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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역대하 34장1 강해 진노의 불길을 잠시 멈춘 요시야왕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9-18 00:00:00
조회수 : 2,944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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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4장 유다 왕 진노의 불길을 잠시 멈춘 요시야왕
역대하 34장 1-역대하 34장 33
요절 역대하 34장 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정직히 행한 요시야)

“1. 요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팔 세라 예루살렘에서 삼십일 년 동안 다스리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요시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여덟 살이었습니다. 33:25의 기록에 의하면 요시야는 국민들에 의하여 추대된 왕이었습니다. 그는 유다 최후의 선왕(善王)으로서 31년 동안(B.C. 640-609) 유다를 통치해, 패망으로 질주해 가는 유다를 잠시 동안이나마 선(善)으로 이끌었습니다. 불이 꺼지기 전에 마지막 환하게 타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는 무너져가는 유다를 마지막으로 다시 세우고자 발버둥친 왕입니다.
역대기에는 열왕기에 소개된 왕의 모친 즉, 여디다가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왕하 22:1). 그는 예루살렘에서 서른한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는 주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의 조상 다윗의 길을 본받아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곁길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요시야가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에 의해서만 판단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왕 다윗과 비교하여 이같이 표현하였습니다. 사실 여호와 보시기에 선을 행한 유다 왕은 여럿 있었습니다(14:2 27:2 29:2 등). 그러나 그 조상 다윗과 같이 행한 왕은 여호사밧(17:3)과 히스기야(29:2), 그리고 요시야 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나타난 바와 같이 좌우로 치우치지 않았다는 평가는 오직 요시야 왕에게만 주어졌습니다. 그의 개혁은 다니엘과 느헤미야 에스라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평양 대부흥 운동은 일제시대를 준비하게 합니다.

(우상을 제거합니다)

“3. 아직도 어렸을 때 곧 왕위에 있은 지 팔 년에 그의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비로소 찾고 제십이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비로소 정결하게 하여 그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제거하여 버리매”

3-7절은 요시야 제8년에 있었던 그의 개혁에 관한 기록입니다 요시야는 왕이 된 지 여덟째 해에, 아직도 매우 어린 나이에, 조상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하였습니다. 그의 통치 십이년이 되는 해에는, 산당과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없애고, 유다와 예루살렘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열왕기에서는 율법책을 발견하기 이전 어릴 때의 요시야의 종교적 행위, 즉 다윗의 하나님을 구한 사실에 대하여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대기에서 요시야가 개혁을 시작한 것은 그의 재위 12년째, 즉 그가 20세가 되던 해였습니다. 그때는 선지자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때와 거의 일치하는 시점입니다(렘 1:2). 따라서 요시야의 개혁은 이미 율법책을 발견하기 이전부터 시작된 것이 분명합니다.
여기에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공헌이 컸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리고 8절을 보면 율법책을 발견한 해인 요시야 제 18년이 개혁을 처음 시작한 해가 아니라 단지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 해임을 알 수 있습니다(왕하 22:3, 8 주석 참조). 열왕기에서도 요시야 18년은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한 해로, 즉 율법책을 발견하고(22:8), 유월절을 실시한 해(23:23)로 언급하고 있을 뿐입니다. 정확히 연대기를 따라 모든 사건들을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열왕기의 기록과 여기 나타난 사실은 연대기적으로 결코 모순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서로 상반되지 않습니다.
요시야의 개혁은 그의 통치 12년에 각종 우상을 파괴하는 일로부터 시작하여 18년에 성전 수리 사역을 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는 것은 요시야의 종교 개혁이 멸망으로 치닫는 유다를 잠시 동안이라도 선으로 이끌었다는 사실입니다.
요시야 12년에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케 하였습니다. 요시야의 이때 나이는 20세입니다. 즉위 8년째 되던 해부터 12년째 되던 해까지 개혁의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그의 나이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우상 척결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시야가 개혁을 실시할 수 있었던 요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정치적인면으로 당시 흑해 북방 지역에 살던 유목민인 스구디아인의 침입(B.C. 628-626)으로 근동 지역은 일대 혼란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애굽인들의 저지로 인해 유다는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유다 백성들에게 크게 영향을 미쳐 개혁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요인은 스구아디아인의 침입으로 지난 반세기 동안 유다의 멍에였던 앗수르가 크게 쇠퇴하여 유다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시야는 이러한 호기를 틈타 다윗이 차지했던 영역 전체를 장악하여 과거처럼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재확립할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면으로 당시 스구디아인들의 침입으로 고대 근동 전지역은 국제적인 혼란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다에는 예레미야 선지자(B.C. 627-580)와 스바냐 선지자(B.C. 640-621)가 활동하게 되었습니다(렘 1:2, 14 습 1:2), 이 두 선지자가 요시야의 개혁과 밀접한 연관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바알의 단을 헐었습니다)

“4. 무리가 왕 앞에서 바알의 제단들을 헐었으며 왕이 또 그 제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에 뿌리고”

4절에서는 3절에서 언급한 개혁을 그 내용별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시야의 지시로, 사람들은 바알 신들을 섬기는 제단들을 헐었습니다. 요시야는 제단 위에 있는 분향단들도 부수게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서, 그 제단에서 제사를 드리던 자들의 무덤에 뿌렸습니다.
모세가 금송아지를 파괴할 때 이와 같이 기루로 만들었습니다(출 32:20). 또한 아사 왕도 이와 마찬가지로 모친 마아가가 섬기던 우상을 찍고 빻아 가루로 만들었습니다(15:16).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조각으로 난도질하다, 찧어 빻다. 티끌로 만들다, 가루로 만들다란 뜻의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부서진 것, 즉 곱고 얇은 천 같은 상태로 된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발로 부수다, 짓밟다를 의미하는 단어와는 분명히 구별됩니다(15:16). 왕하 23:6에서는 그 가루를 평민의 묘지에 뿌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우상 숭배자들의 무덤에 뿌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은 일반적으로 천연 동굴 또는 연한 암석이나 산허리를 깎아 만든 무덤에다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장소를 준비하지 못한 하층민들은 그냥 땅을 파서 시체를 매장하기도 했는데, 그러한 묘지가 모인 공동 장소를 대체적으로 부정한 곳으로 여겼습니다(민 19:16). 그러므로 요시야가 이곳에서 이러한 행위를 했다는 것은 부정한 우상을 부정한 곳에다 완전히 없애 버리려는 의도에서 였습니다.

(제사장들의 뼈를 불살랐습니다.)

“5.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유다와 예루살렘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6. 또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납달리까지 사면 황폐한 성읍들에도 그렇게 행하여”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 불살라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깨끗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대한 전후 상황 설명은 왕하 23:20에 나옵니다. 산당에서 우상을 숭배하던 제사장들이 무덤에서 뼈를 파내어 요시야가 불태우고 재를 만들 것이라는 사실은 이미 왕상 13:2에서 예언되었던 사실입니다(왕하 23:20 주석 참조). 이미 죽은 자들에 대해 이 같은 행위를 하는 것은 죽은 자들에게 있어서는 가장 큰 치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는 같은 일을,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 지역과, 저 멀리 사방이 다 폐허가 된 납달리 지역에 이르기까지, 직접 가서 행하였습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의 중앙에서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유다의 남단에 있었고 납달리는 이스라엘의 북단에 위치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같은 표현은 유다 전역 뿐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까지 개혁의 손길이 미쳤음을 나타냅니다. 실제로 본서 저자는 이러한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본 표현과 같은 서술을 가끔씩 사용했습니다(15:9 30:10).
앞에서 당시의 정치적인 상황을 설명했듯이(3절 주석 참조) 요시야는 앗수르의 세력이 더 이상 사마리아 땅까지 영향을 미치지못하는 틈을 타 북쪽 이스라엘까지 과감히 개혁을 단행할 수 있었습니다.(왕하 23:15, 19). 히스기야 때에도 이와 같은 개혁이 있었으나(30:1,5,10,11,18)요시야 때 만큼 광범위하게 시행되지는 못하였습니다. 또한 여기에서 유다 남쪽에 위치하고 있던 시므온 지파가 북쪽 10지파 가운데 한 지파로 언급되고 있습니다. 황폐한 성읍은 이스라엘의 멸망 상태를 표현합니다다. 하 23:19을 보면 구체적으로 각 성읍의 산당들을 어떻게 파괴했나를 알 수 있습니다.

(태양신을 찍었습니다)

“7. 제단들을 허물며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 를 만들며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태양상을 찍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더라”

요시야는 제단들을 헐고,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을 빻아 가루로 만들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분향단도 모두 부수어 버리고 나서야,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유다 땅의 태양신은 이미 파괴되었으므로(4절)여기서 말하는온 이스라엘은 북 왕국을 가리킵니다.

[율법책의 발견]

“8. ○요시야가 왕위에 있은 지 열여덟째 해에 그 땅과 성전을 정결하게 하기를 마치고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수리하려 하여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시장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를 보낸지라”

요시야는 나라와 성전을 깨끗하게 한 뒤에, 통치한 지 열여덟째 해가 되는 때였습니다. 이미 개혁이 수년간 진행 도중에 있었으며(3절), 그의 18년은 성전을 수리하는 개혁이 새로운 국면을 이룬 해였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본절에서는 요시야의 8년에 시작한 개혁 운동이 제18년에 와서 대대적으로 그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요시야의 삶 전체를 동정적인 측면에서 선왕(善王)으로 자세히 소개하려고 애쓴 반면, 열왕기 기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만을 중심으로 기록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마아세야 성주와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 서기관을 보내서, 주 그의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습니다 20절을 보면 사반의 직업이 서기관으로 나와 있으며 아히김의 아버지로 언급되어 있고, 렘 29:3을 보면 그가 엘리사의 아버지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왕하 22:3에는 므술람의 손자 아살리야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 볼 때 사반의 집안은 대대 손손 유력 인사로 언급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반증해 주는 예로서 그의 아들 그마랴는 여호야김 시대에 상당한 귀족으로 나타나 있습니다.(렘 36:12, 25), 그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인 그다랴는 예루살렘 멸망후 바벨론의 포로 가운데 중요한 인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렘 40:5). 마아세야와 서기관 요하아스의 아들 요아 이들 두 사람이 왕하 22:3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윤(시장)이란 직함은 예루살렘 성읍을 관장하던 우두머리로서 왕궁의 고관인 듯합니다.

(헌금을 거둡니다)

“9. 그들이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나아가 전에 하나님의 전에 헌금한 돈을 그에게 주니 이 돈은 문을 지키는 레위 사람들이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남아 있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과 온 유다와 베냐민과 예루살렘 주민들에게서 거둔 것이라”

이 세 사람은 힐기야 대제사장에게 가서, 하나님의 성전에 들어온 돈을 그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힐기야는 유다 왕 요시야 때의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본서에 나오는 현군(賢君)들의 배후에는 항상 이같은 유력한 대제사장들이 있어서 그들의 개혁 운동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아사에게는 아사랴가(15장), 여호사밧에게는 예후가(19장) 있었습니다.
이처럼 유다 왕국의 역사를 왕과 제사장 혹은 선견자와의 연합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은 역대기 저자의 사관(史觀)이러고 할 수 있습니다. 본절은 왕하 22:4과 그 내용 면에서 조금 다릅니다. 그곳에서는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메시지를 전하여 말하되 은을 계수하여...수리하되(4, 5절)라고 했으나, 여기서는 사반과 다른 두 사람이 직접 대제사장에게 돈을 전달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4:11, 12을 보면 성전에 연보한 돈을 왕의 서기관과 아전(衙前)이 계수하여 보관하였다가 대제사장 여호야다에게 전해준 것을 보게 됩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열왕기서와 본서의 두 병행 구절은 서로 모순되지 않고 내용을 보완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돈은,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북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역에 사는 백성과 유다와 베냐민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에게서 거두어들인 것입니다. 성전 문을 지키는 레위 사람들이 이것을 모아 두었습니다.

(성전을 수리합니다)

“10. 그 돈을 여호와의 전 공사를 감독하는 자들의 손에 넘기니 그들이 여호와의 전에 있는 일꾼들에게 주어 그 전을 수리하게 하되 11. 곧 목수들과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어 다듬은 돌과 연접하는 나무를 사며 유다 왕들이 헐어버린 성전들을 위하여 들보를 만들게 하매”

그들은 이 돈을 주의 성전 수리를 맡은 이들에게 맡겼습니다. 24:12을 보면 목수와 건축하는 자와 같은 공장은 모두 감독에 의해서 고용된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임금(賃金)도 감독이 직접 그들에게 전해주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또 그 돈을 주의 성전 수리를 직접 맡아 건축하는 이들에게 주어서, 성전을 수리하게 하였습니다. 그들은 그 돈을 목수와 돌 쌓는 이들에게도 맡겨서, 채석한 돌과 도리와 들보를 만들 나무를 사들여, 유다의 왕들이 폐허로 만들어 버린 건물들을 손질하게 하였습니다.
목수를 가리키는 히브리어는 단순히 나무만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만을 가리키지 않고, 돌이나 금속을 다루는 사람도 포함합니다. 이 단어는 쟁기질 하다, 공작하다를 가리키는 단어에서 온 말로 공작하는 사람, 숙련공, 장인(匠人), 석공 철공 등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헐어버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파괴하다, 더럽히다라는 뜻의 동사의 사역형 능동으로서, 그들(유다 왕들)이 파괴하게 하였다란 뜻입니다. 카일은 유다 왕들이 태만하여 전을 돌보지 않고 방치하여 여호와의 전이 저절로 파괴 되었다란 뜻으로 해석합니다. 그는 여호와 전이 훼손되는 것을 방치한 것도 적극적인 파괴 행위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므낫세와 아몬이 우상을 위하여 단을 쌓았을 때 여호와의 전에 딸린 방들이 파괴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성전은 아달랴(22:12). 아하스(28:21, 24), 히스기야(왕하 18:15, 16), 므낫세(33:1-7), 아몬(33:22) 당시에 더럽혀지고 훼손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언급된 헐어버린 전은 므낫세와 아몬에 의해 훼파된 전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요시야의 전대(前代) 악왕(惡王)은 므낫세와 아몬이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수리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12. 그 사람들이 성실하게 그 일을 하니라 그의 감독들은 레위 사람들 곧 므라리 자손 중 야핫과 오바댜요 그핫 자손들 중 스가랴와 무술람이라 다 그 일을 감독하고 또 악기에 익숙한 레위 사람들이 함께 하였으며 13. 그들은 또 목도꾼을 감독하며 모든 공사 담당자를 감독하고 어떤 레위 사람은 서기와 관리와 문지기가 되었더라”

그 사람들은 일을 정직하게 하였습니다. 왕하 22:7에서는 진실함을 나타내는 원어가 돈과 관련지어져 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31:12에서와 마찬가지로 일과 관련시켜 진실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문자적으로 확고함을 가리킵니다. 상징적으로는 안전, 도덕적인 신실성, 확립된 업무 등을 나타낼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를 능숙, 열심으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그들 위에 네 명의 감독이 있었습니다. 감독은 모두 레위 사람들인데, 므라리 자손 가운데서는 야핫과 오바댜, 고핫 자손 가운데서는 스가랴와 무술람이 성전을 수리하는 일을 맡아 하였습니다. 왕하 22:7에는 감독들이 소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기에 레위인의 족보를 기록한 것은 역대기의 특징입니다. 이 레위 사람들은 모두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음악과 노래로 일꾼들에게 용기와 격려를 준 사람들이 아니라, 13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담부하는 자를 관할하여 범백(凡百) 공장을 감독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목도꾼을 감독하고, 각종 공사 책임자들을 감독하였으며, 어떤 레위 사람은 기록원과 사무원과 문지기의 일을 맡았습니다
여기서 기록원은 8절에 나오는 서기관 사반과 요아와는 다른 서기로서, 성전을 수리하는 일에 직접 개입하여 감독(출 5:10, 패장)과 함께 물자를 관리, 계수하고 공급하는 일을 담당했을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서기는 레위인들로 구성된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을(KJV, NIV, RSV, Scribes) 지칭할 것입니다. 그리고 문지기는 계속해서 수납되는 성전세를 대제사장에게 전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입니다.

(율법책을 발견합니다.)

“14. ○무리가 여호와의 전에 헌금한 돈을 꺼낼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모세가 전한 여호와의 율법책을 발견하고 15. 힐기야가 서기관 사반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노라 하고 힐기야가 그 책을 사반에게 주매”

힐기야 제사장은, 주의 성전에서 궤에 보관된 돈을 꺼내다가, 모세가 전한 주의 율법책을 발견하였습니다. 여기서 무리는 문지기일 가능성이 있습니다(9절). 왕하 22:8에서는 이와 같은 문구가 없이 단지 힐기야가 여호와의 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했다는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절에서 율법책이 연보한 돈이 놓여있는 곳에서 발견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으나 역대기 저자는 어떤 식으로든 이 연보와 발견돤 율법책이 서로 관계가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직접 쓴 율법책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왕하 22:8에는 모세의 전한이란 문구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모세 오경 전부를 가리킬 가능성이 큽니다.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는 구약에서 모세 오경 전체를 가리키는 말로 자주 사용되었습니다.(신 17:18 수 1:8 8:31 24:26 느 8:1 등). 사반 서기관에게, 자기가 주의 성전에서 율법책을 발견하였다고 하면서, 그 책을 사반에게 주었습니다. 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책은 성전 비치용으로서 대체로 언약궤 곁에 보관되던 것이었습니다(신 31:25, 26). 따라서 이 율법책은 므낫세나 아몬과 같은 배교(背敎)적인 왕들에 의해서 다른 곳으로 치워졌다가 잃어버린 듯합니다.(33:7, Payne).

(말씀을 준행합니다)

“16. 사반이 책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가서 복명하여 이르되 왕께서 종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종들이 다 준행하였나이다 17. 또 여호와의 전에서 발견한 돈을 쏟아서 감독자들과 일꾼들에게 주었나이다 하고”

사반이 그 책을 가지고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왕하 22:9에는 단지 서기관 사반이 왕에게 돌아가서라고 기록되어 있어 책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본절에서는 사반이 힐기야로부터 책을 받은 사실을 언급하고 있고, 왕하에서는 사반이 자신이 그것을 읽은 후에 왕께 나아갔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열왕기 저자와는 달리 역대기 저자가 여기서 중요하게 여겼던 바는 사반이 그 율법책을 지체하지 않고 즉시 왕에게로 가져갔다는 사실입니다. 사반은 성전 수리가 완료되었음을 보고하러 왕에게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는 서기관 사반에게 성전의 재정 관리 뿐만 아니라 대제사장과 왕 사이, 혹은 성전 수리에 관계된 사항을 연락하는 매개자의 임무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임금님께서 종들에게 명령하신 것을 종들이 그대로 다 하였다고 보고하였습니다. 또 주의 성전에 있는 돈을 다 쏟아서, 감독들과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맡겼다고 보고하였습니다. 쏟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흘러나가다, 쏟아 붓다, 떨어지다란 뜻의 동사에서 파생된 것입니다. 본절의 이러한 표현은 성전 수리를 위해 백성들이 현금궤에 바친 모든 돈을 헛되지 않게 전부 사용하였음을 말합니다.

(옷을 찢고 회개합니다)

“18서기관 사반이 또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더이다 하고 사반이 왕 앞에서 그것을 읽으매 19. 왕이 율법의 말씀을 듣자 곧 자기 옷을 찢더라”

사반 서기관은, 힐기야 제사장이 자기에게 책 한 권을 건네 주었다고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사반은 그 책을 왕 앞에서 큰소리로 읽었습니다 여기서 읽으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직역하면 그 속에 있는 것(일부만)을 그가 읽었다 가 됩니다. 왕하 22:10을 보면 이것은 그가 그것들을 읽었다, 즉 율법책 전부를 읽었다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역대기 저자가 보다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그때 사반이 읽은 부분은 신 28장, 저주의 내용을 담은 부분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왕은 율법의 말씀을 다 듣고는, 애통해 하며 자기의 옷을 찢었습니다 이는 사반이 읽어준 율법의 말씀을 듣고 요시야 왕이 극한 슬픔과 공포를 느꼈음을 나타냅니다(창 37:29 민 14:6 수 7:6 삿 11:35). 요시야는 율법의 내용을 듣고 요시야는 자신과 백성들의 형편이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얼마나 많이 벗어나 있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회개하는 자가 일반적으로 하듯이 자신의 옷을 찢었습니다.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여호와께 책임을 묻습니다)

“20. 왕이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의 아들 압돈과 서기관 사반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21. 너희는 가서 나와 및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하여 이 발견한 책의 말씀에 대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이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준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도다 하니라”

왕은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의 아들 압돈과 사반 서기관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아히감은 내 형제가 일어났다란 뜻의 이름으로 렘 26:24을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호하여 백성들의 손에 죽지 않게 한 장본인으로 나옵니다. 그는 예루살렘 멸망 후 유다 성읍을 다스린 그다랴의 부친입니다(렘 39:14 40:5). 압돈은 왕하 22:12에는 악볼로 나와 있습니다. 렘 26:22 36:12을 보면 악볼의 아들 엘라단이라고 언급되어 있어 여기에 표현된 압돈보다는 악볼이 바른 독법(讀法)인 것 같습니다. 왕의 시신(侍臣) 아사야와 같은 이름의 인물은 성경에서 여럿 언급되지만(대상 4:36 6:30 15:6, 11) 이 사람은 여기에서 처음 언급되었습니다. 시신이란 직책은 주로 왕과 관련해서 나타납니다. 그런데 한 곳에서는 귀족으로(창 40:20 삼하 10:2, 4) 언급되어 있어 이를 특별한 고위직으로 봅니다. 이와는 달리 다른 한 곳에서는 일반 병사로(삼하 2:12-23) 나타납니다.
그대들은 주께로 나아가서, 나를 대신하여, 그리고 아직 이스라엘과 유다에 살아 남아 있는 백성을 대신하여, 이번에 발견된 이 두루마리의 말씀에 관하여 주의 뜻을 여쭈어 보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남은 자는 왕하 22:13에는 나와 백성과 온 유다를 위하여로 언급되어 있을 뿐, 이스라엘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여기서 역대기 저자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북왕국이 멸망한 후 그 남은 자들을 유다 백성과 동일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하고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여기서 유다의 남은 자들이란 므낫세 치하에서 하나님의 형벌 가운데 살아난 백성들을 뜻합니다. 왕은 우리의 조상이 주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켜 따르지 않았으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쏟으신 진노가 크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쏟으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물을 쏟는다, 금속이 녹아내리다란 뜻의 단어로 극심한 진노를 표할 때 쓰입니다.
이와 유사하게 병행 구절인 왕하 22:13에는 이것이 발하신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 말은 노를 발하다란 뜻의 동사에서 온 말로 불을 피우다, 태워 소멸시키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표현들은 앞으로 나타날 여호와의 진노를 각 저자의 관점에서 유사하게 나타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22. ○이에 힐기야와 왕이 보낸 사람들이 여선지자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그는 하스라의 손자 독핫의 아들로서 예복을 관리하는 살룸의 아내라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살았더라 그들이 그에게 이 뜻을 전하매”

힐기야가 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과 함께 훌다 예언자에게로 갔습니다. 왕하 22:14에는 구체적으로 아히감, 악볼과 사반, 아사야로 그 이름들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여선지자 홀다에 대해서는 본절의 기록 외에 다른 곳에서는 언급이 없습니다. 성경에 명시된 여선지자로는 미리암(출 15:20), 드보라(삿 4:4), 이사야(느 6:14)등이 있는데, 선지자로서 행한 그녀들의 전(全) 활동에 대해서는 자료가 빈약합니다. 그는 살룸의 아내였습니다. 살룸은 하스라의 손자요 독핫의 아들로서, 궁중 예복을 관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예복은 왕이나 귀족들이 절기에 왕궁에서 입었던 옷인 듯합니다. 한편 왕하 10:22에는 종교 행사를 위하여 바알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이 특별한 예복을 입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렘 32:7을 보면 홀다의 남편 살롬이 선지자 예레미야의 숙부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훌다는 예루살렘의 제 이 구역에 살고 있었는데, 그들이 그에게 가서 왕의 말을 전하였습니다. 둘째 구역은 왕조 시대에 들어와서 예루살렘 성이 확장될 때 포함되었던 장소입니다.

(하나님의 노여움을 샀습니다)

“23. 훌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너희를 내게 보낸 사람에게 말하라 하시니라 24.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되 곧 유다 왕 앞에서 읽은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하리니 25. 이는 이 백성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며 그의 손의 모든 행위로 나의 노여움을 샀음이라 그러므로 나의 노여움을 이 곳에 쏟으매 꺼지지 아니하리라 하라 하셨느니라”

훌다가 그들에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합니다. 훌다가 전한 신탁(神託)의 말씀을 통해 볼 때(24-28절) 제사장 힐기야가 율법책을 발견하고 요시야 왕이 그 내용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선지자 훌다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해서(왕하 1:6)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대들을 훌다에게 보내어 주의 뜻을 물어 보라고 한 요시야왕에게 가서 전하라고 합니다.
여호와 주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유다 왕 앞에서 낭독한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여호와가 이 곳과 여기에 사는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겠다고 하십니다. 기록된 저주는 신 28:15-68에 나옵니다. 이러한 저주의 언약에 대한 언급은 다음과 같은 곳에서도 자주 나타납니다(왕상 9:6 이후 14:9, 10 렘 7:20 19:3 32:30). 유다 사람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였습니다. 그들이 한 모든 일이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분노를 여기에다 쏟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 분노의 불을 끄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도 21절에서와 동일하게 쏟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병행 구절인 왕하 22:17에서도 왕하 22:13과 동일하게 발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쓰고 있습니다. 여기서 꺼지지 아니하리라와 잘 어울리는 단어는 발한 입니다.

(요시야는 겸손하며 통곡하였습니다.)

“26. 너희를 보내어 여호와께 묻게 한 유다 왕에게는 너희가 이렇게 전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네가 들은 말을 의논하건대 27.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을 가리켜 말한 것을 네가 듣고 마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주의 뜻을 주께 여쭈어 보려고 그대들을 훌다에게로 보낸 유다 왕 요시야에게는 이렇게 전하라고 합니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요시야가 들은 말씀을 설명하십니다. 네가 들은 말을 의논컨대의 원어를 직역하면, 네가 들을 말들 때문에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요시야 왕이 들었던 저주에 대한 유보, 또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인한 연기를 의미합니다.
여호와가 이 곳과 이 곳에 사는 주민을 두고 말한 것을 요시야가 듣고, 마음에 느낀 바 있어서, 하나님 앞, 곧 여호와 앞에서 겸손해져서, 요시야가 옷을 찢으며 통곡하였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연기된 이유에 대해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시야는 마음이 부드럽게되었다(KJV, was tender)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여 완악한 자신을 버리고 회개하였음을 나타냅니다.(RSV, heart was penitent). 그러므로 여호와가 요시야의 기도를 들어주었습니다. 여호와 주가 말씀하십니다.
요시야가 율법의 말씀을 듣고 마음이 연하여 하나님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기 때문에 여호와께서도 그의 회개를 들으시고 심판을 연기하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다라는 표현은 왕하 22:19에도 동일하게 나옵니다. 그런데 이는 본서 저자가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의 한 실례로 소개하기 위해 요시야의 행위를 자세히 기술한 것입니다.

(요시야는 재앙을 보지 않을 것입니다)

“28. 그러므로 내가 네게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 내가 이 곳과 그 주민에게 내리는 모든 재앙을 네가 눈으로 보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에 사신들이 왕에게 복명하니라”

그러므로 이 곳과 이 곳 주민에게 내리기로 한 모든 재앙을, 네가 죽을 때까지는 내리지 않으십니다. 여호와가가 요시야를 네 조상에게로 보낼 때에는, 요시야가 평안히 무덤에 안장되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요시야는 므깃도 전투에서 살해되었습니다(35:22, 23). 여기에서 언급된 평안히라는 단어가 적절하지 않은 것처럼 보입니다. 여기서 평안히라는 단어는 요시야가 참혹한 유다의 멸망을 보지 않고 므깃도에서 전사(戰死)하여 왕의 묘실에 장사(葬事)된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축복이었음을 말합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이 말을 왕에게 전하였습니다 모든 재앙은 장차 유다가 바벨론에게 포로로 잡혀갈 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이 같은 표현은 앞에서 언급된 평안히라는 말의 의미를 구체화시켜 줍니다. 이러한 재앙이 내리게 되는 원인 중 하나는 백성들의 패역과 더불어 므낫세의 모든 죄(우상 숭배)로 인한 것이었습니다(왕하 24:3).

[여호와께 순종하기로 하다]

“29. ○왕이 사람을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으고 30.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매 유다 모든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모든 백성이 노소를 막론하고 다 함께 한지라 왕이 여호와의 전 안에서 발견한 언약책의 모든 말씀을 읽어 무리의 귀에 들려 주고”

왕이 사람을 보내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불러모았습니다. 모든 장로를 불러 모으는 일은 국가의 중대사가 발생했을 때에만 있는 일이었습니다. 왕조 시대 때 장로들은 어느 정도 정치적, 종교적 역량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시야가 여호와께로부터 받은 바 말씀을 통하여 새로운 차원의 개혁을 결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왕은 주의 성전에 올라갈 때에,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어른으로부터 아이에 이르기까지, 모든 백성을 다 데리고 주의 성전으로 올라갔습니다. 왕하 23:2에는 레위 사람들 대신 선지자들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선지자들이 어느 한 계층의 인물로 분류되지 않았는데 레위인들 중에도 선지자 역할을 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처럼 표현한 듯합니다. 그런데 본절에서 이를 레위인으로 나타낸 것은 본서 저자의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른부터 아이까지는 히브리어 원문의 문자적인 뜻은 큰 자들로부터 작은 자들까지입니다. 이는 모인 군중들의 구성이 매우 다양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 전체가 다 모였음을 말합니다.
그 때에 왕은 주의 성전에서 발견된 언약책에 적힌 모든 말씀을 사람들에게 크게 읽어 들려 주도록 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읽어 들려준 말씀을 율법책 가운데 언약의 핵심이 되는 부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의 언약책은 율법책 전부를 가리킨다기 보다는 언약책의 일부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언약을 세웁니다)

“31. 왕이 자기 처소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를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언약의 말씀을 이루리라 하고”

왕은 자기의 자리에 서서, 주님을 따를 것과,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그의 계명과 법도와 규례를 지킬 것과, 이 책에 적힌 언약의 말씀을 지킬 것을 맹세하는 언약을, 주 앞에서 맺었습니다. 자기 처소에 섰다는 말은 왕이 대 위에 섰다는 뜻입니다(왕하 23:3). 요시야가 기둥처럼 생긴 사열대에 섰다는 말입니다. 언약을 세우되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자르다, 언약을 맺다, 서로 연맹하다를 뜻하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로 그가 잘랐다(cut), 언약을 맺었다 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희생 제물을 둘로 갈라 그 사이로 지나며 언약을 세운 사실에서(창 15:17 렘 34:18, 19) 유래하였기 때문에 언약 의식의 본질을 짐작케 하는 용어입니다. 여기서는 이 같은 형식을 취해서 언약을 세웠다기 보다는 언약책에 기록된 말씀에 근거하여 맹세하였음을 말합니다.

(언약을 따릅니다)

“32. 예루살렘과 베냐민에 있는 자들이 다 여기에 참여하게 하매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 곧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의 언약을 따르니라”

왕이 거기에 있는 예루살렘과 베냐민 사람들도 이 언약에 참여하게 하니,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 곧 조상의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을 따랐습니다 여기서 참가하게 하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서다(stand)라는 뜻의 단어의 사역형 능동으로서 세우다라는 뜻입니다. 왕하 23:3에는 기본형 능동이 쓰여져 모든 백성이 자발적인 순종심보다는 요시야 왕의 개혁 의지를 더욱 강조하려고 한 의도에서 였던 것 같습니다.

(가증한 것을 제합니다)

“33. 이와 같이 요시야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가증한 것들을 다 제거하여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으므로 요시야가 사는 날에 백성이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복종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이와 같이 요시야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혐오스러운 것들을 다 없애 버렸습니다. 여기서 역대기 저자는 율법책의 발견과 새로운 언약적 행사를 통하여 개혁이 더욱 활발히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개혁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미 3-7절에서 언급하였으며 이러한 내용은 왕하 23:4-20에도 나옵니다. 모든 땅은 남유다 뿐만 아니라 북왕국까지도 포함됩니다. 이런 광범위한 개혁에는 수년의 기간이 소요되었을 것입니다. 왕하 23:4-20에 기록된 개혁의 사건이 요시야 18년 당 해에 모두 일어났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입니다. 그 해에는 또 유월절 행사가 치르어졌는데, 한 해에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입니다(왕하 23:23).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주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은 예루살렘 지역의 주민, 베냐민과 유다 지파 사람들을 제외한 열 지파의 지역에 거주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요시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백성이 주 조상의 하나님께 복종하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요시야가 사는 날에 여호와를 섬겼다는 것에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요시야가 가졌던 경건의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과, 백성들이 소유했던 신앙의 한계입니다. 요시야가 죽은 후 여호야김의 통치하에서 백성들은 곧장 타락하여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치 제사장 여호야다가 사는 날 동안에는 요아스가 하나님을 경외하다가 그가 죽자 곧 타락한 사실과 유사합니다. 복종은 백성들이 내적인 순종없이 외적으로만 굴종했음을 보여 줍니다. 요시야가 백성들에게 강제적으로 여호야를 경배케 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의 불길을 막기 위해서는 철저히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합니다.

요시야의 통치에 관한 기록이 두장에 나누어져 기록되어 있는데 왕하 22, 23장의 내용보다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한편 여기에서 역대기와 열왕기에 나타난 기록상의 중요한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열왕기에서는 우상을 제거하는 일이 보다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역대기에서는 종교 의식적인 면이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하 34장 유다 왕 진노의 불길을 잠시 멈춘 요시야왕
역대하 34장 1-역대하 34장 33
요절 역대하 34장 2.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의 조상 다윗의 길로 걸으며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고
역대하 34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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