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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역대하 32장 강해1 히스기야의 위기 극복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9-14 00:00:00
조회수 : 3,101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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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32장 강해 히스기야의 위기 극복
역대하 32장 1-역대하 32장 32
역대하 32장 7.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을 위협함]

“1.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

히스기야 왕이 이렇게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기고 난 뒤에,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유다로 쳐들어왔습니다. 히스기야 종교 개혁을 실시한 이후로 앗수르의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하였음을 보여 줍니다. 이 때는 히스기야 즉위 14년째의 일이었습니다 사르곤의 아들인 산헤립이 유다를 침공한 것은 B.C. 701년이었습니다
산헤립은 요새화된 성읍들을 공격하여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진을 쳤습니다. 왕하 18:13에서는 산헤립이 이 성읍들을 쳐서 취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앗수르 비문에 의하면, 이때에 앗수르가 유다를 쳐서 취한 유다 성읍의 수가 46개라고 합니다. 열왕기 기자는 이 사실과 함께 히스기야 왕이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많은 뇌물을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왕하 18:13-16), 역대기 기자는 자신의 의도에 맞추려고 이 사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히스기야에게 불리한 평가를 내리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를 도우셨는가하는 측면에서 기록하고자 했습니다.

(물근원을 막고 성벽을 건축함)

“2.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을 보고 3. 그의 방백들과 용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그들이 돕더라”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결국은 예루살렘까지 칠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산헤립에게 뇌물을 주고 나서, 그 뇌물이 아무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또 다른 조치를 취했습니다.(왕하 18:13ff). 그 조치는 예루살렘 성안에서 방어 자세를 계속 견지하는 것이었습니다(3-8절). 히스기야는 대신들과 장군들을 불러서, 성 밖에 있는 물줄기를 메워 버릴 것을 의논하였습니다. 이와같이 히스기야 왕은 나라의 중대사를 독단적으로 처리하지 않고 방백들이나 백성들과 의논하여 처리하는 자상한 면을 갖고 있었습니다(30:2). 그들은 왕의 계획을 지지하였습니다 여기서 막고자 하매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막다(shut up), 은닉하다(conceal)라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쪽 방향에서 물을 막아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지하 수로를 만들어 기혼 샘물을 다윗 성 안으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수로를 만든 히스기야)

“4. 이에 백성이 많이 모여 모든 물 근원과 땅으로 흘러가는 시내를 막고 이르되 어찌 앗수르 왕들이 와서 많은 물을 얻게 하리요 하고 5. 히스기야가 힘을 내어 무너진 모든 성벽을 보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고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모든 샘과 들판으로 흘러 나가는 물줄기를 막았습니다. 앗시리아의 왕들이 진군하여 오더라도 물을 얻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습니다. 이때에 히스기야가 수로를 만들어 기혼 샘물을 성안으로 끌어들인 것은(30절) 앗수르 왕들이 예루살렘 성 외곽지에서 물을 얻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앗수르 왕들이란 복수형을 쓰고 있는데, 28:16에서도 동일하게 복수형을 쓰고 있습니다(단, 한글 개역 성경에는 단수로 표기되어 있음). 앗수르와 동맹을 맺고 있던 동맹국들(왕하 19:12, 13)의 왕들을 지칭하는지 것 같습니다. 히스기야는 힘을 내어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고, 망대들도 높이 쌓고, 성벽 밖에다 또 한 겹으로 성벽을 쌓았습니다.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한 요새로 만들고, 창과 방패도 많이 만들었습니다. 히스기야가 예루살렘 성을 방비하기 위하여 용기를 내고 최선을 다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하였습니다.
요아스 때에 에브라임 문에서 모퉁이 문까지 약 400규빗의 무너진 성벽(25:23)은 웃시야(26:9)와 요담(27:3)에 의해서 대부분 수리되었지만, 히스기야는 산헤립의 침략에 대비하여 다시 한번 허술하거나 무너진 성벽을 수리했습니다. 그는 성벽 위에 망대를 쌓았습니다 히스기야는 성벽을 보수하고 그 위에 망대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외침을 방어하는 데 용이하도록 또 한겹의 성벽을 외부에 쌓았습니다. 이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는 예루살렘 남동쪽 실로암 못을 둘러 싸고 있는 외벽의 잔재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연대가 히스기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군지휘관을 격려함)

“6. 군대 지휘관들을 세워 백성을 거느리게 하고 성문 광장에서 자기 앞에 무리를 모으고 말로 위로하여 이르되 7.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군대를 지휘할 전투 지휘관들을 임명한 다음에, 군대를 성문 광장에 불러모으고, 격려하였습니다. 본절이 어느 성문을 가리키고 있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29:4에서 언급된 동편 광장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히스기야는 그곳에 군대 장관들을 모으고 격려의 말을 하였습니다. 굳세고 담대하라고 합니다. 앗시리아의 왕이나 그를 따르는 무리를 보고,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지도자로 세우시며 용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사용한 말과 같습니다(수 1:9). 이처럼 히스기야가 결연한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것은 아사야의 충고에서 큰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사 37:5-7).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은 앗시리아의 왕과 함께 있는 자보다 더 크신 분임을 믿으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보다 크니 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형용사로서 수가 많은, 또는 강력한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엘리사가 보았던 불말과 불병거(왕하 6:17)를 연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던 듯합니다(출 3:12).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

“8. 그와 함께 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는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하매 백성이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로 말미암아 안심하니라”

앗시리아의 왕에게 있는 것이라고는 군대의 힘뿐입니다. 팔은 흔히 힘(power)을 상징하는데, 여기서의 육신의 팔이란 인간의 보잘 것 없는 힘을 의미합니다(사 31:3 렘 17:5). 그러나 유다인에게는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계십니다. 백성은 유다 왕 히스기야의 말을 듣고, 힘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사야가 말한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임마누엘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사 7:14 8:8, 10). 한편 7, 8절에 나타난 히스기야의 모습은 왕하 18:14-16에 기록된 유다에 대한 산헤립의 1차 침입 때에 보여 준 그의 태도와는 완전히 대조됩니다.
열왕기에 의하면, 산헤립이 라스기까지 쳐들어왔을 때, 히스기야는 굴욕적으로 강화(講和)하여 공물을 바치고 성전문에 입힌 금까지 취해서 다 내주었습니다. 그러나 역대기 제자는 이 사실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고 히스기야의 의연한 모습만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역대기 기자가 역사가로서 자신의 관점을 가지고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섬겼던 왕임을 부각시키려 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나름대로의 신학적인 관점을 가지고, 히스기야의 여호와 신앙을 통하여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면 담대할 수 있고, 무슨 일이든지 가능할 수 있음(빌 4:13)을 보여 주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과 히스기야에 불신을 심는 산헤립)

“9. ○그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그의 온 군대를 거느리고 라기스를 치며 그의 신하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유다 왕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무리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0. 앗수르 왕 산헤립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예루살렘에 에워싸여 있으면서 무엇을 의뢰하느냐”

얼마 뒤에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와서 자신은 온 군대를 거느리고 라기스를 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물론 산헤립의 예루살렘 침공에 대비해서 히스기야 왕이 백성들의 마음을 단단히 무장시키고 난 이후를 가리킵니다. 앗수르가 라기스를 정복하고 예루살렘 성까지 올라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왕하 18:17). 그는 자기 부하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유다의 히스기야 왕과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산헤립은 자신의 수하에 있던 장군 다르단과 랍사리스와 랍사게를 예루살렘에 보내고(왕하 18:17), 자신은 라기스 부근에 진을 치고 남아 있으면서 근처의 성읍들을 공략하였습니다(왕하 19:8). 앗시리아의 산헤립 왕이 이같이 말합니다. 예루살렘은 포위되었다고합니다. 그런데도 너희가 무엇을 믿고 버티느냐고 합니다. 이는 이미 포위된 상태에서 무엇을 믿고 항거하느냐는 말입니다. 여기서 의뢰하느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신앙적으로 의뢰하는 것을 뜻하는 말과는 달리 눈에 보이는 것을 의지한다는 의미를 지닌 말입니다. 이 말은 유다 백성이 더 이상 의지할 만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으며, 다만 성 안에 갇혀서 기갈에 허덕이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위협이 섞인 회유의 말입니다(왕하 18:27).

(불신을 심는 산헤립)

“11. 히스기야가 너희를 꾀어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하거니와 이 어찌 너희를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함이 아니냐 12. 이 히스기야가 여호와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제거하여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다만 한 제단 앞에서 예배하고 그 위에 분향하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그들을 꾀어, 주 너희의 하나님이 그들을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건져 줄 것이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산헤립의 침입에 대비하여 여호와 유일신앙으로 유다 백성들의 마음을 굳게 하고 실제적으로 물 근원을 막는 등의 대책을 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열왕기에는 앗수르 왕의 신복 랍사게가 히스기야가 애굽 군대의 원조를 청한 사실을 언급함으로써 그의 신앙이 헛것임을 입증하는 구절이 있으나(왕하 18:21), 역대기에서는 히스기야의 진심이 사실상 그렇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생략해버렸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역사적인 사실만을 열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히스기야의 신앙과 하나님의 도우심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애굽에게 지원을 요청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그들을 굶어 죽게 하고 목말라 죽게 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히스기야는 주의 산당들과 제단들을 다 없애 버리고, 유다와 예루살렘에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그는 오직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의 제단 앞에서만 경배하고 그 위에서만 분향하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산헤립은 지금 주림과 목마름으로 죽게 된 마당에(11절) 히스기야의 개혁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합니다. 히스기야의 유일신 사상과 그의 개혁에 대하여 불신을 심으며 산헤립이 공격한 말입니니다(왕하 18:22). 앗수르의 산헤립은 히스기야의 우상 척결을 가리켜 여호와의 산당들과 단들을 제하여 버린 행위였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앗수르 왕의 주장을 통하여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이스라엘 전역에 퍼져 있던 우상들과 단들이 여호의 종교를 표방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가 척결한 우상 중의 하나가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해 줍니다. 이처럼 왜곡된 여호와 신앙으로 인하여, 이스라엘 종교는 하나의 소수 민족이 가진 고유 종교 정도로 밖애 이해되지 않았을 것이고, 유일신 신앙이 타락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히스기야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한 분 하나님을 섬기는 여호와 신앙(신 6:4)을 회복하기 위해 종교 개혁을 시도했고, 이러한 종교 개혁이 앗수르 제국을 반역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산헤립은 그러나 지금 그렇게 했어도 앗수르의 포위를 당하여 굶어죽게 되었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합니다.

(앗수르의 침략을 정당함)

“13. 나와 내 조상들이 이방 모든 백성들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모든 나라의 신들이 능히 그들의 땅을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었느냐 14. 내 조상들이 진멸한 모든 나라의 그 모든 신들 중에 누가 능히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내었기에 너희 하나님이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지겠느냐”

산헤립과 그의 선왕들이 이 세상의 모든 백성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 합니다. 그 여러 나라의 신들이 과연 그 땅을 산헤립의 손에서 건져 낼 수 있었느냐고 묻습니다. 여러 나라의 신은 구체적으로 앗수르 군대에 의해 정복 당한 하맛, 아르밧, 스발와임, 헤나, 아와의 신들을 가리키는데, 이것들은 북이스라엘에서 숭배하던 우상들입니다(왕하 18:34).
여기서 앗수르 왕 산헤립은 히스기야의 하나님 여호와도 결국 열방의 신들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만들어낸 신에 불과하다고 단정 짓고 있습니다 산헤립의 선왕들이 전멸시킨 그 여러 나라의 그 여러 신들 가운데서, 누가 그 백성을 산헤립의 손에서 건져 낼 수 있었기에, 그들의 하나님이 그들을 산헤립의 손에서 건져 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습니다. 이는 결국 여호와에 대한 신앙만으로는 앗수르를 대항할 수 없다는 단정적인 표현입니다. 여호와는 의뢰할 만한 신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10절). 여기서 앗수르인들이 가지고 있던 신(神)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는데, 랍사게를 비롯한 앗수르인의 신앙은 지금까지의 체험에 기초한 것입니다. 따라서, 앗수르인들이 섬긴다고 하는 신이란 외형적인 현상으로 파악이 가능하고, 변화하는 유한한 존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15. 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꾀임을 받지 말라 그를 믿지도 말라 어떤 백성이나 어떤 나라의 신도 능히 자기의 백성을 나의 손과 나의 조상들의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였나니 하물며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겠느냐 하였더라”

그러니 유대인들은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고 합니다. 그의 꾀임에 넘어가지 말라고 합니다. 그를 믿지도 말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에 대한 불신을 심습니다. 어떤 백성이나 어떤 나라의 신도 그 백성을, 산헤립의 손에서, 앗수르 선왕들의 손에서, 건져 낼 수 없었다고 합니다. 하물며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겠느냐고 묻습니다.
랍사게가 전한 앗수르왕 산헤립의 말(10-15절 왕하 18:19-35)을 결론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결국, 산헤립의 논지는 자신의 앗수르 제국이 모든 나라를 차지했는데, 히스기야만이 유별나게 여호와 신앙을 주장하는데, 히스기야가 그렇게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산헤립의 희롱 속에는 결과적으로 히스기야가 지닌 신앙의 특성과 위대함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특히 히스기야가 가진 유일신 신앙과 보이는 것에 의지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뢰하는 믿음이 돋보입니다.

(하나님께 불신을 심다)

“16. ○산헤립의 신하들도 더욱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종 히스기야를 비방하였으며 17. 산헤립이 또 편지를 써 보내어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욕하고 비방하여 이르기를 모든 나라의 신들이 그들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한 것 같이 히스기야의 신들도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하리라 하고”

산헤립의 부하들은 주 하나님께, 그리고 주의 종 히스기야에게 더욱 비방하는 말을 퍼부었습니다. 산 헤립은 히스기야를 비방한 반면(10-15절), 신복들은 히스기야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비방의 대상으로 첨가 되었습니다. 또한 히스기야에게 그의 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히스기야를 비방한 것은 바로 여호와를 비방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역대기 기자는 이해하였습니다. 위에 기록된 산헤립의 전갈 외에 산헤립의 신복까지 여호와 하나님과 그 종 히스기야를 비방했습니다. 그는 여러 나라의 신들이 자기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하여 내지 못한 것 같이, 히스기야의 하나님도 그의 백성을 내 손에서 구원해 내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역대기 저자가 풍부한 자료들로부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들을 발췌하여 여기에 기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신복들의 비방하는 말의 내용들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산헤립은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욕하고 비방하는 편지를 써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산헤립은 랍사게와 다른 두 신복들(왕하 18:17)에게 보낸 전갈 이외에 또다른 편지를 급히 보냈습니다. 이와 같이 산헤립이 다시 편지를 보낸 이유는 대개 두가지로 설명되고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랍사게가 비방의 말로써 백성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항복을 유도하였으나, 오히려 히스기야와 그의 백성의 신앙은 더욱 견고해져 강력한 저항이 예상되었기 때문입니다(왕하 19:14-19).
또한 다른 이유는 구스 왕 디르하가의 공격으로 인하여(왕하 19:9), 산헤립의 마음이 다급해져 유다를 조기(早期)에 항복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을 비방하다)

“18. 산헤립의 신하가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 질러 예루살렘 성 위에 있는 백성을 놀라게 하고 괴롭게 하여 그 성을 점령하려 하였는데 19. 그들이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비방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세상 사람의 신들을 비방하듯 하였더라”

산헤립의 부하들은 예루살렘 성 위에 있는 백성을 보고 유다 말로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산헤립의 신하 랍사게가 유다 방언으로 크게 소리 질러 이야기함으로써, 성안의 백성들을 놀라게 하고 괴롭혔기 때문에,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랍사게에게 유다 방언으로 말하지 말고 아람 방언으로 말할 것을 요청한 사실이 열왕기에 나타납니다(왕하 18:26-28). 그는 백성을 두렵게 하고 괴롭게 하면서, 그 성을 점령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두고 말하기를, 마치 사람이 손으로 만든 세상의 다른 나라 백성의 신들을 두고 하듯이 거침없이 말하였습니다.
여기서 역대기 저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와 이방인들의 거짓 신들과 분명한 구별을 짓고 있습니다. 저자는 산헤립과 랍사게의 주장이 잘못된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에도 불구하고, 앗수르 사람들은 이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피조물인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 신들처럼 취급하고자 했습니다.

(기도하는 히스기야와 이사야)

“20.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히스기야 왕과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 예언자가 함께 하늘을 바라보며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구체적인 기도 내용은 왕하 19:15-19에 나타나 있고, 그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왕하19:20-34에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지로서 나타나 있습니다. 열왕기에는 직접적으로 히스기야가 이사야와 함께 기도했다는 표현은 없으나, 히스기야의 요청에 따라 이사야도 함께 기도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왕하 19:2 사 37:2).

(한천사로 산헤립을 치신 하나님)

“21.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주께서 히스기야와 이사야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주께서 한 천사를 보내셔서 앗시리아 왕의 진영에 있는 모든 큰 용사와 지휘관과 장군을 다 죽여 버리셨습니다. 왕하 19:35-37에서는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35절)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데, 이는 본절과 동일한 의미입니다.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라는 표현은 직접적인 신의 현현(顯現)이라기보다는 사자를 통한 여호와의 직접적인 사역을 나타냅니다.
이때 앗수르는 역병(pestilence)에 의해 전멸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들쥐들이 앗수르 군대의 무기들을 갉아 먹었기 때문에 히스기야가 승리했다는 애굽의 전설에 근거한 것입니다. 왕하 19:35에는 단지 군사 십 팔만 오천 명이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대표성이 있는 대장과 장관들까지 특별히 첨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는 앗수르 군대가 전력상 큰 타격을 입게 된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자 한 의도에서 였던 것 같습니다.
앗시리아 왕은 망신만 당하고 자기 나라로 되돌아갔습니다. 얼굴이 뜨뜻하여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수치스런 얼굴로란 뜻입니다. 심한 수치심 때문에 얼굴이 붉어지며 달아오른 것을 의미합니다. 그가 그의 신전으로 들어갔을 때에, 제 몸에서 난 친자식들이 거기서 그를 칼로 죽였습니다. 여기서 그 신의 전이란 니스록 신전을 가리키는데, 니스록은 앗수르의 불신(god of fire) 누스쿠와 동일한 신으로 추측됩니다(왕하 19:37 사 37:38). 산헤립은 이 신전에서 그의 몸에서 난 아들 아드멜렉과 사레셀에 의해 피살되었습니다(왕하 19:37). 앗수르 역사를 살펴보면, 이드람멜렉과 사레셀은 자기들의 부왕을 죽인 죄목으로 아르메니아(아라랏)로 도망가야만 했고, 산헤립의 후계자로서 에살핫돈이 즉위하였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이러한 산헤립의 죽음을 열왕기 기자보다 더 자세하게 기록함으로써 앗수르 왕 산헤립의 죽음이 여호와의 저주에서 기인한 것이고, 이스라엘은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일이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히스기야를 존귀하게 하신 하나님)

“22.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수르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원하여 내사 사면으로 보호하시매 23. 여러 사람이 예물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와서 여호와께 드리고 또 보물을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드린지라 이 후부터 히스기야가 모든 나라의 눈에 존귀하게 되었더라”

이처럼 주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시리아의 왕 산헤립의 손과 모든 적국의 손에서 구하여 내셨습니다. 주께서는 사방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본 구절에서 역대기 기자는 자신의 결론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누리고 있는 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절과 연결시켜 볼때, 여호와께서 히스기야를 보호하신 이유는 그의 모든 충성된 일 때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절은 분명히 여호와께서는 산헤립 뿐만 아니라 어떠한 적국의 침입으로부터라도 유다를 보호해 주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14:6 15:15 20:30).
여러 나라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예물을 가지고 와서 주께 드리고,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선물을 가져 왔습니다. 그 때부터 히스기야는 여러 나라에서 존경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여러 사람이란 유다 근방의 이웃 나라들로부터 찾아온 대사들일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들이 히스기야에게 예물을 가지고 온 이유는 유다가 앗수르의 팔레스틴 진출을 저지시킴으로써 그들도 전쟁의 위험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감사의 표현으로 예물을 가져왔을 것입니다. 또한, 히스기야의 세력이 강해졌음으로 주변 국가들이 히스기야와 평화 조약을 맺으려 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이웃 나라의 예물들을 받은 왕으로서는 솔로몬(9:23, 24)과 웃시야(26:8)가 있습니다.

[히스기야 병의 치료]

“24.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본문은 히스기야의 병과 그의 교만으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 그리고 히스기야의 회개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왕하 20:1-8의 요약적 해석입니다. 그 무렵에 히스기야가 병이 들어 거의 죽게 되었는데, 히스기야가 주께 기도하였습니다. 벽을 향하여 통곡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주께서 그에게 응답하시고, 회복될 것이라고 하는 징조를 보여 주셨습니다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수명을 15년간 연장시켜 주시겠다는 약속의 징표로서 일영표(日影表) 위에 머무른 해의 그림자를 뒤로 10도 물러나게 하셨습니다.(왕하 20:8-11 사 38:8)

(은혜를 잊은 히스기야)

“25.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는 병이 나은 후에 교만해졌습니다. 히스기야가 교만한 마음으로,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가 진정으로 사랑해야 할 것은 그의 부(富)가 아니라 그를 부요케 하며, 그의 생명을 구하여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궁의 보물과 성전의 창고를 부로닥발라단의 사자들에게 내 보임으로써(31절 왕하 20:12, 13 사 39:1, 2), 자신의 교만을 드러내었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내렸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히스기야에게 보내셔서 징벌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히스기야 왕의 모든 보물이 바벨론으로 옮겨지게 될 것이고, 그의 아들 중에 바벨론 왕의 환관이 될 자가 있을 것이라는 진노의 예언이었습니다(왕하 20:16-18 사 39:5-7).

(교만을 뉘우친 히스기야)

“26.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

드디어 히스기야가 교만하였던 자신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도 함께 뉘우쳤습니다. 히스기야가 회개한 사실은 왕하 20:19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한 히스기야의 회개로 말미암아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미 3:12)은 연기되었는데 이 같은 그의 태도야말로 그가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었음을 증거해 주는 실례입니다. 주께서는 히스기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들을 벌하지 않으셨습니다

[히스기야의 부와 영광]

“27. ○히스기야가 부와 영광이 지극한지라 이에 은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보배로운 그릇들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28.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의 산물을 위하여 창고를 세우며 온갖 짐승의 외양간을 세우며 양 떼의 우리를 갖추며”

히스기야는 대단히 부유하게 되었고, 온 천하의 영화를 한 몸에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여호사밧(17:5 18:1)과 솔로몬(1:12), 그리고 다윗 왕(대상 29:28)에게도 쓰였습니다. 본절의 부와 영광이 극하다라는 표현은 선왕(善王)들의 성품과 통치를 나타내주는 전형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는 귀중품 보관소를 만들어서, 은과 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귀중품을 보관하였습니다. 창고를 지어서,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 등의 농산물을 저장하였고, 짐승 우리를 만들어 온갖 짐승을 길렀으며, 양 우리를 만들어 양 떼를 먹였습니다 왕하 20:13에 따르면 히스기야는 여기에 언급된 각종 보물들과 군기고(軍器庫)와 내탕고(內帑庫)를 부로닥발라단의 사자들에게 다 보내어 주었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것들은 주로 이스라엘 땅에서 나는 대표적인 산물들로서 함께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31:5 민 18:12 신 7:13 등). 다윗과 웃시야 때에도 이와같이 풍부한 산물들로 인하여 창고들을 만들었고 온갖 짐승과 양떼를 위하여 우리를 만들었습니다(26:10 대상 27:25). 이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형통케 하신 결과입니다(29, 30절). 본절에 나타난 외양간은 히브리어를 번역한 말로서 원어의 의미는 사료 선반, 혹은 양떼를 위한 우리입니다.

(히스기야에게 주신 복)

“29.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위하여 성읍들을 세웠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심히 많이 주셨음이며 30.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히스기야가 그의 모든 일에 형통하였더라”

히스기야는 또한 성읍들을 더 만들고, 양 떼와 많은 소 떼를 치도록 하였으니, 하나님이 그에게 재산을 그렇게 많이 주셨던 것입니다. 본절의 ''''''''''''''''성읍들''''''''''''''''(*, 아림)은 일반 성읍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소떼와 양떼를 지키기 위한 ''''''''''''''''망대들''''''''''''''''을 가리킵니다. 왕하 17:9에 의하면 가축을 지키는 목동들의 거처인 망대가 성읍 주위에 있었습니다. 본 히브리어 ''''''''''''''''아림''''''''''''''''(*)은 ''''''''''''''''눈을 뜬다'''''''''''''''', ''''''''''''''''잠깨다'''''''''''''''', ''''''''''''''''일어나다''''''''''''''''를 의미하는 ''''''''''''''''우르''''''''''''''''(*)에서 온 것입니다. 이 말은 양떼와 많은 소떼를 지키기 위해 세운 망대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는 바로 부(wealth)의 근원이십니다(대상 29:12). 여기서 ''''''''''''''''재산''''''''''''''''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레쿠쉬''''''''''''''''(*)는 31:3에서 보듯이 많은 소떼와 육축의 소유를 가리킵니다(Keil). 위쪽 기혼의 샘 물줄기를 막고, 땅 속에 굴을 뚫어서, 그 물줄기를 ''''''''''''''''다윗 성'''''''''''''''' 서쪽 안으로 곧바로 끌어들인 것도 바로 히스기야가 한 일입니다. 히스기야는 하는 일마다 다 잘 되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히스기야가 공사했던 수로(水路) 사업을 굉장히 큰 치적 중의 하나로 기록하고 있습니다(3, 4절 참조). 히스기야가 만든 이 수로는 다윗 성의 서쪽 방향으로 곧장 내려가도록 만들어졌는데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된 바에 의하면 그 수로는 높이 60cm-1.5m, 너비 60cm, 총길이 약 520m의 S자형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왕하 20:20). 히스기야가 이처럼 기혼 시냇물을 끌어들여 저장한 데는 두 가지 목적이 있었을 것입니다. 먼저 백성들의 식수 공급입니다 팔레스틴 지방은 연평균 강우량이 500mm 내외인 건조한 지방입니다. 따라서 식수를 확보하기가 용이치 않았습니다. 다음으로 전쟁의 방비용입니다. 3, 4절에 의해 명확히 입증됩니다. 히스기야는 수로를 건설함으로써 외국 군대가 침입했을 때 그들이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도록 하고, 한편으로 우군(友軍)의 식수를 원활히 공급하려고 의도하였습니다.

(히스기야의 심중을 시험하신 하나님)

“31. 그러나 바벨론 방백들이 히스기야에게 사신을 보내어 그 땅에서 나타난 이적을 물을 때에 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의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그러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30절의 마지막 부분인 저의 모든 일이 형통하였더라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따라서 이 접속사 히스기야가 형통한 사실과 본절의 내용이 어떻게 연결되었는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러나는 순접 관계를 보이는 그래서(and thus)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본절의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하게 해 줍니다. 히스기야가 자신의 무궁한 번영을 마음껏 누리고 있을 때에 하나님이 그를 시험하셔서 그를 교만치 않고 겸손하게 만드셨다는 의미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시험하신 것은 그의 형통함을 깨뜨리고 죄에 빠지도록 하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비록 히스기야가 그 시험에 실패하여 교만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를 겸손케 하여 계속 형통함을 누리도록 하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26절). 왕하 19:19에는 후손들에 대한 불행한 예언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받아들인 히스기야의 겸손한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바빌로니아의 사절단이 와서 그 나라가 이룬 기적을 물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의 인품을 시험하시려고, 히스기야가 마음대로 하게 두셨습니다. 바벨론 방백들은 히스기야의 병문안을 위해 보냄을 받았지만(왕하 20:12 이하), 실상 히스기야를 위해 하나님께서 보여 주셨던 천체의 변화에 대해 더 많은 질문을 하였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호와께서 시험을 통하여 히스기야에게 알고자 하셨던 것은 아마 여호와의 행사에 대한 그의 자발적이고 전적인 순종이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순종은 범사에 여호와를 참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입니다(잠 3:6). 이와 유사하게 여호와께서는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을 통하여 진실로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알고자 하셨습니다(창 22:12).

[히스기야가 죽다]

“32. ○히스기야의 남은 행적과 그의 모든 선한 일은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의 묵시 책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33.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온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이 그를 다윗 자손의 묘실 중 높은 곳에 장사하여 그의 죽음에 그에게 경의를 표하였더라 그의 아들 므낫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히스기야 통치 때에 있었던 그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주께 헌신한 일은, 아모스의 아들 예언자 이사야의 묵시록과,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생애 중에 있었던 사건들은 열왕기서와 이사야서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의 환상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본문이 원문이고, 열왕기서의 설명은 이사야를 발췌한 것임을 시사하는 듯합니다(왕하 18:9-20:19 사 36-39장). 전설에 따르면 이사야는 B.C. 697년 12살의 나이로 즉위한 므낫세 왕(B.C. 697-642)의 신복들에 의해서 톱으로 잘려 순교했다는 합니다. 이사야(B.C. 740-681)는 아마도 히스기야보다는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사망으로 그를 계승하여 B.C. 681년에 즉위한 에살핫돈(B.C.681-699)과 관련이 있는 사건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합당한 것 같습니다(사 37:37, 38). 선한 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단순히 경건한 행위, 선한 일을 가리킴과 동시에 하나님을 경외함과 사람에 대한 친절한 행위 모두를 포함하는 말입니다. 이러한 표현으로 평가 받은 사람은 히스기야와 요시야, 느헤미야(느 13:14) 뿐입니다.
이사야의 묵시책은 사 1:1의 말씀과 연결해서 볼 때 이것은 산헤립의 침입과 히스기야의 병에 대한 사실을 포함하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서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히스기야가 죽어 그의 조상과 함께 잠드니, 유다와 예루살렘의 온 백성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를 존경하여 다윗 자손의 묘실 가운데서도 제일 높은 곳에 장사하였습니다. 묘실 중에서 제일 높은 곳, 또는 윗쪽에 장사했습니다. 높은 곳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묘실의 상층부를 의미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그러기에 이는 저의 죽음에 존경함을 표하였더라는 말과 잘 어울립니다(16:14 21:19). 그의 아들 므낫세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역대하 32장 강해 히스기야의 위기 극복
역대하 32장 1-역대하 32장 32
역대하 32장 7. 너희는 마음을 강하게 하며 담대히 하고 앗수르 왕과 그를 따르는 온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이가 그와 함께 하는 자보다 크니
역대하 32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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