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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05 눅2장 구유에 누인 아기

작성자 : 오요한
작성일 : 2005-12-25 00:00:00
조회수 : 1,103
2005년 성탄 메시지 구유에 누인 아기

말씀 누가복음 2장 1-20절
요절 2장 12절

메리크리스마스! 거의 한달 동안 메스컴에서 케롤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케롤송을 틀어주며 기뻐한 것은 자신들의 이익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 대목을 맞이하여 돈 한번 실컷 벌어보고 즐겨보자는 것입니다. 이들에게도 돈을 잘 벌 수 있고 즐기는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크리스마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유익을 찾는 사람은 예수님을 왕으로 모실 수 없습니다. 이들로 인하여 예수님은 구유에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의 빈 방에 모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제일장 참 된 영광과 평화는 어디서 오는가?

1절에 보면 당시는 가이사 아구스도가 다스리는 시대였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는 옥타비아누스를 말합니다. 가이사란 시이저를 말하고 아구스도는 존엄한 자를 말합니다. 옥타비우누스는 시이저의 후계자로서 자신을 시이저라고 부르게 하고 존엄한자라는 호칭을 얻었습니다. 그는 최조의 제정 로마를 이룩한 왕으로 유명합니다. 이전에 로마는 민회와 원로원을 중심으로 한 공화정 정치를 하였습니다. 이 공화정 때에 로마는 1-3차에 걸쳐서 카르타고와 포에니 전쟁을 치릅니다. 백여 년에 걸친 전쟁에서 로마인들은 평화를 갈망합니다. 그런 때를 이용하여 황제정을 하고자한 사람이 가이사 곧 시이저입니다. 그러나 시이저는 공화정을 원하는 자신의 심복인 브루터스에 암살을 당합니다. 그후에 시어저에 의해서 양자로 지명을 받은 옥타비아누스가 이차 삼두정치에서 패권을 잡고 로마의 최초황제가 됩니다. 그가 제정로마를 위해서 겉으로 내세운 명분은 팍스 로마나입니다. 팍스 로마나는 로마의 강력한 힘에 의한 평화를 이루자는 것입니다. 사실 절대 권력은 평화를 줍니다. 옥타비아누스는 절대권력으로 주변국을 제압하고 그후 오현제 시대까지 약 200년에 걸쳐 전쟁이 없는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힘에 의한 평화는 힘을 가진 자에게는 평화였지만 힘이 없는 약자들에게는 억압과 굴종을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가이사 아구스도는 모든 로마 통치지역에 호적명령을 내립니다. 이는 세금을 거두고 군인을 징집하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사람은 호적을 하러 고향으로 가야했습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만삭이 된 임산부도 호적을 하러 가야했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요셉과 마리아입니다. 요셉은 염소로 제물을 드릴 수 없어서 비둘기로 제물을 드릴 정도로 가난한 목수였습니다. 그래도 그는 목수일을 그만두고 150킬로미터나 되는 먼 길을 걸어 호적을 하러 가야했습니다. 그의 아내 마리아는 만삭이 된 몸으로 호적하러 가야했습니다. 예외 없이 순종해야 하는 약자들은 절대권력 앞에서 평화가 없습니다. 마음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사일구 혁명에 의해서 이승만 독재 정치가 끝나고 제2공화국때는 정치적인 혼란이 왔습니다. 먹고 사는 것이 힘이 들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는 구호아래 박정희 대통령이 장기 집권을 했습니다. 그는 절대권력으로 국가를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절대권력 아래 많은 사람이 고통했습니다. 민주화를 갈망하는 반체제 인사들은 빨갱이로 몰려 고문을 당하고 때로는 죽어갔습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도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전현직 국회위원인 김근태 이철씨들이 참여했던 민청학련 사건 때도 여러 명이 사형을 당하였습니다. 실업자와 죄수들이 실미도에 끌려가 가혹행위를 받다가 반란을 일으켜 죽은 것도 알고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후에 우리 나라는 정치적으로 연일 데모를 하며 혼란에 빠졌습니다. 저는 그때 사학년이었는데 학교에서 수업한 것이 한 달도 되지 않습니다. 이런 혼란을 틈타서 전두환 대통령이 권력을 잡고 정치적인 안정을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그 때 광주항쟁으로 죽어간 사람이 백여 명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이는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나라는 가부장제입니다. 가정에서 아버지가 왕입니다. 아버지의 권위 아래 우리나라 가정은 이혼도 안하고 평안을 유지해온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겉으로만 평화자 속으로는 곪았습니다. 가정에서 아내는 마음에 한이 맺혀 있는 경우가 많았고 자녀들은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사랑해서 같이 산 것이 아니라 이혼하면 살 도리가 없어서 같이 산 것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 이혼율이 세계 일위라고 합니다. 이혼 중에 많은 부분이 과거의 권위주의 가장에 대한 반발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이는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목회자의 권위주의에 의해서 움직이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입니다. 마치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 명령에 의해서 움직이듯이 군대처럼 움직입니다. 저도 이런 교회를 부러워했고 이런 교회가 좋은 교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꿈꾸는 교회는 목자의 한 마디 말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모임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훈련을 주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압적으로 움직인 것은 언제가 곪아서 터질 때가 있습니다. 몸은 움직일지 몰라도 마음은 반발심과 불평으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권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권위를 부정하고 무정부 상태에서 지내자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권위를 얻는 것입니다. 진정한 권위 아래서 진정한 평화, 참 평화를 얻게 됩니다. 팍스 로마나가 아니라 팍스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에 의한 참평화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평화를 주십니까?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권위를 가지고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을 물로 심판하기도 하고 불로 심판하시기도 하고 전쟁을 통하여 심판하기도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얻어 맞아도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도 이것을 아셨습니다. 이간이 근본적으로 악하고 연약한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은 안간을 아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창조주로서 우리를 아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삼십팔년된 병자의 병이 오래된 것을 아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다섯 남편과 살았고 지금은 한 남자와 동거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다나엘을 부르시기 전에 그가 무화과 나무 아래 있을 때에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아셨습니다. 가룟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지식적으로 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런 고통과 아픔을 체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게 태어나심으로 가난을 체험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글세방도 없어서 머리둘 곳도 없이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배고픔을 체험하셨습니다. 질병의 고통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없이 태어나셔서 부모없는 자의 슬픔을 이해하셨습니다. 소외되어 오셔서 소외된 자의 아픔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외로움을 아십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아실 뿐아니라 이들을 깊이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자신을 세 번 부인할 것을 아시고 그를 이해하시고 그 후에 넘어지지 않도록 미리 도우셨습니다. 그를 책망한 것이 아니라 그의 연약함을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가 자신을 배신할 것을 아시고 미리 회개하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두 번이나 사명의 땅을 떠나고 아내를 누이로 속이는 아픔을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심지어 첩을 얻고 자식을 낳았지만 믿음의 조상에서 자르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살인과 간음의 죄도 감당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이해하실 뿐 아니라 신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허물과 연약함이 있지만 그가 장차 교회의 반석이 될 것을 믿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이 예수님의 교회를 핍박한 것을 아셨지만 그가 몰라서 그러지 그가 변화되면 열심히 세계선교할 것을 믿어주셧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아시고 그를 이해하시고 그가 장차 큰 민족을 이루실 것을 믿어주셨습니다.
그리고 항상 인격적으로 존중하셨습니다. 가룟유다에게도 직접적으로 네가 나를 팔 것이지? 라고 물어서 마음에 상처를 주시지 않으셧습니다. 하니님은 최초로 범죄한 아담에게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시고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게도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섬겨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섬겨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예수님의 이 사랑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리고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마음 속에 평화가 솟아 났습니다.

13,14절을 보십시오.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이렇게 예수님이 우리를 섬겨주셨을 때 우리 마음 속에는 평화가 넘쳤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영광을 얻으시고 권위를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제자와 그들의 뒤를 이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자신의 목숨까지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독자 이삭까지도 불에 태워 드리고자하였습니다. 많은 왕과 부자들이 예수님께 무릎을 꿇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승리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주님께 목숨을 바칠 수 있습니까? 이는 예수님의 사랑에 감동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내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라고 합니다.
젖은손이 애처로워 살며시 잡아본 순간
거칠어진 손마디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소
시린 손끝에 뜨거운 정성 고이접어 다져온 이 행복
여민옷깃에 스미는 바람 땀방울로 씻어온 나날들
나는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

이 찬양을 남은우 목자님이 남한나 사모에게 바치겠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다시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한다는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영광을 얻기까지는 아내의 손이 젖어있고 손끝이 시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아내의 사랑이 있을 때 남편은 아내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남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를 연약한 그릇으로 알고 큰 소리 치지 않고 폭력행사하지 않고 섬기면 아내의 얼굴이 곱게 피어납니다. 화장을 하지 않아도 아내의 모습이 아름다워집니다. 그리고 그런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기가 살아 있습니다. 아브라함 목자님의 섬김과 사랑 속에서 복음 사모님의 얼굴이 점점 아름다워지고 잇습니다. 울기만 하던 누가도 얼굴에 행복이 깃들기 시작햇습니다. 이제부터 복음 사모님은 사라라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알게 모르게 권위주의 시대에 태어나서 몸에 권위주위가 베어 있었습니다. 나의 권위주위로 인해서 요한이는 집에서 떠나고자 하였고 모니카 목자는 얼굴이 말라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예수님의 복음을 알고 섬기고자 하였을 때 모니카 목자님이 비록 나이는 늙어도 얼굴이 더욱 아름다워지고 있습니다. 요한이도 많이 기가 살아났습니다.
저는 이번 성탄절을 맞으며 깊이 회개하고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꿈이 가이사 아구스도 처럼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모든 양들이 순종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새벽기도를 절대적으로 하자는 방향을 잡고 본을 보이는 데도 새벽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명단은 하나씩 하나씩 떨어져나갔습니다. 월부팀을 사랑한다고 하였는데 이들 중에 형제 두 명이 떠났다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자매들도 마음이 나에게서 떠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무엇이 잘못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신앙적으로 옳은 것을 주장하고 강요하였지 이들을 알고 이해하고 믿어주고 존중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인해서 이들의 상처를 준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마음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깊이 영접하였습니다. 그때 무엇보다 내 마음에 기쁨이 넘쳤습니다. 그리고 월부팀들과도 사랑의 관계성이 조금 조금 맺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고 마음에 가정에 그리고 교회에 참 평안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제이장 예수님이 계실 빈방은 없는가?

빈방 있습니까? 라는 연극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이장을 연극으로 하는 것입니다. 한 교회에서 연극을 하는데 덕구는 말을 더듬는 저능아입니다. 아이들은 덕구는 배역을 맡기지 말자고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은 모두가 참여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덕구에게 여관집 주인을 맡깁니다. 덕구의 배역은 간단합니다. 나가요. 그 다음에는 빈방 없어요. 하면 요셉이 아내가 만삭이 되어서 라고 하면 덕구는 사정은 딱하지만 빈방은 없습니다. 라고하면 되는 것입니다. 세 마디만 하면 됩니다. 덕구는 열심히 자사의 대사를 연습했습니다. 드디어 크리스머스 연극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문을 두드리며 빈방을 찾습니다. 그러자 덕구가 처음에는 연습한 것처럼 빈방이 없다고 잘합니다. 그런데 요셉이 아내가 만삭이 되어서라고 하니 빈방하고 말을 잇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요셉 역할을 하는 어린이가 이 덕구가 대사를 까먹은 줄 알고 “아! 빈방이 없다고요.” 하며 가자 덕구는 가는 사람을 불러서 “저기 빈방이 있다고요” 말을 해서 연극을 망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선생도 어린 아이들도 관객들도 모두 소란을 피웁니다.
그런데 덕구가 왜 빈방이 있다고 거짓말을 했느냐는 것입니다. 덕구는 그 날밤 혼자 무대에 남아서 눈물이 뒤범벅이된 얼굴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내가 연극 망쳐 놨어요. 그치만 어떻게 고짓말을 해요... 우 우리 집엔 빈 바이 있걸랑요. 아주 좋은 방은 아니지만요. 그건 하나님도 아시잖아요. 근데 어떻게 예수님을 마구간에서 나라구 그래요. 난 정말 에수님이 우리 집에서 태어났으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환희에 가득 차서)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에수님이 내 방에서 태어나신다니! 얼마나 신나요! 그럼요, 난 내 방도 쓸구요, 걸레 빨아 갖구 방두 닦구요, 내 방 비워 놨을 거예요. 난 에수님이<좋아요. 에수님... 사랑해요. 에수님이 최고에요. 에수님은 내 죄 땜에 죽으셨잖아요. (운다.) 이 연극이 감동이 되는 이유는 덕구가 거짓말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덕구가 순수하게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마음에 찾아오시면 우리는 예수님을 어떻게 대접하겠습니까? 우리도 가장 좋은 호텔방은 내가 쓰고 다음에 모텔방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고 여관방은 우리 집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주고 예수님이 쓰시는 방은 마굿간아 아닐까요?

내게.. 하나님은 3등입니다.라는 시의 일부입니다. .
1등은 하고 싶은 일, 2등은 해야 하는 일, 3등은 하나님 만나는 일..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해야 하는 일도 다 마치고..그 후에 여유가 있으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길 때도 하나님은 3등입니다.. 내 힘으로 한 번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고.. 그나마도 안 될 때 하나님을 부릅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거리에서도 3등입니다.. 내게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내 자신, 그 다음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 다음에야 저 멀리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3등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좋아하는 일을 먼저 하면 예수님은 지금도 마굿간에 태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연극을 하였습니다. 마지막날 저녁에 오요한 목동이 선물 증정식에도 안 오고 형제방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부르니 와서 울었습니다. 사람들이 연극을 하자고 하면 모이지 않고 모였다가도 말도 없이 가고 갑자기 안한다고 하고 그러니 참다가 자신이 리더십이 없어서 그렇다고 못하겠다고 우는 것입니다. 자신이 나이도 어리고 믿음도 약해서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습니다. 요한이한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 그러는 것이라고 만약 목자인 내가 인도를 해도 그럴 것이고 만약 예수님이 살아서 오신다고 해도 그럴 것이라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물론 대부분은 잘하시고 몇몇 사람이 그랬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예수님께 대한 마음이지 요한이에 대한 마음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실상입니다. 우리가 학과 공부나 돈 버는 직장일은 첫째로 달려가고 세상 사람과 만나자는 약속은 둘째로 달려가고 예수님께 대한 일은 한없이 게으르고 성의 없는 것이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예수님은 소외당하여 우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소외당해본 일이 있습니까? 왕따 당해본 일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에게 하찮게 무시 받아본 적이 있습니까? 자기 먹을 것 다 먹고 찌꺼기 주는 것 먹어본 적이 있습니까? 그때 마음이 슬프고 고통스러웠지요? 그것이 우리에게 당하는 예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그만 우시게 해야 합니다.
러시아 한 동네에서 크리스마스이브 때마다 파티를 했다고 합니다. 그들은 항상 가장 좋은 자리를 비워두고 파티를 했습니다. 그곳은 예수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크리스머스 이브날 파티가 다 끝나가려고 하는데 한 사람이 문을 두두렸습니다. 그분은 할아버지였습니다. 옷도 춥게 입어 떨고 있었습니다. 몸에는 냄새가 났습니다. 사람들은 자리가 없다고 돌려 보냈습니다. 그 이튿날 그 노인은 얼어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파티를 즐겁게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예수님과 함께 행복한 크리스머스 이브를 즐겁다고 꿈도 꾸지 않고 잠을 잘 잤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때 찾아온 그 분은 바로 예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이 가난하고 냄새나는 모습으로 찾아오셨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외면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우리에게 높고 거룩한 모습으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가난하고 배고프고 목마르고 헐벗고 나그네 되고 감옥에 갇힌 그런 사람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모습으로 오시는 것입니다. 저에게 예수님은 때로 양들의 모습으로 때로는 아내의 모습으로 때로는 자녀의 모습으로 때로는 학생의 모습으로 때로는 나그네된 목자님의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마다 그분들을 냉대할 때가 많았습니다. 제가 약자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제 환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제 예수님은 재림하실 것입니다. 영광과 위엄으로 재림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에 가장 좋은 방을 비워두고 이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 속의 첫 자리에 모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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