도권과 지방의 갈등이 심합니다. 교회 내부에도 갈등이 심합니다. 우리는 이런 갈등을 종식하고 평화를 회복해야합니다. 우리 가정, 교회가 화목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이런 화목의 비밀 몇 가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남의 일을 내일처럼 해야 합니다.)

1-3절을 보십시오. “그 때에 여호수아가 르우벤 사람과 갓 사람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것을 너희가 다 지키며 또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일에 너희가 내 말을 순종하여 오늘까지 날이 오래도록 너희가 너희 형제를 떠나지 아니하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그 책임을 지키도다” 여호수아는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를 불러서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음을 칭찬합니다. 주의 종 모세에게 순종하였고 여호수아의 말에도 순종하였습니다. 두 지파 반에 관한 이야기는 사연이 있습니다.(참고 민수기32장) 모세는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 전에 요단강 동편을 통과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이 이스라엘 백성의 통과를 저지하고자 하였습니다. 모세는 이들을 물리치고 요단강 동편을 점령하였습니다. 이때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 지파이 양이 많은데 목초가 풍부한 그 땅에 거하기를 원하였습니다. 하자만 가나안 정복을 하기 전에 이곳에 이들이 거하면 가나안을 정복하고자하는 이스라엘 전체의 사기를 떨어뜨립니다. 그들의 땅을 차지할 때는 이스라엘 전체가 함께 싸웠는데 요단강 서편을 점령할 때는 이들이 빠지면 지파 간에 갈등이 생깁니다. 지파이기주의의 누룩이 들어온 것입니다. 모세가 이들을 책망하자 그들은 가족은 이곳에 머물게 하고 장정들은 전쟁의 선봉에 서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약속대로 사만 명 가량의 장정들이 가나안 정복의 선봉에 서서 전쟁을 하였습니다.(4:13) 여호수아의 명령을 따라서 이들이 여호수아를 동역하였습니다. 이제 전쟁이 다 끝났습니다. 여호수아는 다른 지파들이 차지할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선봉에 서서 싸운 이들을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두 지파 반이 전쟁에 나가지 않고 자신의 지파만 생각하고 요단강 동편에 머물렀다면 이스라엘은 지파간에 분열의 위기에 처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지파반이 다른 지파플 위해서 솔선수범하여 목숨을 내놓고 싸웠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공동체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 되는 것을 파괴하는 것은 이기주의입니다. 남을 생각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열심히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탁구대 설치 때나 김장을 담글 때 희생적으로 섬긴 몇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들의 희생을 통해서 우리가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교회를 건축할 때도 희생하신 몇몇 사람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편안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관리하는 데 희생하신 분도 있습니다. 집안에서 남편은 아내의 일을 내 일처럼 도와주고 아내는 남편의 일을 내일처럼 도와줄 때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친근히 해야합니다)

4-6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미 말씀하신 대로 너희 형제에게 안식을 주셨으니 그런즉 이제 너희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요단 저쪽에서 너희에게 준 소유지로 가서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되 오직 여호와의 종 모세가 너희에게 명령한 명령과 율법을 반드시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계명을 지켜 그에게 친근히 하고 너희의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그를 섬길지니라 하고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기 장막으로 갔더라” 여호수아는 두 지파 반을 돌려보내면서 한 가지 부탁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반드시 행하라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자기에게 적용시켜서 은혜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과 친해집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고 예배 드리는 것을 친근하게 해야합니다.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마음과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합니다. 여호수아가 그들을 축복하여 보내매 그들이 자신의 장막으로 돌아갔습니다. 공동체가 하나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먼저 나에게 적용시킬 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남편에게는 아내를 주님처럼 사랑하라고 합니다. 아내에게는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아내는 남편에게 주신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남편은 아내에게 주신 말씀에 은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시키면 공동체는 하나되기 어렵습니다. 바리새인처럼 판단하고 정죄하기 때문에 공동체가 파괴됩니다.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해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십자가의 사랑으로 대해야 합니다. 특히 그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 순종해야 할 말씀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공동체는 신앙 공동체입니다. 무엇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냐는 것이 하나 되는 데 중요합니다. 낚시 동우회는 낚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조기 축구회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하나 될 수 없습니다. 낚시가 싫어지고 축구가 싫어지면 그 모임에 있기가 힘이 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의 공동체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입니다. 이들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합니다. 하나님과 친근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 서로가 사랑스러워질 것입니다.

(수고한 사람들에 대한 배려)

7-9절을 보십시오. “므낫세 반 지파에게는 모세가 바산에서 기업을 주었고 그 남은 반 지파에게는 여호수아가 요단 이쪽 서쪽에서 그들의 형제들과 함께 기업을 준지라 여호수아가 그들을 그들의 장막으로 돌려보낼 때에 그들에게 축복하고 말하여 이르되 너희는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과 금과 구리와 쇠와 심히 많은 의복을 가지고 너희의 장막으로 돌아가서 너희의 원수들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의 형제와 나눌지니라 하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실로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떠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받은 땅 곧 그들의 소유지 길르앗으로 가니라” 여호수아는 두 지파 반을 장막으로 돌려보내며 그들을 축복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많은 재산과 심히 많은 가축과 은과 금과 구리와 쇠와 심히 많은 의복을 주어 보냈습니다. 이들이 수고하였기 때문에 수고한 만큼의 대가를 주었습니다. 그들은 축복을 받고 많은 선물을 가지고 자신들이 분배받은 길르앗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승리의 날에 수고한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열심히 싸울 때는 승리하면 많은 것을 주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승리한 후에는 수고한 사람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자신 혼자 이익을 독차지 하고자합니다. 토사구팽합니다. 이렇게 승리의 열매를 혼자 차지하면 불만 세력이 나옵니다. 공동체는 분열됩니다. 대부분 대선이 끝나고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공동체가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승리의 열매를 풍성히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승리한 것에 대해서 명예를 돌려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분들은 다시 힘이 나서 충성을 다할 것입니다. 과거 요셉 목자님이 영업을 할 때 다른 사람은 상여금으로 십만 원을 주는데 부사장이 불러서 백만 원을 휴가비로 준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때 더 열심히 일했다고 합니다.

(열 지파의 오해)

10-16절을 보십시오. “르우벤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 요단 언덕가에 이르자 거기서 요단 가에 제단을 쌓았는데 보기에 큰 제단이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들은즉 이르기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가나안 땅의 맨 앞쪽 요단 언덕 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쪽에 제단을 쌓았다 하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이를 듣자 곧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그들과 싸우러 가려 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를 길르앗 땅으로 보내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를 보게 하되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한 지도자씩 열 지도자들을 그와 함께 하게 하니 그들은 각기 그들의 조상들의 가문의 수령으로서 이스라엘 중에서 천부장들이라 그들이 길르앗 땅에 이르되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에게 나아가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온 회중이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이스라엘 하나님께 범죄하여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서 돌아서서 너희를 위하여 제단을 쌓아 너희가 오늘 여호와께 거역하고자 하느냐” 두 지파 반은 길르앗 땅으로 돌아가서 요단강 강가에 여호와 제단 모양의 큰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는 요단강 서편에서도 보이는 큰 단이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아홉 지파 반은 이 단을 쌓은 것이 우상 숭배를 하려고 하는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 그들은 두 지파 반과 싸우고자 하였습니다. 이들은 싸우기 전에 비누하스와 특사의 대표로 하여 각 지파의 열 지도자를 보내어 먼저 버럭 화를 내면서 이들의 죄를 책망하였습니다. 왜 하나님께 범죄하여 우상을 만드느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죄악 짓지 말라)

17-20절을 보십시오. “ 브올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회중에 재앙이 내렸으나 오늘까지 우리가 그 죄에서 정결함을 받지 못하였거늘 그 죄악이 우리에게 부족하여서 오늘 너희가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고 하느냐 너희가 오늘 여호와를 배역하면 내일은 그가 이스라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리라 그런데 너희의 소유지가 만일 깨끗하지 아니하거든 여호와의 성막이 있는 여호와의 소유지로 건너와 우리 중에서 소유지를 나누어 가질 것이니라 오직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 외에 다른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며 우리에게도 거역하지 말라 세라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에 대하여 범죄하므로 이스라엘 온 회중에 진노가 임하지 아니하였느냐 그의 죄악으로 멸망한 자가 그 한 사람만이 아니었느니라 하니라” 비누하스가 책망한 것을 요약하면 하나님을 거역하여 하나님을 격노케 하는 죄악을 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죄악을 지으면 그들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두 지파 반이 그 땅을 좋게 여기지 않으면 요단강 서편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의 땅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두 가지 역사적인 사건을 말합니다.

(브올의 죄악)

첫째는 브올의 죄악을 말합니다. 이는 민수기 25장을 배경으로 하는 말씀입니다. 모압왕 발락은 이스라엘을 넘어뜨리기 위해서 미인계를 썼습니다. 그들은 섹시한 미인들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남자를 유혹하고 범죄하게 하였습니다. 향수를 바르고 섹시한 춤을 추면서 유혹하자 많은 이스라엘 남자가 미혹되었습니다. 음행한 후에는 바알을 숭배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전염병을 내려서 이들을 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모르고 한 이스라엘 청년이 미디안 여자와 나오고 있었습니다. 오늘 특사 단장으로 온 비누하수가 그 남녀를 창으로 찔러 죽여서 하나님의 진노를 멈추게 하였습니다. 이때 죽은 사람들이 이만 사천 명입니다.

(아간의 사건)

두번째 사건은 아간의 사건입니다. 이는 여호수아 7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점령할 때 아이성 전투에서 36명이 죽는 대패를 당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간이라는 자가 여리소서 전투에서 탐심을 이기지 못하고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 이십 세겔을 감추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간을 아골 골짜기로 끌고 가서 돌로 쳐서 죽였습니다. 그 후에 아이성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비누하스의 질투)

비누하스는 이 두 사건을 통하여 공동체에서 한 사람이나 혹은 몇 사람의 우상숭배 죄로 이스라엘 전체가 망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 공동체는 몸과 같아서 손이 아프면 온 몸을 쓸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두 지파반도 우상 숭배를 빨리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아홉 지파 반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뜨거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질투심으로 질투를 하였습니다. 죄에 대해서 분노하였습니다. 그들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은 전쟁이라도 불사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는 훌륭한 것입니다.

(열지파의 오해)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두 지파 반을 오해한 것입니다. 두 지파 반은 우상을 숭배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먼저 왜 단을 쌓았느냐고 겸손히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우선 정죄하였습니다. 이렇게 오해하고 정죄하면 큰 전쟁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우리는 의심스러운 것이 있으면 먼저 소문을 내기보다 겸손히 찾아가서 물어보아야 합니다. 어떤 학생의 몸에서 담배 냄새가 났습니다. 이것만을 가지고 담배를 피웠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겜방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학사가 심야에 극장에서 낯선 여자와 나왔습니다. 이것만을 가지고 그 사람이 바람을 피웠다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혼자서 온 것인데 우연히 어떤 여자와 나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목자의 방에서 고스톱 치는 것과 같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렇다고 먼저 소문을 내서는 안 됩니다. 다른 행동을 고스돕 치는 것으로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차를 타고 가다가 어떤 목동이 어떤 여자와 러브호텔이 있는 쪽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연애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차가 빠르게 가니까 다른 사람을 착각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한 목자가 밤에 한 자매 목자와 있었다고 의심을 해서는 안 됩니다. 순수하게 둘이서 신앙적인 이야기만 하며 기도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감각 기관은 불완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심이 들면 조용히 찾아서 물어보아야합니다. 너무 성급하게 단정하고 소문을 내고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두 지파반의 결백을 호소하는 기도)

21-23절을 보십시오.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반 지파가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 전능하신 자 하나님 여호와께서 아시나니 이스라엘도 장차 알리라 이 일이 만일 여호와를 거역함이거나 범죄함이거든 주께서는 오늘 우리를 구원하지 마시옵소서 우리가 제단을 쌓은 것이 돌이켜 여호와를 따르지 아니하려 함이거나 또는 그 위에 번제나 소제를 드리려 함이거나 또는 화목제물을 드리려 함이거든 여호와는 친히 벌하시옵소서.” 비누스하스 특사의 책망을 받은 두 지파 반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합니다. 그들은 의심을 받았을 때 사람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억울하다고 화를 내며 싸우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그들은 대답을 했는데 사실은 하나님께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그들은 먼저 하나님 앞에 나가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의 무죄함을 하나님 앞에서 호소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무죄를 주장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상숭배를 했다면 자신들에게 벌을 주어도 좋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오해를 받을 때는 먼저 하나님께 나가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결백을 말해야 합니다. 만약에 죄가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결백을 호소한 두 지파 반은 아홉 지파의 대표들에게도 왜 단을 쌓았는가 이해를 시킵니다.

(두 지파반이 단을 쌓은 이유)

24-29절을 보십니다. “우리가 목적이 있어서 주의하고 이같이 하였노라 곧 생각하기를 후일에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느니라 하여 너희의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여호와 경외하기를 그치게 할까 하여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가 이제 한 제단 쌓기를 준비하자 하였노니 이는 번제를 위함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함도 아니라 우리가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번제와 우리의 다른 제사와 우리의 화목제로 섬기는 것을 우리와 너희 사이와 우리의 후대 사이에 증거가 되게 할 뿐으로서 너희 자손들이 후일에 우리 자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받을 분깃이 없다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말하였거니와 만일 그들이 후일에 우리에게나 우리 후대에게 이같이 말하면 우리가 말하기를 우리 조상이 지은 여호와의 제단 모형을 보라 이는 번제를 위한 것도 아니요 다른 제사를 위한 것도 아니라 오직 우리와 너희 사이에 증거만 되게 할 뿐이라 우리가 번제나 소제나 다른 제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성막 앞에 있는 제단 외에 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를 거역하고 오늘 여호와를 따르는 데에서 돌아서려는 것은 결단코 아니라 하리라” 오해를 받은 두 지파반은 그들이 단을 쌓은 이유를 말합니다. 그들은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아홉 지파와 떨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가나안 땅은 정확히 말하면 아홉 지파가 살고 있는 요단강 서편입니다. 또한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이 있습니다. 이로 안하여 아홉 지파 반이 두 지파 반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받을 복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섬기지 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대비하여 여호와의 제단을 본따서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이 제단은 우상을 숭배하기 위한 제단이 아닙니다. 이는 아홉 지파 반과 두 지파 반 사이에 관계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쌓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굳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을 떠나기 위해서 단을 쌓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잘 믿기 위하여 단을 쌓은 것입니다.

(소통의 필요성)

두 자파 반이 하나님을 잘 섬기고 이스라엘의 공동체를 견고하게 하기 위해서 단을 쌓은 것은 잘한 것입니다. 하지만 단을 쌓기 전에 먼저 대화를 하고 단을 쌓지 않은 것은 잘못한 것입니다. 오해를 한 사람도 잘못한 것이지만 오해받을 짓을 한 사람도 잘못입니다. 우리는 특히 남녀 문제, 물질 문제에서 오해받을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밤늦게 부부가 아닌 남녀가 같이 있는 것은 아무리 떳떳하다 해도 의심 받을 짓입니다. 물질을 공개하지 않고 몇 사람이서 은밀하게 집행하는 것도 의심 받을 짓입니다. 우리 속담에 배나무 밭에서는 갓끈을 다시 매지 말고 참외밭에서는 신발을 바꾸어 신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의심 받을 짓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 지파 반의 말을 들은 특사단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지파간의 오해가 풀어짐)

30-34절을 보십시오. “제사장 비느하스와 그와 함께 한 회중의 지도자들 곧 이스라엘 천천의 수령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의 말을 듣고 좋게 여긴지라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과 므낫세 자손에게 이르되 우리가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줄을 아노니 이는 너희가 이 죄를 여호와께 범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너희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을 여호와의 손에서 건져내었느니라 하고 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와 지도자들이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을 떠나 길르앗 땅에서 가나안 땅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와 그들에게 보고하매 그 일이 이스라엘 자손을 즐겁게 한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찬송하고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거주하는 땅에 가서 싸워 그것을 멸하자 하는 말을 다시는 하지 아니하였더라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이 그 제단을 엣이라 불렀으니 우리 사이에 이 제단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 함이었더라” 열두령은 그들의 말을 듣고 그들 사이에 모든 오해가 풀렸습니다. 그들의 말을 좋게 여겼습니다. 비누하스가 대표로 그들의 무죄를 선언하였습니다. 그들과 전쟁하고자하는 것을 막은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들은 두 지파 반의 결백함을 본부에 돌아와서 보고하였습니다. 그 보고를 듣고 이스라엘 전체가 즐거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하고 전쟁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접었습니다. 두 지파 반은 그 단의 이름을 엣이라고 불렀습니다. 엣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여호와께서 하나님이 되시는 증거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지파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경우도 사사기에 나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전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할 수 있었던 비밀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대화에 있습니다. 대화를 하면 오해가 풀립니다. 오해가 풀리면 싸움이 그칩니다. 우리는 먼저 판단하고 정죄하기보다 대화를 통해서 알고 이해하고자 해야 합니다. 어느 학교에서 새학기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이 교문에서 학생들의 복장 상태를 검사하고 있었습니다. 한 학생은 왼 손으로 거수 경례를 하였습니다. 선생님은 기강을 잡고자 다짜고짜 그 학생의 뺨다귀를 때렸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오른 손이 없는 왼 손 잡이 학생이었습니다. 지하철에서 한 아이가 이리저지 뛰어다니고 떠들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한 사람이 그 아버지 되는 사람에게 책망을 하였습니다. 아이 버릇 좀 잘 가르치시오. 그러자 그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몇 시간 전에 병원에서 저의 아내가 죽었습니다. 그래서 정신이 없어 아이를 간수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분위기가 숙연해졌습니다. 이렇게 대화하면 이해되고 오해가 풀리는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대화를 할 때는 자신의 의견을 진실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습니다. 말을 듣는 사람은 상대편의 입장에서 들을 수 있어야합니다. 그 사람의 상황과 입장에서 이해를 해주어야 합니다. 물론 대화를 했는데도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상을 섬기는 단이었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그때는 죄를 책망해야합니다. 그래서 회개하면 얻은 것입니다.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공동체에서 이방인처럼 여겨야 합니다. 그들의 심판은 하나님께 맡겨야합니다. 신약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회개치 않는 가룟유다까지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교회에는 독초인 가라지도 자랍니다. 하나님은 가라지도 품고 섬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각시탈이 말하듯이 심판은 느리지만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다른 사람을 품고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다양합니다. 생각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적극적이고 어떤 사람은 소극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감성적이고 어떤 사람은 이성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도전적이지만 어떤 사람은 치밀합니다. 참으로 동역자와 저는 성격이 많이 다릅니다. 이런 것은 어느 것도 나쁘거나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품고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 안에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 공동체에서 우리가 서로 상처 받기 쉽습니다. 특히 목자에게서 상처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자도 사람이라 불완전하고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화목의 중요성)

2008년 우리가 왕같은 제사장으로 가장 힘써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화목입니다. 사랑의 공동체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도 우리와 화목을 이루시기 위해서 친히 육신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런 희생이 없이는 화목은 어렵습니다. 우리가 십자가의 희생을 영접하고 십자가의 희생을 배우는 가운데 화목을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화목한 교회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때 성령님께서 우리 모임에 힘 있게 일하실 것을 믿습니다. 서로 사랑하여 하나될 때 성령께서 친히 복음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여호수아 22장 강해 두 지파 반이 주는 교훈
여호수아 22장 1-여호수아 22장 34절
요절 여호수아 22장 30절
여호수아 22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23 [여호수아] 여호수아 24장 강해 이부 돌이 증거가 되리니 오요한 2007-07-30
22 [여호수아] 여호수아 24장 강해 일부 오직 나와 내 집은 오요한 2007-07-30
21 [여호수아] 여호수아 23장 강해 위대한 유산 오요한 2007-07-30
20 [여호수아] 여호수아 22장 강해 두지파 반이 주는 교훈 오요한 2007-07-07
19 [여호수아] 여호수아 21장 강해 레위 지파의 땅 분배 오요한 2007-07-06
18 [여호수아] 여호수아 20장 강해 도피성 오요한 2007-06-13
17 [여호수아] 여호수아 18장 강해 ,19장 강해 어느 때까지 지체하느냐 오요한 2007-06-01
16 [여호수아] 여호수아 17장 강해 스스로 개척하라 오요한 2007-05-16
15 [여호수아] 여호수아 15장 16장 강해 영향력 있는 삶 오요한 2007-05-02
14 [여호수아] 여호수아 14장 강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오요한 2007-04-23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