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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대학생 선교기관

천안UBF

연구자료

06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작성자 : john444
작성일 : 2006-01-10 00:00:00
조회수 : 955

2006년 신년 말씀 제 2 강
말씀 / 요한1서 4:1-21
요절 / 요한1서 4:7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2005년 우리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자 하는 큰 꿈을 가지고 출발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큰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서로 사랑하는 자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성령님께서 우리 가운데 임하시고 제사장 나라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 일장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1-5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사랑을 말하기 전에 영에 대해서 말합니다. 영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 그리고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이 있습니다. 사도요한은 모든 영을 믿지 말고 영을 시험하여 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사랑을 하려면 영이 깨끗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영, 진리의 영을 받으면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움의 영인 적그리스도의 영, 미혹의 영을 받으면 서로 사랑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 중에 무엇을 받았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구분할 수 있습니까?

첫째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그리스도임을 시인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2, 3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시인해야 합니다. 이단들은 교주를 그리스도로 합니다. 무료성경신학원은 이만회씨가 그리스도입니다. 이곳에 속한 자는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요즘에는 자녀를 그리스도로 섬기는 사람도 있고 물질이나 자존심을 그리스도로 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오직 예수님이 우리의 그리스도로 시인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이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합니다. 당시에 영지주의자들은 영과 육체를 분리했습니다. 이들은 영적인 생활만 하고 육체의 생활은 무시했습니다. 이들은 매일 교회에서 살고 기도원에서 삽니다. 매일 성경책을 봅니다. 이들은 신앙 생활을 잘하는 것 같죠? 그런데 문제는 육체의 삶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가정도 돌보지 않고 직장에서 돈도 벌지 않고 학교에서 공부도 하지 않습니다. 말씀 은혜는 많이 받는데 육체의 삶은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자녀들은 굶어죽어도 먹을 것을 주지 않습니다. 자녀가 똥을 싸도 치울 줄을 모르고 성경책만 봅니다. 이것이 옳은 신앙입니까? 이는 잘못된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육체의 삶을 통하여 사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이상한 신앙생활하는 것을 보면 두려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적그리스도를 이기고 적그리스도보다 크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4)
둘째 누구의 말을 듣느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5절과 6절을 보십시오. "저희는 세상에 속한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적그리스도의 말은 세상에 있는 사람들이 잘 듣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께 속한 사도들의 말을 잘 듣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들은 교회와 그 안에 있는 목자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복합니다. 그러나 적그리스도는 교회의 권위를 부인하고 자기들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교회 신자을 빼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교회나 신학교나 기도원에 가서 사람을 빼가고자 합니다. 이들은 자신도 천국에 못가고 다른 사람도 천국에 못가도록 방해하는 자들입니다.

제 이장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해야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서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합니까? 9,10절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첫째 가장 귀한 것을 주시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독생자는 하나님이 가장 사랑하는 분이십니다. 우리 인간에게 꼭 필요한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독생자를 아끼지 않고 주셨고 다른 어떤 것도 아끼지 않고 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을 사랑하여 칼과 띠를 줍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는 오헨리의 소설에 보면 아내는 자신의 가장 귀한 머리를 잘라 팔아서 남편의 가장 귀한 시계의 시계줄을 삽니다. 남편은 자신의 가장 귀한 시계를 팔아서 아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머리를 빗는 빗을 삽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둘째 사랑은 살리는 것입니다. 어느 엄마가 자녀를 사랑하여 모든 수발을 다 들어주었습니다. 자녀는 커서 학교 가는데 자신의 신발도 신지 못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힘있게 살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으면 힘이 나고 소망이 생깁니다. 이것이 참사랑입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받지 못하고 살다가 장차 배우자 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받으면 받을수록 상사병만 생겨서 공부도 못하고 무력하게 살아갔습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앉은 뱅이에게 매일 돈을 가져다 주어서 영원한 거지로 만드는 것이 사랑이 아닙니다. 오히려 조금 힘들어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게 돕고 자립하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노예가 되고 죄수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통하여 요셉은 살아났고 다른 사람을 살렸기 때문입니다.
셋째 사랑은 먼저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샘터요. 뿌리가 됩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 마음 속에서 사랑이 솟아납니다. 우리는 사랑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기도하는 것도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우리 마음 속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 속에 사랑의 샘이 터져서 우리도 먼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넷째 사랑은 죄문제를 돕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가장 심각한 것은 죄문제입니다. 친절한 금자씨라는 영화가 작년 영화 중에 작품성도 있으면서 흥행에 성공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다루고 있는 것은 죄문제입니다. 그곳에서 어린 아이를 유괴하여 죽인 백선생이 나옵니다. 그는 자신의 제자 금자씨의 아기를 볼모로 삼아서 금자씨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웁니다. 결국 금자씨와 유괴당한 부모들이 모여서 백선생을 복수하는 영화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딸을 입양시킨 금자씨도 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금자씨는 자신의 딸에게 속죄하는 말을 합니다. 그때 영어로 말하는데 atonement라는 말을 합니다. 그 어떤먼트가 바로 오늘 말씀에 나오는 화목제물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금자씨가 감옥에서 나오자 한 전도사가 두부를 주며 이제 속죄하고 깨끗하게 살라고 합니다. 그러자 금자씨는 두부를 엎으며 너나 잘하세요.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결말에 보면 다시 두부처럼 하얗게 살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우리가 두부처럼 하얗게 살려면 우리의 속죄제물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두부처럼 하얗게 살라고 속죄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에 보면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자라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요한일서에 보면 반복하여 편지를 받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사랑했습니다 우리가 먼저 사랑을 받아야합니다. 그리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받았으면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제삼장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서로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첫째 성령님을 주십니다. 12절을 보십시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사랑하는 자에게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본 사람은 죽임을 당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성령으로 거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것은 열매를 맺는다 완성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목적은 서로 사랑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나님의 사랑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새계명을 주실 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면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사랑할 때 우리 마음 속에 거하실 뿐아니라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때도 거하십니다. 14,15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거하노니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은 예수님을 세상의 구주 곧 그리스도로 보내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님이 거하시면 우리는 사랑의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하면 성령님이 또 임하십니다. 사랑과 성령님과 예수님은 마치 실과 바늘과 같이 서로 따라다니심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담대함을 주십니다.
17,18절을 보십시오.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룬 것은 우리로 심판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의 어떠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사랑을 알고 믿습니다. 뿐만아니라 우리는 그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사랑을 확신하고 믿으면 우리는 심판날에 담대해집니다.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어떤 써커스를 하는 사람이 절벽과 절벽사이에 줄을 매고 그곳에 건너갔습니다. 다음에는 어린아이들에게 누구든지 오면 그 아이를 목말을 태워서 가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두려워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 한 아이가 저요하며 나왔습니다. 그리고 써커스 단원은 그를 목말을 태워서 건넜습니다. 다 건넌 다음에 기자들이 아이에게 어떻게 그곳을 건널 수 있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어린 아이는 내 아버지거든요. 라고 말을 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믿었기 때문에 건널 수 있었습니다.
암소가 사자와 싸우면 집니다. 그러나 암소가 사자와 싸워서 이기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사자가 송아지를 공격할 때입니다. 암소가 자신의 새끼인 송아지를 공격하면 암소는 송아지에 대한 사랑으로 인하여 두려움 없이 사자와 싸워서 이깁니다. 이것이 두려움을 이기는 사랑의 힘입니다. 두려움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십시오. 그리고 그 사랑으로 누군가를 사랑해보십시오. 그러면 마음에 두려움이 없어질 것입니다.

제사장 사랑은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20절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면 거짓말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형제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찌니라" 사랑은 계명입니다. 십계명도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순종하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절대적인 자세로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마지막 필요한 사랑은 아주 거창한 사랑이 아닙니다. 아주 구제적이고 실제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한다면 한번 문자 메시지라도 보내주고 멜이라도 보내 주어야 합니다. 집에 초청하여 라면이라도 삶아주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이런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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