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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48장 강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야곱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1-19 00:00:00
조회수 : 7,90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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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8장 강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야곱
말씀 창세기 48장 1-창세기 48장 33
요절 창세기 48장 5절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오늘 말씀에 보면 충격적인 두 사건이 발생합니다. 하나는 손자 두 명을 항렬을 높여서 아들로 양자 삼는 일입니다. 야곱은 손자인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지금부터 너희는 손자가 아니라 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조카들이 삼촌들에게 형이라 부르라고 합니다. 이는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실제 이스라엘 역사에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아버지 항렬에 올라서 열두 지파가 됩니다.
또 하나는 동생과 형을 바꾸는 일입니다. 야곱은 동생인 에브라임이 형이 되고 형인 므낫세가 동생이 되게 합니다. 므낫세는 형으로 태어났지만 동생인 에브라임에게 형이라고 불러야합니다. 이것도 에브라임이 장자가 되므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참으로 묘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이 기묘한 일을 통하여 복음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복음 역사에서도 이런 기묘한 일이 일어납니다. 이 시간 이런 기묘한 복음 역사를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할아버지의 축복을 받고자 나온 요셉)

1절을 보십시오.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임종이 가까이 왔음을 알았습니다. 요셉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야곱에게 갔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자녀들이 아버지 야곱을 통해서 축복받기를 원했습니다. 요셉은 사실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물질적으로 부유했습니다. 권세적으로 애굽의 총리로서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녀들이 아버지 야곱의 축복 받기를 원하였습니다. 요셉은 무슨 복받기를 원했을까요?
요셉은 야곱에게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얻기를 원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믿는 하나님을 두 아들에게 물려주기를 원하였습니다. 요셉이 자신을 찾아온 것 같이 이전에 야곱도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을 받고자 찾아간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죽을 날이 가까워오자 이삭은 형 에서를 축복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때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에게 형과 같은 털 사람으로 변장하고 음식을 가지고 가서 형 에서 대신에 복을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방향에 순종하여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에는 자신의 목자에게 축복 받는 경우도 나옵니다. 엘리야는 승천을 앞두고 엘리사를 떼어놓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끝까지 자신의 목자 엘리야를 따라다닙니다. 엘리사는 엘리야로부터 영감이 갑절이나 있는 축복받기를 바랐습니다. 엘리사는 엘리야가 불말을 타고 승천하는 것을 보고 영감을 갑절이나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나 믿음의 선배로부터 축복을 받아야합니다. 그분들이 믿은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계승해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유비에프 선배들에게서 좋은 믿음의 유산을 주셨습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믿음, 평신도를 통한 캠퍼스 개척 제자 양성, 세계선교는 아주 좋은 믿음의 유산입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잘 계승해야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축복하다)

2-4절을 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야곱에게 말하되 네 아들 요셉이 네게 왔다 하매 이스라엘이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 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야곱은 요셉이 아들들과 함께 자기에게 온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힘을 내어서 일어나 요셉에게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축복을 빼앗자 형 에서는 야곱을 죽이고자 칼을 갈았습니다. 이삭은 야곱을 외삼촌 집으로 보내며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를 보호해주시고 많은 자손을 주시고 이 땅을 주시도록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은 고향을 떠나서 타향 루스에서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잤습니다. 야곱은 앞으로 갈 길은 막막하였습니다. 가다가 강도를 만날 지, 짐승을 만날 지 알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전능하신 하나님이 루스에서 나타나 야곱을 축복하여주셨습니다. 그에게 이 땅을 주시며 많은 자손을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한번은 그가 외갓집에서 고향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그는 세겜 사람들인 자신을 죽일 것 같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때도 그가 루스 곧 벧엘에서 예배드리는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때도 야곱을 보호하시고 땅과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99세가 되어서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소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 믿음을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야곱은 절망적인 상황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였습니다. 그가 베냐민을 애굽으로 보내어서 잃을 수도 있는 절망적인 때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는 베냐민을 보냈습니다. 그러자 전능하신 하나님이 요셉을 만나게 도우시고 베냐민과 시므온도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요셉을 축복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만난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들 이삭에게 주었고 이삭은 자신이 만난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들 야곱에게 주었으며 야곱은 자신이 만난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들 요셉에게 물려주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엘샤다이’입니다. 엘은 하나님이라는 뜻이고 샤다이는 대지, 젖가슴, 자궁이라는 어원을 가진 말로서 풍부하게 공급하는 능력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어머니가 자녀에게 전능하듯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전능하십니다. 대지가 풀이나 나무에게 전능하여 생명이 자라게 하듯이 하나님은 인간에게 생명을 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마스터 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전적인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에게 돈이 필요할 때 돈을 주시고 사랑이 필요할 때 사랑을 주시며 지혜가 필요할 때 지혜를 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다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분이십니다. 가장 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경제 현실은 어렵습니다. 우리의 캠퍼스 제자양성도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고 힘주시고 함께 하실 줄을 믿습니다.

(손자를 아들로 축복하다)

5-6절을 보십시오.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이들 후의 네 소생은 네 것이 될 것이며 그들의 유산은 그들의 형의 이름으로 함께 받으리라.”

야곱은 이곳에서 역사를 바꾸어 놓는 엄청난 폭탄 선언을 하십니다.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자신의 아들로 삼겠다고 합니다. 손자를 아들로 양자 삼겠다는 말입니다. 이를 통하여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열두 지파에 들어오게 됩니다. 이들은 손자로서 아들의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자격 없는 자를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되게 하십니다.
일반적으로 성서학자들은 야곱이 요셉에게 장자의 명분을 물려주었다고 합니다. 장자는 차자의 두 배의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요셉에게 두 아들 몫의 축복을 주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장자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았다는 말은 없습니다. 유일하게 야곱만이 이 일을 하였습니다. 보통 양자는 자식이 없을 때 다른 사람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는 것입니다. 야곱은 지금 열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또 한 명의 아들을 양자로 들여서 열세 명을 아들로 삼았습니다. 욕심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열두 아들이 있는데 한 아들을 다시 한 아들을 양자로 삼았을까요? 나중에 하나님은 열두 아들 중에 레위 지파를 하나님만 섬기는 지파로 드려서 구별하십니다. 그때를 대비하여 한 아들을 더 들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임한 은혜)

신약 성경에도 이런 유사한 예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 하나인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합니다. 하나님은 가룟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열두 제자로 택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복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 중에 부족한 자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택하여 그 부족한 것을 보충하십니다. 자격 없는 자를 택하여 자격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이는 성경과 기독교사에 흐르는 하나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열두 사도를 세우신 후에도 몇 명의 사도를 더 세우십니다. 사도행전 13,14장에 보면 바울과 바나바를 사도라고 일곱 번이나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서신에서 삼십 번 이상 자신을 사도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본래 사도의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을 사도로 양자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자격 없는 자를 하나님은 사도로 삼으십니다.

(양자의 원리)

이런 ‘양자의 원리’는 성경에 참으로 많이 나와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있습니까? 우리가 내면성이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핏줄이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아무 것도 하나님의 자녀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절대적인 주권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격 없는 자를 목자로 삼으십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사실 저는 신학교도 나오지 않았고 이제사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평신도입니다.(2012년도에 목사 안수 받았습니다) 나는 아무 자격 없는 자인데 목자로 세움받았습니다. 우리 평신도들이 말씀을 가르치는 것은 사실은 자격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격 없는 평신도들을 목자로 삼으십니다. 베드로는 사방에 흩어진 평신도들에게 너희는 왕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제사장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론의 혈통에서 태어난 자들만이 제사장이 될 수 있습니다. 당시에 흩어진 성도들은 제사장의 자격이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을 제사장으로 삼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 평신도를 목자로 양자 삼으셔서 복음역사를 섬기게 하십니다. 이것이 양자의 원리입니다.

(라헬을 위로하신 하나님)

7절을 보십시오. “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 (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야곱은 요셉의 어머니이며 자신의 사랑하는 라헬의 죽음을 회상합니다. 라헬은 죽어서 가나안 땅 에브랏에 장사되었습니다. 이곳은 다윗의 고향이요.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입니다. 라헬은 자식이 없이 살아서 슬퍼하였습니다. 언니 레아는 여섯 명의 아들을 낳고 시종들도 다 두 명씩의 아들을 낳았지만 라헬은 자식을 낳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라헬의 믿음을 연단시키신 후에 늦게 요셉을 주셨습니다. 그 후 라헬은 요셉의 동생 베냐민을 낳다가 죽었습니다. 라헬은 죽으며 베노니라고 하였는데 이는 슬픔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라헬은 자식의 축복을 보지도 못하고 슬프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베노니의 이름을 베냐민으로 바꾸어주었습니다. 베냐민은 오른 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베냐민을 통하여 라헬의 슬픔을 바꾸어 기쁨이 되게 하습니다. 베냐민 지파에서 사울왕이 태어나고 사도 바울이 태어납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그녀를 강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요셉 앞에서 라헬을 회상하며 위로를 얻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저자는 라헬의 슬픔을 예수님이 태어날 당시에 베들레헴 사람의 슬픔과 같다고 말합니다. 헤롯왕은 베들레헴에서 왕이 태어난다는 말을 듣고 두 살 아래 아이들을 다 죽였습니다. 아들을 잃은 베들레헴에 부모들은 슬퍼 울었습니다. 마태는 이들의 슬픔이 자식이 없었던 라헬의 슬픔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낳다가 죽은 라헬을 베냐민과 요셉을 통해서 위로 하셨듯이 자식을 잃은 베들레헴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위로 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을 위로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요셉의 아들을 만난 야곱)

8,9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요셉의 아들들을 보고 이르되 이들은 누구냐? 요셉이 그의 아버지에게 아뢰되 이는 하나님이 여기서 내게 주신 아들들이니이다. 아버지가 이르되 그들을 데리고 내 앞으로 나아오라. 내가 그들에게 축복하리라.”

야곱은 요셉이 데리고 온 아이들이 누구냐고 묻자 요셉은 자신의 아들을 하나님이 주신 아들이라고 소개합니다. 요셉의 말에는 항상 하나님이 주어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그들을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두 아들을 축복해주고자 합니다. 요셉의 두 아들의 이름은 므낫세와 에브라임입니다 므낫세는 하나님이 애굽의 고난을 잊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요셉은 자신을 팔은 형들을 용서하고 그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에브리임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창성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형들을 용서한 요셉을 애굽에서 창성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 용서해야 창성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눈이 어두워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요셉이 두 아들을 야곱에게로 이끄니 야곱은 두 아들과 입맞추고 그들을 안았습니다. 야곱은 요셉을 죽었다고 생각하였는데 그 아들까지 보니 감개무량하였습니다. 요셉은 두 아들을 물러나게 하고 아버지 야곱에게 절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 두 아들을 축복해 주시기를 요청하였습니다.

(형과 동생을 엇바꾼 야곱)

13,14절을 보십시오. “오른손으로는 에브라임을 이스라엘의 왼손을 향하게 하고 왼손으로는 므낫세를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향하게 하여 이끌어 그에게 가까이 나아가매 이스라엘이 오른손을 펴서 차남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펴서 므낫세의 머리에 얹으니 므낫세는 장자라도 팔을 엇바꾸어 얹었더라.”

요셉은 야곱의 오른 손으로 첫째인 므낫세를 축복하게 하고 왼 손으로 둘째인 므낫세를 축복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반대로 오른 손을 동생인 에브라임을 축복하고 왼손으로 형인 므낫세를 축복하였습니다. 오른 손은 권능의 손으로 왼손보다 우선시합니다. 야곱은 차자를 장자보다 우선시하였습니다.

(목자요 구원자 하나님을 의지하여 축복하다)

“15. 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16.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야곱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출생으로부터 자신을 기르신 하나님,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두 아이에게 복을 주었습니다. 야곱은 그들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손으로 칭하기를 원하며 번성하도록 축복하였습니다. 자신을 기르신 하나님은 목자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건지신 하나님은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창세기에 처음으로 목자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이 나옵니다. 야곱은 조상이 만난 하나님과 자신이 만난 하나님을 요셉의 아들들에게 주었습니다. 우리가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물려주어야할 것은 무엇입니까? 재산이 아닙니다. 바로 나의 하나님을 물려주어야합니다. 내가 믿는 하나님을 물려줄 때 그들은 자립적이 됩니다. 나를 키우신 목자 하나님, 환난에서 건지신 구원자 하나님이 그들도 키우시고 건지실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경외하는 하나님을 그들에게 물려주어야 합니다.

(동생 에브라임을 형으로 축복하다)

17-19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그 아버지가 오른손을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은 것을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여 아버지의 손을 들어 에브라임의 머리에서 므낫세의 머리로 옮기고자 하여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아버지여 그리 마옵소서. 이는 장자이니 오른손을 그의 머리에 얹으소서. 하였으나 그의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며 이르되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 그도 한 족속이 되며 그도 크게 되려니와 그의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의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요셉은 아버지가 동생인 에브라임을 형인 므낫세보다 앞세워서 축복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기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오른 손을 므낫세에게로 옮기고자 하였습니다. 아버지에게 므낫세가 장자이니 오른 손을 므낫세에게 얹으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나도 에브라임이 장자인 것을 안다고 말하면서 므낫세도 축복하지만 아우인 에브라임이 므낫세보다 더 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이것도 참으로 놀랄 만한 일입니다. 역사가 바뀌는 아주 중요한 순간입니다. 이 축복을 통하여 에브라임이 형이 되었습니다.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에브라임에게서 많은 왕들이 나왔습니다. 야곱은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열두 아들로 포함시키는 파격적인 일을 하더니 이제는 동생과 형을 바꾸는 일을 하였습니다. 왜 하나님은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요?

(역전의 원리)

여기에는 역전의 원리가 들어있습니다. 장자가 앞서는 것은 당연합니다. 성경에서도 장자를 축복하고 장자에게 두 배의 유산을 주도록 나옵니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전통이 깨질 때가 있습니다. 첫째가 자신의 축복의 가치를 모르고 안일해지거나 세상적이 될 때입니다. 에서와 야곱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서는 당연히 형이어서 장자의 축복이 그에게로 가야하지만 그는 영적인 가치를 몰랐습니다. 장자의 축복을 팥죽 한 그릇에 팔아먹고 가나안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빼앗아서 야곱에게 주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곱은 12아들이 있습니다. 열두 아들의 장자는 르우벤입니다. 그러나 그는 서모와 잠을 자서 장자의 축복을 빼았겼습니다. 둘째 셋째인 시므온과 레위도 혈기를 부려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였습니다. 야곱은 아들에게서 장자의 명분을 옮겨서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을 축복하였습니다.
우리는 축복이 뒤바뀔 수도 있다는 놀라운 비밀을 알게 됩니다. 이는 복음의 특징을 잘 말해줍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역전의 역사요 뒤바뀌기도 하는 역사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이런 역전의 원리가 나타납니다. 태종은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입니다. 세종은 태종의 셋째 아들입니다. 이들은 차남들이 쟁취하여 얻은 것도 있지만 첫째가 축복을 계승하지 못하여 다른 사람이 차지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예수님도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먼저 되었다고 방심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축복을 당연한 것처럼 여기다가 나중에는 빼앗깁니다. 우리는 차자로 태어났다고 슬퍼할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으면 장자의 축복도 받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요 은혜입니다. 우리는 이런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아야합니다. 그 주권을 믿고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장자로 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메시야를 영접지 않고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서 장자의 축복을 이방 나라에게서 옮기셨습니다. 계시록에 보면 에베소 교회에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많은 칭찬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복음 진리를 수호하고 부지런히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첫사랑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정론의 함정)

저는 예정설을 믿는 어떤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예정설을 믿기 때문에 자신의 구원은 이미 따 놓았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이런 근거에 기초하여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엇갈리게 축복하셔서 오히려 천국 가는 것을 막으십니다. 우리는 항상 깨어서 지금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구원은 우리가 태어나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 가운데 언제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계선교에 영국과 미국을 귀하게 쓰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안일해졌을 때 하나님은 세계선교의 촛대를 한국으로 옮기셨습니다. 이제 한국이 안일해지면 하나님을 다시 촛대를 다른 나라로 옮기십니다. 우리는 축복이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처음 사도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좌우편 자리는 정해진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들에게 먼저 된 자는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이 세계선교에 힘쓰지 않았을 때 세계선교는 바로 평신도들과 사도 바울과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우리 유비에프에도 풀타임 목자들이 안일해졌을 때 평신도인 전요한 목자님을 통하여 유비에프가 계승되게 하셨습니다. 세계 대표도 평신도인 김아브라함 선교사님이 되었습니다. 참으로 신비로운 일입니다. 우리가 먼저 부르심을 받았다고 안일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늦게 왔다고 슬퍼하지도 말아야합니다. 언제든지 뒤바뀔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주신 단대 상대 백석대 캠퍼스 역사를 섬기지 않을 때 하나님은 다른 사람을 통하여 이 일을 이루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섬기면 다른 사람들이 받을 축복도 우리에게 옮겨 주십니다.

(요셉에게 두 배의 복을 주다)

20절을 보십시오. “그 날에 그들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이 너로 말미암아 축복하기를 하나님이 네게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 같게 하시리라 하며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나중에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축복받은 표상이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축복할 때에 에브라임 같고 므낫세와 같을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요셉은 야곱을 통하여 두 배의 복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장자의 복을 받았습니다. 자녀들이 삼촌들의 항렬에 들어간 자들입니다. 월반을 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나의 상태를 운명적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월반을 해서라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세계선교를 하였을 때 먼저된 베드로보다 세계선교의 주역으로 쓰셨습니다. 천안은 늦게 출발하엿습니다. 다른 유비에프보다 뒤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좀 더 시간을 주님께 드리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안 역사를 에브라임과 같고 므낫세와 같게 축복하여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가운데 늦은 나이에 늦게 신앙을 시작하신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늦게 신앙을 시작한 이들을 에브라임과 므낫세와 같이 먼저 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요셉에 대한 야곱의 애정)

21,22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또 이르되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려니와 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야곱은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그 후손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죽지만 하나님은 영원합니다. 야곱은 요셉을 특별히 더 사랑하여 세겜 땅을 더 주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현재 깨어서 믿음의 투쟁을 하는 가운데 요셉과 같이 두 배의 축복을 받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먼저 되었다고 안일하거나 교만하지 말고 깨어서 영적투쟁을 하는가운데 하나님의 복을 지속적으로 받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창세기 48장 강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야곱
말씀 창세기 48장 1-창세기 48장 33
요절 창세기 48장 5절 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창세기 48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52 [창세기] 창세기 50장 강해 요셉의 영광 오요한 2008-01-22
51 [창세기] 창세기 49장 강해 분량대로 축복한 이스라엘 오요한 2008-01-19
50 [창세기] 창세기 48장 강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야곱 오요한 2008-01-19
49 [창세기] 창세기 47장 강해. 이스라엘의 소망 오요한 2008-01-18
48 [창세기] 창세기 46장 강해 야곱의 애굽 이민 오요한 2008-01-15
47 [창세기] 창세기 45장 강해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오요한 2008-01-15
46 [창세기] 창세기 44장 강해 유다의 대속 오요한 2008-01-15
45 [창세기] 창세기 43장 강해 맡김으로 얻는 행복 오요한 2008-01-15
44 [창세기] 창세기 42장 강해 속이 깊은 요셉의 사랑 오요한 2008-01-14
43 [창세기] 창세기 41장 강해 총리가 된 요셉 오요한 200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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