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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성경66권강해서

창세기 43장 강해 맡김으로 얻는 행복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8-01-15 00:00:00
조회수 : 4,955

문제지풀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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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3장 강해 맡김으로 얻는 행복
말씀 창세기 43장 1-창세기 43장 34
요절 창세기 43장 14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여러분 야곱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야곱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그는 한마디로 말하면 집착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명예에 집착하여 맏아들의 명분을 빼앗았습니다. 그는 사랑에 집착하여 사랑하는 라헬을 아내로 얻었습니다. 그는 물질에 집착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사랑하여 자기에 깊이 집착했습니다. 야곱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었습니다. 대부분은 죽으면 집착이 끝나죠? 하지만 라헬에 대한 야곱의 집착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라헬의 아들 요셉에게 집착하여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해 입혔습니다. 요셉을 잃어버리자 라헬의 하나 남은 아들 베냐민에게 집착합니다. 야곱은 아들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양식을 살 수 있다고 말하자 베냐민이 없어지면 자신은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야곱은 베냐민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는 베냐민을 하나님께 맡김으로 마음에 하나님을 소유하고 행복을 얻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욕망을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야곱의 그런 욕심으로 인하여 그는 열두지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욕망이 지나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집착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욕망을 갖되 하나님께 맡기는 비밀을 배워야합니다.

(야곱 집에 양식이 떨어짐)

“1.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2.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하였습니다. 야곱의 가족은 요헵의 형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었습니다. 야곱은 자녀들에게 다시 애굽에 가서 양식을 사오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아들 유다는 야곱에게 양식을 사오기 위해서는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베냐민을 애굽에 데려가야하는 이유)

3-5절을 보십시오.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유다는 아우를 데리고 가야 양식을 사올 수 있다고 다시 말합니다. 여기서 아우는 막내 베냐민을 말합니다. 이전에 형들이 양식을 애굽에서 사올 때 요셉은 시므온을 인질로 잡고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베냐민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다시 곡식을 살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가지 않으면 형들은 애굽에서 붙잡혀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야곱에게 꼭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한다고 말합니다.

(베냐민으로 인한 야곱의 괴로움)

“6. 이스라엘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7.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질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묻는 말에 따라 그에게 대답한 것이니 그가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야곱은 아들들에게 어찌하여 베냐민이 있다고 이야기하여 나를 괴롭게 하느냐고 책망을 합니다. 아들들은 요셉이 아우가 있느냐고 물어보아 있다고 대답한 것이지 누가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할 줄 알았느냐고 합니다. 유다는 다시 한번 베냐민을 데리고 가게 해달라고 야곱에게 간청합니다. 하지만 라헬을 사랑하는 야곱은 라헬의 하나 남은 아들 베냐민을 보내는 것이 큰 괴로움이었습니다. 그의 괴로움은 라헬에 대한 집착에서 온 것입니다.

(베냐민을 책임지는 유다)

8,9절을 보십시오.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베냐민을 보내지 않으면 곡식을 사올 수 없고 야곱의 가족은 다 굶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베냐민을 보내야 곡식을 사오고 곡식을 사와야 가족이 다 살 수 있습니다. 유다는 야곱에게 베냐민을 보내는 것이 다 사는 길이니 베냐민을 보내달라고 간청합니다. 유다는 자신이 베냐민을 담보하겠다고 합니다. 은행에서는 재산을 담보물로 잡고 돈을 빌려 주지요? 돈을 못 갚으면 담보물을 압류합니다. 마찬가지로 유다는 베냐민을 담보하여 책임지겠다고 말합니다. 만약에 베냐민이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이 대신 희생하겠다고 합니다. 유다는 마치 예수님과 같은 담보물이 됩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생명을 담보하셔서 죽을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야곱을 회개시키는 하나님의 강권적 사랑)

“10.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11.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12.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13.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야곱은 유다의 말을 듣고 베냐민을 보내고자 결단합니다. 사실 야곱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베냐민을 보내지 않으면 아들들이 곡식을 사러 가지 못 합니다. 그들은 다 굶어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야곱은 고육지책으로 베냐민을 보내고자 결단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마지막 남아있는 베냐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도록 강권하십니다. 지나친 집착은 우상 숭배입니다. 하나님은 이를 여러 상황에서 이런 집착을 포기하도록 강권하십니다. 야곱은 베냐님을 보내면서 선물도 함께 보내서 애굽 총리의 마음을 풀고자 합니다. 야곱은 가나안 땅의 아름다운 소산 곧 유향과 꿀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를 가지고 가라고 합니다. 돈도 갑절을 가지고 가고 전에 자루에 넣어둔 돈도 다시 가져가라고 합니다.

(베냐민 잃을 것을 각오함)

14절을 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야곱은 베냐민을 잃으면 잃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베냐민을 포기하였습니다. 베냐민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그는 베냐민에 대한 집착을 버렸습니다. 야곱이 어떻게 베냐민에 대한 집착을 버릴 수 있었을까요? 야곱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서원을 갚으며 전능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기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성애적인 전능입니다, 어머니의 자궁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모든 것을 책임지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죄를 오래참으시고 감당하시는 전능자이십니다.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사랑의 전능자이십니다. 야곱은 하나님 한 분에게 모든 것을 맡겼습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베냐민을 하나님께 내려놓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베냐민을 포기함으로 그는 잃었다고 생각한 시므온과 요셉을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굶어 죽어가던 가족들이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을 소유함으로 참 행복을 얻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맡기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것이 행복을 얻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야곱에게 과거에도 이렇게 하나님께 맡기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라헬에게 집착이 강한 것을 아시고 라헬의 아들 요셉도 맡기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채색 옷을 입히고 사랑하였습니다. 양치는 일도 시키지 않고 집에만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야곱의 인간적인 사랑은 요셉을 병들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요셉을 포기하지 않자 다른 아들들을 통해서 요셉을 애굽에 팔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야곱에게 요셉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맡기게 하셨습니다. 야곱이 하나님 한 분만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요셉을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은 요셉을 더 잘 키우셨습니다. 그를 더 강한 사람, 순결한 사람, 겸손한 사람, 남을 섬기고 배려하는 사람으로 키우셨습니다.
자, 어떻습니까? 야곱이 요셉을 더 잘 키울 수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요셉을 더 잘 키울 수 있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잘 키우십니다. 하나님이 더 잘 돌보십니다. 다시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에게 묻겠습니다. 우리가 자녀를 더 잘 볼 수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자녀를 더 잘 돌 볼 수 있습니까? 직장을 가지신 분들에게 묻겠습니다. 내가 돈을 더 잘 벌 수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돈을 더 잘 벌 수 있습니까? 학생들에게 묻겠습니다. 내가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습니까? 목자들에게 묻겠습니다. 내가 양을 더 잘 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양을 더 잘 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질문에 대답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자녀도 하나님께 맡겨 드려야합니다. 부모는 자식을 사랑해야합니다. 자식에 대한 책임을 져야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면 자식을 망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식을 돌보되 하나님께 맡기고 다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동역해야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합니다. 그들은 자식에 대한 집착이 대단합니다. 결국은 자식을 망칩니다.
엘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자식을 더 사랑하다 자식도 죽도 자신도 죽었습니다. 어떤 분은 공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합니다. 예배도 빠지고 소감모임도 빠지고 학과 공부를 해야 공부를 잘 할 수 있을 것 같이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하나님이 그 공부를 도우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공부해야 공부도 더 잘 됩니다.
오은혜 목동은 재수 시절에도 예배를 빠지거나 소감 모임을 빠지지 않았습니다. 수능점수에서 처음 모의고사 점수보다 백점이 더 올라갔습니다. 임고때도 새벽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위해서 시험을 맡겼습니다. 단 한 번에 붙게 하셨습니다. 자, 여러분은 무엇을 선택하겠습니까? 우리 모두 모든 것을 하나님께 포기함으로 내려놓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광주의 박다윗 목자님은 자녀를 돌보며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네가 키우냐 내가 키우지?” 자녀를 하나님께 맡겼을 때 하나님을 그 자녀를 누구보다 잘 키워주셨습니다. 아멘!

(맡김으로 생명을 얻은 사람들)

성경에는 이렇게 내려놓음으로 행복을 얻은 사람들을 많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할 때 이삭을 드림으로 뭇별처럼 많은 자손을 얻었습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다는 믿음으로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고 왕에게 나가서 그와 민족을 살렸습니다. 제자들은 가족과 직장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랐을 때 사도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려놓지 못해서 영생을 얻지 못하고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돈을 내려놓지 못하여 영생을 잃었습니다. 원숭이를 잡을 때 맨손만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항아리에 바나나를 넣어둔다고 합니다. 원숭이가 바나나를 잡으면 사람이 와도 도망을 못 간다고 합니다. 손에서 바나나를 놓으면 도망가야 살 수 있고 나무에 많이 달린 바나나를 먹을 수 있는데 놓지를 못합니다. 결국 원숭이는 사람들에게 잡혀서 생명을 잃게 됩니다.
우리도 사탄이 우리에게 유혹하는 세상적인 것을 놓지 못하여 결국은 죽음을 당합니다. 법정 스님이 쓴 ‘무소유’라는 책도 포기함으로 얻는 행복을 말합니다. 그는 난초를 키우는 데 난초에 집착하여 항상 자유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난초를 포기하고 남에게 주었을 때 그는 큰 행복을 누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는 난초를 포기하고 집착에서 해방되었지만 얻은 것이 없습니다. 그도 소유에 매인 것에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그와 다릅니다. 우리는 세상 것을 포기하고 그 마음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얻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려놓음이고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용규 선교사의 ‘내려 놓음’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50만권이나 팔렸으니 아마 읽으신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는 하버드 박사 출신으로 몽골에 선교사로 가서 몽골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몽골 이레 교회 평신도 목자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것을 하나님께 내려 놓았을 때 하나님을 소유하고 행복을 느꼈다고 간증합니다. 그는 박사학위도 포기하고 미국 생활도 포기하고 몽골에 선교사로 나왔을 때 박사학위보다 더 귀한 하나님을 소유하였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몽골대 교수요. 교회의 목자로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는 이것을 체험한 후에 앞날의 방향과 계획, 먹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물질, 자신의 생명과 건강, 결과를 예상하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 자신이 지은 죄와 남을 판단하는 교만, 명예와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기자하는 욕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자하는 노력까지 다 하나님께 내려놓았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을 때마다 그는 하나님을 만나고 이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다고 간증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더 잘하십니다. 하나님이 왕이십니다. 하나님이 온 세상을 통치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내려 놓고 맡겨드려야 합니다.

(두 번째 요셉과 만난 형들)

“15.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16. ○요셉은 베냐민이 그들과 함께 있음을 보고 자기의 청지기에게 이르되 이 사람들을 집으로 인도해 들이고 짐승을 잡고 준비하라 이 사람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니라 17. 청지기가 요셉의 명대로 하여 그 사람들을 요셉의 집으로 인도하니”

요셉의 형제들은 예물과 갑절의 돈을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다시 요셉을 만났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이 온 것을 보고 청지기에게 형들을 집에 인도하여 들이게 하였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고 점심 만찬 먹을 준비를 하게 하였습니다. 청지기는 요셉의 말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요셉의 집에서 형들의 두려움)

“18. 그 사람들이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매 두려워하여 이르되 전번에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일로 우리가 끌려드는도다 이는 우리를 억류하고 달려들어 우리를 잡아 노예로 삼고 우리의 나귀를 빼앗으려 함이로다 하고 19. 그들이 요셉의 집 청지기에게 가까이 나아가 그 집 문 앞에서 그에게 말하여 20. 이르되 내 주여 우리가 전번에 내려와서 양식을 사가지고 21. 여관에 이르러 자루를 풀어본즉 각 사람의 돈이 전액 그대로 자루 아귀에 있기로 우리가 도로 가져왔고 22. 양식 살 다른 돈도 우리가 가지고 내려왔나이다 우리의 돈을 우리 자루에 넣은 자는 누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나이다”

형들은 과거 자신들의 자루에서 나온 돈의 일 때문에 요셉이 자신들을 강제로 잡아 노예삼을까 염려하였습니다. 그들은 먼저 요셉의 청지기에게 자신들이 곡식 값으로 치른 돈이 자신들의 자루에서 나왔는데 자신이 한 일이 아니고 누가 넣었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 돈의 두 배나 더 가져 왔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들은 요셉의 호의조차도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요셉의 청지기는 이들을 위로합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가르치는 요셉)

23절을 보십시오. “그가 이르되 너희는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 재물을 너희 자루에 넣어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너희 돈은 내가 이미 받았느니라. 하고 시므온을 그들에게로 이끌어내고”

요셉의 청지기는 그 돈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셉의 청지기도 요셉의 영향을 받아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청지기는 하나님의 주권 편에서 이 모든 사건을 바라보기를 원하였습니다. 좋으신 하나님이 돈을 넣어주신 것이니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안심하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형들은 요셉의 집으로 인도되어 발을 씻고 나귀들도 먹이를 먹었습니다. 정오가 되어 요셉이 집에 오자 그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형들이 요셉에게 엎드려 절함)

26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집으로 오매 그들이 집으로 들어가서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땅에 엎드려 절하니”

다시 한 번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전에는 열 명의 형이 절하였습니다. 이제는 동생 베냐민을 포함한 열한 명이 절하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열한 별이 절한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해와 달이 절한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한 발 한 발 꿈을 이루어가십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아버지 야곱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을 보고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 베풀기를 원한다고 축복하였습니다.

(정을 억제하는 요셉)

30-32절을 보십시오. “요셉이 아우를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 급히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서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와서 그 정을 억제하고 음식을 차리라 하매 그들이 요셉에게 따로 차리고 그 형제들에게 따로 차리고 그와 함께 먹는 애굽 사람에게도 따로 차리니 애굽 사람은 히브리 사람과 같이 먹으면 부정을 입음이었더라”

요셉은 베냐민을 보았을 때 사랑하는 마음이 복받쳐서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자신이 요셉임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울 곳을 찾아 안방으로 들어가 울고 얼굴을 씻고 나왔습니다. 그는 정을 억제하고 형들을 대하였습니다. 아직 형들의 훈련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그들의 시기심과 거짓됨을 훈련시키고자 합니다. 요셉은 정을 억제하고 형들의 죄악을 완전히 회개시키는 사랑을 하는 속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시기심을 극복한 형들)

33,3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요셉 앞에 앉되 그들의 나이에 따라 앉히게 되니 그들이 서로 이상히 여겼더라. 요셉이 자기 음식을 그들에게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른 사람보다 다섯 배나 주매 그들이 마시며 요셉과 함께 즐거워하였더라.”

요셉은 형들만 따로 식사를 차리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나이에 따라서 앉혔습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음식을 주되 베냐민에게는 다섯 배를 더 주었습니다. 요셉은 베냐민에 대한 편애를 눈에 보이게 나타냈습니다. 형들이 이에 대해서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고자 하였습니다. 아직도 동생을 시기하는지 알고자 하였습니다.
과거 아버지 야곱은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입혀서 편애했습니다. 형들은 이를 시기하여 요셉을 팔았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이런 시기심이 해결되었는지 알아보고자 하였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시기심이 사라집니다. 사도 바울은 사랑은 시기하지 않는다고 말하였습니다. 진정으로 사랑하면 상대방이 잘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아들이 잘되면 아버지는 시기하지 않고 아들을 자랑합니다. 형들은 베냐민을 시기하지 않고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시기하는지 아니면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몸이 하나인데 머리는 둘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두 사람일까요? 이를 판단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의 머리를 때렸을 때 함께 아파하면 한 사람이고 아픔을 모르면 두 사람입니다. 사랑이란 이처럼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것입니다. 한 입이 밥을 먹을 때 한 몸이면 다른 입도 함께 즐거워합니다. 형들은 마치 한 몸과 같이 형제들과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요즘에 이용규 선교사는 ‘더 내려 놓음’이라는 또 다른 책을 썼습니다. 그는 여기에서 ‘자기애’(自己愛)와 ‘자기의’(自己義)까지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자기애와 자기의를 십자가에서 죽이라고 합니다. 그때 내안에 주님이 살아 일하신다고 말합니다.
사실 야곱이 내려놓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려놓도록 강권하신 것입니다. 라헬을 내려놓고 요셉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베냐민을 내려놓도록 강권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멘!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문제는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독소입니다. 우리는 이런 자기애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합니다.
자기에 대한 집착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언젠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자기애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자매와 함께 즐거워하는 사람이 십자가를 지는 사람입니다. 이들이 부활의 영광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자기애와 시기심의 문제를 깊이 다루고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인 원인이 시기심입니다.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은 받았으나 자신의 제물은 받지 않자 시기하여 아벨을 죽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아벨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고자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고 하는데 자신을 죽인 자는 천천이라고 하자 시기심이 발동하였습니다. 그는 시기심으로 다윗을 죽이고자할 할 뿐 아니라 자신도 악령이 들어 괴로워하였습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악령이 들어옵니다.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를 범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도 시기심입니다. 예수님은 무리들로부터 인정을 받는데 상대적으로 자신들의 인기는 떨어졌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죽여서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가장 반대하는 사람들이 바로 유대인들입니다. 이들이 반대하는 이유도 시기심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자 그렇지 못한 자신들이 시기하여 핍박합니다. 우리가 시기심을 극복하는 것은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맡기는 자의 복)

예수님이 열두 사도를 부르셨을 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축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포기한 자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가게 하십니다. 현세에서도 백배의 축복을 주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위해서 직장과 가족 모든 것을 버렸을지라도 버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자기애입니다. 자기 영광입니다. 그들이 왜 십자가에서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까? 베드로가 왜 계집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까? 베드로가 왜 부활의 주님을 두 번이나 만나고 물고기 잡으러 갔습니까? 그것은 예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고 물어보셨습니다. 이는 베드로 자신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느냐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그렇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베드로가 사도행전에서 변화된 것은 이런 주님이 자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입니다. 가룟유다가 왜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까? 그는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그러나 꼭 돈만은 아닙니다. 정말 그가 돈을 사랑했다면 그가 돈을 던지고 자살하여 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였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깊은 자기 사랑이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버리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기를 포기하도록 강권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자아를 십자가에서 죽게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자아까지 포기하고 나의 생명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더욱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창세기 43장 강해 맡김으로 얻는 행복
말씀 창세기 43장 1-창세기 43장 34
요절 창세기 43장 14절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창세기 43장 강해 끝입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52 [창세기] 창세기 50장 강해 요셉의 영광 오요한 2008-01-22
51 [창세기] 창세기 49장 강해 분량대로 축복한 이스라엘 오요한 2008-01-19
50 [창세기] 창세기 48장 강해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한 야곱 오요한 2008-01-19
49 [창세기] 창세기 47장 강해. 이스라엘의 소망 오요한 2008-01-18
48 [창세기] 창세기 46장 강해 야곱의 애굽 이민 오요한 2008-01-15
47 [창세기] 창세기 45장 강해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오요한 2008-01-15
46 [창세기] 창세기 44장 강해 유다의 대속 오요한 2008-01-15
45 [창세기] 창세기 43장 강해 맡김으로 얻는 행복 오요한 2008-01-15
44 [창세기] 창세기 42장 강해 속이 깊은 요셉의 사랑 오요한 2008-01-14
43 [창세기] 창세기 41장 강해 총리가 된 요셉 오요한 2008-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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