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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작성자
 john
날짜
 2018-03-10
조회수
119
제목
 천안 ubf 주일메시지 산자의 하나님

천안 ubf 주일메시지 산자의 하나님
말씀 마가복음 12장 18- 마가복음 12장 27
요절 마가복음 12장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지금 우리는 다 육체적으로 살아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육체적으로는 살아있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자도 있고 산자도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두개인들은 육체는 살았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자입니다. 반면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산자와 죽은 자의 차이는 애매모호하지 않습니다. 아주 분명합니다. 김정일은 죽은 자고 박근혜는 산자입니다. 영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산자가 되어야합니다. 그래야 천국을 누릴 수 있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영적으로 살아있는 자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수혼법을 주신 이유)

“18.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19. 선생님이여 모세가 우리에게 써 주기를 어떤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그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울지니라 하였나이다” 사두개인들은 사독의 후예들로 제사장들입니다. 이들은 당시 부유하고 권세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핵심 세력도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잘사는 이들이 부활도 천사도 영도 부정했습니다. 요즘도 이렇게 세상에서 잘 사는 사람들이 주로 부활을 부정합니다. 이들은 이 세상이 좋기 때문에 천국에 가기보다 이 세상에서 하루라도 더 살고자 합니다. 이들은 부활이 없어도 좋고 있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활이 있으면 마음대로 죄를 지을 수 없으므로 적극적으로 부활을 부정합니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의 수혼법을 근거로 부활을 부정하고자 하였습니다. 모세는 사람의 형이 자식이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아내를 취하여 형을 위하여 상속자를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형수와 결혼한다고 하여 수혼법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수혼법을 만든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에서 메시야를 보내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의 자녀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계승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어찌하든지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계승하기 위해서 수혼법을 세운 것입니다. 수혼법의 핵심은 상속자를 세워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계승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보면 유다의 아들 엘이 다말과 결혼하여 상속자가 없이 죽습니다. 그러자 동생 오난이 형수와 결혼하였지만 또 상속자가 없이 죽습니다. 아버지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하였음에도 며느리 다말에게 주지 않습니다. 또 죽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다말은 시아버지와 속여서 잠을 자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습니다. 하나님은 시아버지와 잠을 자서 자녀를 낳은 다말을 보호하시고 그 후손에게서 메시야가 태어나게 하십니다. 다말이 시아버지와 잠을 잔 것은 쾌락을 누리기위한 것이 절대 아닙니다. 어찌하든지 상속자를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 다말이 시아버지에게서 상속자를 얻은 것도 수혼법이 확대된 개념입니다.

(사두개인들이 꾸며낸 이야기)

“20. 칠 형제가 있었는데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21. 둘째도 그 여자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고 셋째도 그렇게 하여 22. 일곱이 다 상속자가 없었고 최후에 여자도 죽었나이다 23. 일곱 사람이 다 그를 아내로 취하였으니 부활 때 곧 그들이 살아날 때에 그 중의 누구의 아내가 되리이까” 사두개인들이 부활을 부정하기 위해서 하나의 이야기를 꾸며냈습니다. 어떤 부부가 칠형제를 낳았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었습니다. 둘째도 수혼법에 의해서 형수를 취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었습니다. 셋째도 형수와 결혼했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었습니다. 형제 일곱이 다 한 여자와 결혼하였다가 상속자가 없이 죽었고 나중에는 여자도 죽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만약에 부활이 있다면 여자는 일곱 명의 아내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될 것이냐고 질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이 꾸며낸 이야기에 나오는 여자는 매우 운명적이고 슬픈 여자입니다. 칠형제를 둔 부모도 매우 슬픕니다. 시동생들은 밑으로 갈수록 형수와 결혼하는 것이 엄청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불 때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은 매우 풍요롭게 살았지만 그들의 마음이 매우 부정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사두개인들의 관심은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는데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수혼법을 주신 것은 상속자에 세우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두개인들은 어떤 여자와 결혼하여 즐기느냐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생각이 부정적이고, 이 세상에서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두개인들을 육체는 살았으나 영적으로 죽은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의 삶)

부활을 믿지 않는 자는 육신은 살았으나 영혼은 죽은 자입니다. 영적으로 죽은 자의 삶은 두 가지 특징을 가집니다. 첫째는 향락적인 삶을 삽니다. 사람이 죽음으로 끝난다면 이 세상에서 살았을 때 좀더 잘 먹고 마시자고 할 것입니다. 이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며 조금더 이 세상을 즐기는 데 관심을 갖습니다. 결혼한 사람들이 애인을 두고 즐기는 생활을 합니다. 요즘에 미투운동이 뜨겁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성폭행자나 성희롱자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투운동의 대상이 된 사람들의 대부분이 하나님나라를 소망하기보다는 이 세상에 소망을 둔 사람들입니다. 불신자들이 이런 죄에 빠진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비록 신부라 할지라도 범죄한 자는 현사회의 변화에 더 관심을 갖는 정의사제구현단의 신부입니다. 목회자들도 성공신학 번영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이런 죄에 빠집니다. 우리가 부활과 하나님 나라와 심판을 믿는다면 이런 죄를 지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행음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간다고 하였습니다. 순결하고 겨룩하게 사는 사람들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우리가 부활과 심판과 하나님 나라를 믿을 때 깨어 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 부활과 심판을 믿어야 절대적인 선을 행할 근거가 됩니다. 둘째 죽은 자는 슬프고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산자는 어떤 가운데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이번 주는 미투의 대상이 되었던 한분이 자살하였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아픈 일입니다. 우리는 그의 사생활이 세상에 알려져서 그가 얼마나 슬프고 고통스러웠을까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자살한 것은 부활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해서 자살하는 것입니다. 자살하므로 모든 것이 끝난다면 이 괴로운 세상 자살을 통해서 도피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 않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우리가 심판을 믿는다면 절대 자살해서는 안 됩니다. 부활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의 죄가 드러난 것에 감사해야합니다. 우리 죄가 드러나고 진실되게 회개하면 사람들에게 부끄러움을 당해도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드러나고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것을 하나님이 주신 사랑의 징계로 받아들이고 감사함으로 회개하며 살아야합니다. 이제는 진실하게 되었고 천국가게 되었다고 고통스러워도 감사하고 기쁨으로 살아야합니다. 그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다윗은 살아계신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믿었습니다. 그의 죄가 만천하에 알려지고 대대손손이 알려졌습니다. 삼천년이 지난 지금도 성경에 기록되어 모든 사람들에게 공개되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회개하고 참행복을 누렸다고 성경에 나옵니다. 사람들에게는 비난을 받지만 하나님 나라에 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천국을 생각하며 이 세상에서 죄를 사람들이 드러내기 전에 죄를 드러내고 회개해야합니다. 그래야 천국에 가서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된 삶)

“24.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 25. 사람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예수님은 구약성경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에 기초하여 죽은 자의 부활을 증거하십니다. 먼저는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흔히 부활을 죽었다가 다시 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데 그것은 소생이지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은 새로운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썩지 않는 몸, 영광스러운 몸, 강한 몸, 신령한 몸으로 부활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같은 모습으로 부활합니다. 부활생명을 갖게 되면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시공을 초월한 세계로 갑니다. 지구에 시간과 공간이 생기기 전의 태초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시집가고 장가가는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의 가치관으로 부활세계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곳에서는 게임도 안하고 연애도 안하면 무슨 재미로 사는가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곳에서는 새로운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공부하고 성령을 받을 때 오는 영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는 그런 완전한 기쁨이 있습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부활)

“26.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을 말할진대 너희가 모세의 책 중 가시나무 떨기에 관한 글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말씀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둘째로 구약 성경이 부활을 증거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죽은지 사백년이 흐른 후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당시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하나님과 함께 살아있었다는 것을 말씀해줍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부활을 믿고 살았고 죽은 후에 부활하였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 나라의 고향을 바라보며 나그네와 같이 살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 나라의 집을 생각하며 이 세상에서 텐트생활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대로 부활시키셨습니다. 신약 성경에 보면 나사로가 죽어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모세도 부활하였습니다. 모세는 예수님이 변화산에 올라갔을 때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성경 말씀은 죽은 자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산자의 삶)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 예수님은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두개인들이 죽은자를 대표한다면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산자를 대표합니다. 산자의 삶은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산자는 현재 꿈을 꾸고 비전을 갖는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구하기 위해서 전쟁을 하고 많은 물질의 손해를 보았습니다. 대적이 다시 쳐들어올 것 같은 두려움에 시달렸습니다. 상속자가 없어서 절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절망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꿈을 가졌습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활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산 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두려움가 피해의식과 절망이 물러가고 평안과 기쁨과 소망이 찾아왔습니다. 그는 하나님 나라를 온 땅에 건설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루터는 16살 연하인 수녀와 결혼하였습니다. 루터의 아내가 수녀였던 카타리나입니다. 한번은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다가 너무나 큰 장벽에 절망을 하고 삼일동안 누워있었습니다 아내는 상복을 있고 슬피울며 들어왔습니다. 루터가 누가 죽었느냐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돌아가셔서 운다고 하였습니다. 루터가 무슨 말이냐고 하나님이 어떻게 돌아가시느냐고 하였습니다. 아내는 하나님이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당신이 어떻게 그렇게 절망하느냐고 하였습니다. 루터는 회개하고 살아계신 하나님, 부활의 하나님을 믿고 종교개혁을 완성하였습니다. 루터는 죽은 자였지만 하나님을 믿고 산자가 되었습니다. 루터는 부활을 믿고 아내를 사랑하고 거룩한 삶을 살았습니다. 루터는 사막이나 산 속에서 은둔하여 영성을 훈련하는 수도원보다 일상의 삶을 더 거룩하게 여겼습니다.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가 어떤 수도사보다 훌륭하고, 집안일에 성실한 종이 어떤 사제보다 거룩하다하고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 독신으로 사는 신부보다 더 거룩하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주어진 일에 충성하고 정직하며 속이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으며 이웃에게 친절을 베푸는 것이 참된 경건이며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이라고 하엿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 카타리나를 사랑하며 평생 바람피우지 않고 거룩하게 살았습니다. 이것이 산자의 삶입니다.

(산자의 삶을 살자)

결론적으로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산자의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도 산자가 될 수 있습니다. 부활과 하나님 나라와 심판을 믿어야 진정한 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도 절망하지 않고 꿈을 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같이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보아야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하나님 나라를 꿈꾸어야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온 세계에 건설하는 꿈을 꾸어야합니다. 우리가 부활하여 가는 새하늘과 새땅의 하나님 나라를 꿈꾸어야합니다. 우리가 이런 꿈을 꿀 때 하나님을 믿고 새로운 일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은밀한 가운데도 거룩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돈과 이성과 그리고 명예문제 앞에서 깨끗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부활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산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
천안 ubf 주일메시지 산자의 하나님
말씀 마가복음 12장 18- 마가복음 12장 27
요절 마가복음 12장 27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