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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2018 여름수양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작성자 : john444
작성일 : 2018-07-14 00:00:00
조회수 : 364
인간 중에 완벽한 인간이란 있을까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 위인전에 나온 사람들은 완벽할까요? 예를 들어 에이브러햄 링컨을 떠올려봅시다. 남과 북으로 분단되고 전쟁까지 일어난 극단적인 상황에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 혼란스런 상황에서 4년간의 전쟁을 끝내고,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남부의 전후 회복에 힘썼습니다. 이러해서 링컨은 현재까지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그럼 완벽한 사람이었을까요? 최근의 미국 역사학자들은 에이브러햄 링컨이 아주 완벽하지만은 않다고 합니다. 링컨은 실제로 노예주 확산만을 반대했지, 노예제도 자체를 반대하지 않았고, 이 마저도 줏대가 없는 정책에 오락가락하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가슴에 손을 얹어보세요. 여러분 중에 죄 없으신 분 있으십니까? 없는 분 손 들어주세요. 없죠? 맞아요. 결국은 우리 모두가 sinner. 즉 죄인이죠. 자, 여러분의 좌우앞뒤를 봐주세요. 여러분의 좌우앞뒤 사람들 중에 죄 없다고 손 든 사람이 있나요? 네 없습니다. 여러분의 형제자매, 부모자식 친구는 사실상 죄인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한다는 게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참 힘듭니다. 스스로를 죄인으로 인정하고,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 이게 참 힘듭니다. 죄 문제를 어떻게 대해야 되냐? 이것이 우리에게 큰 숙제가 됩니다. 오늘의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숙제를 해결하는 법으로 인도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Part 1: 정죄하는 우리, 정죄받는 우리





이번 말씀 1, 2 절을 보십시오. 1,2절에서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초막절 행사가 끝난 후에 다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감람산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서 쉬시기도 하시고 기도하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오셨습니다. 백성들은 말씀을 듣고자 하여 아침부터 성전에 나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나 길에서나 바닷가에서나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명절 때도 말씀을 가르치고 명절이 끝나고도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선 말씀 전하시는 것에 좋은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3절에서 6절을 보십시오. 3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6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오늘의 말씀에서 누가 나옵니까. 음행하다 잡힌 여인이 나옵니다. 그리고 누가 나옵니까. 그 여인을 돌팔매질하려 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이 나옵니다. 구약에 따르면 음행하는 자는 죽여버리라 나오지요? 레위기 20장 10절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그리고 분명 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분노는 상당했을 것입니다. 지금 와서도 우리가 간음이라 하면 먼저 드는 감정이 뭐가 있을까요? 역겨움, 분노, 부도덕. 전부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여러분이 간음하면 처음 드는 감정이랑 그들은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이런 간음, 음행을 오히려 미화화하는 내용이 각종 매체에서 많이 나와서 걱정입니다. 저도 영화 즐겨보고, 만화도 보고, 드라마도 가끔 봅니다. 이러한 현재의 흐름 때문에 간음이 미화화될 까봐 저는 걱정하고 있습니다. 표현의 자유는 엄연히 있고, 이 부분에 대한 의견은 다들 개개인마다 다를 것이라 믿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시해야 할 점은 바로 픽션은 픽션입니다. 그리고 더 확실히 해야 할 점은 성경에서 간음한 자는 돌로 쳐 죽이라고 했다는 점입니다.



간음은 분명 죄입니다. 분명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오시기 전까지의 그 머나먼 여정과 기나긴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이 감람산까지 퍼지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전한 말씀들, 선과 악, 죄와 벌의 말씀을 그들이 익히 들었을 것입니다. 6절에 보면 이런 것이 나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이것은 분명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익히 알고 있었으니 나온 말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데리고 온 그 여인은 예수님을 낚기 위한 하나의 미끼였습니다. 그 미끼는 분명 머리는 헝클어지고, 어디 한두 군데 피가 나고, 옷도 찢어지고 난리가 났겠지요. 그들은 여자를 말씀 전하는 한 가운데 세웠습니다. 그리고 여자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5절 말씀 보십시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아까 구약에서의 말씀 기억하시죠? 레위기 20장 10절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의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



이제 예수님을 심판대 위에 세운 것입니다. 율법대로 그 여인을 때려죽일 것인지, 아니면 율법을 어기면서 그 여인에게 관용을 베풀 것인지. 그러자 예수님께선 무슨 말씀을 하셨습니까?



Part 2: 돌 던질 수 없는 죄인, 우리



7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죄 없는 자. 우리 중에 죄 없는 자 있습니까?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되돌아보라는 의미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아라! 넌 분명 죄를 지은 자이다! 그러니 네가 감히 누군가를 정죄할 수 있느냐! 분명 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마음 속엔 그렇게 들렸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에 음욕을 품어도 간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그것은 살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것을 어기면 우리도 죄인입니다. 사실상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죄 때문에 우린 사실상 날 때부터 죄인입니다. 죄인이 다른 사람을 정죄하면 자신도 정죄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도 사람을 정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대신 사랑해야 합니다.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책망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똑 같은 죄인이니, 같은 죄인으로써 이해와 사랑으로 서로의 죄를 보듬어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피에 서로 정죄하는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살펴보십시오. 우리도 같은 죄인입니다. 나도 똑 같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없는 자입니다. 다른 사람을 정죄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정죄를 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정죄보다 이해와 사랑을 하는 성령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권면해 야합니다. 연약한 자의 연약함을 감당해야 합니다.





제 친구 이야기를 잠깐 해도 될까요? 참 예전에는 친구라고 하기도 민망한 친구라 생각했죠. 돈이나 학용품 빌려가서 안 갚고, 맨날 시험 중에 답 알려달라고 떼쓰고, 맨날 pc방 가자고 한 그런 친구였죠. 전 중학교 내내 그 친구를 떼어내려 했지만, 어차피 이웃이라 그것도 쉽지 않더라고요. 결국은 전 그 친구를 뒤에서 험담하는 선에서 끝나고, 우린 고등학교 때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특성화 고등학교, 저는 인문계 고등학교를 갔죠. 그 이후 저는 그를 잊고 살았습니다. 그 친구가 제 앞에 나타난 것은 작년 초쯤, 그 친구가 육군 장교 임관된 후 저에게 연락한 것입니다. 밥 한 번 사겠다. 그 동안 너한테 신세지고 뺏은 게 있으니 내가 한 번 사야 하지 않겠나. 솔직히 저는 찜찜했습니다. 그 친구의 전력을 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그 친구랑 함께 중국집에서 요리 먹으며 느낀 것은, 아 이 친구는 왠지 나와 같다. 왠지 모를 동질감이 든다. 저는 그 때 아직 신앙을 갖기 전이라 그 동질감이 뭔지 몰랐습니다. 그렇지만 그 친구에 대한 악감정은 그날 그냥 사라지고 이해와 우정만이 남아버렸습니다. 저도, 그 친구도 그날 참 마음이 편해졌던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신앙을 가지게 된 지금, 그때 그 동질감이 같은 죄인으로써 느끼던 동질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죄인으로써 동질감을 느끼게 된 것을 저는 마음으로나마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는 신앙을 가진 후 이 동질감을 통해 죄인을 정죄하고 헐뜯지 않고, 죄인을 같은 죄인으로써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Part 3: 죄사함을 주니 죄짓지 말라



자 그럼 그 여인으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이제 그 여인을 때리던 사람들은 다 가고 여인과 예수님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을 사람들의 정죄에서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제 그 여인은 정죄에 대한 죄책감을 안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남았습니다.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돌을 던질까요? 예수님은 돌을 던질 수 있습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죄 없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근데 11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사함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간음한 자를 죽이라는 하나님이 이제는 용서하라고 하니까 이율배반적인 말씀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구이언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일구이언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선 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왜냐하면 예수님이 여인을 대신하여 정죄를 받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시고 저주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부끄럽게 옷을 발가벗기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을 사랑하여서 대신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여인을 심판하지 않고 용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기억도 하지 않으십니다. 다윗은 간음죄 살인죄 거짓말하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죄를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이런 죄사함을 받고 행복하여 시편에 기록하였습니다. 시편 32장 1절입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우리가 죄사함을 받으면 끝인가요? 정답은 no입니다. 죄 지은 자들은 죄사함 받는다고 끝난다. 절대 아닙니다. 11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그리고 12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예수님은 죄사함을 받은 후에 새 삶을 살라고 방향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아야 됩니다. 스스로의 죄를 깨우치고 죄를 깊게 뉘우치는 회개. 그리고 다시는 죄를 안 짓는 것. 이렇게 해야지 죄에 대한 책임이 사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빛입니다. 그리고 빛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빛은 투명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낮의 밝음을 통해 투명하신 예수님께선 저희를 보실 것입니다. 빛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 정죄받으신 덕에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빛의 예수님을 따르며, 정죄하지 말며, 회개하며 기도하는 삶. 그런 삶을 살아야 우리는 죄 짓지 않는 삶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저도 참 죄 많은 사람입니다. 부족할 거 없는 어릴 때를 지나 중고등학교 때 학업에 대한 상당한 압박을 받아왔습니다. 중학생 때는 공부도 썩 못했거든요. 그 압박이 꼬이게 되어서 저는 인터넷 악플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게 되며 어두움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저 바리새인들처럼 다른 사람들, 심지어는 제가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은 골백번 헐뜯고 정죄하였습니다. 또한 저도 불신에 빠져 우울함과 어두운 생각, 부정적 생각, 두려움에 빠져 세월아 네월아 하기도 하였습니다. 술도 열심히 마셨고요. 뭔 생각으로 혼자서 보드카 사와서 병나발 불다가 엎어지기를 반복하였습니다. 전 분명 제 나태함, 제 안위, 제 편안함, 저 자신이 제 우상으로 되었습니다. 저는 실패랑 바깥세계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니 제 부정적 생각은 저만의 아늑한 공간을 마련해주었고, 저는 실패를 경험할 수 없는 맨 밑바닥에 처박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저는 제 경배의 대상이 예수님이 아닌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관악 수양회에서 알게 된 예수님의 희생을 깨닫게 된 순간, 제가 얼마나 부끄럽고 십자가의 무게를 욕되게 한 죄인인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불신, 그 우울함. 예수님께서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하며 용서하셨습니다. 이제 주님 안에서 제 우울함을 떨치기로 하였습니다. 이제 그 맨 밑바닥에 처박힌 제 몸과 마음을 끌어올리기로 하였습니다. 그래. 이제 담대해지자. 경배의 대상은 돈도, 사랑도, 공부도 아닌 하나님인데, 까짓 거 두려울 게 뭐 있느냐? 저는 하나님 앞에서 저를 보고, 스스로의 양심을 일깨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최우선으로 사랑해라. 회개하라.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근데 참. 죄 짓지 않는 것이 참 힘든 것 같습니다. 인간의 한계란 건가요. 이따금 다시 우울함이 절 지배하기도 합니다. 그 우울함과 어두운 마음이 저를 다시 아늑한 맨 밑바닥에 다시 처박아버립니다. 두려움이 저를 휩싸도록 내버려두는 죄악을 행한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찾지만, 마냥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 안에서 우울함, 어두움과 싸우는 것이 쉬워졌습니다. 신명기 32장 11-12절 ‘마치 독수리가 자기 보금자리를 어지럽게 하며 자기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의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그의 날개 위에 그것을 업는 것 같이’ 제가 날아가기 위한 너풀거림의 과정이란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에 빠지더라도 지금 저는 매일 일어날 때마다, 자기 전에 죄를 뉘우치고 회개하며, 다시는 죄에 안 빠지게 힘을 주시도록 성령님이 함께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양식 말씀을 통해서 매일 예수님의 길을 공부하고, 일어날 때와 자기 전 10분씩 기도와 말씀암기를 통해 빛의 방향을 찾고자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빛을 믿으면 그 빛이 제 어두움을 밝혀줄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기도와 참회의 시간을 통해 저 자신을 되돌아보고 제가 예수님의 십자가에 욕된 일을 했는지 상기의 시간을 늘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죄지은 사람이란 것을 까먹지 말고 명심하십시오. 죄를 잊지 말고 회개하며, 하나님 앞에서 “전 다신 죄 짓지 않겠습니다!” 라고 공표해야 합니다. 우리는 죄 짓기 너무 쉬운 존재들입니다. 만약 우리가 죄에 다시 빠질 것 같다? 그럴 때는 십자가에서 그 지독한 고통을 받으신 예수님을 떠올리십시오. 우리의 죄를 위해 그 고통을 겪으셨는데, 감히 또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이제는 죄 짓지 않게 살겠다!” 라고 공표하세요. 회개하며 죄 짓지 않겠다고 하는 것. 그런 거룩한 삶을 사는 연습은 여러분을 죄에서 한 발짝 떨어지게 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령을 받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사함을 받은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육신을 죽이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은혜를 절대 잊지 마세요. 그리고 예수님이란 빛을 따라서 우리 모두가 변화할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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