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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47장 강해. 이스라엘의 소망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1-18 00:00:00
조회수 : 5,299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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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7장 강해 이스라엘의 소망
말씀 창세기 47장 1-창세기 47장 31
요절 창세기 47장 31절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아브라함과 이삭의 신앙 특징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순종의 신앙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순종을 행함으로 아브라함의 신앙은 완성됩니다. 이삭도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복을 받습니다. 요셉의 신앙은 우리가 지난 번 배운 것처럼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신앙입니다. 그러면 삼대 조상 야곱의 신앙은 어떤 신앙일까요? 창세기 저자는 야곱의 일생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27-35장까지 길게 기록합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야곱의 일생을 단 한 줄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가 임종시에 하나님께 경배하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죽었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서 저자에 따르면 야곱의 일생은 나그네 신앙을 갖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는 믿음입니다. 여러모로 절망적인 시대에 험난한 삶을 살았던 야곱의 소망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바로와 형들의 면담)

1-2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바로에게 가서 고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와 내 형들과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가나안 땅에서 와서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 그의 형들 중 다섯 명을 택하여 바로에게 보이니“

야곱은 자녀들과 함께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이 소식이 바로에게 들렸습니다. 요셉은 다섯 명의 형들을 택하여 바로와 면담을 추진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바로와 면담할 때 자신들은 목축업을 한다는 것을 밝히라고 합니다. 애굽 사람들은 목축업을 가증히 여깁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목축업을 한다고 하면 애굽인들과 구별되어 나일강 근처의 고센 땅에 살게 될 것입니다. 요셉은 지금 당장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장차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음적인 자세가 있었습니다.

(애굽인이 가증히 여기는 목축업)

3-6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요셉의 형들에게 묻되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 그들이 바로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목자이온데 우리와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고 그들이 또 바로에게 고하되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여 종들의 양 떼를 칠 곳이 없기로 종들이 이 곳에 거류하고자 왔사오니 원하건대 종들로 고센 땅에 살게 하소서 바로가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아버지와 형들이 네게 왔은즉 애굽 땅이 네 앞에 있으니 땅의 좋은 곳에 네 아버지와 네 형들이 거주하게 하되 그들이 고센 땅에 거주하고 그들 중에 능력 있는 자가 있거든 그들로 내 가축을 관리하게 하라”

형들은 요셉의 방향대로 그들이 목축을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바로에게 가증히 여김을 받게 되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살았습니다, 형들은 바로에게 고센 땅에서 살게 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바로는 형들의 요구대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고센 땅에 거하게 하였습니다.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신뢰하여 바로의 가축을 관리하게 해달라고 하였습니다.(1-6) 지난 주에 배운 것처럼 요셉이 이스라엘을 고센 땅에 거하게 한 일은 선견지명 있는 일입니다. 매우 잘한 일입니다. 이 방향에 의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430년 동안 선진국에 살면서도 선진국에 동화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정체성을 지키며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십계명과 십자가가 있는 땅)

이스라엘 백성이 고센 땅에 거하였듯이 우리가 거해야할 땅은 어디일까요? 십계명의 말씀 안에 거해야합니다. 우리가 십계명을 따라서 살면 사람들이 우리를 고리타분하게 여기고 자신들과 다르다고 가증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십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이 시대 세상 사람들과 달리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거짓말을 하여 농민에게 주는 직불금을 타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성적으로 순결하게 살아야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자살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합니다. 또한 우리는 십자가 안에 거해야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십자가, 회개의 십자가, 감사의 십자가, 사랑의 십자가, 순종의 십자가를 배워야합니다. 우리가 십계명과 십자가 안에 거하면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셔서 우리를 그리스도인으로 구별된 삶을 살게 도우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 빛과 소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복을 나누어주는 야곱)

7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자기 아버지 야곱을 인도하여 바로 앞에 서게 하니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매”

야곱은 드디어 바로를 만났습니다. 야곱은 바로를 축복하였습니다. 축복은 높은 자가 낮은 자를 하는 것입니다. 바로는 당시 최강대국 이집트의 왕입니다. 바로는 태양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스스로 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야곱은 늙은 이민자입니다. 타국에 온 이방인입니다. 바로에게 기대어 얻어 먹으러 온 사람입니다. 야곱은 비록 인간적으로는 초라하지만 이집트의 왕 바로를 축복하였습니다. 어떻게 초라한 야곱이 신과 같은 바로를 축복할 수 있었을까요?
야곱이 믿는 하나님이 바로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야곱이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바로는 태양신이라고 하지만 하나님은 태양을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은 이렇게 온 세상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야곱은 영적으로 바로보다 더욱 큰 위치에 있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당당함을 가지고 이집트의 왕 바로를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은 바로 왕 앞에서 전혀 기가 죽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야곱은 바로에게 더부살이 하러 온 것 같습니다. 그는 바로의 복으로 사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로가 자신을 먹여 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믿는 하나님이 바로를 먹여 살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야곱의 복이 바로와 이집트인에게까지 미쳤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야곱의 생각이 맞습니다. 야곱이 믿는 하나님이 바로에게 흉년을 대비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지 않았으면 바로는 굶어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를 볼 때 바로를 먹여 살리는 분은 야곱이 믿는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에게 물려준 야곱의 하나님이 바로와 애굽을 먹여 살렸습니다. 야곱은 내가 바로를 먹인다는 당당함을 가지고 바로를 축복하였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야곱은 지금까지 축복을 쟁취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장자의 축복, 아내의 축복, 자녀의 축복, 물질의 축복을 쟁취하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때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런 축복이 다 헛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이런 모든 축복을 받고도 하나님께 나를 축복해달라고 울며 간구하였습니다. 야곱이 마지막 얻고자 한 축복은 영생이었습니다. 하나님 자신이었습니다. 그는 그때 하나님을 소유하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을 소유한 후에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소유하자 심히 두려워하던 그가 담대해졌습니다.
야곱은 축복을 빼앗는 인생에서 축복을 나누어주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는 바로를 축복하고 열두 아들을 축복합니다. 요셉의 아들들을 축복합니다. 우리가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 한 분을 소유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축복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소유하였습니다. 그는 쇠사슬에 묶여서 죄수의 몸으로 재판관인 아그립바왕 앞에 섰습니다. 그는 아그립바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행전 26장 29절 이 얼마나 멋진 말입니까? 바울은 죄수의 몸으로 왕 앞에 섰으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복을 나누어 주기를 원하였습니다. 죄수의 몸으로 난파선에 탔을 때는 그들의 생명을 살려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소유할 때 어떤 사람 앞에서도 당당하고 복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축복하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시대 제사장으로서 내가 믿는 하나님을 통하여 복을 나주어 주어야합니다.

(험악한 삶을 산 야곱)

8-10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야곱에게 묻되 네 나이가 얼마냐? 야곱이 바로에게 아뢰되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 하고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야곱의 나이는 백삼십 살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175살까지 살았습니다. 이삭은 180살까지 살았습니다. 조상들의 나이에 비하면 야곱은 아직 어립니다. 야곱은 147살에 죽습니다. 그는 죽기 십칠년 전입니다. 야곱은 노년에 자신의 인생을 한마디로 요약합니다. 험악한 나그네 세월을 보냈다고 합니다. 야곱은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형이 자신을 죽이려고 하여 고향을 떠나 20년간 타향살이를 하였습니다. 외삼촌이 자신의 재산을 다 빼앗으려고하여 도망나왔습니다. 고향으로 가는데 고향에는 이십년 전에 죽이고자 했던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데리고 나오기도 하였습니다. 에서 문제를 해결하자 아들들이 세겜 사람을 죽여서 세겜 사람들에게 죽을 뻔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라헬의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간에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요셉이 짐승에 찢겨 죽은 줄 알고 슬프게 지냈습니다. 애굽에 갔던 시므온이 돌아오지 않자 시므온도 죽은 줄 알았습니다. 죽음을 칠년 앞두고 다시 고향 땅을 떠나서 애굽으로 와야 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힘든 세월을 보냈습니다.

(나그네 인생을 보낸 야곱)

이렇게 힘든 삶을 산 야곱이 어떻게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요? 야곱은 바로 하늘 나라에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이곳에서 자신이 조상들처럼 나그네의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야곱의 조상들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장막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집을 짓지 않고 텐트를 치고 살았습니다. 이들이 이렇게 캠핑 간 사람들처럼 텐트에서 살았던 것은 그들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달랐습니다. 놀랍게도 야곱만은 텐트 생활이 싫어서 집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숙곳에서 집을 짓고 세겜에서 땅도 샀습니다. 그는 이 땅에 정착하고자 하였습니다. 야곱은 집념이 강하여 많은 축복을 쟁취하였습니다. 장자의 명예도 얻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도 얻었습니다.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야곱에게 인생은 나그네라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이사가는 훈련을 시켰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첫 번째 가나안에서 메소포타미아로 이사가게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메소포타미아에서 세겜으로 이사하게 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세겜에서 가나안으로 이사하게 하셨습니다. 네 번째로 가나안에서 다시 애굽으로 이사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사를 자주하다 보면 우리가 가진 것을 거의 정리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마가목자님이 이사했습니다. 작은 집인데 이삿짐이 많았습니다. 이삿짐을 나르는 사람들은 이삿짐을 싸면서 어느 것을 버려야하는지 몰라서 다 가져 갔습니다. 마가목자님은 나중에 쓸모없는 것을 많이 버렸다고 합니다.
강철왕 카네기는 인생은 나그네라는 사실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엄청난 부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 자신의 손을 관 밖으로 내어놓으라고 유언했다고 합니다. 그는 빈 손으로 세상에 왔다가 빈 손으로 하늘나라에 간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네 번이나 이사를 하게 하심으로 이 세상은 나그네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해야함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때는 모든 것을 버리고 가야합니다. 야곱은 이런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영접하였을 때 험난한 어려움을 극복하였습니다.

(거룩한 나그네)

야곱이 인생을 나그네로 보았는데 세상 사람들도 인생은 나그네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최희준의 나그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인생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나그네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 정을 두지 말라고 합니다. 박목월의 나그네라는 시도 있습니다. 나그네는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로 걸어갑니다. 구름에 달가듯이 나그네는 걸어갑니다. 구름에 가는 달을 보셨나요? 구름에 가는 달은 거침없이 갑니다. 전혀 미련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런 나그네 같은 자유함이 있어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다른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왔다가 하나님 나라로 가는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산 소망을 가진 거룩한 나그네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우리를 거룩한 나그네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힘든 세상을 살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는 비결도 바로 이런 산 소망에 있습니다.
욥은 동시다발적인 재앙을 겪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에 재산을 잃고 자녀들이 다 죽습니다. 거기에 더하여 몸에는 악창이 났습니다. 기와조각으로 몸을 긁어야했습니다. 아내는 욥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자살하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욕하지 않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욥이 어떻게 그 고난을 견딜 수 있었을까요? 욥기 1장 21절입니다.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그는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가는 나그네 인생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게 하는 하늘 소망)

국민대를 섬기는 북악 ubf에 신파울러스 목자님이 계십니다. 그분의 아버지는 노름 중독자입니다. 그는 아버지의 노름으로 초등학교 때 빚쟁이를 피하여 여섯 번이나 이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 한번은 부모님들이 심하게 싸워서 쥐약을 가지고 자살하라고 낙동강에 갔다고 합니다. 쥐약을 먹으려고 하는데 라면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죽었을 경우에 자신의 시체를 보고 슬퍼하는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자살을 포기하고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는 라면에 대한 소망, 어머니에 대한 소망으로 자살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자살합니까? 현재가 어렵기 때문입니까? 어려움은 옛날이 현재보다 더욱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이 자살하는 더욱 근본적인 이유는 현재의 어려움이 아닙니다.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해도 현실이 더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아이엠에프 경제 위기가 지나간지 10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경제위기를 만나자 많은 사람들이 자살하였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자살하였습니다. 아산 ubf의 서목자도 그때 사업을 하다가 빚을 지고 파산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운전을 하다가 핸들을 중앙선으로 꺾어 자살하고자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나라의 소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지금은 아산ubf 센타의 목자요. 단국대 교수로 살고 있습니다.
지금 다시 경제 위기가 오고 있습니다. 주식은 반토막이 나고 환율은 급등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다시 자살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시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아야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만들어줍니다.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만들어줍니다.
저는 대전에 홍 목자님의 간증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고혈압이 있습니다. 한번은 혈압이 오르고 숨이 가빠왔습니다. 죽음이 바로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는 그때 아무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양도 아내도 자녀도 떠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단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것은 내가 지금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는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후에 베드로전서 일장 산 소망에 대해서 말씀을 전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으로 고혈압의 질병을 이겨냈습니다. 제가 주일날 예배를 마친 후에 기도합니다. 그때마다 빼놓지 않고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곳에 있는 모든 분들이 천국에 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 소망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진정한 가장 요셉)

11,12절을 보시시오. “요셉이 바로의 명령대로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에게 거주할 곳을 주되 애굽의 좋은 땅 라암셋을 그들에게 주어 소유로 삼게 하고 또 그의 아버지와 그의 형들과 그의 아버지의 온 집에 그 식구를 따라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더라”

요셉은 이스라엘 가족에게 고센 지방에 있는 라암셋을 주어 살게 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과 아버지에게 먹을 것을 주어 봉양하였습니다. 요셉은 열한째 아들이었지만 야곱 가문의 실질적인 가장이었으며 진정한 효자였습니다. 자녀는 늙어서 힘없고 연약한 부모를 공양해야합니다.

(철저한 요셉)

13-22절을 보십시오.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애굽 땅과 가나안 땅이 기근으로 황폐하니 요셉이 곡식을 팔아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있는 돈을 모두 거두어 들이고 그 돈을 바로의 궁으로 가져가니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이 떨어진지라 애굽 백성이 다 요셉에게 와서 이르되 돈이 떨어졌사오니 우리에게 먹을 거리를 주소서 어찌 주 앞에서 죽으리이까 요셉이 이르되 너희의 가축을 내라 돈이 떨어졌은즉 내가 너희의 가축과 바꾸어 주리라 그들이 그들의 가축을 요셉에게 끌어오는지라 요셉이 그 말과 양 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고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되 곧 그 모든 가축과 바꾸어서 그 해 동안에 먹을 것을 그들에게 주니라 그 해가 다 가고 새 해가 되매 무리가 요셉에게 와서 그에게 말하되 우리가 주께 숨기지 아니하나이다 우리의 돈이 다하였고 우리의 가축 떼가 주께로 돌아갔사오니 주께 낼 것이 아무것도 남지 아니하고 우리의 몸과 토지뿐이라 우리가 어찌 우리의 토지와 함께 주의 목전에 죽으리이까 우리 몸과 우리 토지를 먹을 것을 주고 사소서 우리가 토지와 함께 바로의 종이 되리니 우리에게 종자를 주시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며 토지도 황폐하게 되지 아니하리이다 그러므로 요셉이 애굽의 모든 토지를 다 사서 바로에게 바치니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기근에 시달려 각기 토지를 팔았음이라 땅이 바로의 소유가 되니라 요셉이 애굽 땅 이 끝에서 저 끝까지의 백성을 성읍들에 옮겼으나 제사장들의 토지는 사지 아니하였으니 제사장들은 바로에게서 녹을 받음이라 바로가 주는 녹을 먹으므로 그들이 토지를 팔지 않음이었더라”

요셉이 총리의 직책을 어떻게 수행하는지 나옵니다. 애굽에서는 기근이 더욱 심하여 사방에 먹을 것이 없고 기근으로 황폐하여졌습니다. 요셉은 곡식을 팔아서 애굽 땅과 가나안 땅에 돈을 모두 거두어들였습니다. 돈이 떨어지자 곡식을 팔아서 말과 양떼와 소 떼와 나귀를 받았습니다. 가축이 떨어지자 다음에는 모든 토지를 받고 곡식을 팔았습니다. 토지가 떨어지자 그들의 몸을 사서 종으로 삼았습니다. 전국토를 국유화하였습니다. 전 애굽인을 바로의 종으로 삼았습니다. 요셉은 이들에게 종자를 주어 농사를 짓게 하였습니다.

(은혜는 철저한 것)

23-26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 내가 바로를 위하여 너희 몸과 너희 토지를 샀노라 여기 종자가 있으니 너희는 그 땅에 뿌리라 추수의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상납하고 오분의 사는 너희가 가져서 토지의 종자로도 삼고 너희의 양식으로도 삼고 너희 가족과 어린 아이의 양식으로도 삼으라 그들이 이르되 주께서 우리를 살리셨사오니 우리가 주께 은혜를 입고 바로의 종이 되겠나이다 요셉이 애굽 토지법을 세우매 그 오분의 일이 바로에게 상납되나 제사장의 토지는 바로의 소유가 되지 아니하여 오늘날까지 이르니라.”

요셉은 애굽인이 농사를 지어서 오분의 일을 바로에게 세금으로 내게 하였습니다. 이를 토지법으로 만들었습니다. 요셉은 총리 생활을 철저히 하였습니다. 공짜로 주지 않고 철저히 값을 받고 주었습니다. 그런 후에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 우리는 요즘에 은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의 시대에 가장 큰 문제는 은혜의 개념이 변질된 것입니다. 은혜는 내가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이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은혜를 아는 자는 율법적으로 사는 자보다 더 율법을 잘 지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행위적으로 살인을 하지 않았으나 마음으로는 남을 미워하였습니다. 이들은 사람들 앞에서는 거룩했으나 혼자 있을 때는 음란한 삶을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을 가리켜서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사는 제자들은 다릅니다. 제자들은 겉도 거룩하지만 속도 거룩한 자들입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들은 때로는 율법에 자유로운 것 같지만 더 율법을 잘 지킵니다. 행동으로만 간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음욕을 품지 않습니다. 은혜는 율법을 더 철저히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는척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요셉을 통해서 진정한 은혜는 값을 철저히 치르는 것임을 배웁니다. 또한 상대방에게 값을 치르게 하는 것임을 배웁니다. 평신도의 삶은 은혜 속에서 철저히 자신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저는 광주 기독병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 병원은 직원은 세례교인 이상이라야 될 수 있습니다. 이 병원에 감사를 했는데 세상 병원보다 더 심하게 비리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문제가 있을 때마다 모두가 은혜로 하자고 넘어갔습니다. 그들은 은혜가 더 율법주의자보다 더 충성하는 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은혜를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넘어가는 것으로 오해하였습니다. 잘못된 은혜가 그 병원을 썩게 하고 정화기능을 상실하게 하였습니다.
진정한 은혜는 요셉처럼 철저한 것입니다. 철저함 속에서 감사함도 있습니다. 철저함 속에서 기쁨도 있습니다. 이렇게 철저히 값을 치르는 것 속에서 은혜가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에 매인 생활에서 은혜의 생활을 배웠습니다. 은혜의 생활을 배우며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은혜 속에서 율법을 지키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은혜 속에서 십자가 지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사도 바울은 은혜로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겸손하였습니다.

(가나안 땅을 소망하는 야곱)

28-31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애굽 땅에 십칠 년을 거주하였으니 그의 나이가 백사십칠 세라. 이스라엘이 죽을 날이 가까우매 그의 아들 요셉을 불러 그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네게 은혜를 입었거든 청하노니 네 손을 내 허벅지 아래에 넣고 인애와 성실함으로 내게 행하여 애굽에 나를 장사하지 아니하도록 하라. 내가 조상들과 함께 눕거든 너는 나를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에 장사하라 요셉이 이르되 내가 아버지의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야곱의 나이는 백사십칠 세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죽을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허벅지 아래 손을 넣고 맹세를 시켰습니다. 이스라엘서는 중요한 일을 맹세시킬 때 이렇게 하였습니다. 야곱은 자신을 애굽에 장사하지 말게 하였습니다. 자신을 조상의 묘지 막벨라굴에 장사하게 해달라고 맹세시켰습니다. 그는 이 맹세를 하자 침상에서 하나님께 경배하였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것을 믿음의 행위로 보았습니다.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히브리서 11장 21절) 히브리서 저자는 야곱의 인생을 이 한 마디로 요약하였습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을 소망하며 죽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죽었습니다. 그는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살았습니다. 야곱처럼 이 세상에 집념이 강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야곱이 깨달은 한 가지는 이 세상은 나그네 길이요. 본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결국은 본향 하나님 나라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소망을 나의 소망으로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산 소망을 가지고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창세기 47장 강해 이스라엘의 소망
말씀 창세기 47장 1-창세기 47장 31
요절 창세기 47장 31절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창세기 47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52 [창세기] 창세기 50장 강해 요셉의 영광 오요한 2008-01-22
51 [창세기] 창세기 49장 강해 분량대로 축복한 이스라엘 오요한 2008-01-19
50 [창세기] 창세기 48장 강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야곱 오요한 2008-01-19
49 [창세기] 창세기 47장 강해. 이스라엘의 소망 오요한 2008-01-18
48 [창세기] 창세기 46장 강해 야곱의 애굽 이민 오요한 2008-01-15
47 [창세기] 창세기 45장 강해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오요한 2008-01-15
46 [창세기] 창세기 44장 강해 유다의 대속 오요한 2008-01-15
45 [창세기] 창세기 43장 강해 맡김으로 얻는 행복 오요한 2008-01-15
44 [창세기] 창세기 42장 강해 속이 깊은 요셉의 사랑 오요한 2008-01-14
43 [창세기] 창세기 41장 강해 총리가 된 요셉 오요한 200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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