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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역대하 27장 강해 1백성과 달리 바른 길을 간 요담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9-07 00:00:00
조회수 : 3,124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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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하 28장 강해 처음부터 끝까지 악한 아하스
말씀 역대하 28장 1-역대하 28장 27
요절 역대하 28장 19절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아하스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는 강대국 앗수르를 의지하고 강대국의 신을 섬겼습니다. 그는 최초로 자신의 아들까지 불살라 죽인 악한 왕이었습니다. 이사야는 이런 아하스의 죄를 책망하였습니다.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지 않은 아하스]

“1. 아하스가 왕위에 오를 때에 나이가 이십 세라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다스렸으나 그의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지 아니하고”

아하스가 왕이 되었을 때에, 그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아하스의 공식적인 통치 기간은 B.C. 735년에서부터 B.C. 716년까지입니다. 아하스 이름은 움켜잡다란 뜻을 지닌 아하즈란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여호아하스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기도 했습니다. 디글랏 빌레셀의 연대표에는 야우하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하스라는 히브리어 이름을 앗수르 식으로 표현해서 그런 것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열여섯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께서 보시기에 올바른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의 조상 다윗이 한 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윗과 같이 여호와를 의뢰하며 통치자가 행할 마땅한 도리를 가져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도모했습니다. 그는 이방신을 섬기며, 이방 나라인 앗수르의 제국적인 힘을 의지하고 있었습니다(16절). 아하스가 자기 자녀를 희생 제사로 드린 사실로 보아 이방의 종교 의식이 도입되었음이 분명합니다(왕하 16:3 주석 참조). 아하스 이전에는 이러한 제사가 언급된 적이 전혀 없고, 아하스 이후에 므낫세가 인간 제사를 시행하였습니다(33:6왕하 21:6). 그리고 유다 말기에도 적잖이 시행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 제사는 여호와께 대하여 악한 행위로 규정되었습니다(왕하 17:1721:623:10시 106:37,38렘7:3119:5겔 16:20,21미 6:7). 모세 율법으로는 사형에 해당되는 가증한 일이었습니다(레 20:1-5).

(우상을 숭배한 아하스)

“2.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3. 또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하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사람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아 그의 자녀들을 불사르고 4. 또 산당과 작은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사를 드리며 분향하니라”

오히려 아하스는 이스라엘의 왕들이 걸어간 길을 걸어갔습니다. 유다는 제사장의 나라요,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아하스는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해 봉사해야 하는 제자상 역할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 왕들이 저질렀던 동일한 배도의 길로 갔습니다. 심지어 바알 신상들을 부어 만들기까지 하였습니다. 아하스는 유다 열왕들 가운데 최초로 우상을 부어 만드는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이러한 아하스의 우상 숭배에 관해서는 사 2:8-18,20에 나옵니다. 또한 그는 유다 왕 가운데 최초로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분향을 하고, 자기 아들을 불에 태워 제물로 바쳤습니다. 왕하 16장에서는 장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하였으며 오늘날의 에르 라바비로 추정됩니다. 여기에서 인간 희생 제사가 시행되었습니다(렘7:31). 그는 주께서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 민족들의 역겨운 풍속을 본받았습니다. 그는 직접 산당과 언덕과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 제물을 잡아, 이방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분향하였습니다.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서라는 말은 열왕기와 예레미야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입니다(신 12:2왕상 14:23왕하 16:417:10렘 2:203:6,13). 그리고 푸른 나무라는 표현은 단순히 나무의 색이 푸르다는 말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상태나 크기에 있어서 멋지고 우람한 나무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자연 숭배를 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아람과 이스라엘에 넘기신 하나님)

“5. 그러므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를 아람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들이 쳐서 심히 많은 무리를 사로잡아 다메섹으로 갔으며 또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기시매 그가 쳐서 크게 살육하였으니”

그리하여 주 그의 하나님께서 그를 시리아 왕의 손에 넘기시니, 시리아 왕이 그를 치고, 그의 군대를 많이 사로잡아 다마스쿠스로 이끌고 갔습니다. 왕하 16:5에는 르신과 베가가 아하스를 이기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난 사실들을 볼 때 유다가 크게 손해를 보았음이 분명합니다. 르신과 베가는 아하스의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까지는 점령하지 못하였지만(사 7:1), 엘랏을 비롯한(왕하 16:6) 많은 성읍들을 점령하고, 유다 백성들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주께서 그를 이스라엘 왕의 손에 넘기시니, 이스라엘 왕이 그를 크게 쳐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아람 왕과 북이스라엘 왕의 공격은 각각 서로 다른 사건처럼 보이지만, 실은 두 나라가 동맹하여 함께 공격한 것입니다. 그러나 공격의 방법이나 시간에 있어서는 서로 다를 수 있으며, 하나의 지휘 체제로 연합하지는 않았습니다. 지형상으로 아람과 북이스라엘은 서로 인접해있었기 때문에 동맹 맺기가 쉬웠을 것입니다.

(하루에 십이만명을 죽임)

“6. 이는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십이만 명을 죽였으며 7. 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는 왕의 아들 마아세야와 궁내대신 아스리감과 총리대신 엘가나를 죽였더라”

이스라엘의 르말랴의 아들 베가 왕이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들을 십이만 명이나 죽였습니다. 역대기만이 이렇게 자세하게 살륙당한 자의 수를 밝히고 있습니다. 역대기 저자가 하루 동안이라는 기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이것이 여호와의 징벌임을 극명하게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혹자는 120,000명을 120엘레프(천)로 나타낼 수 있는데, 이 엘레프란 단어는 특별히 훈련된 용사들 즉 모든 용감한 사람들(all valiant men, NASB)이라고 해석해야 한다고 제안합니다. 따라서, 십 이만 명의 용사가 죽었다는 사실은 매우 타격적으로 중요한 전투력을 상실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이들을 이렇게 치신 것은 유다 사람들이 조상의 주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에브라임의 용사 시그리가 마아세야 왕자와 아스리감 궁내대신과 엘가나 총리대신을 죽였습니다. 시그리는 그 당시 대단한 위세를 떨쳤던 영웅으로서, 특별히 유다와의 전쟁에서 큰 공훈을 세운 이스라엘의 장수였습니다. 왕의 아들 마아세야는 아하스의 아들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20세에 왕위에 오른 아하스가 그의 즉위 1년에 발생한 이 전쟁에서 무기를 들 만한 큰 아들을 두었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입니다. 왕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왕이나 궁전에 속한 어떤 특별한 직책을 가리킵니다.(18:25) 아하스의 삼촌이나 형제라고 추측하기도합니다. 총리 대신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미쉬네 함멜렉을 직역하면 왕의 바로 다음 사람입니다. 이처럼 궁궐의 중요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하는 것은 그 당시 아하스 왕의 신변에 매우 위급한 상황이 닥쳤음을 보여 줍니다.

[이십만 명을 사로잡아간 이스라엘]

“8.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중에서 그들의 아내와 자녀를 합하여 이십만 명을 사로잡고 그들의 재물을 많이 노략하여 사마리아로 가져가니”

이스라엘 군대는 그들의 동족인 유다 사람들을, 아내들과 아이들까지 합쳐 무려 이십만 명이나 사로잡고, 물건도 많이 약탈하여 사마리아로 가져 갔습니다. 유다가 매우 중요한 전투력을 빼앗긴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의 공격이 얼마나 치밀하고 정예화 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유다는 거의 황폐한 지경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선지자 오뎃의 표현 가운데(9절), "노기가 충천하여 살륙하고"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이스라엘 군대의 잔인성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유다에 대해서 이렇게 노를 품고 잔인하게 행한 이유는 짐작컨대 당시 르신과 베가가 앗수르에 대항하기 위해 유다를 동맹에 끌어들이려 했으나 아하스가 이를 거부하고 오히려 앗수르에 대하여 우호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카일은 이러한 북이스라엘 군대의 만행을 에브라임 사람들의 잔인성(왕하 15:16)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미니 포로생활입니다. 아하스의 왕은 성전파괴를 암시합니다.

(오뎃이 사마리아 사람을 책망함)

“9. 그 곳에 여호와의 선지자가 있는데 이름은 오뎃이라 그가 사마리아로 돌아오는 군대를 영접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유다에게 진노하셨으므로 너희 손에 넘기셨거늘 너희의 노기가 충천하여 살륙하고 10. 이제 너희가 또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압제하여 노예로 삼고자 생각하는도다 그러나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

사마리아에 오뎃이라고 하는 주의 예언자가 있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참된 선지자들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사마리아로 개선하는 군대를 마중하러 나가서, 그들을 보고 말하였습니다. 주 그대들의 조상의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에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그대들의 손에 붙이신 것은 사실이라고 합니다. 그대들도 주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북이스라엘을 유다를 징벌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였습니다. 비록 이스라엘이 유다에 승리는 했지만 이스라엘의 승리는 그들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수단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28:10,13).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살기가 등등하여 그들을 살육하였습니다. 북이스라엘 군대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온갖 잔인함으로 무자비하게 살륙을 행하였습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한계를 인식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무관하게 무절제한 살륙을 자행함으로 인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습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여호와의 진노가 임박하였습니다.(11절). 그것도 부족하여, 유다와 예루살렘의 남녀들까지 노예로 삼을 작정을 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이 동족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노예로 삼으려는 북이스라엘의 그릇된 행위에 대해 선지자 오뎃은 혹독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심판자이신 것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심판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함이 없느냐고 반문합니다. 죄인이 죄인을 징벌할 수 있는 심판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마치 간음한 여인을 돌로 치고자 했던 무리들에게 죄없는 자가 돌로 치라는 말씀과 흡사합니다(요 8:1-11). 동족을 노예로 삼으려 한 것은 엄연히 율법에 어긋난 행위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동족을 학대하거나 노예로 삼는 일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레 25:39,46신28:68). 물론 이방인의 습성으로 인해 여호와의 율법을 소홀히 여기는 그들에게 있어서 전쟁 포로를 노예로 삼는 것은 당연지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 비추어 본다면, 역대기 저자가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백성으로, 유다의 동족이며 형제로 표현한 것은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일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다 백성에게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유다의 포로를 돌려보내라)

“ 11. 그런즉 너희는 내 말을 듣고 너희의 형제들 중에서 사로잡아 온 포로를 놓아 돌아가게 하라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한지라”

그대들은 이제 하나님의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그대들이 잡아 온 이 포로들은 바로 그대들의 형제자매이니, 곧 풀어 주어 돌아가게 하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주께서 진노하셔서 당장 그대들을 벌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진노가 임박하였느니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론은 빨갛게 되다는 뜻을 가진 동사 하라에서 온 말로서 부글부글 끓어서 넘칠 것 같은 급박함을 묘사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받아 멸망하기에 마땅한 자들도 성급히 징계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자비로 참으십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르면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극렬한 것입니다. 이런 진노가 이스라엘 가까이 왔다고 말합니다.

(네 명의 지도자가 책망함)

“12. 에브라임 자손의 우두머리 몇 사람 곧 요하난의 아들 아사랴와 무실레못의 아들 베레갸와 살룸의 아들 여히스기야와 하들래의 아들 아마사가 일어나서 전장에서 돌아오는 자들을 막으며”

에브라임 자손의 지도자 네 사람, 곧 요하난의 아들 아사랴와 무실레못의 아들 베레갸와 살룸의 아들 여히스기야와 하들래의 아들 아마사가 역시 싸우고 개선하는 군대를 막아섰습니다. 사건의 서술상 선지자 오뎃의 선포 후에(11절) 즉각적으로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본절에 기록된 네 사람은 선지자 오뎃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일어나 막기까지 하면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적극적인 태도는 북왕조가 이미 타락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역대기 저자는 분열 왕국 시대 이후 하나님의 계시 역사에서 잠정적으로 사라졌던 북이스라엘 10지파를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에브라임의 두목들의 행동을 인상적으로 기술하여 북이스라엘도 회개함으로 여호와께 돌아올것이라는 소망을 보여 줍니다. 따라서 중요한 전환기에 그들의 이름을 열거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사실로 보여집니다.

(포로를 데려오지 못한다)

“1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이 포로를 이리로 끌어들이지 못하리라 너희가 행하는 일이 우리를 여호와께 허물이 있게 함이니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하게 함이로다 우리의 허물이 이미 커서 진노하심이 이스라엘에게 임박하였느니라 하매”

아마사가 그들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포로들을 이리로 끌어들이지 말라고 합니다. 포로를 끌고 와서, 우리가 모두 주 앞에서 죄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대들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더욱 많게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의 허물이 이렇게 많아져서, 우리 이스라엘이 주의 진노를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과녁을 빗나가는 것, 발을 헛디디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율법을 오해하거나, 그릇되이 해석하여 하나님께 범죄한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허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어떤 인격체를 분노케 하여 발생하는 감정상의 죄책 뿐만 아니라, 범죄가 드러나 유죄라고 판결받은 상태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격노케 하였을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유죄로 정죄되기에 충분한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선포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 유다 백성들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유다의 포로를 돌려보냄)

“14. 이에 무기를 가진 사람들이 포로와 노략한 물건을 방백들과 온 회중 앞에 둔지라15. 이 위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이 일어나서 포로를 맞고 노략하여 온 것 중에서 옷을 가져다가 벗은 자들에게 입히며 신을 신기며 먹이고 마시게 하며 기름을 바르고 그 약한 자들은 모두 나귀에 태워 데리고 종려나무 성 여리고에 이르러 그의 형제에게 돌려준 후에 사마리아로 돌아갔더라”

무장한 군인들이 이 말을 듣고, 포로와 전리품을 백성과 지도자들에게 넘겼습니다. 포로들을 사마리아까지 호송해온 이스라엘 병사들은 에브라임 자손의 두목들의 설득을 받아들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왕 베가의 군대가 설득을 받아들이고 포로와 노략물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은 형제애(8절) 때문이었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에브라임의 두목(12절)이라는 권위가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포로를 돌보고 돌려보내는 역할을 한 사람들이 "이 위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15절)이라고 재언급된 것으로 보아, 이스라엘 군사들은 포로들을 돌려 보내는 것에 대해 냉소적이고 비협조적이었을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관용을 받은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직 떠나지 않았음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위의 네 지도자들에게, 포로를 돌보아 주도록 임무를 맡겼습니다. 이 위에 이름이 기록된 자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앞 구절에서 언급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유명하거나, 특별히 어떤 일을 위해 지명되어 있던 자들을 가리킵니다(31:19대상 12:3116:41). 따라서 여기에는 12절에서 이름이 열거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유명한 자들도 포함됩니다. 이들은 포로들에게 옷을 입히고, 신을 신기고, 먹이고 마시우며, 기름을 발라주고, 약한 자는 나귀에 태워 여리고로 돌려 보냈습니다. 이와같이 원수에게 조차 사랑을 보이라는 율법(출23:4잠 24:1725:21마 5:44)은 깨어 있는 지도자들에 의해서 지켜졌던 것입니다. 그 네 사람이 전리품을 풀어서, 헐벗은 이들을 입히고, 맨발로 걸어온 이들에게 신을 신기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가져다 주고, 상처를 입은 이들에게는 기름을 발라 치료하여 주고, 환자들은 나귀에 태워 모두 종려나무 성 여리고로 데리고 가서, 그들의 친척에게 넘겨 주고, 사마리아로 되돌아왔습니다. 종려나무 성은 여리고를 지칭하는 별명으로(신 34:3삿 1:163:13), 베냐민 지파에게 할당된 땅이었습니다(수 18:21). 당시 여리고는 북왕국의 영토이긴 했으나, 남유다와 매우 인접해 있던 곳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여리고 성에서 포로들을 유다 백성에게 돌려보내기가 손쉬웠을 것입니다.

[아하스가 앗수르에 도움을 구함]

“16. ○그 때에 아하스 왕이 앗수르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도와 주기를 구하였으니”

한번은 유다 왕 아하스가 앗시리아의 왕에게 사신을 보내어 도움을 청한 일이 있습니다. 아하스는 아람-북이스라엘 연합군의 침략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을 때, 이미 앗수르 왕(그의 이름이 불이다)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블레셋과 에돔까지 반란을 일으키자, 이번에는 좀더 구체적으로 도움을 앗수를 왕에게 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하스는 앗수르의 왕들에게 굴복하였습니다. 이러한 아하스의 태도를 선지자 이사야는 사악한 일이며 믿음 없는 태도라고 규정하고, 유다는 반드시 망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사 7:4-7).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께서 신실한 왕을 도우신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4:1118:3125:826:7,1532:8대상 5:20).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대신 앗수르의 힘을 의뢰하려 하였습니다. 아하스가 신앙이 결핍되어 있음을 21절과 23절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하스가 앗수르 왕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당시의 국제 정세를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결과로 여겨집니다. 당시 앗수르는 디글랏 빌레셀의 지휘 아래 팽창 정책을 재개하여 수리아와 팔레스틴의 군소 국가들을 차례로 정복하여 대제국을 이루었고, 그 세력이 계속 뻗어나가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러한 국제 정세로 볼 때, 아하스는 앗수르와 동맹을 맺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판단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아하스의 이러한 판단은 자기 중심적인 생각에서 우러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제국을 형성하고 있는 앗수르가 당연하게 무엇인가를 요구할 것에 대해 판단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인 판단으로 앗수르에게 도움을 청하여 앗수르 군대가 왔으나, 앗수르 왕은 도리어 유다를 협박하여 막대한 공물을 요구하였습니다(20,21절). 뿐만 아니라, 자기 민족인 북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하였고(왕하 17:6), 유다 역시 산헤립의 군대에게 황폐케 되는 결과(왕하 18:13)을 초래했습니다.

(에돔과 불레셋의 침략)

“17. 이는 에돔 사람들이 다시 와서 유다를 치고 그의 백성을 사로잡았음이며 18. 블레셋 사람들도 유다의 평지와 남방 성읍들을 침노하여 벧세메스와 아얄론과 그데롯과 소고 및 그 주변 마을들과 딤나 및 그 주변 마을들과 김소 및 그 주변 마을들을 점령하고 거기에 살았으니”

에돔 사람이 다시 와서, 유다를 치고, 백성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다시 와서라는 표현은 에돔의 이전 공격(21:8)을 암시합니다. 또 다른, 그 위에의 뜻으로, 아람.북이스라엘 연합군의 공격에 더하여 에돔 사람이 쳐들어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돔은 유다를 침략할 기회를 엿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에 대한 보충적인 자료는 왕하 16:6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아람 왕 르신이 엘랏을 회복하여 에돔에 돌리고"라는 구절은 아람왕 르신과 동맹한 에돔이 독자적으로 엘랏을 공격하였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아람 왕 르신이 있던 다메섹은 엘랏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공격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에돔은 처음에는 약간의 아람 군대의 도움을 입어 그들의 영토였던 엘랏을 회복하였고, 또다시 르신이 이끄는 아람 정규군과 합류하여 전면적인 공격을 하였다가 앗수르의 군대를 만나 아람 왕 르신이 죽게 되었을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도 유다의 평지와 남방 성읍들을 침략하여, 벳세메스와 아얄론과 그데롯을 점령하고, 소고를 포함한 그 주변 성읍들과 딤나와 김소와 그 인근 마을들을 점령하고, 거기에 정착하였습니다. 그데롯은 오늘날의 카트라에 해당되며, 얍네의 남서쪽에 위치합니다. 딤나는 오늘날의 티브네이며, 벧세메스 근방에 위치해 있습니다(수 15:10). 김소는- 오늘날의 짐수이며, 릿다의 남동쪽 약 4.8km 지점에 위치합니다. 유다가 에돔과 블레셋에게 이처럼 많은 영토를 빼앗기게 되었다는 명확한 기록은 역대기에서만 발견됩니다.

(크게 범죄한 아하스)

“19.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이스라엘의 아하스 왕이 백성을 부추기어 주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주께서 유다를 낮추셨던 것입니다. 역대기 저자는 특별한 경우에 유다 왕을 가리켜 이스라엘 왕이라 칭하기도 했습니다(11:312:619:821:2,4). 여기서는 아하스의 행실을 비꼬기 위하여 우상으로 더럽혀진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의미로 표현한 듯합니다. 또한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였다는 진술은 유다 왕으로서는 그처럼 여호와께 범죄하지 않았을 것이고, 우상을 섬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풍자적 표현입니다. 여기서 낮추심이라에 해당되는 히브리어는 굴복시키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입니다. 이 구절에는 유다가 그들의 속국이었던 에돔에게 굴복하게 된 것은 매우 큰 수치이고, 이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생각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겸손하게 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아하스는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앗수르 왕에게로 돌아갔습니다.

(유다를 곤경에 처하게 한 앗수르왕)

“20.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이 그에게 이르렀으나 돕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공격하였더라 21. 아하스가 여호와의 전과 왕궁과 방백들의 집에서 재물을 가져다가 앗수르 왕에게 주었으나 그에게 유익이 없었더라”

앗시리아의 디글랏빌레셀 왕이 오기는 왔으나, 아하스를 돕기는 커녕 도리어 그를 쳐서 곤경에 빠뜨렸습니다. 군박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적대적인 감정으로 억압하는 것을 뜻합니다. 아하스 왕의 요청에 의하여 유다에 온 디글랏 빌레셀은 구원자나 조력자라기 보다는 제국의 힘을 배경으로 약소국의 소유물과 재물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제국주의적 습성을 가지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따라서 돕기 위해 불려온 앗수르 군대는 압제자로 변하여, 유다 나라의 중요한 재물을 요구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도와주러 왔다가 우리를 지배한 것과 유사합니다.
열왕기 저자는 앗수르의 협박에 의한 탈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으나,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대로(사 7:17ff.) 유다가 앗수르에 의하여 적잖이 고통을 받은 사실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하스가 주의 성전과 자기의 왕궁과 대신들의 집에서 보물을 꺼내어 앗시리아의 왕에게 바쳤으나,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아하스가...취하여 에서 취하여에 해당되는 히브리어 는 약탈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아하스는 앗수르에게 뇌물을 주기 위하여 성전과 왕궁의 재물을 탈취하다시피 모았을 뿐만 아니라, 왕궁에 거처하는 고관들의 재물까지도 빼앗아 앗수르 왕에게 건네주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그는 권세의 상징인 앗수르 왕에게 환심을 사고자 노력하였을 것입니다.
유익이 없었더라 는 것은 디글랏 빌레셀의 압력이 계속되었음을 뜻합니다. 그런데 왕하 16:9에 따르면, 앗수르 왕이 아하스의 요청을 받고 다메섹을 파괴하였을 뿐만 아니라, 르신도 죽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다는 아람의 공격으로부터 피할 수 있었을 것이고, 실제적으로 앗수르의 큰 도움을 입은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역대기 저자는 아무런 유익이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디글랏 빌레셀이 아람을 공격한 것은 비록 아하스의 요청에 의한 것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하스를 위해서가 아니라 앗수르 제국의 세력을 확장시키기 위한 것에 불과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아하스의 요청은 앗수르가 아람을 공략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을 만들어 준 것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앗수르는 유다를 침입하고 있는 에돔과 블레셋의 공격 같은 국지전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면서, 오히려 유다에 대해서 계속 협박하여 조공을 바치게 한 것입니다.
이처럼 앗수르가 아하스를 협박했다는 역사적 증거로 두 가지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디글랏 빌레셀의 비문에 보면, 앗수르 왕은 유다 왕 아하스에게서 뿐만 아니라 블레셋과 에돔에게서도 공물을 받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은 아하스가 앗수르에게 도움을 구한 결과, 유다를 비롯한 주변의 모든 국가들이 제국주의적 착취에 시달리게 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왕하 16:18에는 아하스가 앗수르 왕을 인하여 낭실을 여호와의 전으로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낭실은 아하스가 안식일에 쓰기 위하여 만든 것으로 왕이 성전으로 들어갈 때에 사용했던 통로입니다. 그런데 앗수르 왕이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자 이 통로가 전략적으로 아하스 왕 자신을 잡는 데 사용될까 두려워 낭실을 성전 안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왕하 16:18 주석 참조). 이러한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디글랏 빌레셀은 어떻게 해서라도 예루살렘을 차지하고자 했으며, 아하스는 앗수르의 무력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었던 게 분명합니다.

[다메섹 신을 섬기는 아하스]

“22. ○이 아하스 왕이 곤고할 때에 더욱 여호와께 범죄하여 23. 자기를 친 다메섹 신들에게 제사하여 이르되 아람 왕들의 신들이 그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에게 제사하여 나를 돕게 하리라 하였으나 그 신이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더라”

사태가 이렇게 악화되었는데도, 아하스 왕은 주께 더욱 범죄하였습니다. 여기서 곤고할 때란 아하스가 디글랏 빌레셀에게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를 정점으로 하여, 그 이후에 있었던 모든 외세의 침공을 가리킵니다. 자기를 친 다마스쿠스 사람들이 섬기는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왕하 16:10에 따르면, 아하스는 당시 다메섹을 장악하고 있던 디글랏 빌레셀을 접견하기 위하여 다메섹으로 갔습니다(왕하 16:10 주석 참조). 그리고 거기에서 디글랏 빌레셀이 숭배하던 우상을 본따서 제사장 우리야가 단을 쌓았고, 아하스는 다메섹에서 유다로 돌아와 이 우상에 제사하였습니다. 본문에서는 다메섹의 신들을 아람 열왕의 신들과 동일시하는 반면에 바네스는 이를 앗수르 열왕의 신들이라고 번역합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볼때, B.C. 732년에 앗수르에 의해 다메섹이 멸망했기 때문에 아람.북이스라엘 연합군이 유다를 점령했던(5절) 기간은 매우 짧습니다. 따라서 앗수르의 열왕이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하스는 시리아 왕들이 섬긴 신들이 그 왕들을 도왔으니, 나도 그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면, 그 신들이 나를 돕겠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오히려 아하스와 온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진노케 한 아하스)

“24. 아하스가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모아 하나님의 전의 기구들을 부수고 또 여호와의 전 문들을 닫고 예루살렘 구석마다 제단을 쌓고 25. 유다 각 성읍에 산당을 세워 다른 신에게 분향하여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진노하게 하였더라”

그뿐만 아니라, 아하스는 하나님의 성전 안에 있는 기구를 거두어다가 부수었습니다. 왕하 16:17에 따르면 아하스는 "물두멍 받침의 옆판을 떼어내고 물두멍을 그 자리에서 옮기고 또 놋바다를 놋소 위에서 내려다가 돌판 위에 두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여호와의 전 앞에 있던 놋번제단도 옮기고, 다메섹 단의 형식을 따라 만든 큰 단에서 제사를 드리도록 했습니다(왕하 16:14,15). 이러한 그의 이방신 숭배는 단순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종교적으로 보완하려는 것이 아니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는 행위였습니다. 왜냐하면 본질적으로 하나님은 다른 신의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는 전면적으로 이방신을 섬기기 시작하였고, 이러한 종교 정책을 취하여 앗수르 왕에게 자신의 충성심을 나타냄으로써 호감을 얻어내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또 주의 성전으로 드나드는 문들을 닫아 걸었습니다. 아하스는 정치적인 목적으로 성전으로 통하는 낭실(왕하 16:18)을 제거하였을 뿐만 아니라(21절 주석 참조), 우상 숭배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에 성전에서는 더 이상 여호와께 드리는 제사가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한편 여기서의 여호와의 전은 성전 건물 전체를 집합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주요한 장소, 즉 성소와 지성소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성소와 지성소에서의 여호와 경배는 중단되었지만, 성전 안에 있는 제단에서는 이방신에 대한 제사가 계속 치러 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닫혀진 문은 히스기야 때에 다시 열립니다(29:7 참조). 아하스는 예루살렘 이곳 저곳에 제단을 쌓고, 유다의 각 성읍에 산당을 세우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여, 조상 때부터 섬겨 온 주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습니다. 우상 숭배하는 왕들에 의하여 산당은 종종 혼합주의의 본산지가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도 아하스는 다른 신에게 분향하기 위해 거국적으로 종교 개혁을 일으켰는데 이로써 우리는 그가 여호와 하나님을 떠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하스를 이어 왕이 된 히스기야)

“26. 아하스의 남은 시종 사적과 모든 행위는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니라 27. 아하스가 그의 조상들과 함께 누우매 이스라엘 왕들의 묘실에 들이지 아니하고 예루살렘 성에 장사하였더라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이것 말고도, 아하스가 한 모든 일과 행위는, 처음부터 끝까지, 유다와 이스라엘 열왕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왕하 16:19에는 유다 왕 역대지략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추가되는 것은 역대기 기자의 일반적인 경향입니다(역대기 서론 참조). 아하스가 그의 조상과 함께 잠들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블레셋을 치던 막대기라고 표현한(사14:28,29) 디글랏 빌레셀 3세가 죽은 해에 아하스도 죽었습니다. 한편 그 열조와 함께 잤다는 표현은 아하스가 열왕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과 대조되고 있습니다. 그를 왕실 묘지에 장사하지 않고, 예루살렘 성 안에 장사했습니다.
자신의 사악함 때문에 열왕의 묘실에 묻히지 못한 왕들 중에는 여호람(21:10), 요아스(24:25)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웃시야도 자신의 죄로 인하여 발병한 문둥병 때문에 열왕의 묘실에 묻히지 못했습니다(26:23). 역대기 저자는 아하스 역시 그의 배교(背敎) 때문에 열왕의 묘실에 들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는 듯합니다. 이와같이 역대기 저자는 왕들의 선악간의 판단을 그의 마지막 죽음에 관한 묘사에서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들 히스기야가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역대하 28장 강해 처음부터 끝까지 악한 아하스
말씀 역대하 28장 1-역대하 28장 27
요절 역대하 28장 19절 이는 이스라엘 왕 아하스가 유다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여호와께 크게 범죄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유다를 낮추심이라
역대하 28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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