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메인메뉴 바로가기
컨텐츠 바로가기

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여호수아 20장 강해 도피성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7-06-13 00:00:00
조회수 : 3,006

문제지풀이(2)

    iconA_06432A.hwp  (11.50KB)

    iconA_06432B.hwp  (32.00KB)

여호수아 20장 강해 도피성
여호수아 20장 1-여호수아 20장 9절
요절 여호수아 20장 2절

이스라엘은 이제 가나안 정복 전쟁을 마쳤습니다. 12지파에게 땅의 분배도 마쳤습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하나 더 할 일이 있습니다. 도피성을 만들어야 합니다. 어느 집에 다섯 딸만 낳다가 여섯 번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들은 사랑을 많이 받았고 심약하였습니다. 아들은 초등학교 오학년 때까지 젖을 빨았습니다. 아들이 가끔 잘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실수로 화분을 깬다든지 유리창을 깬다든지 누나들이 아끼는 물건을 가지고 나가서 잃어버린다든지 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그를 혼내키려면 아들은 어머니의 등 뒤로 도망가서 매달려 숨었습니다. 어머니의 등 뒤에 숨으면 아무도 그를 끌어내지 못하였습니다. 아들은 다른 사람의 화가 다 풀릴 때까지 그곳에 숨어 있곤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도피성이었습니다.

(도피성을 택정해야 함)

1-3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내가 모세로 너희에게 말한 도피성을 택정하여 부지중 오살한 자를 그리로 도망하게 하라 이는 너희 중 피의 보수자를 피할 곳이니라” 하나님은 가나안 땅에 도피성을 만들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민수기에서 이미 도피성을 만들도록 명령하셨고 가나안 땅 분배를 한후에 다시 한번 도피성을 만들도록 말씀하십니다. 부지중에 오살한 자 곧 과실치사한 사람들이 도피성으로 피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첫 번째로 죄문제를 처리하는 일을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죄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행복하게 살 수 없습니다. 죄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립니다. 3절에 ‘특히 부지중에 지은 죄’라는 것은 우리는 알지 못하고 연약하여 죄를 짓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가 이해하셨습니다. 연약한 허물을 이해하시고 용서하고 피할 수 있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도피성을 통하여 누구도 그를 미워하고 복수하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나 아들이니 아내가 다른 사람에게 죽임을 당했어도 죽인 자를 복수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도피성에 피하게 한 자는 어떤 피해자도 정죄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을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정죄치 말아야 말아야할 것을 여러 가지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죄사함을 받아야하는 존재)

하나님은 주기도문에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여 주신 것과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달라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거의 매일 주기도문을 암송하며 기도합니다. 이는 우리가 끊임없이 죄를 용서하고 죄사함을 받아야함을 가르쳐주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할까요? 베드로는 일곱 번까지 용서할 것인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490번이라도 하라는 말입니다. 이는 무한대로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한 예화를 드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일만달라트 빚진 사람이 있습니다. 이는 육천만 데나리온입니다. 그는 이 빚을 갚을 수 없어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 빚으로 자신뿐 아니라 자신의 가족들까지 다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인에게 긍휼을 구하였습니다. 주인은 그를 불쌍히 여겨서 빚을 탕감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백데나리온 빚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백데나리온보다 육십만배나 많은 빚을 탕감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빚을 탕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는 백다나리온의 빚을 갚지 않았다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를 보고 어떤 사람이 주인에게 일러 바쳤습니다. 그러자 일만달란트의 빚을 용서했던 주인은 화가 났습니다. 자신은 육십만원을 탕감하여 주었는데 일원도 탕감하지 못하는 그를 보고 화를 내셨습니다. 그리고 빚을 다 탕감하여 준 것을 취소하고 그 사람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 우리가 중심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예수님도 우리를 용서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용서의 세 가지 순서)

우리는 이 비유에서 용서의 세 가지 순서를 배웁니다. 첫째는 주인이 일만달란트를 탕감해 주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일만달란트와 같은 우리 죄를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떤 죄라도 용서해 주셨습니다. 머리털보다도 더 많은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며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하나이다.” 우리가 연약하여 무죄하여 죄를 짓는 것을 아셨습니다. 우리를 깊이 이해하시고 용서하셨습니다. 둘째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백데라니온의 빚을 진 것을 용서해야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피해를 주고 상처를 준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용서해야하는 죄는 우리가 용서 받은 죄에 비하면 십만분의 일로 아주 적은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한 잘못는 우리가 하나님께 지은 죄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고소하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없는 자는 돌로 치라” 이 말씀은 죄 있는 자는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돌을 던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줍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 안에서 죄사함 받은 자는 다른 어떤 사람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셋째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면 하나님도 우리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을 경우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탕감해 주신 것을 취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죄를 안고 우리는 지옥에 가야합니다. 아주 무서운 말씀입니다.

(용서의 필요성)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뭐가 그렇게 분한 것이 많고 억울한 것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이 잘못한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잘못한 것만 있지 않고 잘한 것도 있습니다. 이들은 잘한 것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잘못한 것만 기억합니다. 한 번 상처받은 것으로 사람을 불신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이런 것이 많습니다. 부부 간에 원한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간에도 원한이 있습니다. 목자에게 상처받은 양도 있습니다. 물론 잘못한 사람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잘못한 사람보다도 용서하지 않는 사람에게 더 있습니다. 용서가 없는 사람은 마음에 맺힌 것이 있습니다. 이는 화병을 만듭니다. 피가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게 하여서 암이나 중풍병과 같은 질병을 유발합니다. 분노로 마음에 성령님이 소멸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의 죄사함을 취소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스스로 미움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해야합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셨는데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 됩니다. 이는 교만입니다. 우리는 같은 인간으로서 다른 사람의 잘못에 대해서 긍휼이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심판은 칼을 갖고 계시는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께 맡겨야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곳이 천국으로 바뀝니다. 교회는 천국의 모형입니다. 교회에는 무엇보다 사랑이 충만해야 합니다. 사라베리 선교사님이 세계선교 보고회 때 주신 말씀도 바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보다 더 형제자매를 사랑해야 합니다. 가정은 세상 사람보다 더 행복해야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어떤 모임보다 사랑으로 가득해야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하게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작은 상처에 마음이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수를 갚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도피성에 있는 자는 정죄할 수 없듯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정죄할 수 없습니다. 나도 나 자신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예수님 안에서 용서하고 사랑해야합니다.

(살인자는 죄를 고해야 함)

4,5절을 보십시오. “그 성읍들의 하나에 도피하는 자는 그 성읍에 들어가는 문어귀에 서서 그 성읍 장로들의 귀에 자기의 사고를 고할 것이요 그들은 그를 받아 성읍에 들여 한 곳을 주어 자기들 중에 거하게 하고 피의 보수가 그 뒤를 따라온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살인자를 그의 손에 내어주지 말지니 이는 본래 미워함이 없이 부지중에 그 이웃을 죽였음이라” 첫째는 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해야할 일도 있습니다. 도피자는 장로 앞에서 죄를 고백해야합니다. 그러면 장로가 듣고 이 죄가 과실치사인지를 판단합니다. 이 죄가 과실치사인 경우는 사람들을 한 성에 두어서 거하게 합니다. 그리고 피의 보수자로부터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고의적으로 살인한 자는 도피성에 피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우리가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 먼저 죄를 고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죄를 고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십니다.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게 해주십니다. 다윗이 죄를 자복하기 전에는 종일 신음하므로 뼈가 쇠하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누르시므로 여름 가물에 마름같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자신의 죄를 주의 종 나단 선지자 앞에서 자복했을 때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하늘나라의 기쁨이 임하였습니다. 우리가 죄없다고 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 먼저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다음에 자신이 죄를 범한 사람에게 가서 죄를 시인해야 합니다. 아니면 주의 종 앞에서 죄를 고백해야합니다. 죄를 짓고 다만 하나님 앞에서만 회개하면 된다고 하여 하나님 앞에서만 고백하면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밀양이라는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잘못했으면 하나님 앞에서도 회개하고 남편 앞에서 죄송하다고 말해야 합니다. 남편이 잘못했으면 아내에게 잘못했다고 말해야합니다. 피해를 보상할 수 있으면 피해를 보상해야합니다. 그죄를 다시 반복하기 위해서 투쟁해야합니다.

(대제사장이 죽어야 자유함을 얻음)

6절을 보십시오. “그 살인자가 회중의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나 당시 대제사장의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가 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그 성읍의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둘째는 예수님의 죽으심을 영접해야합니다. 제사장이 죽기 전까지는 공소시효가 있습니다. 이때는 도피성 안에서만 있어야 하는 공간적인 제약을 받습니다. 마치 유배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죄를 지으면 먼 시골로 귀양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그 유배지를 떠나면 그는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고하였을지라도 제사장이 살아 있을 때는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습니다. 제사장이 죽어야 그 사람은 아무 곳이나 갈 수 있는 공간의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사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는 완전한 자유를 얻습니다. 우리가 죄사함을 거져 얻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빚을 졌는데 그냥 빚을 탕감해 준 것이 아닙니다. 빚을 대신 갚아준 것입니다. 돈은 노동력입니다. 빚을 갚아 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돈 천만원만 갚아주는 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여기에는 많은 희생이 따릅니다. 월급쟁이가 천만원을 버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서너 달 뼈빠지게 고생한 것을 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죄를 그냥 용서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자신의 생명을 값으로 치르시고 용서하여 주신 것입니다. 죄는 생명을 요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갖은 고통을 맛보시고 죽으시며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다 갚았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의 값을 치르셔서 우리의 죄 값을 다 갚아주셨습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를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죄라도 회개하기만 하면 용서해 주십니다. 회개한 자를 용서한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회개하는데 지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을 긍휼을 베푸사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십니다. 성경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살인죄나 간음죄가 아닙니다. 회개치 않고 의인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입니다. 바리새인과 같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구제 불능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죄를 지었을 때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모든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우리를 새롭게 해주실 것입니다.

(도피성의 의미와 역할)

7-9절까지를 보십시오. “무리가 납달리의 산지 갈릴리 게데스와 에브라임 산지의 세겜과 유다 산지의 기럇아르바 곧 헤브론을 구별하였고 또 여리고 동 요단 저편 르우벤 지파 중에서 평지 광야의 베셀과갓 지파 중에서 길르앗라못과 므낫세 지파 중에서 바산 골란을 택하였으니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우거하는 객을 위하여 선정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 살인한 자로 그리로 도망하 여 피의 보수자의 손에 죽지 않게 하기 위함이며 그는 회중 앞에설때까지 거기 있을 것이니라” 하나님은 여섯 개의 도피성을 정하셨습니다. 이 도피성은 이스라엘 어디에서든지 충분히 갈 수 있는 32km의 거리 안에 있습니다. 높은 곳에 있어서 누구의 눈에든지 잘 보입니다. 그 문은 항상 열려 있습니다.

(서쪽의 도피성)

그런데 그 도피성의 이름에 복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단강 서쪽에 있는 성들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잘 나타닙니다. 먼저 게데스는 구별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아무 죄가 없으십니다. 둘째 세겜은 어깨에 짐을 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어깨에 짊어지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다 가져가셨습니다. 세례요한은 이 예수님을 보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헤브론은 연합 동맹 교제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연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을 때 우리의 옛사람과 연합하여 함께 죽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셔서 우리의 몸에 들어오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우리와 연합하여 우리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계십니다.

(동편의 도피성)

요단강 동편에 있는 성은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받는 은혜를 말해줍니다. 먼저 베셀은 요새라는 듯입니다. 예수님은 요새가 되어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보호하시고 지켜 주시는 분이십니다. 둘째 길르앗 라못은 언덕, 고지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언덕이 되십니다. 언덕은 영광스러움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영광의 예수님이십니다. 죄악된 우리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셋째 골란은 기쁨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기쁨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영접하면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시고 평화를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도피성이 되시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들의 축복입니다.

(누구든지 피하는 도피성)

이렇게 여섯 성을 32km이내에 도로를 14m로 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누구든지 피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곧바로 피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도피성과 유사점도 있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도피성과 예수님은 둘 다 도피하고 보호해 주는 기능을 하는 점은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습니다. 도피성은 시공의 제한을 받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언제 어디서나 계십니다. 우리는 말씀이 되시는 예수님께 언제 어디서나 도피할 수 있습니다. 또한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한 자만 나갑니다. 하지만 예수님께는 부지중에 지은 죄 말고도 고의로 지은 죄까지도 용서해 주십니다. 심지어 자신의 부모를 죽인 자도 용서받습니다. 여러 명을 연쇄 살인한 자도 용서받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다만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도 다시 고의로 죄에 빠진 자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이단에 빠진 자들, 다른 종교로 개종한 자들은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한 자도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자는 성령을 훼방한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간음죄를 용서받은 자에게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고자 하나 죄를 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죄는 용서받습니다. 그러나 죄사함을 받고도 고의로 간음죄를 짓는 자는 용서받지 못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현격하게 욕보인 자입니다. 우리는 용서받고 나서 항상 거룩하게 살고자 투쟁해야합니다. 그 외에 우리가 연약하여 지은 모든 죄는 다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진실되게 회개하고 죄를 반복하지 않을 때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참 자유와 생명과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신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도피성 교회)

결론적으로 우리가 교회에서 가장 먼저 힘써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는 서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회개하고 십자가의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죄를 회개하고 거룩하게 살고자 투쟁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에게 마음에 평안과 영광과 기쁨과 생명을 주실 줄을 믿습니다.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학교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과 같이 만들어 주실 줄을 믿습니다. 셋째 용서받고나서 공의로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게 살고자 투쟁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함과 같이 거룩하고자 하는 경건의 투쟁을 해야합니다. 아멘!
여호수아 20장 강해 도피성
여호수아 20장 1-여호수아 20장 9절
요절 여호수아 20장 2절
여호수아 20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23 [여호수아] 여호수아 24장 강해 이부 돌이 증거가 되리니 오요한 2007-07-30
22 [여호수아] 여호수아 24장 강해 일부 오직 나와 내 집은 오요한 2007-07-30
21 [여호수아] 여호수아 23장 강해 위대한 유산 오요한 2007-07-30
20 [여호수아] 여호수아 22장 강해 두지파 반이 주는 교훈 오요한 2007-07-07
19 [여호수아] 여호수아 21장 강해 레위 지파의 땅 분배 오요한 2007-07-06
18 [여호수아] 여호수아 20장 강해 도피성 오요한 2007-06-13
17 [여호수아] 여호수아 18장 강해 ,19장 강해 어느 때까지 지체하느냐 오요한 2007-06-01
16 [여호수아] 여호수아 17장 강해 스스로 개척하라 오요한 2007-05-16
15 [여호수아] 여호수아 15장 16장 강해 영향력 있는 삶 오요한 2007-05-02
14 [여호수아] 여호수아 14장 강해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오요한 2007-04-23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