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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이사야 66장 강해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12-01-18 00:00:00
조회수 : 5,296

문제지풀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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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66장 강해 내 말을 듣고 떠는자

말씀 이사야 661-이사야 6624

요절 이사야 668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당시 대다수의 이스라엘 백성은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말씀을 경외하는 사람들은 형식적인 신자들로부터 멸시와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을 경외하는 소수의 무리들을 주목하시고 이들을 위로하시며 이들이 큰 민족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통하여 만민 구원 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그것도 한 순간에 빠르게 이루십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가 본문을 통해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소망을 보고 하나님의 소망의 역사에 쓰임 받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사야 6566장은 이사야의 결론입니다. 이사야 1장과 같습니다. 가증한 자에 대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제사만 드립니다. 하나님 앞에서 통회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들이 마음이 함께 나와야 하고 정성을 드리고 예물을 드려야합니다. 애통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크게 일하십니다.

 

(성전에만 계시지 않음)

 

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이스라엘은 성전이 바벨론에 의해서 황폐화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짓고자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가 예배당을 생각하는 것보다 휠씬 큽니다.

다윗은 통일 왕국을 세운 이후 성전을 세우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통일시키신 하나님을 위해서 성전을 지어드리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짓고자 하자 그를 축복하시고 그 후손에게서 왕이 이어져 나오고 그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다윗의 후손에서 메시야를 보낸다고 하셨습니다. 다윗왕은 성전을 지을 모든 준비를 하였습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 왕은 많은 시간과 노동력을 드려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을 지어 드렸습니다. 솔로몬이 봉헌식에서 번제를 드리고 기도할 때 여호와의 영광이 빽빽한 구름으로 성전에 임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성전은 그들의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나라가 망하고 성전이 파괴되었을 때도 성전을 사모하였습니다. 다니엘은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돌아와서 제일 먼저 성전 재건에 착수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짓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은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그만 성전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보좌 삼고 땅을 발판 삼으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께는 세상 전체가 거룩한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세상 어디에나 계십니다. 그들이 성전을 짓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습니다. 먼저 마음을 드리고 사랑을 드려야합니다. 통회하는 마음을 드려야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성전은 성전으로 의미가 있습니다.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2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신 분이십니다. 천지의 창조주이십니다.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계시지만 특별히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계십니다.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성전보다 마음 속의 성전을 지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 자에게 거하십니다. 하나님은 성전보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없을 때 많은 부족을 느끼는 가난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자신의 죄에 대해서 애통하며 회개하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탕자의 마음입니다.

통회는 나를 바꾸고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기 전에 나의 마음을 움직여야합니다. 우리가 뇌물로 선한 일로 하나님의 마음을 돌릴 수 없습니다. 회개하는 기도 진정으로 통회하는 기도를 해야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들은 우상숭배한 죄를 회개해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세상을 사랑한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듣고 두려워하며 떠는 자를 원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떨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떨며 높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불이 타고 천둥이 치며 지진이 나고 나팔소리가 나는 가운데 십계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떨며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도를 응답하십니다. 하나님이 손이 짧아서 주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배를 육지에 댈 때 배에서 줄을 던집니다. 줄을 육지에 매고 줄을 잡아 다닙니다. 그러면 육지가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육지가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하여 비우고 겸손하여 내가 하나님께로 가야합니다.

 

(마음의 성전)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을 크고 아름답게 지으면 하나님이 거기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목회자는 큰 예배당을 지어야 성공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교인들은 큰 예배당에 다녀야 은혜를 많이 받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예배당 건물보다 마음의 건물을 지으라고 하십니다.

유럽에는 화려하고 웅장한 예배당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그 예배당은 주요 관광지가 되었고 그 안에 성도들은 어디론가 떠나갔습니다. 크고 화려한 성전이 없어서 이스라엘이 망한 것이 아닙니다. 웅장하고 멋진 성전이 없어서 세상이 타락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두렵고 떠는 마음 자세가 없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서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성전을 지을 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심히 존경하는 자)

우리는 1990년에 예배당을 매입하였습니다. 그 후 삼년 후에 이층을 증측하였습니다. 2011년에는 예배당을 리모델링하였습니다. 예배당은 깨끗하고 아름다워졌습니다. 우리는 예배당을 리모델링하였으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예배당 건물보다 우리의 마음을 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 앞에서 떨며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떨며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예배당 안에 말씀으로 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감사하고 서로 불쌍히 여기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를 돌보신다고 하십니다. 돌보신다는 말은 highly respecteted으로서 매우 존경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를 높이십니다. 그들과 함께 하시고 일하십니다.

 

(말씀을 경외하는 자)

 

그러면 말씀을 인하여 떠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합니까? 그것은 주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그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축복의 말씀뿐 아니라 부담스러운 말씀도 순종해야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에 대해 아주 좋은 본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라는 말씀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독자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아침 일찍 일어나 하나님이 정하신 산으로 가 거기서 아들을 묶어 번제를 드리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떨며 독자라도 아끼지 아니하고 순종하고자 하는 것을 보시고 그의 경외심을 깊이 인정하시고 그를 복의 근원으로 확정하셨습니다. 그와 함께 하사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하셨습니다.

다윗은 살인과 간음과 거짓말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자 통곡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칠일 동안 금식 철야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는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다윗과 함께 하사 다윗을 메시야 왕국의 모형으로 만드셨습니다.

 

(말씀을 인하여 떨지 않는 자)

 

유다가 멸망하기 직전의 왕 여호야김은 말씀을 경청하지 않고 책망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를 화로불에 태웠습니다.(36:22,23) 그는 아들과 대신이 죽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보았습니다. 결국 느브갓네살의 포로가 되어 쇠사슬에 묶여 멀리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고통과 수치를 당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제국의 칼날에 죽고 포로로 끌려가 비참히 노예가 되었습니다.

엘리는 하나님의 책망을 두 번이나 듣고도 회개치 않았습니다. 그는 두 자식을 하루에 잃고 자신은 목이 부러져 죽었습니다.

바로는 하나님이 열 번이나 회개할 기회를 주었는데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경외심 없음으로 그뿐 아니라 애굽 백성이 많이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기록된 성경으로 말씀하심)

 

종교개혁자 Calvin은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으로 우리가 말씀을 읽는 순간 하나님이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군대에서도 사단장의 지침이 내려오면 일점 일획도 어긋나지 않고 이를 정확하게 시행합니다. 그것이 프린트로 찍혀온 말이라고 해도 사단장이 앞에서 한 말과 동일하게 여겨 떨림으로 대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을 글로 찍어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이 담긴 성경을 들고 있고 그것을 펴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에 대한 우리의 자세가 어떠합니까? 우리는 성경공부를 여러 번 하다보면 말씀을 잘 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지식적으로 받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지금 여기서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야합니다. 우리가 한마디 말씀을 깊이 영접하고 실천할 때 그 말씀의 깊이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양들에게 성경지식을 전하고자 하기보다는 말씀을 두려워 떠는 자세를 가르쳐야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경외하며 순종하는지 그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양들을 도울 때도 그가 인간적으로, 도덕적으로 조금 잘못하는 것을 문제 삼기보다 근본적으로, 그의 말씀 앞에서의 자세가 어떠한가를 살피고 그가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회개 없는 제사)

 

3,4절을 보십시오.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이스라엘 백성은 소와 양을 드리고 예물을 드리고 분향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들은 제물을 드리면서 그들의 삶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들은 회개와 순종없이 제물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제물보다 삶을 받으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을 행하였습니다. 그들은 고집대로 행했습니다. 가증한 우상을 섬겼습니다. 예물만 드리면 가증한 것이 됩니다. 마음 없는 선물과 같습니다. 그것은 뇌물과 같습니다. 자신을 위한 목적으로 선물을 주면 상대방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선물만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물이 욕이 되는 것입니다. 선물을 주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정성과 진실이 담겨야합니다.

 

(무서운 것을 임하게 하리니)

 

4절을 보십시오.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이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말씀하셔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않고 제물만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예배할 때는 나의 욕망과 소망을 깨끗이 비우고 순수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어야합니다. 내가 극렬한 소원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말씀도 들리지 않습니다. 제사보다 중요한 것은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가까이 하여 자세히 깊이 마음에 새기면서 편견 없이 들어야합니다. 말씀이 내게 와서 말씀이 나를 주장합니다.

당시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떨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원하십니다. 그들은 온갖 음란하고 추하고 더러운 죄악을 범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보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목전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신앙은 형식적이요 위선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 대해 보응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혹독하게 대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십니다. 그들을 정욕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시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하나님의 재앙을 내리십니다. 실제 하나님은 바벨론 제국을 통해, 로마제국을 통해 예루살렘을 무섭게 심판하셨습니다.

 

(핍박하는 자)

 

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아 그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르시되 너희 형제가 너희를 미워하며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쫓아내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 기쁨을 우리에게 보이시기를 원하노라 하였으나 그들은 수치를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떠드는 소리가 성읍에서부터 들려 오며 목소리가 성전에서부터 들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의 원수에게 보응하시는 목소리로다

 

여호와의 말씀을 인하여 떠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 형제들이 와서 말씀대로 사는 자를 핍박합니다. 형제들이 신앙 공동체에서 진실한 신자를 쫓아냈습니다. 여호와께서 영광을 나타내사 너희의 기쁨을 보이시길 원한다고 빈정되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까지 들먹이며 형제를 쫓아냅니다. 그러면서 제사는 드립니다. 그들은 원망 들을 만한 마음이 있으면 회개하고 와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부모에게 드려야할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효도하고 친척과 우애해야합니다. 형제 우애는 중요합니다.

두 형제가 사는 데 형은 결혼하여 잘먹고 삽니다. 동생은 가난하게 삽니다. 형은 곡식단을 동생에게 줍니다. 동생은 형을 생각하고 낟가리를 옮깁니다. 그러다 둘이 밤에 만납니다. 형제는 서로 우애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형제를 여호와의 이름으로 쫓아내는 것은 가증한 것입니다. 술을 안 먹으면 "야 안주만 축내냐?"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담배 피워야 소화가 잘 되지"하며 조롱했습니다. 과연 너희가 그렇게 신앙생활하니 어디 하나님이 너희에게 얼마나 복주나 보자고 조롱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떨지 않는 악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조롱을 당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도망가게 하십니다. 성전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보응하십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핍박을 참고 견디는 자를 크게 축복하십니다.

 

(두려워 떠는 삶)

 

우리 ubf 선배 목자님들은 신학도 하지 않았고 말씀도 많이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한 말씀이라도 순종하고자 애썼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는 말씀에 순종하려고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고 피를 팔아서 헌금하여 불우이웃을 도왔습니다. 너희는 만국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는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 간호사로 나가고 도계공으로 나가고 봉제공으로 나갔습니다. 지난번 제주도 여행에서 나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인생요절 말씀을 묵상하며 하였습니다.

 

(민족이 한 순간에 태어나는 은혜)

 

7-9절을 보십시오. “시온은 진통을 하기 전에 해산하며 고통을 당하기 전에 남아를 낳았으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아이를 갖도록 하였은즉 해산하게 하지 아니하겠느냐 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해산하게 하는 이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하시니라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의 자녀를 축복하십니다. 한 사람의 자녀를 임신하고 해산하고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하나님은 시온이 진통 없이 자녀를 갖게 하십니다. 우리가 한 사람의 제자를 양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온전한 성령의 은혜로 민족이 태어나며 나라가 생겨나게 하십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여호와께서 아이를 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해산도 하게 도우십니다. 하나님이 해산하게 하였으므로 아무도 태를 닫게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주관자이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생명을 탄생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해산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요 해산케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한 순간에 민족이 태어나게 하는 일이 역사 속에서 현실로 이루어졌습니다. 포로로 끌려가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조국으로 돌아가 나라를 세우려면 피흘리며 독립전쟁을 치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들이 이런 고통을 치르지 않고 순식간에 바벨론에서 귀환해 나라를 세우도록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가 복음을 전했을 때 3천 명 5천 명씩 회개하여 교회가 생성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친히 전도를 하십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떠는 소수를 통해서 크게 왕성케 하십니다. 광주 개척기에 일 년에 30-40명의 목동들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마치 투망으로 고기를 잡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갈보리 채플이 처음 시작될 때 하나님은 한 주에 70-80명씩 불어나게 하셨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 떨며 살 때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도 이런 놀라운 일을 이루실 것입니다. 교회가 좁고 동방이 좁을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 것입니다. 우리는 일부 이부 삼부 예배를 드리고 뒷집도 사야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10-11절을 보십시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의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성과 함께 기뻐하라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

 

가깝게는 바벨론에서 돌아오는 자를 예언합니다. 멀리는 하나님 나라를 예언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하는 말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 교회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예루살렘이 중심이 됩니다. 집을 지을 때도 창문을 예루살렘을 향하여 짓습니다. 기도할 때는 예루살렘 창문을 열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배당 중심입니다. 예배당 가까이 살고 예배당 쪽을 향하여 문을 열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중심은 예배당이 중심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꿈꾸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말씀 앞에서 떨며 진정으로 하나님 나라의 회복을 바라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읍에 기쁨을 주십니다. 그들이 성읍과 함께 기뻐하게 하십니다. 그 성을 위하여 슬퍼하는 자들이 그 성의 기쁨으로 그 성과 함께 기뻐하게 하십니다. 그들이 젖을 빠는 것같이 예루살렘에서 만족하게 하십니다. 젖을 넉넉하게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십니다. 어린아이는 젖을 만지고 젖을 빨면 만족합니다. 나이가 들면 여러 가지를 요구하지만 어려서는 젖 한가지면 충분합니다. 요즘은 소젖을 먹습니다. 그러나 모유를 먹어야 건강에 좋습니다.

교회에 세우신 목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 세상에서 얻는 것이 필요 없습니다. 교회에서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교회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말씀을 즐기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평강을 강같이 영광을 시내같이 주십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얻습니다. 그들은 기뻐하며 뼈는 연한 풀과 같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사랑하는 자들을 어미 품에서 젖을 먹고 자라는 아기의 행복한 모습으로 비유하였습니다. 아이가 과연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자라는가를 알기 위해서 젖먹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 안다고 합니다. 엄마의 품에서 젖을 제대로 빨지 못하는 아이는 자꾸 칭얼거리며 울고 잠도 깊이 자지 않습니다. 그러나 젖을 흡족히 빠는 아기는 만족한 듯 그 품에서 깊은 잠을 잡니다. 아니면 그 어미의 무릎에서 기쁘게 뛰놉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은 젖빠는 어린 아이같이 행복해 합니다. 말씀은 우리의 영혼에 꿀송이보다 더 답니다. 말씀은 신령한 젖과 같아서 우리 영혼에 만족을 주고 힘을 줍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사랑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평강을 강같이)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그에게 평강을 강 같이, 그에게 뭇 나라의 영광을 넘치는 시내 같이 주리니 너희가 그 성읍의 젖을 빨 것이며 너희가 옆에 안기며 그 무릎에서 놀 것이라 13. 어머니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니 14. 너희가 이를 보고 마음이 기뻐서 너희 뼈가 연한 풀의 무성함 같으리라 여호와의 손은 그의 종들에게 나타나겠고 그의 진노는 그의 원수에게 더하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평화가 강물처럼 넘치게 하며, 뭇 나라의 부귀영화가 시냇물처럼 넘쳐서 흘러 오게 하겠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시니 평강이 임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의 젖을 빨며, 그 팔에 안기고, 그 무릎 위에서 귀여움을 받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그 자식을 위로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이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을 것이다." 젖을 넉넉하게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어루만져주시며 주며 품어주십니다. 이것이 교회 안에 사는 주님의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그들이 이것을 보고 마음이 기쁠 것이며 너희의 뼈들이 무성한 풀처럼 튼튼할 것입니다. 건강하고 튼튼하게 자랍니다. 그리고 주의 권능이 종들에게 알려지며, 주께서 원수들에게 진노하실 것입니다.

 

(불에 싸여 강림하시는 여호와)

 

15절을 보십시오.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하실 것이라

 

하나님은 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십니다. 그의 수레들은 회오리 바람과 같습니다. 그의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이 이와 같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셔서 명렬한 위엄으로 우상 숭배하는 자를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심판주로 오십니다.

 

(하나님의 심판)

 

16,1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에게 심판을 베푸신즉 여호와께 죽임당할 자가 많으리니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에 있는 자를 따라 돼지 고기와 가증한 물건과 쥐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은 강림하셔서 죄악된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불과 칼로 진실한 신자들을 핍박하는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여호와께 죽임을 당할 자가 많습니다. 신전의 한 중간에 선 여사제의 뒤를 따라 동산에 들어가 음행하려고 목욕재계하는 자들, 돼지, 길짐승, 들쥐의 고기를 먹는 자들이 모두 함께 망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과 그들이 꾸미는 것도 모두 끝장나게 하십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정결케 해야합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을 갈 때도 스스로 정결케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새하늘과 새땅을 보면서 정결케 해야합니다.

 

(언어가 다른 민족을 모으리니)

 

18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의 행위와 사상을 아노라 때가 이르면 뭇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와서 나의 영광을 볼 것이며

 

하나님은 오셔서 우상 숭배자를 심판하시지만 복을 주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세계의 여러 나라와 언어가 다른 민족을 모으십니다. 세계 만민이 하나님이 임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선교사 파송)

 

19,20절을 보십시오.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징조를 세워서 그들 가운데에서 도피한 자를 여러 나라 곧 다시스와 뿔과 활을 당기는 룻과 및 두발과 야완과 또 나의 명성을 듣지도 못하고 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한 먼 섬들로 보내리니 그들이 나의 영광을 뭇 나라에 전파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 재림 전의 말씀입니다. 재림과 성령 강림이 섞여 있습니다. 성령이 강림하고 교회 시대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하나님은 여러 민족들 가운데서 하나님이 주신 표를 받고 환난에서 피한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떨고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남은 자들입니다. 이방인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열방 곧 다시스와 룻과 두발과 야완과 또 하나님의 명성을 들어보지도 못하고 그 영광을 알지도 못하는 먼 섬들에 선교사로 보냅니다. 하나님은 선교적인 삶을 말씀하십니다. 스데반이 순교한 후에 모든 성도가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그들이 흩어지면서 사마리아와 다른 나라로 스며듭니다. 그들은 이산가족이 되며 피난민이 되었습니다. 그들이 두루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

집을 떠난 것은 강압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제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발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합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사람들은 도피하여 다른 나라로 갑니다. 섬까지 갑니다. 선교를 위해서 보냄 받은 것입니다. 예루살렘 떠날 때 선교사 임명장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경륜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리로 보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파송합니다. 도피한 사람들 중에 제사장이 됩니다. 우리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내가 하던 일이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할 수 없이 어디로 갑니다. 그것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디로 보낸 것입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서 복음을 전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의 증오를 받아 애굽으로 팔려갑니다. 이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곳에서 많은 고생은 하지만 요셉은 총리가 됩니다. 형들은 동생이 총리가 된 것을 보고 이제 죽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끼지 수군거립니다. 요셉은 나를 팔았다고 괴로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선교사로 보낸 것이라고 합니다. 모순과 부조리 속에서 당신의 사람을 키우고 파송합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키우십니다.

북한에서 내려와 목사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김일성이 나가라고 하여 나왔습니다. 그들은 나와서 큰 목회자가 됩니다. 그들은 쫓겨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그들을 파송한 것입니다. 그들은 쫓겨낸 것이 아니라고 보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보내서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오대양 육대주의 선교사로 쓰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하여 세계에 여호와의 영광을 선포하고자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더 이상 제사장 나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게 되어도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해 만민구원역사를 이루고자 하십니다.

 

(이방인이 예물을 드림)

 

20절을 보십시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 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하나님은 당신이 세우신 제사장들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변화됩니다. 이방나라들이 와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같이 그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립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예물을 태워다가 여호와께 드릴 것입니다.

 

(이방인을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심)

 

21절을 보십시오. “나는 그 가운데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 재림전의 말씀입니다. 성령 강림 후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 가운데서 제사장과 레위인을 택하십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레위 지파와 아론의 자손에서 제사장이 나왔습니다.

이제 이방 민족도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삼으십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에게로만 제한되었던 영적인 특권들이 이제는 이방 온 세계에 확산되었습니다.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목자로 삼으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누구를 통해서든 어디에서든 그 말씀으로 인해 떠는 자들을 쓰시며 만민 구원역사를 이루십니다.

복음을 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물은 한 사람이 회개하고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며 이들에게 만민구원역사의 소망을 두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오늘날도 남은 자들을 통해 세계선교를 이루시고 만민을 구원코자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우리 시대 남은 자로 부르시고 온 세계 만민을 구원코자 하십니다. 지난번 ubf 50주년 기념 예배에 참석한 자들이 바로 이들입니다. 하나님은 못생긴 한국 백성을 통하여 세계 만민이 복음을 믿고 변화되게 하셨습니다. 현지 목자들이 변화되어 그들의 삶을 간증할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 감사 찬양을 드립니다.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22,23절을 보십시오.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내 앞에 나아와 예배하리라

 

하나님은 새하늘과 새땅이 항상 하나님 앞에 있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의 자손과 이름이 항상 하나님께 있게 하십니다. 변화된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게 하십니다. 매월 초하루와 매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하나님 앞에 와서 예배할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주일 날 하나님께 나와서 예배합니다.

이사야 113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헛된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고 합니다. 그들의 모임도 가증히 여기고 제물을 가지고 오지 말라고 합니다. 진노의 날입니다. 죄가 가득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물리칩니다.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면 하나님께 기쁨으로 예배드립니다.

예전에 농사지을 때는 옷이 더럽습니다. 주일날만은 새롭게 빨아서 다려놓았다가 입습니다. 어른부터 어린이까지 그렇게 예배에 나옵니다. 천사와 같습니다. 용정에서 교회 가는 사람들을 보면 다 분홍색옷을 입고 깨끗한 신을 신고 갑니다.

 

(지옥불 심판)

 

2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재림 때 천년왕국 후에 심판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남은 자들을 축복하지만 하나님을 떠난 자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들은 나가서 하나님께 패역한 자들의 시체를 볼 것입니다. 그 벌레가 죽지 않고 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패역한 자들은 벌레가 죽지 아니하고 영원히 타오르는 유황불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948절에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

 

(예언의 성취)

 

당시의 독자들은 이사야의 예언이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보입니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그들에게 하나님나라의 소망은 너무나 비현실적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2000-3000년 후의 세계를 꿈꾸며 살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의 꿈대로 이루어주셨습니다. 바벨로 포로가 돌아왔고 수많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새하늘과 새땅을 꿈꾸며 살아야합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빛나듯이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꾸어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기준에서 보아야지 나를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어떤 가운데서도 희망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새하늘과 새땅을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의 소망)

 

우리 가운데 어떻게 하루 아침에 민족이 생겨나며 나라가 생겨나는 놀라운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저는 대전의 김베드로 목자님을 통해서 일어나 카이스트의 역사를 생각합니다. 그는 주의 종이 책망하자 기절하였습니다. 그는 주의 종을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실업자였는데 카이스트에 취업하고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생명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면 주님이 큰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이사야 66장 강해 내 말을 듣고 떠는자

말씀 이사야 661-이사야 6624

요절 이사야 668절 이러한 일을 들은 자가 누구이며 이러한 일을 본 자가 누구이냐 나라가 어찌 하루에 생기겠으며 민족이 어찌 한 순간에 태어나겠느냐 그러나 시온은 진통하는 즉시 그 아들을 순산하였도다

이사야 66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69 [이사야] 이사야 66장 강해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오요한 2012-01-18
68 [이사야] 이사야 65장 강해 새하늘과 새땅 오요한 2012-01-18
67 [이사야] 이사야 64장 강해 주는 우리의 아버지니이다. 오요한 2012-01-18
66 [이사야] 이사야 63장 강해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이다. 오요한 2012-01-18
65 [이사야] 이사야 62장 강해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오요한 2012-01-18
64 [이사야] 이사야 61장 강해 구원의 아름다운 소식 오요한 2012-01-18
63 [이사야] 이사야 60장 강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오요한 2012-01-18
62 [이사야] 이사야 59장 강해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풀며 오요한 2012-01-18
61 [이사야] 이사야 58장 강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 오요한 2012-01-18
60 [이사야] 이사야 57장 강해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 오요한 201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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