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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49장 강해 분량대로 축복한 이스라엘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1-19 00:00:00
조회수 : 5,747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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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9장 강해 분량대로 축복한 이스라엘
말씀 창세기 49장 1-창세기 49장 33절
요절 창세기 49장 28절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야곱의 나이는 147세입니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 야곱은 눈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죽음을 앞두며 유언을 합니다. 재산 분배를 하고 마지막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12아들의 장래를 말합니다. 야곱은 12아들에게 그들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복을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그의 유언이 성경으로 기록됩니다. 야곱은 가장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장 잘 죽은 사람입니다.

(자녀들의 후일에 당할 일)

1,2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내가 너희에게 이르리라. 너희는 모여 들으라. 야곱의 아들들아, 너희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들을지어다.”

야곱은 임종을 앞두고 자녀들이 후에 당할 일을 말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후일에 당할 일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은 장래일을 알게 하십니다. 야곱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임종을 앞두고 가장 성령 충만했습니다. 그 절정의 순간에 자녀들의 미래를 말합니다. 야곱의 예언이 성경의 한 장을 이루고 33절에 걸쳐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우리는 육신이 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날로 새롭습니다. 우리가 죽기 적전에 성령을 가장 충만히 받아 양들과 자녀들에게 그룹으로 말씀을 가르치며 미래에 대해서 축복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치매 들려서 헛소리 하다 죽지 않고 이렇게 죽는 것은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임종 전에 자녀들을 축복하는 것은 그 조상들인 아브라함도 이삭도 하지 않은 일입니다. 야곱만이 유일하게 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될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야곱이 자녀들의 후일에 당할 일을 말하는 것이 결정론적으로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그 믿음을 지키면 복을 받고 그 믿음을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은 하나님 편에서 회개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고 회개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음란한 르우벤)

3,4절을 보십시오.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내 능력이요, 내 기력의 시작이라.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 네가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르우벤은 장자입니다. 르우벤을 통하여 야곱의 기력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장자답게 위풍이 월등하고 권능이 탁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침상에 올라가 서모인 빌하를 성적으로 탐하였습니다. 이방인도 이런 악한 죄는 짓지 않습니다. 그는 정욕을 이기지 못하여 장자로서 축복을 빼앗깁니다. 정욕의 시험에 빠지면 하나님께 쓰임받는데 치명적입니다.
특히 젊을 때 정욕의 유혹을 조심해야합니다. 많은 주의 종들이 정욕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여 넘어집니다. 야곱은 정욕적인 사랑을 냄비에 물을 끓이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끓는 물은 바로 뜨거워집니다. 그러나 불을 끄면 바로 식어집니다. 그렇습니다. 정욕적인 사랑은 이렇게 쉽게 뜨거웠다가 쉽게 식어집니다. 이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다윗의 아들 압논의 사랑이 이랬습니다. 그는 뜨겁게 다말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정욕을 채우고 나서 차갑게 식었습니다. 우리의 사랑은 냄비같은 사랑이 아닌 뚝배기 같은 사랑을 해야 합니다. 변치 않는 사랑을 해야합니다.
야곱이 라헬을 뜨겁게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식지 않고 한결같이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영적인 사랑을 하는 자를 쓰십니다. 르우벤 지파는 이 책망을 듣고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르우벤 지파를 열두 지파의 조상으로 귀히 쓰셨습니다.

(혈기를 부린 시므온과 레위)

5-7절을 보십시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폭력의 도구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들의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들의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

시므온과 레위는 칼을 가진 폭력의 도구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그들과 관계 갖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들의 모임에 함께 있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들은 분노와 혈기로 사람을 죽이고 소를 죽였습니다. 그들은 여동생 디나가 성폭행을 당하였을 때 세겜 사람들을 처참하게 살육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답지 않게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고 혈기를 부려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들은 노여움이 혹독하고 분기가 탁월하므로 저주를 받습니다. 야곱은 이들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두 번이나 반복하여 말합니다. 야곱은 그들을 흩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임종을 앞두고 심한 말로 두 아들을 저주합니다. 시므온과 레위는 열두 아들 가운데 가장 저주를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야곱의 말을 받아들인 레위)

이 말을 듣는 두 아들의 표정은 어떠할까요? 버릇없는 자식이라면 이 늙은이가 죽는 순간에 망령이 들었나 했을 것입니다. 아버지의 말을 듣고 뛰쳐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레위는 아버지의 말씀을 귀담아 경청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를 후손들에게도 이야기 해줍니다. “혈기가 우리의 약점이다! 우리는 이를 극복해야 복을 받는다. 그렇지 않으면 저주 받는다!” 이를 통하여 후손들은 혈기를 극복하여 쓰임받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혈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레위지파들입니다. 레위 지파 가운데 모세는 혈기는 이기지 못하고 애굽인을 살해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십년 광야 생활을 통하여 혈기를 제거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가 세상의 누구보다 가장 온유한 자가 되었을 때 그를 쓰셨습니다. 모세의 노년에 백성들이 계속하여 물을 달라고 불평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바위를 명하여 물을 내라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므리바에서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쳤습니다. 죽었던 혈기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하나님은 혈기를 부린 모세를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으려면 혈기를 극복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죽은 개와 같이 혈기가 완전히 죽어야합니다. 아니면 중심이 완전히 하나님께로 바뀌어야합니다. 후대에 레위지파는 하나님 중심으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아 내려올 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춤추고 노래하였습니다. 모세는 영적으로 너무 화가 나사 하나님이 친히 쓰신 십계명을 그들에게 던져 깨뜨렸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회개하고 하나님 편에 설 자들은 나오라고 하였습니다. 모세의 권면했지만 아무 지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레위지파만이 나왔습니다. 모세는 레위 지파에게 칼을 차고 회개하지 않는 형제와 이웃과 친척을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레위인은 그날 이스라엘 민족 삼천 명을 죽였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던진 사건은 혈기입니까? 영적인 분노입니까? 레위지파가 동족을 살해한 사건은 혈기입니까? 영적인 분노입니까? 모세는 이 사건을 두고 말합니다. “각 사람이 자기 아들들과 자기 형제를 쳤으니 오늘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출32:29) 모세는 이 사건을 하나님께 헌신한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헌신과 혈기는 무엇이 다릅니까?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있습니다. 혈기와 헌신은 둘 다 분노가 들어있습니다. 혈기는 자신의 감정에 기초하여 분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헌신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 기초하여 분노하는 것입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 편에서 쓰임 받았습니다. 신명기 33장 8,9에 보면 동기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레위지파는 피가 뜨거웠습니다. 뜨거운 피는 부정적으로 되면 혈기를 부립니다. 그러나 긍정적이 되면 헌신이 됩니다. 뜨거운 피는 어쩔 수 없습니다. 정말 뜨거운 피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뜨거운 피가 하나님께 쓰임 받느냐? 아니면 나에게 쓰임 받느냐? 는 것입니다. 현신과 혈기는 백지 한 장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아니면 자신을 사랑하느냐의 차이입니다.
하나님을 이 사건을 통하여 저주를 복으로 바꾸셨습니다. 레위지파를 구별하여 하나님의 소유 삼으시고 영원히 복받게 하셨습니다. 회개한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삼아주셨습니다. 레위지파는 하나님만 섬기는 가장 축복받은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보아야할 것은 어떻게 이들이 이렇게 변화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조상으로부터 우리는 야곱의 저주를 받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창세기를 모세 오경이라고 합니다. 모세가 레위 지파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직접 자신의 조상이 저주 받은 것을 기록한 사람입니다. 그는 우리는 저주를 받았으니 어쩔 수 없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저주를 받았으니 더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겨야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온유해야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이를 통하여 그들은 변하여 하나님을 가장 뜨겁게 사랑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그들의 모습을 보시고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조상이 저주받았다고 자손들이 다 저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조상이 저주를 받았어도 자식들이 믿음으로 살면 복을 받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 받으신 예수님을 믿으면 저주가 끊어집니다. 하나님의 저주는 삼사대 가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천대를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담이 저주를 받았고 우리의 조상들이 저주를 받았다고 슬퍼하지 말아야합니다. 우리가 이를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더욱 주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저주를 받은 두 명의 후손 가운데 레위 지파의 후손은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었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시므온 지파)

그러나 회개치 못한 한 시므온 후손은 저주가 지속되었습니다. 시므온 지파는 출애굽할 때 모압여인과 음란의 죄를 짓고 바알을 숭배할 때 중심되는 죄를 짓습니다. 시므온 지파의 지도자 시므리가 이 일에 앞장 섭니다. 이 사건 후에 시므온 지파는 급격히 감소합니다. 출애굽할 때 이스라엘 열두 지파중에 가장 숫자가 작은 지파가 됩니다. 시므온 지파는 레위의 저주대로 이스라엘 전역에 흩어져삽니다. 그들은 유다 지파 속에 속하였지만 남북 분단시 자신의 지파를 떠나 에브라임과 므낫세 땅으로 이동하며 이스라엘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바둑판에는 일급 바둑판과 특급바둑판이 있습니다. 금이 가지 않은 것은 일급입니다. 금이 간 것을 극복한 것은 특급입니다. 금이 간 것을 극복하지 못하면 쓸모없어 버림 받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므로 특급 바둑판이 되어 저주를 축복으로 바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회개한 유다의 복)

8-12절을 보십시오.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버지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그가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이르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의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의 복장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그의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말미암아 희리로다.”

야곱은 5절에 걸쳐서 유다를 축복하였습니다. 유다는 창녀 집에 들어갔다가 며느리와 잠을 자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습니다. 정욕을 이기지 못한 르우벤의 축복을 빼앗다면 유다의 축복도 빼앗아야합니다. 그는 시기심으로 동생 요셉을 팔았습니다. 혈기가 있는 시므온과 레위를 저주하였다면 유다도 저주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은 유다를 크게 축복합니다. 유다는 사자새끼같이 되어서 승리를 얻습니다. 사자는 짐승의 왕입니다. 메시야는 유다의 왕으로 오신 사자(lion)입니다. 다른 형제들이 유다에게 절을 합니다. 유다에게 왕위가 떠나지 않습니다. 유다에서 실로가 오십니다. 실로는 평화를 의미하는 말로 평화의 왕 메시야를 의미합니다. 유다의 후손에서 메시야가 오십니다. 유다는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고 그 옷을 포도주에 빨 정도로 풍요로운 삶을 삽니다.
이렇게 유다가 축복을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배운 것처럼 유다는 진실되게 회개하였습니다. 며느리가 임신한 것을 알고 며느리를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을 알고 네가 나보다 옳다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며느리를 용서하였습니다. 그는 베냐민을 대신하여 자신이 희생하고자 하였습니다. 다른 형제들을 대신하여 자신이 희생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마음을 아는 자였습니다. 그는 분명히 회개하고 변화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를 지은 자라도 회개하면 쓰십니다. 십자가를 지는 자를 귀히 쓰십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과거의 수치스러운 삶을 끊고 축복된 삶을 살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회개하고 십자가를 지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고난을 받고 수치를 당하고 구속을 받고 죽음을 당하는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축복해주십니다.

(조용히 섬기는 자 스불론)

13-15절을 보십시오.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잇사갈은 양의 우리 사이에 꿇어앉은 건장한 나귀로다. 그는 쉴 곳을 보고 좋게 여기며 토지를 보고 아름답게 여기고 어깨를 내려 짐을 메고 압제 아래에서 섬기리로다.”

스불론과 잇사갈은 레아의 여섯째 일곱째 아들입니다. 레아의 막내 아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특별한 기록은 없습니다. 야곱은 스블론에게 해변 땅을 약속하였습니다. 그들의 해변 갈릴리에서 예수님은 복음 역사를 시작합니다. 잇사갈은 건장한 나귀와 같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스불론과 잇사갈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숫자를 채워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가만히 있어 죄짓지 않고 중심만 지켜도 열두 조상으로 축복하십니다.
열두 조상 모두가 다 뛰어난 것이 아닙니다. 야곱은 스블론을 짐을 메는 나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는 압제 아래서 섬기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는 일을 많이 하므로 쉴 곳을 좋게 여깁니다. 그는 마음이 행복하여 토지를 아름답게 여깁니다. 스블론 지파는 므깃도 지방에 사는 데 이곳은 풍요로운 곳입니다. 하나님은 남을 섬기는 그에게 물질적으로도 풍요를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스블론과 잇사갈처럼 조용히 섬기는 일을 행복으로 여기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우리의 몸에서 다 눈이나 머리만 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발바닥이나 항문과 같이 궂은 일을 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 영웅이 되려고 하고 첫째가 되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스불론이니 잇사겔처럼 고생스럽지만 조용히 섬기고 동역하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열두 사도를 스불론 땅에서 부르셨습니다. 12사도 중에 사도의 명단에만 나오는 바돌레메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아들 유다와 같은 사람도 필요합니다.

(구원을 기다리는 단)

16-18절을 보십시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섶의 뱀이요 샛길의 독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를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단은 라헬의 시종 빌하의 소생입니다. 단 지파에서 그의 백성을 재판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는 단에서 사사 삼손이 나오므로 성취되었습니다.
단은 뱀이요, 독사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뱀이나 독사는 항상 부정적으로 나옵니다. 사탄을 말할 때 쓰입니다. 그는 사탄에게 이용당합니다. 야곱은 그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기도합니다. 단지파는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에 있습니다. 그들은 풍요로웠지만 풍요가 하나님을 버리게 하였습니다. 예루살렘까지 가는 고난을 받지 않다가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단 지파의 땅은 우상 숭배의 근거지가 됩니다. 그들은 미가 선지자를 세워서 나름대로 약속의 땅을 떠나고 인간적으로 좋은 땅을 차지합니다. 우상을 만들고 하나님을 섬깁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우상을 섬깁니다. 나중에는 이방의 침략을 받아서 이스라엘에서 사라집니다.
계시록 7장에 보면 구원받는 이스라엘서 단지파가 빠져 있습니다. 단지파는 열두 사도가운데 가룟유다와 같은 자입니다. 열두 조상가운데는 사탄에게 이용당하는 자도 있습니다. 이들은 회개하고 구원자 예수님을 기다려야합니다 사탄에게 이용당하더라도 예수님께 나와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그러면 뱀과 같은 이들도 양과 같은 자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회개치 않아서 계시록에 보면 단 지파가 사라집니다.

(역전하는 갓)

19절을 보십시오.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도리어 그 뒤를 추격하리로다.”

갓과 아셀은 레아의 시종 실바가 나은 자식입니다. 갓은 군대의 추격을 받으나 그를 다시 추격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역전합니다. 가난한 자가 부한 자를 역전하고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역전합니다. 갓지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전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겸손하면 우리는 역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교만하면 역전당할 수 있습니다.

(풍요로운 아셀)

20절을 보십시오. “아셀에게서 나는 먹을 것은 기름진 것이라. 그가 왕의 수라상을 차리리로다.”

아셀은 기름진 땅에서 삽니다. 그는 왕의 수라상에 오르는 극상품 음식을 생산합니다. 그들은 물질적인 풍요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풍요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아름다운 납달리)

21절을 보십시오. “납달리는 놓인 암사슴이라. 아름다운 소리를 발하는도다”

납달리는 라헬의 여종 빌하의 소생입니다. 납달리는 암사슴과 같이 아름다운 소리를 발합니다. 납달리에서 사사 바락이 나옵니다. 스블론과 함께 납달리 땅 갈릴리에서 에수님이 사역을 시작합니다. 조용히 하나님의 역사를 섬긴 이들 중에서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아름다운 천국복음의 주역으로 삼으십니다.

(복 받은 종의 아들들)

갓 아셀 납달리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모두가 종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갓과 아셀은 레아의 종 실바의 아들들입니다. 납달리는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입니다. 야곱은 이들을 적자들과 동일하게 축복하여주었습니다. 종의 소생이라면 이스마엘처럼 쫓겨나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로 종들의 후손도 열두 지파의 조상으로 삼아 주셨습니다. 나중에는 아셀지파에서 기도하는 안나가 태어납니다. 이는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는 혈통이 안 좋다고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조상이 별볼일 없다고 불평하지 말아야합니다.

(요셉의 복)

22-26절을 보십시오.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 활쏘는 자가 그를 학대하며 적개심을 가지고 그를 쏘았으나 요셉의 활은 도리어 굳세며 그의 팔은 힘이 있으니 이는 야곱의 전능자 이스라엘의 반석인 목자의 손을 힘입음이라.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 네 아버지의 축복이 내 선조의 축복보다 나아서 영원한 산이 한 없음 같이 이 축복이 요셉의 머리로 돌아오며 그 형제 중 뛰어난 자의 정수리로 돌아오리로다.”

야곱은 요셉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다합니다. 그는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이스라엘의 담을 넘었습니다. 그의 영향력이 애굽과 세계에 미친 것을 의미합니다. 활 쏘는 자가 적개심을 가지고 공격하였으나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스라엘의 반석을 힘입어서 물리칩니다. 이스라엘의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요셉은 형들은 시기심으로 그를 팔았으나 그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음으로 운명을 극복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음으로 마음에 미음을 극복하고 형들을 용서합니다. 그는 보디발 아내로부터 끈질긴 정욕의 유혹을 받지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정욕의 유혹을 물리칩니다. 야곱은 이런 요셉을 마음껏 축복합니다. 요셉을 축복할 때 복이라는 단어가 일곱 번이나 나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복,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복, 아버지 이삭의 복, 하늘의 복, 깊은 샘의 복, 젖먹이는 복, 태의 복이 임합니다. 산이 영원한 것같이 요셉의 복도 영원합니다. 야곱은 온갖 복을 요셉에게 줍니다. 시험을 이기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회개시키고 용서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자신의 맡은 일에 충성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요셉의 후손 가운데서 여호수아 장군이 나옵니다.

(구원 역사에 쓰임 받지 못한 에브라임)

그런데 요셉이 이렇게 야곱의 가장 많은 축복을 받고도 그 후손이 그렇게 구원역사에 쓰임 받지 못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후손들이 믿음을 잘 계승하여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이후에 그 후손들이 축복을 잘 감당 못하였습니다. 에브라임지파에서 왕이 나오게 하셨으나 그들은 우상을 섬겼습니다. 대표적인 왕이 여로보암입니다. 우리는 조상들이 아무리 많은 축복을 받았어도 그 후손이 잘 감당하지 못하면 그 축복이 무효가 됨을 배웁니다. 계시록에 보면 에브라임 지파는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우리가 조상들을 잘 만나는 것도 복입니다. 그러나 자신도 조상들의 믿음을 잘 계승하는 것이 더욱 큰 복입니다.

(물어뜯는 이리같은 베냐민)

27절을 보십시오. “베냐민은 물어뜯는 이리라 아침에는 빼앗은 것을 먹고 저녁에는 움킨 것을 나누리로다”

베냐민은 요셉과 함께 야곱의 사랑하는 라헬의 소생입니다. 요셉도 베냐민을 다른 형들보다 일곱배나 더 사랑하였습니다. 베냐민은 가장 작은 막내입니다 막내는 투쟁적인 모습이 있습니다. 베냐민을 물어뜯는 이리라고 합니다. 베냐민 지파 자손 중에서 사사시대 레위 사람의 첩을 집단 성폭행합니다. 그들 가운데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동성애의 죄가 있습니다. 그리고도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이리 같이 이스라엘 열두 지파와 싸우고자 합니다. 그들은 600명만 남고 다 죽어 없어집니다.
하지만 이들이 남북으로 나뉠 때 같은 어머니 지파인 에브라임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유다 지파의 편에 섭니다. 하나님은 이런 베냐민의 영적인 투쟁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리와 같이 축복하여 천국을 쟁취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리처럼 침노하는 자에게 천국을 주십니다. 우리는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적극적인 신앙 생활을 해야합니다. 베냐민의 후손에게서 사사 에훗이 나옵니다. 믿음의 여인 에스더가 나옵니다. 사울왕이 나옵니다. 무엇보다 사도 바울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편에 서는 그들의 믿음을 축복하여 주십니다.

(각 사람의 분량대로)

28절을 보십시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이스라엘은 분량대로 축복하였습니다. 분량은 축복을 받을 만한 그릇입니다. 그릇이 커야 축복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을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그릇을 키우도록 노력해야합니다. 축복을 받을 만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복의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해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없으면 슬퍼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면 기뻐하는 사람, 예수님 때문에 핍박을 받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의 근원되시는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막벨라 굴에 묻으라)

29-33절을 보십시오.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야곱은 마지막 유언으로 자신을 막벨라 굴에 묻어달라고 합니다. 그곳은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그리고 레아가 묻힌 곳입니다 야곱은 죽기 전에 라헬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레아를 기억합니다. 레아는 현모양처였습니다. 남편에게 구박 받았어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은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야곱은 죽음을 앞두고 레아의 믿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레아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레아의 믿음을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레아를 통해서 대제사장이 나오고 다윗이 나오고 메시야가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의 사랑을 못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참아야합니다. 하나님을 남편으로 모시고 믿음으로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크게 축복하십니다.

(믿음의 분량대로 복을 받는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믿음의 분량이 되어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합니다. 그것에 그치지 말고 축복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축복을 받지 못했으면 회개하고 새롭게 되어 축복받을 그릇이 되어야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복을 많이 받고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창세기 49장 강해 분량대로 축복한 이스라엘
말씀 창세기 49장 1-창세기 49장 33
요절 창세기 49장 28절
창세기 49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52 [창세기] 창세기 50장 강해 요셉의 영광 오요한 2008-01-22
51 [창세기] 창세기 49장 강해 분량대로 축복한 이스라엘 오요한 2008-01-19
50 [창세기] 창세기 48장 강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야곱 오요한 2008-01-19
49 [창세기] 창세기 47장 강해. 이스라엘의 소망 오요한 2008-01-18
48 [창세기] 창세기 46장 강해 야곱의 애굽 이민 오요한 2008-01-15
47 [창세기] 창세기 45장 강해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오요한 2008-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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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창세기] 창세기 43장 강해 맡김으로 얻는 행복 오요한 2008-01-15
44 [창세기] 창세기 42장 강해 속이 깊은 요셉의 사랑 오요한 2008-01-14
43 [창세기] 창세기 41장 강해 총리가 된 요셉 오요한 200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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