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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욥기 36장 강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05-28 00:00:00
조회수 : 4,68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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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6장 강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말씀 욥기 361-욥기 3633

요절 욥기 3624절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엘리후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편에서 말합니다. 욥에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심습니다. 그러나 그도 욥을 죄인으로 정죄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계를 보입니다. 엘리후의 네 번째 연설에서 그는 두 가지 중심 사상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는 욥기 33장에서 언급한 내용과 유사한 것으로, 고난이 오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총돌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교만을 꺾기 위한 정화의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이 고난관은 욥기 33장보다 이곳에서 더욱 강하고 분명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설명입니다. 자연의 이치를 인간의 생각으로는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것이기에, 그 누구도 하나님을 정죄하거나 그 공의를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 이 부분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등장을 유도하고 있으며, 폭풍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미리 묘사함으로써 자신의 마지막 연설과 하나님의 판결을 연결짓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말하는 엘리후)

 

1-4절을 보십시오. “엘리후가 말을 이어 이르되 2.나를 잠깐 용납하라 내가 그대에게 보이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아직도 할 말이 있음이라 3.내가 먼 데서 지식을 얻고 나를 지으신 이에게 의를 돌려보내리라 4.진실로 내 말은 거짓이 아니라 온전한 지식을 가진 이가 그대와 함께 있느니라

 

엘리후는 욥에게 미안하지만 말좀 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욥이 하나님은 불의하다고 하니 그는 하나님을 위하여 욥에게 변호하겠다고 말합니다. 아직도 나에게 할 말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마지막으로 이제 내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그의 명예를 위해 말하겠다고 주장합니다.

엘리후는 멀리 떨어진 곳에서 가서 지식을 얻어왔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신 하늘로부터 지식을 얻어온 것입니다. 이로써 엘리후는 자신의 말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으며 교훈이 될 만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창조주로, 자신은 피조물로 믿습니다. 자신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 의로우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욥에게 고난을 주신 것도 하나님의 공의라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자신도 온전한 지식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엘리후 자신은 충만한 지식이 구비한 자라고 합니다. 그는 사리를 분별하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지고한 지혜를 가졌다고 합니다. 그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실을 말하고 온전한 지식을 가지고 말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5-7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능하시나 아무도 멸시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지혜가 무궁하사 악인을 살려두지 아니하시며 고난 받는 자에게 공의를 베푸시며 그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아니하시고 그를 왕들과 함께 왕좌에 앉히사 영원토록 존귀하게 하시며

 

엘리후는 먼저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하나님은 큰 힘을 가지고 있지만 의인을 멸시하지 않으십니다. 그분은 당신이 창조하신 가장 보잘 것 없는 것에게라도 결코 불의하게 대하지 않으십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이 자신을 멸시하고 불공평하게 대우하신다고 불평했던(16:930:21) 욥의 태도를 질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무궁한 지혜로 악인을 살려두지 않으시고 고난 받은 의인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엘리후는 욥이 악인이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다고 했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의인과 악인을 분명히 차별대우하십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짧은 시간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랜 시간이 흘러야 이루어지고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그들을 보좌에 앉은 왕들과 함께 존경을 받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정의의 눈을 의인에게서 떼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눈이라는 표현은 히브리어 관용어구로 하나님의 얼굴과 유사하게 하나님의 보호하심, 공의 등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경우에도 의인들을 외면하시지 않고, 그들을 축복하시며 지키십니다. 그러나 이런 공의는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지며, 하나님 나라에서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의인도 징계하시는 하나님)

 

8-10절을 보십시오. “혹시 그들이 족쇄에 매이거나 환난의 줄에 얽혔으면 그들의 소행과 악행과 자신들의 교만한 행위를 알게 하시고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명하여 죄악에서 돌이키게 하시나니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그러나 의로운 사람이라도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쇠사슬에 묶이게 하시고, 고통의 줄에 얽매여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족쇄는 주로 포로나 죄인들을 속박하기 위해 사용되었습니다. 쇠사슬과 함께 이 줄은 의인의 삶을 제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들이 의로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징계를 허용하신 것입니다.

엘리후는 세 친구들의 주장과는 달리 의인들에게도 고난이 닥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섭리(의도)9,10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한 일을 밝히시며, 그들이 교만하게 지은 죄를 알리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의인에게 확성기에 대고 말하여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죄악에서 돌이키신다고 말합니다. 비록 의인이라 할지라도 부지중에 죄를 지을 수 있으며 또한 교만에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의인에게 회개를 통한 연단과 성숙을 위해 고난을 주신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엘리후의 사상은 고난은 죄의 결과라고 일방적으로 단정하였던 세 친구들의 주장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징계를 통하여 죄를 밝힌다는 그의 주장은 옳은 것은 아닙니다. 징계를 통하여 교만의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에게 사탄의 가시를 통하여 교만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계속 욥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욥에게 귀를 열어주시어 타이르는 소리를 듣게 하시고 그릇된 길에서 발길을 돌리라고 속삭여 주신다고 말합니다. 듣게 하시는 것은 어떤 것을 사람 앞에 높이 두어 눈에 잘 띄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의인들의 잘못된 죄악들을 밝혀 보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엄있고 강한 선고를 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속삭임을 귀담아 듣고 바로 살고자 애만 쓰면 그들의 나날은 행복으로 뿌듯하고 즐거움이 해마다 철철 넘칠 것이라고 말합니다. 돌아오게하는 것은 10절에서는 죄악의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회개는 생명과 죽음을 결정하는 중대한 결단이 됩니다.

 

(학대 당할 때 귀를 여시는 하나님)

 

12-16절을 보십시오. “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마음이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은 분노를 쌓으며 하나님이 속박할지라도 도움을 구하지 아니하나니 그들의 몸은 젊어서 죽으며 그들의 생명은 남창과 함께 있도다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에서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의 귀를 여시나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대를 환난에서 이끌어 내사 좁지 않고 넉넉한 곳으로 옮기려 하셨은즉 무릇 그대의 상에는 기름진 것이 놓이리라

 

엘리후는 의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의 축복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주신 징계의 날들을 끝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청종하여 자신들의 행위를 고치면 남은 생애를 형통하게 마치는 복을 누립니다. 그 생애는 매우 즐겁고 기쁨이 넘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신명기 말씀에서는 순종하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의 결과에 대해서 말합니다. 순종하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합니다. 그러나 이런 축복과 저주가 꼭 건강과 물질적인 것은 아닙니다. 현재적인 것보다는 미래적인 것이 더 강합니다. 그리고 고난을 통해서 믿음을 연단하여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엘리후는 너무 현재적이고 물질적이고 고난 없는 영광을 생각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엘리후는 이어서 순종하지 않는 경우를 말합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칼에 망하고 지식이 없이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순종하지 않았을 경우에 칼에 죽는 불행한 결과를 당합니다. 칼은 칼을 포함하여 던지는 무기를 의미합니다.(4:17,23에서는 병기, 기계로 번역됨). 하나님은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 망하게 하지만 그것은 긴 역사 속에서 보아야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심판까지 생각해야합니다.

13절에서부터 15절까지는 11,12절에서 언급한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를 뒤바꾸어 표현합니다. 13절과 14절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은 악인들의 저주에 관한 언급이고, 15절은 순종한 자의 축복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마음이 경건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 중에도 분노를 쌓으며,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불경건한 자들은 당장 징벌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하여 계속 불의를 행하다 마침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됩니다. 이들은 마치 가인과 같이 책망하면 더 마음이 악해지는 것처럼 고난 중에 더 악해지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남창이 성병에 걸려 죽는 것같이 젊어서 죽을 것이라고 합니다. 남창(男娼)은 미동으로도 번역됩니다. 남창은 이교 사원의 종교적 풍습에서 기인했습니다. 그들의 제사 의식 가운데는 성적인 행위가 포함되어 있어 사제들이 신전에서 사람들과 음행을 하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특히 수리아인과 가나안인의 신전에서 수종을 드는 남녀 사제들은 창기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남창들과 함께 거하게 되면 그들의 기력이 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엘리후는 욥이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순종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사람을 정죄하고 도우면 사람을 도울 수 없습니다. 엘리후는 사람이 받는 고통은, 하나님이 사람을 가르치시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고 가르칩니다. 사람이 고통을 받을 때에 하나님은 그 사람의 귀를 열어서 경고를 듣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고통을 하나의 구원의 방편으로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받는 자를 그의 고난에서 구원하십니다. 고난받는 자의 구원 여부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습니다.

엘리후가 하는 말 중에 고난 중에 죄인의 귀를 열어주시고 전에 알지 못하던 죄를 깨닫게 하시며 새로운 길로 인도하신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욥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서 그의 죄를 깨닫게 하고 있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그는 욥에게 회개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의인이 죄를 지어서 고난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짓지 않고도 고난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본성이나 육신이 연약하므로 연단을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는 욥 어른을 보호하셔서, 고통을 받지 않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는 자를 사망의 자리에서 건져내실 것이며, 이 계획은 바로 욥에게도 해당된다고 말합니다. 욥이 순종하면 하나님은 평안을 누리면서 살게 하시고, 식탁에는 언제나 기름진 것으로 가득 차려 주신다고 합니다. 기름진 음식으로 잘 차려진 상은 인생의 가치와 승리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넓은 곳은 재산이 풍성해지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욥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엘리바스)

 

17-21절을 보십시오. “이제는 악인의 받을 벌이 그대에게 가득하였고 심판과 정의가 그대를 잡았나니 그대는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많은 뇌물이 그대를 그릇된 길로 가게 할까 조심하라 그대의 부르짖음이나 그대의 능력이 어찌 능히 그대가 곤고한 가운데에서 그대를 유익하게 하겠느냐 그대는 밤을 사모하지 말라 인생들이 밤에 그들이 있는 곳에서 끌려 가리라 삼가 악으로 치우치지 말라 그대가 환난보다 이것을 택하였느니라

 

그러나 이제 욥 어른은 마땅히 받으셔야 할 형벌을 받고 계신다고 합니다. 앞에서 말한 축복된 상황과 정반대의 현실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심판과 공의는 중복적인 표현으로 정의로운 심판을 의미합니다. 17절은 정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이 욥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욥은 그의 완고한 고집으로 인해 고난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욥이 심판과 벌을 면할 길이 없게 되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의 말을 들어보면 욥이 고난을 받으면서도 순종치 않고 회개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의 생각에는 인과응보적인 생각이 다분히 들어있습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지금은 악인이 받을 벌이 가득하고 심판과 정의로 징계 받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가운데 욥은 분노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의 공의를 공박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더욱 자극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권고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지불해야 하는 속전(贖錢)의 값이 무척이나 크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함부로 행동하지 말 것을 경고합니다. 한번 죄악에 빠져 파멸되면 보상을 받을 길이 없듯이, 하나님의 형벌로부터 욥 자신을 구원할 자가 하나님 외에는 있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최후의 판결은 그 어떤 재물로도 굽게 할 수 없습니다. 욥의 금(재산)이 그의 고통을 감소시켜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욥이 당하는 환난 중에서는 그의 헛된 불평조의 부르짖음이나 많은 돈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엘리후는 인간적인 그 어떤 방편도 욥을 그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구원해 내거나 보호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욥의 경우에는 그의 재산이 속전의 대가로 받아들여질 수 없을 정도로 큰 죄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헌금이나 부르짖음이나 어떤 능력도 욥을 구원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오직 죄를 회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회개를 강요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밤을 그리며 해가 지기를 기다리지 말라고 합니다. 밤이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는 때라고 말합니다. 끌려간다는 것은 파산한다는 말입니다. 살아가는 도중에 사람이 절명하는 것을 말합니다. 엘리후는 이전에 욥이 간절히 원했던 인생의 종말(3)인 밤도 자신의 고난이 끝나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합니다. 밤을 사모하지 말라는 말은 자살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부디 나쁜 일에 마음을 쏟지 말라고 합니다.

당신이 지금 겪는 시련은 바로 나쁜 일에 마음을 썼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욥이 악을 택하였다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시험을 당해 인내하기보다는 불평하고,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했던 죄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하면 분노하고 악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절망하여 자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더욱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해야지 자살의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면에서 엘리후의 충고는 욥에게 적당합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욥이 악을 선택하여 이런 고난을 받고 있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그의 마음 속에는 병자에 대한 긍휼보다는 정죄와 판단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22-25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그의 권능으로 높이 계시나니 누가 그같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누가 그를 위하여 그의 길을 정하였느냐 누가 말하기를 주께서 불의를 행하셨나이다 할 수 있으랴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그의 일을 모든 사람이 우러러보나니 먼 데서도 보느니라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 엘리후는 하나님의 존귀하신 주권과 탁월하신 훈계 능력을 상기시킵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권능으로 높이 계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매우 높은 곳에 앉아계십니다. 높이 들림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그 전능하심으로 인해 가장 높이 송축 받으실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우리에게 교훈을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에게 우리의 길을 이렇게 혹은 저렇게 하라고 요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으로 나타내시는 교훈의 깊은 지혜는 인간이 감히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이 사상은 엘리후의 전체 연설의 중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불의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의로움을 인정해야 합니다. 누구도 하나님을 위하여 그 길을 정한 사람은 얻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행하심을 면밀히 감찰하여 그 걸음걸음을 감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한 의심을 말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하나님께 불의를 행하셨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자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정면 도전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전 우주를 통틀어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의 지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감히 그 누구도 하나님으로부터 억울한 대접을 받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높이라고 합니다. 인생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찬송해야합니다.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드높여 찬양하고 널리 알려야합니다. 노래하는 것은 찬송하는 것입니다. 너는...찬송하기를 잊지 말라고 합니다. 욥은 축복하신 하나님도 높여야 하지만 고난을 주신 하나님도 높여야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하신 일을 우러러 봅니다. 먼 데서도 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섭리의 역사를 경외와 찬탄으로 바라봅니다. 경외심 때문에 감히 그 행사를 가까이에서 찬찬히 보지 못합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보아도 압도당할 만큼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사역은 위대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높으심으로 우리가 그의 뜻을 다 알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작은 나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판단하고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과 섭리를 영접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 엘리후가 욥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라는 말은 옳은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상횡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섭리하신다)

 

26-3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그를 알 수 없고 그의 햇수를 헤아릴 수 없느니라. 그가 물방울을 가늘게 하시며 빗방울이 증발하여 안개가 되게 하시도다 28. 그것이 구름에서 내려 많은 사람에게 쏟아지느니라 29. 겹겹이 쌓인 구름과 그의 장막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깨달으랴 보라 그가 번갯불을 자기의 사면에 펼치시며 바다 밑까지 비치시고 이런 것들로 만민을 심판하시며 음식을 풍성하게 주시느니라그가 번갯불을 손바닥 안에 넣으시고 그가 번갯불을 명령하사 과녁을 치시도다 그의 우레가 다가오는 풍우를 알려 주니 가축들도 그 다가옴을 아느니라

 

26절에서부터 3720까지는 자연 세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엘리후가 즐겨 쓰는 것입니다. 자연만큼 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에게 효과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높으시니 우리가 알 수 없고 그 나이를 계산할 수 없습니다. 아는 것은 동침하다의 뜻도 있고, 대상에 대한 체험적인 깊은 인식과 통찰에서 오는 지식을 뜻합니다. 물론 인간은 하나님을 이렇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의 지혜와 행사는 인간의 이해력 너머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무한하시기에 우리가 그 영원함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으로부터 찬양 받으실 분이시지 판단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은 물을 증발시켜서 끌어올리시고, 그것으로 빗방울을 만드시며, 구름 속에 싸 두셨다가 뭇 사람에게 비로 내려 주신다고 합니다. 물이 증발하여 비가 되어 내리는 과정이 과학적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실 증발, 응결, 강수 등의 물의 3단계 순환 과정은 A.D. 16,17세기경에 이르러서야 온전히 이해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물방울들을 끌어 올리십니다. 물이 증발되어 하늘로 올라갑니다. 비가 구름 위에서 내려 많은 사람에게 쏟아집니다. 사람 위에 소나기처럼 풍부하게 쏟아져 내립니다. 하나님이 구름을 어떻게 펴시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며, 그 계신 곳, 하늘에서 나는 천둥소리가 어떻게 해서 생기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장막의 울리는 소리는 천둥 소리를 뜻합니다. 여기서 장막은 컴컴한 구름을 뜻합니다. 신속한 구름의 발생과 집결 또는 펼쳐짐 등 자연의 현상을 통해 그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장막 속에 거하시면서 호통을 치십니다. 우리가 비가 내리는 신비도 다 이해 못하는데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의 의미를 어떻게 다 이해할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계속하여 말합니다. 하나님이 번개 빛을 사면에 펼치시고 바다의 밑바닥을 덮으십니다. 번개 빛이 온 사방에 번쩍거리며 빛을 발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입니다. 사면은 온 천지 사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만 순식간에 번개 빛을 사용하셔서 온 하늘을 밝게 하시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번개는 대체로 크고 두려우신 하나님의 위엄을 나타냅니다. 바다 밑까지 비춘다는 말은 바다의 뿌리, 바다의 심연까지도 그분은 빛으로 덮으신다는 말입니다. 무서운 심판, 예기치 못할 주의 재림등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은 번개로 백성을 심판하시며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넉넉하게 공급해 주십니다. 만민은 백성들에 대한 총칭이거나, 국가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엘리후는 비와 구름으로 인해 작물이 유실되거나 홍수의 피해, 천둥 번개로 인한 재해 등이 일어나는 것을 하나님의 징벌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로 식물이 자라게 하셔서 우리에게 음식을 주십니다. 메마른 땅에 비를 내려 땅을 기름지게 하여 수확을 풍성케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위대하심은 자유자재로 자연을 다스리시는 능력에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두 손에 번개를 쥐시고 죄인의 과녁을 맞히라고 명령하십니다. 손에 싼다는 것은 번개 빛으로 손 전체를 채우듯 손에 쥔다는 뜻입니다. 구름과 구름이 마주침으로써 일어나는 번개들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날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자와 통치자로서 폭풍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천둥소리가 폭풍이 올 것을 암시하니 심지어 가축까지도 폭풍이 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경고하는 외침이 그들에 대한 선포가 되게 하십니다. 그 천둥소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선포하는 증거가 되도록 하십니다. 그 소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하며, 이것은 또한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방법의 공의로우심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가축들도 그 폭풍우 속에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행사는 위대하며 모든 만물에 그 뜻이 분명히 나타나 보이십니다. 그 누구도 여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엘리후는 마지막으로 사랑의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 속에서도 항상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창조주를 찬양하나 인과응보적인 엘리바스)

 

엘리후는 하나님은 창조주시오. 만물을 통치하시는 왕이심을 소개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자는 그의 말을 들어야합니다. 우리는 지극히 크신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 우리는 어떤 고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알고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 하나님의 신비로운 섭리 앞에서 경외심을 갖고 하나님을 찬양해야합니다.

그러나 엘리후도 욥은 죄인이고 죄로 말미암아 벌을 받고 있다는 인과응보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를 볼 때 우리를 잡고 있는 인과응보적인 생각이 얼마나 우리를 지독하게 사로잡고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을 보되 은혜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우리가 고난 받는 사람을 섣부르게 판단하지 말고 이해와 긍휼로 그들을 대해야 합니다. 아멘!

 

욥기 36장 강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말씀 욥기 361-욥기 3633

요절 욥기 3624절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

욥기 36장 강해 끝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41 [욥기] 욥기 42,장 강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요한 2010-06-04
40 [욥기] 욥기 41장 강해 누가 나로 하여금 갚게 하겠느냐 오요한 2010-06-03
39 [욥기] 욥기 40장 강해 나는 미천하오니 오요한 2010-06-02
38 [욥기] 욥기 39장 강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 오요한 2010-06-01
37 [욥기] 욥기 38장 강해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오요한 2010-05-31
36 [욥기] 욥기 37장 강해 그대가 아느냐 오요한 2010-05-28
35 [욥기] 욥기 36장 강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오요한 2010-05-28
34 [욥기] 욥기 35장 강해 성령 충만하나 이해가 부족한 엘리후 오요한 2010-04-17
33 [욥기] 욥기 34장 강해 하나님과 욥, 둘 다 의롭다 오요한 2010-04-16
32 [욥기] 욥기 33장 강해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오요한 2010-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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