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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02성탄 2강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6-07-18 00:00:00
조회수 : 1,131
2002년 성탄 말씀 제 2 강
말씀 / 요한복음 3:16-21
요절 / 요한복음 3:16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

저는 한 달 전 어떤 사건을 계기로 학생을 가르치는 문제에 대해 깊은 패배의식에 젖어 들었습니다. 온 몸에 힘이 빠졌니다. 저는 그때 오늘 한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말씀을 잡고 아침도 금식하고 세 시간을 기도했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이 와 닿고 기쁨이 생겼습니다. 그 후에 저에게 절망적인 상황은 긍정적으로 변했습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의 승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이 말씀은 우리에게 실제적인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저는 요한 복음 삼장 십육절 말씀을 가지고 주일 예배에서만 두 번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말씀을 가지고 열 번을 더 전하라고 해도 전할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중요하고 제가 좋아하는 말씀입니다. 저만 좋아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닌 사람치고 요한 복음 삼장 십육절을 암송하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많은 사람에게 구원과 생명을 주는 말씀입니다. 성경 전체의 요절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말씀입니다. 2002년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 말씀을 통해서 성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16절을 암송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세상은 하나님을 떠나 멸망 가운데 있는 세상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셨습니다. 천지 만물 가운데 인간만을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인간을 창조하시고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셔서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사단의 꼬임에 빠져서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부담으로 생각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선악과를 주셨는데 인간을 미워해서 선악과를 주신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불신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인간의 마음에는 자의식이 생기고 두려움이 생기고 원망이 생기고 무의미가 생겼습니다. 인간에게 가난이 생기고 질병이 생기고 죽음이 생겼습니다.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도 원망과 불평이 생겼습니다. 그뿐 아닙니다. 죽은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영원히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온갖 실패를 한 사람들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살다가 온갖 질병으로 고통하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다가 사람들과 갈등하며 온갖 마음에 상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세상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죄는 미워하시지만 죄인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사랑의 근원이십니다. 하나님에게서 사랑의 샘물은 끊임없이 솟아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깊이 사랑하셨습니다. 이는 아버지가 자신을 떠나 고생하는 아들을 사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을 이해하셨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무지한가를 깊이 이해하셨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죄를 지으면서도 죄인 줄도 모릅니다. 인간은 자신이 병들었으면서도 병들은 줄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연약함을 아셨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하여 죄를 잘 짓는가를 이해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인간이 회개하기만 하면 다시 모든 것이 새로워질 수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동물은 회개할 수 없고 사단도 회개할 수 없지만 인간은 회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을 소망을 가지고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는 증거가 있습니다. 사랑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에는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을 때 사랑을 느낍니다. 선물은 사랑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어느 선생은 지금부터 십년 전에 처음 학원에 선생으로 들어왔는데 일년도 안된 초자인데 설날 보너스로 백만원을 받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만원을 보너스로 받는 때였습니다. 그도 처음에는 오만원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확인하니 백만원이었다고 했습니다. 이로 인해서 그는 감동을 하고 목숨을 다해 학원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원장이 자신의 인격을 모독하는 말을 해도 조금도 그 사랑을 의심치 않고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옛날에 전두환 대통령은 장세동씨에게 떡값으로 3,4억원씩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후 장세동씨는 전두환 대통령의 문제까지 책임을 자신이 뒤집어 쓰고 전두환 대통령을 대신하여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이렇듯이 사랑은 증거가 필요합니다. 저는 저의 어머니의 사랑을 확신합니다. 어머니는 저를 위해서 관절이 있는 몸으로 먼거리에서 참외를 사가지고 오기도하셨고 푼푼히 모은 돈으로 전세금을 주시기도 하시고 농을 사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도 우리에게 사랑의 증거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신 것입니다. 독생자라는 말은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주셨다는 말은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천박하여 이 사랑의 증거가 얼마나 큰 지 모릅니다. 차라리 과에서 성적이 수석이 되게 하든지 아니면 아파트 한 채를 사 주시든지 불치의 병을 고쳐주시든지 백억원 정도 돈으로 주신다든지 하면 사랑이 금세 와 닿을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너무나 육적이고 물질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자신의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불에 태워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을 보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는 줄 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까지 드린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로 외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양을 목을 따서 죽이고 그 피를 쏟아서 제단에 붓듯이 하나님은 자신의 외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갖은 고통 가운데 죽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피를 쏟게 하셨습니다. 이것 외에 더 사랑의 증거가 필요 없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위해서 자신의 아들까지도 희생하셨습니다. 이는 아들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자신의 외아들보다 더 소중하게 여겼다는 말입니다. 경제학에서 기회비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 가지를 할 때 다른 하나를 포기하는 데서 사용되는 비용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오늘 주일예배에 나왔습니다. 그러면 이 시간에 해야할 일을 포기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잠자는 것을 포기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놀러가는 것을 포기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친구와 만나는 것을 포기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친척집에 가는 것을 포기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을 포기하는데는 희생이 따릅니다. 그것이 기회비용입니다. 여러분이 예배에 온 것은 다른 것을 하는 기회비용보다 예배를 더 중요시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희생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보다 우리를 더 귀히 여겼다는 말입니다. 우리를 외아들 예수님보다도 더 사랑하여 주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 속에는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까지 아끼지 않고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것은 다 주실 것인데 그렇지 않을 떄가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말씀하십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뇨?" 하나님께서 외아들을 주셨다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딸려 있는 다른 모든 것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얻었는데 다른 것은 얻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병에 걸리고 때로는 실패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난하게도 삽니다 양들이 도망 가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은 먼저 그릇을 만들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믿음의 내면성을 먼저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 다른 물질적인 것도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지난 주에 청주에 있는 고종 사촌형을 만났습니다. 사촌형은 나의 사년 선배입니다. 충북대를 수석으로 들어간 수재입니다. 지금은 약국을 하고 있습니다. 그 형은 남매를 두고 있습니다. 첫째 딸은 공부를 잘하여 과기원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이 이번 수능을 보았는데 253점을 맞았습니다. 자식 때문에 한 걱정이었습니다. 나한테 와서 상담 좀 해달라고 여러 번 부탁을 해서 없는 시간이지만 내서 갔다 온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서 보니 아들은 살이 얼마나 쪘는지 100킬로그램이나 나갑니다. 공부를 하는데 방해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잡념이라고 말합니다. 무슨 잡념이 그렇게 떠오르느냐니까 만화에서 본 것, 게임한 것이 떠오른 다고 했습니다. 형수 되시는 분은 아들을 위해서 한해 과외비만 2000만원은 투자했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 조카와 이야기하는 가운데 공부하고자 하는 절박함이 없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형수 되시는 분은 아들을 너무나 잘 대해주었습니다. 먹을 것은 마음껏 먹게 하고 용돈도 마음껏 주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다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것은 형수가 아들을 극진히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받은 조카는 사람이 쓸모 없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안일하게 되었고 삶의 뜨거운 열정이 없었습니다 공부를 하고자 하는 의욕이 없었습니다. 형님 내외분은 이들을 지금 서울 기숙학원에 보내서 재수를 시키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형님 내외분에게 한가지 충고를 했습니다. 두 달 동안 노가대를 시키라고 하였습니다. 그후에 공부에 소원이 있으면 3월부터 재수를 시키고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군대를 보내라고 하였습니다. 군대를 갔다와서 재수해도 늦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 부모님은 자식을 사랑한다고 했지만 그런 인간적인 사랑이 오히려 사람을 버려놓고 말았습니다. 그 따뜻한 사랑을 받고 나서 아들은 병들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가서 조카가 자신에게 잘 대해준 어머니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사건건 어머니를 원망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자신을 망쳤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참 사람이 무엇인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지금 당장 돈 많이 주시고 지금 당장 출세하도록 도와주시지 않으십니다. 이것은 사람을 망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서 먼저 믿음의 내면을 훈련시키십니다. 이는 성경 속의 사람들을 보아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면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다음에 축복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요셉 다윗 엘리야 모세 안 그런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그 속에서 더욱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야 합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은 다른 모든 것도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다만 때가 되지 않아서 기다리실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축복을 달라고 기도하기보다 축복을 감당할 내면을 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시기하기까지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마음에 분노가 일어나실 것입니다. 이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시기하는 사랑을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특별히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우상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보다 강대국을 더 의지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기쁨을 얻기보다 세상적인데서 기쁨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시기하셨습니다. 여러 강대국을 일으키셔서 이들을 짓밟으셨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면 왜 이렇게 고난을 당하나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조차도 극심한 고난을 받으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닙니다. 사랑의 반대는 무관심입니다. 미움은 사랑의 또다른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뜨겁게 사랑하셨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도 컸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징계하시지만 사생아는 내버려 두십니다.
저는 2002년을 출발하며 한가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작년에 우리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 정리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올해 들어서 5년이 넘게 절대적인 기도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임에 어떤 목자도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습니다. 주님과 주님의 양들을 젊음과 시간과 물질을 다 드려서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병이 났습니다. 저는 어떻게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분이 잠깐 다른 생각했다고 그러실 수 있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올해 천안역사보고서를 쓰면서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도 나도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의 눈에는 눈물이 흘려 목이 매었씁니다.
우리 가운데 어떤 분도 은혜가 충만하면 고난이 오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받을 자격이 되시기 때문에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도 사십일 금식 기도를 하신 후에 사단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할수록 십자가가 다가 왔습니다. 우리는 이런 고난과 십자가 속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도 주시지만 고난도 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입니다. 독생자의 이름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는 대조적인 결과가 나옵니다. 믿지 않는 자는 멸망을 받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멸망을 시키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죄로 인하여 멸망 상태에 있다는 말입니다.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죄로 인하여 가난과 질병과 그리고 두려움과 슬픔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혹은 부유하고 건강하게 사는 것 같아도 사망 권세가 그 마음 속에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영원히 유황불 속에서 고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자는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습니다. 영생은 현재적인 의미와 미래적인 의미 두 가지가 있습니다. 현재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 곧 성령님이 내 마음 속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첫째 내 마음 속에 영원한 기쁨과 평안이 임합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부활하여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부자가 되고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까? 맞습니다. 부유하고 건강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이요. 내면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하고 병드는 것이 믿음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때로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병들게도 하십니다.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고 내면이 성숙하면 건강도 주시고 부도 주시고 권세도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원하노라."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먼저입니다. 다음에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성장하고 영혼이 잘 되고자 힘써야 합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을 보내신 것은 심판을 받지 않고 구원을 얻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심판을 받고 구원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누구입니까? 믿지 않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영생을 얻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인종 성별 신분 차별없이 모두가 구원을 얻는데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너무너무 좋은 것을 믿지 않습니다. 이상하죠? 이 사람들은 나름대로 핑계가 많습니다. 믿어지지 않는다. 잘 몰라서 못믿겠다. 너무 신화적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들이 믿지 않는 이유를 딱 두 가지로 말씀하십니다. 19,20절을 보십시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첫째 이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어둠을 사랑하고 빛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합니다 죄에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마치 칼에 꿀을 묻힌 것과 같습니다. 나중에는 죽더라도 당장 죄의 쾌락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쾌락을 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빛은 하나님을 말합니다. 이들은 빛을 싫어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악을 계속하여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악을 미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죄를 미워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적인 잔재미를 추구하는 죄악을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을 사랑해야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행위가 드러난다는 것은 죄를 드러내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려면 죄를 회개해합니다. 죄에 대한 회개 없이 예수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회개란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자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우리가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자백하면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회개할 줄을 모릅니다. 죄를 회개하면 자신이 죽는 줄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다른 사람의 정죄를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죄를 가슴 속 깊이 꼭꼭 숨겨둡니다. 하지만 여기서 죄를 드러내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의 날 죄가 드러나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자비로우셔서 어떤 죄라도 용서하시고 구원하여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를 지식적인데서 찾는데 그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지적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도덕적인 데 있는 것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좇는 자는 예수님께 와서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안에서 행한 선을 드러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고 자신이 지은 죄를 드러내고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영생을 주시고 구원을 주십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증거로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고난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누구든지 바로 예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십니다. 구원을 주십니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게 하십니다. 우리 모두 독생자를 주신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지구가 거꾸로 돌아도 우리에게 변치 않는 한 가지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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