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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50장 강해 요셉의 영광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1-22 00:00:00
조회수 : 5,336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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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50장 강해 요셉의 영광
창세기 50장 1-창세기 50장 26
요절 창세기 50장 11절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드디어 52강에 걸친 창세기 강해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마치 하나의 자녀가 태어나듯이 감격스러운 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기 말씀을 생명 살리는 역사에 귀히 사용하여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나디.
가문의 영광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깡패가 검사를 만나서 결혼하여 가문을 영광스럽게 한다는 그런 얘기입니다. 깡패의 집안이 검사의 집안이 된다는 것도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오늘 말씀은 요셉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애굽에서 요셉을 영광스럽게 하셔서 야곱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영광의 하나님이십니다. 영광의 하나님은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마지막에 반드시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 나라에서 완전히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우리가 영광스럽게 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현재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사십일 동안 염하고 칠십일 동안 장례를 지냄)

1-3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구푸려 울며 입맞추고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사십 일이 걸렸으니 향으로 처리하는 데는 이 날수가 걸림이며 애굽 사람들은 칠십 일 동안 그를 위하여 곡하였더라”

야곱이 죽었습니다. 요셉은 죽은 아버지의 얼굴에 입맞추었습니다. 요셉은 의원에게 아버지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였습니다. 얼마동안 향을 처리했나요? 무려 사십일 동안 향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야곱의 죽음을 일을 애곡하였습니다. 얼마 동안을 애곡했나요? 칠십일입니다. 창세기 저자는 애곡한 시간을 기록하여 그 장례식이 성대하였음을 강조합니다. 거의 국장처럼 합니다.

(가나안에 장사하라는 바로의 허락)

4-6절을 보십시오. “곡하는 기한이 지나매 요셉이 바로의 궁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원하건대 바로의 귀에 아뢰기를 우리 아버지가 나로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내가 죽거든 가나안 땅에 내가 파 놓은 묘실에 나를 장사하라 하였나니 나로 올라가서 아버지를 장사하게 하소서 내가 다시 오리이다 하라 하였더니 바로가 이르되 그가 네게 시킨 맹세대로 올라가서 네 아버지를 장사하라”

야곱은 요셉에게 자신을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장사하라고 유언하였습니다. 요셉은 바로에게 야곱의 유언대로 가나안 땅 막벨라굴에 야곱을 장사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바로는 흔쾌히 요셉에게 아버지를 막벨라 굴에 장사하도록 허락하였습니다. 바로는 요셉을 신뢰하였고 요셉의 신앙을 존중히 여겨 요셉의 요청을 들어주었습니다. 요셉은 신임받는 총리였습니다.

(심히 큰 떼를 이룬 장례 행렬)

7-9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자기 아버지를 장사하러 올라가니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의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그의 형제들과 그의 아버지의 집이 그와 함께 올라가고 그들의 어린 아이들과 양 떼와 소 떼만 고센 땅에 남겼으며 병거와 기병이 요셉을 따라 올라가니 그 떼가 심히 컸더라”

요셉은 바로의 허락을 받고 야곱을 장사하러 가나안 땅으로 올라갔습니다. 장례식에는 누구 참여했나요?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들과 애굽 땅이 모든 원로와 요셉의 온 집과 요셉의 형제들이 상여를 따라서 올라갔습니다. 애굽 정부의 모든 장관들이 참여하였습니다. 각도의 장관들이 왔습니다. 애굽의 군 장성들이 참여하였습니다. 병거와 기병이 따라 가며 요셉을 호위하였습니다. 상여의 행렬이 매우 길었습니다. 마치 바로의 장례식과 방불했습니다. 요셉의 영향력이 애굽 전역에 미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요셉의 슬픔에 함께 하였습니다.

(애굽 사람의 큰 애통)

10-11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에 이르러 거기서 크게 울고 애통하며 요셉이 아버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애곡하였더니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요셉은 요단강을 건너서 아닷의 타작마당에 이르러 크게 울며 애통하며 칠 일을 애곡하였습니다. 가나안 백성들은 요셉이 운 곳을 아벨미스라임이라고 지었습니다. 이는 애굽 사람들의 애통이라는 것입니다. 요셉의 슬픔이 바로 애굽 모든 백성의 슬픔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을 영화롭게 하신 하나님)

야곱의 장례식은 애굽의 국장처럼 성대하였습니다. 마치 애굽왕 바로의 죽음과 같습니다. 야곱은 당시 최강대국 애굽에서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사실 장례식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영광보다는 자녀의 영광입니다. 부모님 장례식의 성대함은 자녀들의 영광을 나타냅니다. 장례식에 오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을 보고 오기보다 상주들을 보고 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야곱을 보고 온 것이 아니라 요셉을 보고 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아들 요셉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조화가 오십 개는 족히 놓였습니다. 조화 하나에 거의 십만 원입니다. 이는 자녀들이 영화롭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남일녀입니다. 큰형은 농사를 짓고 농촌의 유지입니다. 둘째형은 중소기업 사장입니다. 셋째는 대기업의 이사입니다. 넷째도 중소기업의 사장입니다. 나는 인간적으로는 가장 작은 자였습니다. 손님도 끊이지 않았고 많은 사람들의 조문을 받았습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은 부모들을 영화롭게 하시고 자식들의 영화롭게 되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요셉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고난 후의 영광이 있다)

하나님은 왜 요셉의 삶을 영광스럽게 해주셨을까요? 요셉이 온전히 믿음으로 고난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이렇게 영광스럽게 되기 전에 요셉에게는 고난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믿음으로 고난을 감당하였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꾸어서 노예로 팔렸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정욕의 유혹을 물리치다 죄수가 되었습니다. 이런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요셉은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부활의 영광을 얻기 원한다면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할 수 있어야합니다. 사도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예수님과 함께 고난도 받아야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 예수님과 함께 영광도 받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제가 하나 질문하겠습니다. 우리가 영화롭게 되도록 기도해도 되나요?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만을 위해서 기도해야하나요?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영광스럽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우리가 영광스럽게 되어야 하나님이 영광스럽게 되기 때문입니다.
유교에서는 효가 자식이 영광스럽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식이 영광스럽게 되어야 아버지가 영광스럽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영화롭게 되어야 하나님 아버지가 영광스럽게 됩니다. 다만 십자가를 짐으로 영화롭게 해달라고 기도해야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두고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요17장 1)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가 이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후에 부활의 영광을 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도 이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 엘리야와 모세가 영광 중에 나타나서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신다는 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영광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대로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만왕의 왕 그리스도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 땅위에 있는 자나 땅 아래 있는 자나 모든 무릎을 꿇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광스럽게 부활하셔서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신자의 영광은 고난으로 결정된다.)

우리 신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를 부르신 목적이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는 데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8)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셨습니다. 미리 정하신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하셨습니다. 의롭다하신 그들을 또한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시는 일은 연쇄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스럽게 하도록 예정하셨습니다!! 단 우리가 이런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에수님의 고난에 함께 참여해야합니다.

(영광스럽게 된 사람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사는 자들을 영광스럽게 하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항상 영화롭게 하셨고 최종적으로 더욱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노년에 하나님은 아들 이삭을 주시고 아브라함에게 많은 복을 주셨습니다. 이삭을 영화롭게 하사 주위 부족들이 찾아와 불가침 조약을 맺었습니다.
모세를 영화롭게 하셔서 출애굽의 지도자로 쓰셨습니다. 엘리야를 영화롭게 하셔서 불병거를 타고 승천하게 하셨습니다.
신약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열두 사도와 사도바울은 지상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그들은 영광스럽게 되지 않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영광스럽게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영화롭게 하셔서 인류의 스승이 되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사모하게 하셨습니다. 당대에도 그들의 순교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하심으로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또한 오랜 역사 속에서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하늘나라에서 영광스럽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주십니다. 영광스러운 새하늘과 새땅에 살게 하십니다.

(천안 ubf의 영광)

하나님은 우리 천안 땅을 영화롭게 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천안의 믿음의 조상들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경증환자요 담배를 피우고 있던 한 목자님을 대학교 교수가 되게 하시고 한 지부 유비에프를 섬기게 하셨습니다. 한 선교사님을 영화롭게 하시고 오스트리아 공학박사요 오스트리아 지부장이요. 국립연구소 소장이요. 오스트리아 시민권자로 삼아주셨습니다. 또 한 목자님이 이천 세계 비엔날레에 입상하게 하셨습니다. 유 선교사님은 노스켈로라이나에서 공학박사를 받고 삼성중공업에 들어갔습니다. 임 선교사는 워싱텅?o세인트루이스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고 풀만에 있는 워싱턴 대학에서 포닥을 마치고 게인츠빌에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남목자는 경희대 박사를 학위를 받을 때 최우수 논문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육년 전에 경주 박다나엘 목자님을 천안에 보내셔서 자신이 기도하는 중에 천안 유비에프에 대해서 받으셨다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이사야서 55장 5절입니다.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은 천안 유비에프를 영화롭게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천안을 영화롭게 하셔서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천안에 오라고 부를 것입니다. 우리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우리의 부름을 받고 천안으로 달려 올 것입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일입니다.
하나님은 성경 66권 강해서를 완성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성경 66권을 자유롭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66권을 통하여 우리의 그리스도 예수님을 증거하고 우리 마음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가르칩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십니다. 이제 성경 66권 유튜브 강해를 나가고 있습니다. 야곱의 장례행렬이 길게 늘어선 것처럼 천안으로 말씀공부하는 행렬이 늘어날 것입니다. 그날에는 많은 헌금도 천안 유비에프에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우리 목동, 목자님들은 이들에게 말씀을 가르쳐야합니다. 아멘!
그러면 우리가 이런 영광을 얻기 위해서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우리가 요셉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요셉의 고난에 동참해야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해야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에 동참한 자에게 반드시 영광을 주실 것입니다.

(막벨라 굴에 묻힌 야곱)

12-14절을 보십시오. “야곱의 아들들이 아버지가 그들에게 명령한 대로 그를 위해 따라 행하여 그를 가나안 땅으로 메어다가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헷 족속 에브론에게 밭과 함께 사서 매장지를 삼은 곳이더라. 요셉이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자기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애굽으로 돌아왔더라”

야곱은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습니다. 이곳은 아브라함이 헷족속에게 사서 매장지로 삼은 곳입니다. 이곳에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가 묻혔습니다. 나중에는 요셉도 묻히게 됩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한결같이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주실 것이라는 확신 가운데 죽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살다 믿음으로 죽었습니다. 믿음으로 묻혔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의 믿음을 축복하셔서 여호수아 때에 가나안 땅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비씨 586년에 나라를 잃었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믿음을 축복하사 다시 가나안 땅을 1945년에 이스라엘에게 주셨습니다. 한 사람의 믿음의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가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사무엘 선교사님의 믿음을 축복하셔서 세계 캠퍼스를 우리에게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을 축복하셔서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를 주십니다. 요셉은 아버지를 장사한 후에 형제와 호상꾼과 함께 가나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야곱이 죽은 후에 형들의 두려움)

16절을 보십시오. “요셉의 형제들이 그들의 아버지가 죽었음을 보고 말하되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 하고”

요셉의 형제들은 아버지가 죽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요셉이 혹시 미워하여 우리가 행한 모든 악을 다 복수할까 두려워하였습니다. 형제들은 아직도 완전한 죄사함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단이 주는 거짓된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요셉의 네 번째 울음)

16-18절을 보십시오. “요셉에게 말을 전하여 이르되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너희는 이같이 요셉에게 이르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 하매 요셉이 그들이 그에게 하는 말을 들을 때에 울었더라. 그의 형들이 또 친히 와서 요셉의 앞에 엎드려 이르되 우리는 당신의 종들이니이다”

요셉은 애굽에 노예로 17세에 팔렸습니다. 지금 요셉의 나이는 오십륙세였습니다. 형들은 삼십구 년이 흘렀는데도 죄의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죄의식이 얼마나 오랫동안 사람을 지배하고 고통하게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돌아가셨으니 요셉이 복수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용서하라고 하였으니 우리를 용서해달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우리에게 복수하지 말라고 합니다. 요셉은 이들의 말을 듣고 울었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네 번째 울음입니다. 첫 번째는 형들이 죄의식에 사로잡혔을 때 울었습니다. 두 번째는 베냐민을 만났을 때 울었습니다. 세 번째는 유다가 대속자가 되겠다는 말에 감동을 받아 울었습니다. 이제는 형들이 자신의 용서를 믿지 못하는 것을 보고 울었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울음을 보고도 요셉에게 요셉의 종이 될 테니 우리 죄를 용서해달라고 다시 요청하였습니다. 요셉은 이들에게 말합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19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이미 요셉은 형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유다가 베냐민 대신 대속물이 된다고 하였을 때 용서를 선포하였습니다. 요셉은 그때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5)” 요셉은 형들에게 복수를 당할까 근심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의 잘못을 한탄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이미 다 용서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다시 한번 위로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고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복수할 수 없습니다. 심판은 의로우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게 맡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복수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심판하여야하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

20,21절을 보십시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형들이 요셉을 해하려고 한 것은 맞습니다. 형들이 잘못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요셉을 총리로 삼으셨습니다. 죽어갈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크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떤 악도 선으로 바꾸시는 크신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은 자신을 인도하신 좋으신 하나님을 볼 때 형들의 모든 죄를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진심으로 회개한 형들을 용서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심시킵니다. 요셉은 형들과 그 자녀들까지 돌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볼 때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형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창세기 저자가 더욱 강조하는 것은 용서를 받아들이는 형들의 태도입니다. 요셉이 형들을 이미 용서했는데도 이런 용서를 받아들이지 못한 형들의 문제입니다. 형들은 요셉의 용서를 받고 감사해야합니다. 용서받지 못할 자를 용서해주신 사랑을 생각하고 항상 감사해야합니다. 그것이 용서에 보답하는 일입니다. 용서를 받아들여서 나의 것으로 만들고 용서의 기쁨을 누릴 수 있어야합니다.
지난 주에 어떤 펀드 회사 사장이 자살하였습니다. 자신이 투자를 잘못하여서 많은 사람들의 재산을 허비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죽음으로 자신의 죄를 속죄하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이 사장의 빚을 다 갚아 주었다고 합시다. 그런데도 죄책감에 사로잡혀 자살한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는 빚을 갚아주신 사람의 사랑을 거절하는 악한 죄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가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시며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의 죄를 사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은 죽으실 때 “다 이루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값을 다 갚아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값을 대신 다 갚으시고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용서를 받아들여야합니다.
우리는 용서받을 수 없는 우리 죄를 용서해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합니다. 이미 용서받았는데도 과거의 죄로 인하여 벌을 받을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려서는 안 됩니다. 과거의 죄로 인하여 벌을 받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감기만 걸려도 죄 때문에 걸리고 길에서 넘어지기만 해도 죄 때문에 넘어지고 월급만 안 나와도 죄 때문에 안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악한 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백십 세에 죽은 요셉)

22-23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요셉은 애굽에 거주하며 백십세를 살았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147에 죽고 400년 후에 모세가 120세를 산 것에 비하며 요셉은 일찍 죽은 것입니다. 형들이 죽기 전에 요셉이 먼저 죽었습니다. 그는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자손들을 보았습니다. 요셉은 죽으며 형들에게 유언합니다.

(요셉의 꿈의 성취)

24-26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요셉은 죽는 순간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것을 믿었습니다. 자신이 죽으면 자신의 해골을 가나안 땅으로 메고 올라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축복의 때에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복을 받을수록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이 약속은 그대로 성취됩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할 때 요셉의 해골을 메고 올라갑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요셉의 이 죽음을 믿음의 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요셉은 임종시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떠날 것을 말하고 또 자기 뼈를 위하여 명하였으며” (히브리서 11장 22절) 그는 사백년 후에 있을 출애굽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을 소망하며 죽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아야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죽음을 맞이해야합니다. 우리는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 나라로 떠날 것을 말하며 죽어야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합니다. “내 앞에 하나님 나라가 보이는도다. 예수님이 나를 안아 주시는구나!” 하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어야합니다. 아멘!
창세기 50장 강해 요셉의 영광
창세기 50장 1-창세기 50장 26
요절 창세기 50장 11절 그 땅 거민 가나안 백성들이 아닷 마당의 애통을 보고 이르되 이는 애굽 사람의 큰 애통이라 하였으므로 그 땅 이름을 아벨미스라임이라 하였으니 곧 요단 강 건너편이더라
창세기 50장 강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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