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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역대하 33장 강해1 뒤늦게 깨달은 므낫세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9-16 00:00:00
조회수 : 4,10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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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3장 강해 뒤늦게 깨달은 므낫세
역대하 33장 1-역대하 33장 25
요절 역대하 33장 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므낫세는 뒤늦게 철이 들었습니다. 그는 악의 종합세트와 같은 자입니다. 그러나 뒤늦게 회개하고 새로운 길을 걸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죄를 용서하여주셨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하여 하나님이 슬퍼하시고 다른 사람이 고통한 것을 생각하면 안타깝습니다. 우리는 가능한한 빨리 회개해야합니다. 아멘!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므낫세)

“1. 므낫세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오십오 년 동안 다스리며 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히스기야는 연장된 15년 동안 아들을 낳았습니다. 므낫세가 12살 때 왕이 되었습니다. 이로 볼 때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생명을 연장받은 15년 동안의 기간에 태어난 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히스기야가 15년간의 생명을 연장받은 때로부터 제3년째 태어난 셈입니다(왕하 20:6). (왕하 21:1)에는 므낫세 모친의 이름이 나는 그녀 안에 있다란 뜻의 헵시바였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쉰다섯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는, 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의 역겨운 풍속을 따랐습니다 3-7절에서 보듯 므낫세는 본래 가나안 원주민들이 숭배하던 가중한 것들을 받아들이고 직접 악을 시행했습니다(28:3 왕하 16:3 17:8, 11).

(바알과 아세라 상을 만듬)

“3.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을 다시 세우며 바알들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모든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첫째 그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오히려 다시 세우고, 바알들을 섬기는 제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들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바알을 가리키는 히브리어 원어는 복수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병행 구절인 왕하 21:3에는 바알과 아세라 목상 둘 가다 단수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표현 뒤에 아합의 소위(所爲)를 본받아라는 설명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이로 볼 때 열왕기 기자는 구체적인 어떤 바알상과 아세라 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역대기 저자는 바알들이란 표현으로 가나안인들의 신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17:3), 저자는 아세라 목상은 따로 구별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14:3, 아세라는 가나안 땅에 있던 어떤 신들 중 하나로 우가릿 문서에는 바라의 여신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 신은 가나안 뿐만 아니라 고대 근동의 여러 지방에서 숭배되었는데 남부 아라비아인들에게는 엘(El) 신의 배우자로, 아람인들에게는 여인의 출산과 관련된 신으로 이해 되었습니다. 므낫세는 또한 하늘의 별을 숭배하여 섬겼습니다.
해, 달, 별들과 같은 천재들을 숭배하는 것은 고대 이방 종교에서 널리 볼 수 있는 현상입니다. 이 같은 천체 숭배가 남유다와는 달리 북 이스라엘에서는 널리 만연해 있던 것처럼 보입니다(왕하 17:16). 그러나 남유다에도 바알과 아세라 일월 성신(日月星辰) 숭배가 아하스 때 처음으로 소개되어(왕하 23:12) 므낫세 때에 비로소 널리 유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율법에서는 이런 것들을 숭배치 말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신 4:19 17:3). 학자들은 앗수르의 영향 때문에 므낫세가 일월성신을 숭배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성전에 우상의 단을 쌓음)

“4. 여호와께서 전에 이르시기를 내가 내 이름을 예루살렘에 영원히 두리라 하신 여호와의 전에 제단들을 쌓고 5. 또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둘째 므낫세는 성전에 우상의 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주께서 일찍이 "내가 예루살렘 안에 내 이름을 길이길이 두겠다" 하고 말씀하신 주의 성전 안에도 이방 신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한 곳을 택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이 이미 신 12:14에 나타나 있습니다(6:6 7:16 왕상 8:16 9:3). 그는 여호와의 전에 바알 주상들과 다른 이방 신들의 우상들을 세웠습니다. 여기서 므낫세는 단지 우상들을 숭배함으로 여호와를 배교했을 뿐만 아니라 보다 더 사악하게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이 같은 므낫세의 행동을 여호와의 주권적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여호와의 신앙(신 5:7)에 대한 반항이라고 이해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의 성전 안팎 두 뜰에도 하늘의 별을 섬기는 제단들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성전 안팎은 성전의 안뜰과 바깥뜰을 말합니다. 여기서 안뜰을 다른 말로 제사장의 뜰이라고 칭하기도 합니다.

(자녀를 불살라 바침)

“ 6.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그의 아들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또 점치며 사술과 요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으며”

셋째 자녀를 우상에게 제물로 바쳤습니다. 아들들을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번제물로 살라 바쳤습니다. 아하스가 처음으로 한 죄를 반복하여 하였습니다. 여기서 아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세우다, 짓다, 건축하다를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복수형입니다. 아하스의 이 같은 범죄를 언급하고 있는 28:3에서도 아들을 복수로 언급하고 있고, 왕하 16:3에는 단수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므낫세는 한 아들만을 희생 제물로 바쳤을 것이라는 생각이 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입니다. 역대기에 나타난 복수형을 저자의 사상을 자연스런 방법으로 기술하기 위한 수학적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는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게 하였습니다.
점(soothsaying)에 대해서는 성경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습니다(레 19:26 사 2:6 렘 27:9 미 5:12).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를 구름 또는 하늘이란 뜻의 어근 )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또 눈이란 어근에서 파생돤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것은 점치는 행위가 구름의 현상들을 눈으로 보고 해석하는 것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학자들은 이 단어가 뱀이 내는 쉿하는 소리 또는 목이 쉰 거친 소리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든 이같은 점치는 행위에 대해서 성경은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출 22:18 레 20:6, 27 신 18:14). 그는 마술사를 시켜 마법을 부리게 하였습니다. 마법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어근 나하쉬가 뱀을 뜻하는 나하쉬와 비슷합니다. 어근이 이와 같이 비슷한 것은 마술사가 내는 소리가 뱀의 소리와 유사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창 44:5, 15에서 요셉은 컵으로 점을 쳤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은 당시 애굽에서 유행했던 것으로서 아마 컵에 담은 물의 파장이나 빛의 굴절을 보고 예언하는 점인 듯이 보입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사술이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어떤 징조를 보기 위한 점술을 뜻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습니다(레 19:26). 사술에 해당하는 동사의 의미는 두 가지로 설명이 됩니다.
(1) 풀잎이나 약초를 자른다는 의미로 설명되는 경우입니다. 요술의 행위를 약초나 마법의 풀을 잘게 부수어 끓여서 마법의 물을 만든 뒤에 무당과 같이 신적 행위를 하며 사용하는 점술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2) 주문을 속삭이다, 흐리다, 마술을 걸다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요술의 행위를 상대에게 주문을 걸어 청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율법(신 18:10-12)은 철저히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는 악령과 귀신들을 불러내어 묻곤 하였습니다. 이는 일반적으로 위에서 언급한 점, 사술, 요술등을 사용하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신접자는 접신술(接神術)을 하는 사람, 곧 죽은 자와 교통하는 자를 가리키고, 박수는 남자 무당을 가리킵니다. 삼상 28:8에 신접한 여인이 나오고, 행 16:16 이후에도 귀신들린 여자가 점을 친 사실이 언급되어 있음을 보아 이러한 자들은 유대인들이 생활 깊숙히 침투해 들어 왔었던 것 같습니다. 므낫세 또한 이런 사람들을 곁에 두고 수시로 자문을 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많이 하여, 주께서 진노하시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김)

“7.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전에 세웠더라 옛적에 하나님이 이 성전에 대하여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에 내 이름을 영원히 둘지라 8. 만일 이스라엘 사람이 내가 명령한 일들 곧 모세를 통하여 전한 모든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행하면 내가 그들의 발로 다시는 그의 조상들에게 정하여 준 땅에서 옮기지 않게 하리라 하셨으나”

넷째 하나님의 경고를 어겼습니다. 므낫세는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목상을 하나님의 성전 안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왕하 21:7에는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목상은 아세라 상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목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닮다란 뜻의 어근에서 유래한 용어로 우상, 형상을 뜻합니다(신 4:16 겔 8:3). 그러므로 28:2의 부어 만든 우상과는 구별됩니다. 그래서 아로새긴 상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로 새기다, 조각하다를 뜻하는 용어에서 유래한 단어를 쓴 것입니다.
일찍이 하나님이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이 성전을 두고 말씀하실 때에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가운데서 선택한 이 성전과 예루살렘 안에 영원히 내 이름을 두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내가 명한 말, 곧 모세를 시켜 전한 율법과 율례와 규례를 지켜 그대로 하면, 내가 그들을 그들의 조상에게 준 이 땅에서 결코 쫓아내지 아니하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땅에 관한 하나님의 언약(삼하 7:10)으로서 율법을 지켜 행하면 축복을 영원히 주십니다. 이것은 유다의 백성들에게 율법에의 순종만이 요구됨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신12:10 수 21:44). 그러나 므낫세는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다를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게 하는 단초를 마련하였습니다.

(더욱 심하게 죄를 지음)

“9.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므낫세의 꾀임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모든 나라보다 더욱 심하였더라”

그런데 므낫세는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을 꾀어서, 악행을 저지르게 하였습니다. 므낫세는 신정 왕국인 유다의 최고 통치자로서 자신이 마땅히 참 여호와 신앙을 준수하는 모범을 백성들에게 보였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우상을 숭배해 섬겼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행위를 백성들이 본받도록 강요함으로써 자신의 범죄를 가중시켰습니다. 이로써 유다는 바벨론의 침입을 받았으며 므낫세 자신도 바벨론으로 잡혀가게 되었습니다. 흔히 지도자들의 타락은 그 자신 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기에 몰아 넣습니다.
실례로 르호보암의 타락은(12:1) 애굽 왕 시삭의 침입을 초래했으며(12:2-12), 여호람은 자신의 사악함으로 인해(21:4-6) 에돔과 립나의 반역을 당했습니다(21:8-10). 그러므로 국가나 교회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지도자는 공의로 백성들을 통치하기에 전력을 다해야 합니다. 그들이 저지른 악은, 본래 이 땅에 살다가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주께 멸망당한, 그 여러 민족이 저지른 악보다 더욱 흉악하였습니다 유다에 죄가 관영하는 심판의 때가 찼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러한 유다의 죄악과 배반을 회상시켜 바벨론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보여 줌으로써 하나님 앞에 더욱 신실한 백성이 되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 글을 썼을 것입니다.

(바벨론에 코갈고리로 끌려가 므낫세]

“10. ○여호와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이르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므로 11.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의 군대 지휘관들이 와서 치게 하시매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고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간지라”

주님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않았습니다. 왕하 21:10-15과 연관시켜 생각해 보면 여호와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들에게 심판의 말씀을 전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므낫세의 통치 기간(B.C.697-642)에 어떤 선지자가 활동했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이사야가 전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므낫세는 이사야를 톱으로 죽인 왕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열왕기와 비교해서 본절을 이해할 때,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방법으로, 또는 익명의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선포되었음이 분명합니다(왕하 21:10).
한편 11절은 므낫세가 바로 그 경고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형벌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앗시리아 왕의 군대 지휘관들을 시켜, 유다를 치게 하시니, 그들이 므낫세를 사로잡아 쇠사슬로 묶어, 바빌론으로 끌어 갔습니다. 앗수르 왕은 에살핫돈(B.C.681-669)이거나 그의 아들 앗술바니팔(B.C.669-626)일 것입니다. 그러나 므낫세가 바벨론으로 끌려간 때를 B.C.648년으로 추측해 보면 여기에 언급된 앗술 왕은 앗술바니팔이 틀림없습니다. 이 때는 바벨론에서 4년 동안 지속되던 형제들의 반란을 앗술바니팔이 진압하던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로잡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유일하게 여기서만 언급되고 있습니다. 야생동물의 코를 꿰어 끌고 가듯 므낫세를 그렇게 다루었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사로답다의 원형은 찌르다라는 뜻의 어근에서 유래한 용어로 가시 고리, 고기를 끌어내는 갈고리를 뜻하기 때문입니다.
대영 박물관에 보관된 앗수르 시대의 부조(浮彫)에서 당시 앗수르 왕들이 때때로 포로들의 코에 갈고리를 꿰고 끌고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문자적인 의미로 므낫세의 코를 갈고리로 꿰고 또 쇠사슬로 결박하여 끌고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겸손히 기도한 므낫세)

“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13. 기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의 기도를 받으시며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그가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다시 왕위에 앉게 하시매 므낫세가 그제서야 여호와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알았더라”

므낫세는 고통을 당하여 주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간구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구문의 문자적인 의미는 여호와의 면전(面前)에서 애걸하다. 신음하여 앓다, 자비를 구하다 혹은 여호와의 얼굴을 어루만지다 입니다(출 32:11 삼상 13:12 왕상 13:6 단 9:13). 이처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환난을 통해 겸비하게도 하시며 간구케 하셔서 당신의 품으로 돌아오게 하십니다. 그는 조상의 하나님 앞에서 아주 겸손해졌습니다. 그가 주께 기도하였습니다. 주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고, 그 간구하는 것을 들어 주셨습니다. 므낫세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다시 왕이 되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제서야 므낫세는 주님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라고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므낫세는 여호와를 이방신들과 동일하게 여겼지만 그가 그제서야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욥과 비교해 볼 때 그 신앙의 차원은 다르지만 이것을 계기로 하여 므낫세는 지금까지의 정책을 바꾸어 일대 개혁을 단행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은 여호와를 참하나님으로 깨달을 때만이 진정한 신앙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유다를 개혁한 므낫세]

“14. ○그 후에 다윗 성 밖 기혼 서쪽 골짜기 안에 외성을 쌓되 어문 어귀까지 이르러 오벨을 둘러 매우 높이 쌓고 또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에 군대 지휘관을 두며 15. 이방 신들과 여호와의 전의 우상을 제거하며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산에와 예루살렘에 쌓은 모든 제단들을 다 성 밖에 던지고“

14-17절에는 므낫세가 성벽을 확장하여 세우고 우상을 제하며 그 단을 파괴하는 등의 개혁을 시행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종교 개혁은 앞에서 언급된 므낫세의 회개와 관련된 것으로 그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은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의 이러한 내용이 열왕기에는 언급되지 있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에, 므낫세는 다윗 성 밖, 기혼 샘 서쪽 골짜기의 한 지점에서 물고기 문에 이르기까지, 외곽 성을 쌓아 오벨을 감싸고, 그 성벽 높이를 한껏 올려 쌓았습니다. 므낫세가 외성(外城)을 쌓은 사실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히스기야가 쌓은 외성(32:5)을 다시 더 확장하고 높게 쌓아 그 공사를 마무리 한 것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므낫세가 새로 다른 외성을 쌓은 것을 가리키는지 분명치 않습니다. 기혼 샘 서쪽 골짜기는 다윗성의 서편에 있는 골짜기, 즉 다윗 성과 그 아래 성 사이에 있는 골짜기입니다. 물고기문어귀는 느 13:16에도 암시적으로 언급되어 있는 이 문은 예루살렘 성전의 북쪽 방향에 있습니다 여기서 오벧은 작은 산, 또는 언덕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의 원뜻은 부풀다, 치켜 올리다에서 유래한 둔덕, 성채, 튼튼한 요새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므낫세는 성의 서쪽에서부터 북쪽 생선문 어귀까지 언덕을 쌓고 언덕을 이용하여 성을 아주 높이 쌓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므낫세는 내성(內城)인 예루살렘 이외에 외성(外成)까지 쌓아서 방비벽을 이중으로 구축하여 앗수르의 침입에 대비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또 유다의 요새화된 성읍에 군대 지휘관들을 배치하였습니다. 그는 또 성전 안에 있는 이방 신상들과, 그가 가져다 놓은 목상들을 없애 버리고, 주의 성전이 서 있는 산에다 만들어 놓은 이교의 제단과, 예루살렘 곳곳에 만들어 놓은 이교의 제단을, 모두 성 밖으로 가져다 버렸습니다. 우상들은 므낫세에 의해 완전히 제거되어 성밖에 버리워졌습니다. 왜냐하면 던지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멀리 던지다, 아래로 던지다, 밖으로 세게 던지다를 가리킵니다.
이와 더불어 제하여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원형은 쫓아버리다, 치우다, 잡아 찢다란 의미를 갖습니다. 므낫세는 우상들을 여호와의 전에서 옮겨 밖에 버리기는 하였으나 완전히 부수고 빻지는 않았습니다. 사악한 므낫세의 아들 아몬이 다시 그것들을 제자리에 세웠기 때문에 요시야 때 가서야 비로소 완전히 부수어 지고 태워졌습니다.

(여호와께 제사를 드림)

“16. 여호와의 제단을 보수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제단 위에 드리고 유다를 명령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하매 17. 백성이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렸으나 아직도 산당에서 제사를 드렸더라”

므낫세는 주의 제단을 다시 고쳤습니다. 므낫세가 번제단을 다시 세웠습니다. 여기서 중수하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의미는 세우다 고정시키다로서 다시 건축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므낫세가 번제단을 언제 제거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이에 대한 본절의 의미를 축소하여 수리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합니다. 므낫세는 아하스 왕이 했듯이(왕하 16:14) 일월성신을 위하여 여호와의 전 두 마당에 단을 쌓을 때에 번제단을 다른 곳으로 옮겼을 것이 분명합니다다(5절). 그래서 므낫세는 이 번제단을 본래의 자리에 되세우는 것을 개혁의 큰 성과로 생각하고 실행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일부의 성경 번역본들이 이를 세우다라고 옮기고 있습니다(공동 번역, 세워 Living Bibble, rebuil).
므낫세는 화목제와 감사제를 그 제단 위에서 드렸습니다. 그는 유다의 모든 백성에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비록 백성이 여전히 여러 산당에서 제사를 드리기는 하였으나, 그 제사는 오직 주 그들의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만을 섬기라고 한 므낫세의 명령을 제대로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므낫세의 명령 때문에 겉으로는 여호와만을 섬겼으나 실제로는 중앙 성소에서 예배드리지 않고 옛적 산당 예배를 다시 부활시켰습니다. 므낫세의 개혁이 철저하지 못했습니다. 백성들로 하여금 중앙 성소에서 예배드리도록 적극적으로 장려하지 못하고 산당에서 예배드리는 것을 그냥 방치하였습니다. 장기간의 우상 숭배로 말미암아 백성들을 참여호와 신앙으로 회복시키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므낫세가 B.C. 697년에 즉위하여 B.C. 650년경 앗수르의 포로로 끌려가기까지 약 반세기 동안 우상 숭배를 적극적으로 강요했었기 때문에 당연히 백성들은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백성들의 악습을 6년이라는 짧은 기간의 개혁으로 고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비록 므낫세가 여호와께 회개하고 종교 개혁을 실시했다고는 하나 한번 우상 숭배에 빠졌었기 때문에 그의 참된 명령은 백성들로부터 큰 신뢰를 받지 못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예배의 중앙 집중화는 붕괴되고 산당 예배가 활상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므낫세의 남은 사적)

“18. 므낫세의 남은 사적과 그가 하나님께 한 기도와 선견자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권한 말씀은 모두 이스라엘 왕들의 행장에 기록되었고 19. 또 그의 기도와 그의 기도를 들으신 것과 그의 모든 죄와 허물과 겸손하기 전에 산당을 세운 곳과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세운 곳들이 다 호새의 사기에 기록되니라”

므낫세의 나머지 일들과, 그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바친 기도는 이스라엘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하 21:17에는 므낫세의 기도에 대한 언급이 없고 다만 선지자의 권고한 말씀만을 왕하 21:10-15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열왕의 행장(行狀)은 좀더 현대적인 감각에 의해서 의역하면 이스라엘 왕조 실록(공동 번역)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영어 역본들은 이것을 이스라엘 왕들의 연대기 혹은 역사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Living, NIV, the Annals of the kings of Israle RSV,the chronicles of the kings of Israel). 선견자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받들고 권면한 말씀도 모두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기도를 드린 것과, 하나님이 그 기도를 받으신 것과, 그가 지은 모든 죄와 허물과, 그가 겸손해지기 전에 산당을 세운 여러 장소와,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세워 둔 여러 곳들이, 모두 호새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므낫세의 죽음)

“20. 므낫세가 그의 열조와 함께 누우매 그의 궁에 장사되고 그의 아들 아몬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므낫세가 죽어서 그의 뭇 조상과 함께 잠드니, 그의 궁에 장사하였습니다. 왕하 21:18에서는 보다 정확하게 웃사의 동산에 장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자 아몬이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 아몬]

“21. ○아몬이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이 세라 예루살렘에서 이 년 동안 다스리며 22. 그의 아버지 므낫세의 행함 같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하여 섬겼으며”

아몬이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물두 살이었습니다. 22살에 왕이 된 것을 볼 때 아몬의 아들 요시야(B.C. 640-609)는 결국 아몬이 16세 때 낳은 아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왕하 21:19에는 아몬의 모친이 욧바 하루스의 딸 므술레멧이라고 기술되어 있으나 본서에서는 밝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 모친이 이방 여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왕하 21:9 주석 참조).
아몬은 예루살렘에서 두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아몬은 이때에 므낫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므낫세가 오랜 기간 동안 (B.C. 697-642) 통치한 것과는 달리 그는 단 2년간이라는 짧은 기간만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 므낫세가 초기에 행한 것처럼, 주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만든 아로새긴 모든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며 섬겼습니다. 아몬이 므낫세가 제하여 버린 바로 그 우상을 다시 세우고 섬겼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15절 주석 참조). 페인은 이같은 기록이 므낫세가 우상을 파괴시키지 않았으며, 예루살렘에만 개혁을 집중시켜 오히려 우상 숭배를 분산시켜 행케 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합니다.

(반역자에게 죽은 아몬)

“23. 이 아몬이 그의 아버지 므낫세가 스스로 겸손함 같이 여호와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지 아니하고 더욱 범죄하더니 24. 그의 신하가 반역하여 왕을 궁중에서 죽이매 25. 백성들이 아몬 왕을 반역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의 아들 요시야를 대신하여 왕으로 삼으니라”

그의 아버지 므낫세는 나중에 스스로 뉘우치고 주 앞에서 겸손해졌으나, 아몬은 주 앞에서 스스로 겸손할 줄도 몰랐습니다. 저자는 앞에서 언급된 므낫세의 겸비함(12절)과 비교했을 때 아몬은 전적으로 겸비치 아니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명백히 나타냅니다.
므낫세가 앗수르에 조공을 바치며 친 앗수르 정책을 펼쳤듯이 아몬도 마찬가지로 부친과 같은 정책을 취했습니다. 그리고 아몬은 아마 부친 므낫세의 종교 개혁이 친 앗수르 정책에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판단하여 계속 우상 숭배를 장려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겸비치 아니했다는 본서 저자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몬은 므낫세보다 오히려 더 죄를 지었습니다. 결국 신하들이 그를 반역하고, 궁 안에 있는 왕을 살해하였습니다.
아몬은 요아스와 아마샤처럼 신복들의 반역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24:25, 26 25:27). 그런데 어떤 학자는 그 신복들이 친애굽 세력이기 때문에 애굽의 사주(使嗾)에 의해 아몬을 죽였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그 땅의 백성은 아몬 왕을 반역한 신하들을 다 죽이고, 아몬의 뒤를 이어서 그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국민이 왕의 권위에 대하여 절대적인 충성심 갖고 있는 일반 백성이라고 봅니다. 국민은 다윗 왕조의 회복을 갈망하는 유다 백성을 지칭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왕하 21:24 주석 참조). 므낫세는 유다의 추방과 회복을 암시합니다.
역대하 33장 강해 뒤늦게 깨달은 므낫세
역대하 33장 1-역대하 33장 25
요절 역대하 33장 12.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 크게 겸손하여
역대하 33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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