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D
PW
       

open all | close all



주일말씀

작성자
 이모세
날짜
 2018-07-30
조회수
179
제목
 사도행전 20장 메시지

2018729사도행전20장메시지(22) 찬송가 492(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한 사명

말씀/사도행전 20:1-38
요절/19: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전능하신 창조주시요, 우리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시여,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이 흑암의 세상에 생명과 진리를 허락하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오늘날 놀라운 진리의 성령님 역사를 감사합니다. 주여 이시간 우리가 예배하러 모였사오니 우리 죄악을 용서하여 주시고 위로하사 새 힘 주셔서 사도바울과 같이 주의 사명을 따라 살 만한 자 되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천안 UBF 통해서 캠퍼스에 말씀을 허락하시고 학생들을 축복하소서. 이시간 이 큰 죄인이 주의 말씀을 들고 섰사오니 다만 불쌍히 여기시고 사도바울의 3차전도여행 마무리역사를 잘 전달하게 도와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7월이 다 가고 있습니다. 이젠 우리가 마음먹고 2018년 일 년의 농사에 결실해야할 시기입니다. 요즈음 사람들이나 TV에서는 자꾸 날씨 덥다고 약간 힘든 소리를 하는데 사실은 믿음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더위도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더우면 어떻고 추우면 어떻습니까? 이 복되고 거룩한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고 사명을 감당하면 마음속에서 시원한 생수가 솟아날 것입니다. 이 성령시대에 우리 믿는 자들이 항상 행해야 하는 기본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진리의 성경말씀을 사랑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어디서든지 다른 사람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경을 읽습니다. 또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러면 영육간에 정말 큰 복이 임하는 것을 날마나 체험할 것입니다.
또 한편 여름은 인간의 육신이 잘 나타나는 계절입니다. 이 때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옷을 얇게 입고 또 최대한 벗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육신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한국은 전세계적으로 가장 낙태숫자가 가장 많은 나라인 것을 알고 있습니까? 낙태는 불법인데 비밀로 하고 기록없이 비싸게 돈을 받아도 되니 의사들이 이 수술로 돈벌이를 합니다. 낙태는 살인입니다. 이게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복주시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이면 이런 나라를 복주시겠습니까?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사회는 정말 회개하고 변해야합니다. 사람들은 경제가 문제라지만 사실은 죄악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잠언 말씀에서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하셨습니다. 주께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란하고 술을 어디서나 마시는 마음을 회개시켜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먼저 우리 믿는 자들이 정말 회개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잘 따라야겠습니다. 이 여름철에 우리에게 승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여러분 시대가 죄악되고 어려울수록 크리스챤들이 아주 중요합니다. 진리의 성경말씀을 사랑하는 우리가 이 시대의 소망입니다. 우리 천안 UBF가 이 성령시대 하나님 역사에 귀하게 쓰임받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 말씀에 이어집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말씀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종, 성령의 사람인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어떤 역사를 이루었는지 자세히 배웠습니다. 바울은 두란노서원에서 2년 동안 매일 성경말씀을 강론했습니다. 그때에 정말 엄청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울의 손수건을 통해서도 병이 낫고 귀신이 좇겨갈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우상숭배자들이 바울을 비난하여 큰 소요를 일으켜 온 도시를 마비시켰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일을 통해서 사도바울을 에베소에서 떠나게 하시고 새로운 역사를 위해 예비하셨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모든 일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천안센터도 한 2년 동안 매일 성경공부를 해보면 좋겠습니다. 온 천안이 뒤집어질 것입니다. 오늘은 20장 말씀을 통해서 에베소역사를 정리하고 3차 전도여행에서 돌아가는 바울과 성령역사를 살펴보겠습니다.

62.마케도냐 헬라지역 마지막 심방역사(1-6)
1절을 보십시오. ‘소요가 그치매 바울은 제자들을 불러 권한 후에 작별하고 떠나 마게도냐로 가니라’ 바울은 에베소에서의 광기어린 소요가 그치자 형제들과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떠났습니다. 비록 바울이 에베소를 떠났지만 바울의 귓가에는 그 많은 에베소 사람들이 연극장에서 두 시간 동안이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하며 외쳤던 소리는 결코 떠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이런 무리지어 하는 광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마치 한국 사람들이 2002년에 빨간 옷을 입고 축구장과 거리로 나와 ‘대한민국 대한민국’ 소리치니 외국 선수들이 놀라고 세계의 학자들이 그 현상을 연구하려 했던 광경과도 유사한 것입니다. 그때 외국인들이 왜 한국사람들이 평소에는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다가 갑자기 저러는지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인 뿐만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있는 군중심리현상인 것입니다. 선거철에도 보면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따라 언제나 선동당합니다. 하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에베소에서 소요를 일으킨 것과 꼭 같이 오늘날도 인터넷이나 대중집회에서 대규모 사람들이 반드시 기독교를 반대하고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는 군중들의 소요를 잘 분별하고 흔들리지 말아야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어떻게 했습니까? 그는 침착하게 에베소를 떠나 조용히 마게도냐 여러지방을 심방하고 형제들을 격려했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지혜입니다. 3절을 보면 헬라에서는 석 달 동안 머물렀는데 학자들은 사도바울께서 이때에 그 위대한 로마서를 기록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소란의 때에 성경중의 성경인 로마서가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반대자들의 소요도 성령께서 이용하시는 역사입니다. 그럼 바울이 지금까지 로마에 간 적이 없는데 어떻게 로마 성도들을 생각하며 편지를 쓴 로마서를 기록했겠습니까? 그것은 분명히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사도바울은 지난 5,6년 사이에 고린도와 에베소에서 큰 역사를 섬겼는데 그때 가장 중요한 동역자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가정이었습니다. 그들은 본도 출신으로서 로마에 살다가 글라우디오 황제 때에 핍박으로 로마를 떠나왔는데 고린도의 천막공장에서 바울을 만나 복음을 영접하고 동역가자 된 후 목숨을 다해 역사를 섬겼던 것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바울도 로마의 사정과 믿음역사를 잘 알게 되었고 이를 기초로 로마서를 기록하였던 것입니다. 귀한 역사를 찬양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헬라에서 오래 머무를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서도 3개월쯤 있으니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치려고 공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때 3차 전도여행을 마무리하고 예루살렘과 안디옥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했습니다. 4-6절을 보면 돌아가는 길에 베뢰아 사람 부로의 아들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와 세군도, 더베사람 가이오와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 등이 동행을 했습니다. 이를 통해 보면 하나님께서 주의 종 바울에게 여러 모양의 동역자들, 형제들을 보내시고 늘 함께 하게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참 아름답고 감동적인 일입니다. 주님은 어려운 때에 언제나 믿음의 동역자들을 보내어주십니다. 오늘날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혼자가 아니요 여러 형제들과 교제하며 사랑을 나누어 힘을 얻습니다. 우리가 성숙한 신앙인이 되면 주위에 믿음의 친구들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세상에 계실 때에 언제나 형제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사도바울과 같이 좋은 성경선생이 되고 늘 형제와 이웃의 사정을 돌아보고 위하여 기도할 때 그렇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조금 까칠합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성령의 은혜로 모난 것이 원만해지고 유머도 생겨서 이웃의 좋은 친구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좋은 그리스도인은 좋은 친구를 잘 만드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딜 가나 혼밥을 하지 않고 늘 친구들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되어야겠습니다.

63.유두고를 살린 역사(7-12)
바울일행이 이제 에게해를 건너서 아시아 쪽으로 와서 드로아에 이르렀습니다. 드로아에서 형제들이 모여 바울의 강론을 들었는데 바울이 이제 마지막 만남인 줄 알고 오래 강론을 했던 것 같습니다. 말씀공부는 밤중까지 계속되었고 형제들이 다락까지 등불을 켜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9,10절을 보십시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3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정말 큰 사고가 났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다가 사람이 죽은 것입니다. 형제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또 사도바울도 곤란하게 되어 ‘아 내가 실없이 말을 많이했나보다’하고 자책감에 빠질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또 다음날 드로아의 우상숭배자들이 이를 신문에 내고 공격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마도 또 드로아에서 전에 에베소에서 했던 것처럼 무리들이 소요를 일으키지 않겠습니까? 선동당한 무리들이 ‘사도바울이 드로아에 왔다! 성경을 가르치다 사람을 죽게했다!'' 외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사건은 참으로 위험한 불씨가 될 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일을 어떻게 도우셨습니까? 10절을 보면 바울이 내려가서 그 시체를 안으니 그 죽었던 자가 살아났다고 했습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죽은 과부의 아들을 살리신 것 같이 바울을 통해 죽은 유두고 형제가 살아난 것입니다. 주께서 바울을 통해 부활의 역사를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자 분위기가 반전되었습니다. 유두고가 다시 살아난 일로 큰 은혜가 임해서 모든 형제들이 긴 설교에도 전혀 피곤해하지 않고 날이 새기까지 은혜를 나누며 이야기하고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3층에서 떨어져 죽었던 유두고는 다시 살아난 부활의 증인이 되어 형제들의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참으로 주님은 악을 선하게 바꾸시고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분입니다. 우리 중에도 유두고와 같은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모임을 하면 잘 졸고 부주의해서 넘어지기도 잘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형제자매를 통해서도 승리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저희 관악 3부에서는 최근에 몇몇 선교사님들이 영적으로 어려워져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큰 믿음으로 희생하여 선교지에 갔는데 현실의 어려움이 오래되자 힘들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단의 역사는 성령을 이기지 못합니다. 제가 세계선교부장인데 정말 무지를 회개하고 책임감을 가지고 이 귀한 역사를 잘 회복하기를 기도합니다. 주께서 제게 유두고를 살린 바울의 믿음을 주옵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가만보면 우리들로 유두고와 같이 항상 연약하여 졸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언제나 도우시고 지키심으로 일보후퇴면 이보전진의 새역사를 이루심을 믿습니다. 기록적인 무더위에도 우리가 영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성령충만함으로 작년보다 더 충실한 생명의 열매맺기를 기도합니다.

64. 에베소교회와의 작별인사(13-38)
13절 하반부를 보면 이제 바울일행은 드로아를 떠나서 미둘레네로 가서 몇군데 거쳐서 밀레도에 이르렀습니다. 바울을 이때에 에베소를 그냥 지나쳤는데 이는 될 수 있는대로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이르려고 급히 가고자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에베소 형제들을 깊이 사랑하였습니다. 말없이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17절을 보면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장로들을 청하였습니다. 바울을 그들에게 참으로 감동적이고 진실한 고백과 기도와 방향을 전하였습니다. 그 내용이 어떠합니까?
1.겸손과 눈물과 인내와 담대한 가르침의 역사
18-21절을 보십시오. ‘오매 그들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여러분 가운데서 어떻게 행하였는지를 여러분도 아는 바니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로 말미암아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 없이 여러분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언한 것이라’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의 중심인 에베소에서 어떻게 행했는지 잘 요약되었습니다. 즉 성경선생이란 겸손과 눈물과 인내와 가르침과 하나님과 예수님께 대한 회개와 믿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볼 때 크리스챤이란 얼마나 특별하고 아름다운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크리스챤은 절망이 없습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사랑이 넘치고 주 안에서 영혼의 큰 자유와 승리의 기쁨이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사람은 어떻습니까? 불신의 사람들은 끝이 은혜가 안되고 영혼에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최근 어떤 정치인이 투신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가 그나마 부지런하고 진실한 편에 드는 국회의원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악을 감당하지 못하고 스스로의 생명의 파괴하고 진실을 숨기며 사회에 충격울 주었습니다. 이것이 불신자의 열매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죄를 회개하고 사람을 살리지만 귀신은 죄를 숨기고 타인을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람은 사도바울과 같이 인간으로서 차원이 다른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주 예수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이 우리를 그토록 겸손하고 이타적이고 담대한 사람으로 복주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믿음의 삶을 감사해야겠습니다.
2.생명보다 귀한 사명을 감당하고자
22-27절은 바울이 이제 장로들 앞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각오와 결심을 고백한 것입니다. 바울은 주의 종으로서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에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짐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명백히 결박과 환난이었습니다. 아, 이토록 진실하고 충성스러운 주의 종의 앞길에 장미꽃길이 아니라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니! 하나님은 참으로 너무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주의 종 바울은 어떤 자세입니까? 24절을 보십시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에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예, 참으로 은혜롭고 놀랍고 감사한 말씀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다가올 일들에 대한 사도바울의 진실한 마음이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시고 담대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일을 생각나게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지가를 지실 때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으시고 앞으로 나아가셨습니다. 체포하려고 온 군병들 앞에서 ‘내가 그니라’(요18:50)하고 몸을 맡기셨습니다. 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을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사도바울도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자 했습니다. 그에게는 사명이 생명보다 귀했습니다. 그의 영혼은 주 예수의 복음을 온세상에 전하는 일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이 마음은 참으로 인간의 차원을 넘는 성령이 주신 마음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사명을 위하여 인생을 드릴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참으로 세상이 감당못할 거룩한 승리자들인 것입니다. 생명보다 사명을 사랑하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5-27절을 보면 바울이 얼마나 위대한 마음의 소유자인지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에베소 성도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말할 때에 얼마나 참으로 이별의 고통이 있었겠지만 자신이 그동안 모든 피에 깨끗하고 또 자신이 아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다 전한 것에 대해 감사하였습니다. 이처럼 순결하고 용기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을까요? 사명인의 삶은 이처럼 아름답고 감동적이며 생명력이 넘치는 것입니다. 저는 연구실 TV에서 가끔 ‘나는 자연인이다’ 또는 ‘인간극장’이런 것을 보고 감동을 받는데 참 아쉬운 것은 그 귀한 이야기들이 하나님의 진리와 연결이 안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험한 세상에서 열심히 살아도 진리를 모르고 사명이 없으면 그 끝이 슬프고 허무하고 마무리가 잘 안됩니다. 또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얼마나 폭력적이고 괴상한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명을 위해 살아야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사명인의 의미와 기쁨과 능력을 체험했기 때문에 목숨까지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믿음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없는 사람의 특징은 겁이 많은 것입니다. 그들은 언제나 인생이 꽃길과 같이 편하기만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예상되면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전도도 못하고 결혼도 못하고 아이도 못낳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릅니다. 이 믿음 없는 겁쟁이들 시대에 우리는 사도바울의 마음으로 담대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사명을 위해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사명을 위해 자녀를 낳고 사명을 위해 새로운 일에 도전해야겠습니다. 주께서 이번 미국 국제수양회 통해서 전세계 지성인들 가운데 큰 회개와 결심의 역사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귀중한 목숨을 영원하신 주의 복음을 위해 드리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3.지도자들에게 자신과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고 권함
28절부터는 사도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방향을 주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바울의 생명의 동지요 말씀공부 제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바울의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는 유언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그 내용이 어떠합니까? 28절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그들 가운데 여러분을 감독자로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사신 교회를 보살피게 하셨느니라’ 삼가라, 삼가시오! 이 말은 NIV에서는 ‘Keep watch over!''로 번역되었는데 ’늘 잘 살펴보라‘는 뜻입니다. 교회의 목자인 그들은 아침마나 성도들의 이름을 들고 기도를 하며 축복해야 했습니다. 또한 교회 외의 일에 대해서도 기도하고 깨어있어야 했습니다. 이 일은 정말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피로사시 교회를 그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책임맡은 자들은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특히 앞으로 사나운 이리나 교회에 들어올 것이며 교회 내에서도 분란이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29-30). 그때에 그들은 바울이 3년동안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고 감당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 역사를 하나님께 의탁했습니다. 교회역사는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역사입니다. 바울은 특히 그들이 교회에 물질문제로 누를 끼치지 않기 원했습니다. 자신과 같이 스스로 벌어서 섬기기를 원했습니다. 35절이 아주 구체적입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내에서 항상 약한 사람들을 더 도와주어야 합니다. 또한 주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이것이 기독인의 도덕입니다. 약한 사람들을 잘 도와주는 교회가 되어야겠습니다.

65.눈물의 이별(36-38)
36절을 보십시오. 밀레도에서 바울의 고별식이 끝났습니다. 그 마무리는 무릎을 꿇고 모든 사람이 같이 기도한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모임은 이렇게 끝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다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어 작별하며 그의 고통을 생각하며 염려해주었습니다. 여기서 크게 울었다는 것이 참 감동적입니다. 이 울음은 남자들의 울음입니다. 이 울음은 사도바울의 그동안의 행적과 가르침과 오늘 고별말씀이 진실하다는 것이요 이별이 너무나 마음 아프다는 울음입니다. 여러분, 일생에서 이런 울음을 울어본 적이 있습니까? 저는 15년 전에 제 목자님이 돌아가셨는데도 이런 울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멍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제가 목자님 돌아가신 나이가 되니 갑자기 그생각이 나고 울음이 나왔습니다. 젊은 나이에 성경을 가르치다 사랑하는 아내와 자녀를 두고 죽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나 생각하니 통곡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울음은 주 안에서 목자님께 감사하고 은혜가 되는 울음이었습니다. 우리가 성경선생이 되어 이러한 눈물을 가끔 흘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천안센터 형제들과 지내면서 눈물이 날 때가 있습니다. 전에 마가 목자님과 루디아 사모님이 직장문제와 자녀들 학업 도우시는 것을 생각하며 같은 평신도로서 참 깊은 기도가 되었습니다. 주께서 이 신실한 종의 가정에 큰 은혜 베푸시고 끝까지 장로의 직분을 잘 감당하시도록 기도합니다. 김세기 목자님이 직장을 잘 구하고 가정을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안한경 형제님이 큰 장애물을 잘 넘기고 성경선생으로 쓰임받기까지 성장하기를 기도합니다. 김지성 형제님이 언젠가 저를 생각하며 주 안에서 통곡으로 사랑을 나누면 좋겠습니다. 저도 군생활을 해보았기에 은철형제를 위해 기도할 수 있습니다. 외로운 시절 홀로 투쟁하는 밤에 주의 성령께서 함께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다 같이 피차를 위해 그리스도 안에서 눈물을 나누는 형제자매들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 20장 말씀을 기점으로 사도바울은 전혀 새로운 인생길을 가게 됩니다. 이 종이 그동안은 자신의 의지로 사명을 감당했지만 이제부터는 여기저기 끌려가며 자유가 없는 가운데 생명역사를 섬기게 됩니다. 주님의 성령역사는 이처럼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고 원대하고 감동적이며 전능의 진리가 넘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오늘 말씀은 사도바울이 그의 마지막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역사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환난이 기다리는 앞길에 대해서 생명까지 드리고 도전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크게 복주시고 가는 곳마다 성령께서 함께 하셔서 장차 로마선교의 큰 승리를 주신 것입니다. 우리도 주의 말씀과 은혜를 전하는 사명인으로서 생명조차 주께 맡기는 위대한 길을 결심하고 진정 복받은 자 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할렐루야 아멘!!