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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2018 여름수양회 물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작성자 : john444
작성일 : 2018-07-14 00:00:00
조회수 : 471
2018년 7월 6-8일 여름 수양회 말씀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_포인트 : 순종
말씀: 요한복음 2장 1-11절, 요절: 9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 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여름 수양회 첫 날,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하는 말씀은 “가나혼인잔치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방법”입니다. 본문의 등장인물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연회장과 하인들, 신랑신부와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방법”이라는 주제는 등장인물 가운데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혼인잔치에서 일어졌던 일들을 세세히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과 방법을 어떻게 보여주셨는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1. 초청받으신 예수님
(요 2:1)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요 2:2)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초청이란 말은 보편적인 단어 (사랑, 은혜 등) 듣기만 해도 좋은 말 같습니다. 왜냐하면 초청이란 누군가의 마음속에 “내가” 의미있는 사람이기에 기쁜 날 함께하고자 하여 불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수양회에 우리를 초청해 주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의 시간을 수양회 때 함께 누리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은 기쁨이 있는 가나 혼인잔치에 초청받으셨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예수님을 소중한 분으로 생각하고 혼인잔치에 초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소중하게 여기고 초청한 것은 물이 포도주로 변하여 하나님 영광이 나타난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2.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요 2:3)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요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요 2: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혼례잔치에서 흥을 돋구는 포도주가 모자라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부족함”이란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어머니는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 하였나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포도주가 없는 현실 문제를 당장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포도주를 만들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날 때, 순종의 환경이 준비되지 아니하였다는 말입니다.

마리아의 입장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말씀한 마리아가 아들인 예수님에게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대답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까 하고 말입니다.

시무룩, 서운함, 어이없음 !! 등등이 떠오른 단어였습니다.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들인 네가 (예수) 어미에게 무안함을 안겨줘? 이런 생각이 들것 같았습니다. 또한 마음에 예수를 향한 미움이 자리 잡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말씀하시며 예수님의 말씀을 신뢰했습니다. 또한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다는 예수님 말씀의 의중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때를 먼저 예비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증거로 마리아의 “우리에게 포도주가 없다”가 아닌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는 말씀을 들 수 있습니다. 마리아 입장에서 우리란 “예수님이 있는 나”였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장에서 이미 참 빛이요,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임을 외친 요한을 알고 있습니다. 그의 외침을 통해 마리아 뿐만 아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하나님 말씀을 이미 마음에 품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기쁨을 주는 포도주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온전한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리아는 포도주가 떨어짐으로 인해 세상적인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저들의 현실문제는 예수님만이 해결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이후 예수님은 순종의 환경이 갖춰졌을 때 저들의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3. 예수님의 말씀과 순종
(요 2: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요 2: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요 2: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예수님께서는 하인들에게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아귀까지 가득 채우고,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상황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분명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는 걸 알고 계셨을 텐데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고개를 갸우뚱 정도 하며시키는 대로 했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 같으면 뭐?/뭐래는겨?/뭐라카노?/(포도주가 없는 이 상황에 뭔 헛소리여 의미를 담은) 등등 비꼬는 말로 대답을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인들은 어떠한 질문 없이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에 물을 아귀까지 가득 채우고 연회장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의 말씀에만 순종했던 것입니다.

물을 아귀까지 채우는 것은 고된 노동입니다. 수고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물을 떠서 포도주를 원하는 연회장에게 갖다주는 것은 비상식적입니다. 그 행위로 인해 하인들은 맞을 수도 있고 미친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 순종을 통해서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가깝게 체험한 산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순종을 할 때 합리적인 틀에서, 이해되는 틀에서 결정하였습니다. 저 당시의 하인이 저였다면 순종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포도주가 없는 상황에서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는 말씀을 이해하지 못해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신에 돈을 주어 포도주를 더 사오라고 말씀하신다면,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포도송이를 더 따오라고 말씀하신다면, 포도주 대신에 다른 마실 것을 구해오라 말씀하신다면 순종했을 것입니다. 왜그럴까요?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고 현실적으로 의도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역사해 오셨습니다. 우리도 돌아보면 우리의 이성을 초월해서 하나님이 일하신 것을 체험하는 것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과 저는 하나님의 영광, 은혜의 중심에 있었던 경험의 때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생각할 수 없는 범위에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았습니까?

성경에서 순종에 대한 이야기는 참으로 값진 결과로 이어져 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타락한 제사장 엘리이지만 말씀에 기초하여 그의 말을 순종한 한나가 이후 사무엘을 출산하였습니다. 소경된 자와 앉은뱅이는 믿음대로 되어 앞을 보고 일어나 걸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말씀에 온전히 의지한 순종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순종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앞서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을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제가 한 단어를 드리겠습니다...................................“개”.........................................

개에 대해선 모르는 이가 없지만 사실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우리가 같은 개의 이미지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반화된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모두가 같은 단어, 이미지, 특징 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경험과 현재의 배경에 의해 가장 적합한 이미지를 생각하고 정의를 합니다.









이처럼 같은 이야기를 들어도 다양하게 해석하고 그것만이 맞는 개념으로 생각하며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순종”이란 무엇인가로 돌아 왔을 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순종의 개념이 아닌, “그런 것일 것이다”라는 막연한 추측이나 자기 판단적인 순종이 아닌,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순종의 의미를 정확히 배우고 행해야 함을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신 순종은 이러한 것이었습니다.

왕하 23:18 &#8211 왕이 단 위에 서서 여호와 앞에서 언약을 세우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께 순종하고 그의 계명과 법도와 율례를 지켜 이 책에 기록된 이 언약의 말씀을 이루게 하리라 하매 백성이 다 그 언약을 따르기로 하니라

순종을 위해선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하는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은 순종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과 뜻을 다하여 그의 계명과 법도를 지켜야 하며, 생활 속에서 말씀을 이루며 (행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전적으로 보이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히브리서 5장 7-10절을 통해 행함이 있는 순종을 보이셨습니다.
히 5:7 &#8211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순종을 통해서 꼭 배워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 또한 하나님 말씀을 따라 십자가의 고난을 감당하신 사실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려 마음과 뜻을 다해 하나님 말씀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자기생각과 의지가 아니였다는 의미입니다.

4. 순종의 산물_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
(요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요 2: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요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예수님을 통해 혼례잔치에 있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은 제자들 뿐만 아니라 그 혼인 잔치에 있던 많은 사람들도 알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물을 포도주로 바꾼 사건을 통해서 소문으로만 듣던 예수의 존재와 본질을 사람들은 직접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 혼인잔치의 주인공은 신랑신부가 아닌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셨습니다. 사람들은 포도주에 관심을 갖는데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꾼 예수님께 관심을 가졌습니다.


적용
어릴 적 저는 굉장한 말썽꾸러기였습니다. 가만히 있지 못하고 뛰어다니는 통에 머리, 턱, 다리 등 안 찢어진 곳이 없었습니다. 시끄럽고 산만한 제가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내성적으로 변화했습니다. 그 변화의 한 이유는 바로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책임감을 가져야 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전교부회장, 부반장, 동아리 회장 등 소위 말하는 감투는 저의 행동을 자제해야 하는 장치 같았습니다. 하나의 직책이 도덕적인 행동을 조절해주는 순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직책이 마음과 뜻을 다해 하고 있는지를 판가름 할 순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그러했습니다. 책임감 있게 예배를 드리지만 마음과 뜻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예배의 참석은 습관이었습니다. 그의 계명과 법도를 실생활에 관철시키며 복음을 전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의를 가지고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종의 환경을 만들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값진 말씀을 마음으로 깊게 영접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는 순종이란 말을 요리조리 잘 피하며 살아온 자였습니다. 마음에 불편함이 있으면 대놓고 “할 수 없다”, “아닌 것 같다”,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으니 다음에 하겠다” 등의 식으로 누군가의 권유나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특별히 믿음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소감을 써 보는게 어때요? “지금은 좀 바빠서 다음에 하겠습니다”, 선교사로 안수기도 받는 것이 어때요? “제가 무엇이관대 선교사라는 무거운 직분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다른 분들에게 양보하겠습니다” 등.

이 대답의 배경은 겸손함이 아니었습니다. 말씀에 기초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나의 상황과 배경에 의해 판단된 계산적인 답변이었습니다.
독일에 있을 때 예배의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외로움과 내 능력의 한계를 경험 할 때 드레스덴 센터를 접하게 되었고 그곳에서의 말씀 공부와 예배는 저를 소생시키는 생명의 물과 같았습니다. 베를린과 드레스덴이라는 거리상의 문제가 있었지만 하나님의 말씀만을 생각했을 때 결단하는 과정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연구가 중단되어 한국에 돌아오려 할 때, 친구가 있는 네덜란드에 머물다 올 계획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드레스덴에서의 말씀공부와 예배, 드레스덴 자체수양회를 포기해야 했는데, 그 때 마리아 목자님께서 말씀에 기초하여 드레스덴에 머물라고 하셨고 최종적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였을 때, 말씀 강사로서 받았던 하나님의 은혜와 그 사랑은 지금 삶의 하나님을 향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큰 기둥으로 박혀 있습니다. 그 기둥이 마태복음 11장 28-30, 6장 33절이며 이는 귀국 후 삶의 방향과 직장 등에 기준이 되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자세의 변화, 마음 중심의 변화는 말씀에 기초한 순종임을 체험한 것입니다. 또한 순종없이 믿음 성장의 한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우선 예수님께 관심을 갖는 것이, 예수님을 내 마음에 초청하는 것이 은혜의 시작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때에 우리가 믿음으로 행할 때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고 예측할 수 없는 기쁨과 사랑을 체험하리라 믿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획을 신뢰하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서로 전심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고자 한다면,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순종”, 내가 알고 있는 순종이 아닌 하나님 말씀에 기초한 순종으로 함께 나아갑시다.
성령의 그릇을 잘 보존하고 보수하여 성령님께서 임하실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기도하고 순종을 결단할 수 있는 수양회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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