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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4장 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4-06-02 00:00:00
조회수 : 2,578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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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4장 강해 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요나 41-요나 411

요절 요나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고 구원받은 일은 놀라운 일입니다. 천국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기뻐하지 않습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 화를 낸 맏아들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요나에게 박넝쿨 사건을 통하여 회개하도록 돕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도록 돕습니다.

 

(하나님의 용서에 성내는 요나)

 

“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

 

요나는 하나님이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한 이 일이 매우 못마땅하여, 화가 났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 심술을 부립니다. 옹니를 부립니다. 그는 자기의 전도의 열매가 왕성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해야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자기 메시지를 듣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회개하자 그는 영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들이 실 생활에서 악독에서 떠나자 요나는 하나님이 심판하지 않을까 심히 염려가 되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심판을 내리지 않으시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아니, 세상에 이럴 수가! 이렇게 악독한 백성들, 이스라엘을 사사건건 괴롭힌 원수 나라를 단지 회개한다고 심판을 하지 않으시다니 말도 안돼!" 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이 심히 부당하다고 생각되어 화가 났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을 용서하였지만 요나는 니느웨를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싫어졌습니다. 자신은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말씀 앞에 정면으로 도전하였습니다. 요나는 편협한 마음을 갖습니다. 자기중심적인 마음을 갖습니다.

 

(나에게만 자비롭기를 원하는 요나)

 

“2.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

 

요나는 주께 기도하며 아뢰었습니다. 주님, 자신이 고국에 있을 때에 이렇게 될 것이라고 이미 말씀드리지 않았냐고 따졌습니다. 자신이 서둘러 다시스로 달아났던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좀처럼 노하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는 분이심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내리시려던 재앙마저 거두실 것임을 자신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나가 걱정했던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회개만하면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매우 악한 아합왕이라고 회개할 때 그 모든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사람들을 용서하고 다시 한번 새로운 삶의 기회를 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은혜롭고 자비로운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일 때는 감사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이 내가 싫어하는 너의 하나님이 될 때 배가 아픕니다. 배가 고픈 것은 참는데 배 아픈 것은 참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선민인 유대 백성들에게만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길 원했습니다. 이방인들은 심판하시고 유대인들을 보호하시고 축복하시는 자기들만의 하나님이시길 원했습니다. 요나는 선민의식이 강한 전형적인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방인들에게까지 은혜롭고 자비로우사 그들의 회개를 받으시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영접할 수 없었습니다.

 

(죽기를 원하는 요나)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

 

주님, 이제는 제발 자신의 목숨을 자신에게서 거두어 달라고 기도합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합니다. 그는 배를 타고가다가 풍랑을 만났을 때 자신을 죽여달라고 한 그 모습을 다시 보입니다. 그는 자신의 목숨보다 민족을 더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는 편협한 민족주의자입니다. 국수주의자요 배타주의자입니다.

그는 온 인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세계 만민의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그는 회개하였지만 내면이 온전히 바뀌지는 않았습니다. 자기중심적인 마음이 바뀌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자는 결국 자기도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요나를 설득하시는 하나님)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요나가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죽기를 원한다고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중심적인 요나를 감당하시고 그가 성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책망하십니다. 하나님은 한 사건을 통해서 요나를 설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니느웨의 심판을 기대하는 요나)

 

“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요나는 그 성읍에서 빠져 나와 그 성읍 동쪽으로 가서 머물렀습니다. 요나는 거기에다 초막을 짓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습니다. 그 성읍이 어찌 되는가를 볼 셈이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셨지만 니느웨를 심판하실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자신이 화내는 기도를 들어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성읍 밖 동쪽으로 나가서 니느웨성이 잘 내려다 보이는 곳에 초막 하나를 지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당초에 작정하신대로 니느웨를 멸하시기 위해 무슨 천재지변을 일으키지 않으실까 기대하였습니다. 니느웨 최후의 날을 기대하며 실상황으로 그 성읍이 멸망하는 것을 보고자 하였습니다. 아마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녹화하고자 하였을 것입니다. 그는 40일째 되는 날까지 그곳에 앉아 지켜보고자 하였습니다.

 

(박넝쿨을 기뻐하는 요나)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요나가 나무 가지들을 얽어 만든 초막이 너무 허술하였든지 햇볕이 비추어 뜨거웠습니다. 앉아 있기가 힘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요나를 위하여 박넝쿨을 예비하셨습니다. 박은 매우 빨리 자라는 잎이 넓은 식물입니다. 그 박넝쿨 잎으로 요나를 가리게 하셨습니다. 박넝쿨로 인해 그의 머리위에 그늘이 지자 아주 시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아주 편안하게 해주셨습니다. 박 넝쿨 때문에 요나는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요나는 박넝쿨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참 기가 막히게 쓸모 있구나.. 어쩌면 그렇게 잘 자라서 이 뜨거운 햇빛을 가려주는지.." 하루 종일 박넝쿨에 대해서 감사를 하였습니다.

 

(박넝쿨을 아끼는 요나)

 

“7.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요나는 하루 종일 박넝쿨의 덕을 톡톡히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동이 틀 무렵, 하나님이 벌레를 한 마리 마련하셨는데, 그것이 박 넝쿨을 쏠아 버리니, 그 식물이 시들고 말았습니다. 박넝쿨을 예비하셨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벌레를 예비하셨습니다. 그 벌레로 하여금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 먹게 하셨습니다. 벌레가 줄기를 먹어버리자 그 잎도 금방 시들었습니다. 박넝쿨이 더 이상 요나를 가려 줄 수 없었습니다.

해가 뜰 때에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무엇을 준비하셨습니까?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습니다. 이 뜨거운 동풍은 시로코라고 부르는 바람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지중해 연안으로 불어오는 열풍입니다. 이는 매우 뜨거워 모든 수분을 증발시키어 사람의 얼굴 피부까지도 당기게 하는 바람입니다. 뜨거운 동풍이 불고 태양이 요나의 머리에 내리 쬐었습니다. 자기를 가려주는 박넝쿨도 없으니 니느웨성만 쳐다보며 앉아 있는 요나의 정신이 혼미하게 되었습니다. 일사병으로 거의 쓰러질 지경이었습니다. 햇볕이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니, 그는 기력을 잃고 죽기를 자청하면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죽기를 구하였습니다. ", 차라리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요나는 세 번째로 죽고자 합니다. 그는 실로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 자였습니다. 이기적인 자는 자신도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박넝쿨이 없어진 것으로 심히 화가 났습니다. "차라리 생기질 말지, 왜 생겼다가 없어져서 나를 더 괴롭게 하나.." 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생명만큼 박넝쿨을 사랑하였습니다.

 

(요나가 박넝쿨을 아끼는 것이 합당하지 않음)

 

“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나님이 요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박 넝쿨이 죽었다고 네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 옳으냐고 물으셨습니다. 요나가 옳다뿐이겠습니까? 저는 화가 나서 죽어도 옳다고 하였습니다. 요나는 아주 확신이 있었습니다. 죽어도 자기의 소견이 옳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박넝쿨을 사랑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네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네가 키운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 사이에 자라났다가 하룻밤 사이에 죽어 버린 이 식물을 네가 그처럼 아까워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박넝쿨에 대해서 두 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네가 키우지 않았다고 합니다. 내가 낳고 수고한 아이들이 귀하다는 것입니다. 낳은 정보다 기른 정이 크다고 합니다. 가슴으로 낳은 아들이 더 크다고 합니다. 박넝쿨과 너는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둘째는 하루살이라고 합니다. 하찮은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과 관련도 없고 하찮은 것입니다.

요나는 옳다고 자기의 의로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번 옳은지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박넝클이 없어져 요나가 신경질 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합니다. 요나는 박넝쿨을 불쌍히 여길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요나는 그런데 그것을 불쌍히 여깁니다. 아깝게 여깁니다. 요나는 환경 단체에 들어가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머리에 쬐는 태양빛을 가리웠기 때문입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박넝쿨을 사랑하는 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자기에게 단지 유익했다는 이유로 그 박넝쿨을 아꼈습니다. 그 박넝쿨을 나게 하기 위해 실상 그는 재배하는 수고라도 하였으면 할 말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습니다. 또한 그것은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리는 별로 가치가 있지도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요나는 자기 목숨을 버릴 정도로 그 박넝쿨을 아꼈습니다. 요나는 극도의 이기주의자입니다.

 

(니느웨 성 사람들을 아끼는 하나님)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하물며 좌우를 가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십이만 명도 더 되고 짐승들도 수없이 많은 이 큰 성읍 니느웨를, 어찌 내가 아끼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니느웨는 큰 성읍입니다. 가축도 많이 있습니다. 그들을 아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논리적으로 깨우치고 있습니다. 요나편에서 박넝쿨은 소중하였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은 소중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런 요나가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말합니다. 요나의 편협한 마음을 책망합니다. 요나의 닫혀있는 마음의 유리창을 깨뜨리십니다.

하나님은 박넝쿨과 니느웨를 대조시킵니다 요나의 마음과 하나님의 마음을 비교합니다. 요나에게 하나님의 너그러운 세계로 이끌어 내십니다. 요나는 편협한 의분이 있습니다. 자기 중심적인 생각이 있습니다. 요나의 자기중심적인 랜즈로 박넝쿨을 보고 니느웨를 보고 있습니다. 여호와는 하나님의 마음 랜즈로 니느웨를 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마땅하다고 합니다.

니느웨는 큰 성읍이었습니다. 거기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나 도덕적으로 무감각한 자들이 무려 십 이만여 명이 있었습니다. 주민 수는 족히 20만 명 가까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귀중한 피조물들입니다. 모든 피조물중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대상입니다. 또한 가축도 많이 있습니다. 그 가축들도 하나님께서 섬세하게 지으신 것들이요 인간을 섬기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과 가축들을 하나님이 아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느냐 하시며 요나에게 물으십니다. 요나서의 마지막이 하나님의 요나 한 사람에 대한 반어적인 질문으로 끝납니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보편적인 사랑)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보편적인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선민으로 삼으신 것은 그들을 통하여 만민 구원역사를 이루고자 하심입니다.

요나가 박넝쿨을 죽도록 사랑하신 것 이상으로 하나님은 인생들을 죽도록 사랑하십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들에 대한 그 사랑 때문에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영원한 구원을 얻습니다. 이 구원은 모든 사람에게 열려있습니다. 신분이나 민족에 차별이 없습니다. 아프리카 사람들, 러시아 사람들, 유럽 사람들, 아시아 사람들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습니다.

 

(나의 박넝쿨은 무엇인가?)

 

요나는 이 말씀을 듣고 아무 말이 없습니다. 그렇게 요나서는 끝납니다. 그 대답은 우리에게 하도록 요구합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라고 대답해야할까요? 내 박넝쿨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 니느웨는 무엇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내 니느웨는 내가 얼굴을 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입니다. 나와 체질이 잘 맛는 사람은 좋습니다. 조금 껄끄러운 친구는 사랑이 가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나와 같이 변화하는 것은 바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도 사랑하고 교회 밖의 사람들도 사랑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나의 박넝쿨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가슴앓이가 우리의 가슴잃이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구속역사의 주체시지만 자신의 구원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사람을 필요로 하십니다. 하나님은 요나와 같은 동역자를 필요로 하십니다. 구원역사는 하나님의 일이지만 사람을 통해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마음과 복음 진리를 깊이 영접하고 만민 구원 역사에 하나님의 동역자로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나와 가족, 민족의 차원을 넘어 온 세계를 구원하는 세계 선교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요나서 4장 강해 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요나 41-요나 411

요절 요나 4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요나 4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4 [요나] 4장 요나의 분노와 하나님의 자비 오요한 2014-06-02
3 [요나] 요나 3장 강해 회개하는 니느웨 사람들 오요한 2014-06-02
2 [요나] 요나 2장 강해 요나의 표적 오요한 2014-05-16
1 [요나] 요나 1장 강해 요나를 물고기를 통해서 살리신 하나님 오요한 2014-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