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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작성자
 john
날짜
 2018-04-07
조회수
142
제목
 4월 둘째주 천안ubf 주일메시지 -과부

4월 둘째주 천안ubf 주일메시지 생활비 전부를 드린 과부
말씀 마가복음 12장 35-마가복음 12장 44
요절 마가복음 12장 43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조금 있으면 중간고사 기간이 다가옵니다. 의대학생은 2주에서 4주 사이에 한번씩 항상 시험을 봅니다. 사람들은 시험을 통해 상대적으로 성적을 평가합니다. 백점부터 빵점까지 점수를 매기고 줄을 세웁니다. 교회에서도 그러는 경우가 있습니다. 헌금을 많이 하는 사람과 적게 하는 사람을 줄을 세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평가하는 것이 사람들과 다릅니다. 예수님은 부자보다 적게 헌금한 과부를 더 많이 헌금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시간 예수님의 평가 기준을 배우고 예수님의 인정을 받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다윗의 자손이신 그리스도)

“35.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지금까지 예수님은 질문을 받는 입장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세금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사두개인들이 부활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한 서기관이 예수님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의 그리스도관에 대해서 한 가지를 보충하여 설명합니다. 당시에 서기관들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성경에 보면 다윗의 자손에게서 그리스도가 태어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맞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인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다윗의 자손으로 부르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소경은 예수님에게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눈을 뜨게 하여주셨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이 더러운 귀신이 들렸습니다. 그녀도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그녀의 기도를 들으시고 딸의 귀신을 쫓아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이기 때문에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도 사십일 굶으셨을 때 배가 고프셨습니다. 예수님도 사마리아지방을 걸어가실 때 피곤하셨습니다. 목이 마르셨습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앞두고 심히 슬퍼하셨습니다.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때 고통스러워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탄식하셨습니다. 목이 말라 혀는 입천장에 붙었습니다. 모든 뼈는 어그러졌습니다. 이사야에 보면 예수님은 질병의 고통도 아신다고 나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기 때문에 우리의 고통을 이해하시고 우리를 도우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불안할 때, 슬퍼할 때 주님께 나가서 긍휼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를 이해하시고 불쌍히 여기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너무 좋은 기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만으로 보는데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심을 가르치십니다.

(다윗의 주이신 그리스도)

“35.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36 원수를 네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 많은 사람들이 즐겁게 듣더라” 다윗은 시편에서 그리스도를 내 주라고 하였습니다. 주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신 후 부활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원수를 발아래 둘 때까지 통치하십니다. 우리의 가장 큰 원수는 사망입니다. 사망은 우리의 내면에 불안을 심고 두려움을 심고 슬픔을 심습니다. 두려움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하는 공황장애와 슬픔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하는 우울증은 바로 사망이 주는 것입니다. 사망권세는 우리에게 실패의식을 심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심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은 이런 사망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이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셔서 사망을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의 내면에 두려움과 슬픔을 극복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내면에 실패의식을 극복하고 어둔 생각을 극복하고 밝은 생각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 안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우리에게 완전한 승리를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성도들이 많은 핍박을 받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습니다.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였습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들에게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자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예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십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죽을 때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그의 얼굴이 천사처럼 빛이 났습니다. 사도들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의지하였을 때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보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눈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사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께 고정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도 반드시 승리를 주실 줄을 믿습니다. 아멘!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는 서기관들)

“38.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이르시되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39.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서기관들은 발까지 내려오는 긴옷을 입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옷을 입어서 자신이 중요한 인물임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안식일 날 모이는 회당에서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혼인 잔치의 윗자리에 앉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인정받기를 구하였습니다. 지도자는 사람들의 인정認定을 구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인정은 변합니다. 오늘 칭찬하던 사람들이 내일은 비난하기도 하고, 오늘 비난하던 사람들이 내일 칭찬하기도 합니다. 사람의 인정을 구하면 가식적이 됩니다.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회개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는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인정만을 구해야합니다. 지도자는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용기를 가지고 살아야합니다. 그래야 사람들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상급만을 바라고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할 때 우리의 마음에 참 자유함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인정을 구하는 자에게 사람들의 인정도 받게 하십니다. 예수님도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인정만을 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큰일을 하고도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아무에게 아무말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한손마른자를 고치신 후에 자신을 나타내지 말라고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 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예수님을 높여주셨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람을 좋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좋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람을 좋게 하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좋게 한 바울이 당시는 핍박을 받았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며 위선적인 서기관들)

“40.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 하시니라” 서기관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켰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과부에게 헌금하라고 강요하고 그 돈을 가로챘습니다. 그들은 돈을 사랑하였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 길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들은 위선적이므로 하나님께 받는 판결은 더욱 중합니다. 그들은 위선의 죄악으로 하나님보다 돈을 사랑한 죄에 가중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진실해야합니다. 어떤 분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부모와 고등학교 다니는 형제 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고일인 동생이 학교에 갔다오니 어머니가 화가 많이 나 있으셨습니다. 거실에 있는 컴퓨터에 누가 야동을 깔아놓은 것입니다. 동생은 자신이 그것을 깔지 않았다고 결백을 주장하였습니다. 형이 오니까 어머니가 형에게 물었습니다. 형도 깔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이놈들이 야동도 보고 이제는 거짓말을 한다고 더 화가 나셨습니다. 아버지에게 일러서 혼나게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정말 무서운 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화가 나면 아들들은 꼼짝을 못하였습니다. 드디어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엄청 화를 내시고 책망하셨습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놈들이 공부는 안 하고 이런 것을 본다고 화를 내셨습니다. 그러나 동생은 맹세코 자신이 그 일을 하지 않았았다고 말하였습니다. 형이 깔아놓고 거짓말한다고 말했습니다. 형도 자신이 깔지 않았다고 동생이 거짓말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들이 야동을 보고 거짓말까지 한다고 매를 대셨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였습니다. 동생이 책을 열어보니 아버지의 편지가 있었고 그곳에는 당시에 큰 돈인 오만원이 있었습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내가 깔았다 용서해다오” 아버지는 아들을 때리며 리얼 연기를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야동을 보고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후에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진실하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죄를 지은 경우에도 하나님 앞에서 항상 진실하게 회개해야합니다. 그리고 피해를 준 사람에게 용서를 구해야합니다.

(더 많이 헌금한 과부)

“41. ○예수께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 넣는가를 보실새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42.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43.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예수님이 헌금함에 대해서 앉아사 무리가 어떻게 헌금함에 돈을 넣는가를 보셨습니다. 여러 부자는 많이 넣었습니다. 만원짜리, 오만원짜리 지폐와, 십만원짜리 수표를 넣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을 넣였습니다. 두렙돈은 동전 두 개를 말합니다. 그 가치가 한 고트란트입니다. 한 고드란트는 하루 품삯을 10만원으로 계산 할 때 1500원정도 됩니다. 그녀는 부자들에게 비해서 아주 작은 돈을 헌금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당연히 부자가 과부보다 훨씬 더 많이 헌금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과부의 돈은 헌금 안해도 별반 상관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서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어떤 부자보다 더 많이 헌금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떤 점에서 과부가 더 많이 헌금하였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전부를 드린 과부)

“44. 그들은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른 사람들은 풍족한 중에 일부를 헌금하였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가난한 중에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습니다. 예수님은 상대평가를 하지 않으시고 절대평가를 하십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여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이 얼마나 최선을 다하였는가 보십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께 드려야합니다. 하나님은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최고의 점수를 주십니다. 최선을 다하면 한 사람만 에이플러스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에게 에이플러스를 주십니다. 박항서 축구감독이 최선을 다한 좋은 예입니다. 박항서 감독이 23세 이하(U-23) 아시아 축구연맹에서 베트남 팀을 이끌고 준우승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는 우승을 하지 못하였어도 우리가 최선을 다했는데 왜 고개를 숙이냐는 말을 했는데 베트남 전체 사회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베트남 호치민시의 다오 손 타이 고등학교에서는 박감독의 말 “최선을 다했는데 왜 고개를 숙이나” 를 논술시험 주제로 채택했습니다. 박감독은 선수들에게 최선을 다하게 하기 위해서 경기 연습 중에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 자신도 최선을 다하여 축구대표 팀을 지도하였습니다. 그는 한국에서는 이것저것을 보고듣고 하는 것이 많아서 시끄러운데, 베트남에서는 아무것도 듣고 보지 않으니 편하다고 하였습니다. 베트남에서는 베트남어를 잘 모르니까. 신문도 못 읽는다고 하였습니다. TV도 못 본다고 하엿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들리는 게 별로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는 저절로 축구에 ''''''''올인''''''''을 했다고 말하였습니다. 이렇게 올인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다른 일을 다하면서 축구를 하는 것은 최선이 아닙니다. 박감독은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으니 훨씬 더 좋은 성적을 낸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최선을 다하기가 어렵습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것이 많습니다. 스마트폰도 보아야하고 텔레비전도 보아야합니다. 게임도 해야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을 가지치기해야합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가지쳐야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단순화해야합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은 기적을 행하십니다. 헬렌 켈러는 우리가 최선을 다할 때 어떤 기적이 우리 인생이나 다른 사람의 인생에 일어날지는 알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안드레가 최선을 다하여 오병이어를 드렸을 때 오천 명을 먹이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사르밧과부가 최선을 다하여 떡을 만들어왔을 때 3년 육개월 동안 떡이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행하였습니다. 우리가 오늘 여기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고 은밀한 일을 이루어주실 줄을 믿습니다. 아멘

(결론: 최선은 가지치기를 하는 것)

우리는 항상 사람들의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절대적으로 평가하시고 우리에게 상과 벌을 주시고 영생과 영벌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평가에서 상을 받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하나님 우편에 계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합니다. 무엇보다 진실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가지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삶을 단순화하는 것입니다. 박항서 감독처럼 모든 것을 끊고 축구에 올인하는 것입니다. 이번 드레스덴 수양회에서 한진우 선교사가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분은 한국에 있을 때는 믿음이 없다가 드레스덴에 가면 믿음이 성장합니다. 드레스덴에서는 가지치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을 끊고 하나님께만 올인하기 때문에 믿음이 성장합니다. 우리가 최선을 주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세상의 것을 가지치기 해야합니다. 내가 쓸 것 다 쓰면서 하나님께 드릴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내가 놀 것 다 놀고 공부할 시간이 없다 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께 드리고 나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합니다. 중간고사에 최선을 다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크게 복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아멘
5월 첫째주 천안ubf 주일메시지 생활비 전부를 드린 과부
말씀 마가복음 12장35-마가복음 12장 44
요절 마가복음 12장 43절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헌금함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