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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욥기 33장 강해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0-04-15 00:00:00
조회수 : 3,361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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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3장 강해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멀씀 욥기 331-욥기 3333

요절 욥기 3323,24절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계속하여 엘리후가 욥에게 성령께서 자신에게 깨달음 주신 것을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이 사랑으로 욥을 연단하심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욥을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 연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욥 사이의 오해를 중보자가 오셔서 해결해주실 것을 증거합니다.

 

(진실한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엘리후)

 

1-7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욥이여 내 말을 들으며 내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기를 원하노라. 내가 입을 여니 내 혀가 입에서 말하는구나. 내 마음의 정직함이 곧 내 말이며 내 입술이 아는 바가 진실을 말하느니라 하나님의 영이 나를 지으셨고 전능자의 기운이 나를 살리시느니라 그대가 할 수 있거든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고 내 앞에 진술하라나와 그대가 하나님 앞에서 동일하니 나도 흙으로 지으심을 입었은즉 내 위엄으로는 그대를 두렵게 하지 못하고 내 손으로는 그대를 누르지 못하느니라

 

엘리후는 욥에게 말합니다. 자신의 말을 들어보라고 합니다. 엘리후가 자신의 연설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다시 한 번 욥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또한 잠시 욥에 대해 간접적으로 말하던 방식(32)을 버리고 욥을 향해 직접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엘리후가 욥의 이름을 직접 부르며 친밀감을 나타냅니다. 엘리후는 진실을 말합니다. 혀가 주체가 되어 마치 입 밖으로 말을 쏟아내듯 하는 강한 의지로 말을 합니다.

엘리후는 욥에 대해 반론을 펼 순간을 매우 많이 기다렸습니다. 욥이 세 친구들의 말이 옳지 못하다고 지적하였지만 엘리후 자신은 욥에 대한 진실을 말하겠다고 합니다. 입술이 아는 바와 진실을 말한다고 대구적인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자신의 입술에서 나오는 지식은 진실하다고 합니다.(잠언 87,8)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진실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진리가 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합니다.

엘리후는 자신이 하나님의 영으로 지은 받은 자라고 말합니다. 인간이란 인간을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의 숨결이 주어져야만 존재할 수 있습니다. 엘리후는 욥과 동일한 피조물이지만 전능자의 기운으로 자신이 영감되었으므로 자신의 말을 꼭 주의해서 들으라고 합니다.

일어서서 내게 대답하라는 말 앞에 할 수 있거든이 붙어 조건으로 말하여 적어도 엘리후는 욥이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짐작하고 있습니다. 5절의 표현 일어서서 대답하고 내 앞에서 진술하라는 말은 모두 법정적인 진술을 말합니다. 엘리후는 욥이 자신의 말에 이의가 있거든 나의 말에 대항해서 반론을 펼쳐보라고 합니다.

엘리후는 자신과 욥은 인간으로서 같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 역시 욥과 조금도 다름없는 연약한 피조물에 불과하기에 인간적인 권위로는 욥에게 어떤 권고나 교훈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이 말은 반어적으로 자신의 입에서 나올 말은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에 감동된 것이기에 능히 욥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변론에 신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지음 받은 것은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둘 다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셨습니다. 엘리후는 욥보다 어립니다. 엘리후는 더 위엄있는 위치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욥과 같은 피조물의 위치에서 말합니다.

엘리후가 욥을 눌러도 욥은 무겁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엘리후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말은 아무런 힘도, 권위도 가지지 못한다고 합니다. 만약 엘리후 자신의 말이 그릇된 진술이라면 욥은 아무런 두려움이나 마음에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결코 자신은 인간적인 지식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감에 의지하여 말할 것임을 재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실한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원수로 대하였다는 욥)

 

8-11절을 보십시오. “그대는 실로 내가 듣는 데서 말하였고 나는 그대의 말소리를 들었느니라 이르기를 나는 깨끗하여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도 없거늘 참으로 하나님이 나에게서 잘못을 찾으시며 나를 자기의 원수로 여기사 내 발을 차꼬에 채우시고 나의 모든 길을 감시하신다 하였느니라

 

욥은 자신이 악인이 아니며 순전하고 불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원수같이 여기셔서 질병의 고통을 주었다고 하였습니다. 엘리후는 욥의 말이 부정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욥은 엘리후가 듣는데서 말하였고 엘리후는 그 말을 들었습니다. 욥은 자신이 허물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욥은 비난받을 것이 없이 도덕적으로 순결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욥이 자신의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살았다는 것을 근거로 자신이 순전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욥은 하나님이 욥에게 싸움을 시작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욥의 허물을 노리고 그것으로 인해 공격할 기회를 엿보시고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욥을 대적으로 여기신다고 합니다.(NIV, he considers me his enemy) 욥은 자신의 환난이 마치 자기가 하나님의 원수나 된 것처럼 닥쳐왔다고 불평했습니다.

차꼬는 죄인들의 발을 묶어 놓기 위한 족쇄를 말합니다. 나무로 된 것도 있으나 보통은 발목 주위를 묶는 쇠고랑을 뜻합니다. 욥은 하나님이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까지 눈여겨보시고 계산하시며 감시하신다고 말합니다. 엘리후는 욥의 이런 말을 하나님의 정의와 위엄에 대한 도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는 욥이 하나님을 불의한 분으로 여긴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시다)

 

12-14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대답하리라 이 말에 그대가 의롭지 못하니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사람의 말에 대답하지 않으신다 하여 어찌 하나님과 논쟁하겠느냐 하나님은 한 번 말씀하시고 다시 말씀하시되 사람은 관심이 없도다

 

엘리후는 욥의 말에는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욥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욥이 알지 못하는 크신 섭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판단과 지식은 깊어서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욥을 원수같이 여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욥을 친구같이 신뢰하고 사랑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욥이 의롭지 못하다고 평가합니다. 엘리후는 검사의 논고처럼 무게 있고 공식적인 하나님의 선고를 하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인간과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비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크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70인역은 영원하신 하나님은 유한한 인간을 초월하신다로 번역했습니다. 이 위대하심에 비추어 볼 때 욥의 말은 그릇되었고 불의하다는 것입니다.

13절부터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엘리후의 변론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대답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수 같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일 뿐입니다. 엘리후는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논쟁에 경박스럽게 끼여들어 대답을 주고 받을 분이 아니십니다.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과 논쟁하려고 시도하는 태도에 대해 공박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계속되는 하나님의 계시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셔서라도 자신의 뜻을 전달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 가지 통로로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성경을 통하여, 꿈을 통하여, 사건을 통하여, 주위 사람들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금 욥에게는 침묵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침묵으로 너를 사랑한다고 더 크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15-22절을 보십시오. “사람이 침상에서 졸며 깊이 잠들 때에나 꿈에나 밤에 환상을 볼 때에 그가 사람의 귀를 여시고 경고로써 두렵게 하시니 이는 사람에게 그의 행실을 버리게 하려 하심이며 사람의 교만을 막으려 하심이라 그는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며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시느니라. 혹은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 쑤심의 징계를 받나니 그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그의 마음은 별미를 싫어하며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그의 마음은 구덩이에, 그의 생명은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지느니라

 

하나님은 잠들 때나 환상을 볼 때 말씀하십니다. 엘리후는 14절에서 암시한 하나님의 의사 전달 방식 중 한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꿈이나 꿈 같은 이상을 통한 계시입니다. 고대에는 하나님이 종종 꿈을 통하여 당신의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특히 왕이나 고위 관료들이나 제사장 등에게 꿈으로 계시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중요한 서류나 문건의 신빙성을 확증하듯이 사람의 귀를 여시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의 전달이 틀림없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강력한 경고를 교훈이나 이상으로 알리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사람의 죄악된 행실을 버리게 하시고 교만을 버리게 하십니다.

엘리후는 세 친구와는 달리 하나님이 사람에게 교만을 막으려고 고난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고난에 교훈과 훈계의 의미가 있다고 말합니다. 다분히 죄에 대한 형벌로만 고난을 이해했던 세 친구들과는 달리 엘리후는 때로 고난이 사람의 교만을 막기 위한 하나님의 가르침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응답하지 않음으로 응답하실 때도 있습니다. 욥과 같은 경우도 말없이 응답하시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이 병을 고쳐달라는 세 번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바울에게는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이 응답이었습니다. 병을 통하여 사도바울의 교만을 막고 겸손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혼을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 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겸손하게 하시고 그 생명을 칼에 맞아 멸망하지 않게 하십니다. ‘칼에 멸망치 않게사람의 혼으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게와 대구를 이룹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사람의 교만을 막고, 자기 꾀에 빠지지 않게 하십니다.

이 칼은 하나님에 의해 사용되는 죽음의 칼을 뜻합니다. 구덩이는 무덤에서부터 나와 스올에로 이끌어가는 긴 지하 터널이나 협곡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교만으로 인하여 패망에 이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주셔서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욥을 죽지 않게 하시고, 생명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섭리입니다.

때로는 사람이 병상의 고통과 뼈가 늘쑤시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뼈들이 서로 다투게 하여 징계하십니다. 그의 뼈가 늘 쑤시게 하십니다. 욥의 고통을 보다 구체적이고 감각적으로 묘사합니다. 징계를 받는 자의 생명은 음식을 싫어하고 별미를 싫어합니다. 육체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은 사람의 모든 즐거움을 앗아가 버립니다. 심지어 생명의 유지를 위한 음식과 식욕을 돋구기 위한 특별한 음식조차도 먹을 의욕을 잃게 만듭니다. 건강한 몸은 식욕을 일으키지만 육체의 질병은 식물에 대해 오히려 메스꺼움을 야기시켜 병자를 더욱 고통스럽게 합니다. 그의 살은 파리하여 보이지 아니하고 보이지 않던 뼈가 드러나서 그의 마음과 생명은 구덩이와 멸하는 자에게 가까워집니다. 육체의 질병이 극도로 악화된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겉에 있는 살이 바짝 말라붙어 거의 남아 있지 않고, 그로 인해 뼈들이 앙상하게 드러나 보입니다. 병자에게 남겨진 것은 오직 죽음뿐이라고 할 정도로 중한 병의 증상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여 주시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여 주시는 징계입니다. 엘리후는 하나님의 징계를 깨닫고 훈련을 받지 않으면 끝내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질병으로 욥을 겸손케 하여 천국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중보자 예수님)

 

23-24절을 보십시오.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하늘에 있는 많은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해석자로 함께 있어서 죽게 될 사람의 정당성을 증명해 주는 해석자가 된다면 그는 죽음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해석자는 연단의 목적으로 고난을 당하는 자들을 적극적으로 돕는 천사입니다. 이 중보 천사의 역할은 이미 욥 자신이 기대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그 사람의 의를 변호해 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중보 사상은 구속 사역에 있어서 중요한 의의를 갖습니다. 하나님은 중보자 천사를 보내십니다. 천사를 통하여 욥에게 대속물을 주십니다. 이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에게 대속물을 주시고 모든 것을 회복하게 도우십니다. 엘리후는 욥에게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천사는 스스로 대속물이 되어서 그가 정당하게 살도록 도우시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구덩이에서 건져내시고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고 하십니다. 대속물을 얻은 것이 하나님께서 심판을 돌이키시는 근거가 됩니다. 영원한 사망의 구덩이(22)에서 구원을 가능케 하시는 것은 사람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대속물을 보시고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에 있습니다. 대속물은 덮다 화해하다 대속하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구속하는 것은 건지는 것입니다. 대속물은 구원을 위한 속량물입니다. 이 대속의 개념은 희생 제물의 피를 뿌리는 제사 의식과 관련이 깊습니다. 대속은 범죄에 의한 처형이 있기 전에 그 몸값을 지불하여 자유의 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구원해주시는 것은 대속물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의미를 이해하는 빛이 됩니다. 하나님은 대속자 되신 예수님을 보시고 그를 구원하여주십니다. 욥은 하나님과 자신 사이에 중보자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의사소통을 중재할 분을 세웠습니다. 중보자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오해하고 불평하였습니다. 하나님도 당신의 사랑을 전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욥의 연약함을 아시고 중보자 에수님을 보내사 그의 죄를 대속하십니다. 이를 통하여 욥을 구하시고 고난 받는 자들을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회복)

 

25-30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그의 살이 청년보다 부드러워지며 젊음을 회복하리라.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사 그로 말미암아 기뻐 외치며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사람에게 그의 공의를 회복시키시느니라 그가 사람 앞에서 노래하여 이르기를 내가 범죄하여 옳은 것을 그르쳤으나 내게 무익하였구나 하나님이 내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셨으니 내 생명이 빛을 보겠구나 하리라 실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이 모든 일을 재삼 행하심은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이끌어 생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욥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그로 말미암아 욥은 기뻐 외칩니다. 고난에서 자유케 된 자가 기뻐 외칩니다. 그 회복이 매우 극적입니다. 욥이 이를 알 때 고난이 가벼워집니다. 연하여지는 것은 도로찾다 신선해지다 생기발랄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욥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 공의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사랑을 베푸십니다. 인간을 기뻐하십니다. 엘리후는 단지 육체의 회복뿐만 아니라 지위와 명예 그리고 영적인 상태의 회복까지도 회복시켜 주신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과 인정을 구하는 것입니다(24:627:7-9). 구약 성경에서 여호와의 얼굴은 완악한 범죄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을 나타내기도 하합니다.(44:11), 하지만 대개의 경우 경배자들에게 빛과 생명을 중재하는 은혜의 역할을 합니다(6:24-26). 따라서 본문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그의 존전에 나아가 그의 은혜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욥을 완전히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26절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3중적 회복이 언급되었습니다. 여기서는 고난에서 벗어난 자의 3중적 고백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곧 과거의 범죄에 대한 것과 의를 왜곡시켰던 것 그리고 그것들이 무익했다는 깨달은 것입니다. 그가 회복된 후에는 사람 앞에서 노래합니다. 욥은 범죄하여 옳은 것을 그르쳤으나 용서하여 주신 사랑을 노래합니다. 욥은 그 영혼을 건지사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신 사랑을 노래합니다. 생명의 빛을 보게 하신 사랑을 노래합니다. 그는 생명의 빛을 보겠다고 노래합니다. 빛은 하나님의 얼굴로부터 발산되는 생명의 빛입니다(30).

또한 이 노래는 이스라엘 사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부르는 찬송으로서의 가치를 갖습니다. 고난 당한 자가 이 노래를 부른 것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음을 뜻합니다. 이것으로 그의 모든 법적, 제의적 신분이 하나님 앞에서 회복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주신 것은 그들의 영혼을 구덩이에서 건져내어 생명의 빛을 비추려 하심입니다.

여기서 엘리후는 욥에게 다시 한번 고난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상기시킵니다. 그는 욥으로 하여금 자신의 무지와 교만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교훈을 겸허히 수용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꿈과 이상을 통한 교훈과 육체의 질병을 통한 징계, 그리고 그것으로써 인생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특별히 고난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두 번 세 번 반복하여 끈질기게 고난으로 되풀이하여 말씀하시는 이유는 우리로 겸손해져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귀담아 들으라)

 

31-33절을 보십시오. “욥이여 내 말을 귀담아 들으라 잠잠하라 내가 말하리라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대답하라 내가 기쁜 마음으로 그대를 의롭다 하리니 그대는 말하라 만일 없으면 내 말을 들으라 잠잠하라

 

엘리후는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엘리후는 자신의 변론에 대한 자신감에서 답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실제로는 엘리후가 욥에게 조용히 침묵하면서 자신의 가르침을 듣고 그것에 순복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욥은 이미 자신의 최후의 진술을 끝내고 사람의 대답이 아니라 하나님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기에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엘리후는 욥이 할 말이 있으면 말하라고 합니다. 엘리후는 내가 너에게 깨닫게 해주겠다고 말합니다.(I want you to be cleared) 만약 욥이 엘리후 자신의 주장에 대해 어떠한 반박을 해도 기꺼이 대답하겠다고 합니다. 엘리후는 욥의 주장이 자칭 의로움을 주장하는 것임에 비해 자신은 철저히 객관적 입장에서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지혜로 그대를 가르치리라 만일 할 말이 없으면 엘리후의 말을 들으라고 합니다. 엘리후는 지혜로.가르치겠다고 처음의 태도와는 달리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제 엘리후는 더 이상 자신의 의견을 진술해 보겠다는(32:10) 소극적이고 저자세의 입장이 아닙니다. 자신의 두 번째 변론을 시작하기 위해 잠시 말을 멈추고 있습니다.

 

(결론 사랑의 하나님, 중보자 예수님)

 

엘리후는 첫째 사랑의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원수같이 미워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을 전하였습니다. 인간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인간을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또한 소망의 하나님을 전하였습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사랑의 하나님 소망의 하나님을 전해야 합니다. 엘리후는 질병 가운데 두신 하나님의 징계를 보게 하였습니다. 사랑의 징계를 보게 하였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욥을 징계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징계 속에서 사랑을 보게 했다는 점에서 잘한 것입니다.

둘째 중보자 예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대속물이 되어주시고 우리가 바로 살도록 도우십니다. 우리를 새롭게 회복시켜주십니다.

욥은 자신이 의로운데 하나님이 자신을 대적하여 고난을 받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욥이 의로워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더 크신 뜻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의 고난을 통하여 교만을 막고 생명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욥의 고난은 하나님의 사랑의 징계이십니다. 하나님은 욥을 신뢰하고 사랑하여 고난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욥은 지금 그런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중보자를 보내십니다. 중보자가 오셔서 욥을 위한 대속물이 되십니다. 욥을 죄와 질병에서 자유하게 하십니다. 사단의 공격을 대신 막아주십니다. 이 중보자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신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아멘!

욥기 33장 강해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멀씀 욥기 331-욥기 3333

요절 욥기 3323,24절 만일 일천 천사 가운데 하나가 그 사람의 중보자로 함께 있어서 그의 정당함을 보일진대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사 그를 건져서 구덩이에 내려가지 않게 하라. 내가 대속물을 얻었다 하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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