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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06년 신년 4강 말씀을 전한 사도들

작성자 : john444
작성일 : 2006-01-22 00:00:00
조회수 : 911

제목 신년 4강 메시지 말씀을 전한 사도들


2006년 신년 말씀 제4강 메시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사도들
말씀 / 사도행전 4:1-37
요절 / 사도행전 4:31

사도 베드로와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앉은뱅이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이를 본 많은 사람들이 놀라서 모여 들었습니다. 베드로는 이들에게 너희가 죽인 예수 그리스도가 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다고 증거했습니다. 그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남자만 오천명입니다. 예수님이 남자만 오천명에게 떡을 먹이셨는데 그 숫자만큼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우리가 오천명의 주일 예배와 오천명의 선교사 파송을 위해서 기도하는데 그 기도제목이 하루만에 이루어졌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때 사도들은 핍박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사도들은 이런 핍박에 굴하지 않고 계속하여 말씀을 증거합니다.

제일장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가 되십니다.

1-4절에 보면 종교지도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말씀을 전하는 것을 싫어하여 저녁부터 그 이튿날까지 잡아 두는 것이 나옵니다. 이들이 왜 이렇게 좋은 일을 보고 싫어했을까요? 이는 시기심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인기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면 시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또한 이들은 세속주의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현세의 복만은 원하는데 사도들은 내세의 부활을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회개하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죽인 예수님이 부활하여 앉은뱅이를 고친 것은 너무 분명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잘못한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회개치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욱 악하여져서 사도들을 가두어두었습니다.

5-7절에 보면 종교지도자들이 사도들을 심문하는 것이 나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종교지도자들은 누구의 권세와 이름으로 말씀을 전하고 병자를 고쳤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허락도 받지 않고 어떻게 말씀을 가르치냐고 물었습니다. 신학을 하지도 않은 너희가 무슨 자격으로 말씀을 가르치느냐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님이 충만하여 이들의 질문에 대답을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베드로는 이들에게 그들이 죽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자가 나앗다고 증거합니다.

첫째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너희는 종교지도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더욱 넓게 보면 너희는 우리 모두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치 않을 때 예수님은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 욕심에 눈이 멀었을 때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팔았습니다. 우리가 연약한 자들을 판단하고 무시했을 때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판단하고 무시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보내신 다른 사람을 믿어 주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죄를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살아 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진 분이십니다. 부활하여 우리의 주요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신 예수님을 기초로 하여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주이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11,12절을 보십시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여기서 건축자들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은 메시야에 대해서 연구하는 전문가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살리셔서 모퉁이의 머릿돌을 삼으셨습니다. 모퉁이의 머릿돌은 기초돌이요. 중심돌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중심이며 기초가 되십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기초하여 집을 지으면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크고 아름다운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은 유일한 구원의 주이심을 강조하여 증거합니다. 예수님 외에 하나님은 구원을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요즘의 많은 사람들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서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는 예수님만이 구원의 주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포용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성탄절에 절에서 성탄을 축하하는 프랭카드를 붙인다든지 아니면 스님과 승려 신부들이 함께 모여서 찬양을 하는 것은 아름답게 보입니다. 물론 우리가 다른 종교와 전쟁을 하며 싸워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주장하듯이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스스로 예수님만이 구원의 길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주이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만이 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하신고 동정녀 마리아에서 태어나신 죄가 하나도 없으신 분이십니다. 어느 누구도 남녀의 관계에 의해서 태어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들은 죽어도 자신의 죄를 위해서 죽은 것이지 우리 죄를 위하여 죽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무 죄도 흠도 없는 분이심으로 우리의 죄를 위해서 죽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십니다.

둘째 예수님은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평생을 죄와 사망권세의 영향 아래 살게 됩니다. 마음에 죽음과 어둠이 주는 그늘 속에서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썩지 않고 영광스럽고 강하신 몸으로 부활하신 유일한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의 구원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실제적이며 구체적입니다. 우리는 항상 구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질병에 시달리고 마귀가 주는 의심과 불신에 시달립니다. 우리는 가난에 시달리고 무의미 허무함 두려움 슬픔과 실패에 시달립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실제적인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우리를 건강하게 하시고 부유하게 하십니다. 우리 학사 가정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부자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 마음에 평안함과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에게 꼭 맞는 배우자를 인도하시고 필요한 직장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동아 주택의 전세가 조만간에 나가게 하실 것입니다. 성훈 목동님이 졸업논문을 잘 쓸 수 있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우리 순종 목자님에게 좋은 일을 주실 것입니다. 아멘

13,14절을 보십시오.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종교지도자들은 제자들을 책망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면 제자들을 변화시키신 예수님이 너무나 분명히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능력에 있습니다. 복음은 제자들을 어떻게 변화시키셨습니까?
첫째 학문 없는 사람을 학문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모두가 어부 출신으로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복음을 알고 성령을 충만히 받았을 때 그들은 유식한 자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나 베드로 전후서나 베드로의 영향을 받아서 쓴 마가복음, 요한이 쓴 요한복음을 보면 이들이 얼마나 유식한 사람이 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부족한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유식하게 변화시켜 주십니다.

둘째 두려워하던 자들을 담대한 자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힐 때 계집종 앞에서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엿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모두 도망을 갔습니다. 지금 예수님께 사형선고를 내린 안나스와 가야바가 바로 눈 앞에 있습니다. 그 앞에서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 앞에서 담대히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이기고 용기와 담대함을 주고 도전 정신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스키를 타는 것에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나이도 있고 운동신경도 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스키를 탈 때 기쁨이 충만하게 하셨습니다.

셋째 능력의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베드로는 연약합니다. 평생 고기나 잡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고 그 나은 사람이 바로 옆에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후에도 중풍병자를 일으켜 세우고 죽은 자도 살립니다. 심지어 베드로의 그림자만 씌어도 병이 낫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변화시키신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복음은 나를 변화시키셨습니다. 나는 심히 연약하고 지혜도 부족합니다. 정말 뭘 잘하는 것이 없는 자입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나와 함께 하셨을 때 항상 넉넉한 승리를 주셨습니다. 나를 통하여 어떻게 그렇게 좋은 성적을 맞은 학생이 나왔는지 나도 이해를 못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임에 생명의 역사를 이루시고 세계선교 역사를 이루신 분도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나뿐 아니라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제이장 사도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공회에서는 사도들의 변화를 부정할 수 없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위협하여 도무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경계를 시켰습니다. 공회의 구성요원을 보면 안나스와 가야바가 있는데 이들은 예수님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사람입니다. 이들의 권세는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큼 막강했습니다. 이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예수님처럼 다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들의 말을 들으면 복음 역사는 더 이상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때 사도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19,20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베드로는 종교지도자들이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하는 것이 사람의 말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말씀을을 전하라고 하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누구의 말을 들어야합니까? 대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부모의 말이나 교수의 말이나 직장 상관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듣고 복음은 전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박힐지도 모릅니다. 목숨을 걸고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여기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는 기도해야하는 것은 다니엘처럼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을 영접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절대적인 기도를 구년때 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보면 말씀을 전하는 것도 목숨을 걸고 절대적으로 해야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전하는 것은 생명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관원들은 사도들이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들을 어떻게 처벌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위협하여 놓아 주었습니다. 사도들은 동료 사도들에게 가서 그들이 받고 있는 핍박을 다 말하였습니다. 이 말을 듣고 사도들은 일심으로 소리를 높여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23-30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첫째 그들은 핍박 앞에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인간적으로는 참으로 연약한 자들입니다. 돈도 권력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천지의 주재시요.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들에게는 자신을 사랑하시고 자신들의 편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종교지도자들보다 더욱 큰 권세를 가지신 분들입니다. 우리도 핍박과 환난 앞에서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핍박을 보았습니다. 시편 이편에는 열방의 군왕들과 관원들과 족장들이 그리스도를 대적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의 핍박은 이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이 말씀에 기초하여 볼 때 종교지도자들의 핍박은 사도들을 핍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허사를 경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철장으로 이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이 말씀에 기초하여 보면 핍박이 두렵지 않습니다. 핍박 앞에서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핍박을 받을 때 마음에 찾아오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우리를 핍박하는 세력이 너무 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에 기초하여 볼 때 핍박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셋째 그들은 말씀 전파를 위해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적과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병 낫기를 위해서 기도하였습니다. 우리는 말씀 전파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은 성령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도우셔야 말씀 전파가 힘 있게 일어납니다. 또한 말씀에는 표적과 기사와 이적이 나타나야 말씀이 확실하게 증거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전할 때 많은 표적과 기사와 이적과 병고침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이 기도를 다했을 때 그곳이 진동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무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성령님은 심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에게 임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때로는 비둘기같이 임하시기도하고 때로는 세미한 소리로 임하시기도하고 때로는 강한 바람과 불로서 임하시기도합니다. 또한 성령님은 한번 받은 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항상 성령님의 충만함을 새롭게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받으면 병도 낫고 기쁨도 있고 힘도 생겨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사도들처럼 성령 충만함을 받은 후에 더욱 깨어서 말씀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2-37절에 보면 말씀을 가르치며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은 교회 생활이 어떠했는가 나옵니다. 첫째는 이기심이 극복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였습니다. 제 물건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사람의 이기심은 본능입니다. 그러므로 공산주의 제도로도 이기심을 극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말씀과 성령님의 지배를 받을 때 이기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둘째 사랑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밭과 집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주었습니다. 사도들은 이것으로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였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핍절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가 만들어졌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표적을 행하십니다. 그 이유는 말씀 전파를 위해서입니다. 또 말씀을 전할 때 표적이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써 생명을 걸고 말씀을 전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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