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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역대하 36장 강해 마지막 왕들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9-20 00:00:00
조회수 : 3,69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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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6장 강해 마지막 왕들
역대하 36장 1-역대하 36장 23
요절 역대하 36장 1. 그 땅의 백성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세워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삼으니

[유다 왕 여호아하스]

“1. 그 땅의 백성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세워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삼으니 2. 여호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삼 세더라 그가 예루살렘에서 다스린 지 석 달에”

1-4절은 여호아하스의 통치가 기록되어 있는데 열왕기하의 내용보다 간단합니다. 그 땅의 백성이 예루살렘에서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세워, 그 아버지를 이어 왕으로 삼았습니다. 국민들이 왕을 옹위한 이와 같은 방식은 26:1과 33:25에도 나옵니다. 여호아하스는 둘째 여호아김보다 두 살어린 넷째 이복동생입니다. 국민들이 장남이 아닌 여호야스를 왕으로 삼은 것(렘 22:10-12)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시야의 반 애굽 전책을 견지하기 위해 특별히 다른 형제들에 비해 반애굽적인 성향이 강한 그를 왕으로 세웠을 것이라고 합니다. 나이 많은 여호야김에게 나타났던 폭군적 행위(8절) 떠문에 백성들이 여호야스를 왕으로 선택했을 수도 있습니다. 여호아하스라는 이름의 뜻은 여호와께서 붙드신다인데 살롬이라고도 불리워졌습니다(렘 22:11). 왕하 23:31에는 그의 모친이 하무달이라고 언급되어 있으나 본서에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세 살이었습니다. 그가 예루살렘에서 나라를 다스린 지 석 달 된 해입니다. 그는 B.C. 609년에 3개월 동안 통치하였습니다. 왕하 23:32에는 "여호아하스가...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느고가 여호아하스를 폐함)

“3. 애굽 왕이 예루살렘에서 그의 왕위를 폐하고 또 그 나라에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게 하며”

이집트의 왕이 예루살렘에서 여호아하스를 폐위시켰습니다. 왕하 23:33에는 바로느고가 저를 하맛 땅 립나에게 가두어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폐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원형은 쫓아버리다, 제거하다, 떠나다라는 의미입니다. 애굽 왕이 여호아하스를 왕위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느고는 유다로 하여금 이집트에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치게 하였습니다. 벌금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벌을 주다, 유죄 판결을 내리다, 촉구하다란 의미로 어떤 잘못에 대해 내리는 처벌의 일종을 말합니다(출 21:22 암 2:8). 그런데 한 국가가 다른 나라를 침입하고 그곳을 점령한 후에 전쟁의 대가로 받은 것은 보통 조공이었습니다. 느고가 벌금을 받은 것은 애굽이 유다의 내정(內政)에 깊이 관여했음을 반영합니다. 더불어 여호아하스가 반애굽 정책을 취했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됩니다.

(여호야 김을 왕으로 세움)

“4. 애굽 왕 느고가 또 그의 형제 엘리아김을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고쳐 여호야김이라 하고 그의 형제 여호아하스를 애굽으로 잡아갔더라”

이집트의 느고 왕은 여호아하스의 형 엘리아김을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엘리아김이라는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게 하였습니다. 왕이었던 그의 동생 여호아하스는, 붙잡아서 이집트로 데려갔습니다. 엘리아김은 요시야의 둘째 아들로서 (대상 3:15) 이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세우신다입니다. 여호야김은 여호와가 세우신다라는 의미의 이름입니다. 애굽 왕 느고가 그의 이름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넣어서 식민지 백성들에게 애굽의 정책이 옳음을 홍보하였습니다. 여호와께 대한 존경을 보임으로써 원활한 통치를 이룩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내정간섭하면서 그렇게 붙인 것은 과연 유다를 하나님이 세우시느냐는 의미가 있습니다. 유다를 세우것은 애굽이라고 말하여 오히려 유다 백성들과 여호와 하나님을 모독하기 위한 것입니다.

[악을 행한 여호야김]

“5.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오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여호야김이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습니다. 여호야김은 여호아하스보다 2살 위입니다(2절). 여호아하스의 소개 때에 그의 모친의 이름을 생략한 것과 같이 본절에서도 여호야김의 모친을 소개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모친의 이름을 생략하는 것이 역대기 저자의 특징입니다(그는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는 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습니다. 왕하 23:37에서 여호야김은 그 열조의 모든 행한 일을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우리를 바라보고 계십니다. 우리의 앉고 서는 것을 보고 알고 계십니다. 여호야김은 애굽 왕에 의해서 선택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신들을 숭배함으로써 애굽 왕을 기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바벨론 포로로 잡혀간 여호야김)

“6. 바벨론 왕 느 부갓네살이 올라와서 그를 치고 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이 올라와서 여호야김을 치고, 쇠사슬로 묶어서, 바빌로니아로 잡아갔습니다. 느부갓네살의 이름이 앗수르 바벨론 비문에는 나비웁쿠두리우술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히브리 성경 여러 곳에서도 그와 유사한 형태로 언급되어 있습니다(스 2:1 렘 49:28). 그는 B.C. 605년에서 562년까지 바벨론을 통치한 자로서 느보(사 46:1)는 질병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자다 또는 느보는 면류관을 보호해 준다 입니다. 그는 B.C. 625년 니느웨 성을 멸망시킨 나보폴라살(B.C. 625-605)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갈그미스 전투에 나아가 그곳에서 애굽을 크게 패하게 했던 장본인입니다. 왕하 24:1에 따르면 이미 여호야김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섬겼는데 3년후 그가 느부갓네살을 배반했기 때문에 느부갓네살이 그를 바벨론으로 잡아갔습니다. 쇠사슬로 결박하는 방법은 므낫세에게도 행했던 것으로(33:11) 당시 근동 지방의 통치자들이 정복국의 지도자들을 잡아갈 때 쓰던 관습을 반영한 것입니다. 그의 시체는 비참하게 버려집니다.(렘 22:18, 19 36:30).

(성전도구를 바벨론으로 옮김)

“7. 느부갓네살이 또 여호와의 전 기구들을 바벨론으로 가져다가 바벨론에 있는 자기 신당에 두었더라”

느부갓네살은 또 주의 성전 안에 있는 온갖 기구를 바빌로니아로 가지고 가서, 도성 바빌론에 있는 자기의 궁전에다 들여놓았습니다 이 사실이 열왕기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단 1:2에서 그 역사적 사실성을 입증해 주고 있습니다. 자기 신당 은 바벨론의 전쟁의 신(神)인 므로닥의 산당일 것입니다.

(여호야김의 사적)

“8. 여호야김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가증한 일들과 그에게 발견된 악행이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여호야김의 나머지 사적과, 그가 저지른 모든 역겨운 일과, 그가 저지른 악한 행위는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야김이 범한 구체적인 악행에 대해서는 예레미야서(26:23 36:20-23, 26)와 에스겔서(19:6)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왕하 24:4). 발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그에게서 발견된 것, 또는 그의 표면 위에 드러난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의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악한 생각이나 불신앙적 사고가 겉으로 드러나 발산된 것을 의미합니다. 여호야김이 행한 모든 도덕적, 신앙적 행위와 태도를 전체적으로 묘사한 것입니다. 여호야긴의 이름은 여고냐(대상 3:16), 혹은 고니야(렘 22:24)로 불리워지기도 합니다.

[악을 행한 여호야긴]

“9. ○여호야긴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석달 열흘 동안 다스리며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

여호야긴이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여덟 살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석 달 열흘 동안 다스렸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통치하는 동안 바라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까지 보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는 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습니다. 나이 팔 세는 왕하 24:8의 18세가 보다 정확한 기록입니다. 혹자는 렘 13:18 22:26 29:2 등을 근거로 여호야긴은 매우 어려서 항상 어머니가 보호자로 따라다녔다고 말하면서 8살이 정확한 기록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70인역과 벌게이트역. 그리고 사리아 탈굼역 등은 분명히 18살이 옳은 것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왕하 24:8에는 대략적으로 석달을 치리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의 통치는 느부갓네살의 역사 기록이 증거하는 것과 같이 B.C. 598년 12월부터 B.C. 597년 3월 16일 까지를 말할 가능성이 큽니다.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감)

“10. 그 해에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보내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잡아가고 여호와의 전의 귀한 그릇들도 함께 가져가고 그의 숙부 시드기야를 세워 유다와 예루살렘 왕으로 삼았더라”

그 해 봄에, 느부갓네살 왕이 사람을 시켜서 여호야긴을 바빌로니아로 잡아가고, 주의 성전에 있는 값비싼 온갖 기구도 함께 가져 갔습니다. 여호야긴의 삼촌 시드기야를 세워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 해에 대한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해가 돌아올 때(NIV, At the turn of the year)로서 봄철을 말합니다. 대체로 이 시기는 건기가 시작더가는 계절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전쟁을 완비하고 전투를 개시하던 때였습니다. 왜냐하면 근동 지방의 겨울을 우기에 해당하므로 전쟁을 하기에 적당치 않았기 때문입니다(삼하 11:1 왕상 20:26 대상 20:1). 왕하 24:10-16을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부친 여호야김을 잡아 간 후(6절) 다시 2차로 유다를 침입하여 여호야긴을 잡아간 사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야긴은 부왕 여호야김의 뒤를 이은 후 다시 부왕의 정책을 그대로 따랐다가 느부갓네살의 응징을 받았든지, 아니면 여호야김의 응징에 대한 후속 조치로 재차 응징을 받았든지 했을 것입니다.
바로 이때에 에스겔 뿐만 아니라 유다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많은 수의 지도자들과 기술자들이 잡혀 갔습니다. 여호야긴은 약 37년간을 바벨론에서 감옥 생활을 하면서 그곳에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 산 듯합니다(대상 3:17, 18). 그리고 느부갓네살에 이어 에월므드락이 왕위를 계승하였을 때(B.C. 562) 감옥에서 풀려나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왕들 가운데 가장 존경 받는 위치로 회복되었습니다(왕하 25:27 이하 렘 52:31 이하).
그 숙부 시드기야에 해당하는 히브리 역대기 본문에는 그의 형제로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을 좀더 정확히 말하면 삼촌(uncle)입니다. 왜냐하면 시드기야는 분명히 요시야의 셋째 아들(대상 3:15)이기에, 여호야긴에게는 삼촌이 되기 때문입니다(왕하 24:17). 그리고 이와 더불어 시드기야의 모친은 여호아하스와 동일하게 하무달이기 때문에 이 사실은 자명합니다. 한편, 본래 그의 이름은 맛다니야였으나 느부갓네살이 개명하여 시드기야로 불렀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담담한 시선으로 간략하게 유다가 망한 것을 기록합니다. 그는 유다를 사랑하여 그들의 추한 역사를 길게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편에서 그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안타까운 눈으로 혹은 기쁜 미소로 우리를 보고 계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악을 행한 시드기야]

“11. ○시드기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일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11-21절에서는 유다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의 통치(11-16절)와 예루살렘의 멸망(17-21절)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내용의 본문은 왕하 24:18-25:21입니다. 시드기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한 살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는 21세에 왕위에 올라 유다를 11년 동안 통치(B.C.597-586)했는데 악행을 많이 범하여, 유다가 갈대아에게 패망 당하는 모습을 목도한 비극의 인물입니다. 여기도 역시 그의 모친에 대한 소개가 없습니다.

(교만한 시드기야)

“12.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선지자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말씀으로 일러도 그 앞에서 겸손하지 아니하였으며”

그는 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주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선포하는 예레미야 예언자 앞에서 겸손하게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가 시드기야로 하여금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바벨론에게 항복할 것을 촉구하였습니다.(렘 32:4 34:3) 시드기야는 이 같은 예언들을 묵살함으로써 멸망을 자초하였습니다(왕하 24:20 25:7). 한편, 시드기야가 이때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은 이유를 귀족들의 반발과 시드기야 자신의 헛된 망상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학자가 있습니다. 시드기야의 행악 가운데서 특히 렘 37장(특별히 2절), 38장, 그리고 렘 21:4-22:9에 나오는 사건들을 생각케 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은 시드기야)

“13. 또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그의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게 하였으나 그가 왕을 배반하고 목을 곧게 하며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하였고 14. 모든 제사장들의 우두머리들과 백성도 크게 범죄하여 이방 모든 가증한 일을 따라서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거룩하게 두신 그의 전을 더럽게 하였으며”

느부갓네살은 강제로, 시드기야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충성을 맹세하도록 하였습니다. 맹세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 맹세의 언약을 잘 지켰더라면 능히 쓰러져 가는 나라를 세울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겔 17:12-21 21:25). 시드기야는 억지로 충성을 맹세하였지만, 마침내 느부갓네살 왕에게 반항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는 단지 바벨론 왕에 대한 배반뿐만 아니라(왕하 24:20) 예레미야의 충고를 거절하였습니다. 그래서 에스겔 선지자는 이 큰 배반에 대해 비난하였습니다.(겔 17:13-16).
바벨론 왕에 대해 시드기야가 배반한 것은 애굽의 26대 왕조인 호프라, 혹은 아프리스(B.C. 588-568)의 선동에 의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다른 한 편으로, 시드기야는 고집을 부리며, 조금도 뉘우치지 않고,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과 자기 백성들을 대우하시는 방법이 다르며, 당신이 선택한 백성들에게는 징계보다는 사랑으로 대우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드기야는 마지막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사랑까지도 거부하여 패망하였습니다. 시드기야는 맹세의 언약에 대해 파기하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충고에 대한 거부는 곧 여호와 하나님을 떠난 것입니다. 지도급 인사들인 제사장들과 일반 백성도 크게 죄를 지어, 이방의 모든 역겨운 일을 따라 하였으며, 마침내 그들은 주께서 자신의 것으로 거룩하게 하신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말았습니다. 유다의 온 백성들 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 지도자 역할을 했던 제자장들도 행악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 당시 유다의 모든 사람들은 범죄 행위에 빠져 있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제사장의 어른들은 24반열의 족장들과 대제사장을 가리킵니다.(대상 241, 3-19) 이를 다 합하면 에스겔서에서 언급된 동방 태양에게 경배한 우상 숭배자 25명과 동일합니다(겔 8:16,) 에스겔에 의하면 시드기야 시대에는 백성 뿐만 아니라 제사장들도 깊은 우상 숭배에 빠져 있었습니다.(겔 5:1-7 8:5-18 14:1-5 등).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내신 하나님)

“15.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이신 주께서 그들과 그 성전을 구원하실 뜻으로, 아끼셨습니다. 니느웨 백성을 아끼신 하나님은 유다 백성도 아끼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오래 참으십니다. 여기서 아끼사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동정하다, 용서하다, 긍휼히 여기다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온갖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선택된 백성들이 계속해서 범죄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오랫동안 참으시고, 파괴하고 심판하시기를 인내하셨습니다. 그들이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다 용서하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에게 예언자들을 보내시고 또 보내셔서, 경고에 경고를 거듭하셨습니다. 이러한 표현 형태는 예레미야에서도 자주 발견됩니다(렘 26:5 29:19 35:14, 15). 여기서 사자들이란 선지자들을 가리키는데, 당시에 활약했던 에스겔(B.C. 593-570), 예레미야(B.C. 627-580), 다니엘(B.C. 605-530), 하박국(B.C. 612-589)등을 지칭한 것입니다. 그와 더불어 여기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예언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핍박함)

“16.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특사를 조롱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예언자들을 비웃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자신의 백성을 향한 주의 분노가 치솟으시니, 백성을 바로 잡을 길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가 너무 극심하여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 불가피하게 된 상태에 이르렀습니다.(왕하 24:4). 여기에서와 같이 하나님의 심판이 부득이하게 내려 갈 수밖에 없는 경우를 우리는 성경 다른 부분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21:18 잠 6:15 29:1 렘 8:15 145:19).

(긍휼이 없는 갈대아인의 심판)

“17. 하나님이 갈대아 왕의 손에 그들을 다 넘기시매 그가 와서 그들의 성전에서 칼로 청년들을 죽이며 청년 남녀와 노인과 병약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며”

하나님께서 바빌로니아의 왕을 불러다가, 자신의 백성을 치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갈대아 왕은 느부갓네살을 가리킵니다. 그는 시드기야가 애굽에 사자를 보내서 군사적인 지원을 요청하고 바벨론을 배반하자(겔 17:11-21) 예루살렘을 침공하였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예루살렘을 포위한 끝에 성전과 성벽을 파괴하였습니다. 유다 왕국 전체를 붕괴시켰습니다(왕하 25:1-7 렘 34:1-7 39:1-7 52:2-11). 붙이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내어 주다(gave, KJV, RSV) 또는 양도하다(handeddver, NIV)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유다를 징계하시기 위해 이방인 느부갓네살을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 왕은 유다의 젊은이들을 닥치는 대로 칼로 쳐죽였습니다. 심지어는 성전 안에서도 그러한 살육을 삼가지 않았습니다. 그 왕은 잔인하였습니다. 젊은이나 늙은이, 여자나 남자, 병약한 사람이나 건강한 사람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갈대아 왕을 도구로 사용하셨기 때문에 그 주체는 갈대아 왕으로 보아야 옳습니다. 이러한 심판은 그들이 행한 범죄와 밀접한 연관이 있습니다. 그들이 성전을 더럽히고(14절), 그들 자신들도 성전에서 살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의 백성을 그 왕의 손에 넘기셨습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는 한없이 자비롭지만 회개치 않는 자에게는 자비가 없으십니다.

(부서진 하나님의 전)

“18. 또 하나님의 전의 대소 그릇들과 여호와의 전의 보물과 왕과 방백들의 보물을 다 바벨론으로 가져가고 19. 또 하나님의 전을 불사르며 예루살렘 성벽을 헐며 그들의 모든 궁실을 불사르며 그들의 모든 귀한 그릇들을 부수고”

바빌로니아 왕은 하나님의 성전 안에 있는 크고 작은 기구와, 주의 성전 안에 있는 보물과, 왕과 신하들이 가지고 있는 보물을 모두 도성 바빌론으로 가져 갔습니다. 그 왕은 또 하나님의 성전을 불사르고, 예루살렘 성벽을 헐고, 궁궐들을 다 불사르고, 값진 그릇들을 다 부수어 버렸습니다. 성전의 유실(遺失)과 관련하여 생각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실들은 왕하 25:9에 나옵니다. 왕하 25:13-17에는 기명을 훼파하고 탈취해 간 사실에 대해서 언급함과 더불어 그 기명들이 자세히 열거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약탈은 여호야김 시대에 있었던 것보다 더 광범위하고 철저했습니다.(렘 39:1-8)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감)

“20. 칼에서 살아 남은 자를 그가 바벨론으로 사로잡아가매 무리가 거기서 갈대아 왕과 그의 자손의 노예가 되어 바사국이 통치할 때까지 이르니라”

그는 또 칼에 맞아 죽지 않고 살아 남은 자들은, 바빌로니아로 데리고 가서, 왕과 왕자들의 노예로 삼았습니다. 칼에서 살아남은 자는 직역하면 칼에서 남은 자, 즉 칼로 살해되지 않은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전쟁에서 죽거나 쓰러지지 않은 자들을 의미합니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자들은 예레미야의 예언과 같이(렘 27:7) 바사가 일어날 때까지 그곳에서 있었습니다. 이들 중 대부분은 노예가 되어 비참한 생활을 하였으나, 그 중에서 몇 사람은 상당한 지위와 총애를 받았습니다(왕하 25:27-30 단 1:19 2:49 6:3). 이때 유다의 백성들은 계속되는 압제로 인해(사 14:2, 3) 대부분 포로 초기에 낙망을 경험하고 점점 세속화되어 갔습니다(겔 33:31, 32). 이와는 달리 영적으로 깨어 있음을 더불어 경건했던 자들은 더욱 신앙이 성숙되어 갔습니다(느 1:4 에 4:14-16 단 1:8, Payne). 갈대아 왕과 그 자손은 느부갓네살과 그의 계승자들, 즉 에월므로닥(B.C. 562-560), 네리글리살(혹은 네르갈사레셀, B.C. 560-556), 나보니두스(B.C. 556-539)를 말합니다. 그들은 페르시아 제국이 일어서기까지 거기서 노예 생활을 하였습니다. 바사국이 주재할 때까지는 B.C. 539년 바사 왕 고레스가 바벨론을 정복할 때까지를 말합니다.

(70년 포로생활)

“21.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

그리하여 주께서 예레미야를 시켜서 땅이 칠십 년 동안 황폐하게 되어, 그 동안 누리지 못한 안식을 다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포로되어 적국에 있는 동안에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는 사실은 레위기 26장 34절의 예언입니다. 그래서 역대기 저자는 예레미야가 예언한 이스라엘 백성의 70년간의 포로생활(렘 25:11 29:10)을 보다 긍정적인 의미에서 례 26:34을 기초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안식년의 율법을 무시한 자들에 의해서 빼앗긴 땅의 안식이, 그 법을 어긴 자들이 형벌을 받아 포로되어 감으로써 비로소 회복될 수 있었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바벨론 포로 기간은 대체적으로 1차 포로 때인 여호야김 3년부터(단 1:1-5, B.C. 605) 고레스의 조사로 인해 1차로 귀환한 시점(스 2:1-70, B.C. 536)까지로 봅니다.

[고레스의 귀국 명령]

“22. ○바사의 고레스 왕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여호와께서 바사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그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이르되”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이 왕위에 오른 첫 해였습니다. 바사왕 고레스는 B.C. 539년부터 529년까지 왕국을 통치했습니다. 고레스에 주께서는 예레미야를 시켜서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고,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고레스를 일으켜 예루살렘 성전은 중건케 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은 사 41:25 44:28 45:1-4, 13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레스의 이 같은 마음의 변화는 바벨론 포로들의 회복 정책과 지역 종교의 융화 정책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에서 감동시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이르는 일어나다, 들어올리다, 분발시키다라는 뜻의 우르에서 온 말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움직이는 것(moved, NIV, 공동 번역) 뿐만 아니라 마음을 돋우는 것(stirred up, KJV, Living Bible, RSV)을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포로생활 70년 후에 다시 본국으로 귀환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렘 25:11 29:10-14). 고레스는 온 나라에 명령을 내리고, 그것을 다음과 같이 조서로 써서 돌렸습니다

(성전을 건축하라)

“23. 바사 왕 고레스가 이같이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내게 주셨고 나에게 명령하여 유다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너희 중에 그의 백성된 자는 다 올라갈지어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주 하늘의 하나님께서 고레스에게 이 땅 위의 모든 나라를 주셔서 다스리게 하시고, 유다의 예루살렘에 그의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본절에서 고레스가 여호와라는 히브리적 표현을 사용한 것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고레스는 다니엘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와 더불어 그는 히브리어의 거룩한 문학들(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에 대해서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을 나타내는 데 이같이 여호와로 표현한 것은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자로 자신을 자처한 것입니다. 고레스가 이러한 표현을 사용한 데 대해 당시 사용된 외교적인 어법에 의해서 그랬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전자의 주장이든, 혹은 후자의 주장이든 관계없이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레스가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사 44:28-45:5).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의 땅으로 되돌아와 하나님을 다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이 나라 사람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빕니다. 그들을 모두 올라가게 하라고 합니다. 23절은 스 1:1-3과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소개되어 있는 바사 왕 고레스의 칙령입니다. 이 칙령은 b.c. 538년 고레스 원년에 선포되었기 때문에 유다가 멸망한지 약 70년 이후의 일이어서 연대기적으로는 크게 연관성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역대기서의 부록으로 이 책의 독자들 즉, 포로 생활로부터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다 희망적인 결론을 보여 주기 위해 역대기 저자가 추가 기록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대기 저자의 의도는 유다의 포로를 땅의 안식과 관련하여 보다 긍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열왕기 저자도 여호야긴이 감옥에서 풀려 나와 존귀하게 된 사실을 기록하여 본서 저자의 의도와 비슷하게 희망적인 결론을 맺고 있습니다.
역대하 36장 강해 마지막 왕들
역대하 36장 1-역대하 36장 23
요절 역대하 36장 1. 그 땅의 백성이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세워 그의 아버지를 대신하여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삼으니
역대하 36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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